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서뿐

정민 / 김영사




오직 독서뿐






프로필 : 어려서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지식을 얻지만 깊은 사유의 힘을 얻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다. 또한, 책 읽기는 필연적으로 글쓰기와 맞닿는다.


서문 : 삶의 속도는 날로 가파르게 빨라진다. 행복지수도 그러한가?


삶은 본질에서 변한 것이 없는데, 속도만 가파르게 빨라지니 생각할 틈이 없다. 원하는 반응이 즉각 나타나지 않는 그 잠깐을 견디지 못한다. 진득함은 사라지고 경박함이 춤춘다. 떠먹여 주기만 바라고, 스스로 곱씹어 소화할 생각은 없다. 이런 반복 속에서 삶은 공허하고 허황하다. 젊은이는 빨리 가려고만 하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늙은이는 퇴직 후의 수십 년 앞에 막막하고 망망하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제 삶을 해쳐 남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책을 읽는 까닭 - 교산 1569~1618 허균

책은 마음을 지켜준다 - 배움의 길에 선 학생들은 늘 현재의 위치를 불안해한다. 막막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떻게 해야 삶의 목표를 정할 수 있나요? 답은 간단하다. 사람은 제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지. 제 몸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마음을 꽉 붙들어 달아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은 마음을 지켜주는 호신부이다.


책은 밥이고 옷이다 - 안지추가 말했다. “재물을 많이 쌓아 두는 것이 얕은 재주를 몸에 지니는 것만 못하다. 재주 중에 익히기 쉽고 귀한 것은 독서만 한 것이 없다.


독서하기 좋은 때 - 비바람이 길을 막으면 문을 닫고 깨끗이 청소한다. 사람의 왕래도 끊고 서책만 앞에 가득하다. 흥에 따라 뽑아서 뒤적인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 벼루를 씻는다. 읊조려 외우노라면 완연히 좋은 벗과 마주한 것만 같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 들으며 책 읽을 때의 감흥. 책 내용 속에 내 영혼이 푹 젓는다. 처마 밑에 섬돌은 없어도 가뭄을 없애는 폭염을 식히는 처서 지난 8월 말의 단비, 한 달여 낭만의 프로방스에서 돌아와 내가 선 자리에 일상의 뿌리를 내린다.) 사는 게 바빠 여가가 없다고 투덜거리지 마라. 낮에 바쁘면 밤중에 읽고, 갠 날 바쁘면 흐린 날 읽고, 여름에 바쁘면 겨울에 읽으면 된다. 도대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그저 한 마리의 소시민, 무지렁이 밥벌레로 살겠다는 말과 같다.



한가지 뜻으로 한 책씩 읽어라 - 경전에서는 성현의 ‘마음자리’를 본다. 실용서에서 얻을 것은 정보다. 경전을 실용서 읽듯 해서는 안 되고, 역사책을 경서 읽듯 할 것도 없다. 서로 얻어야 할 내용이 다르고, 목표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 - 사랑채에서 밤늦게까지 들려오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책 읽는 가락은 나이가 들어서도 환청처럼 귓가를 맴돈다. 이런 소리가 정서의 물결을 이루고, 마음의 무늬로 새겨졌다.





의문과 메모의 독서법 - 성호 이익 1681~1763

이익은 독서에서 메모와 토론을 가장 중시했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즉시 메모한다는 질서(疾書)와, 사제 또는 붕우 간의 서면 토론 및 대면 토론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읽으나 마나 한 독서 - 찾는 것이 있어 책을 읽게 되면 읽더라도 얻을 것이 없다. 과거 공부를 하는 자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읽어 봤자, 읽고 나면 가마득하기가 소경과 다름없다. 이는 흑백을 말하면서도 정작 희고 검은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말을 해도 귀로 들어갔다가 입을 나오는 데 불과하므로, 마치 잔뜩 먹고 나서 토하는 것과 한가지이다.


독서는 순수한 몰입이다.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행위다.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암기하고 공부해서 안 틀리고 다 맞지만, 막상 시험만 끝나면 그 공부한 내용이 내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던 딴 일이 되고 만다. 자발적 독서, 무목적의 몰입, 읽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독서만이 우리 삶을 들어 올린다. 업그레이드시켜준다.


보이지 않는 독서의 힘 - 사람들은 밥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고, 안 하는 일이 없으면서, 책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고프면 아무 데나 주둥이를 들이미는 것은 짐승도 다 그렇다.


잊기 전에 메모하가 - (섬광) 장횡거가 妙契疾書, 즉 오묘한 깨달음이 오면 재빨리 적었다고 했다. 묘계 즉 오묘한 깨달음은 잘하기가 어렵지만, 그 즉시 써 두는 질서는 쉬운 일이다.


메모야말로 공부에서 중요한 습관 중 하나다. 깨달음은 섬광처럼 왔다가 간데없이 사라진다. 이 짧은 순간을 붙들어, 이를 잘 확장할 때 큰 공부로 이어질 수가 있다. 메모는 생각의 흔적이다. 공부는 생각 간수를 잘하는 데서 시작된다.


깊이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라 - 깊이 생각하면 잘못이라 하고, 의문을 제기하면 주제넘다 하며, 부연 설명하면 쓸데없는 짓이라 한다. 옛 주석만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의문을 품어라- 이렇게 해야 옳은 줄 안다면 반드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울러 살펴야 한다.


역사책 속의 성공과 실패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긴 자가 미화되고 진 자는 악하게 그려진다. 그러니 성패의 결과만으로 선악과 시비를 단정해서 판단하면 안 된다.





옛 성현의 독서 아포리즘 - 백수(白水) 양응수 1700~1767

독서의 쓸모 - 책을 읽는 까닭은 삶의 이치를 깨닫고, 실제의 삶에서 이를 체득하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장 구문이나 뜯어보고,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며, 글재주 뽐내기 위한 수단으로 읽는다.


문맥을 살펴라 - 책을 읽을 때 유사하다 하여 그 뜻에 빠져서는 안 된다. 마땅히 문장의 기세와 아래위의 뜻을 살펴야 한다.


- 같은 말도 놓인 문맥에 따라 뜻이 다르다. 특히 경전 공부에서는 맥락이 중요하다. 덮어놓고 읽으면 점점 더 미궁에 빠져서 공부가 잡스럽게 된다.


독서에서 기쁠 때 - 일찍이 독서가 사람을 기쁘게 할 때가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손과 발이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할 때가 있음을 알았다.


- 답답해 알고 싶던 것이 속 시원히 해결되었을 때 그렇다. 이럴 때 옛사람과 나 사이에는 아무 간격이 없다. 내가 그다.


줄줄 외워 깊이 생각하라-

- 공부가 공부를 부른다. 책이 책을 부른다. (꼬리가 꼬리를 문다.) 이것을 읽으니 저것이 궁금하고, 저것을 알고 나니 이것이 새로 보인다. 책과 마음은 붙어 다닌다. 책을 손에서 놓으면 마음은 딴 데로 놀러 나간다.


본래의 뜻을 구하려면-

- 책을 읽기 전에 자기의 깐을 먼저 두면 안 된다.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히는 것이 먼저다. 마음을 비워야 꼼꼼히 읽어진다. 기운을 가라앉혀야 제 생각이 날뛰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가라앉혀야!-

-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의미가 드러난다. 생각이 앞서고 의욕이 앞서면 의미가 뒤엉켜, 이치도 숨는다.


덩달아 하지 마라 -

-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기 판단 없이 남의 생각에 편승한다.


모르면 물어라 -

- 세상일은 저마다 잘하고 잘 아는 일이 있다. 모르는 것은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맞다.


물러서서 살펴보라 -

공연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세우는 것, 선입견에 붙들려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독서의 보람과 효과가 있다. 물러서서 살펴보라. 앞서려면 뒤처져라. (대우 받으려면 낮춰라)


스스로 판단하라 - 책을 읽을 때 내가 먼저 들어앉는 것이 늘 문제다. 자신을 버려야 자기만의 생각이 나온다.


잠깐 내려놓기 -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 억지로 읽지 말고 잠깐 내려놓는 것이 옳다. 모르면서 붙들고 있으면 진력이 나서 역효과가 난다. (나는 내 글을 내가 퇴고할 때 그렇다)


기억력을 높이려면 - 맹자의 한 구절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부의 요령은 ‘구방심(求放心)’에 있다는 그 말. 멋대로 돌아다니는 마음부터 붙들어 앉혀야 한다. 멋대로 돌아다니는 마음부터 붙들어 앉혀야 한다. 한 줄 보고 이 생각하고, 한 장 보고 저 생각 하면 백날 읽어도 안 읽은 것과 같다. 열심히 할수록 성정만 나빠진다. (작은 도서관을 내려놓아야지. 구방심이다. 평일 도서관 창가에 불이 켜져 있으면, 마음의 근심이 꺼지지 않는다. 책을 봐도 놀아도 마음이 도서관 불빛 속에 갇혀있다.)


욕심을 버려라 - 덤벙대며 의욕만 앞서는 것도 문제다. 많이 읽는 독서왕이 되려 들지 말고 되새김질하는 소의 독서법을 익히는 것이 낫다.


종이를 벗어나 몸으로 깨달아라 - 독서에도 점검이 필요하다. 점검은 딴 데 가서 할 것 없이 나 자신에게 하면 된다. 내게 울림이 없다면 성인의 말씀이 무슨 소용인가?


의심하는 것이 공부다 - 노력이 거칠고, 정밀한 생각에 힘쓰지 않으면서 단지 의심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면,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와 닿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제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것이다.


거친 마음을 버려라 - 공부가 진력이 난다고. 꼭 이 고생 해 가며 읽어야 하나? 쉽게 가는 길은 없다. 지름길은 빨리 가는 길이 아니라 망하는 길이다. 한 겹 풀고 한 켜 벗겨 내면 끝에 가서 알맹이가 나온다. 알맹이가 나온대서 끝이 아니다. 껍질을 발라내면 살이 나오고, 살을 걷어야 뼈가 나온다. 그 뼛속에는 골수가 들어있다. 골수까지 파내려면 조급함을 버려라. 금방 어찌해 보려 들면 영영 못하게 된다. 진득해야 공부다.


독서와 집구경 - 독서란 비유컨대 집 구경과 같다. 만약 바깥에서 집을 보고 나서 ‘보았다’고 말한다면 알 길이 없다. 모름지기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보아, 방는 몇 칸이나 되고, 창문은 몇 개인지 살펴야 한다. 한 차례 보고도 또 자꾸자꾸 보아서 통째로 기억나야 본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성성하고 생생해야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었다 할 수가 있다.


자세히 보라 - 성인의 말씀은 천 송이의 꽃과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두 보기가 좋다.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에 더욱 좋은 법이다. 성인의 말씀이라면 다 근사해 보이지만, 정말 내게 꼭 맞는 말씀, 정신이 번쩍 드는 깨우침과 만나야 진짜 꽃구경을 한 것이다. (꺾어야 할까. 사진만 찍어야 할까. 말만 걸어야 할까?)


써먹을 궁리 - 독서는 다른 꿍꿍이가 먼저 들어앉으면, 책 읽기는 고역으로 변한다. 속이 얹힌 것처럼 더부룩해지고,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그럴 때는 책을 잠시 덮고 욕심부터 걷어 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생각마저 멈추면 안 된다. 몰두가 있어야 의미와 만난다.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유영한다. 의미들이 속속들이 내게 와서 체화한다.


긴장과 이완 - 종일 글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잠시라도 여유롭게 지내면서 정신을 기른 뒤에 또 보아야 한다. 긴장의 몰두도 필요하지만 느긋한 이완도 소중하다. 고무줄은 늘였다 놓았다 해야 탄성이 유지된다. 몰아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강약의 조절 - 사람들은 독서는 마땅히 차분하게 완미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름지기 센 불로 달인 뒤에는 불기운을 늦춰서 은근히 달여야 문제가 없다.


종용완미(從容琓味)를 독서의 비결로 내세우곤 한다. ‘읽다 보면 알겠지, 모르면 또 어때’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은 안된다. 처음엔 센 불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서슬을 늦춰야 한다. 은근한 불로 조금씩 졸인다. 안 그러면 약재가 타 버리거나 졸아 붙어 건질 것이 없다. * 의욕만 앞세워도 안 되고, 맥을 아예 놓아서도 안 된다. 중간에 늦춰 주되 방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노소의 차이 - 젊어서는 확산하는 독서가, 나이 들어서는 수렴한 독서가 필요하다. 젊어서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하면 안목이 좁아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나이 들어 계속 벌이기만 하면 망망대해에서 돌아갈 곳을 잃는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나이에 맞게 읽어야 한다. 하나의 화두를 들고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보는 것이 맞다.


역량과 나이에 따라 - 중년이 지난 사람은 책을 많이 읽으려 들면 안 된다. 단지 조금씩 음미하고 사색해야 의미가 절로 드러난다.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읽되, 거기서 영양을 얻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꾸준함은 총명을 이긴다 -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가 답이다. 고요 속에 정신이 길러진다. 그 힘으로 책을 읽을 때 그 맛이 달다.


논어와 맹자의 독법- 논어는 냉정하게 보아야 하고 맹자는 숙독해야 한다. 논어는 구절과 뜻마다 각기 한가지 의리를 담고 있어서 자제하고 고요히 살펴야만 한다. 맹자는 큰 단락으로 되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해서 숙독해야 글의 뜻이 드러난다. 한 구절 한 글자마다 깨달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 짧은 토막글로 이루어진 논어는 구절마다 담긴 뜻을 차분히 잘 음미해야 한다. 그렇게 부분을 모으면 비로소 큰 맥락이 드러난다. 맹자는 앞뒤의 서술이 길어 맥락을 알려면 높은 데서 바라봐야 한다. 한눈에 봐야 한다.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 통째로 살펴야지 쪼개서 나누려 들면 흐름이 사라진다.


욕심은 독이다 - 모르는 것이 없다는 말은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말과 같다. 쓸데없는 지식까지 다 담아 두려 들으면, 공부는 과부하가 걸려 소화불량 상태가 된다. 공부도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욕심만 부리면 안 된다.


공부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숙독 반복 몰두, 몰두하되 써먹을 궁리를 버려라. (딱! 걸렸음)


용맹한 장수와 가혹한 재판관처럼 - 글을 볼 때는 용맹한 장수가 군대를 운영하면서 곧장 단번에 끝까지 무찔러 싸우는 것같이 해야 한다. 가혹한 재판관은 옥사를 다스릴 때 인정사정이 없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후 법으로 엄하게 다스린다. 우물쭈물 대충대충 책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


두 부류의 병통- 머리가 나쁘면 못 알아들어서 걱정, 머리가 좋으면 대충해서 문제다.


숙독과 정사(靜思), 그리고 의문 - 독서는 우선 숙독해야 한다. 그 말이 모두 내 입에서 나온 것같이 해야 한다. 계속해서 정밀하게 따져보아 그 뜻이 죄다 내 마음에서 나온 것처럼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연 그럴까? 때로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 말을 흔들고 생각을 뒤집어 보는 점검이 뒤집어 보는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앵무새 공부, 원숭이 공부가 안되려면 점검이 필요하다.




바탕을 다지는 자득의 독서

순암 안정복 1712~1791

많이 읽고 널리 보라 - 책이란 옛 성현들의 정신과 심술(心術)의 궤적이다. “책 읽어 1만 권을 독파했더니, 글을 씀에 신기(神氣)가 있는 듯하다.” 옛글은 쓰고 싶어 쓴 글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글이다. 제자랑 하자고 쓰지 않고,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세상을 살다간 보람이 없었기에 안타까워서 썼다.


1만 번 독서의 힘 - 임유후도 젊은 시절 역병을 피해 나가 있었다. 머무는 곳에 책이 없고, 다만 왕발의 ‘등왕각서’ 한 편만 있었다. 또한, 1만 번을 읽었는데, 이때부터 변려문이 붓만 잡으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해서 한 번 두 번 읽다 보면 그 글의 기운이 오롯이 내게로 스며든다. 가락이 먼저 젖어들고, 의미는 뒤따라온다.


