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

대법원의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보다

김영란 지음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 『문학과 법』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등이 있다.

 

197991.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시작. 두 반을 통틀어 여자연수생은 혼자였다. 198191.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사로 부임. 결혼, 출산, 육아 등등 끊임없는 개인사와 함께 판사로서의 업무도 매너리즘 속에서 날들이 흘러갔다. 1986년 부산지방법원 부산 최초의 여성판사로 부임했다.

10년의 판사생활 동안 사건에는 정답이 있고 판결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는데, 대법원에 와보니 판결은 선택이 되기도 했다.

 

가부장제 변화의 현재 -

가부장제는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고, 인류 발전단계의 한 형태.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하여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다. 처벌권한도 가지고 있다.” “딸을 출가시키거나 아들이나 딸 어느 쪽의 자녀들이라 하더라도 이혼시킬 수 있으며, 다른 가()에 입양시킬 수도 있었고, 심지어 그들을 팔수도 있었다.”

한편 혼인으로 가장은 부인의 인격 및 재산에 대한 여러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이 부인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될 때, 특기할 점은 그가 남편으로서가 아닌 아버지로서의 신분을 얻는다는 것이다. 부인이 가장의 딸과 같은 지위에 있다는 것, 가장은 부안을 합법적인 가부장의 통제아래 두게 되었다.

 

가장 강고한 위계질서 - ‘가족적인 분위기와 질서를 내세우는 많은 집단들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모습의 폭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족적인 질서는 가장 느린 속도다.

 

조금씩 변화하는 판결의 방향 - 가족 내 가부장 질서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아들과 딸 등 여러 관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작동한다. * 제사를 주재하는 자로 딸과 아내보다 아들과 손자를 우선시한 대법원 판결은 * 어머니보다 아들을 우위에 두었다.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제사를 모시는 사람으로 딸이나 처보다 아들이나 손자의 지위를 우선시하는 것이 사회통념이라고 판단함으로써 남자와 여자 사이의 위계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를 공고하게 했다. (P25사진 - 미친, 꼬라지! 2019년 우리 집도 이 짓! 여자는 제사를 차리는 도구. 큰 동서의 밥은 손아래 동서들. 미친! 그러나 나는 솔을 치지 못한다. ‘은 나에게 너무도 높은 음이다.) 여성은 그동안 제사에서 철저하게 도구의 영역에 놓였을 뿐, 주재자로 자리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구도는 나라가 보장하는 합법적인 차별이었으며, 지금도 이러한 차별은 곳곳에서 답습되고 있다. (우린 아직도 제사가 끝나고 음복할 때도, 여자 남자 따로 밥을 먹는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만 해도 손자들까지 다 먹고 난후, 부엌에서 여자들만 따로 먹었다. 그렇다면 물질적 분배는 고르게 되었는가. 말하지 못한다. 그래 그래, ‘를 치려고 하는데, 낮은 로 손가락이 간다. 이제 장손으로 넘어가기만 기다린다. 그러면서 설 추석 제사 비는 왜 받는지, 그 것을 알고 싶다.)

 

여성을 문중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시작함으로써 부계혈족과 모계혈족을 차등하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판결도 사회 통념의 변화가 법정을 변화시킨 대표적이 사례가 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폭행,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성관계를 감내할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혼인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없고, 성적으로 억압된 사람을 인내하는 과정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성인지 감수성, 단지 피해자의 감성인가 -

판사 시절, 어떤 남성이 내게 마거릿 대처 수상은 한 나라의 수상인데도 매일 남편의 아침 식사를 차려준다고 합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라고 말했었다. 사실 그 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맞벌이 여성들이 대처 수상만큼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말이었을까?

