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토론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부산독서아카데미】한글로 치시면 바로 나옵니다.

1999년 7월에 부산과 경남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만 매달려 사는 것에 교양적 소양을 갖추자고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과학독서아카데미’의 부산지회로 출발하였으나
1999년 9월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서 부산독서아카데미로 독립하였습니다.

현재 가입회원 수는 290여명이며, 특별회원이 50여명.
달마다 토론에 참석하는 회원은 20여명 안팎 정도
나이는 20대에서 60대까지 계십니다.
매달 둘째주 목요일 모임이 있습니다.
직업분포는 의사가 가장 많고 변호사 교수 교사 방송인 경찰
소설가 시인 신부 개인사업 세무사 설계사 등 등 다양하고
어쭙잖은 여류 수필가도 한명 끼어 있습니다.

그동안 읽힘을 당한 책( 읽고 자유 토론한 목록을 올립니다)
‘부산독서아카데미’ 까페에 들어오시면 책 소개와 토론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05년 5월부터 토론회원으로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모임 속에 제 이름은
<花樣年華>입니다.

100회 기념준비를 하면서 목록을 올려봅니다.


【부산독서 아카데미 】독서토론 목록

99년 9월   사회생물학 논쟁  프란츠 부케티츠 김영철옮김 사이언스 북스
99년 10월  복제양 둘리  지나콜라타지음 사이언스 북스
99년 11월  빌게이츠@ 생각의 속도  사이언스 북스
99년 12월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허만하 솔

00년 1월   인터넷 비즈니스 골든사이트   매일경제 신문사
00년 2월   손정의 인터넷 제국의 지배자   다키다 세이치로 황금가지
00년 3월   은빛 물고기   고형렬
00년 4월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00년 5월   노자와 21세기    김용옥          
00년 6월   최고 경영자 예수   로리베스존스
00년 9월   영화 보기와 영화읽기   조셉 보그스
00년 10월   차이와 타자  서동국
00년 11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이문구
00년 12월   가끔 절망하면 황홀하다   서정윤

01년 1월    성찰적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박형준
01년 2월    노동의 종말    제레미 리트킨
01년 3월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울리히 벡
01년 4월    원칙중심의 리더십    스티븐 코비
01년 5월    마음의 여행    이경숙   정신세계
01년 6월    부생(아버지 날 낳으시고)  강승귀 정은경 편저 지수
01년 7월    돌아가는 배   김성우 삶과 꿈
01년 9월    세계의 음악기행    김성우 한국문원
01년 10월   세계를 바꿀 어느 물고기의 역사   마크 쿨란스티 박광순역
01년 11월   이슬람문명 올바로 이해하기   이희수
01년 12월   등불하나 걸어오네    강은교

02년 1월    자전거 여행     김훈
02년 2월    이윤기가 건너는 강    이윤기
02년 3월    부산에 살으리랏다    최해군
02년 4월    알몸 박정희    최상천
02년 5월    알몸 대한민국 빈손   김대중 최상천
02년 6월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이영미
02년 7월    히로히토 에드워드 베르,    유경찬역
02년 9월    쾌락의 옹호    이왕주
02년 10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이해    이진우편
02년 11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최준식
02년 12월   한국 개망초가 쥐꼬리 망초에게    최영철

03년 1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03년 2월    주역의 과학과 도   이성환 김기현 정신세계사
03년 3월    벼랑에 선 대한민국 우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조갑제
03년 4월    원예치료    손기철
03년 5월    미술이란 무엇인가   이경성
03년 6월    케네스 쿠퍼 박사의 황산화제 혁명    여남희 역
03년 8월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     안효숙
03년 9월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하루키 김춘미역
03년 10월   러셀 자서전    러셀  송은경역 사회평론
03년 11월   그림자 호수    최영철   창작과 비평사
03년 12월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윤용이    학고재

04년 1월    남자의 탄생    전인권    푸른숲
04년 2월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병관    현대문학
04년 3월    신들메를 고쳐 매며  이문열    문이당
04년 4월    열정과 결핍 (이나리) 아시아를 잇는 대중문화 (고이치)
04년 5월    그리스도교와 무교   김승혜    바오로 딸
04년 7월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은 왜 몰락하는가    김종인   집문당
04년 10월   포구기행   곽재구
04년 11월   침묵    엔도 슈사쿠   바오르 딸

05년 1월    그 남자네 집    박완서   현대문학
05년 2월    신의 역사 1권 카렌 암스트롱  배국권 역 동연
05년 3월    신의 역사 2권
05년 4월    보살예수 :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 길희성 현암사
05년 5월   느림과 비움   장석주   뿌리와 이파리  (작가와의 대화)
05년 6월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    조수철 서울대 출판부
05년 7월   고기 욕망의 근원과 변화   난멜링거 임진숙 역 해바라기
05년 10월   똥 오줌의 역사   마르탱 모네스티에 지음 문학동네
05년 11월   산사에서 부친 편지     경봉   노마드북스
05년 12월   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지음   김경은 옮김 두레

06년 1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이왕주 효형출판 (저자와의 대화)
06년 2월    위대한 패배자  V슈나아더  박종대  을유문화사
06년 3월     대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  최재천
06년 4월    카사노바 자서전 불멸의 유혹  이경식 옮김
06년 5월    미학 오딧세이3    진중권
06년 6월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06년 7월    박제가와 젊은 그들   박성순 고주원
06년 10월    칼에 지다   아사다지로   북하우스
06년 11월    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    한길아트
06년 12월    백석 읽기의 즐거움    서정시학

07년 1월    로마인 이야기
07년 2월    붉은 여왕   배트리들리저 김윤택 역 최재천 감수
07년 3월    유쾌한 심리학   박지영   파파에
07년 4월    영혼의 부정   스캇 펙저   김영사
07년 5월    티셔츠의 경제학   피에트라리볼리 지음 다산북스
07년 6월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07년 7월    호루라기  최영철  문학과 지성사 (저자와의 대화)
07년 10월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07년 11월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서경석 노마필드 카토슈이이공저
07년 12월   돈가스의 탄생   오카다데스저 정순분 역 뿌리와 이파리

08년 1월   근대문학의 종언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08년 2월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푸른역사
08년 3월     바라데기  창비   황석영
08년 4월     천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저 왕은철 역
08년 5월     강희제   조너선 D스펜스지음 이준갑 이산
08년 6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솔

총 91권
해마다 7월이나 8월은 각자 읽은 책 발표였습니다.

08년 6월 13일 독서회 마치고 돌아와서 올립니다.


부산독서아카데미<근대문학의 종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할 독서 아카데미 2008년 1월 첫 모임 후기...  
글쓴이: 세속도시 조회수 : 112 08.01.14 11:30 http://cafe.daum.net/bbra/


끝남을 아쉬워 하지만 집착을 하지 않는 것은, 끝 이후의 또 다른 시작,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세속도시 정회용 늦게 인사 올립니다..^^
목요모임에 조금 늦게 도착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이미 와 계셔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늦게 도착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알 수는 없었지만,
위원장님께서 어색하지 않으시게 분위기를 이끌어 주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공통적으로 책이 어려웠다는 의견이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주의 깊게 읽고 오셔서
활발한 토론이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역시 위원장님께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시면서,
고진의 책을 읽고 이전에 미처 알지 못한 많은 부분을 알게 되어서
상당히 유익하셨다는 내용을 말씀하셨고,
이현석원장님께서  토론의 방향이 나아 갈 수 있도록
크게 두 가지로 방향을 잡아주셨는데,



1. 네이션(nation)의 의미가 무엇인가?

2. 가라타니 고진이 이야기한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어떤 것을 근거로 이야기한 것인가?



첫째로, 네이션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처럼, 국민,
즉 민족성의 개념으로 네이션을 사용하였다는
아리따우신 교수님(성함을 몰라서 너무나 죄송합니다)께서 말씀을 해주셨으며,
저 역시 동의를 표하며, 더불어 스테이트는
보다 제국주의적인 개념으로 이해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연석 원장님께서 스테이트는 네이션의 착취 개념이며,
그 수레바퀴로 자본이 개입되었다. 고진은 이러한 개념의
이상향으로 어소시에이츠를 주창하였으며,
이 어소시에이츠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과 동일 선상으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고진은 왜 국가의 불필요(아니키즘적인)를 주장하는가? 하는
보다 깊은 문제제기를 하셨는데 아쉽게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근대문학의 종언을 주장하였는데,
과연 고진의 이야기처럼 근대문학이 종언을 하였는가? 종언을 하였다면
그 근거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다수의 공통된 의견으로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시대정신의 소멸로 인해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하였으며,
시대정신이란, 소설이 서민들의 사상적 토양을 제공하고,
민중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는데, 이러한
기능적인 부분을 상실하였다 하는 의견이었습니다.(이연석 원장님)



그리고, 종언이 상징적인 의미로 차용한 것이지
실제로 종언을 고한다는 것은 오버적인 측면이 있다는 말씀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렇다면 공급과 수요의 관점에서 시대정신을 지닌 문학의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아니면, 민중들이 이러한 문학을 외면하였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경찰과장님(성함을 몰라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께서,
국민들이 원하고, 갈망하고 있는 시기에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나오고 단테의 신곡이 나와서 이것이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시대를 바꾸었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불어 이현석 원장님께서, 황석영의 바리떼기란 작품이 있는데
여기에 시대정신이 아주 적절하게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민중들이 얼마든지 받아 들일 수 있지 않겠나 하셨습니다.