양천상의 독서기 - 대문과 뜰을 나서지 않은 지 10여 년에 이를 두루 읽었다. 비록 남에게 알려 주기에는 부족하나, 또한, 혼자 알기에는 충분하였다. 예전 한나라 때 상자평은 자식들 혼사가 끝나자 집안일에 완전히 손을 떼고 자유의 유람인이 되었다. 오악을 두루 돌며 삶을 마쳤다.


공부는 머리로 하지 않고 엉덩이로 한다. 진득하니 눌러앉아 미련을 떨고 해야지.


아전인수의 독서 - 독서는 다만 본문의 의리를 추구해야지. 경솔하게 간추려서 별도의 뜻을 찾거나, 부연하여 다른 주장을 펼쳐서는 안 된다. 책의 뜻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엉뚱하게 끌어다 쓰면 안 된다. 글쓴이의 본의를 파악해야지, 제논에 물대기 식을 멋대로 끌어다가 제 주장만 펼치면 못쓴다. 잠깐 펼쳐 읽으면서도 어디다 써먹을 궁리뿐이면, 안목이 얄팍해지고 사람이 경박해진다. 큰 공부를 하려면 진득함부터 배워야 한다. 얕은 재주로는 큰 공부를 못한다.


잡서를 경계하라 - 사람은 본 대로 생각하고, 든 애로 행동한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읽고 나서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 주견이 서지 않은 젊은이들이 마땅히 보아야 할 책을 멀리하고, 보아서는 안 될 책을 가까이하면, 심성이 황폐해지고 마음이 거칠어진다.


독서와 의문 - 주자는 “책을 읽을 때 의문이 크면 진보도 크다.” 퇴계 선생은 “책을 읽으면서 굳이 다른 뜻을 깊이 구하면 안 되고, 마땅히 본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난 뜻만 구하라.” 나의 사사로운 뜻을 마음속에 가로질러 놓고 도리어 선유(先儒)의 학설을 자기에게 맞추려 한다면 이는 절대로 안 된다.


처음엔 건성건성 넘어가고, 으레 그러려니 하다가, “이게 뭐지?” “왜 이렇게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의문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한 줄도 그저 넘어갈 수 없게 된다. 한 걸음마다 족쇄가 채워져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그 고비를 조금 넘겨야 미운(迷雲)이 걷히면서 조금씩 앞길이 트인다. 계속 나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서 구름 한 점 없다. 발걸음이 경쾌하고 콧노래가 절로 난다. 하지만 공부는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공부의 중간 단계에서 생겨나는 아집과 아만(我慢)은 대단히 위험하다. 갑자기 선현들이 우습게 보이고, 저만도 못하게 여겨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 자신감이 넘칠 때 더욱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얕게 읽고 낮춰보라 - 주자가 “문자는 차라리 얕게 볼망정 너무 깊어서는 안 되고, 낮춰 볼지언정 지나치게 높으면 안 된다.” 성현의 말씀을 가슴 속에 무 젖어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섣불리 의욕만 넘쳐 덤벼들면 제 발에 제가 걸려 넘어진다. 공부는 기본기가 중요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평상심으로 읽어야지 시비를 걸겠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심술일 삐뚤어진다. 낮춰 보는 것은 우습게 보는 것과 다르다. 공부에 호들갑이 심하면 사람이 경박해진다.


스스로 터득하라 - 공부는 폭넓은 섭렵에서 출발한다. 폭넓게 공부하는 것은 자득을 위해서다. 자득으로 이뤄지지 않는 박학은 헛똑똑이 공부다. 공부를 제대로 하면 사람이 무거워지고, 공부를 함부로 하면 사람이 경박해진다. (이래서 내가 논어 에세이를 쓰겠나? 의욕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독실한 마음, 독실한 공부 - 입으로만 하는 공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집안 살림 걱정, 먹고 살 궁리를 다 하고 나서 할 수 있는 공부는 어디에도 없네. 괴롭게 공부하고 미친 듯이 몰두해서 숨 쉬고 밥 먹듯이 해서 공부가 일상이 되어야 하네. 그렇게 쌓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속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올 걸세. 그때까지 가야 하네. 중단없이 해야 하네. 옛 선인들도 다 이렇게 공부해서 한 소식을 얻은 분들일세. 자네도 그렇게 되길 바라네. (우리 며느리 지혜와 영근에게 주고 싶은 내용)


사견을 눌러라 - 공부가 조금 탄력을 받게 되면, 자꾸 내 안에 있는 ‘나’가 꿈틀거린다. 이것도 아닌 것 같고, 저것도 틀린 것 같다. 성현의 말씀이 차츰 우습게 보인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가 있을 것만 같다. 공연히 시비를 가리고 싶고, 제 주장을 펴고 싶다. 공부가 아직 덜 익었다는 증거다. 반대로 제 생각은 전혀 없이 선현의 모든 말씀을 금과옥조로 떠받들어, 그어 놓은 금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자신감도 좋지만, 기고만장은 안 된다. 그렇다고 떠먹어주는 밥만 먹으면 공부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나를 크게 세우려면 나를 눌러라. 내 말을 하려거든 말을 아껴라.


하학상달(下學上達) - 대학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먼저 하고 나중 할 것을 안다면 도에 가깝다.” 공자께서 “아래에서 배워 위로 도달한다. “여기서 아래란 것은 비근(卑近)한 것을 일컫는다. 비근하여 알기 쉬운 것이 날마다 쓰는 떳떳한 윤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급선무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 인간의 윤리, 이런 것들을 바로 닦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다. 이를 착각해서 나는 대단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런 것은 소홀히 해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는 앞뒤가 바뀐 사람이다. 하학상달은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가는 공부다. 공부는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것이지, 사람을 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구양수의 독서분일법- 공부는 단순 무식해야 한다. 사서오경을 다 합치면 478,990자다. 공부는 할수록 가속도가 붙는 법. 공부는 머리도 하지 않고 엉덩이로 한다. 복잡하게 말고 단순하게 하라. 영리하게 말고 미련하게 하라.




독서의 바른 태도와 방법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

초학자들의 책 읽는 방법 - 우선은 외우는 것이 먼저고, 의미를 캐는 것은 그다음이다.


책 읽기의 자세 -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높여서는 안 된다. 소리를 높이면 기운이 빠진다. 눈을 놀려서도 안 된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 마음이 부산스러워진다. 몸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몸을 흔들면 정신이 흩어진다. 공부는 집중이다. 독서는 안으로 의미를 길어 올리는 훈련이다.


뜬 생각과 의문 - 생각에도 종류가 많다. 념(念)은 머릿속에 콕 박혀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쓸데없는 생각이 콕 박히면 잡념이요. 떠오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상념(想念)이다. 공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뜬 생각(浮念)이다. 뿌리도 없이 제멋대로 떠다니며 사람 마음을 이랬다저랬다 하게 만든다.


뜬 생각을 다스리게 하는 법 - 해맑게 다스리려는 의지가 있으라 한다. 흙탕물을 오래 가라앉히면 맑은 물이 된다. 처음엔 뿌옇게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물도 오래 가라앉히면 맑아진다. 해법은 묵좌(黙坐)에 있다. 합안(闔眼), 즉 눈도 감아라. 단전으로 마음을 끌어내려야 한다.


의문의 중요성 - 공부에 끝은 없다. 못난 사람은 조금 이루고 크게 만족한다. 도랑을 벗어나야 강물과 만나고, 강물은 흘러 큰 바다로 든다.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으로 어찌 바다 고래의 배포를 짐작이나 할까? 공부의 적은 자만과 자족이다. 대충 어싯비싯 알면 의문도 없다.


이의역지(以意逆志) - 푸닥거리하던 무당이 접신의 경지에 들면 날이 시퍼런 작두 위를 펄펄 뛰면서 죽은 사람 목소리를 낸다. 책 읽기는 일종의 신 내림의 경지다.


자각해서 노력해야 -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인생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독서는 없는 시간을 어렵게 쪼개서 하는 것이지, 시간이 남아돌아 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는 깨달음이다

연암(燕巖) 박지원 (1737~1805)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네 - 남 읽는 대로 읽고, 남 따라 생각해서는 읽으마 마나지. 책 읽어 글재주나 기르고, 삶에 아무 보탬이 안 되는 문제나 풀고 있다면 시간이 아깝고 돈도 아깝지 않겠나.


마음을 읽어야지 - 사기를 읽고 있다지? 글을 쓸 때의 그 마음을 읽어야 하네. 그저 문장력에 감탄만 하는 것은 부엌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집어들고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양 “숟가락 주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단 말일세.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글 속에 담긴 사마천의 마음일세. 덮어놓고 읽지 말고 음미하며 읽게. 엉뚱한 데 감동하지 말고, 핵심을 찔러 읽게.


오직 독서뿐 - 일 년 내내 해도 뉘우칠 일이 없고, 일백 사람이 말미암아도 허물이 없다. 명분과 법이 비록 훌륭해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되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독서뿐이다.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할 때 - 어린이가 책을 읽으면 요망하게 되지 않는다. 늙은이가 책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졌다 하여 변하지도 않고, 천해졌다 해서 멋대로 굴지도 않는다. 괜찮다 싶을 때 더 책을 읽어라.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가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 할 때다.


능히 잘 읽는 사람 - 선비 아닌 사람이 없지만, 능히 바른 자가 드물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능히 잘하는 자는 드물다.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을 도능독(徒能讀)이라 한다. 이런 독서는 절대로 사람을 바꿔 놓지 못한다. 말만 공부한다고 하고, 행실이 따라 주지 못하면 선비가 아니다. 입으로만 외우는 앵무새 공부와 읽는 시늉만 하는 원숭이 독서로는 삶을 바꿀 수가 없다.


부끄럽지 않은 일 - 우아한 선비란 뜻은 어린아이 같고, 모습은 처녀와 같다. 1년 내내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 사모함을 오르지 한다. 처녀는 수줍지만 지킴이 확고하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거리낄 것이 없음은 오직 문 닫고 책 읽는 것뿐이다. 허우대가 멀쩡해도 행동이 반듯해도 책을 읽지 않으면 헛일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에 대해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그의 눈은 밝고 그의 마음은 환하다. 책이 준 선물이다.


실용이 먼저다 - 책 읽는 보람은 실용에서 먼저 드러남이 마땅하다. 성명이기(性命理氣)의 고담준론만 일삼으면 사람이 망가진다. 토론한다며 제 주장만 되뇌고 남의 얘기에는 귀를 막는다.


독서의 해악 - 이 책 읽어 어디다 써먹어야지. 기껏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사서삼경을 줄줄 외워서 써먹을 궁리와 출세할 요량뿐이라면 차라리 책을 덮고 안 읽는 편이 훨씬 낫다. 독서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다. 읽어서 마음이 기쁘고, 생각이 변하며, 삶이 바뀐다. 이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는가?


하루도 그만둘 수 없는 일 - 사람이 허랑방탕해지는 것은 책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잡으면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책의 기운 - 오만하고 방탕해서 찧고 까불다가도 책 읽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저도 몰래 기가 꺾이고 풀이 죽는다.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좋은 기운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생활의 습관, 독서의 발견

아정(雅亭) 이덕무 (1741~1793)

다만 책을 읽을 뿐 - 군자는 한가롭게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고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논어의 위력 - 한겨울 군불도 때지 않은 방에 누워 벌벌 떨며 잠을 못 이루는데 이웃집에서 잔치하여 웃고 떠드는 소리에 미쳐 발광할 것만 같았다. 못 견디고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논어를 몇 장 읽자 문득 미친 기운이 사라지고 이 정도 시련쯤은 견뎌 낼 수 있겠다는 강개한 기운이 솟구쳤다. 성현의 말씀에는 바른 기운이 깃들어서, 흩어진 마음을 되돌려 세우고, 가눌 길 없는 기분을 다잡아 가라앉혀 준다. 경전의 힘이 여기에 있다. 언어에도 힘이 있다. 기운이 있다. 그런 책을 읽어야 사람이 변한다. (강의준비를 하지 않고 지내도 되는 봄 가을이 되면, 막연한 근심을 하는 날이 있었다. 지금, 문득 떠오른 생각! 남에게 전달해주기 위한 논어 노트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새기는 논어 본문을 설렁설렁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훗날 노후의 걱정이 사라진다. 오히려 그날들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불경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나에게 익숙한 논어가 낫겠다 싶다.)


독서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 - 젠체하고 잘난 체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차라리 몰라서 무식한 속인만도 못하다. 속인은 해로움이 자신에게 미치지만, 이런 인간은 그 해로움이 꼭 남에게까지 가닿으니 문제다.


소득 없는 독서 - 물가에 발을 담글까 말까 하고 깨작거리지 말고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성현의 말씀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고전의 바다에서 헤엄쳐야 한다. 책을 읽어 소득을 얻고 보람이 있으려면 믿고 따라 실천해야 한다.


독서의 표준 - 강학(講學)하여 배우고, 살펴 성찰하며, 머금어 함양하고, 밟아 실천에 옮긴다. 공부의 으뜸가는 덕목은 강학과 성찰, 함양과 실천이다.


베껴 쓰기의 위력 - 한유가 말했다. 기사(紀事) 찬언(纂言), 무릇 책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이 마침내 손으로 써 보는 것만 못하다. 대개 손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라가게 마련이다. 스무 번을 보고 외운다 해도 한차례 베껴 써보는 효과만 못하다. 목과(目過) 구과(口過) 수과(手過)가 그것이다. 눈으로 읽는 것은 입으로 소리 내서 읽는 것만 못하다. 입으로 소리 내서 읽는 것은 손으로 베껴 써 가면서 읽는 것만 못하다.


모르면 찾아라 - 의심스러운 일이나 의심나는 글자가 있거든 그 즉시 유서(類書)나 자서(字書)를 살펴 점검해 보아라. 이덕무 사소절. 유서는 백과 사전류의 책이고, 자서는 사전이다. 글자는 자서를 뒤져보면 다양한 쓰임을 알 수 있고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유서를 뒤져봐야 앞뒤 맥락을 알 수가 있다. (급하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야한다.)


좋은 내용은 함께 나눠라 - 좋은 내용을 보면 혼자 알기 아까워 남에게 알려주고, 멋진 책은 남도 나의 이 느낌을 가졌으면 싶어 소개해 준다. (내 사이트에 밑줄 친 것을 옮기는 이유다. 때론, 저자의 항의가 있을까 봐 겁을 먹기도 한다. 내가 친 밑줄이 마음에 들면 책을 사서 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규모와 체재를 먼저 살펴라 - 공부는 번지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책의 규모와 항목의 배열을 살핀다. 이제 책의 얼개가 가늠된다. 갈래가 짐작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계통 없이 읽으면 많이 읽을수록 사람이 잡박해지고 잡스러워진다. 이런 것은 박학과는 거리가 아예 멀다.


독서만이 능사가 아니다 - 군자는 책 읽는 틈틈이 울타리를 엮거나 담장을 쌓고, 뜨락을 쓸거나 거름을 쳐야 한다. 말을 먹이고 막힌 도랑을 치며, 방아 찧는 일도 때때로 한다면 근골이 단단해지고 뜻이 안정되게 할 수가 있다. 공부는 책만 붙들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틈틈이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함께 하는 것이 옳다.




안목과 통찰

연천(연(淵泉) 홍석주 (1774~1842)

독서와 학문 - 세상 사람들은 늘 독서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은 진실로 책을 읽지 않고는 안 된다. 하지만 독서란 배움의 한 가지 일일 뿐이다. “옛날부터 문 닫아걸고 혼자 앉아 있었던 성인은 없었다.” 멋있는 말이다.- 주자. 책만 읽으면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책은 문자로 된 것만이 책이 아니다. 세상천지 만물이 다 책이요. 스승과 벗이 모두 책이다. 활자로 된 책만 읽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그 시대를 고려해야 - ‘용심(用心)’과 ‘방심(放心)’이 키워드다. 공부하는 사람은 마음을 단단해 붙들어 두어야지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놓아두면 안 된다. 그저 빈둥대는 꼴이 얼마나 못마땅했으면 공자께서 차라리 바둑 장기라도 두는 게 낫다고 하셨겠는가?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 - 학문의 방법은 방심, 즉 흐트러진 마음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은 사려(思慮)가 깊어야 하지만 염려(念慮)가 깊으면 안 된다. 사념(思念)은 필요해도 상념(想念)은 공부에 방해된다. 헛생각은 마음 위를 떠다니면서 공부를 방해한다. ‘존심(存心)’ 즉 생각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보존해 지켜 내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다.


