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의 지하촌
(해운대 도서관 독서토론회)

강경애 1907년생~ 1943년졸 (37세) 황해 송화
필명 K가마(珂瑪)
궁핍, 어린 시절의 불행, 진보성향.
시에서 소설로 전환
봉건적 지주 계급의 횡포
이에 맞서는 빈농들의 의식 성장과정
농민- 노동자 - 조직적인 활동가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성’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 비관적 리얼리스트.

지하촌
식민지 시절의 궁핍한 삶
1936년 12월 ~ 4월 3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음.

작품내용 : 지하촌은 어릴 때 병으로 팔다리 병신이 된 칠성이네와 그 이웃인 장님 큰년이네의 궁핍한 상황에 대한 묘사.
               칠성이는 불구의 몸으로 이웃 동네에 동냥을 다녀 어머니와 동생을 먹여 살림.
               칠성이는 큰년이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그가 큰년이에게 주려고 옷감을 끊어 온 날
               큰년이는 읍네 부잣집의 첩으로 팔려간다.
               ‘지하촌’은 해와 더불어 인간이 인간다운 생을 영위하는 지대인 ‘지상촌’에 대립되는 이미지.
              ‘객관적이고 섬세한 치밀한 묘사수법’
               ‘한국어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대담하고도 엄청난 모험을 처음으로 시도한 소설’.
               지하촌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불구자로 정상적인 삶을 차단당한 사람들.
              즉  그들의 운명이 아니고, 궁핍한 식민지 시대로부터 강요된 사항.


밑줄긋기
(당시의 비참한 상황앞에 밑줄이 그렇긴 하지만, 여성특유의 섬세한 언어가 아름다웠다)

*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 그렇게 고적하게 분하였다.
* 수수밭 그림자 서늘하고…
* 큰 눈에 웃음을 북실북실 띠고
* 울음을 내쳤다.
* 코허리가 살살 간지럽기 시작하였다.
* 해종일
* 여북 아피겠니
* 손이 얼벌벌하구나
* 먼지내 싸하게 올라오고 빈대님새 역하다
* 부초꽃 별빛인가 흰꽃 다문다문
* 부초꽃 냄새는 계집이 곁에 와 섰는가 야릇하다
* 부초꽃이 물속에 잠긴 차돌처럼 그 빛을 환히 던지고 있다.
* 자박자박하는 신발소리에
* 온전신이 풀풀 떨리었다.
* 가슴엔 웬 새새끼 같은 것이 수업이 팔딱거린다.
* 귀가 우석우석 울고
* 아기머리종기가 자잘 언제나 진물 노란 머리카락 이기어 달라붙었고
* 파리가 안탸깝게 달라붙어 종기 딱지를 오물오물 먹고 있다.
* 아기는 코만 풀찐풀찐 하면서 울음소리를 뚝 끊었다.
* 깨느느르한 침
* 대싸리나무
* 벌레소리 발끝에 차여 요리 졸졸졸 조리 쓸쓸쓸
* 바자: 울타리에 쓰는 대, 갈대, 옥수수 수수깡 따위로 발처럼 엮은 물건
* 점점 더 숨결이 항항거리고 야물야물하던 말도 쑥 들어가고
* 그 눈썹 끝에 걱정이 대글대글 맺혀있다.
* 검정강아지 같은 어둠
* 마음이 수선해서 발길이 딱 붙는 것을 겨우 떼어놓았다.
* 워리워리
* 시죽시죽 걸었다.
* 배안의 병신이우
* 어디서 맹하니 또 어디서 꽁하는 소리가 들렸다.
* 아기까지 키성키성 보챈다.
* 소리 없는 울음을 입으로 운다.
* 쌀알 같은 구더기가 설렁설렁 내달아오고 있다.
* 피를 문 구더기가 아글아글 떨어진다
* 비는 좍좍 쏟아지고 바람은 미친 듯 몰아치는데, 가다가 우르릉 콩쾅하고 하늘이 울고
번갯불이 제멋대로 쭉쭉 찢겨나가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칠성이는 하늘을 노려보며 원망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천둥 번개 벼락 폭우 속에서 별빛이나 달빛이 보일리 없지만
칠성이 마음 속에서 어떤 서광의 빛이라도 보였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새새끼 몇마리가 수없이 팔딱거리는 사춘기 소년과, 숨결이 항항거리던 큰년이의 분홍빛 사랑도 잠시 스쳤지만
끝끝내 분노와 좌절 화가 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희망의 빛이 없던 시대적 아픔이다.

나는 얼마나 무식했던지,
강경애가 1930년대의 여류소설가인줄도 몰랐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
'지하촌' 의 강경애가 요즘 김연수 백가흠 성석재 은희경처럼
문제의 소설이거나 실험소설을 쓰는 생존해 있는 젊은 사람인줄만 알았으니 ....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궁핍을
오히려 중국의 노신 모순 노사 파금을 통해 읽었다.

과거의 '거지'와 요즘의 '노숙자' 가 어떻게 다른가
거지는 동냥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생존'이라면,
노숙자는 스스로 택한 현 사회적 차가운 '소외'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가난과 무지와 식민사관을 구제할 길은 무엇인가.
'교육'이라는 절실한 단어 앞에, 앎의 도구인 교육이 더 무섭다는 의견에'도덕성'이 우선이다.
교육에 도덕이 결여되면 더 무서운 이념으로 치닫게 된다는 결론으로 독서토론을 마쳤다.


빙호   2009-06-28 06:40:42
소설의 문장이 핍박받던 시대상을 반영하듯 의성어나 의태어로 이루어져 있어 리얼리티와 함께 현장감을 더하는 것 같아 새롭습니다. 아울러 현재를 사는 그 누구도 가난에서 오는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할 때 그가 택한 소외를 스스로 극복해나감이 과거보다 더 어려운 것은 현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물신이 팽배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 한권을 다 읽은 기분입니다.
류창희   2009-06-30 10:26:51
빙호님^^
사전적인 언어에 익숙해 있던 차에
소설 속 옛날 단어들 문장들.
시대적 상황이 아주 비극이었는데도 ...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밑줄 그을 수 없어 베껴쓰면서
보석 만난듯 마음이 반짝거렸답니다.

아버지

김해숙(해운대 도서관)


일곱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퇴근해 오시면 늘 문밖에서 “숙아”하며 들어오셨다. 그러면 우리 사남매는 쪼르륵 달려 나가 인사를 했다. “아버지 다녀오십니까?” 나는 사남매 중 맏이도 막내도 그렇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아들도 아닌데, 아버지는 늘 내 이름만을 부르셨다.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또 한 번 내 이름을 부르신다. “숙아 한 바퀴 돌러 가자” 아버지 손을 잡고 한 손엔 내 머리통만한 토마토를 들고 온 동네를 개선장군 마냥 당당하게 걷던 그 평화로운 저녁산책이 내 유년시절의 첫 기억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아버지는 왜 늘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셨는지, 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러 갈 때면 왜 꼭 내 손을 잡고 가셨는지…, 우리 가족 중 그 이유를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동생도 언니도 궁금해 하거나 따지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아마도 둘째의 설음을 짐작하고 계셨었나 보다. 남동생처럼 아들도 아니고, 언니처럼 착하고 예쁘지도 않았고, 귀여운 짓만 골라하는 막내처럼 곰살궂지도 않은, 고집이 세고 눈치라고는 없는 내가 은근히 마음이 쓰이셨나보다.
나는 자라면서 내 위치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가졌다. 둘째 특유의 반항이 아닌, 나름대로 이유 있는 반항이었다.
엄마는 항상 편파적인 심판관이었다. 남동생과 내가 싸울라치면 “누나가 참아야지 철없는 동생하고 싸워서 이기려 든다”며 팥쥐 엄마가 콩쥐 대하듯 하셨고, 언니와 싸우게 되면 “고집 세고 버릇없이 언니한테 대든다”고 또 똑같은 이유로 야단을 치셨다.
그래서 형제간에 싸움이 있고나면 나는 항상 억울함을 혼자 구석에 가서 삭혀야 했다. 엄마가 보이는 데서 울고 있으면, 또 눈물이 길다고 야단을 치셨기 때문이다. 언제나 왜 싸웠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엄마가 정말 야속했다. 낮에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들을 아버지는 보지 않아도 훤히 알고 계셨던 듯하다. 아버지만이 항상 “숙아” 하며 달래주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동네 한 바퀴를 휑하니 돌고나면 내 마음 속의 모든 슬픔과 억울함이 또 휑하니 달아나버렸다.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심지를 심어주셨다.
조용히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렴풋이 보이는 슬픔으로 울고 있는 한 아이와 따뜻한 아버지의 “숙아”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에는 부당함도 슬픔도 따뜻함도 평화로움도 모두가 공존하는 곳이며, 그 중 내가 무엇을 취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달라 질 수 있다는 진리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셈이다.
나의 아버지, 내년이면 팔순이시다.    


류창희   2009-06-23 07:28:02
해운대도서관(수요일 일상속의 글쓰기) 강좌에서
숙제 내준 첫날 어느 회원의 글이다.
말하듯이 편안하게 써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써도 되느냐"며 시키는대로 한번 써 봤다는 것이다.

주일마다 여러분들이 글을 써오신다.
이미 수필가인듯한 상당한 수준이 되는 분들의 글도 많다.
그중 처음 써본다는 분의 글을 올렸다.
공책에 연필로 또박 또박 써 왔다.
인쇄된 활자가 아닌, 손글씨도 오랫만이라 반가웠다.
호수아빠   2009-06-23 10:47:12
..너무 빨리 걷지 마세요. 너무 빨리 걷다보면 들에 핀 들꽃도, 졸고있는 미장원 김씨 아줌마도 볼 수 없고, 더더군다나 너무 빨리 걸으면 숨차잖아요....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일곱살박이의 걸음으로 천천히 걸으세요. 아버님과 함께....
은하수   2009-06-23 16:23:38
여름이 시작되네요.
항상 바쁘게 사시는 셈께
언제나 즐거운 일이 생기길 ~~~
그리고
건강도 챙기세요.
가끔 안부 보냅니다.
류창희   2009-06-23 16:31:38
호수아빠^^
아버지를 쓰신 분은 글을 읽으면서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차마 끝까지 읽지 못하고 우시더군.
옆에 있는 글벗이 대신 읽어주셨지.
우리 남매는 '아버지'하고 소리내 불러볼 수 있는 ...
살아계신 아버지도 부럽구만!
류창희   2009-06-23 16:33:52
은하수님^^
더위 어찌 맞이하세요?
같이 밥한끼 못하고 한학기를 마무리해서 아쉬웠어요.
다른 분들은 두어번 동동주까지 했는데...
한번 날아갈게요. 사하로~
서향   2009-06-24 13:32:11
류선생님, 참 가슴뭉클한 글들이 많네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잠시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그리고, 저
7월1일자로 해운대도서관으로 발령났습니다..^^
해운대에서 뵐게요..
류창희   2009-06-24 15:12:39
아하!
서향님^^
저는 너무 좋습니다.
제가 해운대도서관에서 맡은 과목이 많아 걱정했는데...
서향님의 전폭지지를 기대합니다.
해운대 도서관에서 뵈어요^^
호미   2009-06-24 19:32:08
아~~~
해운대는 너무 멀어요.
부전 도서관이나 시민 도서관에서 쌤과 함께 웃었으면....
글쓰기의 매력이 참....
부러버라.
류창희   2009-06-24 22:35:33
호미님^^
반갑습니다.
글은 호미님이 쓰셔야하는데...
그 감성 고스란히 배여나올텐데요.
위의 김해숙님처럼.
호미님도 차곡차곡 저장고에 적어 놓으세요 ㅎㅎ
김해숙   2009-06-26 11:02:51
선생님, 김해숙입니다. 이런저런일로 차일 피일 미루다 방금 들어와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생전 처음 써본 글도 글이지만 마음속에 꼭 꼭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활자화 해서 여러사람과 공유하는 이느낌이
또 참묘하네요, 그때 아버지와 걷던 7살때의 그 마음과 조금 닮아 있는 듯한 그런 기분입니다..
선생님 좋은 경험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창희   2009-06-27 12:52:39
김해숙님^^
'아버지와 걷던 일곱살때의 그 마음'
이 글이 마중물이 되어
힘껏 펌프질하여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분들에게
시원한 '냉수' 한사발씩 나눠주세요.
능금   2009-06-27 23:23:10
세상에는 '숙'이도 참 많지요. 위에 글 쓰신분은 '해숙' 저는 '?숙'
처음 쓰신 글치고 정말 너무 잘 쓰셨네요.
감탄했어요.
제아버지가 저를 부르는 것 같고
아버지의 체취가 코끝을 스치네요.
콩나무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그대로 빠지지만
콩나물은 자라게 되는 것과 같이
꾸준히 하다보면 '류창희'작가님처럼
좋은 글 쓰게 될 거에요. 힘내세요.
류창희   2009-06-30 10:21:42
능금님^^
'숙' 이, 참 정겹죠.
처음 쓰기 시작한글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더구나 신춘문예 작가님이 잘 썼다고 칭찬하는 것 만큼의 찬사가 또 어디있겠어요.
분명, 토종 콩나물 잘 키우실겁니다.
감사~ 감사요~

