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김영란 지음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 『문학과 법』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등이 있다.

 

197991.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시작. 두 반을 통틀어 여자연수생은 혼자였다. 198191.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사로 부임. 결혼, 출산, 육아 등등 끊임없는 개인사와 함께 판사로서의 업무도 매너리즘 속에서 날들이 흘러갔다. 1986년 부산지방법원 부산 최초의 여성판사로 부임했다.

10년의 판사생활 동안 사건에는 정답이 있고 판결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는데, 대법원에 와보니 판결은 선택이 되기도 했다.

 

가부장제 변화의 현재 -

가부장제는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고, 인류 발전단계의 한 형태.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하여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다. 처벌권한도 가지고 있다.” “딸을 출가시키거나 아들이나 딸 어느 쪽의 자녀들이라 하더라도 이혼시킬 수 있으며, 다른 가()에 입양시킬 수도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팔수도 있었다.”

한편 혼인으로 가장은 부인의 인격 및 재산에 대한 여러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이 부인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될 때, 특기할 점은 그가 남편으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신분을 얻는다는 것이다. 부인이 가장의 딸과 같은 지위에 있다는 것, 가장은 부안을 합법적인 가부장의 통제아래 두게 되었다.

 

가장 강고한 위계질서 - ‘가족적인 분위기와 질서를 내세우는 많은 집단들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의 폭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족적인 질서는 가장 느린 속도다.

 

조금씩 변화하는 판결의 방향 - 가족 내 가부장 질서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아들과 딸 등 여러 관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작동한다. * 제사를 주재하는 자로 딸과 아내보다 아들과 손자를 우선시한 대법원 판결은 * 어머니보다 아들을 우위에 두었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제사를 모시는 사람으로 딸이나 처보다 아들이나 손자의 지위를 우선시하는 것이 사회통념이라고 판단함으로써 남자와 여자 사이의 위계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를 공고하게 했다. (P25사진 - 미친, 꼬라지! 2019년 우리 집도 이 짓! 여자는 제사를 차리는 도구. 큰 동서의 밥은 손아래 동서들. 미친! 그러나 나는 솔을 치지 못한다. ‘은 나에게 너무도 높은 음이다.) 여성은 그동안 제사에서 철저하게 도구의 영역에 놓였을 뿐, 주재자로 자리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구도는 나라가 보장하는 합법적인 차별이었으며, 지금도 이러한 차별은 곳곳에서 답습되고 있다. (우린 아직도 제사가 끝나고 음복할 때도, 여자 남자 따로 밥을 먹는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만 해도 손자들까지 다 먹고 난후, 부엌에서 여자들만 따로 먹었다. 그렇다면 물질적 분배는 고르게 되었는가. 말하지 못한다. 그래 그래, ‘를 치려고 하는데, 낮은 로 손가락이 간다. 이제 장손으로 넘어가기만 기다린다. 그러면서 설 추석 제사 비는 왜 받는지, 그 것을 알고 싶다.)

 

여성을 문중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시작함으로써 부계혈족과 모계혈족을 차등하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판결도 사회 통념의 변화가 법정을 변화시킨 대표적이 사례가 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폭행,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사람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 단지 피해자의 감성인가 -

판사 시절, 어떤 남성이 내게 마거릿 대처 수상은 한 나라의 수상인데도 매일 남편의 아침 식사를 차려준다고 합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라고 말했었다. 사실 그 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맞벌이 여성들이 대처 수상만큼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말이었을까?

 

그들은 소녀로 살아본 적이 없다 - (37쪽 사진. ‘사바나 레딩 새포드 교육구 사건판결 당시 브라이어 대법관의 발언 - 성인지 감수성이 지위 고하와 상관없이 배우고 훈련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대법관조차도 속옷을 벗는 것이, 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이들은 체육시간마다 옷을 갈아입지 않던가요? 제가 여덟 살, 열 살, 아니 열두 살 때였는지는 몰라도, 하루에 한 번 옷을 갈아입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 대법관이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듣다못해 그 속옷을 남이 벗겼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브래지어까지 벗어서 흔들어보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후 긴즈버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들은 열세 살 소녀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또래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전혀 모른다는 거죠” (신세계백화점 반디앤루니스에서 잠시 앉아 읽다가 읽다가 나는 울면서 나왔었다.

***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일인지, 남자 또는 가부장제에 세뇌된 여자 같은 대법관이 알 턱이 없다. 친아비도 어미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쁜 아비 나쁜 어미) 대법원은 소수의견 없이 학교가 레딩을 알몸 수색한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결코 똑같지 않다” - ‘감수성의 정의는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다. 감수성이라는 용어는 감성이나 감정과는 달리 예민함이나 감도(感度)’라고 할 수 있다. 지배적인 성적 고정관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다.

 

민주주의에 도구는 민주적인가 - 많은 사람이 이제 이 정도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조직들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다. 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기존의 정당이나 여러 기관조차 전혀 다르지 않다.

 

계약이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위험한 생활용품 등은, 시판하기 전에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을 미리 거치는 것보다, 문제가 된 이후에 배상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면, 제조업체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달린 문제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며, 이에 따라 약자들은 정치가의 말을 조금도 신뢰하지 못하고, 법률에도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법의 제도적 기능은 각자의 행위가 상식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기준

 

의 자유방임에 책임은 없는가 -

강원 랜드. 베팅 한도액은 1회 최고 1000만 원이다. 그럼에도 이곳 딜러 등 직원들은 원고가 이른바 병정’(타인의 돈으로 타인을 위해 베팅만 대신해 주는 사람)을 이용해 최고 6000만 원까지 바카라 게임에 베팅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도박은 처벌이 되는 금지행위인데도, 국가가 폐광지역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카지노를 조성하도록 허용한 이상, 좀 더 적극적인 보호책을 서야 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판결이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카지노이용자보다 사업자를 보호한 결과를 가져온 데 있다. 자기책임의 원칙을 들어,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쪽 당사자와 다른 쪽 당사자를 대등하게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 손을 들어 주는 판결.

의존식 계약이나 통제식 계약. 자유와 책임을 빼앗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즉 충성이 작동하는 새로운 변종 계약.

***개인들은 자기책임 하에 계약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대구조 속에서 주어진 선택자만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 공적 행위가 계약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매 학기마다 도서관 강사 이라는 복종계약을 내가 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알제리 등 여럿 있다. 독일의 나치즘, 프랑스 나치독일의 침략, 스페인은 프랑코의 통치, 러시아는 스탈린 독재,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군부독재, 남아공은 흑백 인종차별주의, 알제리는 프랑스의 신민지배의 역사적 경험이 과거사 청산의 과제가 되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 남아공의 경우. 스스로 나서서 사실을 털어놓은 가해자에 대해서는 처벌이 아닌 사면을 제공하고,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해주기로 결정한 점이다. “과거정권에서 저질러진 불법행위를 밝히는 동시에, 정권을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9월 취임사에서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2007년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한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 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우리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2009년 말, 사법부가 역사 속의 사법부를 펴내면서 주요 시국사건들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쳐버렸다. 용두사미에 그친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안정성이라는 기존의 가치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만 이루어진 결정이다. ‘고수해야 할 가치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한계선을 긋게 한 것.

 

정신적인 고통은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 2011년 정신상의 손해배상부분을 달리 보아야 한다고 판결하기 시작했다. 인혁당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77명에게 가지급된 위자로 491억여 원 중, 210억 원을 되돌려 줘야 하게 되었다.

 

또다시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국정원은 한술 더 떴다. 201377명에 대해 가족별로 동시에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을 걸었다. 국정원은 삭제된 30여 년 치 이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은 기간에 맞춰 연체이지까지 갚으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끝내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다. 2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연체이자율도 그때부터 적용됐다. 인혁당사건이 벌어진지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국가의 억압은 경제적 고문의 얼굴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김우종 선생이 2억 원을 박근혜 정부에서 반환을 이유로 착취해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법부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부터 정리의 수순을 밟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청산 노력이 용두사미에 그쳐버렸다는 평가에서 힘이라도 얻은 듯, 과거사 문제를 덮는 수순으로 진행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보였다.

세상모르는판사들이 빠지는 함정 - 실용주의적 판결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로스쿨에서는 법관에게 작용하는 동기와 제약, 법관을 제한된 지성으로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한 인간이 아니라, 마치 컴퓨터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법관도 자연스레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제출된 사건만 판단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이는 법관들을 기이한 수동성에 빠뜨리게 된다.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판사가 되는 영미법 국가와는 다르게 * 우리나라는 그동안 직업 법관제를 채택해왔다. 직업 법관제란 경력의 전부를 직업법관으로 일하는 법률가들로 법원이 구성되는 시스템”. “법전이 정확하고 상세할수록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또는 기타 개인적인 선호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아진다.” 직업법관제 아래에 있는 법관들이 “‘때때로 입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법리들일 뿐, 그 법리들과 그 법리들이 규율하는 제반 행위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법률가들이, 때로 법만 따지고 현실을 무시하는 판결을 한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법교육과 직업적인 법관으로서의 폐쇄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 -

삼성엑스파일 사건 판결의 다수의견이 정당행위의 해석을 종래의 해석보다, 훨씬 더 좁혀서 해석하고, 그 결론에 대한 책임은, 결국 고 노회찬 의원만이 지게 되었다. 2013214일 판결확정으로 국회의원 직을 상실하게 된 노회찬 의원은, 2016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다시 국회로 돌아왔으나, 국회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 받았던 정치자금이 문제 되어, 유명을 달리했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반짝 떠올랐던 정치자금 문제는 다시 수면으로 가라앉아 잊힌 것처럼 보인다. (201쪽 사진. 노회찬 의원의 신념과 행동은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의 투명성에 대한 화두로 남아 있다)

 

 

판사들이 피할 수 없는 정치적 판단 -

힘과 힘이 겨루는 마당이며, “소수파는 자신이 틀리다는 점에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소수파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항복한다.”

 

*** ‘판결과 정의를 내고 인터뷰 내용

김영란 왈 : ‘개천에서서 용 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판사가 되는 문도 좁아지면서 상류층 비중이 커지고, 그들이 내리는 판결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관해 김 전 대법관은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 없는 사회라는데 동의하며, 개천에서 용을 나게 하는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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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나도 56년생이고 남편도 56년생이다. 둘 다 병신년에 태어났다. 나와 남편을 빼고, 1956년생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김영란이 있고, 최순실이 있고, 손석희도 있다. 해방둥이도 사변둥이도 58개띠들의 왈왈 산업의 주역도 아닌, 주목받지 못하는 56년생 낀세대다. 딱히 일궈낸 업적의 지칭대명사가 없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보다 각자 스스로에게 훈장과 벌을 준다. 본래 병신년 원숭이는 자신이 재주를 부려야, 그나마 누군가 힐끗 쳐다봐주는 어설픈 몸짓을 지녔다.

그중 56년생 나는 혹시 나에게 너는 출신성분을 잘 타고 났다면, 누구처럼 살래? 라고 묻는다면, 예술의 종합적인 안목을 지니지 못했으니 난타를 두드릴 수는 없고, 국정농단을 할만한 배경도 베짱도 없으니, ‘정의의 길을 향하여 깃발을 들것 같다. 그러나 그 위치를 올라가려면 일백 번 고쳐죽어도 오르지 못할 고지다.

김영란, 같은 여자로서 같은 나이로서 멋지다. 그리고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 존경한다.

가장 나종에 지니인 것

 

박완서


아이들 엄마가 전화를 했다. 언제나 전화를 거는 쪽은 나였고, 전화 통화를 하더라도 언제나 혼자 마냥 지껄이다 끊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형님이 몸소 나에게 전화를 것은 다소 의외의 일이다.


형님은 나와 전화통화를 때면 언제나 인기척 없이 나의 말을 듣고만 있다. 내가 형님에게 듣고 있냐고 묻기라도 할라치면, 형님은 듣고 있다며 계속 얘기하라는 말만 할뿐이다. 형님은 그저께가 증조모님 제사였는데, 어찌 미리 자신에게 기별이라도 하지 않았냐며 몹시 언짢은 기색을 보이신다. 형님도 잊어버렸으니, 이번 제사는 지내고 넘어간 셈이다. 형님은 집안의 대소사를 며느리에게 믿고 맡기지 못한다. 그러니 며느리도 자신의 친정집 대소사는 챙기면서도 정작 시댁 증조모님 제사는 잊고 넘어가기가 다반사인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제사를 사대까지 지낼 필요 없이 이대까지로만 줄이는 것이 어떠냐고 형님께 말씀드렸다. 가정 의례준칙에도 이대까지만 지내도록 되어 있다는 예까지 들어가며 설명 드렸다. 나는 내가 형님께 알려 드리지 않으면 형님이 제삿날을 잊어버릴 몰랐다. 나는 다만 제삿날을 사흘이나 나흘쯤 앞두고 나박김치 담으러 날을 의논드린다는 자연히 제삿날을 아는 척하는 구실을 했을 뿐인데, 형님은 나만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숫자 외우는 일을 못한다. 얼마 전에는 외출해서 집에 늦게 들어갈 것이라고 딸자식들에게 전화하려고 했다가 전화번호를 잊어서 한참을 고생했던 적도 있다.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나 요상하게 춤추는 불빛들이 모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환상 같기만 했다. 아이들은 전화도 걸고 늦었다고 나에게 야단을 쳤다. 나는 아이들에게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는 전화번호를 잊어버려서 전화 걸지 못했다는 말은 차마 하기 싫어 그냥 잠자코 있다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창희가 방까지 쫓아 들어와 오빠 죽은지가 벌써 년이나 넘었는데, 아직까지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해서 살아 있는 딸들마저 이렇게 마음 고생만 시키냐고 퍼붓는 것이다.


나는 한번도 죽은 창환이의 목숨을 제까짓 딸년들과 비교하거나 바꿔치기 한적이 없다고 형님께 말했다. 창환이는 전무후무한 하나뿐인 창환이고, 아무하고도 비교할 없이 잘났기 때문이다. 하긴 내딸을 나무랄 것도 없다. 내가 창환이를 잃고 나서 친척이고 친구고 멀쩡하게 아들 기른 사람들이 나에게 괜히 미안해했다. 아들 자랑하다가도 앞에서는 다물고, 장가보낼 나한테 청첩장 보낼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다. 나랑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 동창 명애만 하더라도 우리 창환이 죽었을 , 그렇게도 슬퍼했으면서 막상 자신의 아들이 장가갈 때에는 나한테 쉬쉬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창환이의 죽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들을 당하는지 형님께 물었다. 나는 명애의 아들 결혼식에 가서도 환하게 웃으며 늠름하게 행동했다. 그런 여느 아이들은 창환이와 비교도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민가협 엄마들 덕에 의식화 덕분도 있어서 우리 창환이가 법관 보다 백배는 잘나 보였던 것이다.


형님 역시 우리 큰조카 창석이 결혼식 나에게 큰형님과 똑같은 예단을 오라고 며느리에게 시키고, 폐백 들일 때도 형님과 나란히 앉혔지만 과부가 나란히 앉아 있던 일도 다소 우습게 느껴졌다. 나는 창환이를 창석이와 비교하는 마음을 가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창석이는 80년에 대학 들어가서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알바 없이 공부만 팠다는 사실에 인간성이 의심스럽지만, 우리 창환이는 창석이 보다 삼년 뒤에 대학에 들어가서 캠퍼스의 최루탄 냄새를 괴로워했다. 창환이는 운동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단순 가담자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나도 억울했다. 그놈의 쇠파이프가 앞장 열렬한 투사들 제쳐놓고 하필이면 우리 창환이를 택했는지도 없었다.


창환이의 죽음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집단의 열정 속으로 휩쓸리는 것이었다. 형님도 알다시피 백만학도가 창환이의 장엄한 장례식에 찾아와 창환이를 열사로 떠받들었다. 중요한 창환이가 운동권이었는지 아니었나가 아니라 죽음까지 횃불로 삼지 않을 없을 만큼 시대가 깜깜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후로 중요하게 생각해 것이 하나도 중요해지고, 하나도 중요하게 여겨 것이 중요해 지게 되었다. 증조모님의 제사도 중요하지 않아진 일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형님은 나에게 제삿날 말고 중요해진 뭐가 있느냐고 묻지만 그건 이루 말할 없이 많다. 이제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형님께 우리가 모진 세상을 살아온 것도 같다고 얘기하자 형님은 여지껏 꿋꿋하게 버티기에 극복한 알았더니 이제 와서 약한 소리냐고 한다. 그러나 정말 힘들었던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인지 모른다. 하루는 고등학교 동창 명애가 나를 고등학교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동창의 달동네 집으로 데리고 갔던 적이 있다. 친구의 아들은 년전에 차사고를 당해 뇌와 척추를 다친 하반신 마비에 치매까지 겹쳐 반송장의 상태로 단칸방에 누워 있었다. 오랜 병구완의 끝이라 가산도 탕진한 상태에서 친구는 우리 동창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파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명애는 죽는 보다 못한 꼴을 위로 받으라고 나를 거기까지 데리고 갔던 것이다. 아들에게 우리가 사간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이고 , 친구는 아들의 몸에 욕창이 생길까 널찍한 위에 누워 있는 아들을 공기돌 굴리듯이 이리 저리 굴렸다. 장대한 아들을 자유 자재로 굴리면서 바닥에 닿았던 부분을 마사지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친구가 하는 것을 도우려고 손을 내밀었다.


바로 순간 우리의 손이 몸에 닿자마자 환자가 이상한 괴성을 질렀다. 여지껏 흐리멍텅 공허하게 열려 있던 환자의 눈이 난폭해 우린 손이 오그라붙는 같았던 것이다. 그때 이전까지는 아들을 악다구니 받친 태도로 대하던 친구의 표정에서 씩씩하고 부드러운 자애를 읽을 있었다.


나는 별안간 친구가 부러워서 어쩔 몰랐다. 남의 아들이 아무리 잘나고 출세했어도 부러워 한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때까지 참고 참아 왔던 울음을 복받치는 대로 쏟아부워 버렸다. 울음을 통해 기를 쓰고 꾸민 자신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며칠 동안은 울고 싶을 우는 낙으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듣고 형님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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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자격이나 있었는지, 몇번을 읽었다.

박정자의 모노 연극도 보고 싶다.

 

 

<구름이 사는 카페>

윤재천 *

 

특별한 인연이 없어도 살갑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으면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다.

그의 체취가 자기 주변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아 잃었던 삶에 활기를 회복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집착에서 비롯되지만, 그 순기능 順機能 을 생각하면 애써 기피할 필요는 없다. 저마다 현실적인 문제에 매달려 정신을 쏟다보면 소중하게 생각되던 것마저 범상하게 여겨져 허허벌판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공허감에 빠져들다가, 이전의 기억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 그 실체와 마주치게 되면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들뜰 때가 있다.

지금은 흐른 세월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워 겨우 흉내만 내지만, 이전에는 틈이 날 때마다 산에 오르고, 기회가 있으면 짐을 챙겨 길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소담한 모습으로, 자신만이 만들어내는 빛깔과 향내를 뿜어내며 서 있는 풀꽃을 비롯해, 지친 삶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만나 살아가는 숨결을 통해 순박함을 느끼기 위해서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오히려 정이 가는 것들, 나는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보려고 애를 쓴다.

주말이면 동료들과 어울려 강원도 이름 없는 산 정상에 서 보기도하고, 관악산 바위 위에 걸터앉아 보기 위해, 곳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들과 이웃이 되기 위해, 그들 속에서 같은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다.

그때마다 짐을 챙겨 더 가야할지, 서둘러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가야 할지, 마음을 결정하는데 절대적 기여를 했던 것이 구름이다. 그는 내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말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또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의사를 특유의 얼굴로 피력하곤 한다.

늘 나를 내려다보면서 내 짙은 외로움을 삭이는 일에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구름 - 구름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며,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던, 같은 구름으로만 보였다.

구름에 매료되고 동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9 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서 트랩을 내려오며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부터다. 영원히 와볼 수 없을 곳이라 생각했던 나라에 왔는데, 구름은 이미 먼저 와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릇처럼 바라본 하늘에서 조금 슬픈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던 그 구름의 표정,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다그쳐 물을 수는 없었지만, 무슨 말을 내게 하고 싶어 했다.

그 땅에도 구름이 올 수 있고, 코발트 빛깔의 하늘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곳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줄곧 구름을 바라보는 일에만 열중했다. 보고 봐도 싫증이 나지 않아서다.

내가 아호를 운정 雲亭 ’ - 구름 자에 정자 자로 하고, ‘구름카페 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넓은 창과 길게 드리운 커튼, 고갱의 그림이 원시의 향수를 느끼게 하고, 무딘 첼로의 음률이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인간의 짙은 향내를 느끼게 하는 곳에서, 구름과 마주하고 싶어 붙여진 이름이고 소망이다 .

이것은 이미 내 마음 안에 마련되어 있는 공간이기에, 소망이 아니고 현실로서의 카페다. 어려움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 안에 그런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이 구름과 다르지 않고, 여생 동안 그와의 동행을 거부할 의사가 없다.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대로 가다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그리움을 삭이고, 분노를 빛과 소리로 분출하는 구름, 나는 비가 내리거나 번개와 천둥이 주변을 어지럽힐 때면 그의 표정을 살피며 한동안 카페의 넓은 창을 통해 서 있곤 한다. 울음이나 감정의 폭발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어서다.

훗날, 가능만 하면 나는 구름으로 태어나고 싶다.

내가 그동안 쓴 글이나 누군가와 나누었던 말, 상대를 의식하며 평생 동안 했던 강의까지도 구름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싶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인식되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상관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나를 떠나 허공에 흩어진 것들이다. 그들이 비가 되어 목마른 생명의 목을 적실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쩔 도리가 없다. 분노도 혼자만의 답답함이고 안타까움일 뿐,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구름처럼 살아온 것같이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누군가를 찾아 동행을 권하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만족하며 살려고 한다.

맑은 날이면 밝은 차림으로 길을 나서서 갈 수 있는 데까지 유유히 산책하고, 물을 필요로 하는 생명이 있으면 어디선가 물을 가져와 생명을 살리고 싶다. 그러다 지치면 카페로 돌아와 조용히 쉬고 싶다.

어느 정도 피곤이 풀리면 그 자리에 장미 한 송이만 가져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마음 연약한 사람들을 초대해, 오래된 포도주를 꺼내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차를 끓여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싶다. 그들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촛불이나 등잔에 기름을 채워 불을 붙여놓을 것이다.

이것이 내 소망이다.

이제 무엇이 더 필요한가.

내 문학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한 준비였을 뿐이다.

지금도 구름이 내 곁에 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어떤 준비도 할 필요가 없다.

일상의 모습처럼 그와 마주앉아 서로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작가 소개 >

1932 년생. 경기도 안성, 전 중앙대 교수. 한국수필학회 회장.

혁신적인 이론과 자유로운 정신, 수필문학의 창조성에 대한 열정과 예술을 한다는 것엔 무엇보다 순간순간 새로워져야 한다는 철칙을 가졌다.

계간 <현대수필 > 발행인

저서로는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으로는 나를 만나는 시간에’. ‘청바지와 나’. ‘구름카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 / ). 등이 있다.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미니 멀 라이프 연구회 지음 / 김윤경 옮김

 

 

 

프롤로그 - ‘최소한을 뜻하는 미니멀

 

청소, 이쪽에 자리 차지하고 있던 물건을 저쪽으로 옮기는 것.

 

지금 설령 가격이 비싸더라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고른다.

 

방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 불필요한 물건을 갖지 않는 것.

