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고택 문이 잠겨 있어 담장 밖에서)


고택순례
雲岡古宅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그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박정주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
1824년에 중건 1905년에 다시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당을 맨 안쪽에 두고 그 앞쪽에 사랑채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건물들을 결합시켜 만들었다고 한다.
운강고택을 나와서 금천교를 지나면 동곡 마을이 있다.
이곳에 동동주 양조장이 있다.
우리일행 여덟명이 들이닥쳐 시음하고 싶다고 하니,
귀찮은 듯 파란 프라스틱 바가지를 주는데 마음껏 뱃속에는 채울 수 있다.
의자나 휴게실 같은 쉼터는 없어 푸대접을 받는 기분은 들었다.
하기야 양조장이 뭐가 답답해 지나가는 객에게 주막을 제공한단 말인가.
선채로 술술 술을 마셨다.
다른 곳의 맛보다 많이 달콤했다.
술 인심 무척 좋았다.
설령 주막을 마련해도 의자가 있으면
엉덩이 질기게 퍼 마실 것이고 취하면 그 꼴을 또 어찌 볼것인가.
우리 일행 중 막걸리 메니아인 무릎도사는 말들이로 사서 집집마다 두병씩 술보시했다.








萬和亭은 소요당 박하담이 건립한 서당이었으며
근대화 교육의 강학소로 쓴 유적지이다.
운강고택을 중심으로 아들집, 손자 집, 길 건너 둘째 아들집 등 고택이 모여 있다.
그러나 대구에 살고 있다는 후손들에게 미리 연락을 하고 가지 않아 문이 잠겨 있다.
높은 담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근처의 집들도 조만간 대대적인 보존 공사를 할 계획인지
지정되어 있다는 안내판만이 지키고 있었다.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몇 채 있었으나 문을 열고 들어서기에는 적막강산 분위기.
살금살금 기웃기웃 거리며 동네를 배회했다.
온 동네 선홍색 꽃분홍색 흰색의 접시꽃만 빗속에 화사하여
동막골의 소녀처럼 ‘마이아파’ 까불대다 돌아 나왔다.




TV 세상의 이런 일이 프로에 방영되었다는 바위 집을 가는 길.
길에 지나가는 몇 사람들에게 텔레비젼에 나온 집을 물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는 저 쪽으로 쭉 가면 된다.
바로 조기다 등등.
몇 미터 몇 분으로 대답을 하지 않으니
저쪽 끝에 가서 물으면 이쪽이다 하고
이쪽 끝에 가서 물으면 저쪽이라 하고…
그 중 우리 신랑이 지나가는 한 초로의 여자 분에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돌뺑이 떨어진 집이 어디 있따카던데… ”라고 하니,
그 까짓것을 찾아 젊은 사람들이 한 차 타고 오느냐는 듯한
아주 같잖고 한심하고 기가 막힌다는 듯한 순박한 헛웃음
(그 웃는 모습, 우리 일행은 청도의 ‘친절’하면 절대 그분의 웃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돌뺑이 떨어진 집




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장터를 간다.
그 고장에 필요한 물건이 다 나와 있고
그 고장의 사투리와 고장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같이 사는 또 다른 식구들도 있다.












시장어귀에서 알려준 '가장 맛있는 냉면 집'에 가서
'냉면 곱배기'를 먹었다.
어쩜, 곱배기는 안 먹는 것이 나을 뻔 했다.




보갑사내 영담 한지 미술관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절인지 갤러리인지 모르게 아지자기
절집도 미술관 건물도 새로 지은 아주 근사한 집이다.
족히 중년은 넘었을 비구니 스님이 나오는데, 동글동글 예쁘시다.
‘영담스님’이시다.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는다.
전시장의 한지 작품도 둘러보고 차도 한잔하고 가라며 호탕하시다.
‘예로부터 佛畵와 佛經을 모시기 위해서 지극한 불심으로 만들어 온 종이,
우리나라 전통종이 질의 맥은 사찰스님들에 의해서 지켜져 왔습니다’














1층과 2층 전시실에 그윽한 작품들이 곱다.
다 관람하고 내려오니 사무를 봄직한 여성이
차도구와 앞치마를 입고 나와
방명록을 내어 놓으며 적고 쉬었다 가라며 끼어앉는다.
아~ 이 친절~ 한지처럼 포근하고 따듯하다.
그렇게 땀을 식히며 담소를 하며 앉아있었다.
잠시 후, 사람이 있는데도 편안히 앉아 놀다가라고 말은 하며 불을 끈다.
우린 이쯤에서 눈치가 있어야 했다.
눈치가 있어야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눈치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처음부터 찻값은 별도라고 했으면
법당까지 쫒기듯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알 수 없다.
비구니스님 혼자 계신 절에서 차를 팔지는 않았을 텐데.

