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 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요코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사람은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 - 나는 알고 싶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죽으면 용서하게 될까. 사는 게 훨씬 더 피곤하고 귀찮잖아. 그래도 죽는 건 무서워. 죽을 날이 코앞에 다가오자, 죽으면 돈이 안 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방을 휙 둘러보니 전부 돈을 주고 산 물건뿐이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지금껏 돈을 위해 일했다니.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일을 하고 있지만, 돈은 필요 없고 취미로 일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차피 찔끔찔끔 모아온 저금도 죽으면 쓸모없다. 암이 재발해서 뼈로 전이되었을 때, 의사는 죽을 때까지 치료비와 간병비로 1천만 엔 정도 든다고 했다. 일흔 쯤 되면 더 이상 나에게 돈 들 일은 없겠지. 나는 항암제를 거부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불쾌한 1년이라니. 연명하더라도 아까운 짓이다.

*일흔 전후는 딱 좋은 나이다. 아직 그럭저럭 일할 수 있고 스스로의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저녁 식사 때면 반드시 설교를 늘어놓았다.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거라.” 아버지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엄마는 많이 힘들었다. 부모가 일찍 죽는 것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부모가 일찍 죽으면 마음껏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아버지가 오래 살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 암 재발 선고를 받은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자동차 매장에 들렸다.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그때까지 외제 차는 절대 타지 않았다. 중고 외제차를 사는 녀석들이 가장 싫었다. 내가 들른 곳은 외제 차 매장. 그곳에 잉글리시 그린의 재규어가 있었다. 나는 그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내 마지막 물욕이었다.

사실 근본이 가난뱅이인 나는 물욕이 없다. 식욕도 없다. 성욕도 없다. 더 이상 물건이 늘어나도 곤란하다.(나다) 이제 남자도 지긋지긋하다. 나이 일흔에 남자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 비웃음을 사겠지. 앞으로 남자를 사귈 수나 있나? 아뇨, 못 사귑니다만.

나는 암보다 우울증이랑 자율신경실조증이 훨씬 더 괴롭고 힘들었다.

* 정신에 관련된 병은 차별을 당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진다.

 

나는 왼쪽 다리가 아프지만 오른쪽은 괜찮다. 요즘 자동차는 오른발용밖에 없다. 나는 스스로 재규어를 몰며 굴뚝 상태로 되돌아갔다. 덤으로 택시비도 아꼈다. 나는 거의 일평생을 지구와 평행하게 살아왔다. 드러누워서 책이나 텔레비전, 빌려온 비디오를 보았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이불을 턱 밑가지 끌어당기고 하루에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아아, 행복하다.” 다리가 아픈걸, 암에 걸렸는걸. “그래도 행복하단 말이야

 

선생님,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죽고 싶지 않아요.’ 하며 울지 뭐야. 난 그런 죽음은 보기 흉해. 아버지는 죽음에 대한 미학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본인의 신념대로, 아우슈비츠의 수감자처럼 뼈만 남은 채로도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혼자서 벽을 짚고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조용히,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죽었다.

 

비겁함이 가장 나쁘다 - “사노씨, 가슴 두근거릴 일이 없어진다는 건 쓸쓸하네요.” “, 마지막으로 두근거린 건 언제쯤인데요?” “어느 날 문득 두근거림이 없어졌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나뭇잎이나 조그만 꽃을 보고 가슴이 뛰어서, 나이 든다는 건 청아한 일이라고 스스로 감동하곤 했다. 동년배 친구들 중 가슴 두근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일흔의 두근거림은 왠지 엉큼하다. 진짜 엉큼하다. 피카소는 죽기 전에 젊은 연인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남자들이란 원래 그렇다며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돈과 재능이 넘치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 돈도 재능도 색스어필이다.

 

죽음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건만, 남은 날이 2년이라는 소리를 듣자, 그만 귀가 솔깃해져서 여기저기 그 말을 퍼트리고 다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내 주위의 세상이 스웨터를 뒤집은 듯 친절해졌다.

