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딱 하나,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는 점이다. 명예보다는 즐거움, 책임보다는 재미를 택하면서 살기로 했다. ‘아이답게’ 늙어 가는 일이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 나는 행복합니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 나는 행복합니다 - 김수환

 

 

인생은 어느 시기건 그에 알맞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힘없고 느리기만 한 늙음이 천천히 익어가는 술처럼 그윽한 인생의 향을 품어 낸다.

 

 

중년 이후를 ‘바로 본다.’라는 것은 노화, 즉 몸의 변화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해도 혼낼 사람이 없으므로 마음 푹 놓고 하면 된다. 사실 나이 들면서 가장 넉넉해지는 재산은 시간이다. 나이가 들면 생활이 단순해진다. 책임도 의무도 줄어든다. 제대로 살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나이 들었다고 후회하지 마라.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살았고 일했고 즐겼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면 순리를 따르라.’

 

 

나이가 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살다 보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시기가 꼭 온다. 그에 적응하는 법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랑은 궁금증과 관심에서 시작한다. 환자를 언제 퇴원시키면 됩니까? “환자가 사랑하는 능력이 생기면 퇴원시켜도 좋습니다.” 정신과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대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자기애가 지나친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둬야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 삶에 관심을 두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고 만나기를 즐긴다. 밀려오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렵다면 제발 푸념만 늘어놓지 말고 생각나는 사람을 찾아가라. 전화나 문자 한 통이어도 괜찮다.

 

 

아기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바쁘신데 젖은 나중에 주세요.” 이렇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아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같은 어른은 있다. 매사 아이처럼 우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는 것을 ‘독립’이라고 한다. 독립을 통해 우리는 ‘나’로 살아간다.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내 뜻은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면 마음에 앙금이 쌓인다.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하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고부갈등은 서로에게 싫다, 좋다는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데서 지적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결혼으로 남남이 가족을 이룬 셈이니 처음에는 모두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 지낸다. 싫어도 좋은 척, 미워도 아닌 척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5년, 10년 지내다 보면 상대의 얼굴만 쳐다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싫은 감정이 솟구친다. ‘시’자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을 가르친 것은 시부모와 며느리로서의 상하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고 싶어서다. 나 혼자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며느리도 도와야 한다. 먼저 며느리에게 친정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 지내라고 했다. 시부모 앞이라고 잔뜩 긴장해서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하면 단 며칠도 못 버틸 테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와 아들 내외 모두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하자고 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자고 했다 중국 음식을 배달해도 좋다고 했다. 하루는 내가 당번이라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슬그머니 옆에서 채소를 다듬었다. “너 당번 아니잖니? 시아버지 당번 때 도와주고 시어머니 당번 때 나오고 신랑 일한다고 거들면 앞으로 너는 계속 식사 당번해야 한다.” 그러자 며느리는 얼른 손을 털고 주방에서 나갔다.

 

 

노후를 힘들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자식과의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다. 자녀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살피고, 자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정적 피곤함에 젖어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열심히 산 결과로 생기는 병은 어쩌겠는가! 나이 들어 아프고 병을 앓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일흔 넘어 시작한 공부, 나이가 많아서, 머리가 굳어서, 시간이 없어 공부를 못 하겠다는 말은 핑계다. 특히 나 같은 노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퇴임을 하고 귀한 제안이었지만 거절했다. 교수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 나는 이제 막 얻는 자유를 포기하기 싫었다. 그러기에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지 못하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학창시절의 공부는 성적 부담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심하다. 하지만, 사이버 강의는 부담이 없다. 요령을 피우지 않고 호기심을 따라 움직인다. 나이가 들면 순수하게 즐기면서, 놀듯이, 오로지 공부만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한 전진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몸은 늙어도 생각은 녹슬지 않는다. 은퇴 뒤 넉넉해진 시간이 ‘쓸데없는 공부’를 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무모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긴 노년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면 막연한 바람이나 환상을 떨쳐버리고, 시간을 편안히 보내겠다는 생각 대신 시간을 마음껏 쓰겠다고 생각하라.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도스토옙스키

 

 

차선(次善)으로 살자. 실수와 불행은 자기 능력보다 120% 해내려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80%의 능력발휘를 목표로 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선이라는 말은 내가 가진 100을 다 쓰라는 말이다. 농부가 씨앗까지 다 먹어버리면 내년에 뿌릴 씨앗이 없다. 남이 봐서 1등이다, 2등이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면 그뿐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이야기, 수많은 일이 가지치기를 한다.

