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사서삼경

임옥균 / 사람의 무늬

 

자연과 사람

중용정성스러운 것은 자연의 도리이고, 정성스러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이 도리이다.

 

삶과 죽음

논어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아직 사람도 섬길 수 없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하고 대답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묻자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호연지기를 기르자

맹자호연지기(浩然之氣)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니, 곧음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 호연지기는 의리와 도에 짝하니, 의리와 도가 없으면 호연지기가 줄어든다. 호연지기는 의리가 모여서 생기는 것이니, 의리가 조금 있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줄어든다. - 맹자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설명을 듣고 잘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몸으로 익히지 않으면 그 사람이 태권도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씩씩하게 행동하다가도 스스로 마음에 조금이라도 꺼리는 구석이 있다면 씩씩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살피고 의기소침해지는 것이다.

알묘조장에서 처럼 호연지기는 자연스럽게 길러야지 억지로 조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들에게 씩씩하고 떳떳하게 대장부답게 살라고 말한다.

 

이 남자가 사는 법 - 제나라 사람 가운데 처와 첩을 한 명씩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이 나가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 처가 누구와 함께 먹었느냐고 물으니, 남편은 부유하고 귀한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동쪽 성 밖의 무덤 사이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 가서 음식을 구걸하고, 부족하면 또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곳으로 구걸하러 갔습니다. 그것이 그가 배불리 먹는 방법이었습니다. 남자들이 부유하고 귀함, 이익과 출세를 구하는 방법을 그 처와 첩이 안다면 누구나 부끄러워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무엇을 안 할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안 하는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안 하는 것은 바로 절제입니다 안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우선 능력을 갖추어라

공자가 제자인 중궁에게 말하였다. “얼룩소의 새끼가 붉고 뿔이 좋다면 제사에 쓰기가 좋다. 비록 쓰고자 하지 않더라도 산과 내의 신이 버려두겠는가 - 논어 옹야

중궁의 아버지는 출신이 미천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다. 공자는 출신보다는 능력을 중시했다.

예기예는 서민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주나라 때 대부라는 벼슬 이상은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서민들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실력과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자.

 

우환의식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라고 걱정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논어 자한

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환의식이다. 자기 인격의 완성과 나라의 미래, 인류의 장래게 대해 걱정하는 마음을 갖는다.

 

상아 젓가락

고대 중굴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가 상아로 젓가락을 만들자 주 임금의 친척인 기자가 이를 두려워하며 상아 젓가락이라면 질그릇 위에 얹어 놓을 수 없으며 반드시 옥으로 만든 그릇 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상아 젓가락이나 옥 그릇이라면 음식은 반드시 코끼리 고기나 어린 표범 고기라야 할 것이다. 코끼리 고기나 어린 표범 고기라면 반드시 비단옷을 입고 넓고 높은 집에 앉아서 먹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이 두렵다.”라고 하였습니다.

5년이 지나고 주 임금이 고기를 늘어놓고 술을 채운 연못에서 놀다가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기자는 상아 젓가락 하나만을 보고 천하의 화근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짜는 없다 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맹자- 어려움 속에서는 살지만 안락한 속에서는 오히려 죽는다고 말했다. 공짜 사은품, 그것은 결국은 누군가 값을 지급한 것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시경에 약이 어찔어찔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 시경에 듣기 좋은 말에는 대답하고, 충고하는 말에는 취한 척하네. 사람들은 자신을 칭찬하면 좋아하지만, 자신의 허물을 말해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 절을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예와 음악

예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개인별로 혹은 사회적 단위별로 구별하는 것을 주로하고, 음악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체감을 부여해준다. 둘의 큰 목적은 사회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는 사람을 구별한다.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오륜을 말할 때,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와 친구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들을 때는 그런 구별이 전혀 필요 없다. 모두가 듣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음악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주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도 한다. 그런 양해도 없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맞담배질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선생님이나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이것이 예가 법과 다른 점이다. 법이 강제적이라면 예는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효도, 사람만이 할 수 있기에 귀하다

효나 효도라는 말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에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말이 되었다. “부모님께 효도해야지.”라는 말이 뭔가 어색하고, 마치 강요당하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재산은 살아있을 적게 주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식들이 효도한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부모가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만 자식이 효도한다면, 그것은 효도하는 척하는 것이지 참된 효도가 아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상은 없다.” 어떤 할머니가 자식은 매일 피어나는 꽃과 같다.”

 

반성

어떤 사람이 여기에 있는데 나를 나쁘게 대우하면 훌륭한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반성한다. -맹자 이루편-

공자가 어느 곳을 지나가다가 어린이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찰랑거리는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요, 찰랑거리는 물이 흐리면 발을 씻지요.”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스스로 취한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 다른 사람이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며, 집안이 스스로 무너진 다음에 다른 사람이 그 집안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내가 깨끗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깨끗하게 대해주고, 내가 더러우면 다른 사람도 나를 더럽게 대해준다.

 

함께 일을 하는 방법

우두머리가 자질구레하면 실무자들이 게을러져서 모든 일이 잘못된다. -서경 이직-

 

자산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수레를 가지고 사람들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에 대해 맹자가 말했다. “은혜를 베푸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치를 할 줄 모는 것이다. 다리를 놓아주면 백성이 쉽게 강을 건너다닐 것이다. 정치를 잘하면 되지. 어찌 사람 사람마다 건네주겠는가? 정치하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기쁘게 해주려고 한다면 1365일이 부족할 것이다.

 

현명한 임금은 관리를 다스리지 백성을 직접 다스리지 않습니다. 그물을 잘 치는 사람은 벼리를 잡아끕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관리들을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단체의 대표는 자기가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철저하게 일을 나누고 그 책임임을 물으면 된다. 사람들의 장점을 살펴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해서 그들을 잘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일이 능력이다.

 

기초가 중요하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若升高 必自下 若陟遐 必自邇 -서경 태갑-)

모든 것이 기초를 튼튼히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아서는 안 된다.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밥을 짓고 지은 밥을 푸고,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이는 과정을 차근차근 거치지 않으면 숭늉을 얻을 수 없다. 바느질을 하려면 바늘 귀에 실을 잘 꿰어야지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동여매고 바느질을 할 수 없듯이.

 

남을 가르친다거나 저술을 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는 것이다. 물이 그릇을 채우고 나면 저절로 넘치는 것처럼 말이다.

 

복숭아나 자두는 말하지 않더라도 그 아래에 저절로 길이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복숭아나 자주가 맛있다고 일부러 소문을 내지 않더라도, 그 향기가 퍼져 나가 사람들이 열매를 따러 오기 때문에 저절로 길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사람도 인격이나 실력이 갖추어지면 스스로 광고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 것이다.

 

무조건 지킨다, 묵수(墨守)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고집이 세진다. 자기만의 생각이 없이 무조건 배운 것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는 것을 묵수라고 한다. 묵수라는 말은 원래 묵가(墨家)의 지킴이라는 말이다. 묵가는 서로 평등하게 사랑할 것과 이익을 서로 나눌 것을 주장한 묵자(墨子)를 시조로 하는 학파다. 그들은 전쟁이 자신들의 이상과는 반대라고 생각하여 전쟁반대론을 외쳤으며, 그것이 말로만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무력을 길러 다른 나라를 지켜줌으로써 전쟁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묵가의 3대 지도자 맹승은 형나라의 양성군으로부터 성의 수비를 부탁받았다가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집단으로 자살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묵수라는 말이 약속을 잘 지킨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무조건 지킨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습관, 2의 천성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한데, 습관으로 말미암아 서로 멀어지게 된다. (性相近也 習相遠也 -논어 양화-)

 

습관을 조심하라

내가 젊었을 때에 나막신을 신고 진흙땅을 걸어갔는데, 처음에는 마음가짐을 매우 조심하여 오히려 진흙이 발을 더럽힐까 두려워하였지만, 한 번 미끄러져 진흙에 빠진 뒤에는 진흙을 밟는 것이 스스로 편안하게 여겨졌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또한 이러할 것이니, 처음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율곡- 처음을 삼가라는 말

 

옛날 어떤 사람이 한문을 잘 읽고 싶어서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선생님은 맹자3천 번 읽으라고 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맹자3천 번이나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실력이 는것 같지 않아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선생님께서 시킨 대로 했는데도 한문 실력이 늘지 않았다고요. 선생님은 그의 편지를 읽고 이미 한문 실력이 경지 올랐다고 인정해 주었다고 합니다.

 

(임옥균)는 일주일에 두 번쯤 아차산에 약수를 뜨러 다닙니다. 평소에는 물을 뜨는 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지만, 때때로 여름에 가물 적에는 10리터짜리 물통 하나를 채우는 데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지루해서 이 물통이 언제 다 차나 생각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 어젠가는 물통이 다 차고 물이 흘러넘칩니다. 이 물이 도랑을 거쳐서 바다까지 가겠지요. 공부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채우느냐 걱정하지만, 언젠가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그것이 흘러넘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노력하면서 기다리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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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여덟 군데 논어 수업을 다니다 보면

집의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논어책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사서삼경, 그중에 논어라는 것이

수업 때문에 매일 들여다보는 나도 어렵다.

그냥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읽을수록 어렵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계절에 따라, 성별에 따라, 실력에 따라, 읽는 목적에 따라,

하다못해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와 닿기 때문이다.

 

이 세상 아무리 훌륭한 고담준론(高談峻論)이라 할지라도

나의 생활과 상관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공자님께서는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천을 마련하는 일보다 뒤에 하라고 한 것 같다.

내 마음의 평정심을 찾고 맑은 마음으로 읽으면 내용이 맑다.

 

톡톡 튀는 반짝이는 끌림은 없었지만,

그건 작가 임옥균선생의 글을 읽는 자세이니 할 수 없다.