 

지금처럼 노인을 공경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라, 쓸모가 없어진 사람은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나라에 태어난 것은 비극이다. 적어도 내가 어릴 적에는 노인들이 당당했다. 요즘은 부모를 봉양하고 싶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부모가 죽으면 재산 싸움을 벌인다.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다. 옛날에는 노인의 자리와 역할이 있었다.

암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그러자 수치가 일반인과 똑같아졌다. 암은 걱정이 많으면 안 되는 병이다. 의사는 정말로 열과 성을 다해 병을 치료하려 했다. 나는 의사의 웃는 얼굴을 위해서 건강해지고 싶었다. * 아무리 죽으려는 의욕이 넘쳐도 여간해서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 노인은 망상으로 마음껏 두근거릴 수 있는 특권계층이다.

 

*** 끊임없는 불꽃놀이 - 차라기보다 오랜 세월 길러온 애견 같은 느낌이었다.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낡은 차를 떠올리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난 아직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차 사랑이 없나보다. 나는 매정하다.)

 

나는 그녀와 20년 동안 밖에서 만나 밥을 사 먹었는데, 전부 내가 냈다. 한 번도 얻어먹은 적이 없다. 둘 사이에 그런 규칙이 어느 틈에 생겨버렸다.

그녀는 F1 엔진을 장착한 경차처럼 활발하다. 아니, 그보다 침착성이 없고 줄곧 시끄럽게 떠든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여하튼 일방적으로 떠들어댄다. 남들의 대화에 참여해 공통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 없다. (ㅇㅇㅇ, 없으니 뭐든 없으니 버림받을까봐 불안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모두들 꺼려하는 여자와 어울리는 관대한 나 자신에 도취되어 그녀와 만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혐오스러운 나 자신.

 

그녀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반응한다. 연속성이라는 게 없다.( 생각 없이 지껄인다. 이런 사람들 뒤끝이 없다. 막무가내다. 딱 한사람 안다, 나는)

마치 음악과도 같은 인생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에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그래도 가끔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넌 나를 무시하거나 심술궂게 굴 때가 있어.” 그 말대로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악연으로 맺어진 벗, 혹은 피붙이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쩨쩨함과 욕심을 빼면 그녀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불꽃처럼 타오른다. 끊임없는 불꽃놀이다. F1의 엔진이 아니고서야 유지되지 못한다. 구두쇠는 쩨쩨한 인생밖에 살지 못한다. “있잖아, 프라다 스웨터 나 줘.” 그녀가 어제 말했다. 내가 곧 죽을 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나는 웬일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지나치게 정직했기 때문이다.

 

모모언니는 나보다 일곱 살 많은데, 옛날 일본의 좋은 부분만을 모조리 가지고 있다. 일단 자세가 곧고, 앉아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 * “나는 이제 글렀어. 돈은 있는데 갖고 싶은 물건이 하나도 없지 뭐야. 나이 드니까 욕심이 없어져. 욕심은 젊음인가봐.” 나는 불현 듯 싱글벙글 씨의 성욕은 있지만 정력은 없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같은 혈통이라도 언니에 비해 나는 품위가 없다. 품행도 단정치 못하다. 말본새도 거칠다. 모모 언니는 *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자연스럽게 경어를 쓰며 아름다운 일본어를 구사한다. 인간에게 언어란 매우 중요하다. 언어만이 인간을 증명한다고도 할 수 있다.

 

입버릇이 나쁜 인간은 고릴라보다도, 소보다도 못하다.

모모 언니는 욕심이 없다. 욕심 없이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이 모인다. (나다, 바로! 그래서 나는 돈이 많다.) 언니는 부끄러워할 줄 안다. 언니는 수치심이 무엇인지를 교육받은 세대다. 그때는 전 세계가 수치를 알았다. (사하 마지막 수업, 예전에는 그래도 그나마 싸가지라도 있었는데, 수오지심)

* 가난해도 좋다. 나는 품격과 긍지를 지닌 채 죽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모 언니,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주고 싶어. 존경이나 은의(恩義) 같은 걸 말이야.

