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나는 비에 젖은 글들을

헹구지도 않고 여기저기 널고 있다.

빨리 빨래나 걷으라고 다급하게 짖어대던 갑순이.

갑순이는 지금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박완서
가장 나종에 남는것

어미와 아들
20년만에 만나

'좋아보이시네요,
너도 그러네'


부모와 자식이 그리될수도 있구나

매일 하루에 열번 스무번
전화해서 전화가 고장났어

고장이 안 났기 때문에 지금 통화하는 거라고,

매일 같은 말을 하루에도 수차례씩 한다.

아니다” “기다”, 급기야 소리지른다.

이게 너하고 이승에서는 마지막 전화지?” 되물으신다.

몇십년만에 듣는 목소리처럼,

목소리 들어 반갑다
전화가 고장났다고, 고장타령한 지가 5년은 넘었다.
일상의 전화가 지척에서 혹은 마주앉아서도 똑 같다. 

어제도 가나안 요양병원에서

유리벽을 마주하고 1미터 지척에서 얼굴을 보며 전화로 이야기했다.

코로나가 펼쳐준 신풍속도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도 서너번 전화하여  '징징~ 징징' 대신다. 

전화가 고장나서너에게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못한다고.

 

전화가 고장나지 않아도 20분거리에 있는 내자식도 오지 않는다.

나도 20 후면,  마주앉아서도 "전화가 고장났다"며
목소리 듣고싶다고 하소연 하는 날이 있을까.

자궁 안에 있는 아이도 어미도 서로가 그립다. 전화는 탯줄이다.

 

박정자는 연극에서

A 죽기 직전에

20년만에 찾아온 아들을 만나는 장면을 가장 인상 깊었다고 꼽는다.

"어머니가 죽을 때가 되니 아들이 찾아와.

그런데 사람의 대화가 처음 만난 사람처럼 덤덤해.

'좋아보이시네요', '너도 그러네'.

자식과 부모가 거기까지 있구나. 이게 인생이구나."

 

나는 아직인생을 모른다.

훗날을 짐작만 해도 답답하다.

오늘은 바람개비를 사러 나가야겠다.

내뿜어야 살것만 같은, 내 심호흡이 가장 먼저다.

예술, 팔아야 가치가 있다

 

백화점 시즌 준비처럼, 여름 호에 나올 작품을 썼다.

일곱 편 모두 청탁받은 원고다. 그중, 2편만 원고료가 조금 있다.

이 돈도 안 되는 원고로 인해, 탈고하기 전까지 생업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나는 정신적인 중노동을 하고 있다.

 

<팔리지 않는, 독자 없는 수필집에 대해>

수필미학의 신재기 선생의 권두언을 읽었다.

문학적인 전문 수필가의 수필집은 밀리언셀러는 전설일 뿐이다.’ 라고 했다.

일단 유명해지면 명성이나 혹은 상업광고에 힘입어 수만 부의 베스트셀러가 나오기도 한다.

유명시인, 소설가, 연예인, 정치가, 언론인 등의 산문집 혹은 에세이집이 잘 팔린다고,

그 내용과 문학적 성취도가 수필가의 그것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무엇으로 갑자기 유명인 대열에 합류할까?

 

작가는 자신의 수필집을 특정한 사람에게 공짜로 준다.

거의 관성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배포한다.

작품집을 공짜로 보내고 공짜로 받는 일에 무덤덤해진다.

이는 악습이다.’ 백번 천 번 옳으신 말씀이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내 작품에 농도 깊은 공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 소중하다.’

첫 번째 수필집 매실의 초례청 을 낼 때만 해도 나도 그랬다.

백아절현의 한 사람을 위하여 신바람이 났었다. ‘수필과 글쓰기 자체만이 빛이고 힘이다.’

그렇다. 그랬었다.

 

물질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문학과 예술의 특별한 심미적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은 자신의 책이 팔리지 않으면, 5일장 난전에 앉아 팔겠다고 했다.

대구의 ()임만빈 수필가는 내 책을 공짜로 나눠주지 않겠다.’라고 서문에 썼었다.