고희(古稀)는 아직 젊다.

서영환 (어진샘복지관)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말이 있다. 고구려 때에 늙은이나 쇠약한 이를 광중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후에 장사를 지내던 풍습이다. (棄老俗)
옛날 한 사내가 고희가 된 늙고 병든 어머니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골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약간의 음식과 이부자리를 준비하여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어머니를 지고 간 지게를 버리려고 하니, 따라 갔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버리지 말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먼 훗날 아버지를 지고 내다버릴 지게라는 말을 한다. 그제야 사내는 깜짝 놀라 후회를 하며 늙은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되고 세상 살기가 좋아져서 장수하는 세상이다. 먼 옛날에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54세(오사)를 지나면 살 만큼 살았다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오사’란? 54세의 뜻도 되고 올 된다는 속어와 죽을 사(死)의 뜻이 포함되어 빨리 죽을 것을 면한 것이라는 뜻도 있다.
회갑(61세) 진갑(62세)을 기준으로 자식들이 잔치를 성대하게 차려드렸다. 부모님을 건강하게 회갑을 맞을 때까지 잘 모셨다는 자랑으로, 진수성찬을 준비하여 일가친척들에게 대접을 해드리는 장수 축하행사였다.
환갑이 지난 어른들은 나라에서 상노인으로 인정하였다. 지금은 만 65세가 넘어야 국가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노인이다. 경로연금인 교통비와 일부 의료비 관람료 등의 혜택을 받는다.
미수(米壽)가 되신 나의 어머니, 고희가 다 된 아들을 오늘도 걱정하신다. 어머니는 슬하에 4남 3녀를 두셨다. 다른 아들네 집에 계시면 아들 손자, 며느리들의 보살핌과 효도를 받으면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다. 그런데 한사코 그 편안함을 마다하시고 어디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나에게 오셨다. 같이 늙어가는 큰아들을 도우시겠다는 모성애, 그 순박하신 마음을 말릴 재간이 없다.
그러나 내 처지는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을 모시기가 정말 힘겹다. 어머님은 모든 거동이 나의 손과 발이 아니면 한 가지도 생활이 안 되는 실정이다. 빨래 목욕 대소변까지 뒷바라지한다. 안방에서 거실을 거쳐 식탁까지 나오시는 것만 해도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 식으로 된 히프로라에 앉아, 손으로 밀어 식탁과 의자를 붙잡아야 겨우 일어서실 수 있다.
“귀신이 눈이 썪어서 못 보는지…, 어서 나 좀 데리고 가라”고 애원조로 하소연하신다. 또 어느 때는 “영감은 혼자 호불 귀신으로 있는 것이 좋으냐? 며 “제사 때나 명절에 혼자 절 대접을 받으니 좋으냐?” 고 돌아가신 아버님께 원망과 항의로 한숨을 쉬신다. 그래도 네가 있는 이곳이 제사를 지내 줄 자식이라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큰 자식 너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늙어도 자식 사랑은 어미 밖에 없다고 못을 박으신다. 어려서는 어미 등에 업어 키우고 커서는 어미 마음속에서 키우는 것이 어미라고 하신다. 그 어머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하여 병 수발과 모든 제반 수발은 고역이다.
나 혼자 있으면 그래도 편할 때가 많다. 그 대신 혼자 독거하고 있으면 게으름이 생겨서 밥을 굶을 때도 많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에 덕을 보는 것도 많다. 조금 몸이 불편하여도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고, 그러다 보면 몸도 차츰 풀어지고 정상으로 돌아 와 건강도 좋아진다. 그런 점은 어머니의 덕택이라고 생각된다.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고 의식(衣食)의 봉양을 하며 부모의 건강과 병을 돌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옛 고사에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까마귀는 어미가 늙어 날지 못하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가 효도를 한다. 하물며 금수가 아닌 사람이다. 고희는 아직은 젊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하여 어머님을 공경할 것이다. 옛 시조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길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여라.




류창희   2009-06-22 19:10:54
어진샘복지관에서 삼주째 문학수업을 했다.
오늘(월요일)은 장마 시작으로 장대비가 퍼부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어르신들께 하늘을 대신해 내가 사과를 한다.

한두분도 못 오시면 어쩌나.
기우였다.
빗속을 뚫고 열여섯분들이 함께 자리해 계시셨다.
숙제를 네분이 해 오셨다.
그중의 한편이다.
내면이 들어난 진솔한 글이다.

누가 이런 글을 처음 써보는 글이라고 하겠는가.
콩콩나무   2009-06-23 23:29:11
비온 다고 핑계되면 안되겠지요 ...안선생님과같이 못가서 죄송합니다 선 생님 다음 수욜에나 갈수있을런지요....()
류창희   2009-06-24 07:59:54
콩콩나무님^^
저도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장대빗속에 그렇게 모두 오실 줄 몰랐습니다.
그 분들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다음 시간에 뵈어요.
서향   2009-06-24 13:27:10 [삭제]
정말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문학수업 받으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셔서 가슴 뭉클한 글들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류창희   2009-06-24 15:15:04
서향님^^
같이 감동받고 있답니다.
산다는 것,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
어느 분의 삶이든 열심히 살아온 당신!
'감동' 자체입니다.
호미   2009-06-24 19:28:51 [삭제]
글을 읽으며 목구멍이 따가와져서 짐짓 눈알을 굴립니다.
어머니....
저도 제곁에 계신 친정 어머니가 힘들어(?) 요며칠 감기를 핑게하며
진해에 사는 언니 댁으로 피난을 보냈는데....
우리 엄마도 제가 외로울까봐 제곁을 못떠나시나요?
좋은 글을 글을 읽노라니 여러 이웃과 함께
가슴 따뜻한 사랑을 함께 하실 쌤의 능력이 엄청 부러버요.
류창희   2009-06-24 21:49:06
기교보다 진솔한 글을 읽을 때,
뭉쿨하답니다.
반성을 하며 오히려 배운답니다.
속엣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누구든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 '소통' 일겁니다.
저도 친정엄마에 대해,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부산 독서아카데미
09년 5월 16일
조일리 조수완 원장님 별장
독토의 본론 내용은 다른 분이 전하실 거구요
카메라 주인은 사진의 근황만 올립니다.

화양연화는 솔마루님 차를 타고
양산가는 고속도로에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살짝 겁도 났습니다만,..

조일리 마당에 자스민 차 꽃이 기다리고 있네요.





패랭이 일명 돌틈사이 잘 피는 석죽화이지요.





하양색 매발톱, 보랏빛보다 꽃도 얌전하게 작아요





예로부터 선비들이 좋아하는 백작약입니다
대 놓고 모란을 심으면 ...
어쩐지 색을 즐기는 한량처럼 보여
살짝 가리는 멋으로 마당에 백작약을 심는 풍류를 즐겼다고 들었는데,
혹시 조원장님도 ...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
크고 탐스러운 모란은 강남의 사모님 꽃 같은데
작고 앙증맞은 모란은 갓 시집온 새댁과 꼭 닮았어요





노루오줌
노루오줌은 빛깔도 고운가봐요





전에는 무조건 소박하고 조촐한 꽃이 좋더니
오월의 화양연화 꽃다운 시절이 되고보니
때론,
이런 선정적인 '꽃양귀비'가 좋더라구요.
한번을 피어도 진한 '찐한'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 한곡조 당겨야할 것만 같은 꽃다운 청춘!





도서위원장님은 붓꽃 종류는 다 좋아하신다고요.
보랏빛 각시붓꽃, 흰붓꽃, 노랑 창포붓꽃
저마다 다른 빛으로 쳐다보고있어요.






내가가 꿈꾸는 뒤꼍
비오는 날 하얀색 보라색 도라지꽃 피어있는 풍광도 꿈꾸나
그보다 일부러 심지않은
찔레넝쿨 늘어진 풍경
비까지 내리니,
조일리 별장의 운치 중에 '압권'
찔레 넝쿨 하나만으로도 머물고 싶은 집,
다시 가고 싶은 집입니다.






고기 익어가고
분위기 익어가고
와인맛 유혹하고
우짜노 와인도 술인디...





잔 부딪히며 눈 마주치는 것
그 멋에 술 마시는...


와~!
나도 술잔 받았다.
안팎으로 조화롭게 분위기 띄우느라 혼자 바빠요.
'기쁨조' 밖에서는 '거품조'





멋쟁이 소믈리에 이현석 원장님
술은 조금만 따르시고요
마음은 잔 가득 담아주세요"





어라!
잔은 안과에서 받고
잔 박치기는 치과에서,






독토의 발전과 건강과 ....조일리 조원장님댁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안되는데 ... " 사진 다정하게 나오면...
쳐다보지 않으면 안 나오는 줄 아는 순진한 박변님!
"난 괜찮아 누님하고 다정해도 괜찮은데... KNN에 나와도 괜찮은데..."






아유~
저도 힘들어요
독토의 눈부신 발전이....
전에 임영진님 이중길님 석신부님 유기수님 유영반님 등 선생님들 계실 때가 편했지요.
아니 길뫼님은 왜 또 결석을 하시고.
우리 다 갖췄는데 음악이 빠졌잖아요.
배교수님과 조원장님은 혼자 몸이 아니라니까요.
배경음악을 깔아주셔야지요.

요즘 기라성 같은 지성의 독토회원들의 재기 발랄 ... 토론분위기.
최나래님 콩세알님 나너하하님 마음님 메이넬님 송이님 유은명님 연주님 님 님 님
맨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긴장하고 있느라...
마, 죽겠슴니더 -_-::

이렇게 수박이나 썰 때 마음이 편하지요.
그저 나이 들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
하하 호호 제일 속 편하죠.