 

성격이 나쁜 사람은 자기 성격이 나쁘다는 사실을 모른다 - 요코씨도 일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 지금까지 쭉 일 했는걸. 먹고 살려고 한 거야. 지금은 가난하지 않잖아. 그럭저럭 살 만한 정도지. 그래도 일거리가 떨어지면 초조해져. 거봐, 어차피 할 거면 싫다는 말은 안 하는 편이 좋아.

 

아무도 없는 집에서 드라마를 한창 보던 중 문득, 그 행복을 느끼면 깔깔 웃음이 터질 정도다. 아아, 이러니 혼자 사는 걸 도무지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깔깔대며 웃는 와중에도 스스로가 게으름뱅이처럼 느껴져 왠지 껄끄럽다. 보통은 예순이면 정년을 맞이한다. 나는 일흔이다. 게다가 이제 곧 죽을 몸이다.

이제 곧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세상만사에 의욕이 없어진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건 지루하다. 미남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살아 있으면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 절름절름 다리를 절며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핀다. , 천리향이 피었다. 오늘은 추우니 밖에 나가지 말까? 휘적휘적 걷다가 들어간 옷 가게에서 치마를 샀다. 이제 옷 따윈 사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도.

 

나는 암이 전이된 뼈에 듣는 약과 정체불명의 약을 링거로 맞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간다. 그러나 오로지 미남 의사를 보고 싶을 뿐이다. 전에 의사가 어떤 주사를 놓아주었는데, 머리카락이 하룻밤 사이에 다 빠져서 대머리가 되었다. 절의 스님보다도 더 반짝반짝한 대머리다. 스님은 모근이라도 있으니 푸릇푸릇하지만, 나는 모근도 없다. 모자를 사기도 했고 선물도 받았다. 하지만 나한테는 모자가 안 어울렸다. 집에 있을 때는 민머리를 드러내놓고 다녔다. 민둥산이 된 이후에야 내 두상이 예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얼굴만 못났다. 얼굴이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얼마 안 되어도, 여자는 얼굴이 생명이라는 진리를 70년 동안 충분히 느꼈다. 다시 태어난다면 멍청한 미인이 되고 싶다. 얼마 전 거울로 얼굴을 보며 너도 참 이 얼굴로 용케 살아 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대견하기도 하지라고 말했더니 스스로가 갸륵해서 눈물이 나왔다.

 

훌륭하게 죽자고 결심했다. 훌륭한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사무라이처럼 죽고 싶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오늘 밤 결정할 거야>를 듣고 싶다. 요즘은 줄리처럼 나른하면서도 퇴폐적인 미청년이 없다. 모두가 쓸데없이 명랑할 뿐이다. 어째서 그렇게 밝은 걸까. * 옛날에는 젊은 재능이 문학, 그다음은 만화, 지금은 예능에 쏠려있다.

 

나는 세상만사에 감탄하고 싶다.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 따윈 없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가난으로부터 배웠다. 부자는 돈을 자랑하지만, 가난뱅이는 가난을 자랑한다. 모두들 자랑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

눈앞에서 사람이 픽픽 죽으면, 죽음이란 정말로 단순하고도 당연한 일처럼 여기진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된 다음 남자에게 반하고 자시고 할 때에도, 헤어지니마니 소동을 부릴 때에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는 분할 때만 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분해서 흘리는 눈물에는 상쾌함이 없다.

어른이 되면 좀처럼 꼴깍 죽을 수가 없다. 나도 꼴깍 죽지 못한다. 이러다 혹시 안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 병원에서 잘 생긴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 반년 정도일까요.” “뭐라고요?! 전에 2년 남았다고 하셔서 전 완전히 흥청망청 돈을 다 써버렸단 말이에요.” “돈을 다 쓰셨어요? 그것참 곤란하군요.” 호스피스에 들어갈 돈만 남겨뒀어요.” “난처하네요.”의사가 웃음을 터트리는 통에 나도 웃어버렸다. 나는 죽을 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 병과의 장렬한 싸움만은 싫다.