오히려, 저자의 인격이 성실하게 전해져 더 효과적이다.

 

나는 몇 년 전에

어느 아주 유명출판사에서

청소년을 위한 논어를 써 달라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해내지 못했다.

마음속의 숙제처럼, 한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나 같이 어중간하게 얼치기에게

친절하고 상세하게 이야기하듯 전달해 준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알차고 질박하고 무엇보다 쉽다.

꼭 내가 할 일을 대신 해준 것 같아

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

배가 몹시 대단히 무진장 많이 아프다.

그래도 나는 깨끗하게 백기를 들 줄 안다.

청소년은 내가 설 곳은 아니다.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이덕일

도서출판 옥당

 

 

 

책머리에

공자는 두 사람이다. 실존했던 인간 공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의 공자, 즉 성인 공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는 이미지의 공자다.

공자는 실패로 끝난 인생이 죽어서 가장 화려하게 부활한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사상 때문에 생전에는 쓰이지 못했으나 바로 그 사상 때문에 죽은 후 부활할 수 있었다.

살아생전 공자는 노나라 시절로 돌아가자고 즐기차게 주장함으로써 패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제후들의 외면을 받았다. 진나라 때만 해도 공자의 사상을 불온하게 여겨 분서갱유까지 했다.

공자는 현실 지배체제에서 버림받았던 광야의 인물이면서 끊임없이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교 노력했던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세 살 때 부친이 사망 어머니 안씨는 왜 아들에게 아버지의 묘소를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부친과 모친이 야합, 모친 안징재가 나이 많은 숙량흘과 혼인. 불과 열여덟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

공자는 가난하고 천했다. 계씨의 , 창고지기가 되어서 저울질을 하는데 공평했다. 창고지기였다. 비록 현실은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몸이지만 자신의 뿌리는 그렇지 않다는 자긍심으로 견디다가 그를 구원한 것은 아마 학문이 아니었을까?

교언영색, 말을 교묘하게 잘하는 사람은 물론 지식인이다. 상대방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공자는 하늘이 자신에게 부귀를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것은 학문하는 능력이었다. 학문의 길 대충 학사 석사 박사 따고 대학교수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진짜 학문의 길은 호학의 길.

예나 지금이나 우아한 방법으로 부귀를 얻기는 쉽지 않다.

공자 시대도 대부분 사람은 부와 귀를 추구했다. 돈은 추구한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을 추구하는 것은 짝사랑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이 돈을 번다.” 보통 사람은 등 따스하고 배부르면 그만이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배병삼 / 사계절

 

 

군자란 소인과 대칭되는 말로서 공자가 꿈꾼 도덕적으로 고매한 인격을 뜻한다.

논어를 깊숙이 읽어 보면, 본질적으로 가볍고 경쾌한 책이다.- 경쾌한 논어 읽기

논어란 논하고 말하다.’라는 뜻이다.

학이요왈이니 하는 편명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장의 머리글자를 따서 그냥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이 일어나자 논어는 급급하게 감추어야 할 금서의 처지가 되고 만다. 이때 공자의 후손들은 공자의 고택 담벼락에다 논어를 숨겨 두게 된다.

르네상스적 인간- 어려서 가난하여 많은 기예를 익혔다. 9:6 운전기사, 공장기술자, 목장 관리인, 육체노동. 세무나 재정 분야의 제일인자로 성장할 염유를 길러내고 건설부 장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다.

 

 

 

학이편,

배워야 사람이다.

학문에 들어가는 나들목이요 덕을 쌓아두는 마당.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 , 먼 곳, 동지 동반자 이처럼 나와 가치관이 같은 벗이 저 먼 곳에서 나를 찾아 와주니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클까. 벗이란 여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도 좋다. 단 한 번 만나도 속을 드러내어 함께 흐느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벗이다. 같은 길을 함께 걷는 사람, 더구나 저 머나먼 곳에서 음악 하나만을 보고 나를 찾아온 사람.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가 그에 합당하리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 남이 나를 나쁘게 평하면 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애써 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나지 않는다.’라는 그야말로 남의 비평이나 칭찬으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내 속에 깃들인 진리(목표)와 더불어 묵묵히 살아가는 경지를 이른다.

늦은 봄, 봄옷이 다 지어지면 어른 대여섯, 아이들 예닐곱과 기수에서 멱 감고 무우에서 바람쐬다 노래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11:25 평범한 삶을 회복하고자 천지 사방을 돌아다니는 공자의 모습 상갓집 개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콩과 팥도 구별하지 못하는 주제에 선생은 무슨 놈의 선생 18:7 비웃음을 들어가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재건하기 위해 허위허위 걸어가는 공자의 모습. 정녕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랴목멘 울음소리, ‘공자를 키운 건 팔 할이 묵 울음이다

 

위정편,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지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은 공자의 간략한 자서전이다.

제자인 염유가 선생님의 도가 결코 기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만, 따르자니 힘에 부칩니다요” “힘이 부족하다는 건, 힘껏 달리다가 지쳐 쓰러지는 것, 지금 자넨 옳게 한번 달려보지도 않은 채, 지레 선을 긋는구먼” ‘하지 않는 것못하는 것

나를 알아 달라고, 나에게 자리를 달라고 남에게 껄떡댈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무엇인지를 주도하는 인간이 되기를.

을 중시하는 서양의 전통과는 달리, 귀가 눈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또 진리에 가깝게 다가가는 도구. ‘듣기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팔일편,

문명은 숨을 쉰다.

팔일편은 편집자의 주체의식이 깃들어 있다. 예와 악이 그것이다. 악은 음악 시 춤 등 예술 일반. 악의 정신은 예술 정신이요,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자유라고 보아도 좋다.

예는 매우 포괄적, 악수나 절, 개인 예절부터 관혼상제, 생활의례, , 단오, 추석 풍속 삼강오륜의 사회적 예의와 규범이 예에 속한다.

정치를 폭력이나 형벌로 하면 백성은 피하려고만 들고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노장 사상과 법가 사상의 한중간에 유교사상이 있다. 동시에 지식인들이 폭력을 피해 자연 속으로 도피하는(장저 걸닉) 이기주의적 속성.

예가 횡행하는 곳에는 자칫 엄격한 계급의식이 발생하고 또 예로 말미암아 사람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루쉰이 유교를 예교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공자는 예가 타락하면 빠져들기 십상인 경직성과 형식주의를 제어할 방안이 필요했다. 그것이 악()이다. 악은 예술이다. 이것들은 서로 구별하고 차별하는 예의 기능을 뛰어넘어 하나로 조화롭게 만든다.

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 조국에 온후로 악이 바로잡혔다. 9:4 악의 정신은 시경 관저편 즐거우면서도 음탕하지 않고, 슬프지만 아프지 않다 3:20

즐거움과 음탕함의 사잇길, 슬픔과 아픔의 틈새, 공자의 악은 이 가운데를 지향한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치우치지도 않고 올바른 중용의 길, 악은 그 사잇길을 간다.

중용의 세계란 한마디로 화음 조화 화목을 뜻하는 (하모니) ()이리라.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볕이 바르면 그림자가 짙다.’

 

 

이인편,

사랑의 길. 예수 사랑, 부처 자비, 공자 인(). 인이라고 하니 무슨 대단한 보물인 양 여길 수 있는데, 실은 인은 내 주변에 있을 뿐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순간에, 친구 간에 우정을 나누는 곳에, 어린 사람을 아끼고 아픈 사람을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 자락에 인이 머문다. 인은 멀리 있지 않다. 내 곁에 있을 따름이다. (내 지갑 여는 순간, 내 손길 닿는 순간)

 

 

공야장편,

자공이라는 제자

말 잘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있었다. 사기의 화식(貨殖) 열전(列傳)에 실리기도 했다. 세속적 기준으로 이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런 사람이 공자 문하에 들어왔다. 어떤 목마름, 인생이란 눈에 보이는 거죽, 인류대학 좋은 직장, 잘 먹고 잘 사는 것 말고 무언가 있다. 사마천은 자공을 두고 구변이 날카롭고 말이 공교하여 공자는 내내 그의 능변을 꺼렸다.”라고 전한다. 자공의 질문에 대해 공자는 무안할 정도로 잘못을 지적하는 대화가 많다. “자공은 타고난 부자가 아닌데도 재산을 잘 불리고 투자를 하면 꼭꼭 들어맞는다. 11:18

저는 어떤 수준의 인간입니까? 넌 그릇 정도지. 어떤 그릇? 제기그릇 호련(瑚璉) 2;12

가난하지만 알랑대지 않고, 넉넉하지만 뽐내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지. 그러나 가난한데도 즐기고, 넉넉한데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지. 나쁘지 않지는 가()를 풀이한 것.(괜찮다) ‘는 우리가 수우미양가중에 가로 새기는 것이 좋겠다. 아예 못 쓸 것은 아니어서 셈에 넣긴 하되 아직 통 여물지 못했다는 평가다.

 

 

옹야편,

멋진 녀석들

용기는 육신의 힘 자랑이 아니라 그 힘으로 얻는 공을 뻐기지 아니할 때에야 얻어지는 것이다.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용기의 집은 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은 힘이 장사여서 성문의 빗장을 들어 올릴 정도로 용맹스러운 용사였다고 한다. 공자 역시 키가 크고 몸집이 장대하였으며 생김새는 우락부락하고 머리통은 울퉁불퉁한 짱구인 전형적인 무인의 모습. 우리는 자칫 공자를 샌님 풍의 백면서생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한 주먹하는 무골풍이었다. 공자 학교의 제자들조차 한 삼 년쯤 공부하면 어디 직장이 없나?”하고 두리번거리기가 일쑤였다. 8;12

 

술이편,

공자의 학교

오늘날 학교의 모습을 돈만 내면 즉석에서 흔쾌히 모든 걸 전수해 주는 화끈한 사부님들아무 때나 발랄하게 하산하는 제자들로 이뤄졌다고 조롱

열린학교 ; 스스로 간단한 인사를 차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누구에게든 가르침을 베풀었노라 7;7 束脩 말린고기 육포 쥐포 오징어포, 캔커피 한박스 주스 한 통, 요컨대 입학조건이 물건(학비)가 아니라 학생의 배우려는 마음가짐에 달렸었다는 뜻이다.

