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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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숨 참기’ 연습하며 바다로 순간이동

딸꾹질 전까지 기절 걱정 불필요… 물속에서 느끼는 멍~한 행복



제1115호
2016.06.10
등록 : 2016-06-10 16:02
2014년 필리핀 세부 모알보알에서 프리다이버들이 스태틱(숨 참기 연습)을 하고 있다. 김울프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신체 기관이 어디일 것 같아요?” 프리다이빙 수업, 숨을 참으려는 몇몇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다. 숨을 오래 참기 위한 수업을 돈 내고 듣게 될 줄이야. 한 번의 호흡만으로 물속을 유영하는 단순한 ‘자유로움’ 속에는 호흡을 참아야만 하는 ‘억압’이 있다.


“눈을 감으시고요. 편안한 상태로 머릿속 생각들을 덜어냅니다.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신체 기관은 뇌입니다. 가장 편안한 기분으로 머릿속에서 스위치를 하나씩 끄세요.” 준비 호흡을 통해 몸속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고 조금씩 산소 농도를 높일 것이다. (그렇지만 초과호흡을 하면 호흡충동을 느끼기 전에 의식을 잃을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산소가 부족하다고 바로 의식을 잃지 않습니다. 한계에 이르면 딸꾹질과 함께 몸이 들썩일 것이고(Contraction·콘트랙션), 운동조절 기능 상실(LMC)이 오고 난 다음 기절(BO)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섭지만 친절한 안내 덕분에 무거워진 마음이 이내 조금씩 가벼워졌다.


“얼굴을 물에 담그거나 눈 밑에 물을 적시는 것만으로도 잠수 반사(MDR)가 일어납니다. 맥박이 느리게 뛰고, 말초 혈관이 수축하면서 혈액은 주요 장기로 몰려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물에 잘 적응하도록 설계돼 있어요. 다만 훈련이 필요할 뿐입니다.”


물속에 있는 동안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져나갔고, 중요한 것들도 머릿속에서 지워져나갔다. 물속에서는 멍~하게 행복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이 호흡충동으로 인한 운동조절 기능 상실인가 싶어 얼른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내 컨디션은 언제나 최고 상태가 아니므로 결과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 따위 아무렴 어떤가.


눈을 감고 숨을 참으며 억지로 뇌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호흡의 ‘억압’ 때문인지 머릿속의 ‘자유’ 때문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일상의 위로가 되는 순간인 것 같아 절로 미소짓게 된다. 샤워할 때 한참 물을 맞으면서 잠수 반사를 끌어낸 뒤 호흡을 멈추고 머리를 감거나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다음 역까지 갈 때도 숨을 참는 명상으로 남들 몰래 잠깐이나마 바다에 다녀올 수 있다. 언제나처럼 콘트랙션이 오기 전에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