 

 

내 마음속의 소년. 나는 여전히 별똥별의 줍던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다고 10대의 발랄함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마흔이 넘었다고 자식들에게 꼭 모범적인 아버지의 모습만 보여줘야 할까. 노년이 되었다고 날마다 점잖은 얼굴로 세상을 통달한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 제자들의 회갑잔치를 스승인 내가 치러 준 적도 있다.

 

 

노인이라고 해서 갑자기 호호 할아버지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또한, 젊은이들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나이만큼 늙었다. 그뿐이다.

 

 

일이 닥치기 전에 근심이 더 많지, 막상 일이 벌어지면 견딜힘이 솟는 것이다. 어떻게든 견디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안긴 힘 쓸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정점을 찍고 나면 하강 곡선을 그리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지점까지 떨어진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해지는 몸을 보살피며 쉬엄쉬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몸의 변화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빨리 눈치챈다. 그걸 부정하거나 외면하면 안 된다. 머리에 검은 물을 들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걸어도, 사실 내 몸이 늙어가고 있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한창때의 체력은 70세에 이르면서 곤두박질 친다.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한다.

 

 

제2의 인생이 50세쯤 은퇴해 다른 직업이나 새로운 일로 인생을 꾸리는 것이라면 제3의 인생은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남은 인생을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면서 살자는 데 있다. 경쟁 유도는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나이가 들면 꼭 해야 하는 일보다 안 해도 될 일이 더 많아진다. 혹 안 해도 될 일을 체면이나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라.

 

 

‘노인은 약할 것이다.’라는 생각만큼은 버려야 한다. 그런 고정관념이 진짜 늙기도 전에 노인이 되게 만든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이 되고 나는 지하철 경로석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나는 노인이니까’ 하는 생각은 스스로 절구에 앞니를 짓찧는 행위와 같다. 노후는 모아 놓은 돈으로 즐기면서 살기에는 시간이 많고 또 느리게 흐른다.

 

 

그는 대학교수로 꽤 성공한 축에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직장관에 대학 총장을 지낸 분, “그 아버지가 죽으면 된다.” 아버지가 살아있으면 자식은 결코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의 벽이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처럼 벽을 의식한다. 벽은 보호막도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부모가 먼저 그 벽을 부숴줘야 한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이래라저래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미덥지 못하고 어수룩해 보이겠지만 과감히 놓아주어야 한다.

 

 

부모 세대가 예순을 넘기면 곧 자식의 시대가 왔음을 상징한다. 집안에 새로운 해가 떠오른 것이다. 이즈음부터는 자식이 집안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부모가 연장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부모중심으로 맞춰서는 안 된다. 어떤 조직에서나 실세가 있다. 자식이 장성하고 부모가 중심축이 되어 가정을 이끌면 가족 모두 힘들고 피곤해진다. 생활의 중심을 자식에게로 이동하라.

 

 

부모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재산이 많을 때, 또 부모 스스로 인생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때, 집안의 주도권을 늦게까지 잡는 경우가 흔하다, 눈을 감을 때까지 온갖 지시를 내리며 자식을 믿지 못한다. 하루라도 빨리 열쇠를 며느리에게 넘겨줘야 한다. 며느리가 적자가 날지라도 직접 운영을 해 봐야만 살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며 많은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노신사가 있다. 그는 아들에게 의식주는 물론 여러 방면에서 회고의 교육과 문화를 누리게 했다. 온 가족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음악회에 갈 정도였다. 그런데 자식이 마흔 살이 된 지금도 매달 그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노년은 자식에게 집안의 모든 흐름과 걱정거리를 맡겨두고, 내 몸을 잘 건사하는 시기여야 한다. 이런 황금 같은 시간을 노신사는 자식 걱정에 바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는 일정 기간의 양육과 보호가 끝나면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모든 일을 자식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뜻밖에 쉽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보는 아버지만큼 세상에 큰 행복이 또 있을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나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그리고 자녀는 나의 분신이 아니다. 자녀는 자녀가 가진 인격수준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독립적인 단위다. 그동안 자녀를 돌보느라 조금은 소홀했던 자신을 돌보고, 새롭게 펼쳐진 인생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자녀가 독립할 때가 되면 기꺼이 자식을 떠나보내라. 억울해할 일도, 섭섭하게 느낄 일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듯, 부모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식에게 독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젊은이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아프리카에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노인 세대가 손수레를 끌고 발로 뛰며 살아왔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맹렬하게 달려가는 격이다. 과거에만 사로잡혀 내 경험만이 특별하고 옳다는 생각으로 젊은이를 바라보는 데 있다 “요즘 애들은….”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은 젊음의 특징이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나 청춘은 힘들고 불안하고 어렵고 두려움에 찬 시기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라는 아니다.

