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친구가 있다
같이 중국어도 하고 같이 쇼핑도 하고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일년에 대여섯번 만나서 밥을 먹는다
따로 약속은 없으며
문뜩, 땡기는 날
아침에 연락하고
오전수업 끝나면 휘리릭 날아간다
언제나 반갑게 두팔 벌려 환영해준다
그녀는 D대학 병원의 의사다
남편도 두 자녀도 다 의사다
어느 곳 한 군데 모자람이 없다
나는 그녀의 완벽을 늘 부러워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놓는다
금요일에도 그녀가 예약해놓은 이탈리안 음식점에서
방학동안 여행담을(인도 다녀온) 늘어놓았다
그녀는 뻔히 알면서도
"남편이랑 같이 가서 좋았겠네" 부추긴다
나는 "좋았지, 잠자리도 좋고, 짐꾼으로도 좋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도 나처럼, 다른 모임없이 남편이랑만 여행을 다닌다
그래 나는 남편이 짐꾼으로 좋은데, 너는 남편이 어때?
순간, 바로 튀어나오는 말 :
"나는, 남편이 내 인생의 '축복'이야"
닭살을 뛰어넘었다
지천명을 넘어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편을 가리켜 '축복'이라 했다
나는 망설임없이
선뜻,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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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어르신들 프로를 TV로 본적이 있다
남편을 다른 말로 뭐라 하느냐는 퀴즈였던 것 같다
문) 여자들은 남편의 무엇으로 사느냐?
답 : '사랑'이다
할머니는 "등골"
여자는 남편의 '등골'을 빼먹고 산다'고 했다
문) 남편은 아내에게 평생의 무엇인가?
정답 : '반려자'이다
할머니는 "웬수"
남편은 여자의 '평생웬수'라고 했다
3월 31일, 오늘은 결혼 31주년이 되는 날이다
나에게 남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