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석습 (朝花夕拾)
꽃이 떨어졌다.
꽃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온기라고는 아랫목이나 화롯불 밖에 의지할 곳이 없던 시절, 이들도 서캐도 겨드랑이 털 밑에 서식을 하던 엄동설한, 오죽하면 반가움의 극치를 동지섣달 꽃본듯이 라고 했을까.
요즘 꽃들은 철도 없다. 온기만 있으면 헤프게 지조 없이 몇 번이고 피어낸다. 온천지 지천 인 꽃. 꽃 한 송이 졌기로서니, 바람을 탓해 무엇 하랴.
어느 풍류객은 비단주머니에 꽃잎들을 담아 흙속에 묻어주었다지. 비록 시 한수는 건지지 못했으나 홀로 꽃 무덤 앞에서 곡 한번은 하였을 터….
난데없이 웬 꽃 타령인가.
전직 최고의 통치권자를 부엉이 바위에 오르게 했다. 샛길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전전직, 전전전직, 전전전전직, 전전전전전직 큰 어른들이 길을 닦아 놓지 못했다. 그는 막다른 절벽으로 치달았다. 쥐를 쫓아 낼 때에도 쥐구멍은 있게 마련이건만, 벼랑위에 핀 무궁화 한그루 송두리째 뽑히고 말았다.
‘님아님아 별사람이 별의별소리를 다해도 곧이듣지 말고 짐작하여들으소서’ 여러 사람이 다 좋아해도 그들에게서 살필 것이며, 여러 사람이 다 미워해도 그들에게서 살필 것이라 했거늘. 굳건하게 견디어내지 못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오점으로 남겨졌다. 내가 감히 무엇을 옳다고 하고 무엇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먼 훗날에도 또 다른 시각으로 구설에 구설을 달아 주가 주를 낼 것이다. 통곡은 어디 갔던지 조등하나 켜지 못하고 조문마저 지켜볼 뿐.
조금만 가려워도 잠시를 참지 못하고 건조한 마음으로 서로 긁고 상처를 낸다. 활짝 핀 꽃을 예쁘다며 환호하던 마음, 떨어졌다고 곧바로 쓸어버리는 야박한 인심.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또 어느 곳으로 가는가. 생과 사가 한조각 구름으로 피었다가 스러지듯, 그렇게 공수래공수거로 마감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닌가’ 라는 유언을 남겼겠는가.
그러나 아니다. 죽음은 둘이다. 그래서 혼한테 한번 백한테 한번, 두 번을 절하지 않던가. 절 두 번 하면 끝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는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했다. 그래도 슬프다. 귀한 생명의 스러짐이 슬프고, 전직 대통령이라서 슬프고,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린 분노로 더 더욱 슬프다.
혹 아니면 백, 우 아니면 좌, 여 아니면 야, 중간 지점의 유연함이나 너그러움은 아예 없는듯하다. 본래 법이란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이지 않던가. 왜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지. 어디 나라의 일뿐만 이겠는가.
아쉽다. 김수환추기경은 ‘아쉬울 게 없다’고 했다. 아쉬울 것이 없어야 삶 앞에 당당할 수 있다. 성직자처럼 그렇게 오르지 담박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미 떨어진 꽃을 매정하게 쓸어버리는 조급함이 아쉽다.
어떤 상황에 즉각 대응하지 않고 꽃이 다 떨어진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에 쓸어내는 현명함을 노신(魯迅)은 조화석습(朝花夕拾) 즉,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 라고 했다. 올 봄에 떨어진 절망의 꽃은 분명, 거름이 되어 내년에 다시 방방곡곡 희망의 꽃 대궐을 이룰진대.
나 또한, 서둘러 꽃을 줍고 있다.
*朝花夕拾 : 당장 서두르지 말고 한참 여유를 두면 일이나 문제를 더 잘 마무리 할 수 있다는 뜻으로 魯迅이 사용한 글귀다.
호미 2009-05-28 20:47:33
조화석습........
또 한번 가슴에 새기며 내일을 일깨워야 할 말씁입니다.
삼가 조의를!!! | |
화양연화 2009-05-29 08:57:14
11시 영결식 지켜보지 못하고
출근합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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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2009-05-29 20:18:14
세상인심 그 누가 알리오
하늘도 땅도 모르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그무었을 헤아리겠는가
꽃인지 열매인지
노란 잎인지
무심이 유심이요
유심이 무심이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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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학생 2009-05-29 21:12:42
괜찮으신지요? 묵념시간 고마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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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암(無菴) 2009-05-30 08:34:52
우리를 미망과 혼돈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은 역설적으로 바보의 죽음이었습니다.
화양연화님 반갑습니다. 두분 잘 계시죠. 나날이 좋은날 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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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행인 2009-05-30 09:32:03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도 날이 맑습니다.
5월이 가고 6월이 옵니다.
신록의 계절 벌써 덥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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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2009-05-30 15:21:01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뒤돌아 보지 않도록 고이 보내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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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희 2009-05-30 22:47:12
요번 주 내내 그랬습니다.
허탈하고 우울하고 ...
수업하는 곳곳에서 묵념도 하고 조사도 읽고...
사람들 마다 다 각각 생각이 틀리다 보니, 아주 민감한 반응들이 ...
가신님을 되 돌아오게 할 수는 없고요.
교훈으로 삼아 희망의 싹으로 발아하리라 믿습니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와 맡은바 일에 충실해야겠습니다.
님들 고맙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