 

 

자식에게는 요구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부탁하듯 말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얼마나 재롱을 떨었던가. 이제는 거꾸로 부모들이 성장한 자녀들에게 재롱을 떨어야 한다. 치사하다고? 자녀들과 행복하게 지내려면 그 정도 치사함은 참을 만하지 않은가. 다만, 재롱을 점잖게 떨어야 한다. 재롱이 아닌 것처럼 재롱을 부리라는 것이다. 권위나 위엄은 버리고 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자주 웃고 나의 자잘한 고통과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제나 명령이 아닌 부탁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것이다.

 

 

“아들아, 아버지 용돈 만 원만 주련?”

 

 

노년은 인생에서 느린 속도가 허락된 시간이다. 노인은 뭐든 천천히 해도 용납이 된다. 또한, 오감을 온전히,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기도 노년이다. 노년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충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기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갔다. 건강과 에너지, 일과 의욕 그리고 미래. 그러나 나에게는 남은 것이 있다. 많은 시간과 깊어진 눈과 즐길 줄 아는 여유다. 그것으로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아내는 여동생의 친구였다. 그런데 아내가 선을 본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프러포즈를 했다. 편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내, 남편이기보다 동료라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 부부가 50년 긴 세월동안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반관계,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사랑의 관리’다.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우리는 먼저 말을 멈췄다, 결혼은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배우자를 통해 풍부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을 결정짓는 것은 경제력이나 학벌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자녀, 친구, 이웃 등 다른 사람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나에게 아내는 내 인생의 동료였다. 아쉬운 것은 우리 사이에 알콩달콩, 아기자기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남편 먼저 안 보내기 작전’ ‘아내 두고 죽기 없기’

 

노인의 귀가 큰 까닭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때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귀는 제일 늦게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뇌사상태인 남편에게 누가 사랑하라고 말할 때, “나도” “미투”만 했다지 않은가?)

 

 

아무것도 변명하지 마라. 아무것도 지우지 마라. 있는 그래 보고 말하라-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누구도 성공한 삶, 좋은 삶만을 살 수는 없다. 어떤 일도 연속해서 잘 되기는 어렵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그러다 간혹 한 번씩 잘될 뿐이다.

 

 

긍정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면 자연스럽게 편안한 얼굴이 만들어진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삶은 작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시시껄렁해 보이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인생의 큰 무늬를 이룬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내 부모는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노인의 삶은,

1.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회 활동을 중지하는 사람 은둔형이다. 젊었을 때 화려했던 모습에 비하면 늙어 버린 나는 너무 초라하다.

2.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분노형이다.

3. 모두 내 탓이라고 자학하는 자학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사는 것이 치욕스럽다며 자신을 학대한다. 늙고 병든 지금은 세상에 폐를 끼칠 뿐 아무런 소용도 없다.

4. 무장형, 젊었을 때보다 더 열정을 쏟으면서 살아가는 노익장들 간혹 의욕이 지나쳐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마지막,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노인들 자연스러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표정부터 편안해 보이다. ‘곱게 나이 든다.’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성숙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또 어느 부모이건 자식에게 미움을 받는 시기가 있다. 자식에게 미움받지 않는 부모는 없다.

 

 

퇴직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미리 환승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50세 후반부터 환승 준비를 했다. ‘이러이러하게 정년을 맞으면 좋겠다.’라고 머릿속으로 그렸다. 60세부터는 하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여 3분의 1수준으로 줄였다.

 

 

이제껏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나이 들어서는 다른 이들에게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 나의 경력과 연륜이 분명히 필요한 곳이 있다. 부디 하릴없이 시간을 버리지 마라. 아프다는 하소연, 신세 한탄, 심심풀이 잡기로 낭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젊은 부부에게 가장 큰 재산은 시간이다. 무언가를 빨리 이루려고 조급해하지 마라. 왜 모든 걸 갖춰놓고 시작하려는가.

 

 

아내를 동지적 관계로 생각했다. 신혼 초 우리 집 대문에는 ‘이근후 이동원’, 나와 아내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가 걸려 있었다.

