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적부터 겨울이 싫다.
겨울동안 쌓인 눈이 다 녹는 춘삼월까지 
밖에 잘 나가지 않았었다.
그 버릇은 잠재되어
지금도 겨우내 방안에 틀어박혀 책을 보거나,
엎어진 김에 된통 아파야 봄이 온다.
그래서 겨울에는 거울을 보는 일도 귀찮다.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천성적으로 게으르다.
강의하러 나갈 때도 5분이면 뚝딱!
얼굴화장을 마친다.

사춘기 시절, 여드름이 많이났던 오렌지껍질피부라
진작에 백옥같은 얼굴이나 삶은계란 벗겨놓은 것 같은
고운 피부미용 같은 건 관심밖이다.
건조한 얼굴에 저승꽃마저 피지않았다면
생동감이란 그나마 아예 없었을 것이다.

세수하고 나서
스킨이면 스킨, 로션이면 로션 
단순하게 하나만 발라왔다.
머리감을 때도 샴푸하나면 끝.
샤워는 오르지 도브든 천연이든 다이알비누든 
거품만 잘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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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12월,
난 지금, 9호선 5구간 4번 출구에 서있다.
한달후면 낯선 5번출구를 이용해야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난 지금 역주행을 하고 싶다.


미장원도 다녀왔다.
머리 샴푸 후에 정전기 방지용으로 린스도 한다.
저녁에 세수하고 스킨, 로션, 수분크림, 영양크림 ...
ㅋㅋㅋ 나의 피부미용을 위해
식구들에게 가습기도 틀어놓으라고 말했다.

11월 마지막 주말,
가을비 속에 우산받쳐들고 나가
인사동에서 주문한
두터운 울원피스도 구입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만에 짝지가 카드로 결재해줬다.

며칠째 거실 벽에 걸어놓고
햇빛에서 바라보고 불빛에서 바라보고
큰방쪽에서 바라보고 현관쪽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
옷과 친숙해지려고 
아침과 저녁, 거울앞에서 한번씩 입어본다.
브로우치도 달아보고 스카프도 둘러보고
거실바닥에 신문지 펴놓고 구두까지 신어보는 예를 갖춘다.

ㅎㅎ 옷은 그럴싸한데 ...
어째~ 좀 그렇기는 하다.
매장에 사이즈가 없어
한 치수 큰것으로 구입했더니
옷이 이불처럼 담요처럼 몸을 휘휘 휘감는다.

그래도 뭐 어때!
10년 20년 30년 후에도
내가 좋아할 색상과 디자인이다.
앞으로 매년 다가올 겨울을 통째로 전세 낸 기분이다.


여보세요
님들

아~
그 누구
괜찮은 원피스 입은
꽤 괜찮은 여자와
<겨울연가> 찍어줄 사람 없는지요?


추워도 좋아요.
설렘이 있는 겨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