커리큘럼; 공자는 표준말로 가르치셨다. 7;17 시경삼백편의 뜻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순수함일 따름이다. 2;2 당체꽃이여, 바람에 휘날리는구나! 9;30 공자(공부)가 멀다고 핑계를 대는구나. 시에서 배우고 예에서 서고 악에서 완성 8;8 시는 문학 작품이기 이전에 정치 용어, 외교 교섭의 수단이며, 자연과 사물의 이름들이 가득한 백과사전.

 

 

태백편,

성왕의 계보

요순(堯舜)은 실존한 역사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공자가 혼란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봐야 한다.

크구나! 요임금 노릇하심이여. 높구나, 오직 하늘이 큰데 넓고 넓구나. 8;19 요는 크고 크구나. 하며 까마득하고 눈부신 존재이니 이것들은 내용을 가진 말이 아니라 감탄하는 소리일 따름이다.

혼돈 속에서 최초의 질서를 부여한 존재, 자연 속에서 문화를 처음으로 꽃피운 인물, 무와 유의 경계 선상에 존재하는 신화적이고도 역사적인 인물이 요임금. 우리로 보면 단군, 그리스로 보면 불을 처음 가져온 프로메테우스가 그다.

순임금,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 현명한 사람을 추천받아 그에게 정권을 물려주는 것을 선양(禪讓)이라고 한다.

억지로 하지 않고도 잘 다스린 이는 아마 순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셨던 걸까? 몸을 삼가 남면 하셨을 따름이다. 15;4

무위(無爲) 정치는 올바른 사람을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부리는 일, 즉 용인(用人). 요순우탕문무주공,

 

 

자한편,

공자의 사생활

공자는 술에 대해서도 즐기면서도 탐닉하지 않는 낙이불음(樂而不淫).3;20

원헌이 부끄러움이란 무엇인가?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벼슬을 살다가, 나라가 도를 잃었는데도 벼슬을 사는 것 14;1 부끄러움에 대한 문제의식.

공자께서 집에서 시간을 보낼 적엔 마치 해맑게 환한 듯하였고, 또 흐뭇한 듯하였다. 7;4 억지로 하는 일이 없었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치달리는 욕망도 없었고, 또 남과 경쟁하면서 이기려 들지 않았으니, 하루하루가 일요일 아침처럼 한가하고 호젓하였다는 것이다.

거친 밥과 맹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베어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나니, 의롭지 않은 재산과 명예는 내겐 한낱 뜬구름과 같도다” 7;15

따뜻하면서도 엄격하였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노여워하진 않았고, 공손하면서도 태연자약(泰然自若)하셨다. 7;37

 

 

향당편,

공자의 웰빙

웰빙이란 좋은 음식 먹고, 편안한 집에서 지내며, 쾌적한 환경에서 사는 것이다. 관찰자, 제자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디지털 카메라로 스냅 사진 찍듯 올려놓은 것들이다. 공자는 옛날 사람으로는 드문 73세라는 장수를 누렸다.

쉬거나 선 밥을 먹지 않았고 상한 물고기나 부패한 고기는 먹지 않았다. 또 색이 변한 것, 군내가 나는 것, 제대로 익히지 않은 제철이 아닌 것은 먹지 않았다. 10;82

공자는 먹는 것과 입는 것에도 섬세하였다. 여기서 공자가 꿈꾼 문명이 섬세한 미학적 바탕 위에 있음을 본다. 까칠한 남자. 베스트드레서 앙드레 공자’ ‘춘추 시대 중국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성그러나 이런 멋스러움이 결코 예를 벗어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튀는 디자인을 선호했다는 뜻은 아니다.

여름을 맞아 더울 적엔 홑겹의 갈 옷을 입되 반드시 속옷을 안에 입었다. 10;6 모시 두루마기

검은 옷을 입을 적엔 새끼 염소털 외투를 걸쳤으며, 흰 옷에는 담비털 외투, 누런 옷에는 여우털 외투를 입어 조화를 주었다. 10;6 멋스러운 감각.

집에서 막 입는 갖옷은 길었는데, 오른 소매는 짧게 10;6 일복은 실용성.

반드시 잠옷을 따로 두었는데, 길이는 한 길 반이었다. 10;6

 

문명의 정체 : 문명이란 섬세함과 애틋함의 세계다. 야만은 거칢과 매정함으로 표현된다. 유교에서 꿈꾸는 풍속이 두터운 세계 미풍양속(美風良俗)’이란 곧 거칠지 않은 섬세함의 세계, 또 매정하지 않고 애틋한 정감을 느낀 세계다. 그 가운데 애틋함은 부사로 표현되는데 이를테면 차마 ’ ‘감히 그럴 수는 없다 不敢’ ‘짐짓 와 같은 단어가 그런 예다. 우리는 논어와 맹자에서 이런 부사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이들 속에 유교가 꿈꾸는 문명 세계의 모습이 곁들어 있다. 이렇게 섬세하고 세련됨이야말로 무뚝뚝하고 질박하기만 한 원단 이 아니라 그윽한 디자인 의 세계를 꿈꾸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료와 문채가 이상적으로 배합된 상태文質彬彬의 경지다.

웰빙이란 비싼 음식과 신선한 공기가 아니라, 섬세한 미적 감각을 일상생활 속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주변의 사소한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에서 웰빙이 이뤄지는 것이다.

 

 

선진편,

사제 ; 안연과 스승

공자 문하에는 덕행과 언어, 정치와 문학에 각각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자는 안연의 학문적 수준이 자신과 다를 바 없다고 칭찬하였다.

스승의 안연생각 ; 안연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사람 자신은 기껏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 5;8 안연이 죽었다. 아이고! 하느님이 날 버리시는 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11;8 선생님의 곡소리가 지나치십니다. 내가 저 사람을 위해 울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울겠는가. 11; 9 어질구나 안연이여!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맹물로 배를 채우고서 지저분한 달동네에 살아도 느긋하기 이를 데 없구나 6;9

안연의 스승 생각 : 공자가 광 땅에서 어려움을 당했다 안연이 뒤에 처졌다가 겨우 합류하였다. “난 자네가 죽을 줄 알았네” “ 선생님께서 살아 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먼저 죽겠습니까? 11;22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 높이 있고, 뚫으면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네. 앞에 계신가 하여 쳐다보면 문득 뒤에 계시네. 욕파불능(欲罷不能)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 9; 10 “우러러보면 볼수록 더욱 높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仰之彌高(앙지미고). 이렇게 스승의 학술을 높이견고함으로, 그리고 넓이의 차원으로 두루 견주어 그 위대함을 찬탄하고 있다. “끝내 글로써 넓혀주시고 또 예로서 매듭을 지워주시다.”博我以文, 約我以禮는 줄여서 박문약례(博文約禮)하고 하여 자주 쓰이는 문자다.

 

 

안연편,

진리 또는 매트릭스

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여쭈었다. “극기복례, 공 내가 실체라는 생각을 넘어 관계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것이 인이다.” 안연이 누군가. 공자의 수제자다. 수제자가 스승의 키워드 이 무엇인지 물었으니, 이것은 선생님, 당신은 누구입니까? 스승의 정체성을 묻는 셈이다. 줄탁동시,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이 줄이요,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트려 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사제간에 지혜가 전승되는 지극한 순간을 일컫는 말.

(에고)를 버리고 상대방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경지, 그것이 공자가 예순에 도달한 경지 이순(耳順)’이리라.

 

 

자로편,

정치란 무엇인가?

당시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바는 농사 기술이 아니라, 농사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 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데 있었다.

 

 

헌문편,

선비가 걸어온 길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 다섯 계급 왕 천자(天子), 제후 공(), 대부(大夫), (), 백성. 다만,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왕이 허수아비가 되고, 제후들 간에 다툼이 빈번해지는 동시에 그 아래의 대부들이 제호를 넘보는 계급 변동의 시대였다.

사기 <화식열전> 공자 제자들 가운데 자공이 가장 부유하였다. 원헌이 쌀겨를 싫어하지 않고 달동네에 숨어 살았다면, 자공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돈을 싸들고서 제후들을 방문하였다.

선비가 되는 길, 여기 남을 이기려 들고, 남에게 우쭐대고, 남을 원망하고, 또 욕심부리는 것들, 곧 극벌원욕(克伐怨慾)이란 두루 남을 의식하고 남과 경쟁하면서 나를 드러내려는 욕망이다.

, 공자의 입장은 수련이 개인에 머물지 않고 자비(慈悲) 행으로 날아가는 방향성, “무릇 인이란 내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내가 알고 싶으면 남에게도 알려주는 것이지. 6;28

자장이 묻기를 어떻게 하면 완벽한 선비, 곧 달사(達士)가 될까요?” “무어냐, 자네가 말하는 완벽한 선비의 뜻이?” “온 나라와 온 집안에서 첫손에 꼽히는 것이지요” “자네가 말하는 것은 완벽한 선비가 아니라 이름난 선비즉 문사(聞士)인 게지” “무릇 달사란? 인격이 정직하고 정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듣고, 또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사람이야. 또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사람이지. 이럴 적에야 온 나라에서 또 온 집안에서 달사라고 칭하게 되지. 자네가 말한 그 문사란 겉으로는 어진 척하면서도 실제는 완전히 다르고, 자기가 하는 짓을 반성할 줄 모르는, ‘사이비 선비인 게지. 이런 자들이 요즘 온 나라 또 온 집안에서 떠들썩하게 이름난 자들의 정체인 것이지” 12;20

공자는 선비를 두 유형으로 나눈다. 달사와 문사다.