 

 

결혼의 낭만을 꿈꾸는 사람은 낭만을 잃고, 오리려 낭만 따위는 잊어버리고 서로 좋은 동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낭만적인 부부가 된다고 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 엠마뉘엘 수녀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자녀가 돌아가면서 부모님 모시고 식사 가기, 다른 형제의 집은 초대 없이 절대 방문하지 않기, 가족 소식은 이메일로 전하기 등 규칙은 어떤 면에서 가족 간의 대화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메모리얼 주간으로 정해 다례와 조촐한 식사 모임을 한다. 제사의 본뜻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산 사람을 힘들게 하는 제사라면 차라리 지내지 않음만 못하다.

 

 

말 잘하는 법,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면 된다. 상스러운 말은 말 가운데 가장 낮은 하수다. 남과 비교하는 말은 피하자. 인격을 무시하는 말로 공격하지 마라. 자존심을 건드리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두고두고 원망만 들을 뿐이다. 상대 가족을 헐뜯지 마라, 우리 헤어져 이혼해 폭탄선언은 제발 참아라, 유머 있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언젠가 자녀들에게 아비로서의 미안한 마음을 전했더니, 아이들은 변두리의 낡고 허름한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대를 잇고 과거를 이해하는 소중한 존재로서의 손자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난날의 나는 서툰 부모로만 남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는 말처럼 위안이 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의 역할에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손자 손녀에 관한 일은 부모들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장의 자리에 익숙해 있던 조부모들은 부모가 된 자녀들에게도 명령하고 지시하려는 버릇이 있다. 조부모는 앞서가는 자리라 아니라 따르는 자리에 있어야 좋다.

 

 

사람들에게 회갑잔치를 권하는 이유,

회갑은 아름다운 노년의 시작이다. 잘 나이 들어가겠다는 나와 가족의 다짐이다.

 

 

50세가 되면 5년 단위로 인생을 계획하라. 자식들은 언제까지나 내가 지금만큼만 건강을 유지하기를 원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평생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본능적인 욕구만 남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보통 조부모의 죽음은 손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어쩌면 조부모와 심리적으로 먼 요즘 아이들은 공원에서 죽은 새를 발견한 것처럼 잠깐 놀라는 데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

 

 

내 삶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만드는 법,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 그러면 된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공부해서 남 주기가 더 쉬워졌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환자 중에 죽을까 봐 겁을 내는 이가 있었다. 그는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보낸 지난 시간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흘러버리는 것을…. 문학을 모르는데, 문학동아리 모임에 나가고 싶은데, 괜찮으냐고? 당장 나오라고 명령했다.

 

 

 

인생은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즐길 시간과 공간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항상 다른 곳,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불행해 한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도르핀이 형성된다. 괴롭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즐겁다고 말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지금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라.”

 

 

자네 올해 몇인고?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네, 78세입니다. 가장 좋은 나이지요. 환갑을 치르고 난 뒤에는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이 자주 돌아온다.

 

 

나이가 한계일 수는 없다. ‘이 나이에’하고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순간, 우리의 나머지 인생은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되고 만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무엇을 꼭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다. 순간순간, 이 일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 호기심을 채우는 즐거움이 계속 일을 벌이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벼르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사교적인 일과 동시에 혼자 할 일도 알아보라.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을 찾아라. 그래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이 좋다.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하여 주위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그 일을 하면서 체력이 조금씩 저하된다는 사살을 염두에 두라.

 

 

 

나이 들면 무서울 게 없다. 세상이 노력만으로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그러나 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도 안다. 젊었을 때는 죽음이 너무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라고 해야 죽을 일밖에 없으니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가장 필요한 덕목은 유머, 웃음 관용이다.

 

 

일에만 모든 것을 걸지 마라,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업 외에 일생 자신이 또 달리 즐길 수 있는 한 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 여행 악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등등 등 다음에 하지 말고 지금부터 틈틈이 하라. 혼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어울려서 즐기는 시간.

 

 

원하는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은 속임수다. 원하는 것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기쁨이나 즐거움을 주는 ‘좋아하는 것’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다.