 

나는 저 세상을 믿지 않는다. 저세상은 이 세상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저세상은 이 세상에 있다. 불행히 젊은 나이에 죽은 동창도 있다. 모두들 깜짝 놀라 거짓말 같다고 중얼거리며 장례식장에서 울었다. 저마다의 상념이 교차했고, 상복의 새하얀 손수건이 팔랑팔랑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갔어." “어째서 그렇게 좋은 녀석이한 시간쯤 지나자 더 이상 아무도 죽은 사람을 떠올리지 않았다. “바보 자식, 선생님한테 일러바친 거 너였지?” 실로 활기차고 즐거운 동창회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나는 갑자기 깨닫는다. * 타인의 죽음은 한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친족과 타인은 다르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죽고 내 세계가 죽어도 소란 피우지 말길 -

사노 - 전 이제 일 한 해도 괜찮을 나이잖아요. 다들 정년이 되면 일을 그만두잖아요? 전 일흔이라고요.

히라이(의사) - *** 일을 안 하면 치매에 걸려요.

사노 - 이젠 걸려도 상관없어요.

히라이 -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 그녀 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2인칭 당신의 죽음을 부모 자식 형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

히라이- 죽음을 선고한 후에 심전도를 봤더니 파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해받지 않도록 죽음 선고 전에 모니터를 치워요.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은 자라요. 다시 말해 죽은 후에도 몸의 여러 세포들은 살아 있어요. 때문에 사후 24시간은 시신을 안치하도록 되어 있죠.

히라이 - 죽을 의욕에 불타고 계셔도 쉽게 죽지 않아요.

히라이 - ***** 뇌졸중이 가장 곤란해요. 어느 날 갑자기 퍽 쓰러져서 어벙하게 되지요. 그리고 죽지 않아요. 병세가 심한 경우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 지도 전혀 모릅니다. 가족들도 선생님, 적당히 해주세요.” 그러니 의사도 ***** 어떻게 할까요?” 하는 식으로 3, 5, 10년씩 가는 거죠.

사노 - 잘 생각해보니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에요. 저는 정말로 태연하고 건강하게 지내거든요.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애 아빠는 얼마 전에 저 세상으로 갔는데요. 의사한테 이젠 손쓸 도리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는 그 시점부터 결음을 못 걸었대요.

히라이 - 개중에는 훌륭히 죽은 사람도 있고요. 예순여덟 살의 변호사가 폐암에 걸렸는데 전 이제 1년이나 1년 반 정도밖에 못 살지만, 처리해아 할 안건이 다섯 개나 있어요. 모두 불쌍한 사람이라서 어떻게든 해결한 다음에 죽고 싶어요.” 라고. 감마나이프 치료를 총 다섯 번 했는데요. 그러는 와중에도 남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18개월쯤 지난 후에 돌아가셨어요.

히라이 - 요즘의 일본은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지요

사노 - 그래서 죽는 게 나쁜 일인 양 여기죠.

히라이 - 맞습니다. 60년 전에는 소집영장을 받으면 전쟁터로 나갔어요. 가족들도 아이들도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암에 걸려 갑자기 “1년 남았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으니 깜짝 놀라 허둥지둥 할 수밖에요.

사노 - 남 앞에서는 다들 위선자가 되는 느낌. 어째서 그럴까요. 인간은 위선을 떨기 쉬운 존재라서?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히라이 - 여든이 넘은 할머님께 약을 드리면 선생님, 이 약 평생 먹어야 하나요?

사노 - 누구든 그 나이대가 되어보니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요. 100살 가까이 먹은 사람이 어디에선가 돈을 받았는데,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모았다가 노후를 대비해야죠.” 라고 했대요,

히라이 - 인간도 유전자가 제대로 힘을 발휘해주는 시기는 쉰 살에서 쉰다섯 살 정도까지예요.

사노 - 그 뒤로는 쓸모없다는 거군요.