그런데 나는 임만빈 선생이 암 투병을 하시면서 까지, 혼을 다하여 내신 책 다섯 권을

서점에서 사지 않았고, 친함이 특혜인양 그냥 공짜로 받았었다.

 

나는 그래도 책을 잘 파는 편이다.

두 번째 수필집 논어에세이, 빈빈매실의 초례청’ 2쇄보다 많은 3쇄를 찍었다.

 3천부다. 둘 다 합하면 5천부, 5천권이다.

이유야 어쨌든 팔아야 한다.

한 사람의 독자도 소중하지만, 독자의 수가 많아야 작가는 흥기(興起)된다.

문기(文氣)가 산다.

작가에게 독자는 생사만큼 중요하다.

나는 내 수업에 들어오는 수강생들에게 대 놓고 뻔뻔스럽게 홍보도 하고, 출판사를 안내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내 돈 내고 내가 사서 선물도 한다.

 

우선 가까이 잘 알고 지내는 수필가의 수필집 한 권을 정가대로 사는 일에서부터 수필 쓰기를 다시 시작해보자.’

"YES, OK!". 나는 팔 것이다. 팔리지 않으면 내가 살 것이다.

, 이렇게 아침부터 비장해지는가?

수필가의 자존감은 지키고 싶다는 강한 의지다. 그러니 나를 아는 분이라면,

알고 싶은 분이라면, 돈 내고 내 책을 사 달라고 통 사정하는 중이다.

 

그 대신, 나도 읽힐만한 글을 쓰기 위해,

날마다 연필과 마음과 글을 사각사각 깎을 것이다.

 

 

 


 

그시간,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11시

나는 사하도서관에서 <고전산책 논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
공자 - 맹자 - 순자 - 노자 - 장자 - 묵자 - 열자, 그리고 한비자를 이야기 하려는데....
 "땡!" 11시다
10분 휴식시간, 모두 스마트폰을 켜고 경청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대통령 탄핵인용 (彈劾認容)>>

 
국회가 제출한 탄핵소추안을 인용하여 받아들이는 역사적 순간이다
순간, 어느 분은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어느 분은 아쉬움을 역력하게 드러내는 한숨을 쉬고,
어느 분은 눈물을 글썽이며 "인간적으로는 너무 안 됐지만 ...."
그야말로 위의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제자들이 강의실 안에 다 있다
나는 비겁하게 '표정관리'의 처세만 슬쩍 비췄다.
 
그리고 다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이야기했다.
잠시 프라하의 봄도 생각나고, "아아~, 대한민국!" 서울의 봄도 생각났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며,
도시고속도로가 뻥 뚫린 탓도 있겠으나 쌩쌩 달렸다
'나부터 달라지자! 아니 반드시 내가 달라져야한다!'
괜히,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의기충전 가슴이 쿵쾅댔다.

살고 있는 동네가 가까워지자 자꾸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서가는 택시와 버스와 트럭이 보인다
거리의 즐비한 간판들이 모두 내  차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같다.
문득, 내 머릿속에 이런 문구가 스쳐지나간다.

☆ '법치주의가 살아 있어도
법이 밥을 먹여줄 리는 없고,
밥은 각자 알아서 벌어먹어야 하는 것... '


각자 앉은자리 선자리에서 당당해지려면
'밥벌이'를 해야한다

새로운 정부가 내가 밥벌이 할 일자리를 보장해 주어야 할텐데....
슬관 (蝨官)처럼, 잠방이 속에 숨어 사람의 피나 빨아먹는 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도 남편도 아들도 며느리도 손자도 ...
우리가족 모두 우리나라에 살아있는 동안, 기생하는 곤충이 되어서는 안된다

밥값은 하며 살고싶다.

 

 ☆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P166쪽 


 

                          그리운 류창희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봄은 벌써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는데, 그동안 문안인사조차  못 드려 죄송합니다.

항상 가정이 평안하시고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후학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교훈삼아 배운다는 즐거움으로

이번에 저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국문학과를 졸업합니다.