(이원장님께서는 바리떼기의 출간을 모르고 계셨는데,
황석영의 바리떼기는 현재 출간 되어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 책을 3월의 토론 선정 도서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의 영향력이 왜 쇠퇴되어 가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논제가 뒤따랐습니다.
여기에 이연석 원장님께서는 매체의 이동으로 인한 쇠퇴이다.
텍스트에서 멀티미디어로 변화하는 시기에서 자연스럽게
쇠퇴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영적인 퇴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쇠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텍스트 쇠퇴의 원인은,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따르게 되는 이 시기에
텍스트는 자본의 논리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위원장님께서는 다른 의견으로,
현재의 세대는 텍스트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과 도구가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의 텍스트 위주의 강요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새로운 도구로 새로운 생각을 할 때이다. 하는 열린 마인드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깊이 있는 내용이 오고가서 그런지,
약속되어 있는 2시간의 시간은,
사랑하는 연인과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시간이,
KTX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찰나의 시간이었습니다.



화양연화님께서 <<매실의 초례청>> 책을 출간하신 기념으로
화양연화님 보다는 조금 이쁘지 않은 꽃다발을 증정 받으셨으며,
단체로 사진을 찰칵하면서 공식적인 모임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임 이후 여러 분들이 모이셔서 호프 한잔을 하며
못다한 이야기로 찰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았습니다.
2008년 한해. 원하시는 모든것들을 다 이루어 나가시는 한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덧붙임 : 참석하신 분들의 성함을 제가 몰라서 일일이 적지를 못함을 이해해 주시고,
친구분의 소개로 어려운 걸음 해주신 김종기 박사님 환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분들께서 다른 말씀들도 하셨지만,
제가 누락하고, 또는 말씀하신 내용들이
다소 다르게 적혀있더라도 바다보다도 넓고,
하늘도 다 집어 넣을 수 있는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지녔던 의문에 대한 해답과,
제가 미쳐 인식하지 못하였었던 문제제기를 알 수 있어서
너무나 유익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분들이 저보고 '꽃미남' 이라 해주셔서 더욱더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35세의 나이가 '꽃미남'이라는 호칭으로 귀염(?)을 받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책소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완역한 책. 30년이 넘는 저자의 문학 비평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이후의 방향을 논한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으로서의 번역부터 근대문학의 종언과, 소세키론인 문학의 쇠퇴까지를 다룬다. 대담과 좌담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3편의 비평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가라타니 고진  
가라타니 고진은 문예비평이라는 협소하고 자족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근현대 철학사상과 끝없이 투쟁하면서 <자본주의=민족(Nation)=국가(State)>에 대한 비판과 극복이라는 실천적 통로 찾기 위해 지금도 계속 이동하고 있는 아시아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인 일본의 사상가이다.

그의 책들은 영어, 독일어, 중국어, 한국어로 번역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세계적인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반문학론』『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은유로서의 건축』『탐구 1, 2』등 다수가 있다.



제목; 천개의 찬란한 태양
지은이; 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옮김
펴낸곳; 현대문학
발행일; 2007년 11월 25일

마리암과 라일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비참한 일들은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분노를 느끼고 비참하게 만든다.

내 딸아,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단 하나의 기술만 있다. 그것은 참는 것이다.

정말로 저 아이를 아끼신다면 어미와 함께 있는 게 팔자라는 걸 ... 배척당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마리암은 잘릴(아버지)이 단호하고 즐겁게 선물주던 방식이 떠 올랐다. 그것은 고마움 외에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쾌활함이었다. 그것은 내키지않아하는 속죄의 표시였고, 그녀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불성실하고 잘못된 몸짓이다.

나나(마리암엄마)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가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집고양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녀를 지나쳐버리는 태도를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4년간에 걸친 결혼생활을 한 후, 마리암은 두려울 때는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어떤 때는 주먹을 날리기도 했고 뺨을 때리기도 했으며 발로 차기도 했다. 그래놓고 사과를 하기도 했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마리암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내가 당신한테는 집안 살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주고, 그 애(라일라한테는 안식처를 준다고 말이야. 여자한테 나는 자선을 하는 거나 마친가지야.

무자히딘이 1992년 4월에 군력을 잡으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으로 바뀌었다. 라바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법원은 이제 강경파 율법학자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몸을 가리라고 명령하고 남자 친척없이 여자들이 여행하는 걸 금기하고, 간통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엄격한 이슬람법에 기초한 법령을 통과.

아래층에서 매질이 시작되었다. 라일라에게 들리는 그 소리는 규칙적이고 낯익은 행동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욕설도 없었고 비명도 없었고, 애원도 없었고, 놀라는 소리도 없었다. 때리고 맞는 규칙적인 일만 있었다.

여자들에 관련 된 사항
항상 집에 있어야 한다. 이유 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 밖으로 나갈 경우 남자친척 대동. 거리에 혼자 다니다가 걸리면 곤장. 어떠한 경우라도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부르카를 입어야한다.(한국제 대구에서 짠 실크 검은 색에서 온갖색을 창출시킴) 화장품 금지. 장신구 멋있는 옷. 남자들과 눈 마주침. 공공장소에서 웃으면 안됨. 손톱치장(손가락 하나를 자름) 여학교 폐쇄. 간통 돌로 쳐 죽임
----아아~ 대한민국 아아~ 나의 조국 국가에 우리나라 남자들에 감사♪

소련군은 백만명을 죽였다. 무자히딘이 지난 3년동안 카불에서만 오십만명! 그와 비교해. 도둑 몇 명의 손을 잘라내는 것이 그렇게 지나친 거냐? (개인의 인권과 민주주의 라는 이름으로 전쟁?)

그들이 부르카를 입고 수술을 하라고 해서 간호사가 망을 보는 것은 그들이 오면 부르카를 다시 입기 위해서.

잘마이에 대한 그의 인내심은 깊어서 마르는 법이 없는 샘물같았다.
라일라는 아지자가 (고아원에 맡길 때) 그렇게 품위가 있고 용서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는 데 놀랐다.

고아원 아이들은 소매가 닳은 스웨터에 무릎이 살만 남을 정도로 닳은 남루한 청바지, 테이프로 덕지덕지 기운 코트… 알라신이 허락하는 한, 아지자가 먹고 입을 수 있도록 하겠다.

마리암은 날카로운 삽날이 직각을 이루게 세웠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서‘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의 행로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마리암은 삽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걸 거기에 쏟아 부었다.

마리암은 그들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어떤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집에서 그들은 평화롭고 조촐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 살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견뎌야 했던 모든 짐들을 벗어던질 것이다.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 자격이 있다.

마리암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곳에 있는 탈레반들에게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요청한 것이다. 면회사절.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손가락질 니가 더 나쁘다 니가 더 나쁘다. 여자는 딸을 낳으면 운다고 한다. 왜? 나같은 고통을 너도 겪어야하니…

젊은 탈레반-신은 당신 여자들과 우리 남자들을 다르게 만들었나 봅니다. 뇌부터 다릅니다. 당신들은 우리처럼 사고할 수도 없습니다.(재판 중에)

단두대에서 -마지막 순간에 동물적인 본능이나 육체적인 치욕에 굴복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아름다운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리암은 대부분의 삶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마리암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녀에게 엄습해온 건 더 이상 회한이 아니라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 그녀는 잡초였다.

그들에게 부시가 지금 전쟁을 선포했을 때 타리크가 말한다.
그리 나쁜 건 아닐지도 몰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말이야. 고국에서는 다시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폭탄이다. 라일라는 시트를 바꾸고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면서 날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쟁의 모습을 바라본다. 미국인들은 다시 한번 군벌들에게 무기를 제공. 탈레반을 쫓아내고 빈 라덴을 찾기 위해 북부 연합의 협력을 얻어냈다. (무서운 일. 선한사람들 입을 빌려 귀를 현혹시키고 판단을 마비시키고 결국 쇠뇌 되어간다는 것, 차츰차츰 점점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결국 집단이기 무엇이 옳은 일인가.)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드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봄날의 독토 풍경 --4월 모임 스케치  
글쓴이: 박영주 조회수 : 94 08.04.12 21:03 http://cafe.daum.net/bbra/IFxM/1468


“투표용지는 총알보다 더 강하다”는 링컨의 말을 실감나게 한 치열했던 전투가 끝나고,

대부분의 군중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자랑스런 얼굴들과 전사자(戰死者)들의 부고(訃告)가

실린 매스컴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고 있던 4월 10일 밤,

그래도 독토 열성 회원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전장(戰場)의 포연을 헤치고 동보서적

4층 세미나실로 모였습니다.


여느 때 처럼 회장님께서 제일 먼저 오셔서 회원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전쟁통에 길이 막혀선지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진 못했네요.


전채(前菜)요리로는, 예상했던 대로 선거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고 선거 결과에 대한 언론

들의 천편일률적인 분석이나 해설과는 달리 이번 선거를 통해“서울의 지방화”라는 새로

운 풍조가 현실화되었다는 매우 신선한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어 출판 문화와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얽힌 여러 가지 음모(?)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매실의 초례청”의 작가이신 화양연화님께선 “대형 서점의 Main 진열대에 책을

눕히는 것이 처녀를 침대에 눕히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일동 박장대소!)


이제 main 요리로 들어갈까요?

이번 달의 책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입

니다.

먼저 호세이니의 첫 번째 소설을 영화로 만든 최근 개봉작 “연을 쫓는 아이들”에 대한

호평이 있었습니다.(저도 올해 본 25편의 영화 중 최고였답니다.)

