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3월 부터
그때 참 살맛 났었다.
처음 여고에 발령 받았을 때,
집도 주소도 결혼여부도 밝히지 못할 정도로
여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쨩'들이었다.
지금의 '비'나 'MC몽'에 비교가 되지않는...
달달이 만나 식사하다
분위기 좋고 경치좋은 곳으로
나들이 다니고
여름방학 겨울방학 방학마다
농월정으로 남원으로 마리나 리조트로
경주로 고창으로 상하이로 ...
참 많이도 다니면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했다.
집에 모여
피아노를 치며 작곡한 산노래를
왕성하게 불러대며
옷까지 맞춰입고 야구를 하고
관절이 나가도록 테니스를 치고
머리통이 깨지도록 골프치고
파도를 가르며 요트를 타고
밥 먹고 차를 마시며
조하문처럼 노래를 하고...
어느 외각의 라이브 카페에서는
뭐 하는 분들이냐며
시간이 되면 주말에만 와서
아르바이트로 노래를 해달라고도 했었다.
08년 5월24일
설미가 시집갔다.
재작년에는 글샘이가 시집갔다.
벌써,
우리들 중 장인 장모가 되었다.
축하 뒷풀이로 모였다.
사는게 그렇다.
버스를 놓쳐 손 흔들러 모였다.
" 요즘 관광버스는 KTX보다 더 빠르다" 며
설레발치는 너스레 속에서 세월이 보인다.
우리,
아직 꽃피는 오월이고 싶은데...
이미,
자식들의 그늘이 되어주어야 하는
초여름이 되고 있다.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홀가분한
그래서
우리
우리 부부들끼리
더욱 더
왕성하게 잘 살아야 한다.
* 딸이 그려놓고 시집간 그림 앞에서 (5월 29일 설미네 집)
몇억짜리 라고... 비싼 그림이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