국문학과에 편입하여 공부하는 동안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창작과 소설 창작도 수료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문화교양학과에 등록하여 오늘 입학을 합니다.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기 위한 기초적인 과정을 차근차근 배우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배우고 싶은 마음에 동기를 부여해주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어떤 결과를 앞세우기보다 걸어가야 할 길의 과정을 착실히 배우고 익히고자 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가고 싶은 길을 향하여 걸어가 보려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선생님!

  오늘 저는 『행복론』을 읽으며 소펜하우어의 행복론 중 독일 시 한 편을 옮깁니다.

  “ 빛과 그림자는 항상 함께 있고,

    잘못 또한 없는바 아니지만,

    그러나 안에서 빛나는 광명은,

    밖의 어둠을 밝게 하나니.

 

    절실히 완성하기를 염원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얻지 못한다.

    그러나 완성만을 원하는 자는,

    그 영혼에 평화를 얻으려니.

               -독일 시-

 

   다가오는 봄은 “춘래불사춘”이 되지 않기를  염원하며

꽃피는 삼월에는  꼭 선생님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들만 함께하시길 빕니다.

                                                 2017. 2. 18.

                                       능인 올림  

 

----------------

 

 

 

능인 선생님

진작에 메일을 받고 이제야 답글을 보냅니다.

이렇게 전자 편지를 드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글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 어려운 과정 

입학정원의 5%도 졸업하기 어렵다는 방송대를

그것도 중문학을 졸업하시고

중문학보다 더 어렵다는 국문학과를 마치셨다니

우선 축하드립니다

더구나 부산대학교 수필창작과 소설창작 과정도 수료하셨다니

소양과 이론이 그야말로 탄탄대로 이십니다


거기다 첨단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하신다니

도대체 선생님의

지적 에너지의 끝은 어디인가 모르겠습니다

정말 두손 모아 선생님의 열정과 끈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 정신적인 풍요는 말할 수 없이 가득하겠으나

몸의 건강은 온전하신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선생님의 궁극적인 바람은 '글쓰기'이십니다

능인 선생님께는 가는 세월이 아깝기만 합니다

공부하는 틈틈이 힘들고 기쁘고 뿌듯한 과정과 단상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쓰시고자 하는 글들을

한 편 한 편 궤에 모으고 계시겠죠?

그 궤적을 보고 싶습니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축하드리고

그리고 감히 칭찬합니다

모쪼록 건강도 챙기시기를 당부드립니다

 

2017년 3월 6일


류창희 드림

 

---------

 

내가 하고 있는 수업은 성인 대상이다

20대부터 80대까지 계시다

위의 이글을 쓰신 분은 나보다 10년은 연배가 더 많으시다

나하고 <논어>와 <문학수업>을 같이 하셨다

처음 이 분이 글을 써 오셨을 때,

문장의 요령은 다소 서툴렀으나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가슴저리고 서늘하고 늘 감동이 철철하셨다

나는 '문학작가 파견사업'이 끝나면서

이 분의 글들이 너무 좋아 계속 글쓰기를 권유하였었다

 

수강자 분들 중에 더러는 내 수업을 듣고 지독하게 공부하여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나 서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데 논어의 문구를 따서 호를 지으신 '能仁' 선생께서는

글쓰기 위한 기초를 다진다며 이토록 몸을 혹사하여

글에 대한 염원으로 문학의 정신을 닦고 계시다

글이 곧 '修身'이시다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던가?

선량한 님들을 분발하게 선동해놓고 

정작 자신은 공부에도 글에도 삶에도 허덕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분들의 '지적 에너지'를 착취한 셈이다

오늘에야 메일 답변을 보내며 

"류창희, 정신차리자!"

 

 

 

 

 


안녕하세요?