단샤리(斷捨離 요가 수행법인 단행 사행 이행에서 따온 말로 일상생활에 불필요한 물건을 끊고, 버리고, 멀리하는 의식과 행동)

 

물건이 적은 상태에서 생활해보니 어라? 물건이 적어도 뜻밖에 쾌적하네!’

예를 들면 그녀는 직장에서 일할 때 입는 옷은 두 가지 패턴으로 제한하고, 구두도 네 켤레밖에 없다.

미니멀 리스트들은 사복의 제도화라고 부른다.

옷이 적으니,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 단정한 차림새셔츠는 반드시 다림질해서 입고,

구두도 늘 깨끗이 닦고. 진정한 멋을 즐기고자 한다.

 

온갖 물건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살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방을 정리하면 마음 까지 정리되는 효과.

 

좋아하는 일에만 시간을 쓴다.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겨둔다.

소유물이 적을수록 자유롭고 좋은 건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생활이 곤란해지는 걸 바라진 않는다.

전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은 남겨두고 단샤리.

 

* 물건으로 나를 과시하지 않는다 -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 경계선은 일 년과감히 버린다.

기호(記號), 물건을 소유한다는 건 결국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과 연결되는 기호를 가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미니멀한 생활에 눈뜬 계기는 동일본 대지진 (나는 바하보러 아이파크로 오면서).

 

미니멀리스트가 뭘까?

침낭에서 잔다.

짐은 여행용 트렁크에 들어갈 만큼만 갖는다.

홀가분하게 살기 위해 집 크기를 늘리지 않는다.

 (지금은 투룸이지만 다음은 원룸, 그 다음은 요양원 침대하나, 그 다음 다음은 ....)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잠자는 방을 나의 작업실로. 그러기 위해서는 심플하게)

(집에 놀러온 친구가 목소리가 울려

 전에 메트로시티에 오는 사람들은 이사 갈건가? 이사 온 건가?” 물었다.

그 정도로 집안을 휑하게 치워놓고 살았다.

 

나의 부엌을 보고 모델하우스 같다며,

밥은 해 먹고 사느냐고 물었다.

밥뿐만 아니라 김장 오이지 장아찌 매실청 등 무엇이든 해먹고 살았다.)

미니멀리스트로 살고부터는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정말로 하나도 없다.

 

물건을 버리면 마음의 부담도 함께 가벼워진다.

*** 타인의 서선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집에 절대 누구 부르지 않겠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나와 다른 생각일지라도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더 힘이 나고 열심히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최선

(골동품 수집, 책을 도서관처럼, 아이들 추억을 더듬으며 살기, 아무튼 모으는 게 취미, 취향과 가치관의 차이)

정리의 시작은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

 

깨끗하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 정리하기를 좋아해야만 방이 깨끗해진다.

청소는 귀찮아하면서 깨끗한 방에 살고 싶어 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근육 트레이닝도 중요한 일, 패션업계에서 살이 찌면 해고된다는 말, 반은 농담 반은 진담. 꾸준한 자기 관리.

방을 심플하게 바꾼 것이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된 이유.

이를테면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는 상태.

(가출하거나 죽고 싶어도 정리되지 않은 나의 서랍, 옷 방, 냉장고, 서가 또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

그래서 집, 구석, 구석에 미련을 담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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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이 책 내용의 반은 사진이다.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이다.

2~30대에 독립하여 처음 직장에 나가는 싱글 젊은이들 책이다.

 

아이들 다 독립시킨 나도

남편과 더불어 각자 방하나, 거실하나에 정착했다.

 

 

렌트카 한 대 빌려, 이 나라 저 나라 둘이 여행하면서

"원텐트 투피플"로 슬리핑백 하나, 2인용 전기밥솥 하나로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사진이나 찍으며

프로방스 추억하듯, 일상생활도 그렇게 살고 싶은 꿈은 있었다.

 

그런데 매일 손자 보는 돌보미를 하고 있으니,

식사거리(아들 손자, 며느리)는 물론 기저귀와 휴지 옷 장난감이

주방과 거실에 갈수록 한 살림이다.

 

그래도 2년 전에 살림의 최소화를 실천했다.

장롱, 문갑, 서랍장, 피아노, 책장, , 이불, 그릇들을 거의 정리했다.

4개에서 2개로, 아파트 평수를 반으로 줄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실내가 휑하여 넓더니

요즘은 점점 좁아진다.

살림에, 생활에,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의지가 비장해봤자,

머지 않아 관 하나로 들어갈 텐데,

미리 유난 떨며,

스트레스 받으며,

억지로 적게 가지려고 궁상떠는 것도

부질없다.

 

* 나의 친정엄마도 지금, 살림 다이어트 중이시다.

삶의 다이어트다.

아프다, 이참, 저 참!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에세이 / 예담

 

서문 - 왜 어떤 가게들은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골목에 꼭꼭 숨어 있을까. 교토의 역사와 토양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습성, 일관되게 지켜온 가치관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 결코 변지 않을 어떤 의지와 마음가짐들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교토 고유의 정서들. 교토와 교토 사람들은 자부심이 드높았지만 동시에 겸손했다. 일견 차분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강인.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향한 예의를 중시.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는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스스로 만들어갔고, 끝없는 욕망보다는 절제하는 자기만족을,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감.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 살아가면서 생각의 중심을 놓칠 때, 내가 나답지 않다고 느낄 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마음을 비워낼 필요가 있을 때, 왠지 이곳 교토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사색을 위한 기차 - 기차는 철도 위를 빠짐없이 꾹꾹 밟으며 달린다. 그 타협 없는 반듯한 전진 덕분에 원래 살던 장소에서 가장 멀리 가고 있다는 아득한 기분에 젖는다.

혼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여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를 내면에 숨겨놓은 것만 같다.

여행이 주는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상기된 모습은 너무 애틋해서 그 모습 그대로 지켜주고 싶어진다.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서 교토 시로 들어가는 기차의 이름은 하루카’. 기차가 사람들의 일상 공간 사이로 태연히 다닌다.

풍경 자체에선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데 정작 그 풍경에 사람이 빠져 있다.

 

알고 찾아가는 정성 - 겨우 보일락 말락 한 흰색 글자, ‘io plus'. 어쩌면 이렇게 숨바꼭질하듯 찾기 어렵게 만드나 싶은 원망과, 드디어 찾아 낸 기쁨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간판을 달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찾기 어렵도록.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가게를 만들고 싶었어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더 정성껏 집중하겠다는 태도는 단순히 물건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목적의식이 아닌, 손님과 가게의 인연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이 책의 글자크기 색깔도 그렇다. 내 나이, 내 눈으로는 돋보기 끼고도 좀 힘들다)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주인이 원치 않는 유형의 사람들도 와버리고 일도 번잡해져, 자신이 바라던 서점의 모습을 잃을까 봐 우려했다.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보다 이 서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일부러 찾아와주는 손님을 편애하기로 했다.

개인의 가게는 그 개인 고유의 삶의 방식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정교한 안목과 단단한 자부심 없이는 결코 가질 수 없는 태도다.

만나야 할 인연은 어떻게든 반드시 서로에게 닿을 운명이기에.

 

세월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 10, 20년 된 가게는 아예 명함도 못 내민다. 최소한 3대에 걸쳐 지켜온 가게라야 교토에선 노포: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시니세)라는 영예로운 호칭이 주어진다. 노포가 의미하는 것은 신용이다. 한눈팔지 않고 전통을 지켜온 가게가 있고 거기에는 일편단심인 손님들이 존재한다.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기 가게만의 고유한 색을 지켜나갈 뿐이다. 녹이 슨 듯한 세월의 흔적, 향수 어린 감성을 교토는 더 가치 있게 여긴다. ( 글도 삶도 이렇게 살고 싶지만)

가령 노포의 현관문을 열거나 장막을 걷고 들어갈 때 먼저 말을 거는 쪽은 가게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실례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이렇게 손님이 먼저 가게 안쪽의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입장하는 것이 교토의 예절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인간 대 인간, 면 대 면으로 가치를 주고받는 진중한 행위.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수제품을 더 가치 있게 여겨 선택하는 것이 교토 사람들일 것이다.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 - 동네 단골로 보이는 백발 단발머리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와 카운터 석 맨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평소 선호하는 일종의 지정석인 모양이다. “블렌드 커피죠?” 다 알면서도 한 번 더 친절한 미소로 확인하는. 바랜 푸른색 리넨 셔츠에 연회색 앞치마를 두른 정갈한 차림이었다. 주근깨를 그대로 드러낸 그녀의 꾸밈없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아주 잘 어울렸다. 카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게재되었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인 동시에, 아빠이자 엄마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저희가 일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미래의 자양분이 되어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봄이 되면 이 카페 인근의 가모강변은 크로바 꽃이 초록빛 잔디밭에 한가득 피어나 마치 동화 속 나라처럼 환상적인 풍경이 된다. 이런 훌륭한 경치를 자신들만 즐기기가 아까워 요시다 부부는 가모강 피크닉 세트를 메뉴로 고안했다. 커피가 든 보온병, 머그, 구운 과자, 리넨 매트를 넣은 피크닉 바스켓과 함께 카페 밖 처마 밑에 걸린 미니 원목 테이블과 스튜를 원하는 손님들에게 대여하는 서비스다.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지낸다는 의미다. 그렇게 일상이라는 이름의 모험을 함께 시작하고 생활이라는 이름의 신비를 알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 서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면서 잠시 숨이 멎었을 것이다.

이미 검증 된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이거야라고 확신한 책을 차근차근 팔아나가자고, 우리 나름의 스터디 셀러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이다.

점원들은 손 글씨로 책 소개 문구를 직접 써서 모든 책 안에 정성스럽게 집어넣었다. 마음을 담아 추천했기에 문구들은 설득력이 있었다.

일본 전역과 외국에서도, 사람들은 이 각별한 서점에 오기 위해 일부러 이 조용한 외곽 동네를 찾게 되었지만 동네서점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유명해졌어도 여전히,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웃 주민들을 가장 소중히 여겼다.

, . 실내 촬영은 괜찮습니다만 책을 보고 있는 다른 손님들은 찍지 말아주세요.” 점원은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당부했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타인을 향한 세심한 배려는 내가 언젠가 고스란히 돌려받게 될 호의이기도 하니까.

초판, 중판 그리고 절판 - 나는 에코백 애호가다.

절판은 더 이상 독자들이 찾지 않아 추가 인쇄를 포기한 책을 일컫는다. 자신이 쓰거나 만든 책이 절판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서운 주인장들만의 매력 - 오니기리(삼각김밥)전문점, 좁고 기다란 5평 남짓한 공간에 고작 열 개의 카운터석 주인장의 아우라에 압도당한다. 30대 초반 머리카락은 완전히 다 밀었다. 눈은 보리새우처럼 작고 가장자리가 위로 찢어졌다. 얼굴 왼쪽 뺨엔 칼로 길게 베인 자국이 선명하다. 과묵한 이 남자, 많은 풍파를 겪었을 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전직 야쿠자가 손을 씻고 나와 가장 근본 적인 을 만지는 느낌. 외모에 위축됐다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이대로 나갔다간 오히려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메모지에 주문할 음식을 표시해주십시오.” 손님은 무조건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하는 분위기다. 허리를 곧게 펴고 경건한 자세로 주인장이 오니기리를 집중해서 빚는 모습. 철 가마에 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쌀밥. (절도 있게 빈틈없이) 그의 험상궂은 인상이 풀리는가 싶더니 냉큼 받아가라는 뜻이다. 매일 와서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정이 느껴지는 손맛, 손님들이 다 먹어갈 때쯤 몸을 돌리더니 날카로운 저음으로,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릇은 자기 쪽으로 올려달라고. 손님들은 저도 모르게 칼같이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되지만 주인장의 고압적인 태도가 어째 하나도 밉지가 않다. 가게 이름 아오 오니기리’ ‘파란 도깨비온 동네 어린이들이 밥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지루해하거나 심심해할 무렵, ‘옛다, 내 얼굴이나 그리고 있어라종이와 필기기구를 건네주는 것이다. 그가 인상 쓰고 말을 하면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충성을 다해 그릴밖에!

처음에 주인장을 보고 조금 무서워했던 딸아이도 그림을 그리느라 그 얼굴을 계속 유심히 쳐다보다 보니 저절로 편안해진 것 같다. 여기 온 어린이들은 모두 도깨비에게 흘리듯이 매료되는지도 모르겠다. 일견 무뚝뚝하고 괴팍해 보이는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가 원고 작업하러 가는 상수동 단골 카페의 남자 사장님도 무뚝뚝하고 잘 웃지도 않고, 웬만한 사람은 그 기에 눌릴 만큼 존재감이 강하다. 커피 값을 계산하고 집에 가려고 하면 불쑥 토마토나 옥수수나 감자 같은 것 두세 개를 갈색 종이 봉지에 넣어 태연하게 내민다. “너무 많으니까 좀 가져가세요.” 선물로 생색내기는커녕 처치 곤란 물품을 처리해버리려는 듯한 태도를 연기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코끝이 찡하여 책읽기 잠시) 손님들이 불평하거나 말거나 그는 늘 하던 대로 자신의 감독 의자에 편하게 앉아 읽고 있던 두꺼운 소설책으로 돌아갔다. 그런 대단하고 무시무시한 카페 사장님이지만 정작 내가 심통 난 어린아이처럼 언짢고 울적한 기분을 얼굴에 다 드러내며 원고 작업을 하고 있으면 역시 대수롭지 않게 평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노래들을 슬그머니 틀어준다. 그러고 나선 으레 또 모른 척.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묵언으로 응원해 주는 그 누군가 있다면, 참 살맛나지 아니한가!)

 

풍경을 위해서라면 - 교토 거리의 간판. ‘맥도날드교토에서만큼은 갈색 바탕에 채도가 낮은 노란색 로고, 그리고 흰색 바탕에 갈색 글자다. 교토에서는 검정색과 하얀색으로 절제되어 표현한다. 전통 거리의 정체성에 맞춰 ‘STARBUCKS'가 아닌 스타벅스

교토의 경관 조례법,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 색깔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바랜 듯 이름의 글자 색상은 흰색, 검정색, 갈색 외에는 접수가 되지 않고 특히 선정적인 느낌의 빨간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교토의 특정 거리는 아무리 높아도 대략 5층 건물을 넘어설 수는 없다. 전통 거리의 은은하고 서정적인 풍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업의 간판 색깔은 얼마든지 바꾸겠다는 암묵적인 다짐.

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화류가에서는 아름답지 못한 전봇대를 땅 밑으로 넣어 전선 없는 거리로 만들어 놓고야마는 의지.

나 혼자 튀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가모강과 사람들 - “너의 글은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는 웅장한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물결을 머금은 강 같아. 겉보기엔 잔잔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보기보다 훨씬 깊은.”

규모가 작아도, 겉보기에는 색이 연해도, 테두리가 고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가가면 사색을 하게 만드는 존재.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폭이 좁아 중간 중간에 징검다리를 심어놓은 가모 강. 서울의 한강처럼 크지도 않고, 파리의 센 강처럼 밋밋하지도 않다.

정처 없이 교토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가모 강 근처에 가 있곤 한다.

어쩌면 가모 강은 깊게 내쉬는 한숨이기도 하고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는 담배연기이기도 하다. 긴장을 풀고 잠시 나를 내려놓는다는 뜻 마음이 내키면 바로 시내 번화가에서 가모강변으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드넓은 하늘 아래 앉아서 여백을 음미하거나, 천천히 걷거나, 덩그러니 눕거나,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거나, 캔 커피를 마신다.(우선 5, 일주일, 보름, 한 달, 그 다음 집을 렌탈하여 1년 사계절을 살아보고 싶다. 강의 안 하고 바하 안 보고 아버님 안 계시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다.)

느릿느릿 걷다 보면 구석구석 빈틈으로 사유가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교토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고 싶다면 가모 강으로 가면 된다.

가모 강 강기슭에 같은 간격(2미터)을 두고 주욱 않아 있는 커플들의 풍경이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

 

카페 소사이어티 - 카페나 다방은 생존이 아니다. 하지만 무용한 것들이 삶에 윤기를 준다. 교토 사람들은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해왔다. 카페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제아무리 호화롭게 실내장식을 한들 카페를 이루는 핵심 요소는 바로 거기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그것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좋은 느낌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카페는 매력을 풍긴다.

출신도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 한 공간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 조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약간의 거리감을 가지고 모두 조심스럽게 예의를 지킨다.

교토의 카페만큼은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수용한다. 카페만큼은 손님을 고르지 않고, 귀천을 따지지 않으며, 처음 온 손님이든 단골이든, 모든 만남을 그때그때 소중히 하고자 한다.

, 오셨어요?” 그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때로는 동석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단골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카페에 모였다가 흩어지며 하루의 일부를 공유한다.

카페 안은 만석이고 밖에는 손님들 대여섯 명이 대기 중이이어도 분위기는 흔들림 없이 차분하고 손님들과 직원들도 전혀 쫓기는 기색이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만큼 카페에서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다 갈 자유가 있다.

익명의 사람들이 제 발로 모여들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일. 이는 사람들의 삶에 여백과 에너지를 동시에 주는 역할을 한다.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덜고, 머릿속을 비워내고, 혹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로운 힘을 얻어 거는 것. 이것이 카페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규칙적으로 카페에 나가 원고 작업을 하는 나로서도 이제는 카페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카페 순례 헤밍웨이(우리 집 캡틴 배 몰고 나간 사이, 마린시티의 카페에서 글 퇴고하는 여인은 또 하나의 풍경)

 

교토의 빵 사랑 - 체인점 빵집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개인이 운영하는 프랑스 불랑제리풍 빵집이다.(교토와 파리는 자매 도시 결연을 맺었다) 교토의 마데가와거리를 걷다보면 이런 빵집들이 장관을 이룬다.

교토 하면 일본 전통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깔끔한 일본 음식만 먹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교토 사람들은 라멘과 교자(일본식 군만두), 서양에서 온 을 몹시도 사랑한다. 휴일이면 집 근처 커피 점에 모닝 세트(토스트와 계란, 커피로 구성된 간단한 조식메뉴)를 먹으러 온 가족이 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기도 하다. (아이파크 아티제 모습)

 

교토의 아침 식사라고 하면, 뜨거운 녹차에 흰밥을 만 것에 절임 채소 반찬을 곁들여 먹는 정도. 여유 있게 아침밥을 차리거나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그릇을 사용해서 끼니를 때우는 일. ‘밥은 저녁에나 먹으면 되지 뭐일하면서 한 손으로 빨리 먹을 수 있는 빵을 점심으로 선호. 교토 사람들은 생활의 편의에 따라 빵을 먹게 되었고,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되었다. 빵에 대한 애정, 합리주의. 교토 사람들의 식생활은 검소하고 소탈하다. ‘오반자이검약정신과 선대의 지혜, 생활의 실용주의와 합리주의가 교토의 식문화.

 

물건에도 철학이 있다 - 일부러 찾아가기 불편한 장소, 손님들에게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와줄 거리고 믿었기 때문 (류창희 수필산책 사이트처럼) 정직한 가게에서 정직한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나도 정직한 글을 써야지, 하는 초심이 돌아온다.

 

좋아하는 것이 이끄는 대로 - ‘사우나노 우메유’(사우나 매화탕이라는 뜻) 공중목욕탕(센토) 같이 대중목욕탕에 다닐 수 있는 사이란 얼마나 친밀한 사이일까.

 

한 번쯤은 다와라야 료칸에서 - 300년 역사. 교토에서 다와라야 료칸에 묵는 것은 하나의 명징한 로망. 객실 하나하나에 일본 고유의 문화가 고도로 농축되어 있다. 자연과 빛, 예술, 온화함과 정숙함이 어우러져 있고 객실에서는 유리 창문을 통해 청초한 일본 정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분명 나머지 열일곱 개의 객실도 손님들로 곽 차 있을 텐데 작은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 고요함은 객실 배치나 복도의 동선, 가구 배치나 조명 상태 등, 양질의 고독함은 가장 섬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상태로 세심하게 계산되어 연출된다. 이 고급스러운 감각은, 혼자 있을 때의 고독보다 어쩌면 더 고독다울지도 모르겠다. 다와라야의 손님은 종업원들에게 그 마음읽히게되어 있다. 단 열여덟 개 객실의 손님들을 향한 예민한 촉. 손님이 그 순간 속으로 원하는 것을 읽어내고 그것을 신속히 제공하는 일에 유능하니 과연 명문 로칸답다.

오늘 누리기 위해 내일을 희생하기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40(나는 60)에 이르니, 때로는 합리적인 소비같은 것을 깐깐하게 따지지 않고 그저 순순히 마음이 끌리는 것을 경험하고 싶다. (그래, 언제 한 번 해보나. 정신 맑게 육체 멀쩡하게 언제까지 살거라고.) 충동적인 일탈들이야말로 우리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비일상의 희열이 아닐까.

 

우리가 몰랐던 화류가의 인생 - 교토의 상징, ‘게이코’ ‘게이샤수련한지 1년이 채 안 되는 신입마이코들은 붉은 립스틱을 아랫입술에만 칠한다. 얼굴에 흰 분을 바르는 관습은,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촛불 아래서도 그녀들의 미모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타 지역으로 출장을 가기 위해 신칸센 기차나 비행기로 이동할 때도 졸거나 잠이 들어서는 곤란하다. 마이코가 어린 여성 특유의 화사함이나 아리따움으로 승부했다면, 게이코의 위치에 오르는 순간부터 성숙하고 우아한 어른 여자’. 게이코의 기모노는 심플한 디자인에 무채색 계열로 차분해지고 머리 장식도 은은하고 단순한 것을 쓴다. (그렇다 해도 20키로 육박하는 기모노에 2키로 가발) 매혹정인 자태와 품성을 가지고 춤과 노래의 재능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절제와 규율, 철저한 자기 통제를 거쳐야만 했고,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비로소 접대는 예술의 경지를 올라갈 수 있다. 그녀들은 오늘도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신비롭고 고고한 여성성의 전통을, 천 년 고도 교토를 배경으로 오롯이 지켜나간다.

 

처음 오신 분은 정중히 거절합니다 게이코와 마이코가 손님을 접대하는 오차야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있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라도, 돈이 많은 대기업 사장님이라도, 누구나 얼굴을 알아보는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소개 없이는 단호하게 출입금지다. 교토의 텃새문화. 까탈스럽거나 도도하다고 보기보다는 가게를 최상의 상태로 보전하기 위한 장치. 오랜 인연을 맺어온 손님을 배웅할 때는 다녀오십시오다시 찾아도 마치 오늘 아침 배웅한 것처럼 이제 오셨어요라며 친근하게 맞이한다. 우리 가게의 물건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손님, 우리 물건의 가치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은 손님, 신원을 알 수 없는 손님에게는 자신들의 물건을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세상에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와 돈에 지지않는 사람의 방식이 존재함을 알려주는 결기 있는 태도.

 

교토식 소통 법 - 여느 교토 가정집의 풍경. 어느덧 식사 때가 되어간다. 손님은 눈치껏 현관으로 향한다. “어머, 벌써 가시려고요? 오차쓰케라도 한 그릇 드시고 가시지 그러세요.” ‘슬슬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유~ 그런 섭섭한 말씀 마시고믿어서는 안 된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얼른 퇴청해주는 것이 양식 있는 교토인의 자세다. 인근 오사카 사람들은 식사 때가 되어도 밥을 주지 않고 돌려보내는 교토의 이런 문화를 납득하지 못한다.