히라이 - 쉰 실까지는 유전자가 생존, 생식 모드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하게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쉰다섯 살 이후 종족보존이 끝나면 사회적으로는 세상을 위해서, 또 남들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일지언정 생물학적으로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히라이 - 여성의 정신과 육체는 아이를 낳고 기름으로써 절대적인 축복을 받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출산과 양육 없이는 인생의 가장 좋은 부분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남자의 경우, 역할이 끝나면 연어처럼 미련 없이 죽어 없어집니다. 반면에 여성은 대단한 존재예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니까요. *** 남자는 여차하면 자식을 버릴 수 있어요.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의절하기도 하죠. 그러나 여자는 자식이 아무리 죄를 범해도, 살인자가 되더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아요.

 

나는 훌륭하게 죽고 싶다 -

히라이 - 저는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좋아, 나는 훌륭하게 죽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뜻을 세워서 후회하지 않고 깨끗하게 죽고 싶어요. 이른바 무사도 정신이죠.

사노 - 저는 어쩐지 허영 같아요.

히라이 - 그래도 한심한 모습은 그다지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사노 - 옛날에는 생명에 집착하는 게 가장 추하다.’라는 무사의 체면에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죠?

 

자신의 죽음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

히라이 - 50대가 도면 부모님도 늙고 자신의 체력도 떨어져서 노인들의 기분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환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의사가 보는 죽음은 의사의 입장이나 연령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죽을 때에야 죽음의 문제도 끝나게 되지요. 사후에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사노 -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은 생각하지 않잖아요.

히라이 - 기도는 본인의 기분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다는 증거.

 

아들은 마지막 인사까지 생각해둔 듯해요 -

사노 - 이미 사두었어요. 그런데 무덤은 5년만 빌리기로 했어요.

히라이 - 요즘은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 후, 동료나 선배, 친척들한테 인사하러 다니는 게 힘든 일이지요. 장례식도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치러야만 해요. 한 번에 끝나니까요.

사노 - 제 전전남편은 내가 죽으면 아드리아 해에 뼈를 뿌려 줘라는 소리를 하는 바보였어요. “비행기 표는 누가 사는데?”라고 말해버렸죠.

히라이 -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시니까요. 결국 인간학이죠. * 여러 가지를 제대로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은 확실한 死生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죽는 게 뭐라고를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싶어요.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모두 사이좋게 기운차게 죽읍시다.”

 

내가 죽고 내 세계가 죽어도 소란 피우지 말길 -

*** 사노 - 요컨대 나 자신은 별것 아닌 존재죠. 마찬가지로 누군가 죽어도 곤란하지 않아요. 가령 지금 오버마가 죽어도 반드시 대타가 나오니까요. 누가 죽든 세계는 곤란해지지 않아요.

 

아파서 죽습니다 뱃가죽이 아팠다. “, 터진다, 찢어진다고!” 갈비뼈 통증이었다. 같은 죽음이라도, 통증을 견디지 못해 죽는다고, 누군가에게 정확히 말해두고 싶었다.

나는 피를 토한 나쓰메 소세기가 부러웠다. 목 놓아 울었던 마사오카 시키가 부러웠다. 그들은 누가 봐도 정당한 병자였다.

갈비뼈를 장작처럼 끊임없이 쪼개는 고통이 찾아오면 가운 끈으로 내 몸을 기둥에 동여맸다. 그러지 않으면 2층으로 기어올라 베란다에서 집 앞 골짜기로 몸을 던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목 놓아 울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친구가 바닥에서 뒹구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 얼굴이 거무죽죽해.” 거무죽죽하다니? 더러운 똥에 진흙을 섞은 색이야. 색깔은 아무래도 좋아. 보라색이든 파란색이든 상관없어. 진짜 똥이라도 괜찮아. 아프지만 않으면 돼. 나는 이렇게 대답하며 실실 웃었다. 그래도 의사한테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죽어도 상관없지만, 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죽는 게 가장 좋다고 하루에도 몇 번식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아무래도 억울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억울했다. 억울해서 신음을 내뱉었다.