그래도 저 같은 사람이 저 모임에 있어야
위 아래 균형이 잡히고 규율도 잡고 한다니까요.
제가 다 CCTV처럼 ...
(화양연화 지가 제일 감성에 위험하면서 ....)






자 이제 독토 본론에 들어갑니다.
박변님 열심히 메모하고 계십니다.
오늘, 마침내 이력서에 쓸 전용 야간운행 운전기사도 잘렸는데,
취재기자마저 잘리면 ... 생업이
강원장님도 옆에서 걱정하시네요.

차라리 대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낫지.
'동화' 이거 상당히 어렵네.
우리 하회장님, 지금 심오하게 동화 연구 중!






아마 오늘 독토의 '동화'이야기로 인해
세상은 더 한층 맑아지고 밝아질거에요
여러분들의 마음처럼 ...

비는 내리고 밤은 깊어가고
분위기는 고조에 달하고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밖에서 비맞으며 지키고 있어야 하나요?
우리 '꽃양귀비'들 졸려워
고개를 꾸벅 꾸벅 졸고 있네요
오늘 밤, 밤을 새실 것인가요.





꽃들아 걱정하지마!
조일리는 내가 지킬게.
어서들 코~코 ~자 -_-






오실때는 있으라고 '이슬비' 내리더니
늦은 밤 가시라고 '가랑비'내리고 있어요.
안녕히들 가세요.



콩콩나무   2009-05-21 07:20:41
참 좋은 곳이네요.....샘은 좋으시겠다 저런곳도아시고........노란 붓꽃만 창포라고 하능가요??
류창희   2009-05-21 07:52:14
그날 비가 억수 같이 많이 와서
넓게 마당과 구석구석 예쁜 곳을 찍지 못했는데
마당이 예쁘고 꽃이 예쁘고
무엇보다 해마다 초대해주시는 분의 마음이 예쁘지요.
잠시 머물다 오는 우리들도 예뻐지고요.

노랑색 꽃창포 꽃물로
오월단오날 머리감으면 삼단머리결 되어 더 예뻐지는데...
아카데미   2009-05-30 22:01:24
花樣年華 - 혹여, 자신의 사진이 올라오는 것 마음에 안드시면 쪽지 보내주시면, 즉각 내리겠습니다. 09.05.18 15:11
花樣年華 - 꽃들도 강아지도 '초상권침해' 항변하면 바로 내려줍니다 09.05.18 20:19

古乭 - 고생하신 분들 (특히 이을규회장님 사모님과 조원장님 사모님) 덕에 여러 호사를 얌체처럼 즐겼습니다. 죄송하고 고마운 조일리의 저녁이었습니다. 09.05.18 17:17
花樣年華 - 운치있는 비 덕분에, 더더욱 아름다운 밤, 그래도 준비하시는 분들은 번거롭기는 했죠. 09.05.18 20:16

주원 - 화양연화님 세심한 취재(?)감사드립니다.중요한 행사가 겹쳐져 그좋은 자리에 참석하지못해 정말 아쉽네요.정답고반가운 얼굴들이 사진빨 받아서 더좋아 보입니다.사진과글정리 솜씨는 프로이시네요.같이자리하진 못했어도 즐거운 분위기를 좀 맛볼수 있게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빠지지 않겠습니다.독토회원님 행복하십시오. 09.05.18 20:07
답글 花樣年華 - 아~ 나붓나붓 춤출 기회를 놓쳤어요. 다음에는 저음으로 굵게 깔아주세요. 가슴 밑바닥까지 저며들도록 ... 09.05.18 20:17

이재선 - 프로는 아름답다~ 깔끔한 정리와 조일리의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요~ 음식은 부족하지는 않았는지요~ 정말 정말 가고 싶었는데 ~ 다음에는 꼭 가야지 ~ 총무없이 모임이 잘 진행되는 것 보니 섭섭하네요~ 하하하 09.05.20 22:46
답글 花樣年華 - 선생님은 학생들이 우선이지요.청소년 단체 수련에 참가하신다고요. 이재선님 '창' 한곡조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교양있는 귀는 준비되었는데... 09.05.19 14:22

이을규 - 감사 감사 감동 감동!! 창희선생님 보배 보배 정말 아름답습니다. 배경 소재 분위기 비오는 날이어 영상 더 좋고요, 카메라우먼의 몌술성도 돋보입니다 영상작가 화양선생님 등업이오!! 방장님 중길님 석신부님 유원장님 그리운 이름이 너무도 많습니다 배교수님도.. 성진한의원팀은 노래와 춤도 장전하고 전투(?)에 참여했다는데 애고!1 주최측은 정보부족(?) 다음 번에는 노래와 시와 춤이 있는 종합 예술(?)로 한번 꾸미십시다. 이재선 총무님 활약기대!! 09.05.19 13:47
답글 花樣年華 - 독서 문학 지성 감성 음악 '종합예술' , 전직 아나운서로 국장님 사회보셔야 하는데. MBC 아직 건재한가요 KNN 임국장님 파워 땜시 09.05.22 08:19

비야★ - ㅋㅋ 한의사 누나가 아니여요ㅠㅠ 보기보다 제가 나이가 어려서;;; 통성명하고 나니 제가 민호님보다 동생이었습니다ㅋㅋㅋ 길고도 섬세한 취재, 특히나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이 참 아름답네요^ㅡ^ 09.05.19 18:42
답글 花樣年華 - 에구머니 그럼 빨리 '오빠'하세요. 근데, 서글픔 :: 위에서 내려다보면 도토리 키재기인데... 꽃띠들 이쁘다 09.05.19 21:52

솔마루 - 화양연화님의 또 다른 이름이 '春야'라고... '봄밤' 혹은 '봄들'로 저는 알고 있는데 사진을 보니 봄밤도 좋고 봄들도 좋군요! 비오는 봄들의 꽃들과 봄밤의 토론회 정취를 잘 담으셔서 작약같기도하고 양귀비꽃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쟈스민꽃잎같기도 한 화양연화님의 고아한 인품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09.05.21 18:23
답글 花樣年華 - 와아~ 오늘에서야 '독토'에 들어온 보람을! 칭찬 맞지요? 감히 쟈스민 작약 양귀비... 아~ 근데, 찔레꽃이 빠졌네요. 전 촌스러운 것 좋아하는데... 봄에 꽃에 와인에 사람에 취했어요. 사람에 취하는 게 '사랑'보다 독하다는데... 5.23 11:31

길뫼 - 이 정도로 편집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입하셨을텐데 화양님 연화님 대단합니다. 휘황찬란합니다. / 붙들린 몸인지라 주말에 시간내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입니다. 09.05.21 18:41
답글 花樣年華 - 김추기경님은 '아쉬울게 없다' 라고 하셨는데, 전 아직도 소인인지라 배교수님 독서토론 목소리도, 비내리는 봄밤에 불어주는 악기소리도, 듣고 싶었을 뿐이고, 뵙고 싶었을 뿐이고, 아쉬웠을 뿐이고 ... 09.05.22 08:18

여진 - 눈과 마음이 따뜻해진 날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던 조일리.....봄내음이 물씬..참 좋았습니다. 09.05.22 09:34
답글 花樣年華 -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시간, 여운이 봄향기처럼 가시지않네요. 09.05.23 11:23

푸른바다 -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치 신입으로 자리에 참석한 거 모냥 설레이네요. 다음에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격조높은 대화를 빨리 듣고 싶습니다. ^^ 09.05.22 16:13
답글 花樣年華 - 낮에 운전하다 들으면, 강석과 김혜영이 진행하는 시간 '맞장구'라는 말이 꼭 한번씩 나오는데요. 그때마다 푸른바다님의 '맞짱뜨는 오후'가 그림처럼 떠 올라, 그 얼굴 늘 생각한답니다. 오셔요 격조일랑 내려놓으시고... 09.05.23 11:26
먼바다 - 어머나, 화양연화님. <맞장 뜨는 오후>는 푸른바다님이 아니라 먼바다야요. ㅎㅎㅎ 09.05.26 16:05
花樣年華 - 제 한계랍니다. 용량초과 갖다 버려야죠. 먼바다님 넓은 먼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세요 09.05.26 16:59

하종명 - 참석하신 모든분과 여의치 못하여 참석하지 못하신분 모두 화양연화님의 중계 수필을 보시면 행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09.05.23 01:08
답글 花樣年華 - 그날 참석하신 분들, 그 분위기의 취함이 좋았구요. 부득이 못 오신 분들, 조일리 조원장님댁 들어서자 마자 파란 잉크빛 달개비꽃이 피어 있는데요. 그 꽃으로 꽃물편지를 ... 위의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잉크빛 '꽃물 펀지' 09.05.23 11:38

마녀위니 - 모두 감사 또 감사합니다. 즐거웠고 행복했고 이 날 내리는 단비 조차도 행복한 동참이었습니다. 09.05.26 11:36
답글 花樣年華 - 풀잎에 빗방울 구르는 소리같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우리 독서회 '아침이슬' 같은 분이세요. 더불어 행복했답니다. 09.05.26 17:01




장영희
1952년 9월 14일 출생
2009년 5월 9일 사망
암투병 중 5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초원의 빛

윌리엄 워즈워즈

한때는 그렇게도 밝았던 광채가
이제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인간의 고통에서 솟아나오는
마음에 위안을 주는 생각과
사색을 가져오는 세월에서.

장영희의 영미산책 <축복> 139쪽





목련꽃 지던 3월에 '축복'의 그림을 그린
김점선이 가고
모란꽃이 뚝뚝 떨어져 가는 오월에
'축복'을 쓴 장영희도 갔다.
작은 그림들 '축복'이라는 책속의
김점선 그림들이다.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던 두 여인
혼자는 외로워 같이 누워있을 것이다.
초원의 빛을 받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인이 된 장영희는 서강대학교 영미어문 영어문화학부 교수로 활동해오며
2000년 첫 수필집인 ‘내 생애 단 한번’을 비롯해 ‘문학의 숲을 거닐다’등을 냈으며
선친인 고 장왕록 박사와 함께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를 번역하는 등
수필가이자 영미문학자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특히 5번째 수필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 발간을
하루 앞두고 운명해 주위사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하루는 우리 반이 좀 일찍 끝나서 나는 혼자 집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깨엿 장수가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가위만 쩔렁이며 내 앞을 지나더니 다시 돌아와 내게 깨엿 두 개를 내밀었다.
순간 그 아저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않고 잠깐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는 몰랐다.
돈 없이 깨엿을 공짜로 받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목발을 짚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지…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그날 마음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라고. 좋은 사람들이 있고, 선의와 사랑이 있고,
‘괜찮아’라는 말처럼 용서와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영희의 '괜찮아' 중에서





류창희   2009-05-12 15:57:38
'축복' 책 선물해준 노현희님 문자보내왔다.
'뉴스보고 알았어요 예슬인들의 죽음이 유난히 아픈 건...'
오늘 '지성과 감성반' 수업,
장영희의 '괜찮아'로 열었다.
모두 마음 쨘~ 했다.
화정   2009-05-13 00:04:47
순간 가슴이 찡하네요
넘-엄 좋아했던 교수님인데
말문이 막히네요 힘들때 많은 힘을 실어주신분인데
글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는데
목발을 딛고 활짝웃으시는 모습 ----
하늘 가득 그대의 아름다운 미소 영원하리라
내일은 그대의 책을 펼쳐보리

