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번을 만나도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듯한 벗이있다
눈이 크고 눈물이 흐를 때 시선은 멀다


가을볕 차갑게 지는 시간,
쥐눈이 콩 노랑조 참깨 들깨 흑임자
감 대추 쪽파 무 호박죽 가을빛깔들

추수한 알곡을 
밀양의 가을들녘을 통째로
바리바리 한 달구지 싣고왔다


때론,
그녀의 깊은 눈을 바라볼수가 없다
당기는 눈빛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 비해 순수하지 못하다
그녀에게 너무 빠져들까
일부러 딴청을 부리며
시선을 피하기도 한다


우리집 거실에
붙박이처럼 둘이 앉아
어둠이 내려앉도록
삶의 나락들을 풀었다


그녀는 분명 알곡들만 들고 왔는데
풍구를 돌리지않아도
왠 쭉정이 같은 삶이 겉돌고 있는지...
마주보며 눈물로 콧물로 한참을 걸러냈다.


나는 늘
혼자 바쁜 세상을 다 사는 척, 
누구에게 나 자신을 오릇이 다 내어주지 못한다

내가 누구에게 깊이 다가가는 것도
누가 나에게 깊이 다가오는 것도
몸을 사린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녀가 내손을 물꾸러미 바라보다

 

"바쁘셨나 봐요,
여태...
봉숭아 꽃물도 못 들이셨네요"


소소한 여유를 잃고 사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달력이 두장 남았다
'그래, 류창희!
너 지금 뭐하고 있니?'











11월 중순,
바람부는 깊은 밤에
마음까지 붉게 물들였다










천경자 그림 속의 <소녀>를 닮은 그녀

말안해도 눈빛 속에
그녀 있다


그녀는
붉은 봉숭아빛이다.
그리움을 물들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