2008년 부터 운영해 온
사이트 <류창희 수필산책>을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화양연화 - 여행, 독서, 사진, 하루, 책이야기>
<수필산책 - 류창희 에세이, 여행수필, 논어에세이,  매실의 초례청, 평론>
<고전의 향기 - 소학, 논어, 일반고전>
<엽서한장>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여 10년 세월동안
인테넷의 발달은 상당하였습니다
컴퓨터를 켜야만 많은 것을 검색하고 공유하던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하여, 모바일버젼에서 익숙하도록
'리모델링' 하였는데요

사이트 구조를
집의 큰놈 도움을 받은지라
지금 저도 제 홈피에 들어오면
코너를 찾지 못하여 절절맨답니다
곧 익숙해지겠죠

이 다음,
내년, 후년, 더 더 더 아주 먼 훗날 .....
기동이 불편하더라도 손과 정신은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잘 놀다가
한 동안 시들하다가
문을 닫을까 해마다 고민하다가
제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공간이라
도무지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또 다른 나의 공간,
이곳에서 앞으로의 삶
자유의 경지,  '소요유'를 누리려고요
그리고 찾아오시는 님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려고요
순간 순간,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생일

병신년 유월 스무나흗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하얀원피스를 입었다
보랏빛 사발만한 수국코사지를 가슴에 훈장처럼 달았다

남천동 해변시장, 떡방에서 하나씩 포장된 모듬떡 50개와 식혜 두병을 찾았다
종이컵 50개, 프로방스에서 사온 꽃무늬 내프킨도 준비했다

동서고가에 차를 올려 학장램프로 빠져나가 강변도로를 달려
은빛 아침햇살을 받으며 몰운대 다대도서관으로 갔다

아침부터 푹푹 찐다

어제, 친정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내가 너를 낳던 날도 중복날이었다"
61년 만에 네 생일과 중복이 곁치는 걸보니,
그래서 환갑(還甲)인가보다고 축하말씀을 하신다

맞다!
나는 오늘, 6학년 1반 회갑을 맞이했다
누가 알아주던 모르던,
나는 내 나이가 자랑스럽다
그냥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너무 자랑스럽다

내가 '생각'이라는것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런 나에게 오늘 스스로 자신에게 상을 내려주고 싶다

<논어 에세이> 문학 수업반 문우들과
'건배'를 했다
혼자 감흥에 젖어 신나는데
35명 정원의 문우들이 더 흥기되어 기뻐하신다



이제, 나는
아름다운 화갑(花甲, 華甲)을 맞이하여
해질녘처럼, 그윽해지고 싶다
세상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옥탑방 별당 마님으로써
극성스럽게 아이들 살림에 참견하지 않고
동네 일에 원로인척 나서지 않고
조촐하게 차츰차츰 소멸하는 삶을 진행할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남항대교 북항대교 광안대교를 거쳐 신세계로 갔다
4층 아이스링크 옆 푸드마켓에 들러
'미역국 정식' 을 한상 받아, 우아하게 홀로 먹었다 (가격 6천원)

이 염천 더위에 어느 누가
나를 위해 따끈한 미역국을 끓여주겠는가
목젖이 뜨근한가 싶은데,
대책없이 물밀듯 쳐 올라오는 행복이 있다
주억거리며
식당안에 가득한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휴~ 휴~ '행복'을 다독였다


지하에 내려가 하얀 침대패드 두 장을 샀다
딸의 환갑을 위하여
서울에서 친정어머니와 동생내외가 함께
새로 이사한 부산 해운대의 뾰족탑에 오신다
드디어, 나를 낳고 기른 내 편이 오신다
외치고 싶다

"나도 내 편이 있다!"

* 친정 엄마는 늘 돈이 없으셨다.
딸이 친정에 가도 차비 한번을 내 손에 쥐어주지 않으셨다.
그러니 밥값이나 양말 한 짝은 어림도 없다.
그러던 엄마가
"내가 그동안 너에게 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며
그럭 저럭, 올해가 네 환갑이구나
너도 이제 나이가 들어
" 네몸 네가 알아서 돌볼 나이다" 며
올 봄에 "내가 돈을 좀 송금했다"라고 하신다

엄마의 수준으로 '좀'이려니 했다

통장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0을 헤아려봐도

거금, '10000000'이다

기절할뻔 했다

나도 이 다음, 

우리엄마처럼 자식 환갑에 1천만원을 슬며시 송금할 수 있을까.
요즘 나의 뒷모습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어깨가 '으쓱' 조금 올라갔을 것이다