좋은이들이 세상을 떠나며 난 넘엄 마음아파요
호미   2009-05-13 16:43:23
ㅠ - 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을 읽으며 그의 아름다운 미소를 기억해야지....
"그러나 사랑은 남는것" 이라고 말했던 그의 글이 새롭다.
장 영희!
글도 얼굴도 삶도 미소도 참, 고왔던 용기있는 여자.
그리고 아까운 그의 재능과 시간들....
부디 ....아버지곁에서 행복하시기를!!!
류창희   2009-05-13 21:53:02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썪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호미님, 이런 말을 남겼다지요.
부전   2009-05-16 08:43:06
마지막 말로 "엄마" 했다고 합니다
류창희   2009-05-19 16:17:09
"엄마" 듣는 이도 부르는 이도
참 따뜻한 말인데...
엄마노릇 자식노릇 다 어려워요.
에세이스트   2009-05-19 16:38:33 
조정은 - 장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어느 한 구석 어두운 빛 없이 밝음을 잃지 않던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09.05.14 10:47
류창희 - 우리가 살아가는 '희망'이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내힘들다'를 거꾸로 하라고 말씀하신 그분 "다들힘내" 09.05.14 18:15

프란체스카 - 이 세상을 그저 아름답게만 살다간 아름다운 장영희교수님 님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09.05.14 12:34
류창희 - '괜찮아' 한마디, 아마 우리모두 괜찮을 겁니다. 09.05.14 18:16

전해주 -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고 하시더니...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하셨는데....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따뜻한 촛불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장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09.05.14 14:19
류창희 - 해주 선생님 장영희님 좋아하셨구나. 누군들 그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09.05.14 18:19

전해주 - 2001년 장영희님이 투병중이라는 글을 읽고 그 분이 기적을 원했듯이 저도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눈물을 떨구며 그녀에게 기적이 오길 빌었습니다. 그녀의 고통이 가슴을 에입니다. 아~ 장영희교수님..... 09.05.15 00:43

정호경 - 이 세상에 좋은 글을 남기고 죽은 듯이 죽어간 사람들은 악착같이 남아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허울 좋은 지도자들에게 그 눈물 나는 단 한 구절이라도 읽어 주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09.05.15 07:09
류창희 - 아마 지금쯤 가슴에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들고 있을 거에요. 시작하는 법을... 09.05.14 18:21

김지영 - 이승을 떠나기 전 엄마에게 쓴 편지이야기를 수업 시간중에 아이들에게 했더니 아이들이 울더라구요. 정신이 혼미한 마지막 순간에 한 말이 "엄마!" 였다지요. 09.05.14 23:25
류창희 -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썪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09.05.15 07:52

김지영 - 마지막 이승을 떠나기 전 엄마에게 쓴 편지이야기를 수업 시간중에 아이들에게 했더니 아이들이 울더라구요. 정신이 혼미한 마지막 순간에 한 말이 "엄마!" 였다지요. 09.05.14 23:25
류창희 -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던 그녀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 를 말해주던 그녀 09.05.15 07:55
아카데미   2009-05-19 16:48:58
길뫼 - 그 분의 삶과 죽음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09.05.11 19:14
花樣年華 - 그분의 '괜찮아' 라는 수필을 읽고 '참 괜찮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09.05.11 21:41

하늘마음 - 다음에 읽자고 미뤄오다가 5월 말에 있을 모임에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기로 결정하고 보니 마음이 아타깝습니다. 진작에 좀 읽어둘 걸 하는 아쉬움도 있고 말입니다. 09.05.12 23:10
花樣年華 - 장영희님 책고 또 고전이 되었는데요. 16:46

이을규 - 그녀의 마지막 말은 82세의 어머니가 장교수의 수족을 만지자 "엄마"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고, 그 어머니는 지체 부자유한 딸을 업어 등하교 시키던 초등시절 눈이 오면 연탄재를 뿌리면서 등교를 염려했답니다. 장애우의 하늘이었던 장교수님. 장한 삶이었습니다. 류창희님 감사합니다 09.05.13 06:30
花樣年華 - 우리에게 늘 '희망'의 메세지를 주시던 분, 그분의 어머니 아버지 역할이 큽니다. 16:47
에세이   2009-05-19 16:52:
김윤정 - 저도 그런 생각 했네요. 삼월에는 김점선, 오월에는 장영희 선생님이 가시는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9.05.14 16:54
류창희 - '삼월' '오월' 다 이름이 문학적이지요. 아마도 그곳에서 꽃 그리고 글 쓰고 그렇게 지내실겁니다. 09.05.15 08:08

서장원 - '괜찮아' 그 한마디가 짠하게 울려오네요. 09.05.14 22:47
류창희- 예~ 다 괜찮아. 너그럽죠. 09.05.15 08:08

김경애 - 몇 년 전 인천 중앙도서관에서 "문학의 힘"이란 주제로 강의 하셨습니다. 에리베이터가 공장나서 목발로 2층까지 올라오셌습니다.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09.05.15 00:25
류창희 -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던 그녀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 를 말해주던 그녀 09.05.15 08:10
김경애 - 장교수님의 영결식 사신을 올려놓았습니다. 09.05.15 11:12
류창희   2009-05-19 17:00:57
화정님, 우리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날마다 아름답게 희망선포하면서
잘 삽니다. 쟈요우!


다시 시작한다는 것

<1984년 여름 뉴욕 주의 수도 올바니에 있는 뉴욕 주립대학에서 6년째 유학 생활을 하던 나는
학위 논문을 거의 마무리짓고 심사만 남겨 놓은 채 행복한 귀국을 꿈꾸고 있었다.
지도 교수 거버 박사가 깐깐하고 정확한 분인데다가 논문 주제가
'물리적 세계와 개념의 세계 사이의 자아 여행'으로 너무나 추상적이라
나는 2년 간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사를 얼마 안 남기고 당시 LA에 살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어차피 곧 떠날 것이므로 차제에 기숙사 방을 비우고 LA로 가기로 했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그 동안 책상 위에 높이 쌓였던 논문 초고들을 과감하게 다 버리고
당시만 해도 워드프로세서가 시작 단계였고 기계치인 나는 모든 작업을 전동 타자기로 해결했다.
내 전 재산 옷 몇 벌, 책 몇 십권, 그리고 논문 최종본- 을 모조리 트렁크 하나에 집어넣었다.
LA에서 마지막 원고 수정을 한 후 심사 날짜에 맞춰 돌아올 셈이었다.

  그러나 내가 LA에 도착하자마자 언니는 한국에 가서 쉬었다 오기로 결정,
서울로 떠났고 같은 날 나는 다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케네디 공항에서 마중 나와 준 친구는 내가 올바니로 가기 전에 차 한잔 하자고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친구 집에 들어가서 10분 후, 막 커피를 마시려는데 이웃이 들어와
도둑이 친구 차 뒤 트렁크를 열고 짐을 훔쳐 달아났다고 전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어떻게 올바니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친구가 함께 와준다는 것을 뿌리치고 깜깜한 밤에 기차를 타고
어찌어찌 기숙사로 돌아와서 방문을 잠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꼬박 사흘 밤낮을 지냈다.
두꺼운 비닐 커튼은 내가 닫고 간 그대로였고,
8월중순이었으니 무척이나 더웠을 텐데
더위도, 배고픔도 느낄 기력도 없이 그냥 넋이 나간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눈비를 맞으며 힘겹게 도서관에 다니던 일,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로 꼼짝않고 책 읽으며 지새웠던 밤들이 너무나 허무해 죽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롭고 힘들어도 논문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희망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이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닷새째쯤 되는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어 어두침침한 벽에 가느다란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호기심이 일었다.
잃어버린 논문과는 상관없이 사람이 닷새를 먹지 않고 누워 있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어지러움을 참고 일어나 침대 발치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유령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속 깊숙이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논문 따위쯤이야.'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본능적 자기 방어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선 필사적 몸부림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어느새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시 속삭여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지구상에 내게 남은 단 한 가지 소유물인 내 손가방을 뒤져보았다.
껌 두 개, 조카에게 주려고 LA 공항에서 샀던 레이더즈 농구팀 티셔츠,
수표책, 20달러 짜리 한 장이 전부였다.
나는 우선 샤워를 하고 레이더즈 티셔츠로 갈아입고 캠퍼스 스낵바에 가서 닭 튀김을 한 열 조각쯤,
거의 토할 지경까지 먹었다. 그리고 나서 거버 박사를 찾아갔다.

   거버 박사는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늘쯤 올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웨스트부룩 박사와 함께 점심 먹으며
너는 그대로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라고, 곧 올거라고 얘기했었지.
이제 경험이 많으니까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거야."
거버 박사는 올바니로 오는 기차에서 울다가 잃어버린
콘택트 렌즈를 새로 사라고 100달러를 주셨다.

   거버 박사의 주선으로 과에서는 다시 내게 강사 자리를 주었고,
도서관에서는 잃어버린 몇십 권의 책 반납을 면제해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나는 다시 논문을 끝냈다.

   15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다시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가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끝낸 내 논문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은 맨 첫 페이지이다.
거기에 나는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준 도둑에게 감사드립니다' 라고 적었다.

  "다시시작하세요. 인생은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투자하는 1년 아니 그보다 더 긴시간도 아깝지 않습니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



류창희   2009-05-12 21:34:52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던 그녀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보다 많이 보고 갔을 것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힘내"
힘들어도 다들 힘을 내 용기와 인내,
열정의 깃발을 다시 흔들자는 얘기를 했었다.
라체르바   2009-05-12 22:40:07
신문에 실린 장영희교수의 부음 소식을 보고 마음이 시렸습니다
늘 병마와 싸우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같은 삶을 사셨기에 예감은 했으나
막상 맞부딪힌 현실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습니다

정작, 그분 보다 부족함이 없는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것들을 누리면서도 불평하며 주저앉게되는 일들이
허다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아마 그분 생애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불꽃을 피워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또다시 일어설줄 아는 긍정적 사고가 그분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을러지며 나태하여지던 삶에 다시금 채찍을 가해봅니다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깨달음을 주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류창희   2009-05-19 16:15:31
라체르바님이 그분이 되셔요.
희망을 늘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여러 사람에게 '바이러스'처럼 옮겨주세요.
잘 지내시죠?
아카데미   2009-05-19 16:50:22
마녀위니 - 마음이 짠하네요. *괜잖아! 괜찮아! 괜찮아! * 오늘은 이 말이 많이 위로가 되네요. 사는것이 서툴러서일까 ? 부족해서일까? 오늘은 나도 누군가를 향해 *괜찮아!* 라고 웃으며 말해주어야지.... 09.05.12 12:01
花樣年華 - 참 좋은 말이죠? "괜찮아" '괜찮은 사람'이 멋진사람보다 괜찮은 것. "관찮다" 09.05.12 21:39





