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의 초례청》저자 류창희 이야기
일시 : 2008년 6월 20일 (금요일)
오후 4시~ 6시
주최 : 한원포럼
장소 : 서울 강남 개포동 도시개발공사 6층
류창희는 http://rchessay.com
경기도 포천출생 서울에서 성장하고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아들의 어미이며, 2001년 수필가로 등단하여
08년 1월 《매실의 초례청》수필집을 냈습니다.
현재, 부산 다섯 개의 시립도서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10년 넘어
《논어》를 핑계 삼아 ‘공자수다’를 떨고 다닙니다.
서문 : 백아절현(伯牙絶絃)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와
그의 거문고 소리를 잘 알아주었던 친구 종자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였습니다.
문득! 거문고 소리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선가 내 삶의 연주를 지켜보는 백아절현의 벗님들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이 ‘끼’가 아닐까요.
1. 나의 문학수업 시절
낮에는 뻐꾸기 밤에는 접동새 우는 고향에서
사랑채에 할아버지께서 특유한 가락으로 “자왈~” 책 읽는 소리와
할머니 등에 업혀 창가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 간다
메주가 뜨는 냄새와도 같고 밭두둑의 두엄 냄새와도 같고 누룩이 발효되는 냄새와도 같은
토속적인 아련함이 수묵처럼 번졌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아마도 그리움을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움은 나에게 어떤 한 같은 정서를 남겨주었습니다. 김삿갓의 ‘행운유수(行雲流水)’와도 같은 방랑벽을 닮았던 아버지. 애절한 감성으로 화투장의 <이월 매조>가 되어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어머니, 어찌 나에게 문학수업이 따로 있었겠습니까. 혹, 나와 동생이 아버지가 남겨 놓은 시 한 수는 아닐는지요.
2.길음동에 입성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를 싸들고 길음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서울의 달을 수호하는 별들의 고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언덕배기, 길음동 골목시장에서 금방 짜낸 고소한 참기름이나 향긋한 들기름 냄새 같기도 했던,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흘리는 땀 냄새를 맡으며, 지연 학연 뽐내는 사람들이 없는 시장 통에 사람들이 내는 ‘난타’ 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가진 것도 갖춰진 것도 없으면서 꼿꼿한 자존심을 무기로 먹물을 갈듯, 질척한 주변 환경을 갈고 또 갈았습니다. 마치 난을 치듯, 정성스럽게 배우라는 ‘학란’도 바람 앞에 굳건한 ‘표연란’도 초로 수녀님의 ‘온란’도 되지 못하고, 그동안 난화분을 옮기다 쨍그랑 ‘풍비박산란’이 될까 멀쩡한 난을 뿌리를 썪게 만들지 않으면, 잎을 말라 죽이기 일쑤인 ‘안절부절란’을 만들었습니다. 이제야 사람답게 품격 있게 살아 보려고 하니, 난향을 피워내는 일이 붓끝이나 손끝에 있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생활이 마음만 바쁜 ‘노심초사란’을 치고 있는 격입니다.
3. 부산에 뿌리를 내리다
결혼 후, 날마다 달력에 빗금을 치며, 스스로를 단속하며 군대생활을 하듯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빗금이 하루의 마무리가 아닌 새롭게 도전하는 또 다른 기다림임을. 그곳은 내가 가꾸어야 할 문학의 텃밭임을 알았습니다. 날마다 치는 빗금을 빌려 사유의 뜰에 호미를 들이대었습니다.
20년을 넘게 설, 추석명절 친정 한번을 가지 못하고, 오로지 시 어른들 곁에서 춥다 덥다 내색 한번을 내지 못한 채, 어른들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늘 조심스럽게 옷깃을 여미며 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자학하며 오히려 그 관계를 즐긴다고도 했습니다.
남들보다 작은 키, 가벼운 몸무게, 그 구곡간장이 깊어본들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좁은 소견머리로 궁리를 하느라 두통을 앓고 가슴에 묻어 삭히고 발효시키느라고 썩어 문드러진 비위를 이제 힘차게 돌려놓아야 할 때입니다. <박우담화제문>으로 어머님을 저승꽃밭으로 보내드리고 절대 자유를 꿈꿉니다. 마음대로 산책하고 차 마시고 ‘소요(逍遙)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지금,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뜻하는 <花樣年華>가 되었습니다. 실제 영화 속의 장만옥처럼 치파오도 즐겨 입습니다.
4. 화양연화
화양연화로 거듭 태어나니 이래 좋고 저래 좋고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유미주의(唯美主義)’에 빠졌습니다.
그윽한 햇살 아래 ‘역광’을 꿈꾸기도 합니다.
강가에서 휘파람을 불어주던 키 큰 아이도 만나고 싶고, 혼자서 한 열흘 자유여행도 가고 싶고. 가슴파진 블라우스도 입고 싶고, 머리를 틀어 올리고도 싶습니다. 꽃다운 시절, 꽃이 지기 전에 꽃바람 불러일으킵니다. 위험수위 감당하기 힘들어 어느 날은 눈 감고 가슴 짓누르는 날도 있습니다.
이즈음, 크고 작은 문학모임 학술모임 동창모임 교류가 잦습니다. <술독>이나 <술이 고픈 날>에서 언급했듯, 맹세컨대 술 앞에서 내숭을 떨어본 적은 없습니다. 낮술로 반주를 하고 오후 수업을 진행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합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앉지요.