주인공인 아프간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아픔은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으나

독토모임에서는 여러가지 시각에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화양연화님께서는 이 소설을 처음엔 아프간 여성의 문제에 대한 글로 생각하였으나 책을

다 읽고 보니, 단순히 여성의 문제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약한 자와 강한 자의 문제로

이해되었다고 소감을 밝히셨습니다.

도서선정위원장이신 고돌님께서는 이데올로기가 너무 강한 소설이었다. 아프간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하여 일말의 힌트조차 주지 않고 작가가 이

렇게 미국적 시각을 강요할 수 있는가?라며 좋은소설로 보기 어렵다고 평을 해 주셨습니다.


이현석 원장님은 여성의 인권을 비롯해 문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는데, 이런

점에서 서구의 문화와 이슬람권 문화의 차이라는 것은 단지 그 변화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인데, 이를 우열의 문제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서구적 시각에서 평가를 하는 오류가 있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조원장님께서는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진 아프간 여성들의 참상과 그 배경이

된 그 문화에 대하여 산부인과적(?)인 접근방법으로 원인 분석을 하셨고,

또 다른 회원은 스토리의 빠른 전개와 긴장감으로 대중소설로서는 성공한 작품이지만,

제대로 된 문학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교수님께서 외국 소설이라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복잡하고 가족관계가 헷갈리어 메모를

하지 않고 읽다보니 연결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고 하시자, 총무님께서 몸소 작성해오신

가계도(?)를 펼쳐보이셔서 일부 정통 독서광(?)들께선 "세상에! 등장인물 가계도를 그려가

며 책을 읽다니...”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저처럼 둔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운데...


메인요리를 끝내고 디저트로는 분위기 좋은 전통찻집‘북소리’로 자리를 옮겨 십전대보탕

으로 기력을 돋우며 화기 애애하게 이야기 꽃을 피웠답니다.


다음달 모임은 "잃어버린 회원들을 찾아서..."라는 슬로건으로 특별 이벤트가 준비될 것 같

네요.

기대하시라...



참석자: 이을규, 조수완, 윤봉한, 하종명, 임승권, 이현석, 전철우, 류창희, 이재선, 박영주,

조영남(이름이 맞는지... 죄송)



  댓글 9 개 이 글을...(0)
  
花樣年華 류창... 어제 '여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하더니. 요즘 어쩐지 제 목소리가 앞서서 저어되지만, 어쩌겠어요. 제일 먼저 본걸. 여러선생님들의 고견 정말 좋았어요. 독토에 결석하시는 분들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북소리에서 임승권님이 마련해주신 2부 수업도 좋았구요. 좋은 봄밤 되세요. 08.04.12 21:57
답글  수정  삭제

花樣年華 류창... 아래에 독토사진 올렸습니다. 08.04.1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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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乭 박변의 내공 가득한 정리 글 좋습니다. 정말. 08.04.13 08:08
답글

엘가 참석은 못했지만 스케치가 됩니다.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고 책이 잇어서 아름답습니다.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08.04.13 14:57
답글

이을규 박변호사님 상보 감사합니다. 피아노 음악도 ..전장의 포연은 멎고 책공부에 북소리의 전통차 한잔. 임국장 대권(?)장악 소식도 빅뉴스였습니다. 봄밤이 좀 따스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5월 3주차 조일리에서 예정된 "토요일 밤의 열기"를 미리 기대해봅니다. 08.04.13 21:18
답글

정인화 부득이하게 모임에 못갔지만 박변호사님 글과 밑에 사진을 모니 그날의 동보서적 세미나실 공기의 따뜻한 향기가 느껴집니다. 담달 모임이 기대됩니다... 08.04.14 15:23

답글  花樣年華 류창... '정인화' 그 이름을 보니 반가운 이름인데, 얼굴이 잘 떠 오르지를 않는군요^^* 08.04.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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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기 전에 아프간의 역사와 문화 종교 전쟁사 알고 읽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뒤늦게 잡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하는 독토를 후회없이 알차게 하자는 생각을 해봅니다. 08.04.15 09:49

답글  花樣年華 류창... 옆에서 오로라님 책을 잠깐넘겨 뵈니 잔글씨의 참고 메모가 많았는데, 제 목소리가 큰 바람에 ... 심도있는 밀착 독서를 하시는 것 같았어요. 많이 일깨워주세요^^* 08.04.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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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단 두 편의 소설로 현대 미국 문단의 중심에 선 할레드 호세이니. 특히 그의 두 번째 소설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쏟아지는 찬사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로 미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이 소설로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소설은 전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다. 폐허의 땅,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두 여인이 가난과 차별, 그리고 끊임없는 폭력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희생으로 희망을 가꿔가는 이야기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절망과 고통뿐이었던 잔인한 시절을 살아낸 그녀들의 이야기는 ‘출간 즉시 아마존닷컴 베스트 1위’, ‘2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 1위’, ‘출간 6주 만에 140만 부 판매 돌파!’ ‘영화화 결정’ 등 수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실제 삶이라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테러와 납치가 밥 먹듯 일어나는 낯설고 위험한 땅일 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전무하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한다.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불모의 땅에서 그래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고 있는 그들의 현재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모든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제목 : 단순함의 원리
지은이 : 잭 트라우트. 스티브 리부킨 지음 / 김유경 옮김
펴낸곳 : 21세기북스
발행년도 : 2001년 4월 1일


단순함에 대한 두려움
단순함이 결국 가장 세련된 것이다.
복잡함에 맞서 싸우려면 단순함을 이용해야 한다. 미래는 단순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의 것이다.
단순하다. 플러스 요인이 되지못했다. 단순한 사람 혹은 숙맥이라는 말조차 부정적인 호칭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순하고 순종적이며, 타인이 내놓은 제안을 쉽게 따른다. 특히 감정적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복잡한 것에 대한 회피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다. 단순한 것이 힘을 얻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단순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선택 대안들을 좁히고 외줄을 타야한다.
상식
단순함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치료약은 상식이다. 상식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지혜이다. 그것은 어떤 사회에서든 분명한 진리다. 당신에게 분명한 것은 다수에게도 분명하다. 감정적인 편견이나 지적인 난해함이 전혀 없는 것. 상식은 또한 특별한 기술적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상식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복잡한 언어
사람들의 생각을 모호하게 만든다.
당신이 평이하고 단순한 언어와 짧은 단어. 그리고 간략한 문장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영어를 쓰는 방식이다. 그것은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방식이다.
비현실적인 단어
*육체의 아름다움은 단지 피부 각질의 심오함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미는 단지 인간의 피부 한 꺼풀에 지나지 않는다.)
*노쇠한 견공에게 혁신적인 먹이 찾기 비법을 주입시키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 없다.)
*탄소 물질로부터 배출되는 수증기는 긴박한 화재의 전조이다. (연기 나는 것이 불이 난 곳이다.)
*회전하고 석재덩이는 녹색의 작은 선태 식물을 축적시키지 않는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좋은 글과 연설은 혼란스럽기보다는 명확하고 이해하기가 쉬어야한다. 그러므로 짧을수록 더 좋은 글이다.
당신의 발걸음을 늦추는 모든 형용사와 부사. 그리고 문구들을 당신의 배낭에서 모두 비우고 가볍게 떠나라.
전문용어의 빙고게임
과장된 용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머리 좋고 치밀하며, 대단하게 보일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KX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용어들은 이들을 복잡하고 난해한 인간들로 만들 뿐이다.
단순해지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멍청하다고 생각할 것으로 우려한다. 현실에서는 정반대이다. 명확하고 현실적인 사람들이 가장 단순하다.

단순한 언어가 주는 명쾌함
작문 속에 있는 단순함을 스스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 거리의 안개 지수 그 지수는 글 속에 나타난 단어의 수와 그 단어들의 난이도 완벽한 사고의 수, 그리고 문장의 평균 길이에 따라서 얼마나 쉽게 읽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명쾌한 작문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지킴으로써 안개와 맞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1. 문장을 짧게 써라.
2. 복잡한 단어보다는 단순한 단어를 선택하라.
3. 친숙한 단어를 선택하라.
4. 불필요한 단어는 피하라.
5. 동사를 활용하라.
6. 말하듯이 써라.
7. 읽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용어들을 사용하라.
8. 읽는 사람의 경험과 연결시켜라.
9. 다양성을 최대한 이용하라.
10. 감동을 주기보다는 표현하기 위해 글을 써라.

중요한 것은 보다 나은 경청을 위한 방법으로서, 이를 위해서는 단순함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수다에 압도되어 제대로 경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말잔치의 값비싼 대가
남의 말에 결코 귀기우리지 않는 수다쟁이들은 단지 말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효율적 정보관리
도전은 당신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저 모든 것들을 순리대로 내버려둘 수도 있게 된다. 당신에게 닥치는 모든 것에 대해 대응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읽어야 할 필요조차 없다.
주위의 모든 소음을 제거하고 당신의 길을 만들어 갈 때는 철저히 무자비해져라. 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서 갑판을 깨끗이 정리하라.
매우 미미한 부분은 취소하거나 없애버려라.
기사를 읽을 때 나중에 참조하고자 하는 부분에는 밑줄을 그어 강조해 두어라. 기사를 다 읽었을 때 강조된 곳이 없다면 과감히 버려라. 흥미로워 보이는 기사, 읽을거리가 되는 기사나 우편들은 보관하라. 그것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유용할 것이다.
이메일 주소는 명함에다 기재하지 말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라. 정해진 시간에만 이메일을 열어라. 만일 당신의 컴퓨터가 들어오는 메일을 끊임없이 신호로 알린다거나 당신이 계속해서 응답해야 한다면 잡일만 늘어날 뿐이다. 응답은 간단하게 보내라.
매사를 토론하기보다는 밖에 나가 직접 보는 것이 낫다.
단순해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함을 동경한다. 단순해지려고 조력할 때 조롱당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몸과 마음에는 단순하고 겸손한 삶의 방식이 초고이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한다. 그것이 바로 단순함의 위력이다.