엄마에게 1천만원은 거의 전재산이다
못난 딸이 전재산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동백섬, 도 청 도 설


1월이 되어 방학동안

날마다 동백섬을 걷는다
낮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다
주로 중국 단체객이다

그들은 워낙 왕성하니, 왁자하다
그들의 시간을 피하려면 점심시간 직후가 좋다

동백섬의 특징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게 되어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없으니
눈을 감고 걸어도 부딪힐 일이 없다

문제는 한 방향으로 걷는데에 있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말을 하면 듣지않을 수가 없다

어느 중년의 여인이 둘이 걷는데,
그 중 한 여인이 한탄인 듯,
아들이 대학병원의 수련의라서
와이셔츠를 샀다고 말한다
의사이니 체면상 싸구려는 입힐 수가 없어
5만원짜리로 30개 1백50만원 어치란다
그거 빨아댈려니,
"쎄가 빠진다!"

그러게 쎄가 빠지겠다

그녀의 자존감 있는 자랑질에
'난 뭐지?'
옳은 와이셔츠 하나 사주지 않았던 아들에게 미안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

"나중에 한 번 당해보시요"
장가가면 그 아들이 어미의 자존감따위는 있는 줄도 모르오

내가 요즘, 마음이 사납다

나의 심술통이 왈칵 뒤집혔다


나란히 한 방향으로 걸을 수 없어
<孤雲> 최치원 동상으로 올라갔다
혼자 걷는 것,
외로운 구름처럼 나는 혼자 걸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동백섬답게 동백꽃이 붉다
해운대 파도소리 "쏴아 ~쏴아~"
동박새도 덩달아 이 꽃 저 꽃으로

포로롱 포로롱 날아든다

오늘의 道聽塗說 이다  

 

 

 

싸한 맛, 공부

 

병신년 새해, 혹독하게 춥다

초하루 초이틀, 초사흘......

해 뜨는 시간을 핑계로 점점 늦게 일어난다

아침 식사를 하는 시간도 점점 늦어진다




출근할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나갈 일도 없이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응답하라 1988’도 끝나 마땅히 재방송까지 챙겨볼 프로그램도 없다. 창가에 비치는 겨울 햇살은 환했지만, 새해 시작인데 이렇게 멍청하게 이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다.

내가 꼭 잉여인간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1월 6일 초엿새날 아침, 아침부터 무조건 걸어나갔다.

경성대 연경 중국어 학원에서 한 시간 청강하고 나오며 바로 등록했다. 한층 걸어 올라JK일본어 학원으로 올라가 한 시간 청강하고 바로 등록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날마다 학원까지 서너 정거장 걸어가고 걸어오고, 그리고 집에 와서 점심을 차렸다. 추운 줄도 모르고 매일 학원 갈 욕심에 땀을 뻘뻘 흘렸다.




한 달 동안 새롭게 중국어 성조와 권설음 발음 지적을 받으며, 일본어 히라가나 숙제를 하며 두 시간 수업받고 오면, 4시간씩 예습복습을 했다. 간혹 외고 지망생 중학생이나 아주머니 아저씨의 중년도 있었지만, 대학 앞이고 방학기간이라 대부분 수강생이 대학생이다. 그들의 총명과 순발력은 좇아갈 수는 없지만, 성실한 태도 하나만은 그들보다 관록이 있다.



내년이면 벌써 서른이라며 자신의 나이에  ~!” 하는 중국어 승미 선생님의 깜찍하고 명랑한 수업에서 나는 요즘 젊은이들의 신종언어를 중국어로 들었으며, 시작하는 날부터 종강하는 날까지 한 순간의 분초도 어김없는 시간 엄수와 헛된 숨소리조차 아끼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일본어 아라 선생님의 교수태도에 경의를 표했다. 내가 하던 강의에 반성도 하면서, 모름지기 강사의 자세는 저래야 한다며, 마음속으로 존경까지 했다.




얼마만의 집중이었던가.

얼마만의 나만 위한 시간이었던가.