* 최운
1939 서울출생
1986 아르헨티나 이주
2005 <<까라보보의 참나무>> 발간
2006 <<제 24회 현대수필문학상 >> 수상


*  아버지, 그들은 누구인가

최운

아버지, 그들은 누구인가.
일찍이 한반도에서 태를 가르고, 이제는 남미 아르헨티나 땅에 가솔(家率)을 풀어, 길게는 30년까지 고단한 타국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축 처진 어깨에 유행 지난 잠바를 걸치고 터덜터덜 백구를 오가는 그들은 누구인가. 검정 볼사를 두 손에 들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헝크린 채 온세와 아베쟈네디를 종종걸음으로 누비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거미줄 엉킨 꼬세르방에셔 미싱바늘의 귀를 찾느라 안경 낀 두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찬바람 몰아치는 훼리아 바닥에서 온종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때로 고된 이민 생활이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는 원망을 들어도 그저 허공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으며 가슴을 다스리는 그들은 누구인가.
자식을 앞세우지 않으면 이민청도, 연방경찰서도, 자동차면허시험장도 갈 수 없는 남자. 학부모 자격으로 학교에라도 가는 날이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우두망찰하다 돌아와야 하는 남자. 차를 몰다가 경찰의 검문을 받으면 우선 돈부터 꺼내야 하는 남자. 그들은 환생한 심봉사들인가, 호흡하는 장승들인가, 영원한 범법자들인가.
세상이 떠들썩한 패륜아의 소식에도 감히 욕 한 마디 하기가 주저로운 아버지. 누구의 자식은 어떻게 성공했다는 소문도 애써 못들은 체 해야 하는 아버지.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8,15와 6.25, 4.19와 5.16의 격동을 겪었고, 서슬 퍼런 이념의 시대를 살았으며, 절대식량이 부족했던 곤궁의 시절을 견디어 온 주인공들이 그들 아닌가. 가정을 세운 가장, 자식을 키워 온 엄부, 조국을 지킨 용사, 산업을 일으킨 역군이 그들 아닌가. 인생을 고뇌하고 사랑을 아파했으며, 낭만을 즐기고 유행에 민감했던 주인공들이 그들 아닌가.
그들은 배워야 산다는 일념에 충실했고, 시간이 금이라는 진리 따라 일을 했다. 그들에게 가난 극복은 제일의 명제였고, 자녀 성공은 가장 큰 소망이었다.
아버지, 오늘의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위로 치켜 찢어진 두 눈과 납작한 코를 부끄러워 아니하고, 우랄 알타이어의 한 갈래를 유감없이 구사하며, 한국학교 세우기에 열심을 내는 그들은 당당한 배달의 후손이다. 김치를 먹어야 입맛이 당기고, ‘전원일기’를 시청해야 감정이 살아나며, 흘러간 노래를 불러야 향수가 달래지는 그들은 엄연한 단군의 핏줄이다.
그들은 한 잔 술에 취하여 과거를 잊으려 하고, 물가에 낚시를 드려 현실에 자적(自適)하기를 배우며, 골프장 그린에 그려지는 포물선을 따라 미래를 설계하고 싶은 한인 1세들이다. 그들은 이민을 결심했을 때 이미 웅비의 기상과 도전의 의지가 남달랐던 선견지명의 세계인이다.
아버지 ,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어머니가 희생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아버지는 책임으로 사는 사람이다. 어머니가 자애의 상징이라면 아버지는 위엄의 표상이다. 자식을 감싸는 것이 어머니의 애틋한 정이라면 자식을 초달(楚撻)하는 것은 아버지의 도타운 마음이다. 자식의 오늘 걱정이 어머니의 몫이라면 자식의 내일 염려는 아버지의 분깃이다. 눈물이 어머니 사랑의 진액(津液)이라면 훈계는 아버지 애정의 정수(精髓)이다.
아버지, 그들은 누구인가.
삶은 있으나 생기가 메마른 그들은 누구인가. 호칭은 있으나 권위는 전만 못한 그들은 누구인가. 생업은 있으나 그 주역에서 멀어진 그들은 누구인가.
아내의 역할이 커지고 자녀가 앞장서야 하는 이민가정 속에서 그들의 자리는 어디에 남아있는가. 사회보장이 제도화되지 못한 아르헨티나 이민사회에서 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30년 이민사에 그들의 족적은 어떤 모양으로 새겨질 것인가.
아버지날이 다가온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6월은 그들이 견디기에는 너무 추운 계절이다.




*   바람 부는 날의 산조



타관은 더 춥다더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은 영상 5도에도 혹한이다. 그러나, 정작 견디기 어려운 것은 추위가 아니라 바람이다. 미운 작부처럼 속속들이 파고드는 바람, 그것은 마음을 저미는 비수요, 가슴을 후비는 송곳이다.
이런 날은 천근 남자의 마음도 바람을 탄다. 인생의 겨울을 생각하는 어쭙잖은 사색인이 되기도 하고, 삶과 죽음을 헤아리는 서툰 철인도 된다. 그러다가 현실 속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며 암울에 빠지는 심약자가 되어 버린다.
몇 손님과의 가벼운 상거래, 종업원과의 두어마디 잡담, 신문 훑기, 잡지 뒤지기, 그리고 찬 도시락을 열어 젓가락을 들면 외로움이 먼저 식도를 넘는다.
방향감각을 잃은 겨울바람은 쁘로빈시아의 오후를 마냥 흔들어 마음의 안정을 못내 방해한다. 밖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책을 집었다 놓기도 한다. 그래도 오후는 길다. 불경기는 시간 속에 지루함으로 살아있다. 또 몇 손님과의 가벼운 상거래, 그리고 종업원과의 두어 마디 잡담. 이윽고 돈통을 열어 허약한 하루를 챙긴다.
운 빼소로 감히 벤스를 산다. 버스 안에는 초췌한 3등 인생들이 졸고 있다. 이가 안 맞는 창문 틈에서 새어 드는 황소바람을 깃으로 막으며, 동족은 아니나 동류임이 분명한 그들 속에 섞이어 같이 눈을 감는다.
오늘도 옷값을 깎아 달라는 손님이 있었다. 얄미운 생각에 응해 주지를 않았다. 사간 지 오랜 옷을 바꾸러 온 손님도 있었다. 뻔뻔스러워 보여 안 된다고 잘랐다.
항상 지나놓고 나서야 후회하는 버릇, 늘 현재상황이 아닐 때에만 너그러운 도덕군자가 되는 심보는 무엇인가. 내일 또 다시 너그러울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조차 부담으로 와 닿지 않는 위선은 또 무엇인가.
웅성거림에 눈을 뜨니 졸던 동류들이 모두 내리고 있다. 낌새가 고장이다. 마침 네거리를 휩쓸며 줄달음치던 바람기둥이 판자촌 지붕 위로 승천하듯 사라지는 것이 모인다. 이민 선배들의 한과 땀과 눈물이 고였던 곳, 여기를 잊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소리가 바람 기둥에서 들여온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초라하게 누운 꼬레아 길을 밟는다.
각 나라의 이름을 딴 거리가 허다한 아르헨티나에 우리의 길이 없었다는 것도 참지 못할 부끄러움이었지만, 천신마고로 얻어냈을 단 한 꽈드리의 바나나형 비탈길도 그 몰골이 수치스럽기는 거기서 거기다.
어느 날은 찬비에 후줄근하던 낙엽 밟기가 싫더니, 오늘은 또 발끝에 채는 꼬레아길 나뭇잎의 신음을 듣는 것이 마냥 짜증스럽다. 고샅길 더듬듯 골라 골라 환한 백구에 닿는다. 여기는 왕십리다. 길음동이다. 모래내다, 봉천동이다.
동포 식품점의 보리비아노는 과일상자를 들이느라 혼자 바쁘다. 번들거리는 감의 윤기에 이끌리어 한 발 가까이 가려는 순간, 젊은 동포 여인이 급히 다가와 선뜻 감을 고르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여인을 훔치는 치한으로 변한다. 그 눈으로 감을 고르는 여인의 손끝에 엷은 피로가 묻어있음을 본다. 소매에 붙어있는 분홍색 실밥에 고단한 이민의 하루가 물들어 있음도 본다, 스웨터를 입었어도 너무 좁은 여인의 어깨는 안쓰럽다. 감에 어리는 향수의 눈빛은 애처롭다. 밑 화장도 없는 여인의 얼굴이 감빛으로 다가온다.
바람은 항상 밤에 더 짓궂은 것인가. 미장원을 출입한 지 오래된 여인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흩으면서 귀밑에 숨어있던 연민의 색깔을 보여준다. 희어서, 고와서 너무 슬픈 부위다.
“시어머님이 감을 좋아하세요.”
반듯한 서울말씨는 단감 맛이다. 저만치 가버린 여인의 거리는 감빛 공허로 남는다.
까라보보 한인촌의 중심 거리를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진다. 작아진다. 그리고 사라진다. 외등은 허공에서 졸고 가로수는 맨몸으로 떤다. 그 밑에 초로의 겨울 남자가 혼자 서 있다.
밤바람이 다시 분다.

류창희   2009-04-20 22:19:43
좋은 수필사에서 책이 한권 왔다.
보낸이는 강호형선생인데 책은 최운선생 것이다.
이미 '까라보보'에서 읽은 내용이 많은데,
'바람 부는 날의 산조'의 문고판이 훨씬 편하다.

나는 좋은 수필을 만나면,
꼭 다시 남편 앞에서 소리내 읽어주는 버릇이 있다.
4.19 날 이라서 인가.
서너편을 뽑아 읽어주다가 <아버지, 그들은 누구인가> 에 꽂혔다.
호미   2009-04-23 17:17:39 
언젠가 수업 중에...쌤께서 읽어 주시던 글들이
-매실의 초례청 -
저의 책장 한켠에서 폼을 잡고 서있습니다.
새삼... 수필의 참 맛이 서린 글들을 읽노라니
잊혀져가는 저의 여린 꿈자락이 서럽네요.
좋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
류창희   2009-04-24 20:48:54
글이라는 것은 코드가 있나봐요.
저는 화려한 문체보다 담고 있는 내용이 좋으면 좋은 글이라고 여겨져요.
정서가 맞아야 감동이 있는 것 같아요.
전 좋은 글을 보면 꼭 소리내 읽어요.
그래야 가슴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스며들어 '體化' 되지요.
그나 저나 잘 지내시죠?


설야 유야무야
배채진


출발 두 시간 후에 하동 터미널에 도착, 악양 행 완행버스로 갈아탔다. 발을 저는 할머니가 섬진강 벚꽃나무 옆에서 내릴 때 눈은 본격적으로 광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쏟아질 것 같은 날씨는 아니었는데 지리산 남부 능선 끝자락 가까이에 오니 일기가 달라진 것이다. 흩날리는 눈이 뒤뚱뒤뚱 겨우 걸음을 떼는 할머니에게 덤벼드는 형상이었다. 한 명, 두 명 떨어뜨리던 버스는 악양 골 맨 안쪽의 동매교 까지 왔다. 이번엔 내가 떨어질 차례다. 난 이 버스의 마지막 남은 한 명 승객이었다.

차밭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마침 눈은 소강상태, 틈을 잠시 내어 주고 있었다. 언덕에 서서 돌아보니 악양 벌판이 저 끝 평사리, 그 너머 섬진강 찻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눈발 때문에 훤히 보이지는 않았다. 배낭을 내려 놓자말자 한 잔의 커피, 서둘러 밭으로 나갔다. 농막에서 마시는 커피는 늘 ‘바로 이 맛’이다. 커피 물 끓는 소리도 늘 상쾌한 굉음이다.