교토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내전. 철저한 사전 계획으로 식생활을 조율해나갔고 손님 방문으로 가족들이 굶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교토의 소통 법은 직설 금지교토 사람은 말을 모호하게 하고 알아듣기 어렵게 우회적으로 표현. 과거 몇 번이고 전투의 현장. 적과 아군이 구별조차 잘 되지 않는 시대를 하도 많이 겪다 보니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호한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고유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속을 드러내지 않는 간접 화법. ‘교토씩 언어는 신비하다는 찬사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는 두 얼굴의 화법.

식당주인이 카운터에서 멋진 시계를 차셨네요.” “저희 집 그릇에 흠집이 날지 모르니 식사할 때는 시계를 좀 빼주세요휴대전화소리,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전원 좀 꺼 주세요. 메뉴를 보며 추천해주실 만한 게 있나요?” “글쎄요촌스럽게 굴지 마라. 다 맛있다.

교토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제안했을 때, “고맙습니다, 그것 참 좋군요.”50프로 퇴자. “생각 좀 해볼게요.” 100프로 거절. 대놓고 싫다고 하면 상처를 입히니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 자신을 낮추고 몇 번을 꼬아서 말꼬리를 흘리듯이 말한다. 나도 상처받고 싶지 않지만 상대의 마음도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 진정한 호사 - 세월은 흘러 진짜 명품 브랜드 가방을 제대로 가져볼 새도 없이 에코 백만을 들고 다니게 되었다. 이런 모습이 가장 나다운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고급스럽거나 비싸 보이는 무언가로 나를 설명하거나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교토는 명품 브랜드 매장의 거세가 현저히 약하다. 교토 사람들은 소비에 있어 검소하고 냉철하다. ‘내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사지 않는다. 교토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그들은 허세를 경계한다. ‘루이 비통 브랜드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부끄러움에 더 예민하다. 한편, 교토 사람들은 교토라는 단어 자체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음을 내심 알고 있다. 교토에서는 무엇이 진짜일까? 학벌이나 회사의 명함, 얼마나 부자이고 많은 걸 가졌는지를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함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레테르는 피상적인 상징에 불과하다. 진짜로 실력이 있다면 품위가 생기고, 품위가 있으면 성급하게 주장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랑은 금물이다. 대놓고 하는 자랑만큼 창피하고 촌스러운 것은 없다. (반성, 프로필 쓸 때마다 근사하게 쓰려고 노력했었다)

*아무리 명예로운 성취라도 자기 입으로는 먼저 밝히지 않는다. 남에게 칭찬을 받으면 겸손하게 부정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이기도 하다. 교토 사람들은 돈보다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들은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만족, 무엇이 나중에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지, 그것이 진짜인생. 진정한 호사란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그 삶의 방식을 정할 자유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일 - ‘신신도 교토대학 북문 앞 지점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카페 안에는 손님 세 명이 각각 혼자 앉아 있었다. 세 사람은 이따금 동작을 멈추고 천장 꼭대기나 창밖 풍경에 눈길을 주곤 했다. 비현실적인 정적이 실내에 감돌았다. 이 낯선 감각이 뭘까. , 이곳에선 음악을 틀지 않고 있다. 음악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손님들의 생각과 감각에 자극을 주고 있다. 이 공간에 모여들며 두루 섞어 앉아 따로 또 같이 커피와 고요를 음미한다. 이토록 침착한 분위기는 이곳 주인과 종업원들의 사려 깊은 서비스 덕분. 늘 편안한 미소로 자신의 할 일을 하되 손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손님이 달랑 커피 한 잔만 시켜놓고 오랜 시간 눌어붙어 있어도 그것이 카페의 사명이라고 여김.

교토의 아침은 이노다의 커피 향기에서 시작한다.’ 커피문화. 원래 멋있었던 물건들은 다소 낡더라도 여전히 멋있다.(사람도)

 

진화하는 공동체 -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토에서는 어디 새 가게가 생기면 한 다리 건너 지인이 차린 경우가 많다. 서로 알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돕는다. 교토는 손님을 빼앗아 오려고 경쟁하기는커녕 서로 손님을 보내주려고 한다. 동종 업계 사람들끼리 느슨하게 연대하여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습은 이상적인 공동체의 구현이다. 교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자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기주의를 조장하지는 않는다.

 

자전거와 청춘 -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변화하는 계절을 가장 먼저 예민하게 감지한다. 쌩쌩 달리다 보면 바람의 온도와 내음으로 그 변화를 느낀다.

 

차분하고 강인한 존재 - 교토는 아마도 여자일 것이다. 섬세함과 복잡함, 교토에서는 실제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돋보이는 존재다. 언뜻 봐서는 남자보다 약해 보이지만 유연해도 절대 부러지는 일이 없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심지 하나만은 여자가 굳세다. 교토의 여자들은 자기 의지로 씩씩하게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들의 남편들은 감히 아내를 향해 대체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의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울 수가 없다.

교토 여자들에겐 온화한 강인함이 있다. 눈앞의 이익을 좇거나 일시적인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신중해지고 인내하는 것을 선택한다. 내적으로도 성숙하지만 행동거지와 말투, 옷매무새 등 외적으로도 못지않게 신경을 쓴다. * 젊고 예쁜 외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기품 있는 몸의 움직일 것이다. 서 있는 자세나 걷는 모습, 인사할 때 손과 팔의 종작 등,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가운데 세련미가 풍겨 나온다. * 몸동작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화법조차도 우아하다. 평소에도 겸손하고 사려 깊은 언어를 구사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체적인 색상과 패턴의 균형부터 양산과 핸드백 등 액세서리 소품의 조화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걸친 것이 없다. 그 고호한 모습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루하루 쌓아 올린 자기 관리의 내공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교토 출신 여자라는 타이틀은 하나의 훈장이다. 예컨대 여성에게 출신지를 물어 봤을 때, ‘교토에요사람들은 오우~, 하고 감탄하면서 그녀를 보는 눈이 확 달라질 것이다. 고고하고 강인하면서도 혼자 견디는 법을 체득한 여자 주인공들. 그녀들은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선망을 한 몸에 받지만, 동시에 독립과 자유를 갈구하기에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에 저항한다. (바로, 나다.) ‘그리고 그녀는 교토의 여자였다라고 마무리를 해주면, 상황이 정리. (그녀는, 교토의 여자였다. , 이대 나온 여자야!)

 

교토 남자 - 교토 사람들이 오사카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영국인이 마음속으로 미국인을 경멸하는 것과 비슷하다. 교토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이 시끄럽고 단순 무식하며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반면 오사카 사람들은 교토 사람들이 까탈스럽고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고 불만이다. 교토와 오사카는 예로부터 앙숙지간이다. 오사카 사람들은 교토를 진짜 실력도 없으면서 의뭉스럽고 허세만 가득한 도시라고 공격한다.

전 오사카 사람이 아닙니다.” “전 멀더라도 교토에서 오사카로 출근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오사카와 교토가 같은 간사이 지방으로 묶여도 교토부심으로 선을 긋는다.

교토 출신들은 한마디로 교토를 너무도 사랑한다. 평생 교토에 살고 싶다고 교토는 자극적인 변화무쌍함과는 거리가 멀다.

 

숙소의 주변 동네 - 여행지에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곳은 숙소다. 숙소주변을 무작정 걸어보며 염탐하는 일은 그 숙소를 나의 집으로 삼으려는 행위다.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둘러보며 아침저녁으로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숙소 주변에 영역을 표시하다 보면, 어느새 그 풍경에 익숙해지고 정이 들어버린다. (네팔 포카라 다알리아 호텔 주변 일주일간 골목골목 동서남북 누볐더니, 골목도 카페도 풍경도 가게도 사람도 기질도삶도 그래서 또 가서 그곳의 주민이 되고 싶고. 인도 바라나시 숙소주변도 고향처럼 찾아가고 싶다.)

내가 선택한 숙소. 아무래도 좋다. 깔끔하고 세련된 장소들을 발견하면 감각이 자극받아 즐겁고, 개성 넘치고 번잡스러운 유흥가가 주변에 있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불량청소년이 된 듯 한 스릴이 있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소란스러운 동네일 수도 있고, 편의점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동네 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의 호젓함과 우수를. 있으면 있는 대로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걸으면 된다. 일종의 가상현실.

책방에 손님이 없어, 할아버지 혼자 돋보기를 끼고 조용히 혼자 책을 읽으시려는 찰나에, 잠시 방해하고 내가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 되어드리고 싶다. 할아버지 모습이 좋다. (내가 보는 작가 모습이 더 좋다.)

 

잊지 못할 배웅 - 어제오늘 친근하고 활달하게 말을 붙이던 치요 아주머니는 적어도 한 달은 이곳에서 지내다 가는 사람들을 아쉽게 보내는 것처럼 인사를 했다. 누가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은 기운이 등 뒤로 느껴져 휙 돌려보니 아까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때와 똑같은 자세로 서서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절대신 서양식으로 캐주얼하게 손을 흔들었다. 자신이 접대한 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고 또 한다는 교토 오모테나시(대접)’ 이야기는 진짜였다. 단 한 번의 만남일지라도 (일기일회) 손님 역시도 그 너른 정성에 기꺼이 응답해야만 한다. 모퉁이를 돌기 전, 반드시 자신이 신세를 진 가게 쪽을 뒤돌아봐야한다. 겉으로는 조금 차가워 보일지 몰라도 실은 은근한 속정으로 여운을 남겨주기에 교토와 교토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 고요한 방, 고요한 멋 입구에 화장실, 싱크대, 창가에 작은 소파, 침대 가까이에 나무로 된 원형 탁자, 구석에 냉장고. 방 안의 모든 것이 지극히 소박하고 간단했지만 결코 밋밋하지는 않았다. -요코 오가와 완벽한 병실(원룸에 필요한 것, 완벽한 결국 인생은 관 하나로 끝난다!)

 

* 일본은 화려한 색깔, 반짝임, 과한 장식을 철저히 배제. 심미적인 것, 자연소재, 전통 종이 창호지 문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 채도가 낮은 색채, 그늘진 구석 같은 소박함을 담은 집이 쾌적하고 사람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맛이 담백할수록 세련된 요리 (재료를 그대로 먹거나 그대로 익힌 것)

안주, 접시 위에 그림 작은 접시에 꽃 모양으로 자른 오이, 삶은 메추라기 알 반쪽, 장밋빛 소스, 미지근한 사케 한잔, 옻칠한 젓가락과 젓가락 받침대 준비 생활이 예술이다. (우리 어머니는 늘 요리가 접시의 꽃무늬를 가리는 것을 지적하셨음)

 

*흔적 없는 향취 향수는 기모노에 은은하게 배게 한다. 향을 직접 발산하는 것은 무례한 일.

 

* 몸짓의 미학 행동 하나하나가 섬세함 그 자체. 새끼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으로 아세톤이 묻는 솜 집기, 두 손바닥에 세안용 비누를 올려놓고 거품 내기, 위에서부터 아래로 머리 빗기, 반대쪽 손으로 방향 가리키기 등 빈틈없는 몸짓. 소소하고 세심한 행동이 일상생활을 아름답고 세련되게 만든다.

 

* 일상생활에서 배어나오는 꼼꼼함 차를 준비하는 일, 다기를 닦는 일, 다기를 엎어 놓고 그 위에 뚜껑을 얹어 말리는 일. 삶의 예술로 알뜰함과 우아함. ‘세심하다라는 표현은 작고 단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쓰레기를 잘 접어 평평하게 만들어 깔끔하게 봉투 속에 눌러 담는다. 교토에서는 집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가 작을수록 그 집안의 평판이 좋아진다. (교토 오사카 고베 등을 가고 싶다.)

 

세심한 정리가 가져다주는 비밀스러운 기쁨 -

물건마다 제자리가 있고, 그 자리마다 맞는 물건이 있다 - 프랑스 속담 (세상에 내가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엽서 한 장 방 멋 참조) 설거지한 그릇을 말리고 정리하기, 매일 가스레인지를 청소하고 작은 행주를 빨기.

공공장소에서는 큰 꽃으로 장식, 가정에서는 작은 들꽃으로 장식. 아주 작은 것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찬양. 이 게바아(일본식 꽃꽂이)는 최소한의 것으로 아름다움을 내는 기술. 데이지 한 송이 잎사귀 두 개, 이 빠진 잔 하나. 생활공간을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는 저녁 의식-

신은 작은 것 속에 깃들어 있다.- 귀스타브 폴로베르

일본 여성은 매일 저녁 주방을 청소하고, 목욕을 하고, 가운을 입는다. 그리고 무사히 마친 일과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적는다. 일상을 은밀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습관이 되었으면 하겠지만, 지금 일부러 이렇게는 안하고 싶다. 하겠다는 자체가 또 다른 숙제)

여성의 미덕? 인내심. 절대로 징징대거나 화를 내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름다움의 완성. 또한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미소를 짓는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고 배웠기 때문. 불행함을 한껏 내보인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없고, 오히려 다음 만남을 피한다. (이런 것 지키고 싶다.)

 

진짜 부자는 부를 과시하지 않는다 - (프랑스나 독일은 국기조차 내걸지 않는다. 미국은 금목걸이 금팔찌 면 티셔츠 가슴에도 커다란 로고 집집이 깃발, 손짓 발짓 하는 행동도 거하게 으스댐이 몸에 배임. 슬며시는 없고 와락 OK) 마음이 빈곤한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다.

 

절제미가 있는 옷 - 눈에 확 띄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절제만이 신비함을 준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교토에서 회색은 겸손함을 상징. 일본인은 우아함이 그 사람의 부가 아니라 기품에서 나온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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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 조용히 스며들어

처음은 34, 그리고 한 달,

한 계절이 좋으면 사계절을 살아보고 싶다.

일본 고베출신인 시어머니께서는 평생 교토 여인처럼 사셨다.

따님이 없으셔 누군가 그 소박하고 조촐한 아름다움을 이어받지 못했다.

며느리들, 아니 한국여자들, 특히 부산여자들의 소란과 와락 반가워하는

정겨운 민낯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그 분이 사셨던 그 모습이 귀한 줄 뒤늦게 절절 가늠해 보며

다 내려놓으면 잠시 교토에 살아보고 싶다.

교토 전통가옥에서 순수한 교토 어른여자 사람의 생활을 보며 몸소 교토문화를 경험하고 싶다.

민가에서 민박하고 싶다, 생의 마지막 화두처럼 간절했다.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어머님의 자태가 그리워서다

참으로 고우셨다, 닮고 싶은 분이었다.



그 꿈을 가지고, 지난 봄방학때

세 부부가 2박3일 자유여행을 갔다.

가모강가의 료칸으로.

가모 강가를 걸으며 관광을 하며 식당을 찾아가며 차를 마시며

물론, 위의 밑줄친 내용을 프린트해가서 나눠줬다.(오지랖)

그리고 깨달았다.

어디까지나 교토는 '타인의 취향'이라는 것을!

타인의 취향은 짝사랑이다.

 

 

 

 

 

이것 좋아 저것 싫어

사노요코 /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싫어, 싫어, 하며 기운차게 살아오긴 했지만, 무언가 잊어버린 기분이 든다.

 

공짜로 보는 영화’ - 꿈속에서도 너무 기뻐서 마치 꿈같다고 생각하며 그렇고 그런 분위기가 되기 일보직전이다라고 엉큼한 마음을 품었는데, 그 일보직전인 순간에 당신, 어린이집 시간 괜찮아?”(나의 평일 일상, CCTV에 찍힌줄 알았다) 저는 흠칫 놀라며 눈을 떴습니다. 그 무렵 저는 어린이집 마중 시간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있었습니다.(어미가 아닌 할미인 나도 그렇다. 60넘어 손주 스케줄에 시간 맞추는 여자를 미친년시리즈에서 보았다. 그래도 아이 본 공은 아이를 잘못 본 만 돌아온다고 어른들이 말했다.)

 

다음 날부터 베개 아래에 제임스 딘이 실린 잡지를 깔아두었습니다. 어떤 악몽이라도 꾸지 않는 것보다 꾸는 편이 몸에 좋습니다. 꿈과 현실이 동시 상영되어야 건강한 거겠지요. 살아 있기 때문에 꿈도 꿀 수 있는 거.

 

사사삭 - 인간에게 해가 된다 해서 일방적으로 말살해도 될까요. 나비는 사랑하고 바퀴벌레는 미워해도 될까요. 세상 남자들은 커다란 물고기를 부둥켜안고 씽긋 웃는 헤밍웨이를 동경하지 않나요. 제가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커다란 바퀴벌레를 잡았을 때의 기쁨과 같지 않나요. 역시 인간으로 죽는 것이 가장 길고도 괴로운 일생 같습니다. 백년이나 사는 동물이 또 있을까요.

 

말의 눈은 - 제겐 비밀이 있습니다. 몹시 부끄러운 일입니다. 승마 수업에 가서 말을 탔답니다.(요트를 탄다하면, 무조건 사치라고. 외제차를 타면 무조건 사치라고.) 벨벳 모자를 쓰고 승마 바지와 장화를 신고, 길고 날씬한 다리를 가진 말에 타는 건 부끄럽습니다. 자신의 출신을 배신한 것 같고 사기를 쳐서 다른 계급으로 몰래 들어간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약간의 돈으로 죄다 손에 들어옵니다. 그게 부끄럽습니다. 승마장은 절경 속에 있습니다. 지금 말을 탈 수 있다 해서 뭔가, 전쟁에 나갈 것도 아니고 쇼핑하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경마 기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귀족 남자를 홀릴 젊음도 미모도 없다. 그런데도 이만큼 밑천을 들였으니 장화 앞코만큼은 능숙해지고 싶다. 라는 쩨쩨한 마음도 듭니다.

 

말은 어찌나 맑고 투명한 눈을 하고 있는지요. 날 때부터 말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인, 한없이 고요하고 슬픈 눈입니다. 말처럼 깊은 슬픔이 담긴 인간의 눈은 본 적 없습니다.

 

성모마리아와 아미타불 - 개의 세계는 남녀교제가 꽤나 자유로운 모양인지. 노리코와 모모코가 함께 산 이후 가끔 모모코를 만나면 정말로 예의상 꼬리 흔드는 것도 아깝다는 듯이 홱 떠나버렸습니다. 모모코가 병에 걸린 뒤 비탄에 잠긴 노리코는 식욕이 없어져 모모코에게 채소 죽을 만들어주고 소등심을 먹이고 집 안에서 담요를 덮어주었지만, 그래도 모모코는 오줌을 싸러 갈 때 힘없는 허리를 질질 끌고 신음을 내며 마당으로 나가 한가운데에서 힘이 빠져 늘어졌고, 그러면 노리코는 자신의 코트를 벗고 모모코와 마찬가지로 땅바닥에 가로누워 울면서 모모코를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두운 목소리로 오늘 새벽에오늘 밤 쓰야(通夜) 유족이나 조문객이 고인의 곁에서 밤을 새우는 것(임종)할거야

 

장례식 만두가 엄청나게 쌓여있고 조림이라든지 유부초밥도 수북했습니다. 모모코는 담요를 깐 현관 바닥에 안치되었습니다. 모모코는 머리에 복숭아꽃을 둥글게 엮어 만든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모모코는 가슴에 작은 성모마리아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머리 옆에는 조그만 성서도 있었습니다. 그 머리 옆 바닥에는 본적도 없는 두껍고 긴 선향(높이 30센티미터, 8밀리미터 정도)이 연기를 가늘게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선향에는 아미타불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나무묘호렌쿄라고 梵字로 쓰여 있습니다. 그때 옆집 남편이 공양할게요.”라며, 반야심경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혼혈아 모모코는 온갖 신과 부처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복숭아꽃 관을 쓰고.

 

*** 꾸준히, 꾸준히

저는 소심한 편인지 택시를 탔을 때 그 좁은 공간이 침묵으로 가득하면, 그만 견딜 수 없어져서 오늘은 춥네요.(스몰토크)” 말을 해버린다. 운전사는 줄곧 히터를 튼 차 안에 있었으니 그래요?” 그러면 요즘 경기가 어때요?”라며 아저씨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언젠가 올라타자마자 운전사가 조용히!”라고 고함쳤다. 아직 목적지를 알리지 않았는데, 차는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좌석에서 다 틀렸어, 젠장, 젠장!” 라디오가 다급히 경마를 중계하고 있었다. 어느 날, 또 다른 운전사에게 경기는 어때요?” 물었다. "있죠, 손님, 경기가 좋든 나쁘든 인간은 꾸준히,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야 해요. 그게 인생이랍니다. 꾸준히 일만 하면 결코 틀리는 법이 없어요. 착실함에 질리지 말고 꾸준히, 꾸준히.

 

** 드르륵, 드르륵

당신은 어느 무덤에 들어가나요? 장소를 고르는데 여긴 아침 해네. 하지만 난 저녁 해가 예쁘게 보이는 저기가 좋아죽고 나면 어차피 모를 텐데. 하지만 고르는 건 아직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그때 , 죽음이란 살아 있을 때의 일이구나. 너도 안 살래?” 저는 죽은 뒤 친구가 곁에 있으면 꽤 외롭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몹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죽은 뒤 외롭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살아 있는 저입니다. 그곳은 터무니없이 경치가 좋았는데, 벚꽃 피는 계절이면 꽃잎이 묘석으로 떨어진다고 제 어깨에 꽃잎이 떨어져 내리는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죽으면 볕 따위 아무짝에 쓸모없는데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요코씨, 뼈는 엄청 딱딱해. 막자사발 따위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산속에서 읍내까지 다시 나가서 큰 절구랑 나무공이를 사왔다니까. 다 같이 드르륵드르륵 갈았는데, 마늘 갈 때랑은 비교가 완 돼. 다섯 시간 정도 걸렸어. 건장한 남자가 땀투성이가 되어서 말이야, 게다가 바람이 불어와 뼛가루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려서, 다들 얼굴이 새하얘졌고 콧구멍만 동그랗고 까맣게 보이는 거야. 너무 이상했는데 아무도 안 웃더라고.”

, 나도 갈걸.”

그리고 말이지, 절구에서 튀어나오는 뼈도 있었는데 하면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먹더라고. 그때 생각했어. 내가 죽으면 좌우간 평범하게, 평범하게 장례를 치르는 게 남들이 가장 납득할 만한 길이라고. 죽는다는 건 자신의 문제가 아냐. 남겨진 인간의 문제거든. 남겨진 인간에게 맡겨야 해.”

 

“‘내 뼈는 아드리아 해에 뿌려줘이탈리아인지 어딘지 까지 비행기 타고 가서, 아드리아 해까지는 헬리콥터 빌려서 가는 거야? 배 타는 거야? 유언을 들으면 실행을 안 할 수야 없는 노릇이잖아. 무덤이 없으니 제사도 안 지내겠지. 내 생각에 죽는다는 건 살아 있는 인간이 그 녀석 죽었구나, 라는 사실을 차츰차츰 받아들이는 일인 것 같아.” 저는 왠지 그때, 그 남자가 죽은 것이 기대되었습니다. 그 김에 저의 장례식도 기대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틈만 나면 쪼그려 앉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앉을 수도 있고 책상다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 목욕탕세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벌거벗은 일본 여자의 자세가 매우 요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쪼그려 앉아 똥을 싸는 민족은 쪼그려 앉을 수 있습니다. 문화의 차이는 신체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동남아시아도 점점 근대화되어 쪼그려 앉기가 사라질까요. (이제는 식당도 변하고 있다. 방석집보다는 의자식이다. 어른들도 관절염 때문에 의자 식을 선호하신다. 화장실도 변했다)

 

삼각형 양갱 -

구두쇠는 물건이나 돈에 쩨쩨한 게 아니라 근성 자체가 쩨쩨해서 남을 위해 마음을 쓰지 않고 정도 깊지 않다고 그 친구는 말합니다. 시각장애인이어서 전기료가 들지 않는다고 하며 텔레비전도 안 봅니다. 돈 따위 죄다 써버리자. 초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구두쇠이야기를 한 다음 우리는 낭비 쪽으로 우르르 밀려갑니다.