알아서 관람료를 내라고 했다.
안내에 적혀있는 금액대로 관람료를 냈는데 …
우리일행에게 거는 기대보다 많이 부족했었던가 보다.

위로 올라가 평상에서 한참을 쉬며 놀았다.
그쯤에 차 한 잔은, 아니 버들잎을 띄운 물 한바가지는 나올 법도 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럼 왜 차를 마시고 가라고 했을까.
차가 나오면 우린 찻값에 두터운 정을 듬뿍 담으려고 했다.




후후 우리 신랑은 절도 그렇게 바꿔야한다며
여긴 절이기 보다는 사립미술관이니 ...
절집의 집사처럼, 절 살림의 편에 서서 구구절절 말이 바쁘다.
급기야는 절 마당으로 내려가 어줍은 일꾼들이 다루는 전기드릴을 가지고
공학도도 아니면서 인부들 앞에서 반풍수 요령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 남편, 퇴직해서 비구니 절에 처사로 간다면
아마, 밥은 안 굶을 것 같다.
아니 분명 잘 우려낸 차 한 잔은 매일 대접 받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쩐지 서운하다.
옷은 가사를 입었으나 어느 높은 경지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너그러운 관세음 보살과 한지의 포근하고 소박한 성질을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이미 신지식인이다.

휘돌아 나오는데, 스님이 그 예의 밝은 목소리로
다음 달 어디어디에서 개인전을 할 것인데 그곳으로 꼭 와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우리 여행대장인 까르페디엠이 스님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근데, 스님 솔직히 섭섭합니다. 차도 한잔 안 주시고 …” 야박하다는 뜻을 표하니,
밝게 웃으시며
“다음에… 다음에 오시면 맛있는 차 드릴게…”

후후 글쎄 뭐 일부러야 또 그곳에 찾아들겠는가.
이때 문득,
'一期一會' 가 떠 오른다.
한번의 기회
처음 한번에 정성을 다 하는 만남^^
그래도 혹시 '다음'에 다시 그곳에 갈일이 만에 하나 생긴다면,
생수 물병은 하나 꼭 챙겨들고 갈것이다.

그리하여 청도 운문사의 저녁예불 소리를 듣고자 했던 꿈은 뒤로 미뤘다.

바로 부산으로 돌아와 용호동 복국 한그릇씩 무릎도사가 쐈다.
청도 1박 2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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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청도에 '玄門山房' 이 있다.
대학에서 평생 노자를 읽는 분이
산 중턱에 방한칸 아궁이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지
내 맘속의 청도는 언제나 '한칸'이었다.

이번에 청도 곳곳을 겉핥기로 돌며, 많이 놀랐다.
안보일 듯 뒤돌아 앉은 뒤켠의 풍요.
안동과 대구 문화권의 고풍스러움과 풍류가 곳곳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산수좋은 곳곳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갤러리와 음식점 별장등.
지상낙원 '무릉도원'이 바로 청도인것 같았다.

외형적인 건물이나 돈의 냄새 말고 또 하나의 이미지.
만나는 사람마다 소박하고 점잖고 친절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길위에 걸어가는 사람
인가에서 문을 열고 나와 길안내를 해주는 사람
사람, 사람, 어디 사람 뿐이랴.
좁은 외길 농로에서 차 끼리 마주치면 뒤로 빼어 외지인을 지나가게 해줬다.
한대만이 아니다. 마주치는 자전거 경운기 차들마다 다 그랬다.
우리 일행은 청도 사람들에게 너무도 감사했으며
'다시 가고 싶은 청도'라고 후렴처럼 말했다.

1박2일동안 같이 해준 메트로 훼밀리 팀 친구들
드래곤 / 희망선포   무릎도사 / 이승희
특히 청도여행을 주선하고 길안내을 맡았던
거들짝 / 까르페디엠
감사감사요. 감그린 와인으로 '건배!'