 

 

위령공편,

평천하의 길 ; 공자 대 자로

춘추시대는 한 마디로 폭력의 세기였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신하가 군주를,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무도한 시대. 한 움큼의 식량을 위해 낯모르는 사람을 해치는 시대, 급기야 사람이 무서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깊은 산골짜기에 목숨을 부지하려는 시대였다.

폭력을 통해 폭력을 잠재우는 현실적인 길이고, 또 하나는 매력(덕성)을 발휘하여 폭력을 빨아들이는 돌아가는 길이었다.

군자란 가난한데도 (자기 길을) 즐길 줄 아는” 1;15 ‘짐짓 곤궁할 줄 아는 존재여기 짐짓 곤궁하다.’라고 할 때의 짐짓 이란, 가난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선택한 가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공자의 말은 그 얼마나 신선하고 또 따가운 채찍인가!

자로에게 군자란 다만 국록을 먹고 봉토를 소유한 정치 경제적 지배자일 뿐이다. 어쩌면 자로는 이런 지배 계층이 될 목적으로 공자 학교에 출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눈높이와 성향에 맞춰 공자가 구체적인 가르침을 내린다. 제자의 간절한 질문에만 답해주는 공자의 교수법. 핵심은 무엇보다 호학(好學)에 있다. 호학은 스스로 부족하다는 분한 마음과 열린 마음가짐, 그리고 꾸준한 노력을 미덕으로 하는 점증적, 과정적 개념이다. 실로 공자의 근본정신도 이 호학에 있을 따름이었다. 죽을 때까지 내내 배우기를 멈추지 아니함이야말로 호학의 주체화이다.

칼의 노래에서 현의 노래- ‘외향적 인간자로에게 호학 또는 학문이란 아무래도 낯선 것이었다. 단순 담백 우직 이것들이 자로의 특징이었던 터다.

당시에 유통되던 군자라는 말의 뜻(정치적 지배층)과 공자의 군자라는 말의 뜻(인격적 완성자) 사이에서 그가 얼마나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는지를 증명해 준다.

스승은 수기이경(修己以敬), 자아을 성찰하는 존재가 곧 군자라고 찔러 준다. 이건 공자가 자로를 안연만큼이나 아꼈다는 표시다. 즉 군자란 낯익은 나를 도리어 낯설게 관찰함으로써 닦아 비우고, 대신 그 자리에 남을 채우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럴 때 나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는 힘, 즉 폭력은 거꾸로 따뜻한 매력으로 전환되고 또 그럴 적에야 올바른 리더십이 발휘되고, 역시 그럴 때만이 참된 평화가 이뤄진다는 비전을 자로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끝내 공자는 시침을 뚝 떼고 만백성을 편안하게 안다는 건, 요순임금도 어렵게 여기셨는 걸!” 하곤 말끝을 잘라 버린다. 그는 죽는 날까지 폭력의 행사를 통한 질서의 확립, 그리고 자기를 알아준 사람(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맹목적 충성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자로의 군자는 폭력 시대의 지도자이다.

정녕 공자는 자로가 붙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렁인 폭력의 군자로부터 매력의 군자, 힘의 발휘로부터 힘의 응축으로, 그리고 외향의 눈길내향의 눈길로 되돌리려고 끝까지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볼 때 공자는 자로를 몹시 아꼈던 것임이 분명하다.

공자는 끝까지 자로가 칼의 노래가 아닌 현의 노래를 부르기를, 힘이 아니라 매력을 통해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진정한 군자의 책무임을 가르쳐 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천성대로 제 생각대로 우직하게 살다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의관을 바로 하고)

자로는 협객 스타일의 인물이었던 것이리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속언이 자로에게 합당하다. 깡패식 의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네 이놈! 군자는 욕심나면 욕심이 난다.’라고 하지 않고, 꼭 둘러대는 것 미워하느니.

여기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할 호랑이와 코뿔소는 권력자 계씨를 지칭하고, “보석함 속에 든 거북과 구슬은 전유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염유가 계씨의 조정에서 퇴근하였을 때, 공자가 왜 늦었느냐고 물었던 데 대해, 염유가 정치가 있었습니다라고 답하자, 공자가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격하한다. 공자는 염유에게 인구 증가 - 경제 성장 - 도덕 문화 창달이라는 세 단계 정치 발전론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양화편

공자가 미워하는 것들

양화편은 인간 공자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유혹에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마음을 변명하기도 하며, 또 어떤 대상을 미워하고 꾸짖기도 하는 살아있는 공자의 모습을 잘 묘사. “공자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씀이나 하는 점잖은 할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꾸짖어야 할 때 꾸짖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화난 마음을 다른 데서 풀지 않고, 두 번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6;2) 분노해야 할 대상에게는 뜨겁게 분노하는 것이 곧 성인의 풍모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정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공자 왈: 자주 빛이 붉은색을 대신하는 것을 미워하고, 음탕한 음악이 정악을 어지럽히는 것 미워하며, 날카로운 구변이 나라를 뒤엎는 것을 미워한다. 미워할 오()자가 세 번이나 나오는 증오의 장이다. 오방색, 남쪽을 가리키는 붉은색, 북쪽은 검은색, 동쪽은 파란색, 서쪽은 흰색 그리고 한가운데는 누른 색으로 보았다.

공자 왈 : 천한 놈과 국가 대사를 함께할 수 있겠더냐? 그놈들은 자리를 얻지 못하면 얻으려고 전전긍긍하다가, 일단 얻고 나면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정녕코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들 땐, 못 하는 일이 없는 놈들이다. 17;15

탈 도덕적 기술주의가 낳을 수 있는 치명적인 사태다. 공동체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한 몸의 안위를 위해 정치와 국가를 이용하는 것. 맹자의 어법을 빌자면 교수는 인작(人爵), 곧 사람이 만든 자리요, ‘학자는 천작(天爵), 곧 하늘이 준 자리다. 맹자도 옛날 사람들은 천작을 행하다가 인작을 얻었는데 근간에는 인작을 꾀하느라 천작을 해친다고 개탄한 바다.

얼치기에 대한 증오 - 좀도둑 - 영화 <넘버3>에 나온 송광호의 똘마니들처럼 조폭조차 되지 못하는 얼치기들을 날건달이라고 부른다. 건달을 흉내 내지만 옳은 건달이 아닌 것이다. 또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것은 건방 축에도 못 끼는 시건방이다. 어설픈 것, 제대로 익지 못한 것이 , , 와 같은 접두어 속에 들어 있다.

 

사이비 지식인에 대한 증오

공자왈; 사이비 지식인(鄕原)은 덕을 해치는 도적이다 17;13

향원이란 한마디로 사이비 지식인을 말하다. ‘비슷한데도 아닌 것이다. 색깔을 두고 말하자면, 붉은색을 훔친 자주색이요, 청색을 훔치는 보라색이 그것이다 - 맹자

연암 박지원의 작품 <호질(虎叱)> 에 등장하는, 겉으론 점잖은 선비이면서 속으로는 동네 과부와 통정하는 북곽 선생이 곧 향원의 전형이다.

향원이란 더러운 세속에 몸을 담그고 탁한 세상과 호흡을 맞추어 살아간다. 향원과 반대되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참사랑’? 나무 가운데 가장 쓰임새 있는 것이 참나무, 작아도 새 다운 것이 참새이듯, 사람도 사이비에 맞서는 참된 사람, 참사람이 있을 법하다.(진국)

그러면 사람이 참사람이 되려면 어떤 미덕이 필요할까. ‘대학의 가르침 멈춰야 하는 곳에선 멈출 줄 아는 것 지지(知止)’. 처한 곳이 추운 데라면 추위에 멈추고, 더운 곳이라면 더위와 더불어 버티는 것. 추위에 떨면서도 따뜻함을 구걸하지 않고, 더위 속에서는 또 뜨거움을 버텨나가는 것, 이것이 사이비가 아닌 으로 가는 길이다.

미워할 대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미워하는 것, 이것이 공자의 또 한 특징이다. 자공은 윗사람에게 불손함, 즉 덤벼드는 것을 용기로 오해하는 싸가지 없는 짓, 그리고 고자질하는 것을 정직으로 오해하는 천한 짓을 들었다. (양을 훔친 아비를 관가에 고발한 자식을 두고 정직하다 여긴 섭공의 경우)

 

 

미자편

나의 길을 가련다

귀밝은 (곧 지혜가 있는) 현인이 위나라에 숨어 살고 있었다. ‘삼태기를 짊어진 것을 숨어 사는 은둔자들의 상징적인 행색이다. 삼태기 속엔 차()도구가 들어 있기도 하고, 간단한 식료품이나 연료로 쓸 소똥 같은 것이 들어 있기도 하다(삼국유사에서는 이들을 거사(居士)라고 부른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세상사에 개입하는 그 비관적인 사회 참여야 말로 공자의 특징이다. 이것이 사회를 비관하여 자연으로 물러나 버리는, 즉 비관주의에 매몰되어 버리는 은둔자의 세계관과 세상사를 비관하지만 그럼에도다시 일어나 사회에 개입하려는 공자. 공자의 길은 바로 그럼에도몸을 일으켜 비관적인 인간 세상으로 몸을 던지는 길이다. 그저 제 한 몸의 안락을 위해 이념과 지식을 파는 참여 일변도의 길도 아닌 그 사잇길, “안 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뚜벅뚜벅 (정의를) 행하는이것이 공자의 길이다. 여기 문득 공자의 눈물이 또 후두둑 떨어진다.

