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15 03:00
생명력·적응력으로 활짝 핀 뒷뜰 민들레 군락 볼 때면
美서 未婚母 딸 입양하려다 포기했던 아픈 기억 떠올라
他鄕에 뿌리내리려는 그의 절절함을 나는 왜 몰라줬나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입력 : 2015.04.15 03:00
생명력·적응력으로 활짝 핀 뒷뜰 민들레 군락 볼 때면
美서 未婚母 딸 입양하려다 포기했던 아픈 기억 떠올라
他鄕에 뿌리내리려는 그의 절절함을 나는 왜 몰라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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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아 수필가
민들레는 아홉 가지 덕(德)을 지녔다 해서 서당 부근에 주로 심었다고 한다. 나쁜 환경을 견뎌내는 '인(忍)', 뿌리가 잘려도 새싹이 돋는 '강(剛)', 꽃이 한 번에 피지 않고 차례로 피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예(禮)', 여러 용도로 쓰이니 온몸을 다 바쳐 이바지한다고 하여 '용(用)', 꽃이 많아 벌을 불러들이는 '덕(德)', 줄기를 자르면 흰 액이 젖처럼 나오므로 '자(慈)', 약으로 이용하면 노인의 머리를 검게 하는 '효(孝)', 흰 액은 모든 종기에 효험이 있다는 '인(仁)', 자신의 힘으로 바람을 타고 멀리 간 씨앗이 새로운 후대를 만드는 '용(勇)'을 말한다. 하지만 가정집에 지나지 않는 우리 집 뒷마당에 제멋대로 핀 민들레는 예전의 덕과는 거리가 멀지 싶다.
처음부터 민들레를 해칠 생각은 없었다. 시애틀로 이사 온 후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겼는데 유난히 많이 피는 민들레 때문에 적잖게 고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봄의 길목에 종종 호미를 들고 뒷마당으로 나가 폭군(暴君)이 되곤 한다. 하지만 올해도 작은 민들레 꽃씨들이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내 눈과 코를 고문하니 나는 영락없는 민들레의 인질이 된다.
여름이 오자 총포 품에 안겨 있던 민들레 꽃잎이 어느 틈에 사랑을 나누었는지 그새 깃털 끝에 씨앗을 얹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어디론가 옮아갈 채비를 한다. 태평양을 건너 시집온 나처럼 저 멀리 그리운 사랑으로 가려는가 보다. 한동안 그도 낯선 환경에서 내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겪게 될 거라고 스치는 바람이 슬쩍 귀띔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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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뒷마당에 핀 민들레를 보며 나는 타지에서 자라고 있을 또 다른 민들레를 생각한다. 나의 딸이 될 뻔했던 민들레와 우리 가족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입양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한 미혼모를 알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상 미혼모의 임신과 출산은 성 윤리의 문란이나 정상 규범을 흔드는 개인적 결함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녀 역시 민들레를 떠나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혈연 중심적 가족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나라는 자신의 혈통이 아닌 아이 입양을 꺼렸기 때문에 그녀가 출산 전부터 해외 입양을 고려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결혼과 동시에 해외에 거주하게 된 나는 두 아들을 낳은 경험이 있었는데도 열 달을 품지 않고 민들레 같은 아기를 입양하고자 했을 때 친정아버지의 만류가 심했다. 이유는 핏줄이 다르다는 것뿐이었다. 이런 유교적 도덕관의 잣대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른다. 친정아버지를 납득시키기가 난감했기 때문에 우리와 아기의 사이는 점점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 즈음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그런 일로 그 아이와 맺은 인연은 한때의 바람처럼 끝나버렸다. 바람결에 날아간 그 어린 홀씨는 스위스 어느 집안에 무사히 내렸다고 지나가는 소문이 일러주었다. 서양 민들레가 되어 땅속 깊이 뿌리내린 그리움은 어느 추억과 함께 봄마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가 보다.
뉴욕 여행 중 유럽에서 온 백인 부부와 동양의 두 남매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해주던 그 부부와 나눈 대화 속엔 아이들이 떠나온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한 민간단체가 주선한 입양인 모국 방문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할 거라고 했다. 서양 민들레가 꽃을 피우는 데 꼭 필요한 뿌리의 행방을 찾는 일을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보여주는 것이 양부모의 의무이자 책임인 듯했다.
기대감에 부푼 그 부부와 달리 아이들은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흘깃 곁눈질하다가 마주친 어린아이들 눈빛엔 고국의 잔상(殘像)이 남아있는 듯했다. 자신과 연관되어 있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아닐는지. 문득 입양하려다 놓쳐버린 그 아이 일이 궁금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피부색이 다른 부모 손을 잡고 작별하는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민들레를 뽑느라 호미질을 한 전과 때문인지 내 뒤통수가 아리고 따끔거렸다.
죄책감에 짓눌린 발걸음으로 가슴까지 먹먹하게 덧칠했던 기억이 봄을 알린다. 민들레 가족이 우리 집 뒷마당에 둥지를 틀고 오글오글 모여 당당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올봄도 꼿꼿하게 선 꽃대들의 기세에 주눅이 든 나는 창문 뒤에 숨어 무리를 지어 자라는 민들레를 훔쳐보며 꽃가루 알레르기의 계절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간의 호미질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