그리고 이곳 사이트에 들어오셔서
눈으로 같이 여행길 동행해준  님들^^ 감사감사요.
청도 꼭 한번, 다녀오세요.
체바퀴 같은 삶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청도의 감그린 와인으로
"건배!"





강변학생   2009-07-12 08:38:07
청도 1박2일
너무좋은 서원 고택순례였군요
선망스러운 훈장님의 가족과 문우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보람된 일 많으시길 기원합니다
류창희   2009-07-12 17:56:55
강변학생님^^
'강추!'입니다.
강력하게 추천할만한 코스입니다.
부산과는 서울과는 안동과는
또, 다른 문화입니다
나그네   2009-07-13 11:46:08
장마 끝나고 휴가 때 청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설명 잘 듣고 구경 잘하고 갑니다.
무암(無菴   2009-07-13 22:47:14
'도불습유(道不拾遺)' 길에 버려져 있는 것도 줍지 않는다.
그만큼 마을도 깨끗하고 사람도 깨끗하다.
청도(淸道)는 그런 곳이라 합디다.
막걸리는 저도 좋아하는데 남아 있습니까?
류창희   2009-07-14 09:07:06
나그네님^^
청도의 여름은 너무 더울것 같고요.
휴가까지는 ...
놀토가 낀 1박2일 정도의 시간이면 좋을 것 같아요.
류창희   2009-07-14 09:11:04
무암님^^
'도불습유'의 고장 공감합니다.
아직 청정지역입니다. 산천과 그곳 지역민들은.
단지 이익을 보려고 들어간 사람들이 ...
막걸리 벌~써! 다 마셨지요.
우리 바지랑대가 못마시니, 저 혼자서 숭늉마시듯 ^^
빙호   2009-07-14 09:51:00
"안 보일 듯 뒤돌아 앉은 뒤켠의 풍요"
청도를 한 문장으로 보는 대단한 감상이며 인식입니다.
저 역시 공감합니다.
가끔 청도를 방문하는데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이 남다르고
철마다 바뀌는 자연경관이 무료로 보시하는 소박한 정서와
갖은 수목이 주는 꽃이며 열매가 다른곳과는 달리 풍성해
청도를 그 이름자로서 빛나게 하는 고장이었습니다.
뭐랄까요?
좁은 산길 하나를 걸어도 꼭 외갓집 같은 따스함이 곳곳에 스며있어
어디를 가도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고나 할까요.
토양이 사람의 품성을 만든다는 말을 예서 다시 실감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감이 익어가는 늦가을의 청도는 환상적입니다.
색색으로 물든 감잎이 떨어지면서 가지에 남아 붉게 타오르는 열매는
꽃처럼 보이다가도 때로는 눈물방울처럼 애잔해
까닭없이 마음이 시려오는 것이
한 자리에서 두가지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도록 만듭니다.
마음에 여며둔 아름다운 장소를 다시금 꺼내보면서
화양연화님 발자취따라 종종걸음치다보니
'구경 한번 잘 했다'는 말 입에서 절로 터집니다.
류창희   2009-07-14 18:15:40
빙호님^^
바람불어 좋은 날,
비가와서 좋은 날,
혼자라서 좋은 날,
잊지않고 찾아주시는 마음 감사감사요.

청도는 빙호님의 작품 속에 있지요.
힘이 느껴지는 소싸움 속에요.
저희 일행은 골목골목을 삶을 들여다보지는 못하고요.
'언저리' 청도 언저리만 빙빙돌다 왔어요.
여태까지 제 마음 속에 기억하고 있었던 청도하고는 사뭇 다른,
다른 문화였어요.
부럽기도 겁나기도 한.

무성한 장마가 비껴갈 즈음,
한적한 곳에서 수다한번 떨어요.
영담 혜원스님   2009-08-09 06:37:21
우리 작은 영담한지미술관을 찾아주셨었군요. 감사합니다. 에그, 우리 총무보살님이 손님이 계신데 전시용전등을 껐나보군요...미안해요. 아마도 그 전등의 불이 열이 많이 발생하므로 실내가 더울까봐서 그랬을꺼예요...그리고 차 한 잔 기대에 못미치게 해드려서 그것도 미안하구요... 절이기도 하고 미술관이기도 한 저희 도량에 오시는 분들이 다 대접 후하게 받아 기분좋게 가시도록 해야 할텐데 ...찾아 오시는 분들마다 다 후하게 챙기지 못하는 실정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만에 하나 다시 오시면 서로 후한 인정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