깊어가는 가을 조일리에서

와인향이 있는 가을.. 11월 독토 풍경  
글쓴이: 박영주 조회수 : 85 07.11.06 00:37 http://cafe.daum.net/bbra/IFxM/1420  

사무치는 그리움이

검붉은 피 한 잔

투명한 유리잔 속에 갇혀있다.

눈에서 눈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은빛 세상을 불태우는

사르비아 꽃잎 한 장. (김기희/ 레드와인)




가을이 익어가는 오후

도심의 부산함을 떨쳐버리고

텅 빈 들녘 끝 논두렁 태우는 연기를 헤치고 시골길을 달려

수백년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듯한 큰 느티나무 옆으로 난

조그만 농로길을 조심스레 건너

초록빛 잔디밭이 아름다운 조일리 조원장님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와인과 함께하는 독서토론회 특별모임...

잔디밭 위에서 펼쳐진 만찬은 늘 야외 식사의 주방장을 도맡아 온 임승권, 정인화

두 분의 바비큐 조리에 회장님 부부께서 준비해오신 구수한 시래기국, 조원장님

사모님께서 직접 농사지으신 유기농 야채까지 곁들인 황제의 식탁.

거기에 회원들이 가져온 갖가지 와인들이 함께 하니

여기가 지상인가 천국인가...




만찬과 함께 강원장님의 간단한 ‘와인 개론’ 강의가 있었습니다.

와인을 건배할 땐 서로 눈을 마주쳐야 한다네요.

여성회원들이 좀 더 많이 왔더라면

조일리 마을의 밤 하늘에 플래쉬 불빛이 꽤나

많이 터졌을 것 같았는데...


만찬이 끝나자 방안에 둘러앉아

문원장님의 ‘와인 각론’ 강의가 있었습니다.

와인에 관한 자료집까지 준비해오셔서 와인 전반에 대하여 꼼꼼하게  안내해주셨

습니다.   보리밭을 지나가기만 해도 어질 어질해지며 음주운전의 의심을 받을 정

도로 와인에 대하여 무지한 저로서도 마치 '교양인'이 된 듯 가슴 뿌듯해지는 유익

한 강의였습니다.



2부론 11월의 도서인 서경식과 노마필드, 카토 슈이치 공저 “교양, 모든 것의

시작”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Y회원은 교양인과 지성인은 개념적으로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구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고,

J회원은 교양의 두가지 조건은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것과 타자(他者)를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은 학교 교육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에서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윤모회원은 “모든 차별은 하나다”라는 선언이 충격적으로 가슴에 다가왔고

그 명제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를 충분히 얻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H회원은 이 책에서는 교양교육의 부재와 실패를 질타하고 있지만,

취업전쟁에 목숨을 걸고 있는 우리의 대학 현실에서

과연 학생들에게 어떤 커리큘럼을 현실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가라고 자문해 볼 때

대안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날 줄 모르는 토론의 열기를 겨우 진정시키고,

류창희님께서 특별히 준비해오신 ‘추성부(秋聲賦)’를

성우 뺨치는 매력적인 목소리의 문원장

님께서 낭송해주셨습니다.  

가을 밤이 깊었지만 아름다운 분위기에 젖어 동자처럼

대답도 없이 머리를 떨군 채 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이어 가을을 음미하는 아름다운 선율들...

정인화 님의 기타 반주와 조성락 원장님의 섹소폰 선율 속에 가을은 점점 깊어가고,

조수완 원장님께서 우리 모임을 위해 큰 맘먹고 장만하셨다는

최신형 노래반주기에 맞추어 회원들이 한가락씩 노래 솜씨를 뽐내었습니다.



와인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섹소폰 선율에 취해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려 뜰 밖으로 나오니

적막속의 시골 밤하늘엔

도심에선 볼 수 없었던 별들이 가을 밤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12월의 책은 "돈가스의 탄생(오카다 데쓰 지음)" 이랍니다.

돈가스를 먹으며 토론회를 해야 제맛이 날 것 같네요.



참석: 조수완 부부, 이을규 부부, 조성락, 윤봉한, 강성호, 문장원, 임승권, 정인화,

류창희, 이재선, 하종명, 권종대,  박영주 , 이웃집 원장님 부부(존함을 깜빡..)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서경실 노마필으 카토슈이치 공저 이목 / 옮김
노마드북스

서문; 학생들 입장에서는 내말이 왜 정답인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단지 출제자들이 원하는 정답을 써 합격점을 받는 게 중요할 뿐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리가 관철되는 사회에서 학력은 생존과 사회적 신분상승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양극화’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승자와 패자’ ‘패자’로 전락되고 싶지 않다면, 인간의 자율성이니 주체성 같은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재빨리 자신을 효율적인 기계로 만들라.
모든 문제에 관해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유보해놓고 있을 뿐, “그것도 한 가지 사고방식이지요” “다양한 의견들이 있겠는데, 어쨌든 좋은 일 아닙니까?” 라며 정작 자기 의견은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애매모호)
지배층이 “다음번엔 전쟁!”이라고 공표하면 그들은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요” 하면서 맹목적인 무저항으로 추종하지는 않을까.

1. 왜, 지금 ‘교양’인가? -서경석-
교양교육의 현재-
‘왜 대학에서 공부하는가?’
‘배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슨 자격증을 따야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는가.
대학과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단순히 실용주의적인 목적만으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교육의 목적’-
‘러버럴 아츠 칼리지’ 예술 학예 기예 리버럴 아츠 곧 자유학예 곧 ‘교양’이다.
“자네 태도는 교양주의적” “그건 교양주의에 지나지 않다” 등은 일본에서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표현으로 사용.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뜻.
리버럴 아츠란 무엇인가?- 자유인 학예 학문 신사에게 걸 맞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적합하거나 어울리는 상태, 일, 직업을 설명하는 용법으로도 사용.
세련된 지성을 확충하려는 목적에서 리버럴 아츠를 공부하는 행위가 가능했던 인간들은 과거의 경우 오직 ‘프리맨’만이 다시 말해 특권층에 속한 남성 뿐.
심지어 여성마저도 법 앞에서 ‘자유인’입니다. ‘개인’으로 성장해갑니다.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인격체로 성장해간다.
‘리버럴 아츠’의 현대적 의미-
본래 대학이란 그러한 인문교양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목적을 지향하며 노력하는 대학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2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  -카토 슈이치-
‘교양’이란 무엇인가? 녹록하지가 않다. 사전을 보면 ‘교육’이라는 단어와 뜻이 겹치기도 하고, ‘문화’의 의미와 중첩되기도 한다.
고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독일어로 교양을 ‘빌둥’ 이라고 한다.
조금 달리 학습과 지식을 축적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는 것, 개성 있는 인간이 자아를 실현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학문을 탐구하고 공부하면 인격이 닦아져 자아를 풍성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이 같은 고전적 전통은 중국에도 뿌리 깊게 존재했고, 1천여 년에 걸쳐 중국의 많은 청년들이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儒學을 공부, 전형적인 고전문학을 바탕으로 시문을 지었다. 그런데 과거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해박한 고전 지식과 시문의 작성 능력이 도대체 국가의 행적업무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런 의문이 당연히 들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서는 그 같은 전통이 20세기까지 1천년 이상이나 지속되었다. 그것을 일종의 ‘교양주의’라고 보는 것이다.

교양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두 가지 이유
최근에는 그러한 전통적인 교양 개념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 지금은 회사 사장이 한가로이 그리스어, 라틴어 책을 손에 드는 그런 광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 고전에 대한 교양교육은 날로 후퇴해가고 학교에서도 그 비중은 크게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고전은 어떤 직업이나 기술에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도움을 주지 않다는 점이다. 일종의 사치로 간주되어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여유가 있는 유한계급의 지적 도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바뀐 것은 자연과학의 발달이 압도적인 성과를 낳았기 때문.
고전적인 인문교양은 자연과학과 똑 같은 차원에서는 별로 발전한 게 없다. 고전이란 대개는 진보하지 않기 때문이다.《논어》나 셰익스피어 작품들 속의 대화 같은 것들은 변하지 않는 텍스트일 뿐. 고전의 진보란 없으며, 구체적인 문제해결에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과학적 사고방식은 테크놀로지와 연결되면서 사회와 환경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교양주의를 무너뜨리게끔 작동한다. 음풍농월하는 한가로운 인문교양보다는 구체적인 직업과 직결된 실용적 능력을 연마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
소수 엘리트들이 공부하던 영국의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대체로 오전 중에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대부분 조정이나 럭비 같은 운동수업을 한다. 그런 수업방식의 배경에는 엘리트학생들에게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떤 화두만 슬쩍 던져주면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한다.
교양주의와 테크놀로지-
두 가지 문화 테크놀로지 문화와 교양주의 문화
테크놀로지는 여행을 다닐 때 필요한 수단과 방법이다. 그것은 상품을 생산하고 경제적인 부를 창출할 수단은 되겠지만,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나침반이 될 수는 없다.
교양의 재생은 왜 필요한가.
개인이건 사회건 간에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울 것인가. 교양이 없으면 아무 목적도 없는 능률지상주의 사회로 전락하고 만다. 일본은 1930년대에 중국을 상대로 침략전쟁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30년 동안이나 중국을 위협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살육을 자행했다. 1945년 무렵 무렵의 일본은 먹을 양식도 부족했고 불과 15년 만에 그 폐허 속에서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했다. 초고속 성장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일본인이 지닌 뛰어난 실용적 능력이다. 거꾸로 올바른 목적을 선택하고 추구하는 교양주의적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무능하다
우린 현대인들에게는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몇 가지 핵심적인 화두. 화두는 ‘자유’이다. 시와 문학 속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정신은 문학예술 작품 속에서는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다. 당연히 문학과 예술을 향유하거나 창조하는 행위는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의 세계 속에서의 자유다. 그리고 그 상상 속의 자유는 사회 속의 자유로 이어져 간다. 사회 속 개인의 자유,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인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다.
다음의 화두는 ‘상상력’이다.
★또 ‘차별’이다. 민족차별 남녀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차별은 하나다.

