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지나간다

구효서

마음산책 2000



기억은 색깔과 소리와 냄새도 없이 깊고 어두운 한 귀퉁이에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을 밝은 빛 아래로 꺼내어 놓아야 비로소 색깔과 소리와 냄새가 서서히 재생되는데, 이처럼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를 추억이라 한다.

양변기- 깨끗한 것의 영역에 속할 물건이 더러우면 혐오를 불러일으키지만, 더러운 것의 영역에 속할 물건이 깨끗하면 혼란을 가져온다.

거울- 흰 종이를 꼭 복사꽃처럼 오려붙였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사시장철 복사꽃 그늘 아래 지저귀고 있었다.

의자-아버지는 운동회 때만 쓸 곤봉도 직접 깎아 만드셨고,

산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씩 없어지는 걸 겪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