 

3대 위는 원숭이 -

다른 친구 하나가 사실 우리 조상은 천황가에 토지를 빌려줬던 oo신사야라고 했는데 그렇다 쳐도 너는 가난뱅이잖아라며 다들 웃었다. 일본은 전철을 타면 모두 같은 신분이며, 계급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훌륭.

 

땡땡 중얼중얼 -

어느 날 다다시는 기운 없이 논 옆의 돌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돌아올 때 발을 몹시 질질 끌었고, 금방 쪼그려 앉고 싶어 해서 저는 다다시의 손을 세차게 잡아챘습니다. 그러다 다다음 날 죽어버렸습니다. 다다시는 아마 쌀밥을 한 톨도 먹어보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5월의 논에서 남동생 손을 세차게 잡아챈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줄줄 났지만 다음 날에는 태연해졌습니다. 그 일을 떠올릴 때만 줄줄 울었습니다. 요전 날 밤 다시 떠올리고 줄줄 울었고, 다음 날 아침에도 또 떠올리며 줄줄 울었습니다. 저는 지금 신경이 이상해서 다음 날 태연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추석 전,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으며 추석만 지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 같아 책마다 글마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2018 설이 어제였는데 한심하고 유치한 대소가 동서간의 관계는 매듭이 더 크고 단단해졌다. 고를 풀지 않고 잘라버릴 것이다. 나는 싸우지 않고 이길 것이다.) 다다시의 위패는 엄마 집에 있지만 엄마는 벌써 몇 년이나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돌며 남자애를 넷이나 낳았는데도 , 남자애는 낳은 것 없어라고 말씀하시니, 다다시를 아는 가족은 이제 저밖에 없습니다.

 

*** 신의 손 -

제 친구 중 꽃꽂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풍으로 쓰러진 도라지꽃 같은 건 어머나하며 두 세 송이 꺾어서 검게 칠한 낡은 나무통에 쓱 꽂기만 하는데도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언젠가 그녀가 냄비를 만지기만 했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맛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녀는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냄비 같은 건 만지니 않아도 되었습니다. 마법의 손은 신의 실수가 아닐까요. 저 자신의 손을 지그시 곰곰이 바라보고 맙니다.

 

** 통통통 -

저는 밭에 들어가서 훔치기는 싫었습니다. 하수인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밭에 도착하자 나는 여기서 망을 볼게라며 비겁하게 굴었습니다. 그 순간 일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찰떡 호흡에 거의 황홀해졌습니다. 그때 이건 악행이기 때문에 호흡이 맞는 것이며, 선행으로는 이와 같은 스릴과 성취와 충실감은 맛보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악행은 어쩌면 이다지도 쾌락적일까요. 이 젊은 남자와 영원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매일 도둑질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 잘 알았지만, 그 남자는 저와 도둑 회사를 설립할 마음은 없는 모양인지 이제는 집에 코빼기도 내밀지 않게 된 지 오래입니다.

 

* 지리멘의 추억 -

아버지는 저의 독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소매에 멋을 부리려고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지시했는데, 고함까지 질렀으니 어지간히 열심이었던 거겠지요. 저는 하늘하늘 걷고 요상하게 눈을 치뜨기도 했습니다. 저를 금방 들이받곤 했던 오빠도 특별한 것을 보는 양, 먼발치에서 매우 소중하다는 듯 친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히사에의 기모노는 진짜 지리멘(바탕이 오글쪼글한 비단)이었고 저의 기모노는 인견이었습니다. 만져보기 전부터 저게 진짜라고 알아차린 저는 얼마나 가엾고도 영리한 아이였는지요.

패전 후 혼란으로 인해 저, 그리고 일본 전체는 기모노나 지리멘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운명으로 살았습니다. 일본 문화의 역사는 고도의 질을 해왔으며 우리는 그것을 실현해나간 훌륭한 기술과 감각을 지닌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토의 기온에 있는 작은 숙소, 기온의 풍습 상 어처구니없이 복잡한 수속이 필요했는데, 그에 대해 쓰면 이 책의 절반 분량이 되어버립니다.

얼핏 보기에도 예전에는 이 근처에서 요염한 장사를 하셨을 것이 틀림없는 분이, 관능적이면서도 빈틈없는 기모노 차림으로 맞아주셨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손님은 한 명밖에 안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2층의 방 하나로 안내 받았을 때,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연두색 그러데이션 바탕에 주황색 직사각형이 한 면에 흩어져 있는 이불이었습니다. 한눈에 지리멘 기모노 옷감을 이불로 고쳐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다가가서 봤더니 연두색도 주황색도 바랜 상당히 낡은 이불이었지만, 우아한 관능미는 조금도 잃지 않았습니다. 지리멘 이불에서 자는 일은 이제 평생 없겠지요.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초밥 -

나는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초밥에 무아지경이었다. 그런 다음 열여덟 살 때 도쿄로 나왔지만 초밥을 먹는 신분은 아니었다. 아버지도 죽었다.

세월은 흘러갔다. 여차할 때 큰맘 먹고 초밥을 사 먹는 것쯤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카운터에 앉아 좋아하는 초밥을 주문하기는 겁이 났다. 그러나 세상이 풍요로워져서 나도 차차 맛없는 초밥이라면 먹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열 살짜리 아들이 초밥집 앞을 지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어이, 너 인마, 초밥집해라. 내 뒤를 이어라. 내가 가르쳐 주마라는 말을 해서 아들은 얼마 동안 초밥 장수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그마한 등에 가게 이름만 쓰인 간판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어서 심오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서부터 아무나 들이는 곳이 아니야. 라는 분위기가 강하게 감돌았다. 저는 선택받아서 들어가려는 참이에요, 라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무엇부터 주문해야 옳을까? 머리가 빙빙 돌았지만, 주문 따위는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내주는 것을 잠자코 먹어야만 한다. 뭐니 뭐니 해도 가게 주인이 위풍당당했다. 무언가 자신을 언짢게 하는 짓이라도 하면 버럭 화를 내며 내쫓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나저나 초밥은 엄청나게 맛있었다. 주문 없이도 나오는 초밥은 지금 나는 이것을 먹고 싶었구나, 라는 마음이 들도록 정확히 눈앞에 등장한다.

 

먹어주세요 남겨주세요 -

아버지는 더 이상 장어 사오너라라는 말도 하지 않게 되어, 죽었다.

장어 한 꼬치가 놓인 접시를 바라보며 나는 먹어줘, 전부 먹어줘라고 빌었고 남겨줘, 남겨서 먹게 해줘라고도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장어가 남아 절망했던 어린 마음이 지금도 어딘가에 들러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쪽이건 아버지에게도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가 있었구나 싶어서 망토 차림의 사진을 보면 기묘한 그리움이 샘솟는다.

 

*** 먼로는 두 번 죽었다 -

환갑이 지났기 때문에 앞날이 없어서 바쁘다.

(2017. 10.20. 금요일 저녁. 플리츠 가디건과 리본모양의 스외르부스키 브롯치를 영근이에게 돌려주었다. 가디건은 올 봄, 브롯치는 몇 년 전 받은 선물이다. “영근아, 선물은 누구나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준다. 그러니, 내 정신 아직 멀쩡할 때, 너에게 돌려주는 거야. 내가 요즘 괜히 마음이 바쁘구나! 그동안 잘 썼다나는 요즘 날마다 쫓기고 있다. 사람구실 못하고 갈 것 같아 불안하다.)

 

앤디 워홀이라고? , 그런 시대도 있었다. 뭔가 사이키델릭한 혼란과 기이한 에너지의 시대. 청춘이란 얼마나 부끄럽고도 마음 들뜨는 광란이었나. 아니, 그 시대에는 일본 전체가 들떠 있어서 부끄럽다. (지금 우리나라 여성들, 성형에 보톡스에 명품가방에 화장 떡칠에, 뭐 더 가질 것이 없나 휘번떡거린다. 이 좋은 세상을 주체할 수 없어 생광란미친년들이다. 자신만 온 황칠하면 되는데, 나보고 넌 왜 함께 더불어 미치지 않느냐고 왈왈 곳곳에서 짖어댄다)

 

이삼년 전 학생일 때는 35엔자리 라멘을 반씩 먹고 게다를 신던 녀석조차 있었다. 그랬던 녀석이 취직하자 몸에 딱 맞는 늘씬한 스리피스슈트를 입고 폭 좁은 넥타이로 목을 죄어, 같은 양복이라도 건신한 은행원과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달랐다. 그 집단은 어디를 보고 있었나. 뒤룩거리는 눈은 전부 미국을 향했다. 그들은 미국을 뭐라고 불렀나. ‘저기라든가 저쪽이라고 불렀다. ‘여기이쪽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도 저쪽의 정보를 얻는데 혈안이 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저쪽잡지를 일 초라도 빨리 손에 넣는 일이었다. ‘이쪽디자이너들의 튼튼하고 조급한 이는 얼마나 탐욕스럽게 저쪽것을 게걸스레 먹었던가.

 

나는 감상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못했다. 매우 감탄하며 까다로운 이론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이래도 돼?’ ‘이거 사치하는 거 아냐?’라는 기분이 샘솟았다. 시대를 골라 태어날 수는 없다. 나는 저 시대를 청춘이라 부르는 시간으로 살아야만 했다.

 

** 그때 -

그 병원은 다마 언덕에 갑자기 솟아난 듯 녹음 속에 우뚝 서 있었다. 겉모습은 고속도로 입구에 늘어선 러브호텔 같았는데, 양식 같은 건 뒤죽박죽인, 살짝 고풍스러운 서양 건물이다.

나는 심한 신경증을 앓고 있어서 온몸이 톱으로 잘리고 절구로 갈려 작열하는 태양 아래의 사막에서 피투성이 심장을 끈으로 동여매어 질질 끌며 걷는 기분이었고, 그것 말고도 온몸이 내란이 일어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같았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매우 당당하고 훌륭한 의사가 있었다. 하나도 거만하지 않아서 나는 놀랐다. “여기에 입원시켜주실래요?" 했더니 호텔 대신으로 써주세요상냥한 눈빛으로 말했다. 병실에는 화장대까지 있었다. 호스피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은 어디도 나쁜 곳이 없으니 수면제만 받고 나머지는 통증을 참는 것뿐이라서, 하루 종일 꽃무늬 소파에 웅크려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전부 암이다. 내가 입원한 다음날, 개인 실에 환자가 들어왔다. 늘씬하고 지적인 오십대의 미인 부인은 틀림없이 스튜어디스였을 것이다. 의사에게 남은 날을 물었다. 의사는 2개월이라 대답했던 모양이다. “, 남편은 스스로 호스피스 자료를 모아서, 여기로 결정했죠. 그런 사람이니까요.”

 

내 침대에서는 밤이 되면 어두운 오렌지색 불빛이 보였고, 가족 중 누군가가 밤새 깨어 있는 기척이 가만히 느껴졌다. 옆방이 컴컴한 것보다, 불이 켜져 있고 인기척이 들리는 편이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딱 한 번, 반쯤 열린 문틈으로 환자의 발을 보았다. 푸른 줄무늬 파자마 밖으로 나온 정강이가 쿵 하고 반대쪽으로 쓰러졌다. 온몸이 슬퍼하는 듯 연약한 쓰러짐이었다. 다음날 밤이 되었는데도 옆방은 어두웠다. 이튿날 간호사에게 옆방이 조용하네요.”라고 했더니 , 옆방 환자분은 어제 돌아가셨어요.”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지 본인조차 알 수 없다. 그때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인도 의사도 몰랐다. * 환자의 언어 건너편에 있는 언어화되지 않는 감정은 그때가 오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그다지 강하지 않다. 나는 열하루 째에 병원을 나왔다.

 

덜렁덜렁 -

우리 일본인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것을 상식으로 삼고, 남들과 같은 생각을 도덕이라고까지 부르는 민족이다. 절대다수와 같은 의견으로 타협하는 것을 어른이라 말한다.

젊음이란 그런 어른에게 반항하는 힘으로 사는 것이었는데, 요즘 젊은 애들은(, 기분 좋다! 이 나이가 되니 요즘 젊은 애들이라고 말하는데 아무 저항이 없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큰소리로 내뱉는 게 사회적 책임이라 생각한다.) 사회 어른들의 불결한 모습에 단결해서 분노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평화라는 것이다. (평화, 그러려니)

 

적이 눈에 띄지 않는 것, 칠칠맞고 꼬질꼬질한 젊은 애들이 태연하고 멍청하게 지낼 수 있는 상태가 평화다. 우리가 평화를, 또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한 것은 곧 바보를 기르는 것이었다. 고맙다, 고마워. 소말리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이렇게는 못 지낸다.

 

내면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즘 젊은 여자는 아름답다. 다리 길이부터가 다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추녀가 적어졌다. 일본이 가난했을 때는 아름다운 사람은 보다 아름답게, 추녀는 보다 추녀로 보였다. 추레한 옷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엽서 한 장도 -

그 무렵 몇 년 만에 요짱에게서 엽서 한 장이 팔랑팔랑 날아들었다.

- 들꽃이 아름답게 피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

엽서 한 장이 내게 삶을 유지할 희망을 주었는데, 나는 요짱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던가.

 

여자 노인과 할머니 -

일본에서 노인은 멸구처럼, 솟구치는 불가연 쓰레기 같은 존재. 그러고 보면 미국에도 유럽에도 여자 노인, 남자 노인은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래도록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서양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동화 속에 있었다.

미국의 해안에 처음 갔을 때, ‘여자 노인들이 뒹굴뒹굴 구르며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고깃덩어리였는데 온몸에 뻣뻣한 금색 털이 빛났고, 기미와 주근깨를 성대하게 드러내고 조막만한 비키니 수영복도 에메랄드그린, 노란색, 빨간색이었으며 그보다 더 화려하고 커다랄 수 없는 무늬가 있었다. 손에는 굵은 쇠사슬이나 플리스틱 팔찌를 짤랑짤랑 차고 실로 당당하게 뒹굴고 있었다.

일본할머니처럼 눈에 띄지 않도록, 유난하지 않도록 수수하게 꾸미는 것은 시대착오다. (나이를 먹으면 피부가 지저분지니 밝은 색으로, 기운차게 꾀죄죄함을 날려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원색으로 늙음과 싸워야 한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의 할머니는 빈틈없이 아이새도를 주름 사이에 채워놓고, 립스틱을 입술 면적에서 1밀리미터쯤 삐져나오게 그리며, 화장을 두껍게 하고, 목에도 팔에도 금붙이를 짤랑이는 훌륭한 일본 여자 노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 일본에서 주제분수따위의 장벽은 전부 걷어치워져 있었다. 할머니가 아닌 일본의 여자 노인들은 육체를 치장하는 혁명을 완수해냈으며 게다가 복장, 화장 등 표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내용물, 다시 말해 정신적인 주제분수도 겉모습과 같아졌다.

즉 늙음은 악이다. 생명은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설령, 죽을병에 걸려도 용기를 가지고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할머니가 되면 하루 종일 할머니일 테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모노를 일상복으로 삼아야 한다. 젊을 때는 살을 드러내는 게 아름답다. 문제는 아줌마부터 할머니까지의 시기다.

인도인은 당당하게 사리를 입고 전 세계를 활보하는데 그건 민족의 긍지일까, 아니면 근대화가 늦어진 것뿐일까, 나는 내 기모노를 가끔씩 쓰다듬으며 꾸물꾸물 하고 있다.

 

*** 나답게 죽은 이유 -

늙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당황해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뭐야? 나는 왜 이런 곳에서 이런 걸 하고 있지? 하고 섬뜩해져서 짧지 않은 육십 년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돈다. 이제 충분히 살았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나의 인생이었다. 목숨을 아쉬워할 일 따위는 전혀 없다.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2017.10.20.. 요즘, 내가 딱 이렇다. 자꾸 자꾸 멍청히 누워, 혹은 씽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래, ‘충분하다.’ 이쯤에서 끝나도 여한이 없다고 되뇐다. 사실은 이쯤이 너무 겁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이 없는 앞날이 두렵기 때문이다.)

일흔일곱 된 엄마가 치매에 걸렸을 때, 나는 우선 부모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으니 내가 늙는 문제는 뒤로 미뤄두자고 생각했다. 만사는 차례대로, 순서라는 것이 있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나는 신문의 다른 곳은 읽지 않아도 부고만은 훑어본다. 그리고 나이만 확인하다.(사노요코는 1938년에 태어나 201072세의 나이로 죽었다. 공자도 73세의 나이로 갔다. 시어머님도 그쯤 가셨다. 조금 애석하다 싶을 때, 모두 참 괜찮게 가셨다. 나도 그러고 싶다, 지금 마음은!)

 

엄마가 아흔을 넘으면 나도 일흔을 넘는다. 일흔 넘어서 어떻게 노후 계획을 세우란 말인가. 정말로 사고라도 나서 승천하고 싶어진다. 장수는 진정 경사스러운 일일까. 풍요로운 노후 같은 게 실제로 존재할까.

 

그녀에게는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 즉 따라야 할 규율에 목숨을 맡기는 것이 빛나는 자부심이었다. 세간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거북해한다. “이웃은 뭐라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당신 말이야, 지금은 이웃이 없다고. 복지에 떠넘기고, 남과 관계를 가지려 하지 않는단 말이야.

 

*** 나도 치매 걸린 엄마를 버렸다. 돈을 긁어모아서 내 노후를 뒤로 미뤄두고 돈과 함께 엄마를 유로 양로원에 버렸다. 노인 병원이라는 곳에도 휘적휘적 빨려 들어간다. 크게 열린 채 깜빡이지 않는 공허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그 입은 예외 없이 벌어진 항문처럼 주름이 중심을 향해 모여 있다. 혹은 휠체어에 묶인 채 하루 종일 근사한 홀에 모여 있는, 특별한 돌봄을 받는 노인들. 그들은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고 가만히 있다.(정물화) 그들은 (모델이 없는 노후)를 망연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화장실 바닥이 빠져서 60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그 할머니는 죽어도 자신의 집을 떠나기 싫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썩은 집에 매달렸을 것이다. 복지를 오직 혼자서 거부한 것이다. 나도 가능하면 화장실 바닥을 헛디뎌서 굴러 떨어져 죽고 싶다. (에세이스트 대표 정경 선생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 62~63. 참 아깝지만 그래서 더 애절한 나이에 간 것 같다. 죽음은 남들(기억창고)이 아깝게 생각해야 남는 장사다.)

 

세상은 합창한다. 자신답게 생생하게 살아갑시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답게 죽을 자유는 없는 것일까.(웰빙 & 웰다잉)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것이 그렇게 귀중한 일일까. 나는 우왕좌왕할 뿐이다. 분명 죽을 때까지 우왕좌왕할 것이다.(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카네기 묘비명-)

 

아오이 문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자손도 아닌데, 우리 가족은 슨푸성안에서 산 적이 있다. 슨푸성이라고는 해도 돌담으로 둘러싸인 네모반듯하고 휑뎅그렁한 들판이었다. 쇼와25(1950) 무렵이었다. 네모난 슨푸성에는 네 개의 다리가 있었다. 그중 하나를 건너면 아오이 문고라는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아오이 문고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느꼈던 자랑스러움은 무엇이었을까.

전쟁 전에 나온 훌륭한 장정의 낡은 책도 있었고 새 아동서도 있었다. 게다가 공짜로 빌려준다. 나는 그곳의 책을 전부 읽으리라 결심했다. 가장 구석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낡아빠진 책부터 시작했다. 조선의 민화였다. 줄줄이 늘어선 책은 어린이용 세계 민화집이었다. 조선 다음은 인도였고, 몽고 민화도 있었다. 나는 차례차례 닥치는 대로 빌렸는데 이제는 아무 내용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문화 센터옆에는 형무소의 붉은 벽돌담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형무소 담장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오이 문고로 돌아왔다. ‘아오이 문고미국 문화 센터도 벽돌담 형무소도 없어졌다. 풀이 무성했던 슨푸성도 훌륭한 공원이 되었다. 나에게 첫 도서관이 아오이 문고였다는 사실이 언제까지나 자랑스럽다. 읽은 책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 옆집에서 살고 싶어 -

모리 마리는 정말로 특이한 할머니였다. 모리 마리는 바구니를 손에 들고 상점가를 살랑살랑 걷고 있었다. 모리 마리는 매우 질 좋은 캐시미어로 만들어진, 스웨터라고 부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모리 마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바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무엇보다도 즐겁게 만드는 것은 독특한 유머. 그것도 참으로 고급스러운 유머다. 유머는 사실적인 자기 자신을 똑똑히 바라보아야 생겨난다. 나는 모리 마리의 옆집에 살고 싶다.

 

끝없는 바흐처럼 -

그나저나 사랑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아니, 모리 마리가 받은 사랑이 굉장하다. 그녀는 평생 아버지에게 사랑받았다는 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한번, 아니 천 번, 아니 만 번 아버지에게 사랑받았다는 이야기를 쓰면 그곳에 부드럽고 풍부한 향을 지닌 분위기가, 독특한 세계가 생겨난다. 끝없는 바흐 같다.

지금 내가 모리 마리의 흉내를 내면 진짜 여자 부랑자 같아져서 고귀함이 쑥 빠진다. 내게는 그처럼 사랑받았던 경험이 쑥 빠져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귤 하나라도 몰래 먹으면 아버지한테도 어머니한테도 두들겨 맞았던 나와 마리는 최고야, 마리는 최고야, 마리가 하면 도둑질도 최고야라며 누군가가 등을 쓰다듬어주었던 사람의 차이다. 그러므로 나는 옹졸한 상식 인이 되었고 모리 마리는 위대한 나르시시스트 문학가가 될 수 있었다.

 

반한 게 잘못이다 -

청춘이란 무엇이었나. 그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우왕좌왕 두리번두리번하는 것이었다. 요란한 갈색 머리를 한 요즘 언니와 내면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가난했기 때문에 불량소녀가 브랜드 물건을 마구 사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문고본을 마구 읽었다. 돈이 있었다면 나도 샤넬이나 베르사체를 걸치고 싶었을 것이다. 청춘이란 병이로구나.

안나 카레니나의 브론스키에 대해 우리가 끊임없이 잘난 척하며 토론했던 일은 떠올리기만 해도 부끄럽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하숙했던 집의 아주머니가 틈만 나면 게으르게 문고본을 읽는 내게 책은 읽어도 책에 먹히면 안 돼그 아주머니는 내가 건전하고 건설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올바른 사람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몸속까지 파고든다. 하지만 다자이를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우왕좌왕하는 것은 청춘이나 노년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장정은 책의 초상화 -

일본 영화는 궁상맞고 추레했습니다. 우리도 궁상맞고 추레했으니, 동경은 할리우드 영화를 향해 활짝 펼쳤습니다.