3.전쟁과 교양-노마필드-
‘교양’과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의식주를 비롯하여 기술 학문 예술 도덕 종교 정치 등의 생활양식과 내용을 포함한다. 문명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나, 서양에서는 인간의 정신생활과 연관된 것을 문화라 부르면서 기술적 발전의 의미가 강한 문명과는 구별한다.
문학을 통해 정신적 내면성의 자유와 타자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상상력의 역할을 강조했다. 상상력(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허구)
불평등의 수많은 폐해들 가운데 하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다. 내 자신과 동떨어져 있으면 타인의 고통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타자’ 란 양심적인 사람이 비판을 전제로 사용하는 말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빈곤한 사람들,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여지가 없는 사람들 빈곤하다는 것은 결코 근사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공고하게 매달려 사는 중산계급의 생활, 매달려 있다는 사실과 매달려 사는 삶의 내용,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만큼, ‘고급’한 문화활동에 정력을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이 없다’는 것 역시 일종의 허상. 늘 불안에 쫓기고 시달리면서 좀 더 빨리, 더 근사하게, 조금 더 많이 무언가를 소유하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낙오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며 초조한 날들을 보내는 것이 중산계급의 잿빛 현실은 아닐까?
지천명이 된 나로서도, 지금의 생활을 잃고 싶지않다 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 생활이 위협받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근본적인 변혁에 참가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공허한 바람을 간직해 왔다.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난 뒤 도쿄가 거리 사람들의 옷차림도 소박해졌다. 이것을 “무력감”이라며 단순히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오랜 역사 속에서 자라난 풍성한 서민생활을 새로운 형태로 살려낼 기회 역시 교양의 창조다.

4. 교양은 무엇을 해결해 줄 것인가?
이과에서는 문학수업이라던가 역사 수업은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제대로 된 대화마저도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당장 응급처치. ‘하루 한 권 주의’ 번역서로 몇 번인가 읽고 응급처치를 했던 것이 내 교양의 출발점. ‘다른 사람한테서 전해 듣는 것’ 하고는 다른 차원.
다른 누군가의 이해를 거치지 않고 제 힘만으로 고전을 읽는다는 게, 그것도 마지막까지 통독한다는 것. 철저한 무신론, 이를테면 과학적 발상.
필요하다면, 프랑스어나 라틴어라도 읽을 수 있어야한다. 나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는 국가나 사회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시각을 키우는 일.
특권계층에게만 허용되던 교양 평등한 가운데 누구든 접근 가능한 것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
테크놀로지는 필연적으로 전문화를 요청합니다. 전문 ‘家’가 아니라, 전문‘化’ 즉 스페셜라이제이션이지요. 그것은 성큼성큼 앞서 나갑니다. 만일에 교양이라는 개념을 과학적 지식의 전문화와 대립적으로 생각하면, 승부는 교양의 패배밖엔 나올 게 없지요. 교양이라는 건 전문 영역 사이를 움직일 때, 요컨대 경계를 넘나들기.
★인간관계 속세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연애도 해야 할 것이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야 해요. 거기에 교양이 없다면, 삶은 참혹한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엔 쉬지 않고 사고했다” 결국 그 말은 주변 사물에 대해 항상 호기심이 생생하게 작동했다는 뜻.
테크놀로지는 군사력에 이용되고 군사력은 그것을 직접 반영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미래가 어둡다.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출구는 없다. 만일 출구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교양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교양은 정글의 법칙 곧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류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교양이 엘리트의 독점물이나 특권층의 자기변호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 ‘타자’ 라는 정의. 교양의 필수조건.
자유로이 문학작품의 등장인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이른바 타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 그리고 그런 상상력을 확장해가면서 동시에 못 보던 사물이 보이고 납득하지 못했던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쁨을 어떻게든 전달해 주는, 바람직한 ★ 교양이란 다양한 영역, 다양한 문화 사이를 오갈 때의 자유로움, 일종의 유연함.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보는 것. 恕.

5. 현대의 교양이란 무엇인가? -서경석-
‘교양’ 을 영어로는 ‘리버럴 아츠’ 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일반교양’ 또는 ‘종합교양’ 미국에서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
교양이라는 것은 극히 한정된 특권계급의, 그것도 남성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고, 그것은 노예적 혹은 기계적인 노동에 봉사하는 지식이나 학문과는 대립하는 개념.
‘배움 그 자체를 위하여 배우는’ 행위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키워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인 셈.
★일반 서민, 성별을 불문하고 소위 평균적인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자유인으로 육성 가능한가 하는 문제.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양이 필요. ‘인생의 목적, 다시 말해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사람’
자기 스스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 그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각자가 되어주는 것이 인문교양의 목적이다.
‘휴머니즘이란 인간의 기계화로부터 인간을 옹호하는 인간의 상상’ 인간은 도구가 아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왕왕 기계로 변하기 십상이다.
지난날의 교양은 제한된 소수 엘리트 특권계급의 남성만이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과거 특권계급의 남성만이 향유하던 이문교양이 이 같은 냉혹한 시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참고로 남편친구들이 나를 칭하기를 “교양덩어리”
꼭 이렇게 스스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지… *^^*

스승의 옥편
지은이 정민
펴낸 곳 마음산책
발행년도 2007



옛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영혼을 내 속에 간직한다.




책머리에

책속에는 올해 열다섯이 된 둘째의 다섯 살 때 이야기부터 최근 이야기까지. 아빠가 저와 안 놀고 다시 학교 연구실로 올라 갈까봐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양말부터 벗기던 꼬맹이가 벌써 코밑이 거뭇거뭇한 장정이 다 되었다. 돌아보면 가족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




옛글의 행간

스승의 옥편- 헐어 바스라지고 끝이 말려들어간 사전을 한 장 한 장 다리미로 다려서 폈다, 지금도 사전에 코를 박으면 선생님의 체취가 또렷이 느껴진다. 내 조그만 성취에도 당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던 어지신 모습도 생전처럼 떠오른다.

학문의 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단순무식한 노력만 있을 뿐이다. 지금도 마음이 스산하면 선생님의 사전을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다. 많이 힘들 때는 무작정 포천에 있는 산소를 달려가 한참을 혼자 앉아있다 오곤 한다.

빈 산 잎 지고- “넌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말이 많으냐?” 다짜고짜 말씀하셨다, “네?" 선생님의 손가락이 원문의 빌 空(공)자를 짚으셨다. "이게 무슨 자야?" 나는 당황했다. "이게 무슨 자냐구?" "빌 공자입니다." "거기에 ‘텅’이 어디 있어?" 그러더니 '텅 빈 산'에 '텅'자를 지우셨다. "'나뭇잎'이나 ‘잎’ 이나. 그놈 참 말 많네. ‘떨어지고’의 ‘떨어’도 떨어내!” 다시 쉴 틈도 없이 “부슬부슬 했으면 됐지 ‘내리는데 가 왜 필요해? 부슬부슬 올라가는 비도 있다더냐?” 하시며 마지막 펀치를 날리셨다.

그 후 글을 쓸 때마다 더 뺄 것은 없나, 군더더기는 없나를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말은 줄었는데, 생각은 더 많아지는 신기한 체험이었다. 글 쓰기의 妙理(묘리)다.

과골삼천-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책상다리로 앉아 20년 세월이 가는 동안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말을 들었고, 추사가 벼루 여러 개를 먹을 갈아 밑창을 냈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헹구는 일- 붓을 꺾으며(絶筆) 이윤영 오동나무 수런수런 저물녘에 시끄럽고/ 비 지나는 연못가에 대자리 잠 해 맑아라/ 이 가운데 꿈 이야기 남에게 얘기 마라/ 봉래산 높은 성에 응당 들어갈 터이니/

삶의 끝자락에서 들려준 그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 속에 젖어 나는 조용히 욕심에 찌든 마음을 헹궈내고 또 헹궈냈다. 옛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영혼을 내 속에 간직한다.

바다 속의 보물- 삶이 아무리 척박하고, 물질이 제 아무리 신통찮아도, 바다 속 어딘가 감춰둔 보물창고를 생각하면 마음 한켠에 등불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이다. 제주 해녀들의 바다 속에는 지상의 공간이 그대로 펼쳐져있다.