 

그들은 소녀로 살아본 적이 없다 - (37쪽 사진. ‘사바나 레딩 새포드 교육구 사건판결 당시 브라이어 대법관의 발언 - 성인지 감수성이 지위 고하와 상관없이 배우고 훈련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대법관조차도 속옷을 벗는 것이, 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이들은 체육시간마다 옷을 갈아입지 않던가요? 제가 여덟 살, 열 살, 아니 열두 살 때였는지는 몰라도, 하루에 한 번 옷을 갈아입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 대법관이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듣다못해 그 속옷을 남이 벗겼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브래지어까지 벗어서 흔들어보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후 긴즈버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들은 열세 살 소녀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또래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전혀 모른다는 거죠” (신세계백화점 반디앤루니스에서 잠시 앉아 읽다가 읽다가 나는 울면서 나왔었다.

*** 그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운 일인지, 남자 또는 가부장제에 세뇌된 여자 같은 대법관이 알 턱이 없다. 친아비도 어미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쁜 아비 나쁜 어미) 대법원은 소수의견 없이 학교가 레딩을 알몸 수색한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결코 똑같지 않다” - ‘감수성의 정의는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다. 감수성이라는 용어는 감성이나 감정과는 달리 예민함이나 감도(感度)’라고 할 수 있다. 지배적인 성적 고정관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다.

 

민주주의에 도구는 민주적인가 - 많은 사람이 이제 이 정도면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조직들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다. 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기존의 정당이나 여러 기관조차 전혀 다르지 않다.

 

계약이 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위험한 생활용품 등은, 시판하기 전에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을 미리 거치는 것보다, 문제가 된 이후에 배상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면, 제조업체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달린 문제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며, 이에 따라 약자들은 정치가의 말을 조금도 신뢰하지 못하고, 법률에도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법의 제도적 기능은 각자의 행위가 상식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기준

 

의 자유방임에 책임은 없는가 -

강원 랜드. 베팅 한도액은 1회 최고 1000만 원이다. 그럼에도 이곳 딜러 등 직원들은 원고가 이른바 병정’(타인의 돈으로 타인을 위해 베팅만 대신해 주는 사람)을 이용해 최고 6000만 원까지 바카라 게임에 베팅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도박은 처벌이 되는 금지행위인데도, 국가가 폐광지역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카지노를 조성하도록 허용한 이상, 좀 더 적극적인 보호책을 서야 한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판결이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카지노이용자보다 사업자를 보호한 결과를 가져온 데 있다. 자기책임의 원칙을 들어, 우월적 지위에 있는 한쪽 당사자와 다른 쪽 당사자를 대등하게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쪽 손을 들어 주는 판결.

의존식 계약이나 통제식 계약. 자유와 책임을 빼앗지 않은 채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즉 충성이 작동하는 새로운 변종 계약.

***개인들은 자기책임 하에 계약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거대구조 속에서 주어진 선택자만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 공적 행위가 계약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매 학기마다 도서관 강사 이라는 복종계약을 내가 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공 알제리 등 여럿 있다. 독일의 나치즘, 프랑스 나치독일의 침략, 스페인은 프랑코의 통치, 러시아는 스탈린 독재,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군부독재, 남아공은 흑백 인종차별주의, 알제리는 프랑스의 신민지배의 역사적 경험이 과거사 청산의 과제가 되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 남아공의 경우. 스스로 나서서 사실을 털어놓은 가해자에 대해서는 처벌이 아닌 사면을 제공하고,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해주기로 결정한 점이다. “과거정권에서 저질러진 불법행위를 밝히는 동시에, 정권을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9월 취임사에서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2007년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한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 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우리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2009년 말, 사법부가 역사 속의 사법부를 펴내면서 주요 시국사건들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쳐버렸다. 용두사미에 그친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안정성이라는 기존의 가치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만 이루어진 결정이다. ‘고수해야 할 가치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한계선을 긋게 한 것.

 

정신적인 고통은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 2011년 정신상의 손해배상부분을 달리 보아야 한다고 판결하기 시작했다. 인혁당사건 피해자들의 경우, 77명에게 가지급된 위자로 491억여 원 중, 210억 원을 되돌려 줘야 하게 되었다.

