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
점과 선으로 이어지는 이름이 '미술적'이다.
김점선!
만나면 그런 여자 쉽게 친해질 것 같지 않은데,
멀리서 메스콤으로 바라보면 그냥 멋있다.





단순한 그림
화사한 빛깔
강렬한 메새지
그 모든 것이 좋다.





그림도 그림이려니,
글도 그림만큼이나 단순하고 좋다.
'늘 밝고 당당했던 여자!'
김점선,

말(馬)을 그렇게 그려대더니
말을 타고 갔나
걸어갔나.





부산에 지금 막,
목련꽃 지는 봄날에 갔다.
또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릴 터~
당분간,
편안히 휴식하기를 ....





삼가 명복을 빈다.







무서운 년

김점선 수필


마흔을 훌쩍 넘겼던 해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다. 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에서 자퇴해라. 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
그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재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
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
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점선

이화여대에서 공부하였으며 1972년 홍익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앙데팡당 전에서 제8회 파리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화단에 데뷔했다.

1983년 이후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87~19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에 선정되었다.

산문집에[나, 김점선] [10cm 예술 1. 2]
[나는 성인용이야] 등이 있으며, 박완서, 황석영,
최인호, 정민 등의 책에 그의 그림을 싣기도 했으며,
최근 신간으로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이 있다.



2009년 3월 22일 63세로 별세했다.


호수아빠   2009-03-25 11:25:27
문화가산책(?) 리포터일 때 젊은 작가들과 인터뷰하는 모습, 그의 철학이 인상깊은 사람이었는데...봄이되니 꽃이 지네요.
화양연화   2009-03-25 20:20:17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거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나희덕
호미   2009-03-25 20:39:52
또 한사람....
친구 같은 아름다움으로 이웃에 있었던 사람이
나는 모르는 곳으로 혼자 서둘러 떠났읍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들을 지면을 통해 바라보며
내 주변에.....
그저 있는 모든이들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쌤.
봄 시샘이 억수로 심하네요.
부산의 봄은 너무 부산스러운 바람땜시 ....
건강 챙기시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홧팅!!!
류창희   2009-03-30 16:45:39
호수아빠,
봄꽃이 그렇게 빨리 지듯이 빨리 피는 꽃이 빨리 지네.
우리 대기만성형으로 가자구.
가늘고 길게.... 너무 지루한가?
류창희   2009-03-30 16:50:17
호미선배님,
H백화점 칼국수집에 가니
단순하고 경쾌한 그림이 인상적이었어요.
수업전에 그곳에서 자주 국수를 먹으며,
판화인가 했지요.
나중에 보니 모두 김점선 그림이었어요.
물론 진품은 아니겠지만, 늘 명화속에서 끼니를 때우며
그렇게 말그림과 소통했습니다.

부산의 봄
바람이 부산스러워 '부산'이라고 한다네요^^
수윤   2009-04-26 22:31:17 
목련의 의미 꽃말은 자연애의 사랑 , 숭고한 정신 , 우애 라고 합니다.
형제간의 우애 일 수도 있고, 벚 우 의 사랑 일 수도 있숍니다.

백목련의 의미는 이루지 못할 사랑 이라고 합니다.
목련은 꽃이 만개하여 봉우리가 활짝 폈을 때 보다 솜털같이 보드랍게 둘러싸여 잇을때,

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기 이를 시기에 예쁩니다.
목련은 화목한 기운을 불러오기도 하며 헤어진 인연을 가끔 이어주는 꽃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시기와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들은 발버둥을 치고 조바심을 냅니다.

하지만, 목련의 살포시 꽃잎을 열기전 그 모습을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오히려 피지 않아 더 가치있는 꽃잎 마무새가
더 이쁘지 않나요 ?

마음의 눈을 자..이제 떠보실까요
류창희   2009-04-27 15:54:22
목련꽃 그늘 아래서 시인은 '조등'으로 보고
수윤님은 형제간에 혹은 벗들간의 우애로 보고
이해인 수녀님은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처럼 / 가슴을 활짝 열고 / 하늘을 담네...'
그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눈빛에 그만 주눅이 들어 어쩔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어진 눈빛의 여인'이라 하는데,
수윤님의 감성은 여인이신가요?
아님, 남정네이신가요?
화양연화   2009-04-30 15:55:09
파우스트 - 화가 김점선님의 부고소식을 어제 들었습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단백하고 거침없는 입담에 반했었는데..
깔끔하게 그림과 글을 정리해 주셔서 잠시나마 그녀를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09.03.25 02:34
花樣年華 - 파우스트님, 이제야 봐요.
정말 멋있는 여자였죠.
저와 코드는 완전히 다르지만, 김점선 같은 여인이 있어 여자의 위상이 바로 섭니다. 나도 애도-_-:: 15:35

길뫼 -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거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나희덕) 09.03.25 08:13
花樣年華 - 눈물 한 방울 같은 시입니다.
왜 우리는 꼭 지고나서야 조등으로 사람들을 만나는지 ...
살아생전 밥 한번 먹기가 ... 아름다운 시 고맙습니다. 15:37

이을규 - 아름답고 모진 이야기 그림 이야기 목련은 지는데 3월 마지막 밤에 09.03.25 22:39
花樣年華 - 3월의 마지막 밤이라고 올리신 글을 4월의 마지막 날에 답을 합니다^^ 15:38

나너하하 - 목련과 동백은 꽃이 너무 커요. 그냥 그렇게 '툭'하고 떨어지기에... 09.03.26 21:31
메이넬 - 그쵸!! 하얀 목련이 꽃잎을 축 늘어 뜨릴때 부터 웬지 일켜 세워주고 싶다니까요^^ 09.04.27 22:52
花樣年華 - 누가 목련꽃 꽃봉우리를 똑똑 따서 연꽃차처럼 우려 마신다고 하더군요.
너무 잔인하지 않나 말해놓고...
꽃봉우리 낮은데 있으면 똑 따고 싶은 마음으로 훔쳐보고, 보고, 또 보고 ... 15:41

이재선 - 동화같고 밝은 색체감의 그림도 좋고 저 세계도 저리 아름답다면 좋을까?
길뫼님의 글도 좋은데 나희덕 님의 시는 좋아 눈물 나요. 09.03.27 01:08
花樣年華 - 이재선님하고 마음일치, 가슴이 다 먹먹하답니다.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