 

호기심이란 천박하다 - 깜짝 놀랐다. 논짱의 말이 사실이었다. 여자가 자기 남자를 아무리 멋지다고 말해봤자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얼간이로만 보이는 게 보통인데. “저기, 입원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호텔 대신이라고 여겨주세요.”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친절인지. 호텔 대신이라니, 호텔보다 호텔스럽지 않은가. “오늘 곧바로 입원할 수 있나요?” “그럼요.” 선생은 소리 내며 웃었다.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돈이 없을 때에도 돈을 잘 쓰는 게 자랑이다.

호기심 때문에 두근거렸던 나는, 딱히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이란 천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혼이 말기에 이르러서 죽어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정신과 의사가 여기 있나요?” “환자분의 가족들이 상담을 할 때가 있어요.” “환자가 아니라요?” 나는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의 고충이 정신과 의사를 필요로 할 정도라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고는 압도당했다.

 

* 내 간호사는 저녁 여덟시가 되면 꼬박고박 수면제 한 알을 챙겨들고 온다. “여기는 죽어가는 사람뿐인데, 안 괴로워요?” “저어, 여기서는 환자분이 돌아가셨을 때 울어도 돼요.” “누가?” “제가요.” 일반 병원에서는 반드시 프로답게 굴어야 해요. 환자분이 돌아가셔도 절대로 울지 않도록 교육받죠.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우고요. 하지만 마음이 무척 잘 통하는 사람이 돌아가실 때면 정말로 슬퍼요.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도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울었더니 정말로 기분이 좋았죠. 울면 편해지잖아요. 그게 가장 기뻐요.

 

거기에는 누구의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다 -

언어도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연은 그 어떤 경우에도 실패해서 찢어버리고 싶은 그림처럼 되는 법이 없다. 내년 봄에는 틀림없이 벚꽃이 피겠지.

갑자기 내 옆에 앉아 있던 목발 할머니가 그 백혈병 걸린 젊은 사람, 참 딱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3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투명한 필름처럼 몇 번쯤 나를 스쳐 지나간 젊은 커플을 몇 초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제는 결코 투명한 모습으로 고요히 내 앞을 스쳐 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내년에 피는 벚꽃 - 투명한 갈색 눈동자에 흘러넘칠 듯 물이 가득 고였다. “내년에 피는 벚꽃을 볼 수 있을까요?” 이듬해 5월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작은 보스턴백을 메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모두들 일정한 방향을 향해 미끄러져 가는 듯 -

할아버지는 말도 움직임도 없이 입을 벌리고 있는 할머니 곁에 언제나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 사람은 죽을 때까지는 살아있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꽃이 필 무렵에만 눈을 빼앗겼다가 시들면 금방 잊어버렸다. 벚꽃은 1년에 한 번만 떠올렸다.

꽃이 피고, 닭이 울고, 반 했니 어쩌니 울고불고, 돈이 있니 없니, 밥이 맛있니 맛없니. 이 세상의 모든 천국과 지옥은 고타쓰 위에 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는 분명 이 세상의 자연이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게 밀려들지 않을까.

 

* 사노 요코에 대하여 - 세카카와 나쓰오

파티를 꺼리는 게 분명한 그녀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건강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얘기할 게 있어.” 찻집에서 마주보고 앉아 그녀가 말했다. “저기, 나 뼈에 전이됐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앞으로 1년 남짓일 것 같아.” “암에 걸렸다고 말하면 모두들 동정해줘” “누구 괜찮은 남자 없어? 감상하고 싶어라고도 했다. “요즘엔 불량 할머니가 되어서 말이야, 남자 밝힘 증이 절정이거든. 그래도 잡아먹거나 하진 않아. 그냥 감상이라고, 감상.”

 

요코씨는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다가 뿌리침 당했다. 그것은 강렬한 체험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쟁 전 긴자를 활보했던 모던 걸, 결혼 후에는 뛰어난 아내이자 유능한 엄마로 변신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에게는 그게 아니야라고 무엇이든 부정부터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요코씨도 뛰어난 딸이었다. 뛰어난 아내는 남편을 두고 뛰어난 딸과 무의식중에 경쟁했다.