오늘 할 일은 거름 포대를 옮기는 일. 여름 이후로 벼르고 벼르던 일이다. 물 머금었기로 무거워서, 오십 포대라 양이 많아서, 엑기스처럼 번져 나오는 닭똥 진액이 볼수록 겁이 나서 차일피일 미룬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번엔 각오를 단단히 했다.
냄새는 사라졌고 진액은 말랐으며 무게도 가벼워졌다. 한 포대씩 옮기다가 두 포대를 시도했다. 눈 쏟아지기 전에 다 옮겨야겠다는 조바심이 무리를 범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외 발통 리어카, 소위 일륜 리어카의 화물 적재량은 한 포대다. 외발통이니 여차하면 옆으로 쓰러지게 된다. 조심조심 운전하여 부릴 곳에 겨우 도착했다. 굴곡이 심한 밭이랑을 넘는 일은 그야말로 ‘돌진, 적진 앞으로’였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힘이 부친다.

좀 쉴 겸해서 이번엔 구덩이를 팠다. 팔 때 차나무로부터 30센티 이상 떼어서 파라는 K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감나무, 매실나무 옆에도 팠다. 모두 백여 개. 슬슬 내리던 눈은 본격적 하강 작전으로 돌입한다. 금방 그칠 것 같지가 않다. 바람이 숲을 때린다. 시계는 거의 제로였다. 삽을 던지고 걸어 나왔다. 나와서 보니 바른 걸음이었다.

농막의 라디에이터가 들어온 나를 온기로 감싸 준다. 밖을 본다. 악양 벌은 혼미와 환상을 번갈아 연출하고 있었다. 쏟아질 땐 혼미였고 멈출 때는 환상이었다. 판 구덩이를 눈이 다 채운다. 거름 들어갈 자리를 눈이 차지해버린 것이다. 곤두박질치듯 서 있는 리어카 위에도 눈이 쌓인다. 다시 나가야 말아야 하나 잠시 번민에 빠진다. 다지고 다닌 결심을 수행하려면 나가야 한다.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할 정도의 눈은 아니다. 하지만 금방 녹아 버려 옷이 젖는다. 우물우물 하다가 내일로 미루었다. 자칫하면 결심이 유야무야될 판이다. 내일 못하면 유야무야되고 만다.

밤이다. 홀로 새는 농막의 눈 내리는 밤은 깊고도 깊었다. 비록 끝자락이기는 하지만 지리산 남부능선 시루봉 아닌가. 오늘 따라 적막은 더 두껍다. 하나 둘 켜진 마을의 가로등 불들만 멀리서 눈 속에서 흐늘거린다. 워낙 귀한 불인지라 하지만 또렷하다. 그들은 이 밤,  설원을 지키는 홀로 파수꾼이다. 평소에도 귀하던 움직임이 오늘 밤엔 아예 없다. 어쩌다 움직이는 자동차 불빛이 눈 속에서 희미하게 붉다. 번져 나가는 색상이다.

밤이다. 나 없어도 혼자서 잘 자겠느냐고 걱정하는 편(나는 집 사람을 편이라 부른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일찍 불을 끄고 자리에 눕겠다고 했다. 하지만 바람과 눈, 말하자면 설풍은 나로 하여금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했다. 초저녁엔 초저녁이라서 자리에 들지 않았지만, 밤이 깊은 지금은 내리는 눈 때문에 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불을 끝내 켜지 않았다. 불을 켜서 쫓아버리기엔 아까운 눈빛이었다. 커튼 걷힌 창밖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시간이 한참 흐른 것 같았다.

눈 내리는 밤을 산기슭에 와서 눈 뜨고 혼자서 보내는 밤의 경험은 처음이다. 양초가 있었지만 불붙이지 않았다. “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는 노래 말이 이 밤 따라 청승스럽게 여겨진 까닭이다. 열한시를 넘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때까지 무념으로 보냈다.

다시 뜨니 두시 반이었다. 커튼이 훤했다. 고요하다. 몇 개의 마을 불들만 고요를 지킨다. 달이다. 커튼을 여니 달이 웃고 있었다. 형제봉, 칠선봉, 구재봉 등 악양 골의 봉우리들이 달빛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달빛 겹친 눈빛이니 더욱 환했다. 악양 골은 설원으로 변해 있었다.

풍경은 경이였다. 우주 속에 있는 듯 했다. 자다가 깬 것 같지 않게 의식은 명료했다. 고립 속에 혼자 있는 밤중이지만 무섭지도 안 무섭지도, 두렵지도 안 두렵지도 않았다. 섧지도 기쁘지도 그립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별 생각이 안 났다. 내가 있었고 또 없었을 따름이었다. ‘이런 밤을 내가 보내다니’ 라고 생각할 땐 내가 있었고, 설산, 설원 그리고 달, 달빛에 빠져 있을 땐 내가 없는 거였다. 소리는 굉음이었다.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깨어지는 굉음, 폭발하는 굉음이 아니라, 흐르는 굉음이었다. 바람은 흐르고 있었다. 그 땐 또 나의 있음의 의식되었다.

감히 무아지경이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그대로 그렇게 있은 밤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유야무야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말하자면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었던  설야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유야무야’, 있다고 말하기엔 없었고 없다고 말하기엔 있는 것이 존재자의 존재, 즉 ‘있음’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존재는 ‘유야무야’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날 밤 나는 유야무야 존재체험 한번 찐하게 한 셈이었다.

해가 떴다. 거름 포대를 다 옮겼다. 결심을 유야무야 시키진 않게 되었다. 편에게 전화했다. 개선장군처럼의 목소리로 보고했다. 설원의 유야무야 지난밤도 숨 가쁘게 말해 주었다.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아듣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배채진
계간수필동인 부산가돌릭대교수 부산독서아카데미회원


저자 및 역자 소개

저 : 프란츠 파농  
    
프란츠 파농은 1925년 서인도 제도의 한 섬인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 프랑스의 한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시작으로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하게 입문하 뒤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학문영역에 지적관심을 드러내 보인다. 후에 프랑스에 대항한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에는 알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정신분석의로 시술을 하기도 한다. 그가 식민지인들의 다양한 심리양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기에 그가 수행했던 경험때문이다. 서른 여섯 살에 알제리 사람으로 죽은 프란츠 파농은 정신과 의사이자 FLN의 투사로 『검은피부 하얀가면』『아프리카 혁명을 위하여』『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등의 저서가 있다.

  • 목차보기  
  
1. 흑인과 언어
2.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3.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
4. 식민지 민중의 의존 컴플렉스
5. 흑인성이라는 사실
6. 흑인과 정신병리
7. 흑인과 인정투쟁
8. 결론

  • 책속으로  
  
흑인은 이차원적인 존재이다. 한 차원은 자신의 종족과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한 차원은 백인과 관련되어 있다. 흑인은 백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신과 다른 종족의 흑인에 대해서도 매우 차별화된 행동 양식을 선보인다. 흑인의 이러한 자기 분열이 식민주의적 굴종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또한 식민주의의 그 교묘한 지배 기술이 다종다기한 이론의 중심에서 도출된 것임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흑인을 원숭이가 인간으로 서서히 진화되어 가는 단계에서 나타난 중간자적 존재로 구인하려 했던 그 다양한 이론이 중심에서 말이다.---p.23-24


나는 주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게 절름발이의 겸양을 수용하라고 닥달한다. 어제 세상의 아침을 향해 깨쳐 일어나면서 나는 하늘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똑바로 서고 싶었다. 그러나 내장이 다 드러난 침묵이 내게로 무너져 왔다. 날개가 마비된 채, 책임감도 없이 한 발로는 무(無), 다른 한 발로는 무한을 떡 버티고 선채, 나는 긴 울음을 울었다.--- p.176



호수아빠   2009-02-12 14:30:20
알제리...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 회교국가. 수도 알제. 남아프라카의 두번째 큰나라. 대부분이 사막인 나라. 공식어가 아직도 프랑스어인 나라. 세상 밖으로 알려진게 없는 나라. 한국기업이 이제 진출하는 나라. 지금 내가 하는 일로 방문해야하는 나라.
류창희   2009-02-16 12:49:19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난 너무도 아는 것이 없다.
지도를 보며 책을 보며 공부할 수도 있고
시간과 돈과 건강의 여력이 된다면
여행사를 통해 혹은 자유여행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이도 저도 그도 핑계만 댄다.
테마기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등등등
화면으로 '보고 또 보고' TV와 더불어 방학이 다 끝나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실감하며 ...
호수아빠   2009-02-16 16:17:54
아는 만큼 보이겠지만, 보이는 만큼 아는 것에 대해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논쟁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교훈이 숨어있는 것 같아서....
보이는 만큼 아는 것의 존재에 대한 서글픔으로....지금 읽고있는 책의 내용중에 [인디언들의 십계명]있어 옮겨 봅니다.
1. 대지는 우리들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
2.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3. 위대한 신비를 향해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열라.
4. 모든 생명은 신선한 것, 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5. 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그냥 놓아 두어라.
6. 모두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7. 모든 새로운 날마다 위대한 신비에게 감사하라.
8.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사람들 속에선 오직 선한 것만을 보라.
9.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태양과 함께 잠들라.
10. 삶의 여행을 즐기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지 말라.
류창희   2009-02-16 17:57:58
호수아빠
그러게말야. 가장 가까운 내 자신을 못보고
멀리 있는 타인의 것은 또렷하게 보인다는 착각.
매일 눈 앞의 일들에 한치 앞이 안 보이니 ...

논쟁이라는 단어로 서로 자존심에 상처를 내 피를 보이고...
'다른 시각을 존중한다는 것'
올해의 화두!
콩콩나무   2009-02-17 12:34:48
난 옛날에 흑인들은 무슨생각을하고살까?
하고 궁금할때가 있었을 뿐이고.....!!
이글을보니 맘아프고 불쌍 하다는.......~~
류창희   2009-02-18 19:38:33
콩콩나무님^^
우리가 헐리웃 영화로 긴시간 학습이 되어서요.
서부영화를 보면
항상 '착한놈'과 '나쁜놈'이 정해져있었잖아요.
편견이 무섭죠.


부산독서아카데미 2월 토론스케치


영춘화 매화 춘란이 꽃망울을 터뜨리던 이른 봄날 저녁, 2월 독서토론회로 모였습니다.
도서선정위원장님이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관계로, 이을규 전 회장님께서 토론을 진행하셨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인생이 80세에서 시작하여 18세쯤에 끝난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하고 탄식했다지요.
이을규 회장님의 열정을 보노라면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처럼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잡수시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도 새 얼굴이 있어 참석회원들이 자기 소개 겸 지난 한 달 동안의 근황들을 나누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학교 대신 매일 극장으로 출근한다는 사무총장님의 코멘트가 있자 main 요리에 들어가기 전의 전채요리는 영화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한창 뜨는 ‘워낭소리’에서부터 ‘쌍화점’을 거쳐 독립영화 ‘낮술’에 이르기까지...
특히 ‘낮술’에 대한 배교수님의 심층적 분석과 소개는 교수님의 전공이 철학인지 영화평론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회원들로 하여금 그 영화를 당장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호기심과 경탄을 자아냈는데요, 배교수님의 마지막 멘트는 더 압권(!)이었습니다. “나도 그 영화를 아직 못봤는데 한 번 봐야겠네...”