이런 시간만 나에게 주어진다면 정말 좋겠다. 얼마나 공부가 흥겨운지, 누가 보면 앞으로 이 공부로 먹고살 듯이 들이덤벼들었다. 모르면 몰라도 나를 지켜보는 학생들도 저 아줌마는 공부 귀이 붙은 줄 알았을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의 관계, 어찌 잘 살아나갈까. 하나도 해결되지 않을 발등의 불도 아닌 일에 수면제를 복용하던 시간을 무시해버렸다. 날마다 소리 내어 미친 듯이 읽었다. 꿈속에서 마스 & 데스가 서로 제것이 맞는다고 다투는 바람에 나는 밤새도록  심판이 되어 형용사인가 동사인가 편 가르다가 깨어보면 어스름 새벽이 되었다.




종강 날까지,

손자 바하보는 날도 병원을 예약한 날도 오후 보충수업이라도 가서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개근했다.

종강하고 집에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련없이 중국어와 일어책을 재활용 폐지박스에 넣었다.

한 달 잘 놀았다.

이번 공부는  가혹하게 나를 부리기 위한 훈련이었다.

공부하고 속이 이렇게 후련하기는 처음이다.

완전 사이다 맛이다.





 

 

 

 


새해, 새 친구

 



쌈지도서관 운영위원회의가 있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 모임이라 두세 가지의 일정이 겹쳤다.

빠른 기동력을 위하여 차를 몰고 나갔다.

회의가 끝나고 마트 주차장에다 차를 주차해놓고

잠시 도서관을 돌아보고 나와 마트에 갔다.

오늘은 차를 가져왔으니, 오며 가며 몇 개씩 사오던 장보기 말고

이것저것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봉지에 들어있는 찹쌀 등

냉동식품까지 바리바리 한바리 샀다.

 

 

회의에 가느라 정장과 구두가 불편하다.

거기다 양손에 장 본 것까지 들고 에코 백까지 둘러메니 뒤뚱거리며 무겁다.

살 때는 즐겁더니, 슬슬 부아가 치민다.

아이들 먹일 것도 아니고 추운 날 이 무슨 고생인가 싶으니

남편 얼굴이 떠오르며 약이 올랐다.

 

 

장본 것을 정리하여 냉장 냉동실에 넣고

씻을 것 썰 것을 정리하다 보니 저녁 할 시간이다.

저녁 먹고 예습 복습을 해야지 생각하니

차 뒷자리에 놓아둔 책이 생각났다.

어둡기 전에 주차장에 내려가 가져와야지 싶어

주차장으로 내려가 지하 21층 온통 둘러봐도 내 차가 없다.

 

 

~ ! 이거 뭐지?’

갑자기 멍~~~~,

차가 어딨을까.

내가 오늘 나갔다 왔나?

 

잠시, 머리가 쇠 수세미 얽히듯 빙그르르 돈다

아차차!”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장본 것을 낑낑대고 들고 왔구나!

 

 

새해를 맞이하여 나를 찾아온 새 친구(?)’

몇년 전 금요일 오후, 퇴근하면서 도서관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일요일 오후까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것보다는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어쩐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이 새로운 친구를.

 

 

 

 



병신년에 태어나

한해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골목 골목 돌아 돌아

병신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작은 풀꽃소녀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꿈보다

훨씬 더 많이 펼쳐진 꿈동산을 둘러 보았습니다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님, 님, 님들 .....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날마다

'사무사, 무불경'으로

정성스럽게 살았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병신년의 시작입니다

온 길을 되 돌아 갈 예정입니다

설령, 초심의 그 길이 험할지라도.....

 

 

 

--------------

 

 

 

병신야화(夜話)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노랫말처럼 오늘도 정처 없이 재주를 넘는다. 나는 좋은 년 다 놔두고 하필이면 병신년에 태어났다.


별나라에 얼굴이 열한 개 달린 보살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비위를 맞추다가, 하나의 신에게 너무 집중을 하는 바람에 그만 다른 신들의 이야기를 놓쳐버렸다고 한다. 그 벌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수만 수억 개의 얼굴들에게 각각 맞는 얼굴로 기쁨을 주라는 명령을 받은 신이 바로 원숭이 신()이라고 들었다.