심심함의 마술- 예술도 대부분 이런 심심함과 따분함의 산물이다. 하지만 예술 속에서는 일상의 따분함과 답답함이 한 순간에 뒤집히는 마술이 일어난다. 예술가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심심함 또는 한가로움을 일부러 찾아서 즐기고, 만들어 즐긴다. 그리고 여기서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발견한다.

한가로움에 대하여- 조선시대 이덕무 <한가로움에 대하여>

사방으로 툭 터진 큰길 옆에도 한가로움은 있다. 마음이 한가롭기만 하다면 굳이 자연을 찾아가고 깊은 산속에 숨어 살 필요가 없다. 내가 사는 집은 저잣거리 바로 옆이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 시끌벅적하다가 해가 지면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짖어댄다. 하지만 나만은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때때로 문밖을 나서면 달리는 자는 땀을 흘리고, 말을 탄자는 빠르게 지나가고, 수레와 말은 종횡으로 부딪히며 뒤섞인다. 그러나 나만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천천히 걷는다. 저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내 한가로움을 놓치는 일은 한 번도 없다. 왜 그런가?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한가로움-젊었을 적 한가로움이라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 바쁜 젊은 날에 시간을 쪼개어 찾아서 만든 한가로움이라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 다 늙어 한가로운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지 한가로운 것이 아니다.

☆마음의 얼룩- 상(想) 사(思) 염(念) 려(慮) 想은 퍼뜩 떠오른 생각이다. 思는 곰곰한 생각이다. 念은 맴돌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慮는 짓누르는 생각이다. 마음은 투명한 거울이다, 그 위로 생각이 먼지처럼 내려앉아 얼룩이 지고 번뇌가 인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밭을 닦는다. 마음 밭은 곧 생각이다. 마음 밭을 닦는 일은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걷어내는 일이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마음속을 들락날락한다. 눈만 감으면 갖은 상념이 떠올라 사념이 끝이 없다. 생각의 노예가 되면 마음은 종이 되어 생각의 부림을 받는다. 질질 끌려 다니게 된다. 마침내 마음이 떠나가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간다.

불교에서는 달아난 마음을 잡으려고 참선을 한다. 참선은 제단 앞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 목표다. 도가에서는 수신(守神)을 한다. 나를 잊고 세계를 잊어야만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다.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 참된 나와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명상(瞑想)을 한다. 명상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텅 비워 생각을 잠재우고 생각을 눈감게 하는 것이다. 묵상(黙想)은 묵묵히 하는 생각이 아니라, 생각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각이 제멋대로 날뛰지 않고 마음의 결을 따라 흘러가면 마음 위에 새겨지는 무

늬가 된다. 고운 마음결이 된다. 얼룩이 아니라 무늬가 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살고 싶다.

추억의 레파토리 - 어린 마음에도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를 부르면 있지도 않은 누나 생각이 나서 코끝이 시큰했다.“뜸북뿜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를 부르다가가도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이 안타까웠다.

생각의 광휘- 내게 소나기처럼 쏟아졌던 한순간의 생각들은 도대체 잠깐 만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생각은 벼락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사라진다. 성호 이익 선생은 ‘질서(疾書)란 제목을 붙인 책을 여러 편 남겼다. 질서는 말 그대로 빨리 쓴다는 뜻이다. 가까운 곳에 필기도구를 놓아두고 그때그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즉시 기록으로 남겨, 여러 권의 책이 되었다. 깨달음은 섬광과 같다. 반짝 떠 올라 보석처럼 명멸하다가 순식간에 광휘를 거둔다. 이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을 어찌해야 가둘 수 있을까?

월출정을 조문함 - 진국집에는 돌아가신 스승의 체취가 늘 함께한다. 스승은 설렁탕을 드시다가 으레 주인에게 국물을 더 달라셨다. 주인이 뚝배기에 국물을 담아 내오면 반은 내 그릇에 부으시며, “공부하는 사람은 고기 국물을 많이 먹어야 해” 하셨다, 그 어지신 모습을 떠올리려 지금도 나는 자주 그 집에 간다. (너무 부럽다)

중간이 없다-이명은 저만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골기는 남은 들어도 저는 못 듣는다. 이명은 병이다. 제 병통을 장점인 줄 알고 뽐내다가 남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친다. 코골기는 병은 아니다. 안 골던 사람도 피곤하면 고는 수가 있다. 그런데도 남이 저보다 먼저 알았다고 성을 낸다.

소일(消日)과 석음(惜陰) - 입만 열면 사오정(四五停) 오륙도(五六盜)를 말하는 판에,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100세, 120세가 된다는 말은 일없이 보내야 할 시간이 30년에서 50년 또는 70년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별 준비 없이 덜컥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명퇴를 당하고 나면, 나머지 30년 또는 50년을 보낼 일이 참으로 막막하다. 평생을 모은 퇴직금을 한 번의 판단 착오로 날려버리는 것은 잠깐 사이의 일이다. 말이 좋아 웰빙이고 여가활동이지 경제적 마련이 없이는 하루 세 끼 먹고 살기도 버겁다. 오래 사는 것이야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그것도 육체와 정신이 건강할 때 이야기다.

정약용은 《도산사숙론》에서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될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으니‘소일(消日)’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이덕무도 《사소절》에서, 멀쩡한 사람이 소일하기 어려움을 말하곤 하는데, 석음(惜陰) 즉 촌음(寸陰)을 아껴 써도 시원찮을 판에 날을 보낼 궁리나 하고 있다니 이것이 무슨 불길한 말이냐고 나무랐다.

그저 소일이나 한다는 말은 다 늙어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할 의욕도 사라지고 없을 때 속으로 울면서 하는 말이다

스승의 옥편
지은이 정민
펴낸 곳 마음산책
발행년도 2007


생활의 발견

빈 병에 물이 차오르듯 - 미술에 대한 지식을 늘리지 않거나 훈련을 쌓지 않고 보내는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뚜껑 없는 병을 물속에 처박으면 쉽게 물이 차듯이, 로마에서는 감수성이 있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쉽게 내면의 충실을 기할 수 있습니다. 사방팔방에서 예술적인 요소들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에서-

언제 또 이렇듯이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심경으로 앉아볼 수 있겠나 싶어 이 시간이 새삼 울렁거리도록 고맙다. 빈 병에 물이 쿨럭쿨럭 차오르듯, 사방에서 밀려드는 사물들과 늘 새롭게 만나 내면을 채워나가는 삶이었으면 싶다.

옷 수선 가게 - 나는 그런 그의 시선이 궁금해서 자꾸만 눈길이 그리로 간다. 늘 생각들이 바쁘게 오가는 내 머리가 그의 저녁노을 같은 무심함을 부러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나는 서운해서 한 번 더 안쪽을 기웃거려보곤 한다.

나는 언제 죽어요 - 의사가 남자아이에게 병이 난 여동생을 위해 네 피를 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그러겠어요.” 의사가 필요한 만큼의 피를 뽑고 나서도 아이는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조금 있다가 아이가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언제 죽어요?” 의사가 놀라서 물었다. “왜 네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제 피를 다 뽑아 동생에게 주지 않았나요?” 아이는 의사의 말을 자신의 피를 전부 준다는 뜻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몰취미와 살풍경- 처음 대만 와서 가장 이상했던 것 중의 하나가 대학교 앞에 맥주 집은커녕 선술집 하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다가 생맥주 한잔에 치킨 한 쪽이 생각나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학교 앞에 왜 술집이 있어야하느냐고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학교 옆 강변 둑길을 산책할 때였다. 대학생 예닐곱 명이 석양의 붉은 햇살이 비낀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아주 낭만적인 한 폭의 그림이었다. 으레 맥주나 한잔씩 하나보다 했다. 막상 가까이 가서 보니 홍차, 녹두차, 과일 주스 같은 건강음료들을 빨대에 꽂아 빨아먹고 있었다. 그것도 남학생들이. 그 몰취미한 광경이라니.

작년 서울서 축제 때였던가 보다. 밤 12시가 다 되어 연구실에 내려오는데, 인문관 앞은 남녀 할 것 없이 온통 술에 취한 대학생들로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건물을 막 나서자니 술에 완전히 취한 녀석 하나가 내 앞으로 불쑥 달려들더니, “너는 뭐야! 18놈아. 콱 죽여버려!” 하며 주먹을 잔뜩 움켜쥐고 다짜고짜 멱살을 잡자고 대든다. 슬쩍 옆으로 비켜서자 몸을 못 가누고 제풀에 힘없이 자빠져버린다.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그 소음 속에 공부하다 가던 선생은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18놈이 되고 말았는데, 그 살풍경한 모습이라니.

대만 학생들은 술 좋아하는 한국 학생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한국 선생은 신입생 환영 모꼬지를 가서 몇 시간씩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술 한잔할 생각을 아예 않는 대만 학생들을 딱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의 문제가 될 수 있을까?

슬픈 일 - 호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정작 모진 시어머니가 된다. 처절한 가난을 맛보았던 부자일수록 없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삶을 혐오하는 것은 혹시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섬뜩함 때문은 아닐까? 한강은 빗살무의 모양을 지으며 고여 있다. 나는 습관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았다’고 쓰고 싶었는데, 암만 봐도 그저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삶이 막막히 정체되어 있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좀체 안 먹던 두통약을 먹고 낮잠을 혼곤히 자고 깨면서도 나는 인생이 참 차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싱거운 생각 - 다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소로로 접어든다. 바위 사이를 더위잡고 올라가, 깊은 숲속 가파른 비탈 사이의 바위를 골라 앉는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경계다. 누가 여기까지 와 보았을까? 스스로 대견하고 흐뭇하다. 잠시 숨을 고르다 고래를 숙여보니, 돌 틈새에 누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있다. 이럴 때 사람 사는 일은 대체로 참 싱겁다.