프랑스의 가난은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어떤 책이든 장정이라는 얼굴을 갖습니다. 우리는 내용물을 사는 것이나 얼굴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가끔은 장정이 너무 좋아서 사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면 장정이라는 역할을 뛰어넘어버린 멍청한 미인에게 손을 대고 만 멍청한 남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장정은 내용의 초상화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육아와 현대인의 고독 -

당신 인생 중에 가장 좋았던 일이 뭐였어?” “육아” “그럼 가장 힘들었던 일은?” “육아복스러운 자식을 가진 어머니에게조차 육아는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대사업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미쳐 날뛰는 육아였는데, 그 내용물 대한 보람은 충분하며, 이제 와서는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달콤하게 배어 나온다.

누구나 자식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줄 사람을 얼마나 갈망하는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아무도 심리학 책 따위는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하고 싶어 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하고 싶어 한다.

 

문고판 후기- 부끄럽다 -

동화든 각본이든 머릿속에서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어떻게든 창작하는 것이라서 조금은 머리를 쓴다. 에세이 비슷한 글을 의뢰받았을 때 이건 일로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것은 전부 찻집에서 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으면 못 그린다. 대체 이건 뭔가 싶지만 습관이란 무섭다.

대체로 무슨 잡지에서 의뢰를 받는 터라 매수가 정해져있다. 의뢰받기만 할 뿐 스스로 솔선해서 쓴 글이 아니다. 게다가 에세이는 가공의 이야기라 아니므로 내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써야하니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쓰지 않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것을 착각해서 기억한다.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람만이 신세 상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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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인이 아니니,

사무라이처럼 장렬하게 갈 생각은 없다.

 

내 친정할머니가 그랬듯이

평생, 빠른 걸음으로 뛰지도 않고

맛있는 것 골라 잡수시거나 벌컥벌컥 들이 마시는 일도 없으셨고

누구를 향해 자 한번 입에 담는 일없이

사뿐사뿐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멈춰선 듯 고요한 그림자처럼 사셨다.

나처럼 똥배가 나올 일도, 얼굴에 여드름이나 기미가 낄 일도 없이

천상, 하늘에서 파견 나온 보살처럼 살다가셨다.

하루하루, 몸과 마음과 정신이 자연스럽게 소진되어

가볍게, 가볍게

마치 장다리 무꽃에 앉았던 

작은 흰나비가 날아가듯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니 요코처럼, 好不好 강하게

이것 좋아 저것 싫어 주장은 내 성정에도 차마 못할 일이다.

나는 할머니의 손녀딸이다

나의 할머니 홍대분, 남양홍씨 유인처럼 갈 수 있기를!

비 바람 햇살에 산화할수 있기를 願을 세운다.

 

 

 

 

죽는 게 뭐라고

- 시크 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요코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사람은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 - 나는 알고 싶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죽으면 용서하게 될까. 사는 게 훨씬 더 피곤하고 귀찮잖아. 그래도 죽는 건 무서워. 죽을 날이 코앞에 다가오자, 죽으면 돈이 안 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방을 휙 둘러보니 전부 돈을 주고 산 물건뿐이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지금껏 돈을 위해 일했다니.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일을 하고 있지만, 돈은 필요 없고 취미로 일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차피 찔끔찔끔 모아온 저금도 죽으면 쓸모없다. 암이 재발해서 뼈로 전이되었을 때, 의사는 죽을 때까지 치료비와 간병비로 1천만 엔 정도 든다고 했다. 일흔 쯤 되면 더 이상 나에게 돈 들 일은 없겠지. 나는 항암제를 거부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불쾌한 1년이라니. 연명하더라도 아까운 짓이다.

*일흔 전후는 딱 좋은 나이다. 아직 그럭저럭 일할 수 있고 스스로의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면 반드시 설교를 늘어놓았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 아버지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엄마는 많이 힘들었다. 부모가 일찍 죽는 것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부모가 일찍 죽으면 마음껏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아버지가 오래 살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 암 재발 선고를 받은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자동차 매장에 들렸다.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그때까지 외제 차는 절대 타지 않았다. 중고 외제차를 사는 녀석들이 가장 싫었다. 내가 들른 곳은 외제 차 매장. 그곳에 잉글리시 그린의 재규어가 있었다. 나는 그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내 마지막 물욕이었다.

사실 근본이 가난뱅이인 나는 물욕이 없다. 식욕도 없다. 성욕도 없다. 더 이상 물건이 늘어나도 곤란하다.(나다) 이제 남자도 지긋지긋하다. 나이 일흔에 남자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 비웃음을 사겠지. 앞으로 남자를 사귈 수나 있나? 아뇨, 못 사귑니다만.

나는 암보다 우울증이랑 자율신경실조증이 훨씬 더 괴롭고 힘들었다.

* 정신에 관련된 병은 차별을 당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나는 왼쪽 다리가 아프지만 오른쪽은 괜찮다. 요즘 자동차는 오른발용밖에 없다. 나는 스스로 재규어를 몰며 굴뚝 상태로 되돌아갔다. 덤으로 택시비도 아꼈다. 나는 거의 일평생을 지구와 평행하게 살아왔다. 드러누워서 책이나 텔레비전, 빌려온 비디오를 보았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이불을 턱 밑가지 끌어당기고 하루에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아아, 행복하다.” 다리가 아픈걸, 암에 걸렸는걸. “그래도 행복하단 말이야

 

선생님,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죽고 싶지 않아요.’ 하며 울지 뭐야. 난 그런 죽음은 보기 흉해. 아버지는 죽음에 대한 미학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본인의 신념대로, 아우슈비츠의 수감자처럼 뼈만 남은 채로도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혼자서 벽을 짚고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조용히,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죽었다.

 

비겁함이 가장 나쁘다 - “사노씨, 가슴 두근거릴 일이 없어진다는 건 쓸쓸하네요.” “, 마지막으로 두근거린 건 언제쯤인데요?” “어느 날 문득 두근거림이 없어졌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나뭇잎이나 조그만 꽃을 보고 가슴이 뛰어서, 나이 든다는 건 청아한 일이라고 스스로 감동하곤 했다. 동년배 친구들 중 가슴 두근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일흔의 두근거림은 왠지 엉큼하다. 진짜 엉큼하다. 피카소는 죽기 전에 젊은 연인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남자들이란 원래 그렇다며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돈과 재능이 넘치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 돈도 재능도 색스어필이다.

 

죽음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건만, 남은 날이 2년이라는 소리를 듣자, 그만 귀가 솔깃해져서 여기저기 그 말을 퍼트리고 다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내 주위의 세상이 스웨터를 뒤집은 듯 친절해졌다.

 

지금처럼 노인을 공경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라, 쓸모가 없어진 사람은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나라에 태어난 것은 비극이다. 적어도 내가 어릴 적에는 노인들이 당당했다. 요즘은 부모를 봉양하고 싶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부모가 죽으면 재산 싸움을 벌인다.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다. 옛날에는 노인의 자리와 역할이 있었다.

암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그러자 수치가 일반인과 똑같아졌다. 암은 걱정이 많으면 안 되는 병이다. 의사는 정말로 열과 성을 다해 병을 치료하려 했다. 나는 의사의 웃는 얼굴을 위해서 건강해지고 싶었다. * 아무리 죽으려는 의욕이 넘쳐도 여간해서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 노인은 망상으로 마음껏 두근거릴 수 있는 특권계층이다.

 

*** 끊임없는 불꽃놀이 - 차라기보다 오랜 세월 길러온 애견 같은 느낌이었다.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낡은 차를 떠올리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난 아직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차 사랑이 없나보다. 나는 매정하다.)

 

나는 그녀와 20년 동안 밖에서 만나 밥을 사 먹었는데, 전부 내가 냈다. 한 번도 얻어먹은 적이 없다. 둘 사이에 그런 규칙이 어느 틈에 생겨버렸다.

그녀는 F1 엔진을 장착한 경차처럼 활발하다. 아니, 그보다 침착성이 없고 줄곧 시끄럽게 떠든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여하튼 일방적으로 떠들어댄다. 남들의 대화에 참여해 공통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 없다. (ㅇㅇㅇ, 없으니 뭐든 없으니 버림받을까봐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모두들 꺼려하는 여자와 어울리는 관대한 나 자신에 도취되어 그녀와 만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혐오스러운 나 자신.

 

그녀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반응한다. 연속성이라는 게 없다.( 생각 없이 지껄인다. 이런 사람들 뒤끝이 없다. 막무가내다. 딱 한사람 안다, 나는)

마치 음악과도 같은 인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에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그래도 가끔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넌 나를 무시하거나 심술궂게 굴 때가 있어.” 그 말대로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악연으로 맺어진 벗, 혹은 피붙이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쩨쩨함과 욕심을 빼면 그녀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불꽃처럼 타오른다. 끊임없는 불꽃놀이다. F1의 엔진이 아니고서야 유지되지 못한다. 구두쇠는 쩨쩨한 인생밖에 살지 못한다. “있잖아, 프라다 스웨터 나 줘.” 그녀가 어제 말했다. 내가 곧 죽을 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나는 웬일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지나치게 정직했기 때문이다.

 

모모언니는 나보다 일곱 살 많은데, 옛날 일본의 좋은 부분만을 모조리 가지고 있다. 일단 자세가 곧고, 앉아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 * “나는 이제 글렀어. 돈은 있는데 갖고 싶은 물건이 하나도 없지 뭐야. 나이 드니까 욕심이 없어져. 욕심은 젊음인가봐.” 나는 불현 듯 싱글벙글 씨의 성욕은 있지만 정력은 없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같은 혈통이라도 언니에 비해 나는 품위가 없다. 품행도 단정치 못하다. 말본새도 거칠다. 모모 언니는 *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자연스럽게 경어를 쓰며 아름다운 일본어를 구사한다. 인간에게 언어란 매우 중요하다. 언어만이 인간을 증명한다고도 할 수 있다.

 

입버릇이 나쁜 인간은 고릴라보다도, 소보다도 못하다.

모모 언니는 욕심이 없다. 욕심 없이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이 모인다. (나다, 바로! 그래서 나는 돈이 많다.) 언니는 부끄러워할 줄 안다. 언니는 수치심이 무엇인지를 교육받은 세대다. 그때는 전 세계가 수치를 알았다. (사하 마지막 수업, 예전에는 그래도 그나마 싸가지라도 있었는데, 수오지심)

* 가난해도 좋다. 나는 품격과 긍지를 지닌 채 죽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모 언니,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주고 싶어. 존경이나 은의(恩義) 같은 걸 말이야.

 

성격이 나쁜 사람은 자기 성격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른다 - 요코씨도 일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 지금까지 쭉 일 했는걸. 먹고 살려고 한 거야. 지금은 가난하지 않잖아. 그럭저럭 살 만한 정도지. 그래도 일거리가 떨어지면 초조해져. 거봐, 어차피 할 거면 싫다는 말은 안 하는 편이 좋아.

 

아무도 없는 집에서 드라마를 한창 보던 중 문득, 그 행복을 느끼면 깔깔 웃음이 터질 정도다. 아아, 이러니 혼자 사는 걸 도무지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깔깔대며 웃는 와중에도 스스로가 게으름뱅이처럼 느껴져 왠지 껄끄럽다. 보통은 예순이면 정년을 맞이한다. 나는 일흔이다. 게다가 이제 곧 죽을 몸이다.

이제 곧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세상만사에 의욕이 없어진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건 지루하다. 미남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살아 있으면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 절름절름 다리를 절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핀다. , 천리향이 피었다. 오늘은 추우니 밖에 나가지 말까? 휘적휘적 걷다가 들어간 옷 가게에서 치마를 샀다. 이제 옷 따윈 사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도.

 

나는 암이 전이된 뼈에 듣는 약과 정체불명의 약을 링거로 맞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간다. 그러나 오로지 미남 의사를 보고 싶을 뿐이다. 전에 의사가 어떤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머리카락이 하룻밤 사이에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었다. 절의 스님보다도 더 반짝반짝한 대머리다. 스님은 모근이라도 있으니 푸릇푸릇하지만, 나는 모근도 없다. 모자를 사기도 했고 선물도 받았다. 하지만 나한테는 모자가 안 어울렸다. 집에 있을 때는 민머리를 드러내놓고 다녔다. 민둥산이 된 이후에야 내 두상이 예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얼굴만 못났다. 얼굴이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얼마 안 되어도, 여자는 얼굴이 생명이라는 진리를 70년 동안 충분히 느꼈다. 다시 태어난다면 멍청한 미인이 되고 싶다. 얼마 전 거울로 얼굴을 보며 너도 참 이 얼굴로 용케 살아 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대견하기도 하지라고 말했더니 스스로가 갸륵해서 눈물이 나왔다.

 

훌륭하게 죽자고 결심했다. 훌륭한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사무라이처럼 죽고 싶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오늘 밤 결정할 거야>를 듣고 싶다. 요즘은 줄리처럼 나른하면서도 퇴폐적인 미청년이 없다. 모두가 쓸데없이 명랑할 뿐이다. 어째서 그렇게 밝은 걸까. * 옛날에는 젊은 재능이 문학, 그다음은 만화, 지금은 예능에 쏠려있다.

 

나는 세상만사에 감탄하고 싶다.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 따윈 없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가난으로부터 배웠다. 부자는 돈을 자랑하지만, 가난뱅이는 가난을 자랑한다. 모두들 자랑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

눈앞에서 사람이 픽픽 죽으면, 죽음이란 정말로 단순하고도 당연한 일처럼 여기진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된 다음 남자에게 반하고 자시고 할 때에도, 헤어지니마니 소동을 부릴 때에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는 분할 때만 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분해서 흘리는 눈물에는 상쾌함이 없다.

어른이 되면 좀처럼 꼴깍 죽을 수가 없다. 나도 꼴깍 죽지 못한다. 이러다 혹시 안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 병원에서 잘 생긴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 반년 정도일까요.” “뭐라고요?! 전에 2년 남았다고 하셔서 전 완전히 흥청망청 돈을 다 써버렸단 말이에요.” “돈을 다 쓰셨어요? 그것참 곤란하군요.” 호스피스에 들어갈 돈만 남겨뒀어요.” “난처하네요.”의사가 웃음을 터트리는 통에 나도 웃어버렸다.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 병과의 장렬한 싸움만은 싫다.

 

나는 저 세상을 믿지 않는다. 저세상은 이 세상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저세상은 이 세상에 있다. 불행히 젊은 나이에 죽은 동창도 있다. 모두들 깜짝 놀라 거짓말 같다고 중얼거리며 장례식장에서 울었다. 저마다의 상념이 교차했고, 상복의 새하얀 손수건이 팔랑팔랑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갔어." “어째서 그렇게 좋은 녀석이한 시간쯤 지나자 더 이상 아무도 죽은 사람을 떠올리지 않았다. “바보 자식, 선생님한테 일러바친 거 너였지?” 실로 활기차고 즐거운 동창회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나는 갑자기 깨닫는다. * 타인의 죽음은 한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친족과 타인은 다르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죽고 내 세계가 죽어도 소란 피우지 말길 -

사노 - 전 이제 일 한 해도 괜찮을 나이잖아요. 다들 정년이 되면 일을 그만두잖아요? 전 일흔이라고요.

히라이(의사) - *** 일을 안 하면 치매에 걸려요.

사노 - 이젠 걸려도 상관없어요.

히라이 -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 그녀 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2인칭 당신의 죽음을 부모 자식 형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

히라이- 죽음을 선고한 후에 심전도를 봤더니 파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해받지 않도록 죽음 선고 전에 모니터를 치워요.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은 자라요. 다시 말해 죽은 후에도 몸의 여러 세포들은 살아 있어요. 때문에 사후 24시간은 시신을 안치하도록 되어 있죠.

히라이 - 죽을 의욕에 불타고 계셔도 쉽게 죽지 않아요.

히라이 - ***** 뇌졸중이 가장 곤란해요. 어느 날 갑자기 퍽 쓰러져서 어벙하게 되지요. 그리고 죽지 않아요. 병세가 심한 경우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 지도 전혀 모릅니다. 가족들도 선생님, 적당히 해주세요.” 그러니 의사도 ***** 어떻게 할까요?” 하는 식으로 3, 5, 10년씩 가는 거죠.

사노 - 잘 생각해보니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에요. 저는 정말로 태연하고 건강하게 지내거든요.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애 아빠는 얼마 전에 저 세상으로 갔는데요. 의사한테 이젠 손쓸 도리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 시점부터 결음을 못 걸었대요.

히라이 - 개중에는 훌륭히 죽은 사람도 있고요. 예순여덟 살의 변호사가 폐암에 걸렸는데 전 이제 1년이나 1년 반 정도밖에 못 살지만, 처리해아 할 안건이 다섯 개나 있어요. 모두 불쌍한 사람이라서 어떻게든 해결한 다음에 죽고 싶어요.” 라고. 감마나이프 치료를 총 다섯 번 했는데요. 그러는 와중에도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18개월쯤 지난 후에 돌아가셨어요.

히라이 - 요즘의 일본은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지요

사노 - 그래서 죽는 게 나쁜 일인 양 여기죠.

히라이 - 맞습니다. 60년 전에는 소집영장을 받으면 전쟁터로 나갔어요. 가족들도 아이들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암에 걸려 갑자기 “1년 남았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으니 깜짝 놀라 허둥지둥 할 수밖에요.

사노 - 남 앞에서는 다들 위선자가 되는 느낌. 어째서 그럴까요. 인간은 위선을 떨기 쉬운 존재라서?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히라이 - 여든이 넘은 할머님께 약을 드리면 선생님, 이 약 평생 먹어야 하나요?

사노 - 누구든 그 나이대가 되어보니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요. 100살 가까이 먹은 사람이 어디에선가 돈을 받았는데,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모았다가 노후를 대비해야죠.” 라고 했대요,

히라이 - 인간도 유전자가 제대로 힘을 발휘해주는 시기는 쉰 살에서 쉰다섯 살 정도까지예요.

사노 - 그 뒤로는 쓸모없다는 거군요.

히라이 - 쉰 실까지는 유전자가 생존, 생식 모드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쉰다섯 살 이후 종족보존이 끝나면 사회적으로는 세상을 위해서, 또 남들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지언정 생물학적으로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히라이 - 여성의 정신과 육체는 아이를 낳고 기름으로써 절대적인 축복을 받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출산과 양육 없이는 인생의 가장 좋은 부분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남자의 경우, 역할이 끝나면 연어처럼 미련 없이 죽어 없어집니다. 반면에 여성은 대단한 존재예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니까요. *** 남자는 여차하면 자식을 버릴 수 있어요.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의절하기도 하죠. 그러나 여자는 자식이 아무리 죄를 범해도, 살인자가 되더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아요.

 

나는 훌륭하게 죽고 싶다 -

히라이 - 저는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좋아, 나는 훌륭하게 죽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뜻을 세워서 후회하지 않고 깨끗하게 죽고 싶어요. 이른바 무사도 정신이죠.

사노 - 저는 어쩐지 허영 같아요.

히라이 - 그래도 한심한 모습은 그다지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사노 - 옛날에는 생명에 집착하는 게 가장 추하다.’라는 무사의 체면에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죠?

 

자신의 죽음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

히라이 - 50대가 도면 부모님도 늙고 자신의 체력도 떨어져서 노인들의 기분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의사가 보는 죽음은 의사의 입장이나 연령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죽을 때에야 죽음의 문제도 끝나게 되지요. 사후에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사노 -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은 생각하지 않잖아요.

히라이 - 기도는 본인의 기분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다는 증거.

 

아들은 마지막 인사까지 생각해둔 듯해요 -

사노 - 이미 사두었어요. 그런데 무덤은 5년만 빌리기로 했어요.

히라이 - 요즘은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 후, 동료나 선배, 친척들한테 인사하러 다니는 게 힘든 일이지요. 장례식도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치러야만 해요. 한 번에 끝나니까요.

사노 - 제 전전남편은 내가 죽으면 아드리아 해에 뼈를 뿌려 줘라는 소리를 하는 바보였어요. “비행기 표는 누가 사는데?”라고 말해버렸죠.

히라이 -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시니까요. 결국 인간학이죠. * 여러 가지를 제대로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은 확실한 死生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죽는 게 뭐라고를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싶어요.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모두 사이좋게 기운차게 죽읍시다.”

 

내가 죽고 내 세계가 죽어도 소란 피우지 말길 -

*** 사노 - 요컨대 나 자신은 별것 아닌 존재죠. 마찬가지로 누군가 죽어도 곤란하지 않아요. 가령 지금 오버마가 죽어도 반드시 대타가 나오니까요. 누가 죽든 세계는 곤란해지지 않아요.

 

아파서 죽습니다 뱃가죽이 아팠다. “, 터진다, 찢어진다고!” 갈비뼈 통증이었다. 같은 죽음이라도, 통증을 견디지 못해 죽는다고, 누군가에게 정확히 말해두고 싶었다.

나는 피를 토한 나쓰메 소세기가 부러웠다. 목 놓아 울었던 마사오카 시키가 부러웠다. 그들은 누가 봐도 정당한 병자였다.

갈비뼈를 장작처럼 끊임없이 쪼개는 고통이 찾아오면 가운 끈으로 내 몸을 기둥에 동여맸다. 그러지 않으면 2층으로 기어올라 베란다에서 집 앞 골짜기로 몸을 던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목 놓아 울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친구가 바닥에서 뒹구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 얼굴이 거무죽죽해.” 거무죽죽하다니? 더러운 똥에 진흙을 섞은 색이야. 색깔은 아무래도 좋아. 보라색이든 파란색이든 상관없어. 진짜 똥이라도 괜찮아. 아프지만 않으면 돼. 나는 이렇게 대답하며 실실 웃었다. 그래도 의사한테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죽어도 상관없지만, 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죽는 게 가장 좋다고 하루에도 몇 번식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아무래도 억울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억울했다. 억울해서 신음을 내뱉었다.

 

호기심이란 천박하다 - 깜짝 놀랐다. 논짱의 말이 사실이었다. 여자가 자기 남자를 아무리 멋지다고 말해봤자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얼간이로만 보이는 게 보통인데. “저기, 입원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호텔 대신이라고 여겨주세요.”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친절인지. 호텔 대신이라니, 호텔보다 호텔스럽지 않은가. “오늘 곧바로 입원할 수 있나요?” “그럼요.” 선생은 소리 내며 웃었다.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돈이 없을 때에도 돈을 잘 쓰는 게 자랑이다.

호기심 때문에 두근거렸던 나는, 딱히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이란 천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혼이 말기에 이르러서 죽어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정신과 의사가 여기 있나요?” “환자분의 가족들이 상담을 할 때가 있어요.” “환자가 아니라요?” 나는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의 고충이 정신과 의사를 필요로 할 정도라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는 압도당했다.

 

* 내 간호사는 저녁 여덟시가 되면 꼬박고박 수면제 한 알을 챙겨들고 온다. “여기는 죽어가는 사람뿐인데, 안 괴로워요?” “저어, 여기서는 환자분이 돌아가셨을 때 울어도 돼요.” “누가?” “제가요.” 일반 병원에서는 반드시 프로답게 굴어야 해요. 환자분이 돌아가셔도 절대로 울지 않도록 교육받죠.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우고요. 하지만 마음이 무척 잘 통하는 사람이 돌아가실 때면 정말로 슬퍼요.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울었더니 정말로 기분이 좋았죠. 울면 편해지잖아요. 그게 가장 기뻐요.

 

거기에는 누구의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다 -

언어도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연은 그 어떤 경우에도 실패해서 찢어버리고 싶은 그림처럼 되는 법이 없다. 내년 봄에는 틀림없이 벚꽃이 피겠지.