 

또다시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국정원은 한술 더 떴다. 201377명에 대해 가족별로 동시에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을 걸었다. 국정원은 삭제된 30여 년 치 이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은 기간에 맞춰 연체이지까지 갚으라고 요구했다. 법원은 끝내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다. 2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연체이자율도 그때부터 적용됐다. 인혁당사건이 벌어진지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국가의 억압은 경제적 고문의 얼굴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김우종 선생이 2억 원을 박근혜 정부에서 반환을 이유로 착취해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과거사에 대한 사법부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은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부터 정리의 수순을 밟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청산 노력이 용두사미에 그쳐버렸다는 평가에서 힘이라도 얻은 듯, 과거사 문제를 덮는 수순으로 진행되는 조짐이 곳곳에서 보였다.

세상모르는판사들이 빠지는 함정 - 실용주의적 판결을 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로스쿨에서는 법관에게 작용하는 동기와 제약, 법관을 제한된 지성으로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한 인간이 아니라, 마치 컴퓨터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법관도 자연스레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제출된 사건만 판단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이는 법관들을 기이한 수동성에 빠뜨리게 된다.

 

변호사나 교수 등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판사가 되는 영미법 국가와는 다르게 * 우리나라는 그동안 직업 법관제를 채택해왔다. 직업 법관제란 경력의 전부를 직업법관으로 일하는 법률가들로 법원이 구성되는 시스템”. “법전이 정확하고 상세할수록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또는 기타 개인적인 선호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아진다.” 직업법관제 아래에 있는 법관들이 “‘때때로 입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법리들일 뿐, 그 법리들과 그 법리들이 규율하는 제반 행위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경향법률가들이, 때로 법만 따지고 현실을 무시하는 판결을 한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법교육과 직업적인 법관으로서의 폐쇄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 -

삼성엑스파일 사건 판결의 다수의견이 정당행위의 해석을 종래의 해석보다, 훨씬 더 좁혀서 해석하고, 그 결론에 대한 책임은, 결국 고 노회찬 의원만이 지게 되었다. 2013214일 판결확정으로 국회의원 직을 상실하게 된 노회찬 의원은, 2016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다시 국회로 돌아왔으나, 국회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 받았던 정치자금이 문제 되어, 유명을 달리했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반짝 떠올랐던 정치자금 문제는 다시 수면으로 가라앉아 잊힌 것처럼 보인다. (201쪽 사진. 노회찬 의원의 신념과 행동은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의 투명성에 대한 화두로 남아 있다)

 

 

판사들이 피할 수 없는 정치적 판단 -

힘과 힘이 겨루는 마당이며, “소수파는 자신이 틀리다는 점에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소수파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항복한다.”

 

*** ‘판결과 정의를 내고 인터뷰 내용

김영란 왈 : ‘개천에서서 용 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판사가 되는 문도 좁아지면서 상류층 비중이 커지고, 그들이 내리는 판결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관해 김 전 대법관은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 없는 사회라는데 동의하며, 개천에서 용을 나게 하는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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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나도 56년생이고 남편도 56년생이다. 둘 다 병신년에 태어났다. 나와 남편을 빼고, 1956년생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김영란이 있고, 최순실이 있고, 손석희도 있다. 해방둥이도 사변둥이도 58개띠들의 왈왈 산업의 주역도 아닌, 주목받지 못하는 56년생 낀세대다. 딱히 일궈낸 업적의 지칭대명사가 없다.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보다 각자 스스로에게 훈장과 벌을 준다. 본래 병신년 원숭이는 자신이 재주를 부려야, 그나마 누군가 힐끗 쳐다봐주는 어설픈 몸짓을 지녔다.

그중 56년생 나는 혹시 나에게 너는 출신성분을 잘 타고 났다면, 누구처럼 살래? 라고 묻는다면, 예술의 종합적인 안목을 지니지 못했으니 난타를 두드릴 수는 없고, 국정농단을 할만한 배경도 베짱도 없으니, ‘정의의 길을 향하여 깃발을 들것 같다. 그러나 그 위치를 올라가려면 일백 번 고쳐죽어도 오르지 못할 고지다.

김영란, 같은 여자로서 같은 나이로서 멋지다. 그리고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