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돌 위의 흰 고무신

바람에 단풍잎 한 장 날아들 듯 그리움을 모아 편지를 썼다. 그리움은 참으로 가혹하다. 그리움의 대상은 ‘인연’이니 좋은 인연은 소통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참 소식이란 원래 일자(一字)도 없는 것, 오히려 연(緣)을 만드는 문자가 없는 것이 좋은 소식이라’고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평소 안부도 묻지 않고 누가 건드릴세라 숨죽여 있다가, 문득 생각나면 전화를 하고 미처 통화하지 못했으면 문자를 보내고, 다시 이메일을 보내고 연말이면 먹을 갈아 연하장을 띄운다.
나를 지키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을 객이라 하고 머무는 사람을 주인이라 한다. 그럼 나는 주인인가 객인가. 내 집 작은 사립문은 닫아걸고 남의 집 대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다리며 줏대 없이 날마다 조급해 한다. 작고 궁색한들 어떤가. 내가 먼저 열지 않으면 나는 평생 나그네가 되어 떠돌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나에게 찾아오면 맛있는 차를 대접하고, 가는 사람은 보내고 오는 사람은 맞이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피곤하면 눈 붙이다 곡 한번하고 나면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면 삶이란 참으로 부질없다. 그러나 그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일들에 마음가는대로 살 수 있는 삶 또한 꽤 괜찮을 성싶다.
나를 유교의 관습으로 꽁꽁 묶어 놓았던 어머님. 그 어머니 소매 자락을 놓쳐버렸다. 힘들었던 세월을 생각하면 차라리 해방이었다. 창자에서 쓴물이 올라오도록 통곡을 했었다. 그해 가을,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지 못하고 시퍼렇게 멍든 하늘만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다시는 누군가를 위해 나를 다 하지 않으리라. 그즈음부터 나는 대붕처럼 날기를 꿈꿨다.
내 마음대로 종교를 넘나들 수 있다면 유년기에는 달콤한 알사탕을 받으러 교회로 가고 싶다. 평생 착하게 살 것 같다. 청년기에는 유교의 질서로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조신한 삶을 살다가, 장년이 되면 이것저것 다 내려놓고 산과 들을 병풍 삼아 전원의 삶을 살고 싶다. 이 시기야말로 화양연화의 꽃다운 시절이 아니겠는가. 그럭저럭 노년기를 맞으면 석양에 국화를 바라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싶다. 그때쯤이면 고승들의 선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기도에 대하여 알 리가 없다. 기도는  부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그 말에 위안을 받는다. 내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 않던가.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살았다면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의지가 약한 나에게 딱 맞는 처방이다.
어느 날 TV에서 <살다보니>라는 제목의 방송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나이를 먹으려고 작정하고 산 것은 아니었는데, 살다보니 어느 날 문득 노년이 왔다는 이야기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나와서 말하고 있었다.
곱게 화장을 한 은발의 우아한 여인은 아침이면 장미 빛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조조영화 한편을 보고 홀로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혹시 소낙비라도 만나면 선 자리에서 빗소리를 핑계 삼아 참았던 외로움을 엉엉 소리 내어 다 토해버린다고 했다.
어느 원로 코미디언은 젊은 시절 하루저녁 지방공연에 집 한 채를 살 정도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당시 '배OO' 그의 이름만 말해도 남녀노소가 배를 잡고 웃음보를 터트리는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에 나가도 왕년의 그가 누구였는지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고, 아내마저 각방에서 티브이를 보며 아침밥은 먹었는지 오후에 외출을 했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다며 특유의 익살로 껄껄 댄다. 그의 웃음소리에서 억새풀 밭의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중의 한 장면이다. 산촌 농가의 앞마당에 남루한 영감이 땔감을 장만하고 있다. 얼굴의 주름이 말린 표고버섯처럼 골이 깊다. 그 옆에 영감과 꼭 닮은 마나님이 오누이처럼 앉아 삭정이를 줍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질문에 “고놈 잘 죽었다.” 소리 안 듣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 감히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겠는가.《산사에서 부친 편지》를 읽었다. 글자가 어둠에 묻힐 때는 산사의 사진들을 보았다. 쓸어버리지 못하는 향기가 있듯이 차마 책을 덮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 그림 한 장을 첨부한다.
키가 작고 어깨 좁은 보살 하나가 합장하며 산사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꼭 산사가 아니라도 좋다. 오두막의 방 한 칸이면 족하다. 그곳에 따뜻한 아랫목과 앉은뱅이책상 하나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연필과 노트 그리고 강아지풀 한 줄기 꽂아놓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여태까지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어떤 이력의 신을 신고 왔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혹, 신발 속의 낙엽들은 알고 있을까.
댓돌위의 흰 고무신이 달빛에 곱다.