잠자리의 생각 - 범중엄 “나는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스스로 하루 동안 먹고 마시고 봉양한 비용을 헤아려 본다. 내가 한 일과 걸맞으면 코를 골며 달게 잔다. 그렇지 않으면 저녁 내내 편안할 수가 없다.




사색과 깨달음의 독서

항해(沆瀣) 홍길주 (1786~1841)

논어를 제대로 읽은 사람 - 책을 많이 읽어도 책 따로 나 따로 놀면 안 읽는 것과 같다. 말만 앞세우고 행실이 따라가지 않으면 차라리 책을 덮어라. 독서를 유식한 체하고 젠체하는 빌미로 삼는 것은 교언영색에 가깝다. 현학 취미, 자기 자랑을 위한 독서는 백해(百害)가 있고 일익(一益)이 없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 매번 옛사람의 문집이나 다를 사람이 지은 시문을 읽다가, 이따금 격조로 아낄만한 것이 있어 나와는 완전히 다른데도 마음으로 이를 아껴 마치 제 입에서 나온 것 같은 경우가 있다. 대개 그 체제는 비록 달라도 서로 감응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옛글을 읽는 자세 - 글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장(意匠)의 경로다. 글쓴이의 생각과 그 생각을 펼치는 방식에 주목해야지, 수사나 겉으로 드러난 기세에 휘둘리면 안 된다. 좋은 글에는 아우라가 있다. 광채가 있다. 단지 표현에 놀라고 기세에 질려서 놀라기만 하면 결국은 글 따로 나 따러 가 되어 읽은 보람이 없다.


독서와 활용 - 어떤 사람은 조금만 읽고도 핵심 의미를 꿰뚫어 제 것으로 만든다. 되글을 말글로 써먹는 사람이다. 어떤 이는 읽은 책도 많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데 막상 쓴 글을 보면 변죽만 울리다 결국 제소리 한 번도 못 내고 만다. 말글을 고작 되들로 써먹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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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되었다

봄이라고 하기에는 늦었고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6월은 비가 잦아 지치기 쉬운 달이다

가을학기보다 한달이 더 있어 학생도 학부형도  직장인도 주부도 백수도 나도 힘들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딱! 썪기 쉬운계절이다


썪는 것도 道 닦듯 잘 썪히면 발효된다

6월은 숙성기간이다

집중할만한 것을 시작하기 좋은 달이다

숙성 중에 '독서'만한 것이 없다

지난 여름 읽고 밑줄 그은 내용을 올리며,

6월이 벌써 삼분의 일이나 간것이 아깝다



 




2014년 6월 3일

논어 완독

논에 에세이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 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사인방 학우들이 계셨다

종강 날, 요로코롬 예쁜 카페에 갔다

화기애애 좋았다.

그중 아주 경쾌하고 명랑한 분이 계셨다.

나는 그분을 보고 내가 지니지 못한

그 아름다운 분위기를 부러워하며

"얄밉다"라고 했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이쁜 분을 '얄밉다'라고 표현한다

정말, 미운 것이 아니라,

역설적 표현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나는 거듭 거듭 사과하며

절대 그런 뜻이 아니였다고

문자와 전화를 드렸으나 ...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몇년간 쌓아온 신뢰와 고마움

다감다정한 학우들 사인방을 잃었다

지방의 다른 언어 어감의 소통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나는 말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며

글을 쓰는 작가다

어떤 단어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단어의 죄가 아니고 내 모자라는 인성 탓이다.

 

그후로

나는 다정다감하게

"밥 먹자"

 "차 마시자"

다가오는 삼인방 사인방 오인방 .... 분들에게

일단 거절부터 한다

무리짓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다수가 되어 힘을 발휘한다

 

 

 

그래도 나는

'듣는 사람 없어도'

노래를 해야 하며

듣는 사람 없어도 귀를 기우려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다.

 

 

 

* 얄밉다 : 매우 약고 영리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있다. (사잔적 의미)

 

 

 

 

 

바람을 쓰다

정유이

 

 

일시: 2013년 10월 26일 토요일  PM 7:30

장소: 부산 사상 다누림센터내 '다누림 홀'

 

수필콘서트가 열렸다

 

 

 



 

글도 글이려니

수필과 음악과 낭송과

관객과 독자와의 하모니

발상이 신선했다

 

에세이부산 후배가 무럭무럭 크는 것이

자랑스럽다

 

 

 

 

 

 

 

 

 

 

 

 

 

 

 

 

 

 

 

 

 

 

 

 

 

 

 

 

 

 

 

 

 

 

 

 

 

 

 

 

 

 

 

 

 

 

 

 

 

 

 

 

 

 

 

 

 

스마트폰 사진의 기능이

빛으로인해 흔들리고 희미하지만

참석했던 우리들 마음속에는

별들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다

 

문운

화들짝 화들짝 피어나기를...

 

 

 

 

 

 

 

 

죽음의례 죽음 한국사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기획 / 이용범 엮음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고독사’ ‘무연사’로 칭하는 이른바 버려지는 죽음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죽음의례와 죽음 - 정진홍

 

- 어렸을 적에 겪은 일입니다만, ‘버려진 주검들’ 전장은 그러한 주검들로 채워진 마당입니다. 대체로 그 주검들에 애써 무관심 하려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주검들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또는 ‘치워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란 ‘각박’합니다. 노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야 다 산 목숨이지만 너희 아이들은 살날이 창창한데 어서 가던 길 서둘러 가거라!” 그 주검을 짐짓 ‘간과하고 싶은’, 또는 의도적으로 ‘가리려고 하는’ 것이었다고 짐작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검들 속에서 자기의 혈연을 찾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 주검을 부여안고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다루는 몸짓으로 그 주검을 수습했습니다. 그들에게 주검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주검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도, 음습한 원기도 거기에는 없었습니다.

 

 

 

 

전통 죽음의례의 변화와 경향 - 이용범

 

- 약식 유교 상장례가 행해지는 대표적인 경우는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 총각의 경우이다. 처녀, 총각을 위한 상장례에서는 먼저 초혼(初婚)을 하지 않는다. 또한, 사자상 역시 차리지 않는다. 염습도 시신을 간단히 닦아내는 것으로 마치며, 수의도 깨끗한 옷으로 대신한다. 가족들은 부고도 내지 않으며, 이웃들도 문상을 꺼린다. 매장 역시 바로 하는데, 날과 시를 가리지 않는다. 운구는 관과 상여조차 사용하지 않고 지게로 운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낮보다는 주로 저녁이나 밤에 매장한다. 시신은 선산이나 공동묘지에 묻거나 아니면 삼거리나 사거리에 매장하는 때도 있다. 시신을 매장한뒤에 이루어지는 우제(虞祭)에서 길제(吉祭)까지의 일반 유교 상장례 절차는 행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 경우에는 죽은 자가 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여러 예방 행위를 같이 한다. 예컨대 시신을 매장할 때, 서숙(조)를 삶아서 가슴에 끼워주면서 “서숙에 싹이 나도록 꼼짝 말고 있다가 싹이 나오면 그때 너도 나와라.”라고 말한다. 아니면 계란을 삶아서 함께 묻어 주면서 “계란이 부화해서 병아리가 되거든 그때 나와라.”라고 한다. 이는 죽은 처녀, 총각이 아예 무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항구적으로 그 안에 머물도록 해서 산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같은 의도에서 죽은 처녀, 총각에게 관심거리를 제공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즉 서숙을 수의(壽衣) 손 싸개에 한 줌 넣어주는데, 이는 귀신이 이를 세느라 정신을 다른 데 쓰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얼굴에 채를 씌워 묻는 것이나, 아니면 죽은 처녀는 가슴에 거울을 넣어 주는 것 역시 같은 의도에서 그렇게 한다. 또는 처녀, 총각으로 죽은 경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매장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 구경을 하거나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어보느라 집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이들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또 다른 의도가 있다. 즉 여러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불어 늘 사람들의 발길에 눌려 있도록 함으로써 죽은 자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의도에서 항아리에 넣어 묻는다든지 시신을 묻을 때 발에 바늘을 놓아 아예 갖지 못하게 하거나, 수의의 샅에 바늘을 저며서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비정상적 죽음이 야기하는 문제란 망자가 이승의 세계를 떠나 죽은 자의 세계인 저승에 통합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인데, 진오기굿 씻김굿, 오구굿, 넋건지기굿, 사후결혼굿 등의 무속의 죽음의례는 그러한 장애 요인을 제거하고 망자를 기존의 죽은 자의 세계로 통합시켜 준다.

 

 

 

전통적으로 호상(好喪)의 경우 한국의 상갓집은 축제의 자리였다. 가족과 친지, 마을 사람들 비롯한 많은 사람이 모여 술과 음식을 즐기고 춤과 놀이가 행해졌다. 이러한 축제적 분위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갓집에서 술 마시고 화투도 치며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밤을 새우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갓집의 축제적인 분위기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고려 때부터 장송(葬送)에 가무(歌舞)를 행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부모의 장례 때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피리를 불면서 애통해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기록이 있다. 초상에는 곡(哭)과 읍(泣)을 하지만 장사 지낼 때에는 북치고 춤추며 풍악을 올리면서 장송(葬送)한다..

 

 

 

또한, 각 지방에서 발인 전날에 행해졌던 상여놀이 역시 이러한 전통 상장례의 축제적 분위기를 확인시켜 준다. 지방에 따라 ‘손모듬, 걸걸이’(강원도 경기도), ‘대도름, 댓도리’(충북), ‘대돋음’(경북), ‘상여도듬’(황해도)이라고 부리는 상여놀이는 출상 전에 상여꾼들이 운구 준비를 위해 발과 호흡을 맞출 겸 빈 상여를 메고 노는 놀이로서, 이는 상갓집을 흥겨운 놀이판의 분위기로 바꿔버린다.

 

 

 

초상이 발생하면 마을 사람들은 다른 일을 멈추고, 상갓집으로 가서 여성은 음식과 수의 준비, 남자들은 부고 호상 일체의 상여물품준비, 상여 매기 등으로 역할을 나눠 맡아 장례의 모든 것을 도와준다.

 

 

 

 

 

 

한국 불교 죽음의례의 유형과 최근의 변화 - 구미래

 

불교에서는 특히 임종 무렵을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보는데, 이는 임종 때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느냐에 따라 내생이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종 무렵에 연락이 오면 백 일을 제쳐 두고 99%는 무조건 간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기 직전의 마음 상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죽을 때 열 번만 ‘나무아미타불’을 외워주면 많은 죄를 지은 이라도 극락에 갈 수 있다고들 한다.

 

 

 

생전에 미리 올리는 천도재- 내세를 위한 불교 죽음의례는 생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윤달에 올리는 ‘생전 예수재’를 말하는데 자신의 내세를 위해 생전에 자신이 직접 올리는 천도재이다. 사후 사십구재와 마찬가지로 생전에도 49일간의 의례로 치름으로써 생전의 예수재가 사호의 사십구재와 같은 공덕을 지닌 것임을 암시한다.

 

 

 

백일 탈상은 부담스럽고 3일 삼우제 탈상은 아쉬운 현대인들에게, 사십구재는 종교화 무관하게 사찰에 의뢰하여 치를 수 있는 간편한 탈상 의례로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특히 망자를 더욱 좋은 내세로 보내기 위한 의례적 근거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례 이후에 다시 망자의 죽음을 공론화하는 의례를 치름으로써 공동체에서 상주의 명분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사십구재의 수용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병원의 장례식장화와 그 사회적 맥락 및 효과 - 장석만

 

 

육신은 죽자마자 흰 천에 덮여 급하게 냉동창고로 갑니다. 그러면 처음으로 집을 잃은 영혼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하 냉동창고 곁을 서성거리는데, 바로 이때 그들은 위해 불러주는 노래가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입니다.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무려 사십구일 동안이나 옛 거처 곁을 헤맨다고 합니다. 이시영, <집을 잃은 영혼>

 

 

 

아파트의 전형적 구조는 핵가족 거주용이며, 아파트에서는 이웃 주민과 철저하게 격리가 이루어진다. 아파트에는 신을 벗고다닐 수 있는 마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파트는 핵가족끼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내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파트 안에서 장례식을 치르기는 불가능하다. 고층 아파트에서 이삿짐 전용의 곤돌라에 매달려 내려오는 관의 모습은 아파트 거주자의 장례식이 집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시신을 담은 관(棺)을 이삿짐을 나르는 도구로써 옮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모 시신이 수십 미터 상공에 매달려서 짐짝처럼 취급되는 것을 마음 편하게 여기는 후손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원의 장례식장화가 지니는 효과

 

- 병원은 편리하다. 병원에 가는 것도 편하고, 망자를 옮기는 것도 편하다. 병원은 병든 몸을 치료하기 위한 곳이다. 이제 병원은 아파도 가고 안 아파도 가야 할 곳이 되었다. 병원은 아기 낳을 때도 가고, 결혼할 때도 간다. 온전한 신랑 신부가 되려면 생리적 기능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을 때도 가는 곳이다.

 

 

 

시설도 망자 가족과 조문객에게 편리하데 마련되어 있다. 상주가 편히 잘 수 있는 수면 실도 있고, 몸을 씻을 샤워실도 있다. 채광과 인테리어도 호텔 못지않다. 전통 장례식이 가지고 있던 상복의 엄격한 규정도 사라진 지 오래고, 곡소리가 들리지 않는지도 오래되었다. 망자 가족은 장례식 이전처럼 휴식을 위하고, 샤워를 하면서 몸의 별다른 이질감이나 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장례 기간도 보통 3일이어서 사망일과 발인 일을 제외하면 실상은 하루를 견디면 되는 것이다. 조문객도 마찬가지다. 서둘러 왔다가 어색한 몸짓을 하며 잠깐 머문 다음 서둘러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간다. 자신의 이름을 적은 부조금 봉투를 전달하는 것이 그곳에 온 주된 목적이다.

 

 

 

상주의 역할은 병원의 전문 장례업자자가 하라는 대로 따르고, 조문객의 부조금을 받아서 상조회사와 병원 장례식장에 건네주는 데 그친다.

 

 

 

병원 장례식장의 시설과 서비스는 망자 가족을 소비자로 보고, 장례식을 상품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장례식이 그리된다고 해서 무작정 분노할 수만은 없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장례식이 대부분 병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 흥미를 보인다. 하니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병원 장례식장을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파트가 우리 주거 형태로서 익숙하듯이, 병원 장례식장도 그런 당연한 모습이 되고 있다.

 

 

 

 

병원 장례식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일컬어질 만큼 병원 수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연세 의료원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이 12년간 고수했던 술, 밤샘, 음식 제공을 금지하는 ‘3불(不)’ 방침을 폐지했다. 병원 관계자는 “‘음식 한번 대접 못 한다.’라는 상주의 항의 등 한국인의 정서에 부적격하다는 의견이 많아 술, 밤샘, 음식 제공을 허용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의 사례는 병원 장례식장이 소비자 위주로 탈바꿈하고, 대형화, 고급화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병원 치료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 신화

 

-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을 객사로 보지 않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병원에서의 사망이 환자에 대한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이 필요한 환자일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많은 사람에게 병원은 현대 의술을 상징하는 기관이고, 현대 의술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거의 무조건적이다. ‘플라세보 효과’가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신뢰는 병원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천도재의 새로운 양태- 낙태아를 위한 천도재 - 우혜란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정말정말 미안하다 너의 고통 몰랐구나

이어미의 짧은생각 너를그만 잊었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정말 미안하다

이젠그만 고통벗고 이어미를 용서하고

미웠던맘 빨리 잊고 부처님전 가려무나

그동안에 방황하던 무명세계 벗어나서

태안지장 의지하여 극락세계 가려무나

늦었지만 너의고통 오늘로써 잊게하마

정말정말 미안하다 아니타불 수계받아

탐진치의 어준마음 모두잊고 용서하렴

우리아기 천도하는 오늘참회 들어주렴

불타암 <낙태영가 참회발원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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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년은 경기도 포천이다.