오늘의 main 요리는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입니다.
먼저 역자의 무성의함, 불친절함에 대한 불만들이 제기되었습니다.
대중들이 읽기를 원하는 책이라면 앙틸레스, 마르티니크, 포르드 프랑스가 도대체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빈번하게 사용된 피진(pidgin), 크레올, 네그리튀드... 등등의 용어에 대한 설명을 각주에라도 붙여주는 것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이에 대하여 역자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저자 스스로도 친절하게 쓴 책이 아니다며 여러 철학자, 사상가들의 말을 인용하고 있으나 본문과 부조화도 있었으며 독자들에겐 낯선 전문가들도 많이 인용하고 있어 읽기가 힘들었다는 지적들이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그 점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찾아가면서 읽도록 하는 장점도 있었다는 촌평도 있었습니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는 소감들이 많았습니다. 곽민이님은 저자의 처녀작이다보니 학자로서의 세련미가 부족하여 처음에는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체험에서 우러나온 분노가 담겨있고 울림이 있었기에 좋았다는 의견을 피력하셨고, 배교수님께서도 앞 부분을 읽으면서는 학자로서의 전문서도, 의사로서의 정신분석서도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으나 3장 이후부터는 흥미로웠다고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최나래 님은 책의 제일 마지막 “연구를 끝마치면서 나는 희망한다. 이 세계가 나와 더불어 활짝 열려진 모든 종류의 의식의 문을 느낄 수 있기를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기도한다. 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라는 외침이 강한 울림을 주었고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의견들도 많았습니다.
4개월 후면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데리고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신 전연조님께서는 흑인들의 문화적 열등감이 백인의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려는 집착으로 표출되는 모습은 결국 영어교육의 광풍에 휩쓸려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라고 말씀하
셨고요.

최나래님은 제3세계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도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성적 의견을 개진하셨습니다.

흑인에 대한 거부감, 부정적 이미지가 본능에 의한 것인가 학습된 것인가에 대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색채론의 관점에서 볼 때 검은색에 대한 거부감은 단순히 학습된 것이라고만 보기 어렵고 본능적인 부분도 많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처음 참석한 석연숙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은 우리도 모르게 학습되고 축적된 문화적 편견에 기인하는 면이 많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현석 원장님은 한 때 훈(Hun)족이 유럽을 지배했을 때 게르만인들이 그에 복속된 역사를 예로 들면서 현재 서구 백인 중심 문화가 선진문화로 보이는 것은 인종이나 문화적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 종족의 문화에 다른 종족이 복속되는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는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저자의 경험과 식민지시대의 아픔을 겪은 우리 국민들의 경험을 비교하는 논의들도 있었는데요, 조성락 원장님께서는 內鮮一體를 표방하며 지배자의 부와 권력에 추종하도록 유도했던 우리의 식민지 경험과 교육이나 문화적 혜택을 완전히 박탈당한 아프리카 식민지 경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열기를 더한 토론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답니다.
이 책에 대한 토론으로 그동안 ‘천개의 찬란한 태양- 바리데기- 황금물고기’등으로 이어지던 주류로부터 압제받는 자들의 문제에 대한 독서 여행이 종착역에 도착한 것 같아 뿌듯하다는 점에 참석자들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3월의 책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리 호이나키 著, 녹색평론사)입니다.
부산카톨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는 배채진 교수님께서 책에 대한 발제를 하시고 토론 진행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보다 더 흥미진진한 토론회가 될 것 같습니다.

독서회 스케치: 박영주변호사



검은 피부 하얀가면
프란츠 파농 지음 / 이석호 옮김
인간사랑

서론-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흑인과 백인을 증오하도록 가르치는 흑인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진실은 인간의 얼굴을 화끈화끈 달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열변을 점화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매번 열변은 어디서나 불타올랐다. 그것은 전쟁과 기아와 불행을 수반했다.
백인 스스로를 흑인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흑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들 사상사의 풍요로움과 그들 지성사의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를 백인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쓴다는 사실

* 흑인과 언어-
불어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놈
저 친구 좀 봐, 거의 백인에 가깝게 말하는데
백인처럼 말한다고 칭찬한다,
R발음을 굴리는 연습을 부단히 할 것이다.
흑인은 일반적으로 원숭이와 백인이라는 인간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존재를 일컬어진다.
흑인에게 말을 건네는 백인들은 하나 같이 흑인들을 아이 대하듯 한다. 이죽거리고, 속삭이고, 달래고, 어르고, 속이고. 어떤 특정 백인만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흑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스스로의 수준을 하향 조종해 가면서 백인들은 안도감을 느낀다. 이것이 그들이 흑인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현실을 재확인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에서는 얼마나 살았어요. 불어를 꽤 잘하네요. 흑인들에게 이 말을 해주는 것보다 더 짜릿한 것은 없다.
어떻게 하면 언어를 보다 세련되게 가공할 것인가. 물론 그 언어는 자신이 백인의 문화를 완전 정복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도구로서의 언어를 의미한다.

*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열등감이란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적인 느낌에 가까운 것.
흑인이 그 자신만의 고도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 백인의 세계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 백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흑인의 집착, 흑인의 욕망은 바로 그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야만인 단지 세련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
흑인 여성들이 백인 세계로의 입성을 꿈꾸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 열등감의 노예가 된 흑인이나 우월감의 노예가 된 백인
‘그렇고 그런 놈’
백인은 그가 지배자이고 특히 남성일 경우, 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즐길 수 있다. 이것은 거의 모든 나라, 특히 식민지의 경우 예외 없이 적용되는 사실이다. 반면 백인 여성이 혹인 남성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인 여성의 흑인 수용은 거의 수혜에 가깝다.
백인 여성의 딸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영광이다. 적어도 자신이 덤불 속에서 잉태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

* 유색인 남성과 백인여성-
나는 흑인이 아닌 백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나를 사랑해 주는 백인 여성을 통해서만 나는 백인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지칠 줄 모르는 손이 그 순백의 젖가슴을 애무하는 순간, 백인의 문명과 존엄이 내 손아귀 속에서 내 것으로 화하는 것이다.
나는 백인이다, 나는 유럽에서 태어났다, 내 친구도 모두 백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흑인이 여덟 명도 안 된다, 나는 생각도 프랑스어로 한다, 프랑스가 내 종교다.
자유롭게 뛰어 놀아야 할 이 아이들은 하루 종일 기숙사 학교에 갇혀 재내야 한다. 모두 너를 위한 것이야.
너무 빨리 명상과 반성의 방법을 배워버렸다, 사소한 것에도 깊게 감동받을 수밖에 없는 고독의 삶, 과민증 환자.

* 흑인성이라는 사실-
엄마, 저기 검둥이 좀 보세요! 무서워요! 검둥이라는 호칭 속에는 내가 야스퍼스에게서 주워들은 전설과 이야기와 역사와, 그리고  그 무엇보다는 역사성이라는 것이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
당시 나는 내 하나의 몸뿐만 아니라 내 동족, 그리고 내 조상들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감정의 면역은 거부한다. 나는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저 평범한 한 인간. 어떤 이는 나를 노예로 끌려가서 혹심한 고문을 당했던 나의 선조들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미국의 흑인들은 분리되어 있다. 남미의 흑인들은 노상에서 매를 맞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흑인들은 거의 짐승에 가깝다. 내 친구 중에는 정말 똑똑한 세네갈 친구도 있는 걸요. 나는 어쩐 부류로 분류 될 것인가
내가 어디로 숨을 수 있겠는가
저기 검둥이 좀 봐 엄마, 검둥이! 쳐다보지 마라, 아가야  내 몸은 그 희디흰 겨울 날 아침 다시금 애도의 분위기 속으로 가라앉고 왜곡되고, 다시 채색되고 피복되었다. 검둥이는 짐승이고, 검둥이는 사악하고, 검둥이는 비열하고, 검둥이는 추하다. 저기 검둥이 좀 봐 검둥이가 떨고 있는 것은 춥기 때문이다. 아이가 떨고 있는 것은 검둥이가 무섭기 때문이고.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난로는 꺼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떨었다.
저 검둥이는 참 잘 생겼네! “말조심하시오, 아주머니!” 동시에 나는 두 가지 일을 성취했다. 하나는 내 적을 분별할 수 있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스스로가 하나의 상황을 주도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다는 것, 만루 홈런감이었다.
뭐라고? 증오와 경멸의 소유자인 나는 버림받는 존재라고? 구걸과 개탄의 대상인 나는 최소한의 인정도 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타고난 컴플렉스로 부터 탈출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흑인’임을 당당히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타자가 늘 인정하기를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오직 하나, 나를 알리는 것.
역사 이래로 유태인은 식인행위를 전혀 해보지 않은 인종에 속한다. 자신을 낳아준 아비를 잡아먹다니! 이 정도로도 유태인은 흑인과 다르다. 그런데도 유태인 역시 탄압의 대상이다. 유태인은 사냥감이고 멸절의 대상이며 소각의 대상이라는 것. 그렇지만 이 정도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 같은 흑인의 경우 우리에게 아예 어떤 기회조차 주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외부세계에 의해 화석화된 인종(화석 천형 주홍글씨)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노예, 외관의 노예인 것이다.
나란 존재는 백인들의 시선 아래서 박살난 지 이미 오래다, 나는 고착화된 존재인 것. 백인들은 절단기를 사용해 나라는 실체를 냉정하게 절편화했다.
검둥이 속옷에서 검둥이 냄새가 난다. 검둥이 이빨은 하얗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마음에 들 때, 너의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네 피부색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어느 쪽이든 나는 이 끔찍한 순환론을 벗어날 수가 없다.
내 동료들마저도 나를 거부한다. 그들 역시 백인이 된 지 오래다 그들 역시 백인 여성과 결혼할 꿍꿍이 셈을 가진지 오래다. 그들은 이제 갈색으로 표백되어 가는 아이를 갖게 되리라 누가 알겠는가? 조금씩 그렇게 가다 보면…
흑인 성직자가 경이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지금은 혹인 의사 흑인교수 그리고 흑인 장치가, 항상 흑인 선생이고 흑인 의사고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인종차별이란 한 인종이 다른 인동에 대해 갖는 근거 없는 증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내 속에 칼날이 번득이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내 스스로를 방어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리듬은 감각적인 것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동감 넘치는 요소의 원형이다. 리듬은 예술의 일차조건이자 기준이다. 리듬은 살아 있는 것이고 자유로운 것이므로… 리듬이 우리에게 지적인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방식으로
순종의 무릎을 꿇는 방법만을 배운 사람들 잘 길들여지고 기독교도화 된 사람들 잡종의 피가 주입 된 사람들…이들이 바로 내 동포들이다.
오늘날 흑인들의 능력은 일보다는 재주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

백인이 내 아비를 죽였다네
내 아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백인이 내 어미를 겁탈했다네
내 어민 아름다운 여자였으므로
백인이 작열하는 태양의 한 길가에서
내 형을 매질했다네
내 형은 강했으므로
그리고
백인은 내게 다가왔다네 피 묻은 손으로
내 까만 얼굴에 경멸의 침을 내뱉으며
폭군의 목소리로 말했다네
“이봐, 꼬마. 세숫대야, 수건, 물” 이라고

백인과 나를 연결할 수 있는 건 오직 초월뿐이다.
이것이 열등감의 표현일까? 아니다. 비존재의 감정이다. 백인이 선이라면 흑인은 악이다. 손에 총을 쥐고 있는 백인들, 그들은 항상 옳다. 악인은 항상 나이므로.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나는 결코 선이 아니라는 것, 그것뿐이다.