지난 주 전남 땅끝마음 '대흥사'에 템플스테이 다녀왔습니다.

까만 밤

달빛에 도착했는데 숙소인 '奉香閣'으로 들어가니 툇마루에 달빛이 가득하였습니다.

신통하게도 <댓돌위에 흰고무신>이 두켤레가 나란히 있더라구요.

신발 속에는 노란 은행잎 빨간단풍잎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낙엽들끼리 소곤거리며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아

한쪽 발을 살풋 넣으니 "바스락"거리며 놀라기에 얼른 뺐습니다.



그날 밤

방다박은 절절 끓어 따뜻했습니다.

창호지 문의 달빛은 은은한데 문풍지가 적막을 간간히 흔들었습니다.

오랫만에 코끝이 시려운 방에서 자보니

아랫목의 이불은 타고 윗목의 물이 얼던 어릴 때의 생각이 났습니다.

절집은 적막강산이었습니다.

산사를 누렸습니다.

혼자만 淸福을 받았습니다.





읽은 도서명 ;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저  자 ; 피에르 쌍소
출판사 ; 현대신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어화 달공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화달공“
상두꾼 소리에 맞춰 상여가 나갈 때, 두 걸음 앞으로 한 걸음 뒤로, 못내 성큼 떠나지 못하는 이승이 있고, 차마 보내지 못하는 저승길의 발걸음이 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결국 삶의 마감 선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니던가? 인생의 마감 선을 향해 바쁘게 항공으로 고속도로로 새마을호로 질주할 것까지는 무엇이 그리 바쁘던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구름 같이 둥둥 뜬구름의 삶이 아기자기 즐거울 리는 없을 것이다.
학생시절 혹은 젊은 시절. 제도권에서 시간에 맞게 몸 크기에 맞게 한 걸음씩 늦추지 않아야 하는 시기가 주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자아(自我)가 형성되고 자신이 가야 할 이정표(里程標)가 세워진 듯 하면 모든 기능성에서 내려, 한 포기의 풀이 자라는 과정을 살펴도 보고, 피어나는 들꽃을 즐겨도 보고, 풀벌레소리도 들으며 산책하고 도보하며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들어, 절대적인 소요(逍遙)의 경지를 만끽 해 보는 여유 또한 삶의 꽃이 아니겠는가?
저자가 말하는 ‘느림’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고, 모든 계절을 아주 천천히 경건하고 주의 깊게 느껴가면서 살 것을 이야기한다.