 

 

자장편

우정이란 무엇인가?

자하는 사소한 것 같으나 진지하고, 자장은 번듯한 것 같으나 허하다. 자하는 조그만 원칙에 얽매이는 꼬장꼬장함이 있었던 것 같고, 자장은 겉멋이 들어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하지만, 실제는 이에 따르지 못하는 흠이 있었던 것 같다.

군자는 글로써 벗을 만들고, 벗을 통해 인을 보충한다. 12;24

글을 통해 서로를 사귀는 문인과 같은 교류를 참된 것으로 보았다. 글을 통한 교유는 궁극적으로 인간다움을 북돋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관계는 무얼 주고받는 계약적 관계가 아니라 남김없이 도와주어도 나에게는 손해나지 않는 관계다. ‘모른 것을 깨우쳐 주는 학문적 관계가 대표적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는 나름대로 거리가 있어야 한다. 친구가 잘못한다고 지나치게 끌어안고서 안달복달할 것은 없다, 몇 번 충고해 보다가 고치지 않으면 그냥 이제부터 나와는 길을 달리하니 친구가 아니다.’라고 절교하면 그만이다. 구태여 친구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의리가 어쩌고, 우정이 어쩌고해가면서 나서다간, 괜한 봉변을 당하는 수가 있다. 그렇게 봉변을 당한 다음에야 넌 내 친구가 아니다.’라고 절교해 본들 맞는 뺨만 더 아플 뿐이다. (형제는 한 핏줄로 태어난 동기이니 하늘이 맺어준 자연적 관계, 즉 천륜(天倫)이요, 친구의 의(), 즉 뜻이 맞아서 맺어진 사회적 관계, 즉 인륜(人倫)이니 차이가 있다.)

자공이 우정을 여쭈었다. 공자왈 : 충고를 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되, ‘아니다싶으면 그만두어야 한다. 스스로 욕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12;23

좋은 길로 이끈답시고 오지랖 넓게 나서서 가타부타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란 나와 뜻을 같이하여 길을 함께 하는 동지(同志) 또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의 선물은 그것이 아무리 값비싸고, 귀한 것일지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왼손이 오른손으로부터 물건을 받으면서 인사하지 않듯 말이다.

 

 

요왈편

자장편과 더불어 공자의 사후에 편집된 것이 분명하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음을 뜻하는 최적의 상태, 곧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용의 관건이다. 말하자면 비만도 아니요 영양실조도 아닌 한중간, 이것이 건강이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논어의 마지막 장. 공자왈 :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라고 이를 수 없으리라. 예를 알지 못하면 서지 못하고,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하느니 20;3 천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라고 이를 수 없다고 운을 뗀다. ‘천명을 앎이란 지명(知命)을 옮긴 것이다. 군자란 하늘의 명과 더불어 사람의 길을 함께 헤아릴 때만이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즉 몸이 빚어 내는 욕망, 마음이 추구하는 바람, 남을 미워하는 원망에 시달리고 휘둘려서는 군자라고 할 수 없다. 맨 끝장인 말을 안다. - 사람을 안다.’라는 대목은 도돌이표혹은 반환점일 따름이다. 이로 말미암아 논어는 그 자체로 끝없이 순환한다. 이 순환을 통해서 논어는 우리에게 진리가 저 그윽하고 먼 곳이 아니라, 저잣거리와 일상 속에서 숨 쉬고 있음을 퉁겨주고, 그것을 나선형으로 점점(漸漸) (次次)차 체험하도록 인도한다. 이런 배우고 익히는순환 과정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여 논어의 인생이란 내내 배우고 또 배우며 살다가 가는 삶’(학생부군 신위)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에필로그

논어에 비춰 진 인간은 서구 근대의 존재론적 인간이 아니라 관계적 인간이라 할 만하다. ‘가 있고 난 다음 이 있는 것이 아니라, ‘’ (타인)이 있어야 비로소 가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유교는 관계의 바탕 위에 지은 집이다.

net의 작동work, 곧 네트워크에 성공하는 사람이 군자요, 실패하는 사람이 소인이다. 한마디로 논어는 나아가 유교는 네트워크의 체계다. (소통이다)

가족을 넘어 세계로

이정(鯉庭)- 진항이 아들 백어에게 뭐 특별교육? 마당에서 시를 배웠는가 예를 배웠는가.(소통하는 법) 하나를 물어 셋을 얻었구나. 시를 들었고 예를 들었고, 또 군자가 그 자식을 멀리함을 들었노라.

자기 자식이라고 하여 사사로이 아끼지 않는다는 뜻이니 자식에게까지 공공성을 적용시킨다는 뜻이다. 공자가 자식에게 견지한 엄격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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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글을 읽으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그렇다고 내가 그 훌륭함을 따라 갖출 수는 없다. 그냥 생긴 대로 내 글 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 공자

최인호/열림원

 

 

성서에 의하면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예수에게 와서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하여주십시오.’ 하자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

불교, 장례식에서 한 사람의 산 사람을 수많은 죽은 사람들이 쫓아가고 인연에 얽매이는 것과 효와 같은 사사로운 집착이라 했다.

심지어 예수는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공자, 제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부양하라.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며, 다시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다.

 

안영은 키가 5, “재상께서는 이 개구멍으로 들어가십시오. 이 개구멍만으로도 충분한 데 무엇 때문에 귀찮게 성문을 여닫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안영은 웃으며 이것은 개가 출입하는 문이지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 아닙니다. 개 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사람은 개문으로 출입해야 하고, 사람 나라에 사신으로 온 사람은 사람 문으로 출입해야 하는데 설마 초나라 개 나라는 아니겠지요.” 에 안영은 당당하게 도성의 성문을 통해 입성. “제나라에는 인재가 그토록 없는가. 어찌하여 그대와 간이 작은 사람을 초나라의 사신으로 보냈는가?” “제나라에는 인구가 백만이나 되는데, 사람들이 한꺼번에 땀을 흘려 그 땀을 훔치면 마치 비가 오는 듯하여 행인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녀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서는 오갈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만 우리나에서는 한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사신을 파견할 때에 현자는 현명한 나라에 대인은 대국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무능하고 부덕하면서 또한 가장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파견될 수밖에 없었으니, 대왕께서는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고?“ ”귤은 회수 이남에 심으면 달콤한 귤이 되나, 회수 이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는 것은 바로 기후, 풍토 때문입니.

 

공자는 제나라에 계실 때에 순임금의 음악 소를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셨다. 음악이 이런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공자가 음악에 심취하였던 것은 호사스러운 취미생활이나 쾌락을 즐기려는 향락 때문이 아니라 천지의 조화로 예의 질서를 터득함. 공자가 금을 배우려는 것은 곡조나 이치나 뜻과 같은 기술이 아니라 그 곡을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 위함. “음악이란 천지의 조화이며, 예란 천지의 질서이다. 공자께서는 남과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남이 잘 부르면 반드시 그로 하여금 반복게 하고는 그 뒤에 그와 맞춰 함께 부르셨다.

공자는 악경에서 음악은 안으로부터 나오고 예는 밖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대한 음악은 평이하고 위대한 예는 반드시 간결하다.

 

안영의 마부는 어느 날 수레 위에 큰 차양을 씌우더니 마차의 앞자리에 앉아서 채찍질하는 흉내를 내며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그의 아내가 보았다. 재상께서는 5자도 안 되지만 일국의 재상이 되어 몹시 겸손한 모습으로 수레 위에 오르시는데 당신은 키가 8자가 되면서도 마부밖에 못 되는 주제에 건방을 떨고 있으니 어찌 당신을 지아비로 모시고 살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잘못했소. 앞으로는 분수에 맞게 겸손해 지겠소의기양양(意氣揚揚)은 우쭐거리고 뽐낸다는 마부의 어리석은 행동에서 나온 말. 안영은 밥상에 두 종류의 고기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하였고, 아내에게도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함.

 

공자의 음악관은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덕을 천지의 조화로 보고 있음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경공은 음악을 쾌락으로 여기고 있어 예쁜 여자 악공들을 뽑아 노래를 부르게 하고 춤도 추는 퇴폐적인 여악을 좋아하고 있었다.

안영은 대체로 유자(儒者)란 말만 그럴싸하게 하지 바른 규범을 지키지 못하여 알맹이가 없는 법입니다. 안영은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공자의 사상은 현실의 정책을 타파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마추어리즘이라고 과소평가.

 

간언술, 군왕의 비위만을 맞춰 아첨하는 예스맨에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올바로 간언하였던 명재상 안영, 안영의 뛰어난 점은 상대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임금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간언술로 더욱 빛난다. 훗날 궁녀들에게 남장을 시지는 경공의 엽기적인 취미를 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이는 마치 문에다 소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양두매구육안자는 표리(表裏)가 같은 사람이다. 표리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옷의 겉감과 안감을 가리키는 것으로 행동과 속마음이 일치되는 진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안영은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의 무사를 제거할 수 있었다.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무사를 죽였다고 이도살삼사(二桃殺三死), 차도살인(借桃殺人) 오만한 힘을 가진 세 무사는 어쩌면 막강한 권력을 가지 어른일 수도 있고, 막강한 힘을 가지 압력단체일 수 있. 그러나 결국 복숭아는 봉숭아인 것이다.

 

정명주의(正名主義), 이름을 바로 잡는다.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 명분부터 바로 잡겠다. 로가 선생님은 우원迂遠하십니다. “어리석구나, 너는.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안절부절. 그러므로 군자는 사실에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반드시 말로써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 말로써 전달되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군자는 말에 구차스러운 바가 없어야 한다.