띠 동갑인 고모는 늘 잰걸음 치는 나를 애처롭게 여긴다. 어쩌니 너나 나나 애()가 많은 잔나비 띠인걸. 그저 누가 보나 안 보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베풀어야 살 수 있는 걸. 팔자거니 여겨라.


어린 나에게 팔자타령은 가혹했다. 나는 유년과 청소년기를 창경궁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봄이면 벚꽃놀이를 나온 상춘객으로 붐볐는데, 그 때문인지 동물원 원숭이에 견주었다. 조카딸인 내가 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며, 원숭이의 호시절은 따뜻한 봄날이라고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고모의 말대로라면 나는 봄 소풍 볼거리에는 끼지 못했다.


한 여름 삼복 중 유월 스무 나흗날, 저녁 먹고 설거지 할 무렵에 나는 태어났다. 원숭이에게 여름밤은 막 내린 유랑극단과도 같다. 모닥불 가에 누워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동짓달 스무 나흗날 밤의 병신생 남자가 별똥처럼 내게 떨어졌다.


여름밤보다 더 볼거리가 없는 동짓달, 두 병신(丙申)생이 합궁을 하였으니 우리부부는 서로 잘 하려고 고만고만하게 육갑을 떨어야했다. 육갑(六甲)은 우리 부부에게 있어 끊임없는 노력이다. 오죽할까 그 자식에 있어선. 나의 두 아들은 제도권교육에서 결코 우등생이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민첩하고 남 다른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순전히 어미 아비의 원숭이 띠 기질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즐겁게 이끄는 슬기로움을 지니고 있다.


남의 삶을 훔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모든 동물 앞에 군림하며 신령 행세를 하는 범띠 사내아이로 태어났더라면, 혹 기를 펴고 호쾌하게 살아졌을까. 가끔은 진리의 빛을 발하며 운명까지도 지배하는 여의주 하나쯤 물고 있는 용도 그려봤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한다. 순발력만 있으면 빗겨갈 수 있다. 숙명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도전해 보는 거다. 우직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황소도, 자신을 남에게 베풀어줌으로써 더 풍부해지는 돼지도, 새벽을 알리는 정확성으로 번영하는 닭도 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때론 부러운 이들이 있다. 부지런을 떤 만큼 실적도 크다. 고지의 목표물을 정해놓고 백발백중으로 적중시키는 이들이다. 언제나 새로운 탐색으로 진보하며 감각이 새롭다. 컴퓨터 마우스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들은 자시(子時)에 태어났거나 쥐띠들이지 싶다.


산에 오를 때 원숭이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정색을 하며 말하지 말라고 한다. 원숭이가 아니고 잔나비라고 하니 아예 말없이 되돌아 내려가 버린다. 재수까지 들먹인다. 옛 말에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으니, 잔소리 잔재주쯤으로 분류하여 행여 발이라도 헛디뎌 넘어질까를 염려한 듯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올라가는 것은 떨어져야 제격이다. 실수하는 모습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다. 주기적으로 겸손을 알리는 경종이다. 무엇보다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일어서는 지혜가 돋보인다. 그 지혜를 닮고 싶어 옛날 임금들은 옥새의 손잡이를 원숭이 모양으로 조각을 하던 시대도 있지 않았던가.


오히려 그로 인해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개척정신이 있다. 나는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배로 종종걸음 치지만 소득은 별로 없다. 그러나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그저 타고난 운명이려니 여기는 까닭에 고달픔을 에너지로 가동시킨다.


처음 서는 무대처럼 설렘으로 하루를 연다. 어느 보살처럼 직분을 다하자는 심산이 아니다. 몇 사람만 함께 있어도 그냥 그대로 신이 난다. 팔자땜인가. 나는 옛 고서에 박제된 성현들의 말씀을 빌려 마음의 지혜를 얻는 교량 역할의 일을 하고 있다.


원숭이 신은 원만한 보살성품이라 했으니,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띠를 지닌 이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싶다.


육십갑자(六十甲子)안의 정겨운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얼!


병신년 육갑 한번 짚어보자.



 

류창희의 <<매실의 초례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