책의 차례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행하는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고급스런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내 마음의 시골고향, 글쓰기, 포도주 한잔의 지혜, 모데라토 칸타빌레.
두 번째는 리듬의 교체.
세 번째는 과정, 유토피아와 충고로 문화적 흥분, 뒤늦은 도시계획을 위해, 분주하기 말기, 소박한 사람들의 휴식, 하루의 탄생으로 마치고 있다. 목차만 봐도 거의 잡힐 듯한 처세술로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이론으로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데도 밑줄을 그어가며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구 절절 가슴에 닿는 것은 간절하게 내가 추구하는 삶이지 않았을까? 하는 자신을 뒤돌아보는 ‘쉼터’가 되었다.
젊은 날. 바쁘게 살아온 댓가로 자유로운 실뭉치를 조금씩 풀어가며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누구나 공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많은 과제들에 시달리는 부림을 당하여 앞으로만 질주하느라고 소홀했던, 잃어 버렸던 본연의 마음을 찾아보는 여유를 찾을 수 있다면, 책에서 덤을 톡톡히 얻은 셈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희미하게 퇴색되어 버린 부분, 시대에 맞지 않는 지나간 낡은 시간의 한 부분마다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 있었던 자리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결국은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의 주인공이 되는 정체성(正體性)을 찾는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되는 일들을 움켜잡고, 분주한 삶 속으로 빠져들어 허우적대는 것이 나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내 팔자가 내게 운명지어 준 리듬에 맞추어, 인류에게 똑 같이 부여된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어 달라고 외치며 나만의 정신적인 공간을 마련할 일이다.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방랑시인 김삿갓이 누렸던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정신을 위해 시골길을 거닐며, 때론, 혼자서 논쟁을 벌이고 이의를 제기하고 추리하며 걷는 산책은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는 자와는 다를 것이다. 타박타박 타박네가 되어 봄들을 가을 들녘을 호젓하게 걷는 것은 홀가분한 걸음걸이에도 불구하고 진지함이 베어 있어 사색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희미한 불빛이 우리의 길을 안내해 주기를 소망하는 것처럼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 기다림은 있는 정성과 힘을 다하고 난 다음, 자신을 맡겨 기다리며 쉬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평생을 학생의 기분으로 배움의 공간에 적을 두고, 내가 아직도 빛을 흡수할 수 있고, 그 빛의 힘에 의해 더욱 자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며, 도전하고 시작하는 것만큼의 기다리는 자세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농부들이 논밭의 잡풀이 마구 자라지 못하도록 허리가 휘어지도록 김을 매듯, 우리의 마음에 잡생각이 깃들지 않도록, 자신을 성찰하고 겸손해질 수 있도록 마음의 밭을 가꾸듯, 이 땅에 사는 동안 내내 ‘게으름 피우지 않기’ 위해서 삶을 가꾸는 글 쓰기를 권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의 재능을 과시할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참모습에 더 접근하기 위함임이 중요하다.
일종의 의식(儀式)같은 포도주 한잔의 지혜로, 결혼을 하게될지, 아니면 결혼식에 초대해 줄지도 모르는 자녀를 위해 가장(家長)이 포도주를 준비하는 詩情어린 준비의 지혜를 이야기한다. 포도주를 보관하고 정돈하는 지하창고는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놋주발을 닦으며, 이부자리를 손질하며,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의 조촐함. 비록 궁핍한 삶일지라도 몸에 배인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닦는 행위가 아닐까.
지금. 나는 원했든 아니든 간에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도 더 가지고 싶은 목록을 적으라면 어쩜 노트 한 권으로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가지는 일보다는 해야 할 일들을 자진해서 찾을 것을 권하고 있다. 적은 것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기술은 자신의 절제의지를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소박한 기쁨을 자주 만들어내는 것이 으뜸이라는데 행복의 본질을 꼭꼭 새겨 작은 행복을 모를 일이다.
목표를 향해 곧장 달리기보다는 기분 좋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더 좋아하며 누군가에게 금방 다가서기보다는, 다가가기 전에 잠깐 그 사람 앞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리듬의 교체를 막간의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자투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투리를 아낀다. 잠깐 잠깐의 남은 시간과 공간을 자신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쓰여질 것을 바란다.
세속의 말로 머리가 총명하지 못하면 손발이 바쁘다고 했던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흉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흔한 처세술로 읽히지 않고, 나에게 한 권의 지침서가 됨은 뒤돌아 볼만큼의 나이가 들었다는 유세쯤으로 여겨본다.
순발력의 문제다. 나는 손이 순발력이 있는 편이다. 야채나 과일을 다루는 칼 솜씨, 바느질, 뜨개질, 콩나물발 따기, 밤 깎기 등이 제법 속도가 붙는다. 그에 비해 걸음걸이의 습관도 있겠지만 발은 조금 서두르기라도 할라치면 발끼리 엉겨 넘어지기 일쑤다. 그 때문일까? 한발한발 걸어 이루는 밟을 리(履)의 이력을 보면 보통 표준사람보다 2-30년은 늦다. 그러나 결코 늦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떤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할 때, 나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 나이에…’ 보다는 ‘지금 나이가…’가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면서 겪어보고, 내 색깔인 것을 인식한 다음. 모시나 삼베의 자투리 홑 천으로 만드는 깨끼솔기의 마름질처럼, 뒤로 몇 땀 갔다가 앞으로 꿰매는, 그리고 다시 뒤로 몇 땀 가서 매듭을 맺지 않고 마무리한 조각 보(褓)처럼 살고 싶다.
어차피 기능성의 재봉틀 질주가 아니라면, 조금 속도가 늦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한 땀씩 왔다갔다하는 손길이 더 꼼꼼하고 운치 있는 모양새가 아니던가. ‘느림의 철학’은 천성적으로 행동이 굼뜨거나 게으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한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작가 피에르 쌍소가 소박한 사람들의 휴식처인 이발소를 예를 들었듯, 요즘처럼 온 국민이 바쁘게만 외치며 사는 이들에게 정박지(碇泊地) 구실을 충실하게 한다.