대도무문-구내 이발관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사모님이 왼편에서 주무시죠?” 동료교수에게 말했더니 “정선생이 금슬이 되게 좋은 모양이네” 하며 놀린다. 큰 도에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을 리 없겠다. 길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불 줄 아는 눈앞에만 길은 보인다. 한 줄 어줍잖은 글을 쓰면서도 요리 재고 조리 재는 터수에 언제나 남의 뒤통수만 보고도 마누라 누운 방향까지 읽는 지혜의 눈이 환히 열릴 것인가.

달개비꽃 잉크 -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고 했다. 무늬 없는 삶 속에는 기쁨이 깃들지 않는다. 생활의 여유는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작은 달래비꽃을 으깨 푸른 꽃잎 잉크를 만들어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던 정지용. 마음의 무늬가 빚어내는 잔잔한 감동을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살갑고 고맙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는 진정코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는 나 보고 ‘여성호로몬을 끊으라’고 충고한다. 너무 질척거려 탈이다. 정말 세상 사람들 건조하고 슬프다.)

열두 자 편지-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三千里外心親一片雲間明月.

별말 없이도 마음은 마음으로 통하고, 정은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옛 책갈피에서 우연히 만나는 옛 어른들의 따뜻한 체취, 천근같은 무게에 코끝이 찡할 때가 있다.

목화밭 풍경 -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봄바람에 꽃향기가 일렁이면, 그대로 출렁출렁 눈물이 되어 흐를 것만 같은 사랑은 언제나 기억 속의 용수나무 아래와 목화밭 그늘에 남아 있다. 먼 훗날 되돌아갈 수 없는 희망을 안고 그 사랑을 부르면, 붉은 볼을 한 수줍은 소녀가 그 그늘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그늘은 그림자가 없다. 확인했다. 하늘에는 그림자가 없다.)

매미에 대한 생각 - 고대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입 속에 매미 모양의 옥을 넣었다. 저승길의 양식. 매미는 이슬만 먹고 산다. 허물을 벗고 새 생명을 얻는다. 이승의 미련과 집착 훌훌 털고 환골탈태하시라.

스승의 옥편

지은이 정민

펴낸 곳 마음산책

발행년도 2007





책읽기와 글쓰기

독서의 보람 - 육신은 밥을 먹어 생명을 유지하고, 마음은 책을 먹고 생기를 지켜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온통 밥에만 정신이 팔려있고,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먹고살게 되어도 책을 안 읽는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절대로 가볍게 들떠 날리는 법이 없다. 그의 눈빛은 깊고 그의 몸짓은 안정감이 있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면 만만히 보던 상대가 ‘어 이것 봐라!’ 하며 자세를 바꾼다.

글이 안 써지는 것은 머릿속에 든 생각이 없어서이지 글 솜씨나 글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입력된 것. 즉 읽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으면 된다. 소리 내서 읽으면 더 좋다.

사람이 늙어도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서의 힘 때문이다. 독서는 남들이 다 보면서도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준다. 예전에 의미 없이 지나치던 것 앞에 발길을 멈춰 세우게 한다.

책을 읽는 일은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이다. 촉수를 다듬어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다.

선인들의 독서법 - 한 가지 책을 한 백번쯤 되풀이해서 읽으면 분명치 않던 의미가 저절로 환해진다는 뜻이다. 이때 읽는 다는 것은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락을 얹어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의미는 항상 소리의 뒤를 따라왔다. 옛사람들이 다독을 했다는 말은 여러 가지 책을 많이 읽었다기보다 몇 가지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다는 뜻이다.

그날 배운 것은 집에 가서 입이 닳도록 다 외워서, 선생님 앞에서 다 외워야했다. 이것을 강(講)을 바친다고 한다. 돌아앉아 외운다고 해서 배송(背誦)이라고 한다.

소리를 따라 기운을 얻어야 터지는 문리 - 문리(文理)란 다른 게 아니라 한문 문장의 구문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한자란 것이 뜻글자라 놓이는 위치에 따라 명사도 되었다가 부사도 되었다가 동사도 되었다가 어조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꾸 비슷한 구문들을 읽고 외우다 보면, 이때는 이 글자를 무슨 뜻으로 새겨야 할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옛사람은 《맹자》를 천 번 소리 내서 읽으면 문리가 탁 소리를 내며 터진다고 믿었다. 옛글을 소리 내서 자꾸 읽으면 옛사람의 기운이 그 소리를 타고 내 속으로 들어온다. (그럴까?) 자꾸 읽다보면 그 글의 호흡이 내 호흡과 일치하게 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글을 지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글의 리듬과 호흡이 내 글 속에 스며들게 된다. (그랬으면 좋겠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소리를 내서 읽었을 때 가락이 매끄럽고 호흡에 따라 자연스런 리듬이 타면 좋은 글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좋은 긍의 축에는 못 든다. 글에 리듬이 있다는 것은 가락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자연스런 결을 살려주고 있다는 말이다. 물에 물결이 있고, 바람에 바람결이 있듯, 글에도 결이 있다. 글의 결은 바로 소리 내서 읽었을 때 느끼는 자연스런 리듬이다. 현대의 문장도 예외가 아니다. 좋은 글은 소리를 내서 읽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묻고 따지고 베껴 쓰는, 손으로 읽는 초서(鈔書) - 초서란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을 밑줄 긋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베껴 쓰는 방법이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던 독서가 손으로 읽는 독서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초서는 말하자면 메모를 해가면 읽는 독서다. 처음에는 그냥 책 내용을 발췌해서 베껴 쓰다가, 이것이 익숙해지면 다시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독서가 쌓여 비로소 식견(識見)이란 것이 생겨난다. 식견이란 세상을 보고 사물을 이해하는 안목이다. 책을 읽는 목적은 바로 이 안목을 세우기 위해서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더라도 식견이 생겨나니 않으면 읽지 않은 것과 아는 것이 없다. 식견이 생겨야 가치 판단을 할 수가 있다. 가치 판단을 할 수 없다면 취급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질수록 더 위태롭게 된다. 식견은 영어 실력과도 상관없고 수능 점수와도 관련이 없다. 식견은 오로지 독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오거서단상 -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대장부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했던 것은 두보다. 영어를 미국 사람보다 더 잘하고, 컴퓨터를 장난감 다루듯 해도, 가난해 굶기를 다반사로 하던 그네들이 느끼던 내면의 충족은 느낄 수가 없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던 진보인가?

책 읽는 방법 - 이덕수(1673~1744)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게 되면 책과 내가 유화되어 하나가 된다. 푹 젖지 않으면 읽으면 읽는 대로 다 잊어버려, 읽은 사람이나 읽지 않은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읽기만 해서는 안 되고 생각으로 깨쳐야 한다. 글 쓴 사람의 마음까지 투철하게 읽어, 책속의 사람과 내가 대화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행간이 훤히 다 보이고, 낱낱의 맥락도 놓치지 않는 그런 독서를 말한다.

김창흡(1653~1722) 독서에는 죽은 독서가 있고 산독서가 있다. 책을 덮은 뒤 책 속의 내용이 눈앞에 또렷이 보이면 산독서이고, 책을 펴 놓았을 때는 알 것 같다가 책을 덮은 뒤에 아득해지면 죽은 독서다.

구슬을 꿰는 독서법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보배로운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꿰지 않으면 흩어져 없어지고 만다. 좋은 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지는데, 읽은 책의 내용이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책 읽는 사람의 병통 - 인성구기(因聲求氣 ), 즉 소리로 인하여 기운을 구한다 하여, 한글을 일고 또 읽고, 되풀이해 읽으면 그 글 속에 담긴 옛사람의 정신이 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고 믿었다.

하홍도(1593~1666) 책은 많은데 읽은 것은 적다. 예전 배운 것은 몸에 익지 않았고, 새로 배운 것은 성글다. 한 글자마다 한 글자의 뜻을 찾아보고, 한 구절마다 한 구절의 의미를 따져보며, 한 단락을 이같이 하고, 한권을 이같이 한다. 책과 내가 하나가 된다. 온전히 내 호흡과 일치하여 투철하게 알아야한다. 기본 경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책은 책이요 나는 나일뿐이다. 둘 사이에 소통이 없다면 그것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홍우원(1605~1687) ‘밤중에 앉아 책을 읽다가’ 창밖에선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등불하나 책상머리에서 가물대고, 책상 위엔 책 한 권이 놓였다. 그 앞에 의관을 정제하고 사려 앉은 한사람. 낭랑하게 책을 읽는다. 소리를 따라 폐부로 파고드는 옛사람의 육성에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눈이 활짝 열리고 정신이 번쩍 든다. 나도 모르게 자세를 다시 고쳐 앉는다.

한 번을 다 읽었다. 가슴속에 파동치는 감동을 가눌 길어 없다. 다시 첫 페이지를 펼친다. 두 번을 다 읽었다. 그래도 차마 책을 덮지 못한다.

책을 읽는 까닭 - 하루 종일 《논어》만 읽는다.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서 읽고, 다른 학자들의 풀이까지 꼼꼼히 따져 읽는다. 다 읽고 나서는 다시 첫 권으로 돌아가 하루 한 권씩 읽는다. 몇 차례 읽어 전체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하루에 한 번씩 논어 전체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요즘 학생들은 모르는 것이 없고, 안 배우는 것이 없다. 만화로 그려주고, 음성으로 들려준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수행평가를 한다. 요령으로 가르쳐주고 핵심을 체크해준다. 하도 많은 문제를 풀어봐서, 문제만 보면 정답이 척 나오는 문제 풀기의 도사들이다. 제 말은 없고 남 말만하고, 제 생각은 없고 주워들은 생각만 있다.

