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지음 / 앨리스

 

 

 

 

 

 

 

 

 

 

정말 괜찮나요? 결국, 착하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사랑에 전부를 거는 당신 -

‘미운 세 살’이 미운 짓을 많이 하는 이유는 자기 행동의 허용범위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성인이 되면 오히려 경계를 허무는 일에 주력한다. 계속해서 선 안에 있기만을 고집하고, 선 밖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린아이와 같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자기 영역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여자 카미유 클로델 <입맞춤>은 클로텔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사랑에 자신을 남김없이 내어주고 자신의 예술을 모두 녹여버린 여자. 로댕의 제자고 조각가로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거대한 스승 로댕의 그늘 아래 그녀의 존재는 완전히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로댕에 대한 감정은 피해 망상증 “로댕은 나에게 독약을 주었어요.” 그와 나누었던 달콤한 입맞춤이 곧 파멸의 독이었다. 클로델은 이후 정신병원에서 30년을 보내고 “내 삶이 어찌 이럴 수 있나요.”라며 날마다 절규하다가 결국 그곳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당신 -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도라에게 내려준 처방, 병도 주고 약도 준 격.

지적이고 명랑한 여자라고 해서 반드시 사랑도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에는 긍정적인 추진력이 되는 장점들이 사랑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사랑의 화살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날아오기 때문에 피할 길도 없다.

 

 

 

오직 두 사람만 존재하는 사랑 -

한곳만 바라보는 숨 막히는 사랑, 누구나 하나만 알고, 한곳만 바라볼 때가 있다. 사랑에 처음 빠진 남녀가 그렇고,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도 그렇다. 아서밀러《세일즈맨의 죽음》이 그렇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공식이 있고, 숨통을 틀 수 있는 창문이 있다.

사람들은 방이 많은 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면서, 마음에는 방이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한쪽만 바라보는 사람은 로맨틱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방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일 것이다. 심지어 그 방에는 마그리트가 그린 두 남녀처럼 바깥세상은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베일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지도 모른다.,

 

 

 

배신에 대처하는 자세 -

복수는 어느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파멸로 종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얻는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크다.

완벽한 망각이야말로 초고의 복수, 진정한 망각이란 이어진 모든 연을 끊어버리는 것.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상대방에 대한 습관들, 어이없게 움트는 그리움까지도 잘라낸다. 절연의 주제를 가장 감각적으로 실감 나게 다룬 그린은 바로크시대 카라바조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사랑의 기억과 추억 -

빈센트 반 고흐 <슬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던 대중 댄스홀의 이름이다. 그녀들에게 사랑은 거짓이거나 잠깐 스쳐 지나가는 꿈 같은 일일 뿐이었다.

 

 

 

타인의 사랑만이 구원일까 -

멜랑콜리란 우울질 체질의 특징이다. “철학과 시 그리고 예술에 특출한 사람은 모두 멜랑콜리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천재’라고 불리는 예술가들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커다란 슬픔을 안고 태어나며 그것을 내면에 품고 산다는 점이다.

거울에는 타인의 시선이 숨겨져 있고, 긴 머리카락에는 타인의 손길이 묻어 있다.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이라는 필터를 끼고 사랑이라는 뷰파인더로 세상을 본다. 사랑은 슬픔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에 불과하다.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한 걸까 -

인간으로서의 모든 욕망을 억누르고 자기절제의 미덕을 쌓아야 하는 수녀들은 과거에는 거울을 거의 불 수 없었다.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기만족에 빠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녀들에게 거울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분명히 그것이 자기애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애란 바로 사랑에 빠지기 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연인의 눈은 자신을 실시간 촬영해주는 동영상카메라와 같다고나 할까. 연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상대방에게서 찾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이디.

 

 

 

열정을 지나 흐르는 사랑의 시간 -

열정은 희망과 기대를 하고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자신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찾게 하는 것은 물론, 오감을 열어 풍부한 감수성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한다.

 

 

 

식지 않는 열정, 축복일까 형벌일까 -

열정을 품는다는 것은 말이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숨도 가쁘고 에너지 소모량도 많다. 그런 사랑은 서로 상처 입히고 쇠진시키는 폭력적인 사랑이 되고 만다. 여러 국면의 사랑들을 한 단계씩 차례로 경험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꼭 열정이 아니어도 영혼은 풍요로울 수 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둔하게도 내 헤어스타일이 바뀐 걸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바뀐 머리가 무척 마음에 든다.

 

 

 

사랑하라, 솔직하고 단순하게 -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음식과 물건은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적 욕망과 관련된 상징물로 여겼다. 싱그러운 과일들은 젊고 탐스러운 육체를 암시하며, 유리로 된 병과 잔은 육체의 순결을 말해준다. 조개류, 특히 껍질이 벌어져 있는 싱싱한 석화는 노골적인 유혹의 모습.

 

 

 

부끄럼 없이 본능에 충실하기 -

개는 물론 인간보다 본능에 충실하다. 좋아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개는 진심으로 인간을 좋아한다.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도 개에게는 자기 주인이 가장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다. 개는 인간을 여전히 단순한 방식으로 좋아한다. 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인간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행복하다는 표현을 한다. 꼬리 흔드는 것만으로 부족한지 온몸을 흔들면서 뛰어다니고, 너무 좋아서 벌러덩 드러눕기도 한다.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통할 줄 아는 현명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 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고통스러운 상상, 질투 -

한 학기 내내 작업에만 매달린 자신보다 친구의 반짝 아이디어가 훨씬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스스로 비참한 기분이 든다. 예술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다. 질투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실체가 있는 것이 나니라 상상의 감정이다. 상대방을 의심하고 불안한 상상을 키워가는 것이디 바로 질투이다.

