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사 청진기를 놓다
조병국 지음
2009 삼성출판사
50년 동안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사하다가 최근에 은퇴한 할머니의사 선생님의 수기
겨우 다섯 살 나이에 생모와 양모로부터 두 번이나 버림받은 기원이는 타인의 호의와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기묘하게 이그러뜨리는 굴절 거울이 마음속에 있었다. 글 거울의 이름은 바로 불신이었다.
아이들은 봉사가 바뀌었다는 걸 알아채고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려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 발작이나 말썽을 통해 자기를 봐달라고, 관심을 달라고 일종의 시위를 하는 셈이다. 야단이나 벌을 주는 대신 무조건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주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며 떼를 부릴 때도 오랫동안 품어주었다. 엄마 품에 안긴 채 한참이나 몸을 비틀며 격렬하게 울부짖던 아이가 어느 순간 풍선에 바람 빠지는 것처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아이들과의 동반자살’이란 게 말이 ‘자살’이지 실상은 ‘살인’이다. 고아가 되어 어려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함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부모의 오만이자 착각이리라.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단체보육시설의 아이들은 더디 자란다. 넉넉하게 먹이는데도 늘 생기가 없고 병치레가 잦다. 엄마의 다정한 어루만짐과 따뜻한 눈빛이다.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 그 차이는 엄청나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이다. ‘o ᄋ에서 발견되었음’이라고 쓴다.
1960년대 옷은커녕 시신을 감쌀 광목 한 조각도 얻기 어려워 창호지 두 장을 재봉틀로 드르륵 박아서는 그걸로 아이 시신을 감싸곤 했다.
여자가 엄마가 되는 데 꼭 임신이나 출산의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추고 똥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모성애는 시작된다. 이게 바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입양아를 위해 엄마가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이유다.
입양아에게 모국은 자기 뿌리와 같은 거야. 뿌리가 흔들리면 자기 인생도 없어. 그래서 입양아는 늘 모국을 찾고 인정하고 포용할 수밖에 없다.
장신구 살 돈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 입에 들어갈 딸기를 사고, 생활비를 아껴 아픈 아이들 약값을 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 더욱 아름다워지고, 아끼지 않으면 더욱 귀해진다는 것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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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부산 원북원 선정도서다.
간혹 주워들은 이야기나 짐작으로 입양아들을 생각했었다.
재작년에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아기들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유학생 한 명이 두 명의 어린 아기를 데리고 간다.
나는 처음 보는 일이라 자꾸 관심이 쏠렸다.
뉴스를 들으니 작년에 800명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