갑자기 내 옆에 앉아 있던 목발 할머니가 그 백혈병 걸린 젊은 사람, 참 딱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3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투명한 필름처럼 몇 번쯤 나를 스쳐 지나간 젊은 커플을 몇 초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제는 결코 투명한 모습으로 고요히 내 앞을 스쳐 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내년에 피는 벚꽃 - 투명한 갈색 눈동자에 흘러넘칠 듯 물이 가득 고였다. “내년에 피는 벚꽃을 볼 수 있을까요?” 이듬해 5월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작은 보스턴백을 메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모두들 일정한 방향을 향해 미끄러져 가는 듯 -

할아버지는 말도 움직임도 없이 입을 벌리고 있는 할머니 곁에 언제나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 사람은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꽃이 필 무렵에만 눈을 빼앗겼다가 시들면 금방 잊어버렸다. 벚꽃은 1년에 한 번만 떠올렸다.

꽃이 피고, 닭이 울고, 반 했니 어쩌니 울고불고, 돈이 있니 없니, 밥이 맛있니 맛없니. 이 세상의 모든 천국과 지옥은 고타쓰 위에 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는 분명 이 세상의 자연이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밀려들지 않을까.

 

* 사노 요코에 대하여 - 세카카와 나쓰오

파티를 꺼리는 게 분명한 그녀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건강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얘기할 게 있어.” 찻집에서 마주보고 앉아 그녀가 말했다. “저기, 나 뼈에 전이됐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앞으로 1년 남짓일 것 같아.” “암에 걸렸다고 말하면 모두들 동정해줘” “누구 괜찮은 남자 없어? 감상하고 싶어라고도 했다. “요즘엔 불량 할머니가 되어서 말이야, 남자 밝힘 증이 절정이거든. 그래도 잡아먹거나 하진 않아. 그냥 감상이라고, 감상.”

 

요코씨는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다가 뿌리침 당했다. 그것은 강렬한 체험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쟁 전 긴자를 활보했던 모던 걸, 결혼 후에는 뛰어난 아내이자 유능한 엄마로 변신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에게는 그게 아니야라고 무엇이든 부정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코씨도 뛰어난 딸이었다. 뛰어난 아내는 남편을 두고 뛰어난 딸과 무의식중에 경쟁했다.

 

요코씨의 어머니는 2006년 아흔셋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어떤 단체 사진에서도 한가운데에 있었다. 타고난 여장부였다. 하지만 언젠가 할머니가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어머니도 늙었다. 일선에서 물러나 도쿄로 가서 딸과 함께 생활했다. 여든이 넘어 치매 증상이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딸은 어머니를 시설에 넣었다. 어머니의 증상을 그곳에서 느긋하고도 착실하게 진행되었고, 시간의 경과와 노화는 드셌던 어머니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건강했던 시절에는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말 고마워미안해를 아낌없이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무도 복잡했던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싱겁게 회복되었다. 이윽고 자신도 노화를 실감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통화가 되지 않아서 문득 쥐고 있던 물건을 쳐다봤더니 텔레비전 리모컨이었다.

 

요코씨도 일곱 살의 소녀 난민이었다. 그녀는 여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냄비 가득 수수를 끓였으며 땅콩을 팔았다. 길거리에서는 아버지가 만든 짚신을 팔고 러시아인에게 담배를 팔아 식량으로 바꾸었다. ‘어린애였으니까, 나는 생각하기 이전에 본능적으로 살았다. 나는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의 근원을 어린 시절의 생활 중에 체득했다. 그때가 불행의 시대였다고 해도 내가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아지랑이가 낀 봄날의 산이 몽실몽실 웃음 짓고, 목련꽃도 벚꽃도 변함없이 피리라는 생각을 하면 분하다.’

호방하면서도 섬세했던 요코. 그러나 여행지의 봄은 아름다웠다. 그곳 봄날의 산이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멋대로 몽실몽실 웃음 짓는것은 전쟁을 관통했고 그 이후의 시대까지 억세게 살아낸, 재능 넘치고 제멋대로인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분한 일이었으리라.

 

표사 : 사람은 삶이 되고, 암은 앎이 된다. 이 책의 원제가 죽음 의욕 가득이다. 지금 문화에서 죽음은 늘 닥치거나 선고되거나 벌어지는 것이기 마련이다. 극렬한 통증이 살아 있음의 증거인 것처럼, 죽을 의욕 역시 삶의 가장 강렬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 21세기에 가장 유명한 암 환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삶의 최고 발명품이라 했다. 이 책은 암에 걸렸지만 담배 따위 끊지 않고, ***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죽고 싶어 하던 박력 있는 할머니, 사노요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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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는 일본인으로

1938년에 베이징에서 태어나,

2010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지나간 세대 지나간 사람이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나라다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생활은 그네들이 먼저 경험한 일을 뒤쫓고 있다

이지메(왕따)가 그렇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그렇고

孤獨死가 그렇다

내 어머니세대의 이야기인데,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들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사람들 속에 휩싸여 사는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일할 때 말고는, 철벽같이 숨어들어 고립무원의 고독을 즐긴다

가족말고는 누구도 잘 만나지 않는다


그중 내가 먼저 연락하는 한두 벗이 있다.

책을 읽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비장한 생각을 했다.

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죽는 게 뭐라고까지 기다렸다.


영희씨에게 너와 너의 남편은 의사이니까, 이 책을 읽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죽는 것에 대한 용기'를 줘야한다.”

우편으로 책을 선물했었다.

우리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산다.

6월 말까지 병원에 근무하고 

그녀는 바로 다음 달, 뉴질랜드로 떠날예정이다.

 

오늘, 근무를 마치고

전통이 있다는 '해운대 암소 갈비'에서

생갈비를 구워 점심을 먹었

해변으로 나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해변을 걸어 중간지점, 조선비치호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번 껴안고 헤어졌다.


이제, 내 이야기를 누가 살뜰하게 들어주나?

그리고, "누가 나에게 맛있는 갈비를 사주나?" 라고 하니

한국에 나오면 꼭 그집에서 갈비를 또 사줄거란다.

좋은 사람들은 내곁을 떠난다.

나이 들어 분신같은 벗이 떠난다는 것은 가슴 한켠이 휑하게 서늘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사는 게 뭐라고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철학)

사노 요코 /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

빵이 다 떨어져 걸어서 커피숍.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 작은 테이블이 딱 한 자리가 비었고, 전부 여자였다. 전부 할머니였다. 그 중 넷은 담배를 벅벅 피우고 있다. 전부 홀몸으로 보였다. 예전에 파리 변두리의 식당에서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는 노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이는 아흔쯤으로 보였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문밖의 빛 속으로 사라진 코트 뒷모습은 고집불통 고독의 덩어리였다.

그러나 지금 여기,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할머니들은 파리의 노파를 서서히 닮아간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옷차림도 단정하다. 일흔 후반의 어느 할머니는 롱스커트에 커다란 연보랏빛 스카프를 어깨에 걸치고 여유롭게 커피숍을 나갔다. 그 옆의 할머니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밤색으로 물들였다. 검은 바지에 짧은 재킷을 입고 문고본을 읽는 모습이 정년퇴직한 커리어우먼 같다. 그 옆 사람은 옛날 영국의 가정교사처럼 보였다. 정말로 추억의 패션이다. 그리고 아무도 남들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그대로 휘적휘적 걷는다. 덧없는 복고풍 분위기가 감도는 그 적적함이 오히려 아름답다.

 

요리에는 기세라는 게 있다 -

, 앞으로 몇 년이나 내 힘으로 돈을 찾을 수 있을까. 비록 속도는 느릴지언정 혼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자.

변두리 장터의 서민적인 맛이 내 입에 딱 맞았다.

먹다 남은 무절이 등을 쟁반에 받쳐 들고 어디서 밥을 먹었는가 하면, 멀쩡한 식탁을 놔두고 텔레비전 앞 소파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먹었다. 내 가족은 텔레비전임에 틀림없다.

탱크톱 아줌마가 때밀이 장갑으로 내 몸을 북북 문지른다. 이윽고 때가 부슬부슬 나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느긋하게 드러누운 나와는 반대로, 아줌마는 온 힘을 다해 때를 밀고 있다. ‘가마 타는 사람 따로, 메는 사람 따로아줌마의 땀도 부슬부슬 떨어진다.

 

아무래도 좋은 일 - 2003

벌떡 일어나서 신경안정제를 한 알 더 먹었다. 나는 약으로 조종되는 인형이다.

혼자서 , 이제 됐어하며 만족스러워했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지만, 사사코시에게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이 지나치게 많다. 사람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는 부엌에 있었고 아버지는 붉으락푸르락하던 차였다. 섣달그믐에 어른들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아이들은 쭈뼛쭈뼛했다. 갑자기 아버지가 원탁을 뒤집어엎었다. 상이 엎어지던 순간의 기억은 없다.

여하튼 텔레비전이 없었던 우리 집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눈 돌릴 데가 없었다. 평상시 아버지는 자식들의 잡담을 금했고, 식사 시간에는 본인이 혼자서 설교를 늘어놓았다. 내 인생 가운데 가장 비참한 식사였다. 어린애였던 나는 그때, 가장 비참한 것 속에 익살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무섭다. 늙으면 어제 먹은 음식을 까먹어도 어릴 적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진다는데.

 

붉은 수수죽도 귀한 음식이었다. 보릿겨라는 것도 먹었다. 보릿겨 경단은 끔찍했다. 톱밥을 빚어서 찌는 편이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에 설을 맞이했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었다. 갓난아이도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버지는 패전 후에도 아기를 만들었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그 시기다. 어이가 없다. 굶으면 굶을수록 인구가 늘어난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북한과 아프리카의 배만 불룩 튀어나온 갓난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온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어째서 아이를 낳느냐고 묻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아버지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으로 돌아오던 해에 네 살짜리 남동생이 죽었고, 그다음 해에는 오빠가 죽었다. 영양실조였을 것이다. 오빠가 죽은 이듬해 여름, 아버지는 엄마에게 또다시 자식을 낳게 했다. , 생명이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미국인은 비만 때문에 수명이 짧은데, 아프리카는 기아 때문에 평균수명이 짧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뚱뚱한 미국 애를 아프리카 애한테 먹이면 되잖아요.” 섬뜩하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에 욕심을 낸다.

 

나의 체면 때문에 비디오 대여점 방문을 포개했다. 가게의 회색 비닐봉지 한가득 비디오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오우메카이도를 지나가는 섣달그믐의 내 모습이, 꼭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상상되었다. 나의 체면이란 世間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세간이 되지 않으려고 평생토록 무던히 애써왔다.

나는 노인이 된 이래 적어도 자세만은 똑바르게 걸으려고 언제나 신경 썼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딱 마주친 지인이 뭘 그리 거만하게 으스대며 걷는 거야.” 세간은 어렵다. (세간 : 세상 일반)

 

~, 일 안하고 싶다!’

나는 일부러 개미집을 노려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몰래 쾌감에 취한 모습을 오빠에게 들켰다. “저리가라는 소리를 듣고 엉덩이를 비켜 앉았더니, 오빠는 반바지에서 고추를 꺼내 내가 발견한 개미집을 향해 높은 곳에서 오줌을 콸콸 쌌다. 정말로 분했다. 오빠가 열한 살로 죽어서 안타깝다. 개미집을 좀 더 많이 찾아내 오줌을 싸게 해주고 싶다고, 예순다섯의 할머니가 된 내가 수세식 화장실에 앉아 생각한다. 오빠는 가엾게도 영양실조로 죽었다.

 

*** 어릴 적부터 사람은 때가 되면 죽는다고 믿어 왔지만, 요즘은 때가 되어도 죽지 않는 듯하다. 나는 점점 소신이라는 걸 가질 수가 없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이웃집에 희고 붉은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아무래도 이웃은 부자인 것 같다. 매화 손질이 너무도 잘되어 있는 나머지 한 송이 꺾어 달라는 말도 못 꺼낼 정도였다.

일을 의뢰받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가며 버틴다. 그러는 내내 위장이 뒤집힐 듯 배배 고여서 이따금씩 위산이 역류하기도 한다. 몇 십 년을 매일같이, 위장의 재촉을 받으며 내 인생은 끝나리라. 일이 좋다는 사람이 있다면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넌 일단 시작하면 빠르잖아. 빨리빨리 해치우면 편할 텐데.” 상식적인 친구들이 충고를 하면 싫어, 그렇게 일하면 부자가 되는 걸.” “부자 되기 싫어?” “, 싫어. 근근이 먹고사는 게 적성에 맞아. 부자들 보면 얼굴이 비쩍 말랐잖아. 돈이 많으면 걱정이 늘어서 안절부절못하는 거라고.” **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나는 옛날부터 부업을 좋아했다. 재단한 종이를 나무 주걱으로 접고 풀을 발라 봉투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하지 말하고 해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여하튼 나는 궁상맞은 일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캄> 류창희 수필

 

노노코는 40대 중반 무렵 희귀 난치병에 걸려서 신체장애 1급이 되었다. 노노코는 장애인인데도 거만하다. 언젠가 노노코에게 왜 그리 못되게 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 내가 못된 게 아니라, 병이 못된 거야.”

자식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전혀 기대지 않는다. 의지가 안 되는 자식들이 아닌데도. “그 애들한테는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까 나는 페페오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잖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문어는 섬뜩하고도 선정적인 풍속화를 연상시켰다.

노노코는 신체장애 1급이 된 이후 하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재활 치료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연주회에 나가는 것 같지만, 절대로 친구들을 부르지 않는다. 모두들 저렇게 건강한 병자는 처음 본다고 말한다. “노노코는 어째서 저렇게 활기가 넘칠까?” 페페오씨에게 물으니 친구들이랑 있을 때만 저래. 상태가 나빠지면 화를 내면서 어째서 병에 걸렸을 때 살린 거냐며, 왜 그때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느냐며 울어라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격 나쁜 인간 (2004) -

눈을 떴는데 몇 시인지 모르겠다. 또 침대에서 발로 커튼을 열어젖혔다. 시험 삼아 해보았더니 아직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석에 드러눕기라도 하면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는 지금의 건강을 얼마나 눈물겹게 그리워하게 될까?

 

수도요금 때문에 수도국에 갔다. 제정신인데도 술 취한 듯 시비조로 다그쳤다. 화나서 내뱉은 말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격이 나쁜 인간은 바로 나라는 확신이 들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나는 화난다고 마구 내뱉지 못해 썩는다. 골병으로) 하지만 나에게도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 위사람 불러!”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아내와 자식이 있다. 수도국 직원은 재수가 없으려니까갱년기 히스테리 할망구!”라며 내 험담을 늘어놓겠지. 미안하지만 갱년기는 끝난 지 오래다. 늙은이는 공격적이고 언제나 저기압이다.

 

샌들을 질질 끌며 걷다 보니 내 발소리를 듣는 건 퍽 쓸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게 영감은 언제든 기분 좋은 법이 없다. 얼마 전 이 문방구에서 이부세 마스지가 쓰던 원고용지를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부세 마스지 원고용지 있어요?” “없소왠지 어색하고도 비굴한 기분이 들어 멍청히 서 있었다.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소.” “어떤 거였어요?” “회색 선이 그어진 거.” “가장자리에 이름이 인쇄되어 있어요?” 영감은 물어뜯을 기세로 이를 드러내며 선생은 그런 천박한 짓은 안 해라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름을 인쇄하는 건 정말로 천박하다. “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되면서 원고용지 같은 건 안 팔리게 되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를 쓰는 현상을 나 보고 책임지라는 말투다. “, 만년필 카트리지 주세요.” “만년필이 없으면 어느 카트리진지 모르잖소.” “가지고 왔어요. 이거예요영감은 되돌아와서 하고 중얼거렸다. 지금은 청흑색 잉크가 들어 있긴 하지만, “검정색 있어요?” “만년필은 청흑색이 당연하잖소.” 지당하신 말씀이다. 나는 왠지 영감이 좋아졌다. 작은 플라스틱 상자, 지우개 등을 사며 깎아주면 안되느냐고 묻고 잔돈을 뺐다가 큰돈을 내밀었다가 번복했다. 잔돈을 받아 가게를 나서자 어째서 물건을 한 번에 안 사는 거요. 당신 때문에 내가 세 번이나 돈을 넣었다. 뺐다 했다고!”라는 고함이 들렸다. 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영감을 좋아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살짝 미소 지었다. , 늙은이는 정말로 항상 저기압이다. 마음속으로 영감님, 힘내요하고 응원했다.

 

부모님은 바나나를 꼭 반쪽씩만 주셨다. 한 개를 다 먹으면 이질에 걸린다고 했다. 베이징의 바나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타이완에서 왔을까? 죽기 전에 어떻게든 한 개를 온전히 먹고 싶었다.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친구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바나나를 반쪽씩만 먹었다고 한다. “이질 걸린대.”

그 뒤로 바나나는 자꾸만 저렴해졌다. 값이 싸지니 아무도 이질 같은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게 되고 나서야 나는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 바나나 우유를 의무처럼 마신다. “, 맛없다.” 그래도 배는 든든하다.

 

아들이 한창 잘 먹던 시기에는 우리의 식탁은 물론이고 인생도 풍족했다.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찼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을 추억하다 보면 마음이 아릴 정도로 슬퍼진다. 그 당시에는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기만 했는데.

 

난 죽어 마땅한 못된 할머니가 될 게 틀림없어.” “괜찮아, 누구나 때가 되면 죽은 법이니까. 괜찮아.” 노노코는 나를 위로했다. 뭐가 괜찮다는 걸까.

놀랍게도 문 앞에서는 나한테 손까지 흔들었다. 아아, 곤란하다. 나는 저 영감이 언제나 저기압이라서, 영감을 대할 때면 조심조심 있는 힘껏 용기를 쥐어짜야 해서 좋았던 것이다. 내일부터 살아갈 용기가 없어진 기분에 잠겨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한 건 필요 없어 - p98

암에 걸려서 머리카락이우수수 빠진다. 나는 암에 걸린 직후 머리를 2센티미터 정도로 짧게 잘랐다. 그런데도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빠진다. 아침밥을 먹고 미용실에 갔다. “나는 암 환자예요. 머리카락이 자구 빠져서요, 면도기로 밀어줄래요?” 소심한 남자 미용사는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징그러우면 안 해줘도 괜찮아요.” “아니요, 아닙니다.” 미용사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구라도 암에 걸릴 수 있는데.

눈 깜짝 할 사이에 민둥산이 되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이만큼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은 없었다는 것. 왠지 모르게 이게 바로 나라는 순수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놀라지만 않는다면 평생 까까머리로 지내고 싶을 정도다.

알고는 있었지만, 까까머리가 되자 10엔짜리 동전만 한 땜통이 드러났다. 이 상처는 어린 적 남동생이 내 머리카락을 죽을 둥 살 둥 잡아 뜯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남동생이 난폭하다고 속단해선 안 된다. 내가 성질 나쁜 애였던 거다. 얼마 전 예순 넘은 남동생에게 땜통을 보여주었다. “이거 기억나?” “, 미안. 기억이 안 나는데라고 변함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미안해했다. 살인자가 반드시 나쁜 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을 죽이게끔 부추기는 악한도 있는 것이다. 나는 한 치 앞은 암흑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금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은 성질 급한 인간이다. 그러나 남동생은 훨씬 선량하게 이 세상을 믿었다.

 

그 착하고 얌전한 남동생이 요전에 우리 집에 왔을 때 아침은 빵인데 괜찮아?” 하고 묻자 , 헤헤, 하고 멋쩍게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나는 밥 아니면 안 되는데. 빵은 배가 안 차서” “된장국도 필요해?” “밥엔 된장국이지. 다른 건 필요 없어. 마무거나 괜찮아” “반찬은?” “샐러드 같은 것 말고. 채소는 나물이면 돼” “평소에는 뭘 먹는데?” “딱히 뭘 먹는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저기, 헤헤, 전갱이 구이정도야. 정말로 특별한 건 안 먹어” “말린 전갱이 먹을 땐 무도 갈아서 곁들여?” “누나, 그건 당연하잖아. 안 그래?” “그리고 또?” “데루코는 요리 솜씨가 없어서 낫토 정도밖에는 못 만들어” “낫토는 있어, 고명은 양하로 얹어도 되지?” “냄새나는 건 싫은데. 낫토엔 대파잖아. 쪽파는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고. 고명은 대파 흰 부분으로 해야지. 진짜로 특별한 건 필요 없다니까.” “그리고 또?” “다시마조림 같은 게 있으면 좋지” “그런 거 없어. 김은 어때?” “좋지. 근데 난 맛김은 안 먹어맛김이 있었던 건데. “밑반찬은 무절이밖에 없어” “무절이는 너무 달아서뭐라고? 이 녀석은 심약한 인격자의 가면을 쓴 요지부동의 옹고집쟁이였다.

아침에 내가 먹을 우유에 냉동 바나나를 넣고 간 주스와 빵 한 쪽을 1분 만에 차린 다음, 남동생을 위해 30분이나 들여서 특별한 건 필요 없는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인도 바라나시 라가카페에서 서너 번 마주친 여자가 있다. 그의 일행들이 서너 명이었는데 나보다 서너 살은 위다. 그녀는 밤송이만큼 웃자란 까까머리인데 민낯과 근사하게 어울렸다. 어느 날,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 그녀 일행이 맥주를 마시러 왔다. 호주에서 왔다고 한다. 처음으로 싹싹 밀고 왔는데 그렇게 자랐다는 것이다. 그 순간, ‘, 여행패션으로는 최고다!’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 한국에서 싹싹 밀고 말이다. 인도에 다시 갈 빌미다.)

 

엄마의 손가락은 짧고 굵었다. 아침상을 차리는 와중에 적어도 세 개 이상의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엄마의 대단한 멋인데, 아침밥을 먹을 때면 이미 말끔히 화장을 했다. 어디서 화장을 한 것일까? 거울도 없던 연립주택에서. 그러면 아버지는 배추절임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말하는 것이다. “분 냄새가 나는 군엄마는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골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차 싶은 표정이었다. 한겨울의 차가운 배추절임은 맛있었다. 내 인생은 배추절임을 만들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 일본인의 몸은 어찌 되는 걸까. 명품에는 눈이 뒤집히는 주제에, 사마귀같이 비쩍 말라 휘청거리는 몸으로 아기나 낳을 수 있을까. (2005년에 쓴 글이니 지금 2018년 우리 현실이다)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쪼그려 앉아 주름진 양손에 고이고이 찻잔을 감싸 들고 조심스레 차를 홀짝였다. 눈앞에서 제비가 날아가건 장맛비가 내리건 고양이 같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한 녹차를 멍하니 마시고 있을 뿐이다. (요즘, 나다)

 

아버지는 남동생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죽었는데도,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가는 남동생을 보면 무섭다. 아버지는 남동생처럼 상냥하고 온화한 사람이 아니었다. 면도칼, 살모사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지금 살모사라고 불리는 사람은 나다. 아버지는 잘생긴 편이었는데, 외모는 닮지 않고 눈에 안 보이는 살모사 기질만 닮았다.

 

점심 무렵이 지나서 엄마 요양원에 갔다. 민머리에 모자를 쓰고 갔다. 엄마는 쿨쿨 자고 있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피곤해서 엄마 침대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남잔지 여잔지 모를 사람이 있네.” “엄마 남편은 사노 라이치지?” “아무것도 안 한 지 한참 됐어.” 아무것도 라는 건 뭘까. 왠지 투명하게 느껴지는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더라도 엉큼하게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

*** 눈을 떴더니 몸이 씹다 버리기 직전의 껌처럼 이불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짧은 여행을 다녀와서 곧바로 책 300권에 사인을 했다. 마칠 때쯤에는 당연히 녹초가 되었지만, 나는 이걸로 먹고사는 것이다. 독자는 신입니다. 고맙습니다. 몸은 지쳤는데도 감사의 미소가 절로 우러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속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300번 이상 머리를 조아렸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일주일이 지난 오늘 아침, 내 몸은 껌이 되었다.