선산 밑에 삼태기에 싸 안기듯 아늑한 곳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겪은 주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전혀 기억에 없다.

 

 

 

고3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대쪽 같은 선비의 생전 성품 탓이었는 지,

동태가 다시 얼어붙고 서울 전역에 수도관이 동파하는 추위가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개울가에 조팝 꽃이 하얗고 뻐꾸기가 울었다.

꽃상여와 상주와 문상객들의 모습이 천상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지금도 그 광경을 떠올리면 마음에서 당사실 같은 햇살이 비치는 것 같이 안온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무심한 주검은 꽃상여조차 허락하지 않아 영구차가 쳐 밀고 올라갔다.

그리고 큰동생도 서둘러 일찍 선산으로 올라갔다.

 

 

 

댁에서는 작은 아즈버님이 길에서 가셨다.

집으로 모셔오지 못하고 절에다 모셨다.

시어머님께서 만 3년 병원생활을 하시다 병원에서 저승의 꽃밭으로 가셨다.

 

 

 

그리고, 나의 몸을 찾았었지만,

어떠한 이유로든 인연을 함께 하지 못했던 낙태아에 대한 이별은

주검으로조차 여기지 못했었다.

 

 

 

 

한국예절을 배우던 시절,

손수 수의 입히고 염하는 것을 배웠다.

죽음은 늘 곁에 슬프게 혹은, 아름답게 기억되고 잊혀 지고 있다.

 

 

 

 

누군들 두렵지 않겠는가.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자연스럽게 산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의례 죽음 한국사회》

도서관 신간코너에 꽂혀 있는데,

책이 꽂혀 있는 위치가 병원 시체 냉동창고 같이 보인다.

꼭 내가 읽고 빨리 제자리를 찾아 꽂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대오기 굿이다.

 

 

 

태어남은 차례가 있어도

죽음에는 차례가 없다고 하는데,

이글을 치면서 서가를 바라보니,

지 들도 천도재를 올려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

.

 

책들아, 우선 나부터 살자.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

김형래 지음 / 청림출판

 

 

 

치사(致仕)하다 : 70세가 되면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일을 치사라고 한다.

 

 

이젠 쉬어야겠다고 돌아설 때, 붙잡는 사람들을 물리치며 찬란하게 은퇴하고 싶다.

 

 

은퇴는 인생의 끝도 아니고 절망의 시작도 아니기에 잘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타이어를 갈아 끼우듯 오히려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쪽지 한 장으로 별안간 내 꼬리를 감추어서 미안하오. 코끼리는 죽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영물이라지 않소? 나도 코끼리처럼 이 회사를 떠난다오. 나는 지금 서서히 그 코끼리가 되어가고 있소. 나를 찾지 마시오. 당신도 조직에서 죽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준비하고 사시오.

 

 

누구에게나 시간이 평등하듯 누구에게나 은퇴도 평등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마흔 살의 남자들은 마실 것과 씹을 것을 눈앞에 두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요원하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해야 하는 나이가 바로 마흔 살이다.

 

 

요즘에는 15세 중학생을 ‘십오야’라고 부른다. 15세에는 대낮에도 하늘이 밤처럼 새까맣게 보이는, 즉 미래가 암울하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오륙도가 되도록 회사에 남아 있으면 도둑이다. 사오정이 되면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삼팔선은 직장에서 버티든지 나가서 살길을 찾든지 결정해야 한다. 이태백, 20대의 태반이 백수다.

 

 

직원의 실력과 성실성을 따지는 기업은, 30대 직원을 망원경으로 살피면서 40대는 돋보기를 들이대기 시작하고 50대는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마흔 살 성년파티를 즐길 것인가? 아니면 마흔 살 은퇴파티를 열 것인가? 마흔 살의 남자, 그들에게 은퇴 파티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다.

 

 

 

 

 

은퇴는 평등하게 다가온다.

브로커 증권맨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받는 급여의 3배 이상 수익을 만들어야 인센티브를 맛볼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회사를 떠나는 일일 것이다. 은퇴는 죽음처럼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뿐더러, 그 고통은 죽음에 근접하는 강도하고 같다고 한다.

 

 

자수성가하고 꿈을 이룬 이들도 한때는 이런 해고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그동안 못했던 운동도 하시고요. 야외로 나가서 조깅하시는 것도 괜찮겠네요.” 퇴직이 과연 부활이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일까? “저 해고당하는 것 맞죠?” “아닙니다. 귀하의 앞날을 논의하는 것뿐입니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은퇴’라는 두 글자일 것이다. 차라리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후보로 머물러 있었다면, 더욱 큰 실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수많은 관중 앞에서 마음껏 달려보지도 못하고 교체되는 선수의 심정이랄까? 채무, 실패, 질병, 이혼, 사망 등 온갖 어두운 단어를 나열해봐도 역시 은퇴보다 두려운 것은 찾을 수 없다. 은퇴는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월급날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은퇴한 지 5년이 지난 L씨는 더는 월급이 들어오지 않던 첫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래서 그날 무얼 하셨는지요?” “은퇴 전에 모아 둔 돈이 조금 있었어요. 그중에서 100만 원을 옛날 급여통장으로 이체시켰습니다. 그러곤 산에 올라갔다가 일몰까지 보고 밤늦게서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에 돌아가니 다들 식사도 하지 않고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밥상에는 아이들이 모은 돈으로 사온 통닭이 있었지요. 생일상같이 차려놓고서.”

“사모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다음부터는 없는 돈에 이체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날 아내가 갑자기 제 상사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막상 은퇴하고 나서 월급날이 가까워지니 괜해 초조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한 3년이 지나고 나서야 괜찮아지더군요.“

 

 

은퇴란 주 소득원이 없어지는 것이다. 돈은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힘의 균형이 깨진다. 가정에서 계급투쟁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되고 이는 권력의 지각변동으로 나타난다. 가볍게는 아내의 지위 격상 정도로 끝날 수 있지만 심하면 아내는 황혼이혼이라는 엄청난 카드를 꺼낸다고 한다. 이처럼 남자가 경제력을 잃는 순간, 가장은 고사하고 평범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마저도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사회적 지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고, 가정에서도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권력자로 스스로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출산을 하고 아이들이 성장해 학년이 높아지더라도 아내의 지위는 신혼 초와 같은 일반사원으로 변동이 없는 데 말이다. 그러다가 월급날 돈이 들어오지 않을 때부터 남편의 위치는 아내와 같아진다. 남편에게는 국치일이요, 아내에게는 광복절이다. 은퇴는 이래저래 예정된 공포다. 그렇다면 전업주부에게도 은퇴가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남편이 은퇴하면 아내 역시 자연적으로 비자발적 은퇴를 맞이하는 것이다.

 

 

회사 업무는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찬반양론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적인 비즈니스지만 직장인은 그곳에 투입되는 자원 중 하나일 뿐이다. 일반 남자가 입사하면 그때부터 직장이 친척과 같은 혈연 공동체는 물론이고 배우자까지 밀어내며 최우선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맞아, 회사가 내게 해준 것이라곤 겉만 번지르르한 직위와 알량한 월급밖에 없잖아?’

 

 

실업 이틀째, “여보! 괜찮아요?” 잠결에 헛소리를 하더라며 아내가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팠다. 많이 아팠다. 아무리 아파도 회사에 출근하면 낫는데, 아무리 아파도 회사에 출근했던 나였는데 이젠, 출근할 곳이 없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가족들은 나의 이직을 사형선고처럼 받아들인 듯했다. 가장이 은퇴하는 것은 곧 가족들의 은퇴이기도 하다.

 

 

 

 

 

은퇴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끊임없는 변화에도,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명제가 있다. 바로 오늘보다 내일은 더욱 고령화가 진전되리라는 것이다. 마치 1일 다음 날이 2일이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국민연금으로 고령화에 대비하고 있다. 이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만 믿고 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의료보험료를 꼬박꼬박 낸다고 해서 모든 질병에 대한 치료비가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서 다이아몬드가 떨어지거나 포항 앞바다에서 세계 최대의 유전이 발견된다면 모를까. 연금만 믿고 의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스스로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스스로 준비하고 결정해야 한다. 고령화는 100퍼센트 예상 가능한 미래이고 그 미래를 스스로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준비할까? 대답 역시 너무 쉽고 분명하다. 단 하루라도 빠를수록 좋다.

 

 

직장인은 언제부터 은퇴를 준비할 것인가?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정성 들여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은퇴준비가 단순히 돈을 모으고 불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취미를 개발하고 친구들을 사귀며, 봉사할 대상을 찾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 등 이 모두 은퇴 준비에 포함된다. 색소폰을 나이가 들어서 배우면 폐가 손상되어 관에 들어가기를 재촉하는 것이고, 골프를 배우면 멋진 폼은 고사하고 다치기 쉬운 위험이 도사린다. 나이 들어 등산은 관절에 무리를 자초하고 요트를 배우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하다. 젊었을 때부터 취미를 찾아 몸에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철든 생각, 새로운 마음가짐

‘내가 왕년에~’ 아닌 사람 나와 봐!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일기를 쓰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블로그라는 인터넷공간이 등장하면서 일상을 기록하고 관리라는 것이 편해졌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왕년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다만, 기록을 남기고 공개할 때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 바로 겸손이다.

 

 

은퇴를 하고 나면 과거의 성공이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기보다는 끊임없는 긴장과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성공의 가치는 사라지고 성공 경험 그 자체가 추억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그 기억을 괴롭다고 하면서도 왕년을 움켜쥐려고 여전히 버티고 애쓴다. 하지만, 무엇이든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면 지금의 힘든 상황을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은퇴를 하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은퇴 후의 생활태도는 더욱 완벽해야 한다는 식의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은퇴 전의 직위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무거웠던 마음의 짐도 한결 가벼워질 뿐 아니라 겸손해질 수 있다. 자신에게 거는 기대 수준을 낮추고 현실 속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낮춘다고 하여 자신의 위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노화란 사랑하고 일하며, 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 조지 베일런트

 

 

연장전은 더 좋아. 60세가 넘어서까지 일할 수 있는 그곳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제야 나만의 인생이 시작된다. 자기는 없고 주위만 있으며,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을 살고, 최선보다는 안전한 차선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100세까지 살게 될지도 모를 장생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저 세월 가는 대로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른다.’라는 생각에 갇혀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 고통이야말로 내가 변화해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나만의 인생을 시작할 때다.

 

 

 

 

나는 은퇴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의 유니온 수퀘어 한 모퉁이. 100만 원이 넘는 고급스러운 양복과 비싼 실크넥타이를 매고, 당근이나 감자 등을 깎을 때 사용하는 5달러짜리 필러를 파는 노점상의 이름은 조셉아데스다. 그는 뉴욕 최고금 주택 중 하나인 맨해튼 파크에비뉴에 침실 3개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거부다. 이미 열다섯 살 때부터 물건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에 재질을 보였다. “종일 앉아서 야채를 깎는 일이 힘들지 않습니까?” “행복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유튜브에는 활기차고 재미있게 장사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여러 편 올라와 있다. ‘

 

 

 

‘베이비붐세대와 그들의 은퇴’는 ‘타이어 갈아 끼우기’라고 은퇴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1850년대 산업사회에 들어와서야 은퇴라는 개념이 생겼다. 근속연수 30년을 채우더라도 은퇴 후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UN이 정한 노인의 나이는 65세다. 은퇴를 단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극렬하게 저향해야 할 대목으로 보는 것이 맞다.

 

 

식당에서 점심값을 전쟁하듯 서로 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베이비붐세대다. 각자 먹은 만큼 칼같이 계산해서 나눠내는 세대는 신세대.

 

 

연금,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남유럽 국가들은 은퇴자들을 위해 그들이 은퇴 전에 누렸던 생활수준의 95퍼센트에 가까운 보장을 하고 있다. 연금은 은퇴생활에 일부분 도움이 될 뿐, 애당초 연금을 은퇴 준비의 전부로 기대는 것은 옳지 않다. 연금은 그저 비상금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수입이 줄면 체면 유지비도 줄여라.

의식주나 승용차, 친구나 준거 집단, 진학 및 취업, 진급, 선물, 명절 맞이 인사 등 남의 이목을 끌만한 것들을 체면과 관련짓는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한 것이 금전적인 품위이다. 이는 돈을 써야 할 때 인색하지 않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금전적으로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은퇴 이후 현명한 투자법. 투자. 절약이 최고의 미덕이다. 번 돈의 10퍼센트는 반드시 저축하라. 대박이란 없다.

 

 

 

 

 

재취업, 가장 적극적인 재테크.

남이 만들어주는 고수익만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일을 하면 수익을 얻는 것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진다. 인생후반전에도 꾸준히 일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싶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1.시니어들은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넌 늙어 봤냐? 난 젊어봤다!" 오히려 그 주름을 훈장처럼 여겨라.

2.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라.

3.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려라. 1인 미디어 인터넷 공간인 블로그로 오랜 경륜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라, 그저 남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찾아와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스스로 알리는 것 역시 당신의 몫이다. 일본 단카이세대들은 자산운용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모은다. 단카이 부자들은 인터넷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노인생애 체험센터에서 어느 여중생이 남긴 체험 소감

“노인이 되면 이렇게 불편하고 힘들 줄 몰랐다. 난 늙으면 자살해야겠다. 이렇게 불편하게 살면 뭐하나? 이제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60세가 되면 죽는 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은퇴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될 수 있으면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50대는 50퍼센트만 건강하다.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는가이다. 즉 건강 수명이 핵심이다. 자, 이제 TV를 끄고 운동하러 밖으로 나가자. 건강에 좋은 우유를 먹는 사람들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귀찮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운동이 필요한 순간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움직이고 부지런히 생활하며 활기차게 걸어라. 은퇴 이후 시기에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비관하게 된다. 억지로라도 많이 웃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뇌를 바쁘게 활용하라.

 

 

 

건강 7계명

1. 남에게 심부름시키는 일을 중단하라.

2. 스스로 물을 마시고, TV를 켜고, 신문을 가져와라.

3. BMW(버스 메트로 워킹)족이 되어라.

4. 계단을 이용하라. 특히 올라가는 계단은 사양하지 마라.

5. 고기를 잘 굽는 방법보다 푸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배워라.

6.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는 습관을 들여라.

7. TV 시청을 할 때도 최대한 몸을 움직여라.

 

 

 

 

결국, 사람이 남는다.

처음 사람이 마지막 사람. 나이 든 부부가 나누는 행복을 ‘찻잔 밑에 고인 진한 설탕물’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보내려면 배우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배우자의 정서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고단한 삶을 핑계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이 처음 신혼생활을 시작하면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티격태격하며 힘든 것처럼, 가정 또는 직장이라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가 은퇴로 말미암아 다시 마주하게 된 노부부 역시 서로 어색하고 힘들 수 있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결국, 세상을 사는 동안 나의 마지막 사람이다.

 

 

 

우리 친구 할래요?

화제와 성격이 다른 모임을 5개 이상 갖는 노인들이 고독과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 남자들은 은퇴를 계기로 생활의 중심이 지역사회로 옮겨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 소원해지게 된다. 따라서 남자들은 은퇴하게 되면 뒤늦게 새로운 친구를 만들거나 아예 어린 시절 친구들을 찾는 등 대인관계의 방향전환이 이뤄진다. 여자들은 자녀문제를 의논하는 학부모 모임이나 이웃 반상회 학교 동창과 같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편이다.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트윗하자. 현대는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 그보다는 네트워크가 강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시작한다.

 

 

남자들이 온라인으로 몰리는 이유

남자들의 오프라인이 무너지고 있다, 나이 들어 뜻이 같거나 취미가 같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전히 할 일이 있다. 아예 일에서 떠날 순 없다. 요즘의 시니어들은 역사상 가장 건강하고 가장 장수하고 있으며, 최고의 교육수준을 갖춘 집단이다.

