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 해도...
찜통 같은 더위가 온 지구촌을 데우듯 펄펄 끓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부산도 LG메트로 시티도.
태풍 ‘곤파스’가 아침에 빠져나간 저녁이었다.
우리 식구는 저녁을 먹고
아들은 다음 날 일본으로 가려고
앞 베란다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아들이 앞베란다에서 들으니 이웃에서 딱총소리가 나고 화약냄새가 났었다고 한다)
남편도 자기 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TV를 보고 있었다.
“띵동띵동~~~”
현관 화면에 나타난 얼굴과 목소리는
펄펄 끓는 라면 냄비처럼 급하다.
아랫집 아주머니 선화샘이다.
한마디로 "살려달라"는 말이다.
문을 여니, 맨발의 란제리차림이다.
우리 집 남자들보고 빨리 도와주라 하니 너무 급하여 그냥 뛰어 내려가려 한다.
아비와 아들이 둘 다 시뻘겋게 웃통을 벗고 어쩌자는 말인가.
옷부터 입으라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랫집, 집안이 온통 뿌옇다.
연기가 가득하다.
불이 난 것이다.
나의 남편과 아들이 방독면도 없이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선화샘이 부엌에서 밥인지 설거지인지를 하고 있는데,
방에서 갑자기 “탁탁”소리가 나며 폭발을 했다고 한다.
컴퓨터가 혼자 열을 받아 불을 냈다.
너무 놀라 우선 물을 들고 가서 끼얹었다고 한다.
그 순간에는 전화나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급한 김에 뛰어 올라왔다고 한다.
이미 불은 꺼진 상태,
그 조그만 컴퓨터가 타는데 연기는 집안 가득이다.
나의 남편과 아들은 용감하고 무식한 행동대원들이다.
남편은 직업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수질관리와 열관리 기사자격증이 있다.
아들은 국가대표 운동선수이니 겁날 게 없다.
아무도 없는 남의 불난 집에 뛰어들어가
온 집안의 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려 연기를 빼내고 있었다.
사방에서 삽시간에 불자동차 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진동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119차, 앰블런스, 경찰차, 물을 실은 소방차 한대는 위를 향해 서있고,
아파트 단지가 워낙 크다 보니
진입로를 못 찾은 소방차 두 대는 엉뚱한 곳에서
“잉아 잉아~” 죽도록 울어대고 있다.
누군가 잽싸게 소방서에 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나는 처음 알았다.
그렇게 소방관계제복이 많은 것을,
119구조대 주황색 옷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감색 회색 모자도 기구도
각자 다른 분야의 다른 모습으로
계속 제복 입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올라온다.
중앙공원 바로 옆이라 주민들도 볼거리가 생겨 바쁘게 모여든다.
예로부터 원래 구경 중에는 싸움구경도 재미있다지만
그중, 뭐니뭐니 해도 ‘불구경’이 으뜸이라고 하더니…
아랫집 남자선생님은 저녁 산책으로 이기대를 갔다가 내려오는데,
이기대까지 진동하는 긴급 소방차소리에 괜히 마음이 켕겼다고 하신다.
자기 집에 불이 나면 잡아당기는 텔레파시가 있는 모양이다.
온 아파트가 진정되고 아랫집도 우리 집도 열기가 일단 진압되었다.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람을 쐬러 나간 나의 남편이
팥빙수 여섯 개를 사 들고 왔다.
아랫집 분들이 얼마나 놀랐겠느냐고 오지랖을 편 것이다.
불난 집의 부채질이라더니, 불난 집에 팥빙수다.
하기야 귀신쫓는데는 붉은 팥이 최고다.
액을 다 태우고 福들어 올일만 남았다.
이사하면 불같이 일어나라고 성냥을 사가던 풍습이 사라졌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한여름 밤의 ‘운수대통’의 사건이었으니
더불어 신바람이 났다.
나는 여름생일이라 복숭아를 좋아한다.
그러나 비싸서 내 평생 한 번도 상자로 사먹어 보지 못했다.
근데, 아랫집 선화샘이 굵직한 복숭아 상자를 들고 올라왔다.
뭐든지 사주고 싶단다.
이다음, 퇴직해서 연금타서도 사줄 거란다.
(각서 써서 공증받아 놔야 하는데…)
참 좋은 이웃 맞지 않나요?
* 제가 진짜 하고픈 이야기는요.
이 사건을 빌어서
정품 컴퓨터를 사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코드를 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화재보험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요즘 빈집에 불이 나는 사례는
주범이 바로 '조립용 가전제품'이랍니다.
그리고 전기로 불이 나면 물은 절대 끼얹지 말고 (감전 위험)
소화기를 먼저 찾으라네요.
소화기 어디 있는지
지금 당장 확인해 보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