최명희의 <魂불>을 읽고
류 창희

환하게 보인다.
흡사 등잔불의 테두리마냥 둥그렇게 빛이 보인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눈두덩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꼭 눌러본다. 그리고 눈동자를 아래로 향해 내려다보면 희미하게 시작하여 점점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그걸 ‘혼불’이라고 칭한다. 혼불이 보인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확인이리라.
살아있음은 육체의 건재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게다. 육체만 가지고 삶을 확인한다면 이 세상은 아마도 생명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나 여기 있수! 목소리를 내며 외친다. 강실이의 목소리는 애써 입만 벙긋거리다 사라지고, 효원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높낮이가 없이 감정을 좀 채로 드러내지 않는다. 강모의 유약함은 아무 소리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옹구네는 시종일관 악을 써본다.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진솔하지 않음이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한다.
동네를 수호하는 정자나무의 자태姿態로 정신을 이끌어 주는 어른의 목소리가 있다. 어른은 늘 선 자리에서 눈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살아 있다는 자체로서 말을 대신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눈을 갖추어야 한다고, 사람의 정신 속에는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穴이 있다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 말하는 청암부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문의 울타리가 가족을 지켜준다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요즘이야 핵가족에다가 가장의 권위도 희미해지고, 사회도 국가도 개인의 능력과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정신을 관리하고 살기를 전해주고 있다. 비단같은 머리결, 산수의 빼어남보다 정신의 경치가 수려함은 자신을 귀격으로 높여 놓을 것이라고, 자신을 지키고 돌아보는 것이 숨쉬는 일처럼 몸에 익어 일상이 되도록 건사하라고, 청암부인을 통해 최명희는 구구 절절 어른의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진정 이 시대에 어른이다.
혼불을 읽다보면 많은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여인들마다 한이 서려있지만 또한 염원도 들어있다. 그녀들의 애환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정성스럽게 살 것을 말한다. 한 집안 문중의 정신이 잘 보존되려면 무엇보다 여자의 힘! 특히 며느리로 들어오는 안 주인의 마음씨에 달렸음을 이야기한다. 집안에 훈김 나고 냉기 도는 것은 다 여자 할 탓이란다. 그저 공 없이 내려온 것은 아니다라고 누대의 할아버지들 학덕에 힘쓸 때, 할머니들은 온 집안 구석구석 한 곳도 빈틈없이 섬기고 모시면서 성주님께 빌고 지신에 빌고 조상신에 빌고 대문신 외양신 뒷간신에 빌어서 우여곡절 다 겪으면서, 그 정성으로 공덕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많은 남의 이야기를 읽었다. 다른 소설들에 비해 혼불의 이야기가 그리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느 문중 선산밑 동네에서라면 다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살았을 법한 보편적인 내용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쓰는 언어, 그들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기는커녕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말사전이고 속담사전이고 고사성어집이고 우리 민족의 정신자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 읽노라면 책 속의 인물들과 나는 시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 속에서 빠져 나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자신도 모르게 토속어로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순 우리말로 풀어놓는 세시 풍습은 해학적이다. 추억의 뒷 편에 썩은 대추나무를 도깨비불이라며 뒷간에 가지 못했던 어린 시절로 독자들을 옮겨다 놓는다.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이야기. 신발을 감춰놓고 잠자는 이야기는 하나의 풍속이, 아련한 추억이기 전에 전수하는 미풍양속이 되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재미있으면서도 머리를 쭈빗하게 하는 젊고 예쁜 주당각시는 곱게 달래고 조심스럽게 위해야 하기 때문에 노염을 안 받으려고 뒷간 근처에서 어흠 어흐음 서너번 헛기침으로 통고하는 노크문화가 읽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섣달 스무나흔날의 한집안의 생 사 화 복의 근원인 부엌신인 조왕신을 모시는 대목에선 사는 건 다 삼가고 조신하게 공들인다는 것이다.