 

 

 

 

창업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전직공무원, 교사, 경찰, 군인 등이 사업해서 성공한다는 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다. 그들은 세상을 살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가게를 열면 사람이 올 줄 알고, 물건을 달라면 줄뿐 더 팔려고도 하지 않는다. 갑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은퇴 이후 창업을 하게 되면 대개 실패하고 만다, 창업은 갑에서 내려와 을이 되는 것이다.

 

 

 

육아도 숭고한 일자리 창출이다.

어머니는 친손자 때문에 사회생활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하시고, 장모님은 손자 돌보기에는 너무 연로하셨다. 그래서 육아문제는 결국 남의 손에 맡기에 되었다. 가진 무엇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전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현재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그 비전을 가질 수 있다. 비전이란 내가 지금 손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놓으면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다. 연륜을 가진 시니어의 경험을 살려 육아와 관련된 교육을 받고 사회문제로 대두된 육아문제에 공헌할 기회를 찾는 것도 좋겠다.

 

 

 

귀농프로그램 VS 귀촌 프로그램.

한때 귀농이 각박한 도시탈출의 대안으로 떠오른 적이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때는 ‘생각하고 느리게 걷기’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귀농이 도시 은퇴의 실패를 보상하기 위한 대체수단은 아니다. 자신이 이제 더는 도시인이 아니라 농민이라는 단호한 자기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도시생활에서의 4척 잘난 척, 가진 척, 높은 척, 많은 척하는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 농촌에서의 사람이 도시생활보다 질 낮은 생활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귀농은 도심생활을 잠시 접고 휴양 삼아 떠나는 관광프로그램이 아니다.

 

 

 

귀농하기 전 6가지

1. 가족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부부간의 의견 조율이 가장 중하다.

2. 시기를 잘 조율해야 한다. 도시생활이 채 정리되지 않아 양쪽을 오가다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3. 귀농 장소를 정해야 한다.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고 현지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위치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4. 귀농 항목을 정해야 한다. 어떤 농사를 짓고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 미리 고민해야 한다. 농사 경험도 쌓아야 하고, 별도의 사업 항목에 필요한 자격이나 경력을 갖추어야 한다.

5. 귀농 경영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금계획과 운영, 홍보와 마케팅, 고객관리 등

6. 확고한 귀농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귀촌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뜻.

 

 

 

 

나는 평생 현역이다.

일할 기회를 잃은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수명도 단축될 수 있다. 평생 출근할 데가 있어야 80~9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가 바로 늙는 순간이고 열린 기회를 닫는 순간이다. 건강하고 밝게 인생 후반전을 살려고 일거리를 찾고 만들어보자.

 

 

 

 

행복이란 무엇인가.

돈은 에너지고 힘이다. 인생후반전을 잘 보내야 결국 성공적인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생 후반전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전반적인 인생이 평가된다. 내면의 성공, 나 자신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는 삶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곧 불행의 씨앗이 된다. 은퇴 이후에는 더는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나를 만족하게 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는지 내면의 목소리를 듣길 바란다.

 

 

 

 

미리 봉사준비 하자.

어느 남자 선생님이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가서는 교탁에 서서 인사를 받고 그 앞에 있는 학생에게 ‘얘야 물 좀 떠오너라’라고 했다. 그 후에 그 남자 선생님은 산으로 출근하신다는, 그래서 은퇴 후 취미가 등산으로 굳어진다는 얘기.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봉사를 할 수 없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휴대전화 작동법을 알아야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내비게이션도 사용할 줄 알아야 처음 가는 길도 갈 수가 있으며,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알아야 급변하는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고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접하면서 세계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아주 특별한 여행.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이전보다 혹은 남들보다 멋지게 즐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이 극대화되는 것은 떠날 준비를 할 때이고, 그다음이 돌아와서 정리하는 시간이며, 맨 마지막이 여행 다니는 동안이다.

 

 

 

돈 없이 하는 기부.

기부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삶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한다. 수익을 얻을 때보다 적은 돈이라도 얼마간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 더 엄청난 기쁨을 느꼈다. 이런 이유에서 기부하면 할수록 중독이 된다. 거의 모든 사람 안에는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내적 욕망이 있다. 기부가 언제나 금전, 즉 돈일 필요는 없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시간 내어 대화를 나눠주거나 아는 사람을 연결해 주는 것, 또 소일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작은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도 돈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시티 라이프 VS 멀티해비테이션.

어중간한 상태에서 도심생활과 시골생활을 다 하겠다는 것이 이른바 이중거주 즉 멀티해비테이션이다. 본격적인 멀티해비테이션은 은퇴 후 두 집 생활을 하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편리한 도심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근교의 전원주택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고 텃밭도 가꾸는 생활을 동시에 누리는 것이다. 50세가 되면 50퍼센트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하니 나이가 들면 의료 문제를 우선으로 고려해서 거주 지역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역사가 완성된다. 미국인들이 쓰고 싶어 하는 글은 자서전이다. 글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나의 인생에서 겪은 수많은 세상 경험과 노하우를 자식과 후세에게 길이길이 남겨주겠다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그저 나의 추억과 경험을 기록하고 잊히기 쉬운 일상을 남긴다는 의미에서 자서전을 써보자. 자서전이야말로 돈보다 더 귀한 유산이 될 수 있다.

 

 

 

다시 청춘을 말하다.

인생전반전을 보내면서 남자는 가정에서는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되었고 직장에서는 생산성으로 평가되는 기계가 되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삶의 의미와 인생의 참다운 목적을 다시 찾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생각하고 달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정해놓은 목포에 나를 맞추어 속도제한 없이 과속으로 쉴 새 없이 달렸지만, 이제는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내가 정한 속도로 달려가야 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지 않던가? 젊음은 사라지고 이제 은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제3막의 인생이 시작된다. 인생 제3막은 느리게 걷는 단계이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것을 깨닫기보다 아는 것을 곱씹는 단계이다. 가장 의미 있는 시기이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이지,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인생후반전의 출발점에서

1.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을 목표로 두고, 내 인생의 목적을 정하자.

2. 자발적인 관심과 의지로 찾아서 하는 취미를 갖자.

3. 스스로 하고 싶어 실천하는 봉사로 삶을 살찌우자.

4. 끊임없이 정진하는 배움을 통해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자.

5. 가족, 친지, 친구와 깊은 교류를 통해 인생을 풍요롭게 하자.

6. 심리적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 모두를 지키도록 노력하자.

신체적으로 급격히 쇠퇴하는 기간이지만 이 시간을 열정과 패기 그리고 경험과 경륜을 쌓고 삶의 만족감을 이루고자 하는 숭고한 뜻을 실천해가는 소중한 시간.

 

은퇴 이후 버킷리스트. 자녀만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다 똑같을 것이다. 결혼 후 짧은 신혼의 단꿈을 뒤로하고 자녀를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삶의 무게중심이 아이에게 쏠린다. 교육, 음식 옷 등 모든 영역에서 내 자녀를 위한 것이라면 뜻도 미래도 알 수 없는 ‘묻지마 투자’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녀를 위한 삶이었고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왔기에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을 줬을 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준비도 안 된 여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여전히 젊다.

일본에서는 기러기 아빠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는 다른 것 같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손자나 손녀와 함께 유학길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잉여인력은 손자나 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함께 떠나기 때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현지에서 아이들의 등교를 도와주고는 곧장 그들만의 학습을 취한 학교로 달려간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현지 언어를 비롯한 예술과 체육 등이다.

 

 

 

 

안락한 은퇴생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

바로 가족, 그중에서도 아내다. 아내를 싸워서 이겨야 할 경쟁대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이제껏 아내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그중에 남편인 당신도 끼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한없이 감성적이던 아내의 목소리가 베란다 창문을 흔드는 목청의 소유자로 바뀌었다고 조롱하거나 변질한 음식을 보듯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제는 아내에게 낭만을 선물하자. 여자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영화관도 같이 가고 음악회도 가고 손잡고 공원을 걸어보는 것도 아내를 행복감에 젖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부드러운 아내의 모습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된다. 아내는 나의 평생 반려자인 동시에 친구이다. 은퇴생활 최고의 필수품은 아내이며, 따라서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안락한 은퇴생활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남편이 부드러워지면 가정엔 평화의 꽃이 핀다.

 

 

 

70세가 되면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일을 치사(致仕)라고 한다. 나 역시 70세까지는 일하고 싶다. 그래서 난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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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꿈꾸는 나이,

어서 빨리 먹고싶은 나이 일흔.

일흔이 되어

나도 치사(致仕)하고 싶다.

 

 

반쪽짜리 툇마루에 바람이 이울면

남은 건 손바닥 만한 햇볕일 것이다.

그 빛마저도 삽시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녀가 신고 다니던

댓돌 위의 하얀 고무신 위로

가을 햇볕 담뿍 스며들었으면 좋을 것이다.

 

 

 

 

 

"그래~~?, 그랬대..! "

".......  ?? "

.

.

.

.

 

 

“그 여자, 뭐 하던 여자야?”

“아마, 글 쓰는 여자였다나 봐!”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벼리야!

책을 읽으라고 하면 여전히 공부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걸까? 책가도(冊架圖) 책을 얹어 둔 시렁. 책이야말로 선비의 거처를 꾸며 주는 최고의 장식품.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눈빛이 달리지고, 마음속에 무언가 뿌듯한 것이 들어앉게 된다. 참 멋진 변화가 아니겠니?

 

 

 

책 이야기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적어도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 중국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두보의 시에 나오는데, 원래는 도가(道家) 사상가 장자(莊子)가 자기 친구 혜시(惠施)가 책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한 말.

 

 

‘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가 유교 경전인 주역을 하도 열심히 읽는 바람에 가죽으로 엮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말.

 

 

 

‘훈고학(訓詁學)’, 훈학은 글자의 원래 의미를 따지는 학문이고, 고학은 죽간의 차례를 따지고 당시의 관습에 비춰 해석하는 학문을 말한다.

 

 

‘수진본(袖珍本)’, 옛날 선비들이 도포 자락 소매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란 뜻으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볼 수 있는 문고본만 한 책.

 

 

다산 정약용은 책의 여백마다 자신의 생각을 적는 메모광. 다산이 읽은 책을 보면 온통 메모로 가득하다. 그 책을 읽으면 마치 그분의 독서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책의 여백에 메모를 한 책을 다시 읽으면,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기억이 나고는 하지.

 

 

 

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

꼼꼼히 읽을까, 많이 읽을까. 다독과 정독. 많이 읽을수록 좋은 책들은 많이 읽고, 꼼꼼히 읽어야 할 책은 꼼꼼히 읽으면 된다.

 

 

이덕무 사소절 - 글은 온화한 소리로 읽되 힘없이 읽어서는 안 된다. 맑은소리로 읽어야지 서둘러 읽어서도 안 된다.

 

 

옛 사람들이 중요한 경전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씩 익은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읽고 또 읽어 다 외우고 자서도 다시 읽고 또 읽었지, 사실 늘 곁에 두고 소리 내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일 것 같구나.

 

 

송나라 때 예사(倪思) -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산새 소리, 풀벌레 소리, 학 울음소리, 거문고 소리, 바둑두는 소리, 비가 섬돌 위로 떨어지는 소리, 창문에 눈발이 흩날리는 소리, 차 달이는 소리 등은 모두 소리 중에서도 지극히 맑다. 하지만,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가 가장 좋다. 다른 사람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까지 기쁘지는 않은데, 자식의 책 읽는 소리만큼은 기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독서백편의자현 讀書百遍意自見’ 책을 1백 번 읽으면 의미를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뜻.

 

 

전기수(傳奇叟), 직업적으로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

 

 

옛 사람들은 소리를 내서 읽어야만 책에 기록된 내용이 죽은 기호에서 살아 있는 말로 깨어난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을 소리 내서 읽으면 읽기뿐 아니라 쓰기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리듬이 자연스러워 읽기가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말이 입에 잘 붙지 않고 뻑뻑하게 느껴지면 좋은 글이 아니다.

 

 

‘표맥 漂麥’ 후한 때 고봉이란 사람이 하루는 그의 아내가 시장에 가면서 하늘이 찌푸린 것을 보고, 비가 오면 마당에 널어 둔 겉보리를 잊지 말고 거둬 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내가 돌아와 보니 소낙비에 보리가 다 떠내려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즉, ‘빗물에 떠내려간 보리’라 하여 글을 읽는데 몰두하여 다른 일을 모두 잊어버린다는 고사. 속된 말로 공부는 머리보다 엉덩이로 하는 거다.

 

 

‘포쇄 暴曬’ 책에 바람과 햇볕을 쐬어 주는 것. 햇볕과 바람을 쐬어 책을 말린다. 책을 펼치면 눅눅해서 손에 찐득찐득 달라붙던 책장이 파닥파닥 되살아나서 챙챙 소리가 난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기분이 뽀송뽀송 개운했겠니.

 

 

기록하는 습관 - 이덕무는 메모광. 책을 읽다가 재미난 내용이 있으면 그 즉시 공책에 베껴 썼다.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생각이 문득 떠올라도 글로 적어 두곤 했다. 나중에 그런 메모만 다 모아서 책으로 《이목구심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글로 적어 놓은 것이란 뜻.

 

 

<한겨울의 공부방> - 1765년 11월에 공부방이 너무 추워 뜰 아래쪽의 작은 초가집으로 옮겨서 지냈다. 방이 몹시 지저분해서 벽에 얼음이 얼면 그 위로 내 얼굴이 비치곤 했다. 방구들에서는 연기가 새서 눈이 늘 시렸다. 방바닥도 울퉁불퉁해서 그릇을 놓으면 물이 엎질러질 정도였다. 한 방울만 옷에 떨어져도 눌러온 손님들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사과하곤 했다. 그래도 게을러서 수리하지는 못했다. 어린 동생과 이 방에서 겨울 석 달 동안 함께 지냈는데, 그 추운 방 안에서 책 읽는 소리가 끊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겨울 동안 큰 눈이 세 번쯤 내렸다. 큰 눈이 올 때마다 옆집에 사는 키 작은할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서 새벽에 문을 두드리며, 혼잣소리를 하면서 혀를 차곤 했다. “거참! 우리 몸 약한 형제들이 이 추위에 얼지는 않았는지 몰라.” 그러고는 빗자루로 쓸어서 먼저 길을 내고는 문밖에 놓아둔 눈에 묻힌 신발을 찾아 탁탁 털곤 했다. 금세 마당을 말끔하게 쓸어 둥근 눈 무더기 세 개를 만들어 놓고 갔다. 나는 그때 이불 속에서 벌써 옛사람의 문장 서너 편을 외우곤 했다.

 

 

어떤 환경에서든 책을 부지런히 읽는 것. 마치 매일 물 마시고 숨 쉬듯이 말이다. 꼭 어디에 써먹거나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 때로는 이덕무와 박제가처럼 온전히 독서의 힘만으로 자기의 조건이나 환경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통째로 외워라.

의미는 항상 소리 뒤를 따라오는 법. 특히 어릴 때 외운 것은 평생 잊지 않고 기억에 남는다.

 

구양수의 <독서법>

‘글자 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효경》1,903자, 《논어》11,750자, 《맹자》30,685자, 《주역》24,107자,《서전》25,700자,《시경》39,234자,《예기》99,010자,《주례》45,806자, 《춘추좌전》196,845자였다. 날마다 200자씩 외우면 4년 반이면 다 마칠 수 있다. 조금 머리가 나빠서 150자씩 외운다고 해도 9년이면 전부 외울 수 있다.’

 

공부는 어쩌면 속된 말로 단순하고 무식하게.

 

 

 

슬기구멍, 문심혜두

공부머리가 터진다는 말은 공부에 요령이 생긴다는 뜻. 공부머리란 말은 ‘문심혜두 文心慧竇’, 문심은 글을 읽는 마음. 혜두는 슬기 구멍, 자꾸 열심히 익히고,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슬기 구멍이 뻥 뚫리게 되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슬기 구멍을 뚫으려고 하는 것이다. 슬기 구멍이 뻥 뚫리면 그날부터 사람이 달라진다. 한순간에 몇 단계가 뛰어오르게 되지.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라.

<산길> -김시진(조선후기)

한가한 꽃 혼자 지고 예쁜 새들 지저귀니 / 소롯길 맑은 그늘 푸른 시내 돌아간다 / 앉아 졸다 가다 읊다 때로 시구 얻어도 ‘산중이라 붓이 없어 적을 길이 없구나!