* 흑인과 정신병리-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질병 밑에는 가족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흑인애들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굽신거려”
그러나 사실 “흑인애들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굽실거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흑인은 공포의 대상이자 분노의 매개물이라는 것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태도가 큰형이 막내 동생을 대하는 듯한 태도와 유사함
흑인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의 그 엄청난 성적 정력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 생식기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흑인의 정력은 환상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미군부대가 있는 도시 뒷골목의 페티엄마 메리엄마 등등을 보았다. 그들은 눈자위가 거무스름했으며 손등이나 팔에 담배불로 지진 자리가 붉거나 이미 갈색으로 낙인 찍혔었다. 그녀들은 늘 끈 떨어진 번쩍이는 끈 나시 드레스식 잠옷을 입은 채 화투나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악을 쓰고 ‘갓뎀’ 욕하며 운다거나 희희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패티는 눈이 바비 인형처럼 예뻤다)
유태인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가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하고 권력의 요직을 독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인은 불가불 생식기 단계에 고착되어 있다.
흑인은 생물학적 위험을 상징한다. 유태인이 지적인 위험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흑인은 생물학적인 것을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특히 흑인은 아홉 살에 사춘기를 지나 열세살에 아버지가 된다.
흑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백인여성의 경우, 다시 백인 남성에게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그 여성을 강간하는 주체는 바로 그녀들 자신이다. 성행위 도중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나를 심하게 다뤄줘요“라고 외치는 여성들.
프랑스에서 백색의 상징이 정의 진리 순결 저 사람 몸은 너무 시커머, 저 사람 언어도 시커멓고, 아마 저 사람 영혼도 시커멀거야“ 이것이 백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논리이다. 흑인은 추악함의 상징인 것이다.
‘희생양이라는 본질’
영화에 나타나는 흑인의 본질 혹은 ‘본성’
언제나 하인으로
언제나 비굴하게 알랑거리고 히죽거리며
나, 훔친 적 없어요, 나, 거짓말 안 해요. 라고 사투리를 써가며
언제나 변함없이 “아, 잘 먹었다”고 말하는…
본능,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고 불변적인 것이며 구체적인 것이다. 반면 습관, 그것은 습득되는 것이다.
잘 생긴 흑인은 프랑스 백인의 모임에 초대되기도 한다. 이 모임이 지성인들의 모임이라면 아마 그 흑인은 이런 점을 강조했으리라. 자신의 피부색을 보지 말고 자신의 지성을 보아달라고.
아프리카인들은 그들 자신의 성생활을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과 같은 생리적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결론
흑인은 백인이 되고 싶어 한다. 흑인에겐 단 하나의 운명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인이 되어야 한다는 운명.
얼굴 구조의 정합성 이론이라는 것에 내가 아직도 종속되어야만 하는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나를 자꾸만 전쟁터로 내모는 세상, 절멸이냐 아니면 승리냐 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만이 남아 있는 세상에.
그토록 끊임없이 연상하고 싶어 하는 “아, 참 잘 먹었다”라고 이빨 빠진 발음을 내뱉는 존재가 아님을
나의 삶은 흑인의 가치를 대변과 차변으로 나누어 무게를 달아보는 대차대조표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
인간을 가두려는 시도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유색인의 불행은 그가 한때 노예로 부려졌었다는 데 있다.
유색인으로서 바라는 것: 도구가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인간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는 영원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 한 인종에 의한 다른 인종의 노예화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 인간, 그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내가 그를 찾아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뿐이다.
바로 ‘당신’이라는 세계를 건축하도록 나의 자유가 나에게 주어진 것. (내 인생은 내가 ‘디자인’ 한다.

사회혁명은… 그 시적 특성을 과거에서 견인해 오지 않는다. 미래에서 견인해 온다. 과거와 관련한 모든 관행을 벗어버리니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혁명은 불가능하다. 과거의 혁명은 세계사의 기억에 의존해 왔다. 그 혁명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각성된 상태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 내용을 정확하게 탐진하기 위해서 19세기의 혁명은 이미 죽은 자들의 손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을 묻게 해야 한다. 과거엔 번지르한 말이 내용을 앞섰지만, 이젠 내용이 말을 앞서야 할 때다.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라르트의 무월 십팔일


류창희   2009-02-16 13:35:45
그동안 헐리웃영화를 보면서
화석화된 역할들
백인 흑인 혹은 황색인종
다양한 문화에 대해
'선입견 & 편견'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혹, 조만간에
<화얀피부 검은가면>이 나올지도 모른다.
오바마 당선이래,
요즈음 우리나라 TV 상업광고를 보며
가장 발 빠른 속도에 나도 편승한다.
속도감 적응 못하면 촌닭처럼
심한 멀미를 할터이니...


황금물고기
르 크레지오 장편소설/최수철 옮김
문학동네

밑줄긋기

예닐곱 살 무렵 나(라훌라)는 유괴 당했다. 그때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너무 어렸던 데다가 그 후에 살아온 모든 나날이 그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일은 차라리 꿈이랄까, 아득하면서도 끔찍한 악몽처럼 밤마다 되살아나고 때로는 낮에도 나를 괴롭힌다. 햇살에 눈이 부시고 먼지가 날리는 텅 빈 거리, 푸른 하늘, 고통스런 울음소리,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나를 잡아 커다란 자루 속에 던져 넣었다.

나는 내가 곧 죽으리라고 믿었다. 내게는 먹을 것이 없었다. 조라는 약간 누르스름한 흰색의 긴 털을 가진 시추 종의 작은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 개를 위해 쌀을 끓여야 했다. 그녀는 그 쌀 위에 닭 국물을 끼얹었고, 그것이 그녀가 내게 주는 전부였다. 나는 그녀의 작은 개보다도 먹을 것이 없었다.

자밀라 아줌마로부터 로즈 부인과 조라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하나같이 나를 가두고 문을 잠그려 한다는 게 나는 너무도 이상했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편을 위해 부엌일이나 하는, 그저 하찮은 하녀와도 같은 존재가 아닌 다른 면을 보아준 사람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를 그물로 잡으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끈끈이에 들러붙게 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감상과 그들 자신의 약점으로 내게 덫을 놓았다.


파농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살을 먹는다는 것 프랑스인들이 우리 마을에 왔을 때, 그자들은 젊은 남자들을 데려다 밭에서 일을 시켰고, 젊은 여자들은 식탁 시중을 들게 하거나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여자는 프랑스에 두고 왔으니 그 대신 데리고 자곤 했지. 그리고 흑인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여차하면 자기들이 잡아먹을 거라고 떠벌이곤 했다.


겨울이 왔다. 프랑스의 겨울, 재빛 하늘, 4시에도 가로등이 밝혀진 거리, 눈, 빙판, 헐벗은 채 유령처럼 뒤틀려 있는 나무들 등등
내가 남쪽을 생각하며 태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영상이 눈앞에 떠올라 나를 침잠시킬 뿐이었다. 그것은 세네갈의 커다란 강과 팔레메의 하구, 황토 위로 난 제방, 엘 하즈의 나라였다. 시몬느의 음악이 나를 이끄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를 쇠진시킨 것은 추위와 바람과 비, 잿빛 구름으로 덮인 하늘, 창백한 태양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남자애들과 구제소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무엇을 찾게 될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었다. 광주리들이 커다란 벌레처럼 언덕을 오르내렸다.


그들의 배설물 미세한 먼지가 되어 꽃가루처럼 날마다 그들 위로, 머리 위로, 손위로, 장미 화단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평화로운 장소가 없었다. 한적한 곳이나 시야가 가려진 곳이나 동굴이나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공원 같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외설적인 행동을 일삼는 자들, 한마디로 너절한 녀석들, 관음증 환자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정한 힐랄족, 초승달 부족의 여인이다.
검은 가죽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빛나고 윤기가 흐르며 무척 젊다.
더 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 오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바닷 속의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노파의 손을 만졌다. 단 한 번만, 살짝, 잊지 않기 위하여.

표류, 혹은 근원에로의 항해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자신에게 덫을 놓으려 드는 세상 앞에서 그녀는 아무런 대비책도 가지지 못한 채 숨고 달아나는 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듯 그녀는 탁류에 휘말린 한 마리의 연약한 물고기지만, 그러나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황금빛을 지니고 있었던 물고기였다. 순진무구한 천진성과 더불어 강한 생명력을 타고난 그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심지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방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거친 세파를 헤쳐 나간다. 남들의 시선 밑으로 몸을 낮추어 수많은 올가미들 사이를 빠져나가 마침내 자신의 기억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출발의 장소로 돌아간다. 그 표류의 과정은 출발점 혹은 근원에로의 여행이다.
표류하는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해 그어진 하나의 작은 성호.
새로운 출발을 위한 근원에로의 회귀.


 



풍경과 바람

서정숙
안동출생
1991년 등단

겨울 이야기

꽁꽁 언 호수

드디어 집 앞에 있는 호수가 꽁꽁 얼었다. 겨울이 시작되면 호수가 금방 얼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 깊은 물이 얼려면 영하10도의 날씨가 열흘 정도는 계속되어야 한다니 한파가 몰아쳐야 된다.
얼음을 밟으며 호수의 중앙으로 가 본다. 얼음 아래로 맑은 물이 비친다. 따라오던 강아지가 발아래 물을 보더니 무서운지 꼼짝 않고 끙끙거리기만 한다. 물이 깨끗하고 날씨가 추운 탓에 얼음이 유난히 미끄럽다. 넘어지니 않으려고 몸을 사리며 간신히 호수의 중간 지점까지 간다. 거기에 서서 주위를 휘둘러본다. 사이다를 마신듯 싸한 바람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l
호슷가에서 호수를 바라보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내가 호수의 일부분이 된 기분이다. 지금 누가 호숫가에서 나를 본다면 중간 지점의 점 하나로 보일 것 같다. 집에서 늘 바라보는 호수였는데 호수에서 집을 바라보니 마음이 일렁거린다. 우리 집에서 또 다른 내가 호수 위의 나를 바라보고 손짓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우리 집에서 호수를 내려다 볼 때는 여기가 이렇게 넓게 느껴지지 않았다. 호수에서 집을 바라보니 호수는 한없이 넓고 우리 집은 자그마하게 보였다. 집을 둘러싼 산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호수 주위로 겹겹이 펼쳐진 산이, 흐린 날씨 탓인지 너울거리는 듯하다. 상상도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친 김에 우리 집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호수 건너편의 동산까지 가 보았다. 호수가 얼지 않았으면 가 볼 생각도 못 했을 곳이다. 그곳에 서서 반대편에 있는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성냥갑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의 집이 진짜 성냥갑처럼 보였다. 늘 우리 집이 주인공이고 주위의 자연은 우리 집을 아름답게 받쳐주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호수와 산이 주인공이고 우리 집은 소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자연의 흐름을 막는 소품이지 않는가.
다시 호수를 가로질러 걸어오며 생각했다. 내가 몸답고 있는 곳을 떠나서 그곳을 바라보아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서정숙 수필집 《풍경과 바람》중에서


류창희   2009-01-30 11:50:14
지난 연말에 읽었다.
쉽고 편안하고 슬픔도 담담하게 부드럽다.
뒤로 갈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맨 마지막 '한편의 수필'
꼭 그런 수필 한편 남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