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헛! 이거 짝퉁이구먼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끌리는 디자인이 있다

아마, 샤넬라인 스커트나 투박한 버버리 코트가 그렇지 않을까?

중고등학교시절 운동화와 검은색 캐미슈즈를 벗고

처음 내 손으로 월급을 타서 샀던 세무구두가 있다

그다지 스마트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심플하다

그당시 사귀던 남학생도 그 신발을 신었었다

디자인이 남녀구별이 없는 근사한 신발이다

 

 

어느 날, 아들이 신고 온 신발이 그 디자인의 신발이다

좋아 보인다고 했더니 서울에서 내 것을 사서 보내왔다

생고무 밑창에 산책하기,

아니 가벼운 여행에 자존감 살리기 좋은 신발이다.

 

 

몇 년이 지나니 밑창이 다 닳아 구멍이 났다.

비 오는 날은 못 신고 날 맑은 날만 신고 다니지만,

신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며칠 전, 신세계센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다

K제화 R매장에서 그 신발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참 잘 신었는데 밑창이 다 닳았다고 하며 보여주니

가져오면 수선해준다고 하기에, 오늘 들고 갔다

여직원이 살펴보면서 깔창을 한번 갈았느냐고 물어본다

처음이라고 했다.

신발은 자기네 신발모양이 맞는것 같은데 브랜드가 틀린다고 한다

사실 서울에서 산 것만 알지, 어느 매장 건지, 국산인지 수입인지 나는 모른다

 

 

옆에서 지켜보던 50세는 넘었을

나이뿐만 아니라 목소리에 뱃살까지 중후한 남자분이 다가와서 살펴본다

아마, 매장 주인이거나 책임자인 것 같다

매장에는 신학기 세일기간이라 여러 명이 둘러보고 있었다

 

 

“이거, 짝퉁이구만!”

내가 살풋 미소 지으며 바라보니

젊어서 취미로 성악을 했음직한 큰 목소리로

신이 나서 말을 한다

“어헛, 이거 완~전 짝퉁이네...”

나는 더 빤히 그분을 바라보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고객인데요, 적어도 이런 고급매장에서 일하시는 분이그렇게 말씀하셔서 되겠어요

짝퉁이고 아니고는 말씀하실 필요가 없고요

선생님은 점잖게 ‘저희 매장 제품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시면 될 텐데요”

 

 

사람들이 나와 점원의 한판을 안 보는 체하면서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 시선에 더욱 힘을 받은 남자분

“아, 아주머니 이거, 짝퉁 맞습니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더 큰목소리로 확인시킨다.

나는 아주 교양있는 목소리로

“예, 여기 제품이 아닌가 보군요

저는 이 신발을 아들에게서 선물 받았습니다

몇 년을 아주 아끼며 신었는데,

그 사연까지 몰아 ‘짝퉁’이라고 단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도 그의 상황을 말했을 뿐이고, 나도 나의 상황을 말했을 뿐이다

구경거리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관람객들 앞에서

나는 신발을 비닐 봉지에 천천히 품위있게 담아

아주 소중하게 품 안에 껴안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지금 아들놈은 하와이에 일하러 나가 있다

아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