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번지
이육사문학관
청포도가 새겨진 시비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입에서 청포도 시가 절로 읊어지는 퇴계의 14대손 육사
1930넌대 일제의 무단 총독정치가 극성을 떨 때,
'광야' '절정' 같은 시로써 구국활동에 나선 志節詩人이다.





문학관 전시실에서
육사의 생애와 득립운동 및 문학세계의 자취를 보고
2층 영상실에서 일생을 재구성한 자료를 관람했다.





조영일 관장님이 퇴계학 연구원에서 왔다고 하니
이동영 선생님의 노고를 말씀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육사문학관 관장 조영일님과
직원분들 이위발 김은정 이옥비 김경숙 이동렬님이
모두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퇴계학연구원 김상훈원장님과 이육사문학관 조영일관장님





건물 밖에 연못과 분수대 육우당 생가의 모형이 있다.
청포도 밭과 동상이 어우러져 육사의 정취가 물씬~












이동영선생님께서 주신 책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장
퇴계학부산연구원 부원장을 지내신
이동영선생님(1933~2007) 모습








처음 수필 문학에 입문할 때
대구의 '생각과 느낌'에서 신인상(2001)을 받게 되었다.
대구가 초행길이었기에
마침,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정년퇴직을 하시고
고향에 가 계신 이동영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은 많이 편찮으신데도 불구하고
내가 안내해야 된다며 시상식장까지 와주셨다.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잠시 아주 잠깐,
이동영 선생님이 이 자리에 할께 해 주셨다는 말을 하자마자
이육사의 후손이라며
대구의 원로문인들이 선생님을 환영하셨다.

그날, 선생님은

"류선생, 본격적인 문학을 하려거든 '논어'를 읽게"

나는 그후, 강의하던 명심보감이나 소학을 '논어'로 바꿨다.
그 세월 벌써 강산이 변하는 십년이 넘었다.

그 당시, 퇴계학연구원 부원장으로
나를 퇴계학회 편집위원(1996년)으로 위촉해 주시고
늘 어린아이 돌보듯
제자 키우듯 챙겨주셨는데...
내가 책을 낸것도, 문학상을 탄것도 모르시고
먼곳으로 돌아가셨다.

'이육사문학관'을 세우는데 가장 힘을 쓰셨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선생님댁을 방문해서 선생님을 뵌듯
반가운 감회 물안개처럼 뿌옇다.

故 이동영 선생님의  情을 기리며
선생님 영전에 드리는 마음으로
육사문학관에 '매실의 초례청'을 보냈다.



바람행인   2009-05-24 17:21:52
아직 안가봤는데, 청포도 익을 즈음
계획한번 잡아봐야 겠네요.
문학관이 장엄한것 같기도 하고 ...
연가   2009-05-25 08:49:35
펜대와 펜촉 참 오랫만에 보네요.
편지쓰고 싶어요.
잉크 콕콕 찍어서요.
류창희   2009-05-30 22:09:48
바람행인님,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안동권 한번 순례하세요.
선비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강추!
류창희   2009-05-30 22:13:34
연가님, 참 오래된 이야기죠.
저도 연애편지 쓸 때 펜촉으로 콕콕 찍어서 썼어요.
지금도 편지는 만년필 육필을 노력하지만,
메일과 핸드폰 문자한테 기회를 많이 빼앗기고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