 

<몸시 50- 행복론> 정진규

‘볼펜 없이 하루를 지내 본 적이 있는가? 견뎌 본 적이 있는가? 처음 내가 볼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 건 서울에서 온양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였다. 무슨 생각이 떠올라 그걸 적어두려고 찾았으나 없었다. 난감했다. 옆의 사람에게 빌릴 수도 있었겠지만, 문득 나는 그 난감을 질기기로 했다. 그 생각이 지워질까 끝내 기억될까를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생각은 자꾸 낡아 갔겠지만 나는 재빨리 몸을 세웠다. 오, 재미있는 줄다리기! 지워진 쪽으로, 당기고 놓아주기! 내기 힘이었다. 그 맛이 괜찮았다. 탱탱했다. 나의 하루가 탱탱했다.’

 

 

생각은 떠올랐을 때 재빨리 붙들어 두어야지, 놓치면 마치 주먹에 쥔 모래처럼 꽉 쥐려 들수록 스르르 빠져나가고 만다. (나는 운전을 하며 어떤 생각이 퍼뜩 난다. 그 단어라도 붙잡을까 싶어 조급하다. 신호대가 나오기를…, 그러나 꼭 머피의 법칙에 걸린다. 쌩쌩 달려보지만, 이럴 때는 길이 뻥 뚫려 더 달리게 된다. 볼펜도 메모지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마구 오금이 저리면서 오줌이 나오려고 한다.)

 

 

청나라 때 학자 이광지 ‘글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보다 손으로 한 번 써 보는 것이 더 낫다. 손으로 쓰면 모음이 따라오게 된다. 20번을 읽어서 외운다고 해도 한 차례 힘들게 써 보는 것이 더 낫다. -중략

 

 

책의 여백에 메모하거나, 별도의 공책에 적어 두는 것을 질서(疾書), 생각이 퍼뜩 떠오르면 달아나기 전에 빨리 메모하는 독서법

성호 이익도 경전 공부를 할 때 생각이 떠오르면 작은 종이나 읽던 책의 여백에 그때그때 즉각 메모해 두곤 했다. 《사서삼경질서》《근사록질서》《심경질서》《가례질서》이익이 메모를 바탕으로 해서 완성된 책이다.

 

 

다산 정약용도 《퇴계집》한 권을 겨우 구해 볼 수 있었지. 《도산사숙록》私淑이란 말은 직접 만날 수 없는 옛사람을 책을 통해 만나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 퇴계 선생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떴기에 만날 수는 없지만, 다산을 책을 통해 그분의 높고 깊은 학문 정신을 마음에 깊이 새겼던 거야.

 

 

입으로 읽고 눈으로 읽은 다음에, 손으로 읽는 독서가 ‘초서(鈔書)’다. 베낀다는 뜻이다. 책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을 베껴가며 읽는 것이다.

 

 

<통감절요에 대한 평> 다산 정약용

‘사람의 성품은 누구나 오래된 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한다. 산사처럼 신 열매를 먹다가 귤을 먹으면 군침이 절로 돌고, 검푸른 빛만 보다가 붉은 색으로 바꾸면 눈이 환해진다. 구성진 노래가 듣기 좋지만, 자꾸 듣다 보면 하품이 나고 기지개를 켜게 된다. 그러므로 《시경》《서경》《주역》《예기》《좌전》《국어》《한서》《사기》《논어》《맹자》의 바른 내용과 《장자》와 《이소》의 기이한 글을 달마다 바꿔 읽고 철마다 섞어 읽어, 봄에 마치면 가을에 다시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산은 첩첩하고 물은 잇달으며 버들 그늘은 어둡고 꽃은 환한 것과 같다. 근원을 찾는 자가 힘든 줄을 모르고, 높은 데로 오르는 자가 피곤한 줄을 모른다. 그러니 어찌 글에 푹 빠져 즐기지 않겠는가?’

 

 

어떤 책을 고전이라고 하지? 유명하기는 해도 너무 어려워서 막상 읽으려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는 책? 누구나 내용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제대로 읽는 사람은 만나 보기 어려운 책? 고전이란 누가 읽어도 좋고, 언제 읽어도 좋으며, 어디서 읽어도 좋은 책이 고전이지. 고전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는다.

 

 

두 개의 저울 - 옛사람들은 글공부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책 읽는 순서를 정해주곤 했다 ‘선경후사 先經後史’ 고전을 읽을 때도 마음을 바로잡게 해주는 경전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역사책을 읽게 한 것이지. 추사 김정희는 ‘경경위사 經經緯史’ 경은 비단을 짤 때 세로로 걸쳐 있는 씨줄을 말하고, 위는 가로로 엇짜는 날줄을 말한다. 비단은 먼저 씨줄을 걸어 놓고 나서 실을 감은 북을 좌우로 던져 가며 날줄을 짜나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전 공부의 든든한 바탕 위에 역사 공부가 더해져야 균형잡힌 사고가 가능하다.

 

 

성호 이익 《성호사설》

‘밥을 먹으면 기운이 나게 하고 영양을 공급해서 신체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기름지게 한다. 밥알의 형상 속에는 기운이나 영양의 형상이 없다. 책을 읽는 보람이 일상생활이나 글쓰기에서 드러나는 것도 이와 다를 게 없다. 밥을 먹으면 이것이 변화해서 똥으로 나온다. 하지만, 체해서 소화되지 않고 설사를 하게 되면 먹은 것이 그대로 나온다.

 

 

다산이 아들에게 주는 편지 - ‘네가 닭은 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닭을 치는 데도 우아한 것과 속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차이가 있다. 중략~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보아라. 내용에 따라 차례를 매겨 《鷄經》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당나라 때 육우는 차에 대한 자료를 모아 《茶經》을 지었고, 유득공의 담배에 관한 내용을 모아 《煙經》을 지었지.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언제나 이것은 좋은 예로 삼도록 해라.

 

 

 

작은 주제 사전 만들기

송나라 때 여본중이 쓴 <여씨동몽훈>

‘오늘 한 가지 일을 기록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기록하는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 자연스레 세상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 수가 있다. 오늘 한가지 이치를 알아내고 내일 또 한 가지 이치를 알아내는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 자연스레 세상의 도리가 내 마음속에 깊이 들어온다. 오늘 한 가지 어려운 일을 실천에 옮기고, 내일 또 한 가지 어려운 일을 실천에 옮기면 오랜 뒤에는 저절로 굳세고 단단해질 것이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찾는 자료는 주제별로 잘 갈무리해서 체계적으로 모아 두어야 한다. 이런 공부를 옛 사람은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라고 했다. 격물이란 무질서한 사물을 가지런하게 정리한다는 뜻이다. 치지는 격물을 통해서 무언가에 대해 앎의 상태로 나아 간다는 의미다. 격물치지는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정보를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모아 어지러운 상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책 아닌 것이 없다

책과 하나가 되어라. 책에 푹 젖어라. 명나라 장조는 “모든 일에 심각한 것은 좋지 않지만, 독서만은 심각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일에 욕심 사나운 것은 마땅치 않아도 책 사는 일만큼은 욕심 사납지 않을 수 없다.”

 

 

남송 때 학자 우무는 “배고플 때는 책을 읽으며 고기라고 생각했고, 추울 때 책을 읽으며 가죽옷이라고 여겼다. 외로워도 책을 읽으며 마음에 맞는 벗이려니 하였고, 번민에 차 있을 때에도 책을 읽으며 온갖 아름다운 음악소리라고 생각했다.”

 

 

조선후기 문신 이덕수<유척기에게 주는 편지>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게 되면 책과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된다. 푹 젖지 않으면 읽으면 읽는 대로 다 잊어버려, 읽는 것과 읽지 않은 것에 별 차이가 없다.’ 중략-

 

 

푹 젖는다는 것은 물가에서 발을 담글까 말까 하고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풍덩 뛰어드는 것을 말한다.

 

 

옛사람과의 만남 맹자는 ‘이의역지 以意逆志’ 읽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글 쓴 사람의 뜻과 일치시켜 나간다는 의미.

 

 

연암 박지원의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

‘그대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를 읽었다는데, 내가 보니 글만 읽었지 거기에 담긴 사마천의 마음은 읽지 못한 것 같소. 중략 - 아이가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서 살금살금 다가갑니다. 잡았다 싶었는데 나비는 그만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본 사람은 없고, 창피해서 씩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의 심정입니다.’

책을 책으로만 읽으면 소용이 없고, 사물을 책으로 읽으면 그 보람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이다.

 

 

 

글을 마치며

벼리야! 조선후기 문장가 김창흡은

‘독서에는 죽은 독서와 산 독서가 있다. 책을 덮고 책에 담긴 내용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르면 산 독서이고, 책을 펴 불 때는 알 것 같다가 책을 덮고 아득해지면 이것은 죽은 독서다.

 

 

예전에는 책읽기가 공부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책읽기는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런 그들의 일상이었던 셈이지. 꼭 읽어야 할 고전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는 점. 거기 담긴 내용이 완전히 이해되어 내 삶 속에 녹아들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책읽기는 만물박사, 척척박사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야. 1천 개의 슬슬주를 색깔별로 상자에 담아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어려운 것을 쉽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일목요연한 상태 옮겨 가는 슬기를 지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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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선생의 책을 읽으면,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는 왜 그런 생각 근체에도 못 갔을까

자신의 문외한으로 먹은 나이를 쥐어박으며

한동안 배가 아픈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깨끗하게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책읽는 법도 글쓰는 법도 스승으로 삼는다.

나의 몰 모델이다.

이번에는 책머리에 “벼리야!” 라며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꼭 내가 꼭 정민선생의 자식이라도 된 듯, 부럽다.

(정민선생은 물리적인 나이로 따지면, 나보다 몇살 아래다)

 

 

 

 

 

 

 

 

도서관의 역사

지혜의 보물창고, 낙타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한없이 펼쳐지는 도서관 이야기

모린사와 지음 / 빌 슬래빈 그림/ 서은미 옮김

아카넷주니어

 

 

도서관은 영어로 ‘library'라고 하지요 이는 ’책‘을 의미하는 라틴어 ’liber'에서 유래했습니다.

 

*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의 도서관 중 가장 잘 알려진 곳, 고대 이집트에서는 문자가 생기면서부터 기록들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아테네를 비롯한 여러 대도시에서 두루마리를 빌려왔다. 베껴 쓴 필사본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하도록 했다.

 

* 함무라비 왕이 세운 바빌로니아 보르시파 도서관

함무라비 법전은 인류 최초의 법전이다. 커다란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법과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를 적어 놓았다. 현재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종이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700년대에 중국 상인들에 의해 중국 밖으로 전파되었습니다.

 

*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도서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켜 ‘최초로 책들을 한곳에 모은 사람이며, 최초로 이집트의 왕들에게 도서관 정리 방법을 가르친 사람’

 

 

유레카! 유레카!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고 불리는 부력의 원리를 밝혀낸 인물로 잘 알려져있다. 갑작스러워 깨달음에 흥분한 아리키메데스는 그 자리에서 바로 목욕탕을 뛰쳐나가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시러큐스 거리를 벌거벗은 채로 뛰어다니며 “유레카”를 외쳤다고 합니다. 유레카는 ‘내가 알아냈다.’라는 뜻입니다.

 

 

* 고대 중국의 도서관과 진지황제의 분서갱유

진시황제는 서른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나라(기원전 221~기원전 206)을 세운 왕이다. 진시황제는 사사건건 자신의 정치를 비판하는 선비들을 없애야 자신이 정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분서갱유’를 함으로써 과거를 모두 지워버리고 자신이 왕권을 잡은 첫해를 기점으로 새롭게 역사를 기록하려고 했다.

 

 

* 고대 로마의 개인도서관

고대 로마에 있던 초기 도서관들은 대부분 개인이 모은 책을 보관하던 공간이었다. 당시에 개인 도서관을 가지고 있으면 높은 사회적 신분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 고대 로마의 공공도서관

피소의 도서관 역시 피소 본인과 친구들이 찾아와 즐겁게 책을 읽었던 개인 도서관이었다. 바로 많은 사람을 위한 도서관, 즉 공공 도서관을 설립. 로마 최초의 공공도서관에는 문학 작품이 많았다. 당시 로마 시민에게 독서는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취미 생활로 로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시내의 공중목욕탕 안에 들어섰다. 당시의 목욕탕은 오늘날의 문화센터와 같은 곳. 알렉산드리아의 공중목욕탕에는 도서관과 열람실이 갖추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운동실과 오락실, 그리고 산책로와 소규모 콘서트나 강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스트레스와 피곤함에 시달리던 로마 시민은 이곳에서 길고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 고대의 도서관이 폐쇄된 이유

로마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로마는 더는 도서관의 운영을 지원해 줄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의 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 암흑시대 책의 수호자들, 수도원과 필경사

암흑시대 수도사들이 제작한 필사본 책의 값어치는 매우 컸다. 필경사들은 하루에 여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을 춥고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오직 베껴 쓰는 일만 해야 했다. 베껴 써야 하는 귀중한 책이 빛을 너무 많이 받게 되면 혹시라도 원고가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 필경실에서는 주로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할 책을 만들었다. 복사본은 한 명의 수도사가 큰 소리로 책의 내용을 읽고 동시에 여러 명의 수도사가 받아쓰도록 했다. 일종의 ‘도서관 상호 대출’의 시작이다. 단순한 기록을 맡은 수도사들은 ‘리브라리(librari)’라고 했다. 원고의 내용을 베껴 쓰는 작업을 맡은 수도사들은 ‘안티쿠어리(antiquarii)' 라고 불렀고, ‘일루미나토’는 책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문양을 그리고 그것에 화려한 빛깔로 색칠하는 일을 하든 수도사들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 이슬람 세계 최고의 도서관, ‘지혜의 집’

뭐니뭐니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도서관은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던 ‘바이트 알 히크마’로, 아랍어로 ‘지혜의 집’이라는 뜻이 있는 도서관이다.

 

 

이동서관의 탄생

도서관이라고 해서 반드시 건물 안이나 정해진 장소에 책을 보관하는 것은 아니다. 10세기 페르시아에 살았던 한 구위 관리는 자신이 수집한 책에 대한 집착이 무척 심해서,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자신의 책들을 전부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 페르시아의 수상은 무려 5백 마리가 넘는 낙타를 이용해서 10만 권에 달하는 자신의 책을 실어 나르게 했다. 역사상 최초의 이동도서관이 탄생한 것이다. 여행 중에도 낙타 등에 실려 있는 책을 알파벳 순서에 따라 쉽게 찾아보려고 항상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도록 낙타들을 훈련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르네상스 초기의 도서관

르네상스 시대 초기의 사서들은 도서관에 소장된 책이 오래되어 썩거나 화재로 타거나, 아니면 도둑맞지 않도록 도서관 책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분명한 의무가 있었다. 당시 사서라는 직업은 ‘습기와 벌레, 그리고 경박하고 무식하고 지저분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도록 책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었다. 당시 성당벽보에 “도서관 이용 중에 훔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도서관 책을 가져가려고 하는 사람은, 그 이름을 살아 있는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 책을 해방한 휴머니스트

이탈리아의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최초의 휴머니즘 운동을 이끈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방치되고 더러워진 유럽의 수도원 도서관에 숨겨져 있는 오래된 책들을 구해 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수도원의 책들을 사로잡힌 포로들로 여기기도 했다. 휴머니스트들은 이 책들을 사신들의 손으로 해방하겠다는 생각으로 때론 그들은 훔치는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 개인 도서관이 부활한 르네상스 시대

개인 도서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1400년대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부유한 은행가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의 도서관이다.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과 학문을 후원한 유명한 가문이다.

 

 

*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

삼국시대의 도서관 - 고구려에는 소수림 왕 때 귀족들만 다닐 수 있는 국립학교 ‘태학’이 설립되었고, 이후 지방에서도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는 ‘경당’이 설립되었다. 경당은 각기 네거리에 큰 집을 지어 평민들을 교육하는 기관이었지만 도서관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고려 시대의 도서관 - 고려시대 (918~1392)에 과거제도는 학문과 무예를 하는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기 위한 제도다.

