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에 태어나

한해마다

한 걸음 한 걸음

골목 골목 돌아 돌아

병신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작은 풀꽃소녀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꿈보다

훨씬 더 많이 펼쳐진 꿈동산을 둘러 보았습니다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님, 님, 님들 .....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날마다

'사무사, 무불경'으로

정성스럽게 살았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병신년의 시작입니다

온 길을 되 돌아 갈 예정입니다

설령, 초심의 그 길이 험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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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야화(夜話)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노랫말처럼 오늘도 정처 없이 재주를 넘는다. 나는 좋은 년 다 놔두고 하필이면 병신년에 태어났다.


별나라에 얼굴이 열한 개 달린 보살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비위를 맞추다가, 하나의 신에게 너무 집중을 하는 바람에 그만 다른 신들의 이야기를 놓쳐버렸다고 한다. 그 벌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수만 수억 개의 얼굴들에게 각각 맞는 얼굴로 기쁨을 주라는 명령을 받은 신이 바로 원숭이 신()이라고 들었다.


띠 동갑인 고모는 늘 잰걸음 치는 나를 애처롭게 여긴다. 어쩌니 너나 나나 애()가 많은 잔나비 띠인걸. 그저 누가 보나 안 보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베풀어야 살 수 있는 걸. 팔자거니 여겨라.


어린 나에게 팔자타령은 가혹했다. 나는 유년과 청소년기를 창경궁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봄이면 벚꽃놀이를 나온 상춘객으로 붐볐는데, 그 때문인지 동물원 원숭이에 견주었다. 조카딸인 내가 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며, 원숭이의 호시절은 따뜻한 봄날이라고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고모의 말대로라면 나는 봄 소풍 볼거리에는 끼지 못했다.


한 여름 삼복 중 유월 스무 나흗날, 저녁 먹고 설거지 할 무렵에 나는 태어났다. 원숭이에게 여름밤은 막 내린 유랑극단과도 같다. 모닥불 가에 누워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동짓달 스무 나흗날 밤의 병신생 남자가 별똥처럼 내게 떨어졌다.


여름밤보다 더 볼거리가 없는 동짓달, 두 병신(丙申)생이 합궁을 하였으니 우리부부는 서로 잘 하려고 고만고만하게 육갑을 떨어야했다. 육갑(六甲)은 우리 부부에게 있어 끊임없는 노력이다. 오죽할까 그 자식에 있어선. 나의 두 아들은 제도권교육에서 결코 우등생이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민첩하고 남 다른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순전히 어미 아비의 원숭이 띠 기질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즐겁게 이끄는 슬기로움을 지니고 있다.


남의 삶을 훔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모든 동물 앞에 군림하며 신령 행세를 하는 범띠 사내아이로 태어났더라면, 혹 기를 펴고 호쾌하게 살아졌을까. 가끔은 진리의 빛을 발하며 운명까지도 지배하는 여의주 하나쯤 물고 있는 용도 그려봤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한다. 순발력만 있으면 빗겨갈 수 있다. 숙명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도전해 보는 거다. 우직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황소도, 자신을 남에게 베풀어줌으로써 더 풍부해지는 돼지도, 새벽을 알리는 정확성으로 번영하는 닭도 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때론 부러운 이들이 있다. 부지런을 떤 만큼 실적도 크다. 고지의 목표물을 정해놓고 백발백중으로 적중시키는 이들이다. 언제나 새로운 탐색으로 진보하며 감각이 새롭다. 컴퓨터 마우스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들은 자시(子時)에 태어났거나 쥐띠들이지 싶다.


산에 오를 때 원숭이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정색을 하며 말하지 말라고 한다. 원숭이가 아니고 잔나비라고 하니 아예 말없이 되돌아 내려가 버린다. 재수까지 들먹인다. 옛 말에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했으니, 잔소리 잔재주쯤으로 분류하여 행여 발이라도 헛디뎌 넘어질까를 염려한 듯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올라가는 것은 떨어져야 제격이다. 실수하는 모습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준다. 주기적으로 겸손을 알리는 경종이다. 무엇보다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일어서는 지혜가 돋보인다. 그 지혜를 닮고 싶어 옛날 임금들은 옥새의 손잡이를 원숭이 모양으로 조각을 하던 시대도 있지 않았던가.


오히려 그로 인해 새로움을 찾아 나서는 개척정신이 있다. 나는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배로 종종걸음 치지만 소득은 별로 없다. 그러나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그저 타고난 운명이려니 여기는 까닭에 고달픔을 에너지로 가동시킨다.


처음 서는 무대처럼 설렘으로 하루를 연다. 어느 보살처럼 직분을 다하자는 심산이 아니다. 몇 사람만 함께 있어도 그냥 그대로 신이 난다. 팔자땜인가. 나는 옛 고서에 박제된 성현들의 말씀을 빌려 마음의 지혜를 얻는 교량 역할의 일을 하고 있다.


원숭이 신은 원만한 보살성품이라 했으니,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띠를 지닌 이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싶다.


육십갑자(六十甲子)안의 정겨운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얼!


병신년 육갑 한번 짚어보자.



 

류창희의 <<매실의 초례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