윗사람이 하는 말을 무조건 옳다고 부화뇌동하면서 아첨하는 사람은 결국 윗사람을 망치는 간신배에 불과한 것이다.

 

 

두 번째 출국- 노자와 공자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46세가 되던 해였다.

공자는 노라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은 은나라 최후의 임금 주왕의 성형이며, 그 시대의 어진 신하로 알려진 미자계에 이르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47세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공자가 떠난 이 여행은 인류사상 가장 극적이고 가장 신비스러운 여행이라고 일컬어 신과 신이 만나기 위해 벌인 신들의 여행신과 신이 서로 만나기 위해서 벌인 인류가 낳은 3대 성인인 예수와 석가모니 그리고 공자는 시간적, 공간적인 격차로 서로 만난 적은 없다. 또한, 인류가 낳은 최고의 철인들인 소크라테스와 마호메트도 서로 만만 적은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그것은 공자와 노자가 서로 기원전 506년에 극적으로 해후를 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신비스러운 대사건 중의 하나이다. 이는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에 나오는 명화 중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공자와 노자의 만남도 낮을 지배하는 해와 밤을 지배하는 달이 서로 만나는 행성의 대격돌인 것이다.

 

노자. 공자와 더불어 중국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 공자보다 오히려 광범위하게 중국의 민간신앙을 움직여 사상적 기초를 닦은 수수께끼의 인물. 그리하여 오늘날 중국의 정신을 지배하는 도교를 창시한 신비의 용. 일찍이 톨스토이는 번역된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그의 자서전에서 나의 사상은 공자와 맹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노자로부터 받은 영향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지대한 것이었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만물의 근원이 되는 가장 고귀한 것은 이며 이며 전혀 불확정하고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서 그것은 또한 라고 불렀다.

유럽인들은 노자의 이름을 문자 그래도 늙은 자식으로 표기하여 라틴어로 아오시우스라고 부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80년간이나 들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백발로 그래서 이름도 늙은 자식이다. 노자가 공자보다 나이가 20~30세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 이 무렵 노자의 나이는 80.

사기에 의하면 노자가 평생 공식적인 벼슬은 주나라의 수장실의 기록관인 가 고작이었다. 수장실이라 하면 왕실 서고를 말한다. 오늘날의 중앙도서관을 지키는 사서였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배우고 대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 열 집이 있는 고을이라면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자의 태생은 다른 성인들과는 달리 비극적인 운명. 숙량흘은 안씨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숙량흘은 아홉 명의 딸만을 낳았다. 다른 첩을 얻어 맹피를 얻었으나 어리석었다. 그뒤 60세의 나이에 안씨 집안의 셋째 딸인 안징재와 정을 통하여 낳은 것이 바로 공자. 숙량흘은 비록 나이가 들어 늙었지만, 집안이 좋고 힘이 세다. 인류사상 가장 뛰어난 성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공자가 다른 성인들과는 달리 불륜의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기에 공자는 가난하고 천했다.’ 실제로 공자는 제자들에게 나는 젊어서 미천했던 까닭으로 비천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노자의 성는 씨고, 이름은 , 노자의 사상이 無爲, 無我, 無名을 숭상. 노자의 어머니가 임신한 지 72년 만에 출생했다는 설. 그는 어머니 왼편 겨드랑이를 째고 나왔고, 나면서부터 머리가 희었기 때문에 노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노자는 사람들의 인위적인 의식적인 모든 것을 부정. 사람들이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곧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이며, ‘저절로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타고난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곧 절대적인 자유의 추구한 것이다. 따라 현실적인 유가 사상은 필연적으로 사회 참여를 통하여 지상에서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군자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초현실적인 도가 사상은 필연적으로 자연 상태 속의 은둔생활을 통하여 신선이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 유가 사상도가 사상현실도피라고 비난, 도가사상은 유가상상을 지나친 세속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노자의 학문을 하는 자는 유학을 배척한다. 사마천의 기록. 공자를 비웃은 네 사, 장자와 걸익, 노인과 미치광이 접여 등은 초나라 바로 노자의 고양이다.

북방 사람들은 투쟁적이며, 현실적인 데 반하여 남방 사람들은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낭만적이다. 물론 노자의 유일한 경서인 도덕경에는 공자에 대한 비난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을 계승한 장자에는 공자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내용이 전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무릇 성인들의 종교나 철학을 전하는 데에는 탁월한 제자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만약 플라톤이 없었더라면 소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없고, 아난이 없었더라면 부처의 경전은, 바오로가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맹자가 없었더라면 공자의 사상은 맥이 끊겼을지도 모르며, 장자가 없었더라면 노자는 다만 수수께끼인 인물로 사라졌을 것이다.

 

장자 이름은 주다. 좌충우돌하는 그의 학문은 나름대로 무척 박학다식하나 결국 그 요점은 노자의 학술로 귀착된다. 노자의 가르침에다 자신의 설명을 덧입힌 寓話일관한다. 당대의 어떤 대학자라 하더라도 그의 비판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의 언사는 너무나 방대했고, 자유분방했으며, 아무한테도 구애받지 않았다.

 

초의 위왕이 장주가 현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주군께서 선생님을 재상으로 보시고자 합니다”“천금이라면 막대한 금액인 데다가 재상 또한 존귀한 지위가 아닌가.”“자네, 郊祭에서 희생되는 소를 본적이 있는가?” “그 소를 어떻게 기르던가.” “년 동안 잘 먹이고, 수놓은 옷을 입혀서 호화롭게 사육하지요.” “아무리 그렇지만 끝내는 태묘로 끌어가 죽게 되지.” 어서 그냥 돌아가게. 나를 더 욕되게 하지 말고. “차라리 나는 더러운 시궁창에서 유유하게 놀고 싶다네. 죽을 때까지 벼슬 같은 것은 하지 않고 마음대로 즐기며 살고 싶단 말일세.” 자신의 말처럼 왕과 같은 권력자에게 얽매이지 않고 더러운 시궁창에서 돼지처럼 유유히 놀다가 죽은 장주. 胡蝶. 장주는 어부, 도척, 거협 등의 글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판하면서 노자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도척은 큰 도둑이다. 인간의 성정이라는 것이 눈은 아름다운 빛을 보려하고, 귀는 아리따운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또 입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들고, 의지는 욕망의 충족을 추구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의 일생은 기껏 백세며 이 중에서 병과 조상하는 시간과 근심에 잠기는 기간을 제외한다면, 입을 열어 웃을 수 있는 것은 한 달에 겨우 네댓새뿐이다. ‘병도 없는데 뜸을 뜨는. 공자를 조롱하는 내용 중 클라이맥스다.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도척의 입을 빌려 도둑이라면 너만 한 도둑이 다시없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나만 도척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공자를 조롱함으로써 공자를 큰 옷에 넓은 띠를 두르고, 터무니없는 말과 위선적 행위로 천자 군주들을 속여서 부귀를 얻고자 하는 지식의 도둑이라 비웃고 있다. 장주가 공자를 노골적으로 비웃는 것과 달리 노자는 공자를 만났을 때 비교적 온건한 태도로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병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 인류가 낳은 최고의 역사가 사마천은 공자를 지덕을 갖추어 더없이 뛰어난 성인지성으로까지 부르고 있다.

 

남궁경숙과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 “부귀한 사람은 손님을 보낼 때에 재물로써 전송하고, 어진 사람은 손님을 보낼 때에 좋은 말로 전별한다고 하오.

 

노자는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공자는 그것이 예입니까?” 노자는 그런 건 나도 몰라. 다만 예를 묻는 그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이것뿐일세. , 인제 그만 가보게나.”

노자와 공자의 이 문답은 마치 인류가 낳은 성인이자 대사상가인 두 사람이 벌이는 이중창을 연상시킨다. 전혀 화음이 맞지 않는 이 듀엣은 그러나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혹자는 노자의 승리고, 공자의 패배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이는 피상적이고, 대립적인 관점에서 본 유치한 발상이다. 공자는 오히려 차원이 다른 노자의 사상을 솔직히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다. 공자는 이를 초월하여 노자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예에 대해서 끝까지 집요하게 묻고 또 묻고 있는 것이다. 노자와 공자가 벌인 이 듀엣은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고, 어느 한쪽이 테너이며, 어느 한쪽이 바리톤인가 하는 이분법을 벗어난 최고의 병창인 것이다. 결국, 노자도 이기고 공자도 이긴 환상의 이중창인 것이다.

 

물은 만물을 도와서 생육시켜주지만,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따라서 자기 욕망을 끊고 물처럼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상선 약수.

 

공자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의 예지와 같은 유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달리는 놈 헤엄치는 놈 나는 놈이라면 화살이나 주살로 쉽게 잡을 수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용이 되어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나로서도 그 행적은 알 길이 있겠나. 노자를 용으로 비유한 공자의 표현은 정곡을 찌른다. 공자는 평생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때로는 그물을 치고, 낚시하고, 화살을 쏘았다. 그러나 노자는 그물로도 화살로도 그 무엇으로도 잡을 수 없는 용이었다.

 

그들은 얽매임 없는 경지에 노닐며, 자기 일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도의 식량을 밭에서 얻고 남을 도와줄 여유도 없는 조그만 토지로 만족했다. 얽매임 없는 경지에 노니는지라 인위가 없고 간소한 생활에 만족한지라 살기가 쉬웠으며, 남을 도와주는 일이 없는지라 자기 것을 끌어내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노자는 부를 긍정하는 자는 재물을 남에게 양보해주지 못한다. 명예를 긍정하는 자는 영성을 남양보해주지 못한다. 권세를 좋아하는 자는 권세를 남에게 양보해주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그런 것들이 손에 들어오면 오직 잃을까 그것만을 근심하고, 잃으면 슬픔에 잠기기 마련이다.