 

고려 시대의 도서관

고려시대(918~1392)에는 과거제도가 있어 학문을 위한 많은 책이 필요했다. 성종은 국가가 필요한 서적을 간행하던 비서성이라는 관청을 두고 목판 인쇄술로 서적을 생산하고 궁궐 안에 책을 보관하는 비서각이라는 도서관을 두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해인사나 흥왕사 등이 불경을 찍어내고 도서관을 두어 불경을 보관한 사찰이다.

 

조선시대의 도서관 - 세계기록유산과 사고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왕조 의궤 등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 신대륙, 신세계 미국의 도서관역사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작성하고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도서관을 ‘미국의 13개 식민지 주에 사는 장사꾼과 농부들을 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라고 표현.

프랭클린은 그동안 자신이 수집한 책들과 다른 사람들이 가진 책들을 한자리에 모아 토론클럽 ‘전토’의 회원들에게 각자 가진 책들을 모두 가지고 와서 교통이 편리한 중간 지점에 일종의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책의 대중화로 다양해진 도서관의 역할

도서관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이 시민으로 하여금 고상하고 차분한 습관을 갖는데 도움을 주고 지식을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도서관에서의 남녀평등

도서관에서의 최초의 여성직원은 1856년이다. 당시 사람들은 도서관에는 낯부끄럽고 선정적인 내용의 순수문학 작품도 있기 때문에 여자들이 도서관에 있으면 점잖은 신사들이 책을 읽다가 당황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앤드류 카네기의 성공 비결인 도서관에서 책읽기

10대 소년,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자주 갔던 도서관에 “그곳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나는 이 세상의 지적인 풍요로움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은 시민의 후원으로 유지되는 시설이다라며 봉사의 사다리를 놓아 기부했다.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시민의 손이 닿는 범위에 사다리를 놓아두는 것이다. 시민 스스로 그 사다리를 통해 원하는 만큼 높이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끔을 가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며, 그들에게 책 속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보물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터닝 더 페이지’ 터닝 더 페이지는 페이지 디지털과 애니메이션 기술, 그리고 터치스크린 기술 등을 이용해서 대영 도서관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에 있는 책과 자료의 페이지를 넘겨 가며 볼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변화하는 도서관과 이용객 수의 증가

극빈 생활을 하는 도시인에게 도서관 활동은 “도서관은 도시 희망의 상징, 모든 시민이 도서관에 초대를 받았고, 그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 도시의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사서가 되고 싶어요!

도서관 사서들은 ‘정보 전문가’라고도 불린다. 사람들이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고의 전문가들이라는 뜻이다.

도서관 사사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서가 되려면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해서 사서 시험에 통과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따로 사서가 되기 위한 교육을 하는 사서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으면 사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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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학을 배웠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이었으니 까마득하다

그래도 희망은

까마득한 세월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찾는 거다

 

'그대가 옆에 있어도 그립다'는 말이 있다 

살면서 늘 그리워하는 공간은

도서관이다

아마, 나는 '학생부군신위'로 끝나는 날까지

도서관을 향한 향수병을 앓을 것이다

 

도서관에 몸담고 있으면서

몇권의 도서관 책을 소개한바가 있다

그중 가장 쉽게 쓰여진 책을 읽은 것 같다

 

읽으면서

<이동 도서관>이 매력적이었다

날마다 가벼운 천가방 하나 메고 다니지만

마음으로는

'내 가방이 이동도서관'이다

뜬금없고 대책없는 자긍심을 갖는다

 

이 또한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고질병'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근후 지음/

김선경 엮음 / 갤리온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딱 하나,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는 점이다. 명예보다는 즐거움, 책임보다는 재미를 택하면서 살기로 했다. ‘아이답게’ 늙어 가는 일이다.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 나는 행복합니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 나는 행복합니다 - 김수환

 

 

인생은 어느 시기건 그에 알맞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힘없고 느리기만 한 늙음이 천천히 익어가는 술처럼 그윽한 인생의 향을 품어 낸다.

 

 

중년 이후를 ‘바로 본다.’라는 것은 노화, 즉 몸의 변화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해도 혼낼 사람이 없으므로 마음 푹 놓고 하면 된다. 사실 나이 들면서 가장 넉넉해지는 재산은 시간이다. 나이가 들면 생활이 단순해진다. 책임도 의무도 줄어든다. 제대로 살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나이 들었다고 후회하지 마라.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살았고 일했고 즐겼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면 순리를 따르라.’

 

 

나이가 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노년의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살다 보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시기가 꼭 온다. 그에 적응하는 법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외로움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랑은 궁금증과 관심에서 시작한다. 환자를 언제 퇴원시키면 됩니까? “환자가 사랑하는 능력이 생기면 퇴원시켜도 좋습니다.” 정신과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대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자기애가 지나친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둬야 한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 삶에 관심을 두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고 만나기를 즐긴다. 밀려오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렵다면 제발 푸념만 늘어놓지 말고 생각나는 사람을 찾아가라. 전화나 문자 한 통이어도 괜찮다.

 

 

아기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바쁘신데 젖은 나중에 주세요.” 이렇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아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같은 어른은 있다. 매사 아이처럼 우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는 것을 ‘독립’이라고 한다. 독립을 통해 우리는 ‘나’로 살아간다.

 

 

나는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내 뜻은 감추고 상대의 말만 수용하면 마음에 앙금이 쌓인다. 억눌린 마음은 죄책감이나 상대에 대한 원망을 키우고, 갈등은 미움으로 변하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고부갈등은 서로에게 싫다, 좋다는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데서 지적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결혼으로 남남이 가족을 이룬 셈이니 처음에는 모두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 지낸다. 싫어도 좋은 척, 미워도 아닌 척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5년, 10년 지내다 보면 상대의 얼굴만 쳐다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싫은 감정이 솟구친다. ‘시’자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을 가르친 것은 시부모와 며느리로서의 상하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고 싶어서다. 나 혼자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며느리도 도와야 한다. 먼저 며느리에게 친정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 지내라고 했다. 시부모 앞이라고 잔뜩 긴장해서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하면 단 며칠도 못 버틸 테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부부와 아들 내외 모두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하자고 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자고 했다 중국 음식을 배달해도 좋다고 했다. 하루는 내가 당번이라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가 슬그머니 옆에서 채소를 다듬었다. “너 당번 아니잖니? 시아버지 당번 때 도와주고 시어머니 당번 때 나오고 신랑 일한다고 거들면 앞으로 너는 계속 식사 당번해야 한다.” 그러자 며느리는 얼른 손을 털고 주방에서 나갔다.

 

 

노후를 힘들게 한 원인 중 하나가 자식과의 보이지 않는 감정싸움이다. 자녀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살피고, 자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정적 피곤함에 젖어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열심히 산 결과로 생기는 병은 어쩌겠는가! 나이 들어 아프고 병을 앓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일흔 넘어 시작한 공부, 나이가 많아서, 머리가 굳어서, 시간이 없어 공부를 못 하겠다는 말은 핑계다. 특히 나 같은 노인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퇴임을 하고 귀한 제안이었지만 거절했다. 교수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 나는 이제 막 얻는 자유를 포기하기 싫었다. 그러기에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지 못하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학창시절의 공부는 성적 부담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심하다. 하지만, 사이버 강의는 부담이 없다. 요령을 피우지 않고 호기심을 따라 움직인다. 나이가 들면 순수하게 즐기면서, 놀듯이, 오로지 공부만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한 전진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몸은 늙어도 생각은 녹슬지 않는다. 은퇴 뒤 넉넉해진 시간이 ‘쓸데없는 공부’를 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무모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다.

 

 

긴 노년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면 막연한 바람이나 환상을 떨쳐버리고, 시간을 편안히 보내겠다는 생각 대신 시간을 마음껏 쓰겠다고 생각하라.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도스토옙스키

 

 

차선(次善)으로 살자. 실수와 불행은 자기 능력보다 120% 해내려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80%의 능력발휘를 목표로 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최선이라는 말은 내가 가진 100을 다 쓰라는 말이다. 농부가 씨앗까지 다 먹어버리면 내년에 뿌릴 씨앗이 없다. 남이 봐서 1등이다, 2등이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면 그뿐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이야기, 수많은 일이 가지치기를 한다.

 

 

내 마음속의 소년. 나는 여전히 별똥별의 줍던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다고 10대의 발랄함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마흔이 넘었다고 자식들에게 꼭 모범적인 아버지의 모습만 보여줘야 할까. 노년이 되었다고 날마다 점잖은 얼굴로 세상을 통달한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을까. 제자들의 회갑잔치를 스승인 내가 치러 준 적도 있다.

 

 

노인이라고 해서 갑자기 호호 할아버지를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또한, 젊은이들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나이만큼 늙었다. 그뿐이다.

 

 

일이 닥치기 전에 근심이 더 많지, 막상 일이 벌어지면 견딜힘이 솟는 것이다. 어떻게든 견디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고자 안긴 힘 쓸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정점을 찍고 나면 하강 곡선을 그리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지점까지 떨어진다.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해지는 몸을 보살피며 쉬엄쉬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몸의 변화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빨리 눈치챈다. 그걸 부정하거나 외면하면 안 된다. 머리에 검은 물을 들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걸어도, 사실 내 몸이 늙어가고 있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한창때의 체력은 70세에 이르면서 곤두박질 친다. 우리는 그 너머를 봐야 한다.

 

 

제2의 인생이 50세쯤 은퇴해 다른 직업이나 새로운 일로 인생을 꾸리는 것이라면 제3의 인생은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남은 인생을 하고 싶은 대로 즐기면서 살자는 데 있다. 경쟁 유도는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나이가 들면 꼭 해야 하는 일보다 안 해도 될 일이 더 많아진다. 혹 안 해도 될 일을 체면이나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라.

 

 

‘노인은 약할 것이다.’라는 생각만큼은 버려야 한다. 그런 고정관념이 진짜 늙기도 전에 노인이 되게 만든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이 되고 나는 지하철 경로석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나는 노인이니까’ 하는 생각은 스스로 절구에 앞니를 짓찧는 행위와 같다. 노후는 모아 놓은 돈으로 즐기면서 살기에는 시간이 많고 또 느리게 흐른다.

 

 

그는 대학교수로 꽤 성공한 축에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직장관에 대학 총장을 지낸 분, “그 아버지가 죽으면 된다.” 아버지가 살아있으면 자식은 결코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의 벽이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처럼 벽을 의식한다. 벽은 보호막도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부모가 먼저 그 벽을 부숴줘야 한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이래라저래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미덥지 못하고 어수룩해 보이겠지만 과감히 놓아주어야 한다.

 

 

부모 세대가 예순을 넘기면 곧 자식의 시대가 왔음을 상징한다. 집안에 새로운 해가 떠오른 것이다. 이즈음부터는 자식이 집안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부모가 연장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부모중심으로 맞춰서는 안 된다. 어떤 조직에서나 실세가 있다. 자식이 장성하고 부모가 중심축이 되어 가정을 이끌면 가족 모두 힘들고 피곤해진다. 생활의 중심을 자식에게로 이동하라.

 

 

부모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재산이 많을 때, 또 부모 스스로 인생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때, 집안의 주도권을 늦게까지 잡는 경우가 흔하다, 눈을 감을 때까지 온갖 지시를 내리며 자식을 믿지 못한다. 하루라도 빨리 열쇠를 며느리에게 넘겨줘야 한다. 며느리가 적자가 날지라도 직접 운영을 해 봐야만 살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며 많은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노신사가 있다. 그는 아들에게 의식주는 물론 여러 방면에서 회고의 교육과 문화를 누리게 했다. 온 가족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음악회에 갈 정도였다. 그런데 자식이 마흔 살이 된 지금도 매달 그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노년은 자식에게 집안의 모든 흐름과 걱정거리를 맡겨두고, 내 몸을 잘 건사하는 시기여야 한다. 이런 황금 같은 시간을 노신사는 자식 걱정에 바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는 일정 기간의 양육과 보호가 끝나면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모든 일을 자식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뜻밖에 쉽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보는 아버지만큼 세상에 큰 행복이 또 있을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나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그리고 자녀는 나의 분신이 아니다. 자녀는 자녀가 가진 인격수준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독립적인 단위다. 그동안 자녀를 돌보느라 조금은 소홀했던 자신을 돌보고, 새롭게 펼쳐진 인생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자녀가 독립할 때가 되면 기꺼이 자식을 떠나보내라. 억울해할 일도, 섭섭하게 느낄 일도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듯, 부모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식에게 독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젊은이를 가르치려 들지 마라.

아프리카에는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노인 세대가 손수레를 끌고 발로 뛰며 살아왔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맹렬하게 달려가는 격이다. 과거에만 사로잡혀 내 경험만이 특별하고 옳다는 생각으로 젊은이를 바라보는 데 있다 “요즘 애들은….”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은 젊음의 특징이다.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나 청춘은 힘들고 불안하고 어렵고 두려움에 찬 시기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라는 아니다.

 

 

자식에게는 요구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부탁하듯 말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얼마나 재롱을 떨었던가. 이제는 거꾸로 부모들이 성장한 자녀들에게 재롱을 떨어야 한다. 치사하다고? 자녀들과 행복하게 지내려면 그 정도 치사함은 참을 만하지 않은가. 다만, 재롱을 점잖게 떨어야 한다. 재롱이 아닌 것처럼 재롱을 부리라는 것이다. 권위나 위엄은 버리고 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자주 웃고 나의 자잘한 고통과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제나 명령이 아닌 부탁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것이다.

 

 

“아들아, 아버지 용돈 만 원만 주련?”

 

 

노년은 인생에서 느린 속도가 허락된 시간이다. 노인은 뭐든 천천히 해도 용납이 된다. 또한, 오감을 온전히,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기도 노년이다. 노년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충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기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갔다. 건강과 에너지, 일과 의욕 그리고 미래. 그러나 나에게는 남은 것이 있다. 많은 시간과 깊어진 눈과 즐길 줄 아는 여유다. 그것으로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아내는 여동생의 친구였다. 그런데 아내가 선을 본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프러포즈를 했다. 편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내, 남편이기보다 동료라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 부부가 50년 긴 세월동안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동반관계,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사랑의 관리’다.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우리는 먼저 말을 멈췄다, 결혼은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배우자를 통해 풍부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을 결정짓는 것은 경제력이나 학벌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자녀, 친구, 이웃 등 다른 사람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나에게 아내는 내 인생의 동료였다. 아쉬운 것은 우리 사이에 알콩달콩, 아기자기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웃으면 아내도 웃고 아내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남편 먼저 안 보내기 작전’ ‘아내 두고 죽기 없기’

 

노인의 귀가 큰 까닭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때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귀는 제일 늦게까지 성장한다고 한다. (뇌사상태인 남편에게 누가 사랑하라고 말할 때, “나도” “미투”만 했다지 않은가?)

 

 

아무것도 변명하지 마라. 아무것도 지우지 마라. 있는 그래 보고 말하라-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누구도 성공한 삶, 좋은 삶만을 살 수는 없다. 어떤 일도 연속해서 잘 되기는 어렵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그러다 간혹 한 번씩 잘될 뿐이다.

 

 

긍정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면 자연스럽게 편안한 얼굴이 만들어진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다음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삶은 작은 이야기의 연속이다. 시시껄렁해 보이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인생의 큰 무늬를 이룬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내 부모는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노인의 삶은,

1.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회 활동을 중지하는 사람 은둔형이다. 젊었을 때 화려했던 모습에 비하면 늙어 버린 나는 너무 초라하다.

2.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 사사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분노형이다.

3. 모두 내 탓이라고 자학하는 자학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사는 것이 치욕스럽다며 자신을 학대한다. 늙고 병든 지금은 세상에 폐를 끼칠 뿐 아무런 소용도 없다.

4. 무장형, 젊었을 때보다 더 열정을 쏟으면서 살아가는 노익장들 간혹 의욕이 지나쳐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마지막,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노인들 자연스러운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표정부터 편안해 보이다. ‘곱게 나이 든다.’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성숙은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를 미워하고, 부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또 어느 부모이건 자식에게 미움을 받는 시기가 있다. 자식에게 미움받지 않는 부모는 없다.