풍다우주(風茶雨酒) ‘바람 부는 날 차를 마시고 비가 오는 날 술을 마신다’고 했던가요. 혼자서도 곧잘 월하독작(月下獨酌)을 즐긴답니다. 달이 없는 밤은 이태백이 놀러오기도 하는데, 그 시간은 25時 저의 ‘술시’입니다.
<매실의 초례청>으로 공식적인 에로수필가로 유명해졌습니다. 수필은 인격이라 하여 감히 성을 다루지 않습니다. 매실을 빌려 초례청을 차리고 성의 기법을 과감하게 구사했다는 문학성 확보에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속알머리>로 69냐 66이냐 체위 질문을 받기도 한답니다. 해학과 골계로 촌철살인으로 좋게 말해주는 이들에게서 힘을 얻습니다. 지천명(知天命)의 너그러움이 주는 여유인 것 같습니다.
5. 책이 나온 후,
책에 대한 리뷰를 300여건 받았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평에서부터 주로 주례축사 같은 칭찬도 있지만 신랄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중 내 아우의 리뷰는 책 광고의 문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조각 천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엮어놓은 보자기처럼 그 외형은 반듯해 보이나 내용은 저마다의 숨은 사연을 가지고 있음이 역력해 보인다.
수필은 자서전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러기에 오감을 만족시키는, 작가만의 감칠맛이 있어야한다. 그 맛은 누이가 살아온 인생이다. 어느 글귀에서는 내가 느끼는 신맛이 누이에게는 쓴맛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가족사에서 빚어지는 속 그늘의 긴속눈썹과 그윽한 눈매로 전국구 미인도 되었습니다. 결국은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돌잔치 결혼 회갑 고희 근조 등을 달기까지 삶의 마디 마디 축하하고 격려하고 위로 하듯이, 책을 내는 일은 늦둥이 딸자식 하나 낳아 시집보내는 일과 같습니다. 사돈집 음식은 저울에 달아서 갚듯,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답례를 하느라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6. 정신적인 양식 ‘책읽기’
책을 읽는 것도 음식과 같아서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 비만이 되고, 웰빙만 고집하여 철학서만 읽으면 다이어트는 되겠지만, 결코 S라인은 되지 못합니다. 단맛 쓴맛 담백한 맛 그중 씹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누구에겐 처세가 되는 독서가 누구에겐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양사가 건강을 위해 식단을 짜듯 하면 좋겠지만, 성별 나이 직업 취미가 모두 다르다 보니 닥 이것이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귀사의 사장님께서 필독서목록을 말씀 하셨다고 하는데, 저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입니다. 아우의 막강한 뒷배경으로 KTX 라는 낙하산을 탄 이 자리인지라 저에게는 주제넘습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토론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부산독서아카데미】한글로 치시면 바로 나옵니다.
1999년 7월에 부산과 경남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만 매달려 사는 것에 교양적 소양을 갖추자고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과학독서아카데미’의 부산지회로 출발하였으나 1999년 9월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서 부산독서아카데미로 독립하였습니다.
현재 토론에 참석하는 회원은 20여며 정도 나이는 20대에서 60대까지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주로 남자 분들입니다. 직업분포는 의사가 가장 많고 변호사 교수 교사 방송인 경찰 소설가 시인 신부 개인사업 세무사 등 다양하고 어쭙잖은 여류 수필가도 한명 끼어 있습니다.
그동안 읽힘을 당한 책( 읽고 자유 토론한 목록을 올립니다)
‘부산독서아카데미’ 까페에 들어오시면 독서토론한 책 목록과 책 소개와 토론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사를 보려면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나 의 바로 미터는, 오늘 아침 나올 때 그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이 아닐까요. 그 사람의 생각 관심 앞으로의 미래가 다 엿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제 서가요.
전 큰방을 서재로 쓰는데요. 부부 침대와 책상두개 창문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모두 책꽂이인데… 우선 정신없이 지저분하군요.
제 등 뒤로는 문인들이 보내준 수필집이 거의고요. 그 옆에는 위의 독서회에서 읽었던 책들이 꽂혀있고요.
제 앞 높은 곳에 사서삼경 원본과 전집류들이 시커멓게 무게 잡고 서있네요. 폼은 그럴싸하지만 거의 안 읽는다는 뜻이죠. 그 밑에 책상에는 벼루와 붓 화선지 그곳도 먼지가 뽀얗군요. 저쪽 지식경영법, 한시미학산책, 스승의 옥편, 죽비소리, 마음을 비우는 지혜, 돌에 새긴 생각, 한서 이불과 논어병풍, 책에 미친바보, 미쳐야 미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책 읽는 소리, 꽃들의 웃음 판, 많이 편독하고 있지요. 고전산문의 즐거움, 우리선비,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읽었는데 그게 그거 같아 생각이 잘 안 나는 미학 책들이… 그리고 대부분 중국관련 문학책과 전공 책들입니다.
바로 앞에 빈둥빈둥 누워 있거나 흩어져 있는 책들, 거의 매일 보는 거죠. 논어 고문진보 명심보감 장자 노자 한한대자전 허사사전 대부분 수업준비를 위한 밥 그릇 이고요. 국어사전, 뜻으로 읽는 한국어사전, 우리문화 박물지, 나무열전… 아~ 그 사이에 컴퓨터 지가 내 책상 주인인척 떡 버티고 앉았네요. 정신 차려야지 제가 이놈한테 부림을 당해서야 쓰겠어요.
컴퓨터 옆에 붙여놓은 문구가 ‘웃기고 있네. 잘난 척좀 그만해라’ 는 듯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당신 책상 위 95%는 쓰레기… 당장 치워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