 

1년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암이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눈을 끔뻑거리며 친절하게 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셋 중 하나는 암으로 죽는다. 나는 암보다 우울증이 몇 배나 더 힘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몇 배나 더 차가웠다. 주변의 사람들이 점점 없어졌다. 암은 좋은 병이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멜론 같은 걸 사 온다.

 

서른여섯 살 먹은 남자가 배낭을 짊어지고 병문안을 왔다. <겨울연가>비디오 전편을 오후 1시부터 박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보았다. 그 나라는 어쩌면 이다지도 정이 두터울까. 그들은 사랑을 믿는다. 일본인은 사랑을 믿으면 촌스럽다고 한다. 영화도 소설도 부유하는 인물뿐이다. 순애보를 비웃는다. 그 나라는 미국을 좋아한다. 정말로 좋아한다. 툭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미국으로 사라지고, 미국에서 돌아온다. 실수로라도 일본으론 유학 오지 않는다.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그렇다.

 

몇 십 년 전에 지인인 한국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국 여자랑은 연애 안 해요. 한 번 자면 세상 끝까지 쫓아오니까요.” 하지만 그 역시 집념의 사나이였다. 첫사랑 여자에 대한 미련을 17년이나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가 카사노바가 된 건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럽 여자랑 연애하고 한국 여자랑 결혼할 겁니다.” 한국의 아내는 정조가 곧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자는 첫 사랑을 이미지로 기억하고, 마치 수채화 한 폭처럼. 예를 들어 강가에 나란히 자전거 타는 풍경으로. 남자는 자신이 처음으로 안은 여자, 몸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 말을 백번 공감한다. 나를 글씨 잘 쓰던 아이로 기억하는 키 큰 멍청한 소년)

 

껌이 된 채 나는 또다시 절절한 행복에 빠졌다. 지금의 나를, 예순여섯의 나를 이렇게나 행복하게 만드는 한국 드라마는 대체 무엇인가. 한국 드라마를 모른 채, 이 행복을 모른 채 죽었다면 나의 일생은, 아아, 그건 아마도 손해 본 일생이었으리라. 진심으로 고맙다.

 

** 괜찮을까, 돈도 드는데 -

땀에 젖어 눈을 떴다. 눈을 떴는데도 실제로 깨어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치매에 걸리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치매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황급하게 전화기를 든 순간 누구에게 알리려던 것인지 까먹었다. 모든 것이 새하얀 얼룩무늬로 변했고, 얼룩무늬와 뇌가 퍽 하고 터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몸도 머리도 산산이 흩어져서, 오로지 하얀 얼룩무늬만이 우글우글 움직이고 있었다. 꿈속에서 , 엄마도 지금 이런 상태구나, 내가 그걸 몰랐네.’

 

나는 한국 드라마에 재산을 탕진했다. 사실 소심한 나는 무언가에 재산을 탕진한 적이 없었다. 명품에 미친 적도 없고 맛 집을 찾아다닌 적도 없다. 여행도 귀찮아했고 남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겨울연가>DVD를 손에 넣은 이후로 욘사마가 우리 집에 있다는 안도감, 그때부터 DVD를 박스째 사들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한류를 주제로 수다 떨고 싶지만 하하하, 하고 비웃음만 당할 뿐. 고독하지만 행복했다.

 

* 일본 아줌마들은 스스로 한국 드라마를 발견했고, 땅속 마그마처럼 쓰나미 처럼 우르르 몰려들어 한류를 배웠다. 외교관도 훌륭한 학자도 예술가도 못한 일을 아줌마들이 해냈다. 나도 그 물결에 뒤늦게 올라타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아줌마들은 외롭다. 할 일이 없다. 인생은 이제 내리막길이다. 집에는 꾀죄죄한 아저씨가 늘어져있다. 이제는 남편과 자기도 싫고, 섹스라면 지긋지긋하다. 남편뿐 아니라 그 누구와도 자기 싫은 것이다. 몸이라면 더 이상 안 써도 괜찮다. 귀찮고 성가시다. 하지만 사랑은 받고 싶다. 애정으로 한가득 채워지고 싶다. 대부분의 드라마에는 섹스 장면이 없다. 키스조차 드물다. 얼굴을 맞대고 껴안는 정도가 딱 좋다.

 

이성은 모순을 허락하지 않지만 감성은 모순의 마그마다.

일본 아줌마들은 자식의 결혼이나 연애에 참견하지 못한다. 피 끓는 청춘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도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강하다. 자식들은 부모가 반대하면 절대로 결혼하지 못한다. 한국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는 정말로 극성맞다. 일본 아줌마들이 한번쯤 해보고 싶어 하는 행동을 한국 아줌마들이 대신 해준다.

 

전쟁이 끝났을 때 엄마는 30대였고 다섯 명의 자식이 있었다. 자식을 다섯이나 두다니 훌륭한 아줌마다. 전쟁이 끝나고 2년간 우리를 먹여 살린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가재도구를 팔러 암시장에 나갔다. 엄마가 암시장에 가면 아버지는 벽난로에 기대어 콧물을 흘리면서 자식들에게 안데르센 동화나 읽어주었다. 아버지는 종전으로 무기력해졌다. 엄마는 언제나 기운이 넘쳤고, 거기서 번 돈으로 산 수수며 콩깻묵을 보자기에서 꺼내면서 얼마나 장사를 잘했는지 자랑했다. 엄마는 일평생 중 그때가 가장 생기발랄했다.

 

트럭을 탄 중국인이 우리 집을 털러 온 적도 있다. 나와 남동생이 잠든 방 창문으로 훌쩍 들어왔다. 여름이어서 모기장을 쳤다. 아버지가 모기장 밖으로 나가려 하자 권총을 든 중국인이 중국어로 나가면 죽인다.”고 했다. 아버지는 얌전히 모기장 안에 있었다. 중국어를 몰랐던 엄마는 그 틈을 타 반대편으로 몰래 빠져나갔고, 부엌에서 프라이팬과 냄비 뚜껑을 챙겨 들고 다른 방 창가로 가서 두들기며 도둑이야! 도둑이야!” 그 소리에 놀란 도둑은 연두색 식탁보 한 장만 훔쳐 달아났다. 엄마는 기운이 넘쳤다.

 

시골에서 일곱째 아들로 태어나 인텔리의 길만 걸어온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았다. 한번은 집에서 넝마를 잘라 샌들을 자꾸자꾸 만들었다. 열 켤레쯤 완성되자 거리에 나가 늘어놓았다. 그런 다음 나에게 네가 팔아라.” 본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정거리며 지켜보았다.

어떤 여자든 여차하면 아줌마로 변한다. (김광석 부인 서해순이 JTBC에 나와 손석희앵커를 보고 아줌마 건드리면 너도 죽는다.”)

 

엄마는 매일매일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변해간다. 엄마는 치매에 걸리고 나서 고와졌다. 신기하게도 기품마저 생겼다. 치매에 걸리기 전 엄마는 난폭하고 거친 데다 기운이 넘쳤다. 그때 나는 엄마의 옹고집 때문에 괴로웠다. 엄마가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자, 비로소 엄마를 용서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생활은 고되다 -

마감이 나흘이나 당겨졌다고 한다. “사노 선생님은 육필 원고라서요.”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던 중 감기에 걸렸다. 감기니까 당당하게 잤다. 감기가 아닐 때도 나는 지면과 거의 평행한 상태로 지낸다. 나는 근 10년 동안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 1년 동안 누운 채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암 때문에 가슴을 잘랐으니까. 항암제의 불쾌함을 한류로 이겨냈다. 그렇다. 한국 드라마는 머리 쓸 필요 없이 마음만 움직이면 된다.

 

요즘 육필로 원고 쓰는 사람 많이 없어요?” “전혀 없어요.” 문득 돌아보니 내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나도 끝났다. 컴퓨터는 메이지유신보다 격렬하게 전 세계를 뒤바뀌었다. 국어라면 나는 언제나 수를 받았다. 남동생은 미 정도였는데도 딸과 문자를 주고받는다.

 

나는 내 사랑스러운 침대로부터 거의 50미터 반경 안에서 생활한다. 청춘이란 자신의 젊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최후의 여자 사무라이 -

나야, 오늘 집에 있어?” “” “그럼 갈게. 뭐 좀 있어?” “있어딸깍. 모모 언니는 전화로는 화난 것 같아도 사실 평소와 똑같다. 쓸데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모모 언니와 전화할 때는 세 마디 이상 해본 적이 없다. “오늘 집에 있어?” “, 없어” “그래?” 딸깍.

모모 언니는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이다. 유행을 뛰어넘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타일이 똑같지만, 옛날 느낌은 들지 않는다. 혹은 항상 옛날 느낌이다.

옷깃에 카메오 브로치가 달려있었다. “비싸 보이는 옷이네.” “당연히 비싸지, ** 이젠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지 모르잖아?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팍팍 사기로 했어.” 모모 언니는 뭐든지 맛있게 덥석덥석 잘 먹는다. 먹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한 창 잘 먹어야 할 시기에 못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빨리 먹는다.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워

언니야말로 보릿겨 경단은 구경도 못 해봤지?” 언지는 왠지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건 못 먹어봤네.” 왠지 이긴 기분이다.

모모언니는 드라마도 영화도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은 클래식만 듣는다. 아마 연예인은 한 사람도 모를 것이다. 10대에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일흔이 넘도록 켰다. 나는 음약, 특히 서양음악이라면 클래식부터 재즈, 록 할 것 없이 전부 다 싫다. 나는 언어밖에 모르는 사람이라서 가사가 있는 음악만 듣는다.

나는 어린이 된 후에 모모언니한테 서예를 배웠다. 습자를 가르치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언니는 정말로 아름다운 글씨를 쓴다. “서예는 왜 그만뒀어?” “난 글씨본대로 밖에 못 쓰겠더라. 내 글씨가 안 나와. 재능이 없었던 거지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끝내 인정하다니 대단하다.

나 이제 정년까지 261일 남았어. 자기 전에 달력에다 X표 친다니까.” “나는 돈을 받으니까 일할 때는 회사 소유야. 나라는 사람은 없어.” “난 전부 회사가 하라는 대로 했어. 출장 갈 땐 비행기도 탔다고.” 언니는 세상에서 비행기를 가장 싫어한다. “우와, 언니 비행기도 탔어?” “일이니까.” 언니는 돈을 쓸 시간조차 없었다.

넌 돈 많아서 좋겠다.’ 거나 넌 돈이 많으니까라고 한다니까. 40년을 일했으니 당연하잖아. 누가 거저 준 돈이 아니야. 내가 일해서 번 돈이라고.”

, 난 결혼 안 해서 다행이야, 요즘 정말 절실히 느낀다니까. 자식도 없어서 다행이야, 모두들 자식 때문에 고생하는 걸.”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두 번이나 결혼했고, 이혼했고, 변변찮은 자식까지 있다. 계속 침묵을 지켰다.

 

요코가 또 저런다 -

열 받는다. 그게 뭐든 간에 단어를 바꿔 부르면 화가 난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고 하거나 장님을 눈이 불편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호칭을 바꾼들 상태가 달라질 리 없다.

*** 나이를 먹으면 울화통 터지는 일이 는다. 외로운 독거노인은 주변에 화낼 소재가 떨어지면, 점차 천하와 국가를 논하며 울분을 토한다. (요즘 택극기 부대)

모모 언니는 줄곧 역정을 내고 있다. 모모 언니는 집으로 돌아갈 때 요코, 너 자식 참 잘 키웠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역시 모모 언니는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으니 낙천적이라서 좋겠다. 자식이 10년이나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현실을 모르는구나.

 

친구들은 이런 나와 어울려준다. 모두들 나를 참아가며 어울려주는 것이다. 모두들 아, 또 저런다. 남이 어떤 의견을 말하면 나는 반드시 휙 하고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린다.

**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어느 책을 보더라도 스스로를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책을 읽을 때조차 반대편으로 휙 날아간다.

 

정말로 터무니없는 녀석 -

예순여덟은 한가하다. 예순여덟은 찾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럼, 예순여덟까지 기다리며 살아봐) 그렇다. 일흔이 가까워지니 거의 대부분의 남자가 귀엽다. 누구라도 껴안을 수 있다.

 

요즘(2006년 일본)은 개를 산책시킬 때 안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 지구는 망해가고 있다. 생명체로부터 본능을 빼앗으면 끝장이다.

 

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타지도 않은 택시 요금을 냈다.(아일랜드 더블린 이비스호텔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샛길 접어드는 것이 힘들어 1~2시간 정도 진입로를 못 찾고 헤매다가 결국 택시를 잡아 뒤좇아 갔다.)

 

링거를 다 맞고 진료를 기다리던 중에 간호사가 이거 두고 가셨어요.”라며 브래지어 패드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이 병원의 젊은 의사 선생은 근사하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젊은 선생과 만난다는 생각에 옷을 사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서냐고? 나 자신의 기분을 위해서다. “좀 어떠세요?” 의사들은 나쓰메 소세키 시대부터 줄곧 좀 어떠세요?”라고 묻는다. “이 부분이요?” 젊은 의사는 허벅지 부근을 어루만져주었다. 깜짝 놀랐다. 남자가 무릎을 만지는 게 도대체 몇 십 년 만인가. 그리웠던 손길은 한 순간에 끝났다. 앞으로 2년 뒤면 일흔이다. “뭘 어쩌겠다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 얼굴이 붉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 간 첫날 남자 대장에게 얻어맞았다. 교실로 돌아오자 반 전체 남자아이들이 차례로 나를 또 때렸다. 내가 울지 않았기 때문에 다 때린 다음 진짜 안 우네.”라고들 했다. 나는 태연했다. 괴롭힘을 당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대장은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짐받이를 붙들고 땀과 흙 범벅이 되어 함께 뛰어주었다.

 

누구냐! -

우리 집은 나 혼자 사는데도 텔레비전이 세 대다. 일할 때도 침실에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광고가 나올 때만 집안일을 한다. (나는 광고도 보는데, 요코는 절제할 줄 안다.) 텔레비전 앞에서도 집안일을 한다.

냄비도 텔레비전 앞에서 닦는다. 언젠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다 닦은 냄비가 옆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무릎 위의 반쯤 닦다 만 냄비도 같이. 그때는 조금 쓸쓸했다. 그 정도로 텔레비전이 재미있나? 하나도 재미없다. 텔레비전은 정말로 국가의 비밀정책일지도 모른다. 국민을 멍청이로 만든 다음 모종의 음모를 저지르려는 게 아닐까. 9.11 테러가 터진 날 에리코 씨가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에리코씨네는 텔레비전이 없다. 아무리 나라도 손님이 오면 텔레비전을 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빨리 텔레비전 켜봐!” 좁은 우리 집 거실에 비해 지나치게 큰 텔레비전이다. (아이파큰 우리 집)

 

계급이 역시 마음 편하다. 나는 가난한 서민의 딸이라서 분수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세상만사의 기준으로 삼는다. 프라다 가방을 사고도 좌불안석이다.(내 얘기 하는 줄, CCTV같다. 웃기는 것은 며느리에게 가방을 3개쯤 선물로 받았다. 셋 다 에코 백이다. 내가 만날 에코 백만 들고 다니니, 내가 에코 백만 좋아하는 줄 안다. 근데, 사실 에코백이 가장 가볍고 당당하긴 하다.)

 

*** 늙은이의 보고서 -

나 역시 젊은 시절, 마음만은 화사(설렘, , 낭만)했다. 나도 모르게,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순이 넘었다. 화사한 생명 같은 건 완전히 잊었다.

 

결혼식은 어쩐지 애처로운 기분이 든다. 생활이란 화사한 생명과 연을 끊는 것이다. 혼인 신고서를 제출해봤자 단지 같이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은 수수하고 시시한 일의 연속이다. 화사한 마음이 생기면 불륜이다. 부부 생활 중 몇 십 년은 몹시도 괴로우리라는 것을. 하지만 고통스러워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후 때문이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화사한 마음을 건네받지 못하는 동지끼리 툇마루에서 말없이 감을 깎아 먹고 차를 마실 날을 위해서다.

그런 두 사람은 망중한을 즐긴다. 편안하고 안락하다. 화사한 마음 따윈 잊어버렸다. 세월만이 길러낼 수 있는 신뢰, 꽃도 태풍도 뛰어넘어 망중한을 즐길 날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못마땅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아들은 손자가 생겨도 데리고 오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는 마음을 한 컵에 담긴 물처럼 공유한다.

 

무엇을 깨닫건 간에 이제 일흔이라니 이미 늦었다. 나는 남자를 애인보다 친구로 삼기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남자 친구들이 무척 많아졌고, 점차 그들의 가족 모두와 교류하게 되었다. 너랑 안 자서 다행이야.” “잤으면 헤어져야만 했을걸.”

 

스무 살의 남자와 서른 살의 여자가 화사한 마음을 품는 건 괜찮다. 하지만 같은 열 살 차이라도 일흔에 가까운 여자와 예순이 다 된 남자는 안 된다. 할아버지가 인기 있을 조건은 돈과 명예뿐이다.

 

NHK에서 <한시 기행>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나조차도 아는 두보나 이백의 한시를 배우 에모리 도루가 제법 묵직하면서도 격조 있게 읽어나간다. 우리 집은 문풍지가 찢어지면 아버지가 붓으로 한시를 써서 처덕처덕 발랐다.

아버지는 돌돌 말린 두루마리를 스륵스륵 펼쳐가며 외할아버지에게 구혼의 편지를 썼다. 너무도 달필이었던 나머지 외할아버지가 놀라서 엄마를 시집보냈다고 하니, 아버지에게 글씨는 자랑거리였으리라. 에모리가 장중하게 읊는다.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한 잔 한 잔에 거듭되는 또 한 잔이라.” 나는 갑자기 죽은 아버지가 그리워져서 <NHK 한시 기행 100> DVD열편을 전부 사고 말았다. (웃긴데 이해가 간다. 그 아버지는 나와 같은과다.)

예술은 죄다 에로틱하다. 나는 에모리 도루의 낭독에서 화사한 마음을 찾으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의학에서도 뇌가 죽으면 죽음을 인정한다. 나는 반쯤 죽은 사람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사고는 , 이 책 읽었는데라고 마지막에 가서야 떠 올린다.

저거, 그거, 저쪽, 이쪽, 대명사의 연발이다. 동년배끼리 모이면 이거, 그거, 저거, 반쯤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모두들 화사한 마음은 어찌한 것일까.

전철을 타고 둘러보면 젊고 예쁜 여자 앞에는 반드시 할아버지가 서 있다. 저도 모르게 이끌려가는 것이다.

 

할머니는 젊은 미남한테 이끌려가서는 안 된다. 가방을 고쳐 잡거나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사람 앞에 서야 한다. 앉기 위해서다. 화사한 마음보다는 실용을 택한다. 변태 할아범은 공인되어 있다. 하지만 변태 할멈은 실성한 사람이다. (2018. 요즘 매일 보도되는 미투’(고은 이윤택 김기덕 조민기 조재현 등등)를 보며 2007년 사노 요코가 쓴 문구가 보인다.)

 

***** 생활의 발견 -

사노 씨, 앞으로 1년 정도면 죽는데 무섭지 않아?”

전혀, 언젠가는 죽는 걸.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태연한 거야? 두렵지 않아?” “안 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생각해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 벌어도 되는 거야.” “정말로 안 무서워?” “그렇다니까. 게다가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때가 되면 죽으니까.”

나는 행운아다. 담당 의사가 근사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일흔의 할머니가 근사한 남자를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쁜가?

몇 년이나 남았나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2년 정도일까요.” “죽을 때까지 돈은 얼마나 드나요?” “1천만 엔.” “알겠어요,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은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럭키!”, 나는 프리랜서라 연금이 없으니 아흔까지 살면 어쩌나 싶어 악착같이 저금을 했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매장에 있던 잉글리시 그린의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지금껏 오기로라도 절대 외제 차를 타지 않았다.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탄 순간 ,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제 늦었구나!’라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나는 일흔에 죽는 게 꿈이었다. 신은 존재한다. 나는 틀림없이 착한 아이였던 것이다.

산 지 일주일 만에 재규어는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주차가 서투른데 우리 집 주차장은 좁기 때문이다. 너덜너덜해졌을 뿐만 아니라 까마귀가 보닛 위에 매일 똥을 쌌다.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 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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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그리고 겨울. 나는 사노 요코의 책을 읽고 밑줄 그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축복이다

오늘 밥을 먹는 것, 오늘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

오늘 햇살을 받는 것, 오늘 새소리를 듣는 것

그런 소소한 것들에 소소한 감흥이 일어난다.



어떤 일들이 가슴을 짓누르면 숨이 멎을 것 같다.

전에는 이런 때, 혼자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지금은 탄산수를 마시고  트림으로 시름을 내 뱉는다.

그리고 사노요코의 글을 다시 뒤적여본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자식이 뭐라고, 이것 좋아 저것 싫어,

요코의 글은 시원한 트림 맛이다.

 

 

 

 

 

자식이 뭐라고

사노요코 /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아들은 엄마 얼굴을 보고 웃는 일이 없어졌다. 뚫어질 듯 강렬한 시선으로 잠깐씩 노려보게 되었다.

 

- 동물이란 윈래 좀 더 당당하게 죽는 거야. 링거를 맞는 개 따윈 한심하다고 어째서 죽는다고 단언하는데? 아직 모르잖아. 아이가 운다. 어쩌면 부모 앞에서 우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잘 봐두지 않으면 손해일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 운전하며 아들을 곁눈질했다. 그러나 하나코는 죽지 않았다. 아들은 그 광경을 보더니 내 얼굴을 죽일 듯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나이 아이에게는 엄마란 기르는 개보다 못하다, 크면 다른가? 모르겠다)

 

원숭이처럼 소리를 질러댔던 아들은 그녀를 쭉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아들을 한 인간으로서 신뢰하고 싶어졌다.

 

후기를 대신하며 히로세 겐 (사노요코의 아들)

아아, 미안했어. 그렇게 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쓰도록 내버려뒀을 텐데.

미안, 엄마.’ 내가 이렇게 생각할 리 없다. 그녀가 만약 지금 이 이야기의 뒷부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하다. 과장과 허풍을 한층 더 교묘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더욱 많은 낯선 아줌마들이 내가 모르는 나와 친척처럼 되었을 게 틀림없다. 무섭다, 무서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원고지를 팔랑팔랑 넘겼다. 모든 행에 과장과 허풍이 어렴풋이 어른거린다. 거봐, 역시. 이런 게 싫다니까.

하지만 몇 번 반복해서 읽다보니, 어쩌면 내가 본 과장과 허풍이 그녀 안에서는 모두 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차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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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내비아씨의 프로방스제목을 정하기 전에

빙호님이 <불꽃, 지르다>를 추천했다.

왜냐하면 여성작가의 인생과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했다.

맞다! 그런데 순간, 이런 게 생각났다.


어느 날 큰 행사모임에서 돌아온 아들이 정색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어디 가서, 내 이야기 하지 마세요." 

나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사생활이 있어요. 라고.

