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뒤를 돌아봐요 잘 가고 있어요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확인해주는 것은 지나온 길 뒤에 남는 긴 물띠

제1119호
2016.07.07
등록 : 2016-07-07 14:04 수정 : 2016-07-10 11:03      
2010년 전국 연안 항해 일주 중 경북 포항 앞바다의 물띠. 김울프


“언젠가부터 나를 점점 잃어가는 느낌이 들어. 돌이켜보면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 그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고, 지금도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가 그런 고민을 털어놓다니 의외였다. 음악 일을 하며 편한 길을 따르지 않고 오랫동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 고군분투하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나였다. 그가 털어놓은 속마음 덕분에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길 바랐다. 당신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형님, 바다에서 항해할 때 똑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는 줄 아세요? 사람의 시야는 생각보다 넓어서 앞만 보고 갈 때는 방향이 조금 틀어져도 잘 알아차리지 못해요. 차선이라도 그어져 있고 좁은 길이라면 몰라도, 먼바다에선 앞만 보고 달리면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죠. 먼바다에서, 안개가 가득한 날, 주위에 지형지물이나 지표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서 멈추면 안 돼요. 그러면 정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돼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앞이 아니라 뒤를 봐야 해요.”



항해 용어 중에 ‘wake’가 있다. 한국어로는 ‘항적’ 정도로 번역되고, 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물띠를 지칭하기도 한다. 일정한 운동성을 가진 배가 지나간 바다에는 한동안 그 자국이 남는다. 바람과 파도가 거친 날은 거친 대로, 잔잔한 날은 잔잔한 대로 지나온 길에는 선명하게 자국이 남는다. 물띠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고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다. 배가 지나가면 당연히 남는 자국이라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를 모는 사람이 계속 같은 방향인지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형님, 뒤를 돌아보세요. 오랫동안 함께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고, 저를 비롯한 누군가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창피하거나 모양 빠지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느낌이라고 해도, 그렇기에 더 멋있는 것 아닐까요? 오랫동안 영화일을 했던 제 친구가 그랬어요. 다음 장면이 뻔한 영화는 재미없다고요. 그래서 저는 꽉 막힌 좁은 길보다 바다가 좋아요. 필요하지도 않은 힘을 얻기 위해 뭉치고 다투며 줄 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형님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 같아요. 바다는 신기한 공간이죠. 정말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느껴도 실제로는 밀려나고 있죠. 그렇다고 틀린 길을 가는 건 아니에요. 생각만큼은 아니지만, 잘돼가고 있어요. 뒤를 돌아보세요. 잘 가고 있는 거예요.”



뭔가 멋진 말을 해버린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들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물띠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