무조건 외우기만 능사로 알았던 예전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생각에 놀라운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뜻도 모르고 외운 한 구절이 오늘 배운 새 구절과 연관되고, 이 책의 내용이 저 책의 내용과 연결되면서, 지식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저희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인 줄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던 말이 또렷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따로 놀던 생각이 한 초점을 향해 달려간다. 하나만 들어도 열을 알게 된다. 이른바 문리(文理)가 난 것이다.

옛 문장론에서 배우는 것들-유몽인(1559~1663)《어우야담》무릇 글을 지음에 어려운 것은 뜻을 세우는 것이다, 문자에 이르러서는 붓 아래 있다.

박충원은 어려운 것이 뜻을 세우는 것이고, 문장을 엮는 것은 손쉬운 일이라고 했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주제를 정한다는 말이고, 문장을 엮는 것은 이른바 글의 구성을 말한다. 마음속에 정해둔 생각이 분명하면 글을 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생각하는 힘이 튼튼하면 글은 저절로 따라온다.

송나라 주돈이 같은 이는 글은 도를 실어나르는 수레와 같다고 보고, 수레는 짐을 잘 실어 나르는 것이 중요하지, 바퀴의 장식이 화려한가 화려하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하물며 물건을 싣지 않은 빈 수레는 존재 가치도 없다고 보았다.

글에는 정신이 스며있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 하여, 글은 그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정조(正祖)는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소설투의 패관소품체를 젊은 학자들이 즐겨 읽고, 그것을 흉내 내어 글을 짓는 것에 질색을 했다. 임금이 직접 문체를 바로잡겠다고 문체반정(文體反正)을 국가적 시책으로 추진해나갔다.

글쓰기는 단순히 작문상의 개인 취향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한유(韓愈)의 유명한 ‘사기의 불사기사’(師其意 不師其辭) 한유는 그 정신을 본받고, 그 표현은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신을 본받는 것은 원리를 본받는다는 말이다. 표현을 본받는다는 것은 껍데기를 흉내 낸다는 말이다.

상동구이(尙同求異) 같아지려고 하되 다름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거기에 담기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나의 목소리, 나의 개성이어야 한다.

미문의 악취 - 당 나라 때 한유는 “풍부하되 한 글자도 남아서는 안 되고, 간략하나 한 글자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豊而不餘一字, 約而不失一辭) 요컨대 한 글자만 보태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글을 쓰라는 주문이다. 할 말을 다 하되 군더더기 하나 없고, 할 말만 했지만 보탤 것 없는 그런 글이 좋은 글이다.

오늘 우리의 글쓰기는 어떤가? 현란한 수사, 문체의 과잉은 고질이 된 지 오래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알고 나면 더 허탈해지는 미문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몽롱한 수사로 글쓴이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좌충우돌 횡설수설의 글이 적지 않다.

덮어놓고 짧기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짧게 할 수 있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은 나쁘다.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돌려서 한다. 한번 읽으면 멋있어 보이지만, 두 번 읽으면 헷갈린다.

국적불명의 문채. 서양서의 번역에 가까운 정체를 알 수 없는 글. 일상 언어와는 별도의 세계를 완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어법들. 몽환적 어휘 속에 떠도는 나르시시즘. 형용사화 부사가 둥둥 떠다닌다.

번드르하게 바르는 것을 문사로 생각하고 아로새겨 꾸미는 것을 글이라고 여긴다.

글을 짓는 체가 셋이 있다. 첫째 간결함, 둘째 참됨, 셋째 바름.

할 말만 하는 간결, 이것과 저것을 가늠하는 참됨,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바름 이  세 가지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제 생각을 남에게 오해 없이 충분히 전달하려면, 때로 말이 길어질 수도 있고, 비유를 끌어오기도 하며, 역설이나 대조의 수사를 동원하기도 한다. 비유나 수사는 뜻을 전하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이 가늠을 하지 못해 글이 추하게 된다. 지저분해진다.

송나라 때 문장가 구양수는 자신의 글이 한유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고백한바 있다. 하지만 정작 구양수의 문장을 보면 한유와 비슷한 데라곤 한 군데도 없다. 한유의 글쓰기 정신, 글 쓰는 자세, 표현의 개성을 배웠다.

글의 표정 - 암호문과 다를 바 없는 시, 자기도취에 빠진 소설, 목적도 없이 생각사이를 헤매는 비평. 이들의 공통점은 소통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듣든 말든 혼자 떠드는 잠꼬대는 시가 아니라 배설물이다. 소설가도 종종 횡설수설을 의식의 흐름으로 착각하고, 해괴망측을 실험정신으로 오해한다. 이런 작품들은 쓰기도 힘들었겠지만 읽기가 더 괴롭다.

글을 쓰다 생각이 꽉 막혀 조금도 나아갈 수 없을 때, 머리나 식히자고 우연히 펴든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책갈피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원하는 정보들이 줄을 지어 나온다. 이들은 마치 왜 이제야 내게 눈길을 주느냐고 원망하는 것만 같다. 이럴 때 나는 괴성을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연구실을 왔다갔다. 한다. 마치 정신나간사람 같다. 며칠째 막혀 있던 생각은 봇물이 터져, 이제 자판을 두드리는 손의 속도도 그 서슬을 따라잡지 못한다. 밥상에 앉아 밥을 기다리다가 섬광처럼 스친 생각에 앉은 자리에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몇 장의 글을 숨도 못 쉬고 쓴다. 이럴 때는 벼락을 맞은 것 같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다.




유림 - 서평

(매화꽃에 물 주어라)

柳昌熙


儒林(유림)1.2.3.
최인호 지음
열림원 / 2005년 6월30일

저자 최인호는 유림을 쓰기 위해 15년 전부터 마음속의 화두처럼 미리 제목을 정해두었었다고 했다. 15년 세월은 공자가 말하는 지학(志學)의 나이이니 소설을 읽는 순간 선비에 입문하는 셈이다.

한 사람의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한 나라에도 국격이 있다고 말하는 최인호의 유림은 소설에도 격이 있다는 말이 어울린다. 옛것만 쓰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현시점에  맞춰 고문 속에 박제된 옛글을 독자의 몸속으로 흐르게 한다.

1권- 조광조를 통해 선비는 재물을 탐하는 태도를 버리고 즐기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빈천하다고 해서 구차하게 굴지 아니하며 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자기와 같은 부류라 해서 무조건 친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부류라 해서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 올 곧은 선비정신을 말한다.

2권- 공자는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다면 예(禮)는 무엇 할 것이냐며, 먼저 사람이 되어라. ‘마치 북극성이 일정한 자리에 있으면 여러 별들이 모두 돌며 떠받드는 것과 같은’ 덕치(德治)이다. 또 공자와 노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초현실적이 무위와 유위를 비교하여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한다. 현실적이 유가사상은 필연적으로 사회참여를 통하여 지상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군자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도리’ 즉 ‘사람의 도’를 예수나 부처처럼 신이 아닌 인간으로써 끊임없이 실수를 하고 또 자신을 반성하며 수양을 통해 고쳐나가는 공자의 태도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3권- 퇴계는 수십 번이나 벼슬자리에서 사퇴한 이퇴계. 평생 매화를 사랑하여 107수에 달하는 매화시를 지었고 91수의 매화시를 집대성한『梅花詩帖』을 남겼으며 매화꽃에 물을 주라고 유언할 정도로 살아생전 매화를 사랑했다. 소설의 읽는 재미로는 퇴계선생이 아끼던 ‘두향’ 이에 관한 조각들이 매화향기처럼 은은하게 코끝을 스친다. 그러나 정작 매화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고결한 선비정신이다.

무릇 성인들의 종교나 철학을 전파하는 데는 탁월한 제자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만약 플라톤이 없었더라면 소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바오로가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확산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장자가 없었더라면 노자는 다만 수수께끼의 인물로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며, 마찬가지로 맹자가 없었더라면 공자의 사상은 맥이 끊겼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퇴계가 없었더라면 유교는 동양사상으로 정착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유교는 2천5백 년 전 공자가 일으켰으나, 공자의 사후 2천 년 뒤엔 조선에서 태어난 퇴계에 의해서 유교의 사상과 철학은 완성될 수 있었다. 유교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유산이 아니라 ‘21세기를 밝힐 무한한 에너지’ 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유학의 시조인 공맹(孔孟)이 태어난 고향을 일컬어 추로(鄒魯)지향이라고 한다면 퇴계가 학문을 닦고 나무하고 고기 잡던 곳이 바로 추로지향이라는 퇴계의 시(詩)로 소설은 끝난다.

風雨溪堂不庇床     계상서당에 비바람 부니 침상조차 가려주지 못하여
卜遷求勝徧林岡     거처 옮기려고 빼어난 곳을 찾아 숲과 언덕을 누볐네
那知百歲藏修地     어찌 알았으리 백년토록 마음 두고 학문 닦을 땅이
只在平生採釣傍     바로 평소에 나무하고 고기 낚던 곳 곁에 있는 줄이야

해마다 매화꽃이 피는 우리의 땅 대한민국!
“매화꽃에 물 주어라” 퇴계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부산퇴계학연구원  원보에 실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