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서핑 찬가

좋은 파도 기다리는 호사로움, 작은 파도 겨우 잡는 즐거움

제1111호
2016.05.12
등록 : 2016-05-12 17:15 수정 : 2016-05-13 15:28
2014년 부산 해운대. 서퍼는 송민·민경식. 김울프



“이렇게 파도가 작은데 어떻게 여기에서 서핑(파도타기)을 해요?” 성급한 사람들이 비웃음을 섞어 묻는다. 하지만 호수같이 평온해 보이는 바다라고 해도 조금씩 출렁대고 있다. 사소한 바람이 파장을 만들어 너울이 되고 해안에 도착하여 파도가 되는데, 수심이 급격하게 얕아지는 곳에서는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생긴다.


유명한 서핑 장소는 그곳 해저 지형의 특성, 바닷속 저질(밑바닥을 구성하는 소재로 펄·모래 등)의 특성 덕분에 양질의 파도가 다른 곳보다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서핑으로 유명한 장소에 도착했는데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없다면 제때 오지 못한 것이다.

 

서핑으로 유명한 장소라고 해도 늘 파도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파도를 타는 사람들은 바람과 너울 주기, 파도와 조석의 흐름을 읽으며 파도를 찾아다닌다. 파도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있었고,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지식이 전해내려와 서핑이라는 문화가 바닷가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서핑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다와 사람을 알아가는 삶의 방법 중 하나다.


서핑의 첫걸음은 무심하고 가혹하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하기에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창피함을 느끼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나 서핑의 시작은 똑같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파도의 박자에 맞춰 일어서는 그 사소한 것을 해내기 위해 넘어지는 시행착오가 수백 번 축적될 때 스스로 작은 파도를 겨우 잡게 될 것이고, 그 순간 삶의 잊지 못할 즐거움을 선물받을 것이다.


스스로 파도 잡는 법을 알게 되면 라인업(파도 잡는 곳)에서 파도를 기다린다. 파도타기 좋은 장소에 파도타기 좋은 날 도착했다고 해도, 어느 파도나 다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할 것 같은 위치로 가서 파도의 주기를 보며 비교적 큰 파도가 치는 순간에 파도를 타게 되는데, 파도를 타는 시간보다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파도를 탈지 보낼지 고민하고, 지금 이곳이 좋은지 조금 더 위치를 옮길 것인지 고민하는 순간 자신의 명상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고, 타인과 교감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바다 위에서 혼자, 또는 사람들과 같이 파도를 기다리는 호사를 누려본 사람은 바다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그 순간의 추억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의 것이다.


서핑은 좋다. 스스로 파도를 찾아다니는 사이 바다에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서핑은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북한을 제외하고) 지구의 어디든 서핑을 할 수 있는 파도가 있는 곳에, 파도가 있는 날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비관적인 시대라고 하지만, 서핑을 처음 시작하기에 이보다 좋은 시대가 있을까?



“이렇게 파도가 작은데 어떻게 여기에서 서핑을 해요?”라고 말하기 전에 서핑을 시작해보자. 바다에 코를 대고 파도를 보면 작아 보이던 파도가 얼마나 큰지, 처음부터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을,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