 

 

 

우연 같은 만남을 꿈꾸는 당신 -

우연이란 일상에서 늘 스치고 지나가는 가벼운 사건들에 불과하지만, 우연을 인연으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 가볍지 않은 것이다. 소설에서는 자주 있는 우연의 일치가 실제 생활에서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연의 의미를 자기에게 맞게 해독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타인의 감촉 -

소녀는 더는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가 아니다. 소녀는 거울을 통해 성숙해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인형을 통해서 자신을 보고/ 거울을 통해 타인을 본다.) 세상에 태어나는 첫 순간부터 언니와 나누었던 교감은 언어가 아니라 바로 이런 느낌.

에두아르 마네는 예술가로서의 자아상을 염두에 두고<넝마주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아무것도 수유하지 않는 정신적 자유로움을 즐기는 자이다. 그는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려고, 또 따뜻한 수프가 있는 풍성한 식탁을 가지려고 시간과 노동을 파는 대신 차라리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거친 자유를 선택한다. 떠나면 길이 되고, 멈추면 집이 된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마네 자신은 결코 넝마주이처럼 살지 않았다. 그는 물질주의적인 중산층 집안 출신이었고, 넝마주이는커녕 차라리 멋쟁이 댄디에 가까웠다. 마네에게 넝마주이는 그저 자유로운 예술가에 대한 은유에 불과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자, 인제 그만 일어나세.” “그러세.” 그러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 둘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계속해서 기다려보려고 한다. 내가 찾은 작은 꽃을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억해두는 것이 천 번의 의심, 만 번의 후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일 듯하다.

 

 

 

겨울처럼 꽁꽁 얼어버린 삶 -

물기가 부족하다는 느낌, 물기란 유머다. 《쉘 위 댄스》야쿠쇼 고지, 그의 마음속에 리듬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내면에 잠자고 있던 리듬 하나를 일깨워낸 것이다. 남자가 찾은 것은 일탈에서 오는 자극이 아니라, 몰입을 통한 기쁨이라는 것. 메마른 잎사귀에 방울방울 촉촉한 이슬이 맺힌 것이다.

 

 

 

당신은 존재만으로 향기롭다 -

하루에 두 번 향수를 뿌린다. 향수를 잊은 날은 마치 카페인이 부족한 사람처럼 결핍 감을 느끼게 된다. 강박 영원 탈출 모순 몽환 등은 향수의 이름이다.

 

 

 

지친 당신, 삶에 쉼표를 찍어라 -

폐결핵은 체내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병이기 때문에 감정을 지나치게 소모시키는 사람, 가열 연인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라거나 몸을 소진시키며 시를 창작하는 낭만적인 시인이 잘 걸리는 병리라고 분류되었다. 그와는 반대로 암의 경우는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며 사는 사람에게 잘 찾아온다고 믿었다. 세월은 이미 그들의 젊음을 앗아간 지 오래다. 생에 대해 깨닫자마자 죽음이 훌쩍 눈앞에 와버린 것이다.

차에 시동을 거니 ‘영어 프레젠테이션 쉽게 하기’ 디스크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듣고 싶지 않다. 그것 대신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여유 없이 기계처럼 지냈다. 머리가 숨을 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벼운 산책, 산책은 기분을 유쾌하게 한다. 마르크 샤갈의 <산책>에서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거니는 행복, 그 어느 것의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자유로움.

 

 

 

당신은 자존심 강한 신데렐라이다 -

공주가 된듯한 환상, 늘 무시당하던 사람일지라도 쇼핑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귀한 고객이 되는 곳, 백화점. 1852년경 파리 ‘봉 마르셰’ 백화점은 이미 신분 상승의 환상과 맞물려 있었다.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과 마주치면,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이 있다. 새 옷을 입었다고 신분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예쁜 새 옷을 입고 나서보라. 아무도 봐주지 않으면 어떤가. 사람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산다.

 

 

 

중독, 감금과 탈출 사이 -

중독성에는 공통점이 있다. 탈출에서 시작해서 감금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잊고 싶은 건 현실이었는데, 정작 잃어버린 것이 나 자신. 라스베가스에 가는 것은 좋지만 올 때에는 잃은 것이 없나 살펴봐야 한다.

 

 

 

유연한 삶의 매력 -

수련 꽃의 공덕이 꽃 자체에 있지 않은. 꽃의 고결함을 지켜주기 위해서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들이 말없이 더러움을 감당하고 있다.

 

 

 

행복의 모습 -

인간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파랑새를 찾는 마음으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덕분에 통장 잔액이 8만 원 남았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새해의 동이 트자마자 에펠탑에 나갔다가 ‘끈적’한 것을 밟고 말았다. 개똥에 미끄러지고 번진 화장으로 엉망이 된 여자의 얼굴까지, 파리의 새해 첫날 아침은 그다지 상쾌하지 못했다. 불꽃처럼 화려했던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였다.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색깔이 달라지는 카멜레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구하고 마침내 성취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견하고 매 순간 경험하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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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없이 본능에 충실하기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언제까지?

죽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