전쟁이후 산업사회로 급 성장한 경제에 발 맞춰 치닫던 우리의 중산층 문화와 과소비를 교훈되게도 한다. 분수도 모르고 흥청망청 네것 내것 안 가리고 문어발로 끌어다 쓰던 경제구조, 거기에 발맞춰 아이엠에프이전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도 한다.
남의 것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음을. 가문 좋고 문벌 좋은 사람들은 가문에다 돈에다 자신을 걸지만. 내 것이 비록 한 자루의 초밖에 없다면, 단초 한 개피의 고리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연줄 연줄 이어지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인연은 흩어지는 민족 정서를 모아도 본다.
사람은 각자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한섬지기 농사꾼은 자기 가솔 굶기지 않으면 되지만, 열섬지기는 이웃이 굶는가 살펴야 하는 그릇이 있어야하듯, 핏줄만 가지고 종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핏줄이 지닌 책임으로 가족을 가문을 나라를, 세계에서 정신이 풍요로운 쪽으로 선망하는 국가가 되도록 인도한다.
쉽게 베풀음 또한 법도가 있음을. 사물은 제각기 할 일과 몫이 있는데 밥을 주었으면 그냥 주었지. 싱겁냐 쨔냐 참견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다만 헤아릴 뿐 묻지는 말아야 하는데 평생을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섣부르게 베푸는 시늉을 부리면 원한의 근원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라며 요즘 남북정상회담과 더불어 남북화해무드를 뒤돌아보게도 한다.
무조건 알뜰하게 하면 죽 거리가 밥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큰 부자 안 되는 법. 알뜰 다르고 문견 다를진대, 없는 중에도 쪼개어 모양내고 가꾸는 것. 그것은 태깔과 격식에서 갖춰지는 것이다. 건너다 본 눈썰미와 내가 해본 손끝하고는 다르다고 작은 일도 손수 정성스럽게 해보는 실천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허황된 것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항상 지금 머무는 곳을 소중히 알아야 한다고. 고을이건 사람이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이 순간 만난 이 사람이 내 생애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인즉. 자신을 존중하며 살기를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다.
최명희는 갔다. 어떤 이들은 혼불이 꺼졌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시대의 어른이 갔다고 여긴다. 청암부인이 소설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알려주고, 당신의 질서 속으로 홀연히 가듯, 최명희는 우리의 갈 길을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것을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그만의 질서 속으로 떠났다.
그런 최명희는 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라고 절규하고 있었다. 작가가 이렇도록 간절하게 잠 못 이루고 쫓기며 아파할 때, 나는 편안하게 눈으로만 호흡을 같이하며 변죽만 울렸더란 말인가.
흥미로 읽어갔던 시간들이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녀의 혼불은 벌써부터 소진해 가고 있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혼불의 작품과 작가의 목숨이 바뀌어진 것은 무척이나 애석한 일이지만, 그가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무엇이 소중한지도 모른 채 여러 많은 다른 작가 중에 한사람으로 기억했을 터이다.
17년간이나 인연의 끈을 쥐고 때론 절규하고 때론 모진 세월을 버텨냈던 소설 속의 인물들과 저승에서 만나 뒤풀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가끔은 육체에 이끌려 살아가다가 잠시 이상이 생겨 몸이라도 아플라치면 허둥지둥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제서야 나의 정신은 온전한가? 온전하게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를 확인하곤 한다. 소설 ‘혼불’은 삶의 질을 높은 데로 고귀한 정신 쪽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올려놓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찾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가만히 눈두덩을 눌러본다. 그리고 혼불을 보려고 노력한다. 정신을 지키고 정성스럽게 살아가고저 하는 모든 이들의 눈과 마음속에서 최명희는 ‘혼불’을 밝혀 줄 것이다.

1998년 12월 11일
최명희님 편안하십시요 당신에겐 휴식이 필요합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당신을 아끼던 독자 류창희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