 

어쨌든 노자와 공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 주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이견만을 확인하고 짧게 끝이 나고 만다. 오히려 두 성인은 짧은 만남을 토해 극단적인 두 갈래 길로 나뉘게 된다. 공자는 세상 밖으로 더욱 나가게 되었으며, 노자는 더욱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자신을 숨김으로써 이름이 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산속 어딘가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으면, 아무리 자신을 숨긴다 해도 먼 곳에서 매화의 향기가 나는 법(앵두나무여!)

 

여기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를테면 죽음이나 극단적인 게으름을 연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저절로 그렇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무위는 자연이란 말과 같은 개념이다. 노자의 무위는 無爲無不爲즉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사실에 있어서는 하는 일 없이 다하고 있음을 뜻한다.

 

노자는 언어니 문자니 하는 것을 존중하지 않았다. ‘도가도 비상도

 

노자는 인위적으로 작위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교환케 하, 조용하게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가르친 인물임은 틀림없다.

사마천은 이러한 수수께끼의 인물 노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음하고 있. 노자가 떠난 후 아무도 그의 최후를 알지 못했다.

 

 

3장 황금시대

공자에 있어 도란 사람이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조차 없는 無門이었다. 마치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큰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과 일맥상통한다.

노자의 도가 초월적이라면 공자의 도는 현실 참여적 (감상: 마치 내 노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최인호 선생이 내 강의록 노트를 훔쳐간 것 같다.)

 

예수가 인류의 구원을 하늘나라에 목표를 두고 있고, 부처도 깨달음의 궁극을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드는 彼岸에 두고 있고, 노자도 도의 목표를 無爲두어 공자는 하늘나라가 아닌 지상의 자라에서, 피안이 아닌 此岸에서, 우주가 아닌 바로 전국시대의 난세에서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공자는 사상가라기보다는 교육자였으며, 성인이라기보다는 철인이었다.

 

달기, ‘은행알과 같은 눈에 복숭아 같은 뺨, 하얀 피부를 가졌으며, 桃花妝이란 연지를 바르고 주왕을 미혹시켰다.’ 오랑캐 나라인 유소씨국에서 공물로 보내온 달기에 빠진 주왕은 그렇게 찬탄하면서 종일 달기를 끼고 술을 마시며 주지육림 포락지형 경국지색을 일삼았다.

 

대사구의 재상직을 버리고 55세에 이상을 실현할 여행길에 오른다. 68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13년 동안의 주유열국이다. 13년 동안의 세월은 공자의 황금 시절과는 전혀 다른 문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13년 동안이나 훗날 자신의 신세를 상갓집의 개喪家之狗로 표현할 만큼 초라한 신세로 주유천하를 하엿다.

 

 

4장 세 번째 출국-喪家之狗

공자는 왕도를 밝히려고 70여 나라를 유세하였다.

공자는 왕도를 실현하고자 하여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70여 명의 임금을 유세하였으나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예닐곱 나라로 압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히 과장이다.

중화민국 초의 양계초는 사기의 과장을 지적하고 사실은 공자가 찾아갔던 나라는 주제위진이었으며 송조정 세 나라는 그냥 지나기만 하였다. 전부를 합쳐보면 지금의 산동 하남 두성의 경계 밖을 나가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무사했구나. 난 네가 벌써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유독 회에 대해서만은 여러가지로 칭찬한 공자의 말이 논어에 나오고 있다. 안회를 수제자로 삼으려는 공자의 각별한 애정이 보인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 밥과 한 쪽박 물을 마시면 누추한 거처에 살고 있다면 남들은 괴로움도 감당치 못할 것이거늘,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참으로 어질도다, 안회여.” 이처럼 안회는 너무 가난하게 살았던 탓일까. 아미 29세의 나이에 온 머리가 하얗게 세었으며, 스승 공자에 앞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선생님이 계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영공의 부인 남자는 한마디로 음탕한 여인이었다. 남자는 송나라 제후의 딸로 정략결혼으로 나이 든 영공에 시집을 왔다. 그녀는 결혼 전부터 이복형제인 宋朝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송조는 소문에 의하면 뛰어난 미남으로 위나라로 시집온 후에도 송조를 잊지 못하여 남몰래 위나라로 불러 죽여 은밀하게 정을 나누곤 했다.

 

일찍이 왕손 가로부아랫목에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에 아첨하라는 어째서 아랫목이 아닌 치마폭을 스스로 찾아갔던 것일까. 그만큼 공자는 위나라에서 등용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때문일까. 남자의 치마폭이 왕손 가의 부뚜막보다 더 천하고 더러운 것임을 몰랐던 것일까.

 

밀실 안에서 단둘이 있던 공자와 남자가 나눈 대화의 내용은 오늘날 그 어디에도 전해오지 않는다. 남자는 다만 성적 유혹을 하고 싶은 공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만나자고 청하였으니, 젊고 미남자도 아닌 57세의 공자에 대해 첫눈에 실망하였을 것이다.

 

자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예로써 서로 응대했다.”라고 변명하지만, 오늘날의 성적 희롱과 같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공자의 생애를 보면 유일하게 스승의 부당함을 따지고 직언을 하는 제자는 자로다. 이는 마치 예수를 따르던 제자 중 성격이 급한 베드로를 연상케 한다.

 

행동이 옳지 못하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라고 말하는 공자의 이런 태도는 공자의 인간미를 엿보게 한다. 예수와 석가 두 사람의 생애를 보면 단 한 번의 인간적인 실수나 약점이 보이지 않으나 유독 공자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불안전한 인간에게 있어 예수와 부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처럼 느껴지나 공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처럼 느껴지고 있다. 공자가 우리 인간처럼 끊임없이 실수하고 또 자신을 반성하여 수양을 통해 고쳐나가는 태도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先人의 모범이다.

 

지극히 흰 물질은 아무리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섞어서 먹을 수 없는 박이 될 때까지 한군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매달려 있는 채 밥도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쓰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어디든 가서 도를 행하고 싶다.

 

위나라에서 어느 날 공자가 경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문 앞을 지나다가 마음속에 딴생각이 있구나. 경을 치는 품이.” “천하다. 각박한 소리를 내다니.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시경에 말했듯이 물이 깊으면 옷 벗어들고 얕으면 옷 걷고 건너야만 하는 것을. 물이 깊거나 말거나 옷을 입고 의관을 정제한 채 예를 갖추어 물을 건너려는 공자의 허세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사마귀, 저놈은 앞으로 날아갈 줄만 알았지 물러설 줄을 모르며, 제힘은 생각지 아니하고 모든 적을 가볍게 아는 저돌적인 벌레입니다. 장공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 벌레가 만약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제일의 용사가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칭찬하고 수레를 돌려 사마귀를 피해가도록 하였다. 사마귀처럼 무모하게 권력자와 맞서서도 안 되고 호랑이를 기르듯 그의 성질을 따라 잘 길들여야 하며, 말을 다루듯 조심하여 권력자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란 간단한 것입니다. 정치란 먼 곳의 사람들은 흠모하여 찾아오도록 해야 하며, 가까운 곳의 사람은 기뻐하며 따라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대답은 다목적용이었다.

 

자로가 노인의 집에서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을 받았다. 이런 제자들이 걸인과 같은 모습을 보는 공자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평생을 믿고 따르는 스승 그대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을 먹여주고 어떻게 재워주고 있는가를 따져 묻는 준엄한 질책이 바로 자로의 고백이었다.

 

시경은 황하 유역의 여러 나라에서 부르던 시가 35.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할 수가 없다.’ “그대들은 왜 시경을 공부하지 않는가. 시는 감흥을 일으켜주고 사물을 올바로 보게 하며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은근히 불평할 수 있게 한다. 가깝게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줄 알게 하며, 새나 짐승, 풀 나무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한다.”

 

헐벗은 나무는 겨울을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봄을 기다림으로써 마침내 꽃을 피운다. 꽃은 인내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명분이 바로 이름이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 ‘正名主義는 공자의 정치사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다.

 

그 무렵의 권력자들은 공자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자공의 재능을 칭찬하였다.

인류의 스승인 예수와 공자 그리고 석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이며 박대받는 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 지닌 권력욕과 명예욕의 육의 속성 반대편에서 서서 영원의 진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염경은 자는 백우로 노나라사람. 제자 중 고행이 뛰어난 수제자. 그러나 그의 이름이 후세에 전하지 않는 것은 그가 나병에 거려 활동하지 못하였기 때문. “이럴 수가 없는데, 아아, 운명이로구나. 이런 사람에게 이런 병이 나타나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흥미로운 것은 공자가 석가, 예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성인이면서도 나병을 깨끗하게 낫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던 예수나 석가와는 달리 한 번도 기적을 보여준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의 손을 잡고도 그의 병을 고쳐주지 못한다. 공자가 예수나 석가처럼 깨달은 자로서 종교를 창시한 교주가 아니라 哲人임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중요한 장면이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 이 말은 곧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줄 만한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긴다는 것을 비유한다는 성어다. 공자는 오늘날로 보면 강박의 신경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인다. 일조의 노이로제 증상과 닮아있다.

 

밥은 고운 쌀, 회는 가늘게, 변한 것, 생선이 상한 것, 빛깔이 나쁜 것, 냄새가 나쁜 것, 제철음식이 아닌 것, 반듯하게 썰지 않은 것, 간이 맞지 않은 것을 드시지 않았다. 술만은 일정한 양 없이 드셨으나 난잡하게 취하는 일은 없으셨다. 받아온 술이나 육포는 드시지 않으셨다. 공자의 이런 까다로운 식성은 다른 성인들인 석가, 예수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석가는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인 육식을 철저히 금하라 하고 자신은 탁발(托鉢)하여 걸식하였다. 이는 식욕을 성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구도의 길을 갔다.