 

 

퇴직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미리 환승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50세 후반부터 환승 준비를 했다. ‘이러이러하게 정년을 맞으면 좋겠다.’라고 머릿속으로 그렸다. 60세부터는 하던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여 3분의 1수준으로 줄였다.

 

 

이제껏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나이 들어서는 다른 이들에게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 나의 경력과 연륜이 분명히 필요한 곳이 있다. 부디 하릴없이 시간을 버리지 마라. 아프다는 하소연, 신세 한탄, 심심풀이 잡기로 낭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이다. 젊은 부부에게 가장 큰 재산은 시간이다. 무언가를 빨리 이루려고 조급해하지 마라. 왜 모든 걸 갖춰놓고 시작하려는가.

 

 

아내를 동지적 관계로 생각했다. 신혼 초 우리 집 대문에는 ‘이근후 이동원’, 나와 아내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가 걸려 있었다.

 

 

결혼의 낭만을 꿈꾸는 사람은 낭만을 잃고, 오리려 낭만 따위는 잊어버리고 서로 좋은 동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낭만적인 부부가 된다고 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 엠마뉘엘 수녀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자녀가 돌아가면서 부모님 모시고 식사 가기, 다른 형제의 집은 초대 없이 절대 방문하지 않기, 가족 소식은 이메일로 전하기 등 규칙은 어떤 면에서 가족 간의 대화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메모리얼 주간으로 정해 다례와 조촐한 식사 모임을 한다. 제사의 본뜻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산 사람을 힘들게 하는 제사라면 차라리 지내지 않음만 못하다.

 

 

말 잘하는 법,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면 된다. 상스러운 말은 말 가운데 가장 낮은 하수다. 남과 비교하는 말은 피하자. 인격을 무시하는 말로 공격하지 마라. 자존심을 건드리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두고두고 원망만 들을 뿐이다. 상대 가족을 헐뜯지 마라, 우리 헤어져 이혼해 폭탄선언은 제발 참아라, 유머 있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언젠가 자녀들에게 아비로서의 미안한 마음을 전했더니, 아이들은 변두리의 낡고 허름한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대를 잇고 과거를 이해하는 소중한 존재로서의 손자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난날의 나는 서툰 부모로만 남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는 말처럼 위안이 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의 역할에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손자 손녀에 관한 일은 부모들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장의 자리에 익숙해 있던 조부모들은 부모가 된 자녀들에게도 명령하고 지시하려는 버릇이 있다. 조부모는 앞서가는 자리라 아니라 따르는 자리에 있어야 좋다.

 

 

사람들에게 회갑잔치를 권하는 이유,

회갑은 아름다운 노년의 시작이다. 잘 나이 들어가겠다는 나와 가족의 다짐이다.

 

 

50세가 되면 5년 단위로 인생을 계획하라. 자식들은 언제까지나 내가 지금만큼만 건강을 유지하기를 원하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평생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본능적인 욕구만 남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

 

 

보통 조부모의 죽음은 손자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어쩌면 조부모와 심리적으로 먼 요즘 아이들은 공원에서 죽은 새를 발견한 것처럼 잠깐 놀라는 데 그치고 말지도 모른다.

 

 

내 삶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만드는 법,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 그러면 된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공부해서 남 주기가 더 쉬워졌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환자 중에 죽을까 봐 겁을 내는 이가 있었다. 그는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보낸 지난 시간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흘러버리는 것을…. 문학을 모르는데, 문학동아리 모임에 나가고 싶은데, 괜찮으냐고? 당장 나오라고 명령했다.

 

 

 

인생은 ‘여기here’와 지금now'이다. 행복을 즐길 시간과 공간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항상 다른 곳,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불행해 한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도르핀이 형성된다. 괴롭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즐겁다고 말해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지금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라.”

 

 

자네 올해 몇인고?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네, 78세입니다. 가장 좋은 나이지요. 환갑을 치르고 난 뒤에는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이 자주 돌아온다.

 

 

나이가 한계일 수는 없다. ‘이 나이에’하고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순간, 우리의 나머지 인생은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 시간이 되고 만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무엇을 꼭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다. 순간순간, 이 일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 호기심을 채우는 즐거움이 계속 일을 벌이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벼르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 사교적인 일과 동시에 혼자 할 일도 알아보라.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을 찾아라. 그래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이 좋다.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하여 주위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그 일을 하면서 체력이 조금씩 저하된다는 사살을 염두에 두라.

 

 

 

나이 들면 무서울 게 없다. 세상이 노력만으로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그러나 또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도 안다. 젊었을 때는 죽음이 너무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라고 해야 죽을 일밖에 없으니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가장 필요한 덕목은 유머, 웃음 관용이다.

 

 

일에만 모든 것을 걸지 마라,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업 외에 일생 자신이 또 달리 즐길 수 있는 한 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 여행 악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등등 등 다음에 하지 말고 지금부터 틈틈이 하라. 혼자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여러 사람과 같이 어울려서 즐기는 시간.

 

 

원하는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사실은 속임수다. 원하는 것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기쁨이나 즐거움을 주는 ‘좋아하는 것’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다.

 

 

어떤 남성들은 집에서만 지내다가 아내와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았는데, 하고 원망을 쌓아간다.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에 매달린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틈틈이 즐길 취미를 하나쯤 개발해 두었다면 본업이 없어져도 정서적으로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아내와 함께했던 평소처럼 잘 살아 내리라. 몸이 허락하는 한 공부를 계속할 것이며, 여전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을 할 것이다. 지인들과 만날 때 밝게 웃을 것이며, 자녀와의 정기적인 저녁식사도 거르지 않을 것이다. ‘배우자를 떠나 보낸 뒤의 생활에 대비하라.’ 바로 정서적 문제다. 자녀 앞에서 아무리 의연하게 대처해도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성은 아내와 사별하고 6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며 여성은 무기력해지기 쉽다. 행복한 노후의 조건에서 자녀의 부양보다 배우자의 있고 없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식보다 악처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부부싸움엔 인내가 최선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인내는 좋은 미덕이 틀림없으나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어차피 대화도 안 통하는데 내가 참지라고 침묵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게 하나, 바람 통하는 창문 하나, 햇볕 쬘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라네. 늙은 날을 보내는 데 필요한 것들 -사재 김정국(조선 중기 학자) 선비답게 산다는 것. 벤츠보다 더 뛰어난 BMW(BUS METRO WALK)

 

 

봉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봉사가 나를 희생하여 남을 돕는 의미라면, 나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임종이 가까운 이들에게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 나중에, 다음에 돈 벌면 하다가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이다.

 

 

사회에서 영원한 자리는 없다. 직장인도 정년이 있고 무림의 고수도 칼을 꺾을 때가 있으며 밀림의 왕 사자도 이빨이 무뎌지면 젊은 사자에게 자리를 내놓는다. 그게 패배는 아니다. 자연계의 이치고 흐름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아무리 내 분야에서 온 힘을 다해도 언젠가는 아이디어가 떨어지고 기력이 달린다. 나를 인정하고 존경하던 사람들도 의례적으로 변한다. ‘저 노인네….’ 하고 괜한 미움을 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더는 새로움이 없고 습관적으로 일한다고 느낄 때가 그만두어야 할 때다. 흐르는 물은 한 웅덩이를 채우면 넘쳐서 다시 아래로 흐른다. 노년이 먼 곳에 있는 것 같아도 지척에 있다.

 

 

어떤 자리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가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내가 그 일에 잘 맞는지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안다. 공직이라면 전문성과 도덕성, 이 두 가지만 잘 살펴봐도 충분하다. 또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나이 들었다고 거저 주는 감투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따뜻함을 느낀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내 오래된 꿈 가운데 하나는 스님들의 선방처럼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방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나’를 붙들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 텅 빈 방, 그리고 그곳을 꽉 채운 고요와 정갈함.

 

 

책을 엮으면서

한 번에 다 하면 편하겠지요. 단박에 완성하고 짧은 시간에 결과를 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모든 일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일어날 수 없다. 일과 배움 능력 재능 사람과의 관계까지 야금야금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더해지면서 깊어지고 넓어지고 발전하는 것. 늙음을 감추려 하지 않고 즐겁게 데리고 놀며 나이 듦의 재미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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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배부른 소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기대가 차오르며 빨리 일흔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직 고희가 되려면 강산이 한 번은 변할 시간이 남았다.

가장 성공한 사람을 모델로 삼는다면, 절망만 더 커질지 모른다.

 

지난 토요일, 아버지 제사에 가서 엄마를 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년은 되었을 것이다.

장례식에 가고 그리고 그다음 해에 가고 처음이다.

 

엄마를 볼 때마다 딸로서 늘 못마땅하고 서운한 마음이 컸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설음 기쁨 건강 등 등

'희노애락애오욕'을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의 딸임에도

근 30여년 동안 엄마의 무슨말이든 들어주는 

엄마의 친정엄마같은 역할을 했왔다.

언제나 큰소리치며 자신의 이야기에만 흥미진진하셨다.

아들 딸의 안부나 마음 따위는 절대 헤아리지 않으셨다.

 

그런데, 자식들이 하는 이야기를 뚝 잘라 끼어들고,

그리곤 눈치를 보신다.

괜히 안방 문을 들락날락 안절부절못하는 엄마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

그리고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앞에서

엄마는 딸과 사위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보이셨다.

 

76세,

‘일흔 살이 넘어 여든으로 가는 길은 저렇구나!’

엄마모습에서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서글프다.

하기사, 천하제일의 완벽한 인격을 갖추셨던

우리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나이도 76세이셨다.

 

미리 준비하지 말자.

노년은 준비 안 해도 기다리지 않아도 들이 닥친다.

그때 가서도 오늘처럼 사는 거다.

사실, 70, 80, 90세 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다.

보장도 없는 미래에

 '곱게 품위있게 늙을 거라'며

날마다 잔뜩 긴장하고 스스로 닦달하며 살 필요가 없다.

 

그냥, 오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놓쳐가며

땀흘리며 열심히 되도록 신나게 재미있게 사는 거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홍사중 지음

도서출판 새빛 2009

 

 

 

홍교수가 문화마케팅으로 수익을 올리면 홍교수는 그 보람과 쾌감을 누리고 수익은 공공기관의 몫으로 귀속된다. 그것이 문화가 향유 되고 있다는 파급가능성이다.

 

 

이야기산업이야말로 가장 쓸데없는 (?) 수요를 만드는 첨단 고부가가치산업이 될 것이다. 물론 IT기술과의 융합이 전제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태초부터 전해내려온 ‘이야기 유전자’가 발현해 솟구치며 샘솟기 시작한 인간의 무한상상력은 많이 놀아본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사실 40~50대 소비자들의 ‘놀이’에 대한 인식은 ‘노는 것은 악이고 일하는 것은 선이다’ ‘공부하는 것은 선이고 노는 것은 악’ 이들에게 영화, 소설, 연극 등 이야기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소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정보화시대 그리고 여가의 증대는 노는 방식의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놀아본 적도 없고 노는 방식을 배워본 적도 없는 기성세대는 ‘잘’ 놀지 못하고 ‘막’노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룸살롱 퇴폐향락문화가 산물이다. 반면 10~20대, 30대까지의 신세대 소비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놀이의 방식을 체득해왔다. 연극, 음악, 판타지소설,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등.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멀티 영화관은 다양한 놀이방식을 체득한 신세대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백화점이다.

 

 

‘땀 흘려 일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사회’에서 ‘열심히 놀며 상상한 사람도 부자 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잘 만든 이야기가 곧 경쟁력이다. 1차산업인 농업도, 2차산업인 제조업도 이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고부가가치를 못 내는 세상이다. 어느 산업분야에서도 이제는 스토리텔링이 무엇보다 중요해 ‘잘 만든 제품’에 ‘잘 만든 이야기’가 입혀져야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은 티브이에서 <슈렉>만화영화를 보고, ‘파워퍼프걸’이 그려진 운동화와 가방을 메며, ‘곰돌이 푸우’ 이불을 덮고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든다. 할리우드의 이야기기업들의 지갑은 점점 더 두터워지고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에도 빨대를 꽂아라. <미녀는 괴로워> <올드보이> <라이온 킹> <뮬란>

‘이야기스타’로 스포츠경제를 만든다.

 

 

먼저 상상하는 자, 미래를 낚는다.

“한국은 문화적인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같은 넥타이라도 한국에서 만들면 5달러, 이탈리아에서 만들면 35달러다.” 한국에서 만든 넥타이에는 물건값만 존재할 뿐 어디를 찾아봐도 ‘첼로(이야기)가 없다. 문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지 못해서 5달러에 자족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곧 ’새로운 세상변화에 무감한 한국인‘이라는 일침.

 

 

‘물건값’과 ‘이야기값’의 차이는 “물건을 팔면 안 팔리고 이야기를 팔아야 팔린다”

 

 

관광상품도 <모래시계> 정동진, <겨울연가> 남이섬, 춘천. 그리스로마신화 헤리포터 화이트데이 바렌타이데이, 블렉데이, 빼빼로데이 등.

 

이야기와 감성을 팔아야. 냉장고는 처음에 ‘기능’이 우세했지만 ‘꿈과 감성’에 호소한 광고가 이겼다.

 

경주에 가서 ‘성덕대왕신종’과 ‘에밀레종’중 어느 것을 먼저 볼까? 물으면 같은 종인데도 에밀레종을 선택한다.

 

인도가 영화강국이 된 배경에는 바로 ‘되는 일 없는 사람들’의 절망에 힘입은 바 크다. 세상의 좌절과 절망도 뒤집어서 팔면 돈이 된다.

 

 

중요한 것은 남이 한 일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문화 대한 투자가 곧 경제에 대한 투자이며 미래에 대한 투자다”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

인류의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가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SM엔터테이먼트의 이수만 대표 ‘보아’ ‘H.O.P' 'S.E.S' '신화’ ‘동방신기’ ‘샤이니’‘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아이돌스타 군단을 키움. 우리의 대중음악도 여느 수출산업 못지않게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산업.

주식회사 환포퍼먼스의 송승환 대표, <난타> 전용관

미술가 문신의 조각작품 목걸이, 반지, 브로치 등 아트상품으로 가공 판매.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가 도래할 것, 이제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정보나 품질이 아니라 꿈과 감성이다. 생각을 바꾸면 낮잠도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매표원이 곧 극장이다! 관람객은 가장 먼저 상냥한 웃음으로 인사하며 표를 파는 매표원과 만난다.

 

 

*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옷로비사건’‘구파발 김봉남’으로 구겨져 내리는 순간, 대중들은 새삼스러운 애정감이 생겼다. 촌스럽고 만만한 이름에 더 친화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당시 언론이 옷로비 사건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앙드레 김의 본명을 초점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배고픈 것은 잘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절대 못 참는 사람들이 산다. 잘나가는 사람들의 꼬투리를 잡고 늘어져 흠집을 낸 다음에야 못난 자신들의 열등감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는 병든 시대다.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그 누가 ‘김봉남’이 한두 개쯤 없으신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그 누가 ‘김봉남’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독일 아우디자동차의 회장이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이 기본 위에 감성의 날개를 달아 멋진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차가 있습니다. 안전한 차가 있습니다. 광고카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구조조정 등으로 회사가 한창 어려울 때, 그룹 임원에게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애니콜신화‘는 기술의 신화이다.’ ‘잘 만든다고 팔리지 않는다. 멋지게 만들어야 한다.’

 

 

피렌체, 베네치아, 니스, 바르셀로나 등 유럽의 지방도시들은 아름다움과 이야기 품격, 즉 멋을 가꾸고 구현해내는 전략으로 현재 큰 부가가치를 얻고 있다. 멋도 있고 이야기도 있어야 방문하고 싶고, 오래 살고 싶고, 돈을 쓰고 싶은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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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앙드레 김'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곳곳에 있다

아니라고, 그렇지않다고 우기는 것은 나를 속이는 것이다

'구파발 김봉남'은 남의 일이라 괜찮지만,

나는 좀더 근사하고 싶으니 문제다

 

그렇다! 나는 '앙드레 김'은 절대 될 수가 없다.

'앙그래? 류' 라면 혹시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