 

 

어떤 남성들은 집에서만 지내다가 아내와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았는데, 하고 원망을 쌓아간다.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에 매달린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틈틈이 즐길 취미를 하나쯤 개발해 두었다면 본업이 없어져도 정서적으로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아내와 함께했던 평소처럼 잘 살아 내리라. 몸이 허락하는 한 공부를 계속할 것이며, 여전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다. 지인들과 만날 때 밝게 웃을 것이며, 자녀와의 정기적인 저녁식사도 거르지 않을 것이다. ‘배우자를 떠나 보낸 뒤의 생활에 대비하라.’ 바로 정서적 문제다. 자녀 앞에서 아무리 의연하게 대처해도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성은 아내와 사별하고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며 여성은 무기력해지기 쉽다. 행복한 노후의 조건에서 자녀의 부양보다 배우자의 있고 없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식보다 악처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부부싸움엔 인내가 최선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인내는 좋은 미덕이 틀림없으나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어차피 대화도 안 통하는데 내가 참지라고 침묵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게 하나, 바람 통하는 창문 하나, 햇볕 쬘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라네. 늙은 날을 보내는 데 필요한 것들 -사재 김정국(조선 중기 학자) 선비답게 산다는 것. 벤츠보다 더 뛰어난 BMW(BUS METRO WALK)

 

 

봉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봉사가 나를 희생하여 남을 돕는 의미라면, 나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임종이 가까운 이들에게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 나중에, 다음에 돈 벌면 하다가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이다.

 

 

사회에서 영원한 자리는 없다. 직장인도 정년이 있고 무림의 고수도 칼을 꺾을 때가 있으며 밀림의 왕 사자도 이빨이 무뎌지면 젊은 사자에게 자리를 내놓는다. 그게 패배는 아니다. 자연계의 이치고 흐름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아무리 내 분야에서 온 힘을 다해도 언젠가는 아이디어가 떨어지고 기력이 달린다. 나를 인정하고 존경하던 사람들도 의례적으로 변한다. ‘저 노인네….’ 하고 괜한 미움을 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더는 새로움이 없고 습관적으로 일한다고 느낄 때가 그만두어야 할 때다. 흐르는 물은 한 웅덩이를 채우면 넘쳐서 다시 아래로 흐른다. 노년이 먼 곳에 있는 것 같아도 지척에 있다.

 

 

어떤 자리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가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내가 그 일에 잘 맞는지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 공직이라면 전문성과 도덕성, 이 두 가지만 잘 살펴봐도 충분하다. 또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나이 들었다고 거저 주는 감투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따뜻함을 느낀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내 오래된 꿈 가운데 하나는 스님들의 선방처럼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방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나’를 붙들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 텅 빈 방, 그리고 그곳을 꽉 채운 고요와 정갈함.

 

 

책을 엮으면서

한 번에 다 하면 편하겠지요. 단박에 완성하고 짧은 시간에 결과를 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모든 일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일어날 수 없다. 일과 배움 능력 재능 사람과의 관계까지 야금야금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더해지면서 깊어지고 넓어지고 발전하는 것. 늙음을 감추려 하지 않고 즐겁게 데리고 놀며 나이 듦의 재미를 선택한다.

 

 

 

 

-------

 

 

 

 

참 배부른 소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기대가 차오르며 빨리 일흔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직 고희가 되려면 강산이 한 번은 변할 시간이 남았다.

가장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삼는다면, 절망만 더 커질지 모른다.

 

지난 토요일, 아버지 제사에 가서 엄마를 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년은 되었을 것이다.

장례식에 가고 그리고 그다음 해에 가고 처음이다.

 

엄마를 볼 때마다 딸로서 늘 못마땅하고 서운한 마음이 컸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설음 기쁨 건강 등 등

'희노애락애오욕'을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의 딸임에도

근 30여년 동안 엄마의 무슨말이든 들어주는 

엄마의 친정엄마같은 역할을 했왔다.

언제나 큰소리치며 자신의 이야기에만 흥미진진하셨다.

아들 딸의 안부나 마음 따위는 절대 헤아리지 않으셨다.

 

그런데, 자식들이 하는 이야기를 뚝 잘라 끼어들고,

그리곤 눈치를 보신다.

괜히 안방 문을 들락날락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

그리고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앞에서

엄마는 딸과 사위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보이셨다.

 

76세,

‘일흔 살이 넘어 여든으로 가는 길은 저렇구나!’

엄마모습에서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서글프다.

하기사, 천하제일의 완벽한 인격을 갖추셨던

우리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나이도 76세이셨다.

 

미리 준비하지 말자.

노년은 준비 안 해도 기다리지 않아도 들이 닥친다.

그때 가서도 오늘처럼 사는 거다.

사실, 70, 80, 90세 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다.

보장도 없는 미래에

 '곱게 품위있게 늙을 거라'며

날마다 잔뜩 긴장하고 스스로 닦달하며 살 필요가 없다.

 

그냥, 오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놓쳐가며

땀흘리며 열심히 되도록 신나게 재미있게 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