 

요코씨의 어머니는 2006년 아흔셋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어떤 단체 사진에서도 한가운데에 있었다. 타고난 여장부였다. 하지만 언젠가 할머니가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어머니도 늙었다. 일선에서 물러나 도쿄로 가서 딸과 함께 생활했다. 여든이 넘어 치매 증상이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딸은 어머니를 시설에 넣었다. 어머니의 증상을 그곳에서 느긋하고도 착실하게 진행되었고, 시간의 경과와 노화는 드셌던 어머니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건강했던 시절에는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말 고마워미안해를 아낌없이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무도 복잡했던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싱겁게 회복되었다. 이윽고 자신도 노화를 실감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통화가 되지 않아서 문득 쥐고 있던 물건을 쳐다봤더니 텔레비전 리모컨이었다.

 

요코씨도 일곱 살의 소녀 난민이었다. 그녀는 여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냄비 가득 수수를 끓였으며 땅콩을 팔았다. 길거리에서는 아버지가 만든 짚신을 팔고 러시아인에게 담배를 팔아 식량으로 바꾸었다. ‘어린애였으니까, 나는 생각하기 이전에 본능적으로 살았다. 나는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의 근원을 어린 시절의 생활 중에 체득했다. 그때가 불행의 시대였다고 해도 내가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아지랑이가 낀 봄날의 산이 몽실몽실 웃음 짓고, 목련꽃도 벚꽃도 변함없이 피리라는 생각을 하면 분하다.’

호방하면서도 섬세했던 요코. 그러나 여행지의 봄은 아름다웠다. 그곳 봄날의 산이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멋대로 몽실몽실 웃음 짓는것은 전쟁을 관통했고 그 이후의 시대까지 억세게 살아낸, 재능 넘치고 제멋대로인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분한 일이었으리라.

 

표사 : 사람은 삶이 되고, 암은 앎이 된다. 이 책의 원제가 죽음 의욕 가득이다. 지금 문화에서 죽음은 늘 닥치거나 선고되거나 벌어지는 것이기 마련이다. 극렬한 통증이 살아 있음의 증거인 것처럼, 죽을 의욕 역시 삶의 가장 강렬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 21세기에 가장 유명한 암 환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삶의 최고 발명품이라 했다. 이 책은 암에 걸렸지만 담배 따위 끊지 않고, *** 환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죽고 싶어 하던 박력 있는 할머니, 사노요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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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요코는 일본인으로

1938년에 베이징에서 태어나,

2010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 지나간 세대 지나간 사람이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나라다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생활은 그네들이 먼저 경험한 일을 뒤쫓고 있다

이지메(왕따)가 그렇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그렇고

孤獨死가 그렇다

내 어머니세대의 이야기인데,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들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사람들 속에 휩싸여 사는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일할 때 말고는, 철벽같이 숨어들어 고립무원의 고독을 즐긴다

가족말고는 누구도 잘 만나지 않는다


그중 내가 먼저 연락하는 한두 벗이 있다.

책을 읽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비장한 생각을 했다.

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죽는 게 뭐라고까지 기다렸다.


영희씨에게 너와 너의 남편은 의사이니까, 이 책을 읽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죽는 것에 대한 용기'를 줘야한다.”

우편으로 책을 선물했었다.

우리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산다.

6월 말까지 병원에 근무하고 

그녀는 바로 다음 달, 뉴질랜드로 떠날예정이다.

 

오늘, 근무를 마치고

전통이 있다는 '해운대 암소 갈비'에서

생갈비를 구워 점심을 먹었

해변으로 나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해변을 걸어 중간지점, 조선비치호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번 껴안고 헤어졌다.


이제, 내 이야기를 누가 살뜰하게 들어주나?

그리고, "누가 나에게 맛있는 갈비를 사주나?" 라고 하니

한국에 나오면 꼭 그집에서 갈비를 또 사줄거란다.

좋은 사람들은 내곁을 떠난다.

나이 들어 분신같은 벗이 떠난다는 것은 가슴 한켠이 휑하게 서늘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