행사장에서 누가 아들에게 다가와

혹시, 류창희 선생님 아드님이세요?” 라고 아는 척 했다는 것이다.

, 나는 그냥 우리집 이야기이니....

엄마한테는 그런 줄 몰라도, 나는 싫어요.

작가가 자식 이야기에 겁이 나는 이유다.

 

 

 

 

지극히 적게

 

도미니크 로로 지음/ 이주영 옮김

B북 플리오

도미니크 로로 : 프랑스 수필가 : 소식의 즐거움》 《심플하게 산다》 《다시 쓰는 내 인생의 리스트》 《핵심의 기술

 

단순하고 최소한의 것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 이것이면 충분해빡빡한 시간, 계약, 사회적인 압력 제약, 쾌락 추구에 또는 물질적인 부담, 거만함이나 강한 확신, 혹은 교양을 쌓으려는 끝없는 욕심 등의 지적허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한다.

적게 소유하면,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없지만 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 라퐁텐

지극히 적은 것으로 사는 사람. 고귀함이 묻어난다. 지극히 적게 가질수록 우아함, 지성, 즐거운 평화, 맑은 정신을 추구하게 된다. 심플은 삶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꿈이다.

더 빨리, 더 좋게, 더 크게를 외치던 시대가 가고, 심플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시대가 왔다.

 

가볍게 소유하기 - 적게 소유하면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충실한 기분이 든다.

선택은 차선책을 없애는 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질수록 마음은 자유로워진다.

 

내게 어울리는 옷, 필요한 옷만 갖추는 기술 - 우아함은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 몸에 배는 것이다. 옷보다 중요한 것은 잘 가꾼 몸매와 * 고상한 정신이다.

 

가방 - 진정 멋을 아는 여성은 하나의 핸드백. 상황에 따라 필요한 보조 가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뿐.

 

액세서리 - 클래식한 보석류 한두 개. 조악한 것을 여러 개 주렁주렁 달면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주방 - 주방이 잘 정돈되어 있을수록 분주하지 않다.

 

가구를 비우고 여유를 채운다 - 아무리 좁은 방이라도 제대로 가꿀 줄만 알면 비옥한 곳이 된다. 이불, 침대 커버 등, 식구마다 두벌이면 충분. 손님이 올 때는 호텔에서 묵도록 비용을 대 준다. 넓은 집에 사는 것보다 낫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

 

인간이 물건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물건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 시그리 운센트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정원 - (지금 내가 살고 있는 6207) 조그만 정원, 정원은 작을수록 더욱 넓은 세상을 품는다. 최대한 집중하면 작은 정원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양귀비 씨앗만큼 작아져 하늘과 땅처럼 넓은 정원을 신나게 산책하는 상상에 빠진다. -미셸 누르니에 별똥별

세상에서 가장 스마트한 가방, 보자기.

 

많은 재물을 모은 사람은 그만큼 잃을 것이 많다 - 노자

이불과 옷은 가벼운 소재로 (코트가 무거우면 외출이 피곤하다. 네팔에서 슬리핑백이 포근하다)

 

여행의 기술 어떤 기념품을 살지?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 한 곳의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에 친구를 초대하여 여행이야기를 들려줌.

여행의 벗, 작은 침낭과 작은 가방 - 여행용 옷, 가볍고 편하고 구겨지지 않는 우아함 (이세이 미야끼)

과거 일본인은 낮에 번 돈은 그날 저녁에 모두 씀. 무소유. 물건도 모두 가볍고 작게 만들었다.

10평 남짓한 작은 집, 공간 활용 (수도꼭지 여인, 박미선. 틀면 나온다, 방송마다. 그래서 그다음 준비가 없었다.)

 

메모장은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다 - 피에르 닥

종이, 수첩, 메모지 : 표준사이즈

안마당에 장미를 심기보다는 파를 심는다. 검소한 사람과 신비주의 사상가들은 가난하게 때문에 오히려 부유함을 느낀다. (바하가 놀러오면 장난감이 없을수록 좋다. 빈 박스로 기차놀이 혹은 부엌에서 같이 요리하고 설거지하기 등, 나중에 가사일도 같이 할 수 있다)

광고는 인간의 지성을 마비시켜 돈을 낭비하게 만드는 교활한 기술이다. -스티븐 레아콕

정말로 돈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여유도 없다.

나의 취향은 단순하다. 최고의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아일랜드 시인)

 

돈은 훌륭한 하인이자 나쁜 주인이다. - 일렉상드르 뒤마 피스

 

진짜 부자는 이코노미 석으로 여행한다. 진짜 부자들은 천박하게 부유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돈은 무엇을 사기보다는 경험하고, 공부하고, 여행하는 데 써야한다. (나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는 진짜부자?)

 

성인은 메추라기 둥지 같은 집에서 살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으며,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난다 장자 (실천! 실천! 실천하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일상은 순간순간이 소비. 전기 물 비누 화장품 살림도구 음식 약 등등.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 부알로

 

거울을 반들거리게 닦고 또 닦아라. 얼굴이 아름다워진다 - 일본속담 (세수를 자꾸 해라 그럼 예뻐진다. 뭘 찍어 발라도 자꾸 바르니 우리엄마)

 

** 할인마트는 과소비를 부추긴다. 호텔, 레스토랑, 동네 상점 등등 작은 가게에서는 필요한 만큼 적은 양만 사게 된다. (SSG, 비싸니까)

쿠후工夫는 소비하지 않고,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기발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

 

소식하며 간단히 운동하는 습관

식사가 간결해질수록 인생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소식할 것, 쾌활한 사람들을 자주 만날 것.

일본인의 장수 비결, 공주의 사발, 두 장의 다다미, 작은 화로 위에서 끓고 있는 흰 쌀밥과 달걀 하나. -하야시 후미코

일본의 그릇들은 소꿉놀이처럼 앙증맞다. 일본인들이 장수하는 것은 작은 그릇에 음식을 소식하기 때문이다.

날씬한 사람은 소식한다. 어떤 이들은 잼을 발라 먹기 위해 얇게 썬 빵 조각을 가리켜 아가씨(demoiselles)’라고 부른다.

최소20, 식사 시간은 축제처럼 그 자체가 행복한 순간이어야 한다.

 

*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세끼를 먹되, 음식 준비 시간은 3분으로 맛을 느끼는 것은 혀가 아니라 정신이다. * (10분 후다닥 먹기 위해 나는 2~3시간 준비하니, 짜증으로 우울하다. 2016~, 부엌 졸업할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이고?)

 

평범하고 소박한 것이야말로 내게 곧바로 기쁨을 안겨주었다. - 존 레인

친구와 만날 때는 차 혹은 간단한 저녁, 그것도 아주 가볍게. 시원한 와인, 계란 반숙, 토스트, 샐러드 삶은 밤 등으로.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익숙해질 것이다.

 

* 매일 걸음을 아끼지 말자 진리는 너무나 단순하다. 조그만 일도 직접 몸을 움직여서 해보자. 매일 소소한 것이라도 몸을 움직여서.

은근히 불어난 뱃살 배를 쑥 집어넣은 복식운동을 6초 동안 들이쉬고 6초 동안 내쉬기를 여섯 번 (결국, 긴장이다)

몸은 움직이지 않을수록 뻣뻣해지고 기운도 빠진다.

 

외모 * - 외모 가꾸기 소소한 행동들은 면역력을 높여준다. 메니큐어, 메이크업, 목욕.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잦은 샤워정도네) 여자를 변신 생활태도까지 바꿔준다.

적은 것으로 만족스럽게 가꾸는 아름다움 미소만 지으면 충분하다. (이건 150%)

얼굴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는 오일 세 방울 - 눈가 입가 마사지.

 

 

정돈된 삶이 가져다주는 깊이와 기쁨

시간과 에너지를 완벽히 절약하는 법 시간은 멈출 수도, 따로 모아 놓을 수도, 살수도 없다. 일본의 선() 불교는 꾸준함을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일 조금씩 여유롭게.

다이어리에 메모한 내용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이어리는 무엇을 참고하기 위한 것이지 강제하게 위해 적은 것이 아니다. (난 늘 계획하고 적고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마법의 정리 상자 - 그때그때 정리. (신문 잡지 읽기, 편지 메일 문자 카카오톡의 답장, 고지서 지불, 그때그때 하자. 묵히면 숙제 스트레스 - 일주일 단위로 처리)

* 이메일 - 다섯줄을 넘기지 않는다. 구구절절 쓰지 않는다.

* 가방 - 매일 비우고 정리. 탁자 위에 엎어 놓고 버리자. 가방은 자기 관리. 집과 가방 매일 매일. (그게 되냐, 너는?)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일할 시간이 많아진다. 미적거릴수록 시간이 모자란다. 게으름쟁이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 단 1분도 없다. - 모리스 작스


친절하되 분명하게 거절하는 법


다른 사람에게 * 휘둘리는 시간이야말로 낭비한 시간이다. - 보리스 비앙

 

초대를 거절하는 법 - 마음 같아서는 가고 싶지만, 막판에 약속을 취소하는 것보다는 미리 거절하는 것이 낫다. (백번 낫다, 거절하지 못해 마지못해 참석할 때가 매우 많다, 관계가 더 좋지 않다. 미적거리는 것은 초대자에게 여지를 주어 상대방의 시간과 마음을 헷갈리게 한다. 예를 들어 혼사나 동호인 행사 등은 언제나 명확한 의사를 표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구나 그 자리가 장소와 시간의 예약자리면 식사비와 회비 등이 관련된 자리라면 더 빨리 참석여부를 알려줘야 주최 측의 진행에 차질과 오해가 없다.)

 

* 약속, 분명히 한다 일정한 시간 동안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급하면 또 전화가 오게 마련이다. 토 일요일에는 그 어떤 초대도 받거나 하지 않는다. (일요일은 일하는 사람에게는 휴식하는 시간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쉴 권리가 있다)

 

* 같은 날 두 가지 약속을 잡지 않고, 너무 먼 미래에 막연하게 언제~’등으로 약속을 잡지 않는다. 당신의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고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원인이 된다.

 

* 전화는 짧게 - 수다스러운 사람이 전화를 하면, 받지 않는다.  (잘 아는 사람이라면 문자나 카톡으로 먼저 상황을 묻는다. 꼭 수업시간이나 운전할 때, 전화하고 전화 안 받대~” 푸념을 퍼붓는다. 카톡이나 문자 남겨주면 될텐데.... 메너 꽝! 그런 사람들 전화 오면 겁난다)

 

잠깐 낮잠, 잠을 자지 않아도 10분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기운이 샘솟고 개운해진다. 아니면 밖에 나가 잠깐 바람을 쐬어도 좋다. 일명 선 스타일휴식

진정한 무위도식으로 영혼의 사치를 누린다. 멍 때리다. 메일, 업무 보고서 (글쓰기), 집안일 등 모든 일을 오전 11시까지 끝낸다. (방학에만 실천할 수 있는 일) 그 다음 다시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복을 맛보자. 느긋한 사람이 시간 여유라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 에너지 낭비 고지서 즉각 납부, 오늘 글쓰기. 그러면 쓸데없이 우왕좌왕하지 않게 된다.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얼른 해치우고 깔끔하게 잊는 것이다.

 

* 한 번에 하나의 일에 집중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가 가진 것은 아주 약간의 시간뿐이다. -외젠 기유빅

매일 자신의 나아진 외모를 상상해 보는 연습

매일 20번 이상 나만의 슬로건을 외친다.

나는 매일, 그리고 모든 면에서 점점 나은 사람이 돼 간다. (그랬으면 좋겠다.) -에밀 쿠에

쿠에 요법이라 불리는 자기암시. (觚哉고재 我哉아재 나답다).

좀 더 많이’ ‘좀 더 적게너무 추상적이다. (다만 한 페이지라도 나의 생각을 쓰자)

 

* 열정보다 꾸준함이 중요하다.

석 달 동안 매일 열 번씩 폴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글 써야 하는데, 글 써야 하는데.” “걸어야 하는데, 밖에 나가 걸어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930번이나 에너지를 낭비한 셈이다.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지 2분이라는 시간만 투자하면 계산하기, 감사의 글 보내기, 화장 지우기, 샤워하기 등등 귀찮은 일을 끝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실천하는 2’, 그 사이에 삶이 더 풍요롭게 바뀐다.

바쁜 사람들은 시간 관리를 잘한다. 어떤 일을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할지 잘 안다. 모든 행동과 순서의 요령을 터득해 놓는 것이다.

우리는 산이 아니라 돌멩이에 걸려 비틀거린다. - 인도 속담

많은 사람이 큰 것을 해낼 수 있다고 과신하면서 작은 것을 조금씩 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한다.

 

소박함, 꼼꼼함, 겸손함에 대한 찬사 겸손해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융통성을 발휘하며, 중독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다스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다.

 

평범한 행동에도 깃들어 있는 미의식 일상적인 행동에도 주관적인 미의식이 깃들어 있다. 미의식은 스스로 찾고 배워야만 얻을 수 있다. 미의식은 무언가가 자기 마음에 완벽하게 들 때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에 돈으로는 살 수 없다.

 

* 고요한 방, 고요한 멋 입구에 화장실, 싱크대, 창가에 작은 소파, 침대 가까이에 나무로 된 원형 탁자, 구석에 냉장고. 방 안의 모든 것이 지극히 소박하고 간단했지만 결코 밋밋하지는 않았다. -요코 오가와 완벽한 병실(원룸에 필요한 것, 완벽한 결국 인생은 관 하나로 끝난다!)

 

* 일본은 화려한 색깔, 반짝임, 과한 장식을 철저히 배제. 심미적인 것, 자연소재, 전통 종이 창호지 문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 채도가 낮은 색채, 그늘진 구석 같은 소박함을 담은 집이 쾌적하고 사람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맛이 담백할수록 세련된 요리 (재료를 그대로 먹거나 그대로 익힌 것)

안주, 접시 위에 그림 작은 접시에 꽃 모양으로 자른 오이, 삶은 메추라기 알 반쪽, 장밋빛 소스, 미지근한 사케 한잔, 옻칠한 젓가락과 젓가락 받침대 준비 생활이 예술이다. (우리 어머니 늘 요리가 접시의 꽃무늬를 가리는 것을 지적하셨음)

 

*흔적 없는 향취 향수는 기모노에 은은하게 배게 한다. 향을 직접 발산하는 것은 무례한 일.

 

* 몸짓의 미학 행동 하나하나가 섬세함 그 자체. 새끼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으로 아세톤이 묻는 솜 집기, 두 손바닥에 세안용 비누를 올려놓고 거품 내기, 위에서부터 아래로 머리 빗기, 반대쪽 손으로 방향 가리키기 등 빈틈없는 몸짓. 소소하고 세심한 행동이 일상생활을 아름답고 세련되게 만든다.

 

* 일상생활에서 배어나오는 꼼꼼함 차를 준비하는 일, 다기를 닦는 일, 다기를 엎어 놓고 그 위에 뚜껑을 얹어 말리는 일. 삶의 예술로 알뜰함과 우아함. 세심하다라는 표현은 작고 단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절제미.

쓰레기의 부피가 그 사람을 대변해 준다면? - 윤리란 아름다운 마음을 가리킨다. -피에로 르베르디

쓰레기를 잘 접어 평평하게 만들어 깔끔하게 봉투 속에 눌러 담는다. 교토에서는 집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가 작을수록 그 집안의 평판이 좋아진다. (교토 오사카 고베 등을 가고 싶다.)

 

세심한 정리가 가져다주는 비밀스러운 기쁨 -

물건마다 제자리가 있고, 그 자리마다 맞는 물건이 있다 - 프랑스 속담 (세상에 내가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엽서 한 장 방 멋 참조) 설거지한 그릇을 말리고 정리하기, 매일 가스레인지를 청소하고 작은 행주를 빨기.

 

공공장소에서는 큰 꽃 장식, 가정에서는 작은 들꽃으로 장식. 아주 작은 것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찬양. 이 게바아 (일본식 꽃꽂이)최소한의 것으로 아름다움을 내는 기술. 데이지 한 송이 잎사귀 두 개, 이 빠진 잔 하나. 생활공간을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는 저녁 의식-

신은 작은 것 속에 깃들어 있다 - 귀스타브 폴로베르

일본 여성은 매일 저녁 주방을 청소하고, 목욕을 하고, 가운을 입는다. 그리고 무사히 마친 일과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적는다. 일상을 은밀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습관이 되었으면 하겠지만, 지금 일부러 이렇게는 안하고 싶다. 하겠다는 자체가 또 다른 숙제)

 

여성의 미덕? 인내심. 절대로 징징대거나 화를 내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름다움의 완성. 또한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미소를 짓는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고 배웠기 때문. 불행함을 한껏 내보인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도 없고, 오히려 다음 만남을 피한다. (이런 것 지키고 싶다.)

 

진짜 부자는 부를 과시하지 않는다 - (프랑스나 독일은 국기조차 내걸지 않는다. 미국은 금목걸이 금팔찌 면티셔츠 가슴에도 커다란 로고 집집이 깃발, 손짓 발짓 하는 행동도 거하게 으스댐이 몸에 배임. 슬며시는 없고 와락 OK) 마음이 빈곤한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다.

 

절제미가 있는 옷 - 눈에 확 띄는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절제만이 신비함을 준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교토에서 회색은 겸손함을 상징. 일본인은 우아함이 그 사람의 부가 아니라 기품에서 나온다고 생각.

 

말 아끼기 - 말은 가치를 잃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단어로 말하고자 애쓴다.

 

요즘 사람들은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도시인은 삶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말을 한다. 침묵을 지키면 우리의 삶에 더 깊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설명도 하지 말고 불평도 하지 마세요.” (그럼 난 어디에 가서 호소하고 그리고 어떻게 살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징징대는가? 이런저런 상황에 대해, 심지어 날씨에 대해 투덜대는가? 징징대면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쌓여가고 주변 사람들도 부담스럽게 만들 뿐이다.

 

예의와 정중함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말의 힘 침묵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감정을 절제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을 잘 알려면 말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

간결하고 분명한 표현 지적인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고, 짧고 분명하게 대답하며, 말을 간결하게 하고, 목소리는 침착하다.

 

감정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일본인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감정은 거짓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은밀히 간직해야 하는데 겉으로 드러내 놓고 표현해서 무겁게 하는가? 사랑한다면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 슬픔?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져 마음이 다시 안정을 찾게 되어 있다. (인도인의 장례식은 사진을 찍으면 망자의 영혼이 카메라 속에 갇혀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고 생각. 감정표현, 안 하려면 로봇이나 하지. 나는 남의 기쁜 일 축하할 일에 1등으로 하고 남의 마음 아픈 일은 그가 말할 때까지 모르는 척, 기다린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신뢰도 신뢰려니 의리.

과장과 징징거림 -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함.

 

*** 경청 -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다. 조용한 사람은 오히려 존재감이 강하다. 생각을 비워둘 수 있어야 한다.

 

조용한 친구 우리는 같이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일상적인 것에 감탄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는 않는다. 외롭다고 징징대는 사람과 달리,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한 사람은 외롭다는 말로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나는 외롭다는 표현을 참 안하고 산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부족하다. 늘 내 속이 시끄럽기 때문(?))

시간, 고통, 어느 것에 대해서도 투덜대거나 징징대는 법이 없다. 대화를 하면서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았고, 화를 내며 말한 적도 없고, 분노나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 독일 표현주의 화가 브뤼케가 미국 시인 윌트 휘트먼에 대해 쓴 글.

 

말보다는 행동으로 생각은 말로 표현하면 갇히고, 행동하면 풀려난다. - 칼릴 지브란

 

구질구질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말할 필요는 없다. -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말을 하자.

 

진실한 친구 몇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 미니멀리스트는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넘치는 것, 복잡한 것이 괴롭고 천박한 것. 미니머리스트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긴다. (나는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사적인 모임이 없다.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얽매이고 억지로 정과 마음을 의무화하고 책임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아니다,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침해하거나 침해받고 싶지 않다)

 

사회관계? 자주 만자니 않을수록 관계가 오래간다. 약한 사람일수록 남과 같이 있으려고 한다. 강한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다른 사람의 삶에 신경 쓰지 않으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산다. (너무 잘 살고 있네, 쓰담쓰담)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은 몇몇만 있으면 된다 - 거절을 못 하기 때문에 노예처럼 끌려 다닌다. 미니멀리스트는 몇몇 사람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그 외의 사람들은 정중하게 대한다. 독립적인 사람은 친구를 몇 명만 두고 싶어 한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어서다.

 

균형감각 - 너무 착하고, 너무 정직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느라 진을 빼지도 않는다. (이 부문은 나에게 아킬레스건)

 

*** 경쟁심이 심한 사람은 멀리 한다 - 가장 아름답다거나 가장 똑똑하거나, 가장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멀리한다. (백번 공감)

슬픔, 기다려 주는 것이 최선의 도움 - 태양을 잃었다고 울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려, 별을 볼 수 없게 된다. - 라빈드라나트 타고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을 물었다. 물을 때, 일부러 옆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고 묻는다. 그게 한살이라도 더 나이먹은 어른이 할 짓인가. 더는 묻지말고 내가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나를 에어싼 사람들에게 내가 없는 곳에서 어른, 동서, 조카며느리, 조카 구순이 넘은 큰어른께도 틈만 나면, 한 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급기야는, 나에게 "묻기가 조심스러워서 묻는데...." 정말, 조심스럽다면 묻지 않아야 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눈을 반짝이며 묻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 저 사람, 이 사람에게 더는 묻지 말아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니, 이젠 대 놓고 틈난 나면 불쑥불쑥 일부러 내게 묻는다. 저며놓은 상처에 굵은 왕소금을 휙휙 뿌린다. 나는 폭싹 절여 죽을 맛이지만, 나의 차분한 인내심으로 서서히 간기를 뺄것이다. 그는 평생 남의 상처에 왕소금만 뿌리다가 소금단지 안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 용서는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사랑하거나 멀어지거나 -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은 가능한 한 적게 (이순이 넘으면 하던 모임도 사양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비워 가는 것이지 쌓아 가는 것이 아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저녁에 쌓이는 생각은 부정적인 것이 많고, 아침에 하는 생각은 빛나는 것이 많다.

노예가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족쇄가 풀린다. - 마하트마 간디

 

언제, 어디서, 이 시간을 얻을 것인가?

성공의 척도? 바로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다.

향 좋은 차를 마시는 것보다 햇빛, 바람 구름을 맛보자.

 

왜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 사실 논쟁은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아닌 척 해도 마음에서 화가 나거나 서운한 것은 인정욕구)

 

*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강하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정신을 짓누르는 것들을 스르르 녹여 준다.

*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우아한 몸짓, 소나기,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 장미꽃의 향기, 커튼으로 들어오는 새벽빛. 매 순간이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인생이란 결국 소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행복을 담는 작은 그릇 - 자극적이지 않고, 거대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생각이 없는 심플한 인생, 정작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소소함을 통해서다. -자클린 비르

 

쾌락과 기쁨 쾌락은 외부, 다른 사람에게서 오고, 기쁨은 내면,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다.

 

놓아주는 기술 - 눈앞에 닥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위, 혹은 가벼운 마음 -

신은 여기저기에 있다. 그러니 누리기만 하면 된다. - 도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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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 ) 안에 넣었다.

그래봤자, 다 치고 받는 옹졸하고 못난 생각들이지만,

내 마음이 가는 곳에 충실했다.

청소년은 아니지만,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고 마음이 모락모락 따뜻해진다.

정말, 실천하여 몸에 배인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지금부터라도 노년의 필수, 우아함을 갖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