좋은 새는 나무를 잘 살펴서 깃들고,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가려서 섬긴다. 이것이 13년 동안이나 둥지를 틀 나무를 찾아 헤맸던 좋은 새, 즉 공자의 마지막 귀거래사이다.

 

공자천주(孔子穿珠)

정치적 이상을 통해 국가를 바로잡으려는 외부적 노력보다 학문적 사상을 개발하여 내적 자아를 완성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가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6년간은 노나라의 정치에 뛰어들지 아니하고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였다.

오늘날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의 묘비문 위대한 완성자, 최고의 성인, 문화를 전파하는 왕.’

13년의 천하 주유가 아홉 개의 구멍에 실을 꿰어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한 순회였다면 조나라에 있었던 공자의 말년기 6년은 아홉 개의 구멍에 학문과 사상을 시로 꿰는 대발분의 절정기였다. 공자천주, 공자가 구슬을 꿰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함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실없는 농지거리를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와 석가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실을 비유로써 설명하고 풍부한 휴머니티가 넘쳤던 예수도 농담하거나 재미를 위한 빈말을 삼가고 있다. 심지어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웃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중세까지 수도원에서는 웃음을 터부시했을 정도였다. 물론 성서를 보면 예수가 울었던 기록은 나온다.

 

제자 자유가 무성이라는 작은마을의 읍재가 되어 거리에서 현악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너는 어찌하여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저는 예전에 스승님께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는 지위가 낮고 높고 간에 모두 배워야 하므로 비록 작은 고을이기는 하지만 정도인 예악으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일찍이 공자로부터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음으로써 독실하게 이를 삼갔으나 규모가 협소하였으므로 미치지 못하는 단점을 가졌다는 평가했던 지하였지만 자하는 스승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까지 전파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자하는 말년에 아들을 잃고 지나치게 애통해한 나머지 너무 울어 눈이 멀었다고 한다. 눈이 멀어 그로 인해 심안(心眼)은 더운 밝아졌다. 만약 맹인이었던 자하가 논어를 저술하지 않았더라면 공자의 사상은 이처럼 불타고 생매장되어버림으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공자의 사후 백여 년 후에 태어난 맹자에게 바통터치를 함으로써 비로소 공자의 유가 사상은 공맹 사상으로 계승 발전될 수 있었다.

 

증삼(曾參)의 자는 자여(子輿) 공자보다 46세 아래로 자하와 더불어 막내 제자였다. 맹인 자하와 증삼은 흔히 공자의 사상을 전파한 쌍두마차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증자는 예수 스스로 뽑았던 열두 제자가 아니었으면서도 기독교를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하는 데 뛰어난 역할을 하였던 바오로를 연상시킨다. 증삼은 그의 아버지 증석과 함께 공자에게서 배웠다. 공자가 지은 효경도 공자가 증삼을 위해서 효도를 설명한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작가의 말

유림이 완간된 것은 2007년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유림의 일관된 주인공은 인물이 아닌 유교인 셈이었다.

무릇 소설은 어차피 사람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한 사람씩 인물을 따로 추려내어 독립된 단행본을 별책으로 펴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덜컥 뜻밖의 병에 걸려 혹독한 투병 중이어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가톨릭 주보에 매주 쓰는 글 때문에 <공자><맹자>를 다시 읽다가 갑자기 가슴에 열정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열정은 이런 것이었다. ‘25백 년 전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와 그로부터 백 년 후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가 오늘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꼬박 무리하면서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독립된 책을 펴내는 작업을 하였다.

아아, 이 신춘추전국의 어지러운 난세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으련만. 그런 바람이야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헛맹세와 같은 것. 어차피 봄날은 간다.

 

 

 

 



퐁뇌프에서도 잠수교가 그립다

마틴 프로스트/ 도서출판 금토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그 다정한 웃음 속에는 날씨만큼이나 상쾌하고 그날의 바람만큼이나 신선한 느낌, 그런 친절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꼭 나를 향해 웃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를 보고 웃었건 상관없다. 아름다운 느낌에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한 남자의 평범한 웃음이 어떻게 나를 그토록 끌어당길 수 있었을까. 나는 그때 연세대 불문학과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매력적인 웃음의 주인공은 체육학과 4학년 학생이었다.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나를 낳은 후 아버지는 다시 항구도시 모스타가넴으로 옮겨 자신의 안경원을 개업했다 모스타가넴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모든 도시가 투명한 공기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 도시는 바다를 끼고 있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늘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볕 아래 빨간 흙들이 윤기 있게 반짝거렸고, 어디서나 노란 개나리가 무더기로 피어났다. 여자들은 하얀 목면 옷을 입고 꽃들 사이로 걸어 다녔다. 갈색의 피부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과 흰 피부에 나염으로 물들인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노랑 빨강 보라색의 꽃들과 미묘한 빛깔의 하늘과 바다가 눈부셨다. 모스타가넴은 다양한 빛깔의 도시였다. 그 시절의 아름다운 빛깔들은 지금도 내 가슴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밝은 태양과 맑은 공기,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 또한 나의 기억 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를 키운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의 청명한 자연이 내 몸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지금도 나는 밝는 태양과 파란 하늘, 맑은 공기와 따뜻한 바람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그 도시에서 화가가 되었다. 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시를 써왔는데 시만으로는 도시의 아름다운 빛깔들을 전부 표현할 수 없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내버려 두셨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본인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둘 뿐이다. 나는 공부 대신 운동을 좋아했다. 유도를 배운 후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공부에 점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공부에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 자신감이 생기면 공부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게 되고, 저절로 잘하게 된다.

 

서울은 매우 시끄러웠다. 일본인들은 조용히 걷고 조용히 말한다. 그런 세상에 있다가 한국에 오자 모두가 목청껏 소리 지르고 마음껏 웃어서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저런 강인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관방에는 침대만 하나 덩그렇게 놓여있는데 굉장히 넓었다. 일본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만큼 큰 방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규모가 참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도 넓었고 여자들이 입고 있는 바지통도 넓었다.

 

처음 와보는 서울, 버스는 매우 빠르게 달렸다. 낡아서 소리가 요란한 버스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앞을 막고 있는 차들 사이를 잘도 빠져나가며 다른 버스와 경주를 벌이기도 했다. 차 안의 승객들은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모두 웃고 있었다. 서로 몸이 부딪쳐도 화를 내지 않고 신나게 떠들었다. 차에는 소녀 차장이 있었다. 그녀는 정거장에 내려서 손님을 태우고는 탕탕 힘차게 차를 두들겼고, 그러면 버스가 출발했다. 그 씩씩하고 강인한 모습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지금도 서울에 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의 길들은 대단히 넓다. 특히 파리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식당에서 한국의 대표적 요리라는 불고기를 먹었다. 먼저 숯불이 빨갛게 불붙은 화로가 나오고 조금 후에 얌전한 소녀가 양념한 고기와 함께 엄청나게 큰 가위를 들고 왔다. 소녀는 아기같이 예쁜 얼굴인데 어마어마한 가위는 무기처럼 무서웠다. 무표정한 얼굴로 소녀는 큰 가위를 들고 고기를 싹둑싹둑 잘랐다. 자신감이 넘치는 행동이었다. 아기같이 예쁜 소녀와 무섭게 큰 가위 그 장면 또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여관은 잠을 자는 곳이므로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의 여관은 그렇지 않았다. 그 여관은 여행객을 위한 곳이 아니라 근처에 흩어져 있는 술집의 손님과 아가씨들이 찾아와 잠깐씩 머무는 곳.

 

신촌시장 뒷길에서 만난 어린 소녀가 동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의 허락도 없이 나는 그 아이 덕분에 한국의 가정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마루에는 걸레가 놓여있었다. 걸레 같은 청소도구가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곳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프랑스에서는 걸레는 더러운 것으로 생각해서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청소함 안에 보관하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에서는 그것보다는 늘 쓰기 편리한 곳에 두는 것이 더 좋은가 보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가나 걸레와 빗자루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승근씨는 내가 좋아하는 검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아름다운 폼으로 공을 넘겨주는 그는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나도 최선을 다해 공을 쳐야 한다는 투지가 생겼다. 중학교 시절 에 관한 주제의 작문숙제를 할 때처럼 정성을 다해 공을 쳤다.

 

프랑스에서 테니스는 지성적인 운동으로 여긴다. 지성과 인격을 갖춘 운동선수들이 대단히 존경받는데 그런 선수들 중에 테니스 선수들이 많다.

 

서양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애인이 있더라도 노력해서 그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승근씨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서양에서는 남자친구가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지는 않는다. 각자 헤어져 집에 가면 그만이다. 모두 똑같은 성인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승근씨가 데려다 주는 것이 무척 좋았다.

우리의 만남은 프랑스 안경집 딸과 한국 시계점 아들의 만남인 셈이다.

 

한국의 인사법은 언제 어디서나 몸조심 건강 조심하라는 말이다. 나는 몸조심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누가 내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언제나 육체적인 건강보다 마음의 상태, 즉 정신적인 상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프랑스의 인사법이다. 건강을 조심하라는 말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것이 바로 한국 젊은이의 비극이다. 자녀들이 다 자라도 부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의 유행은 너무 획일적이다. 어떤 흐름이 한번 시작되면 모두 따라야 한다. 그것은 개성이 없는 사회의 한 특징이다.

 

승근씨로부터 받은 편지의 인상적인 말들을 수로 새겨놓고 승근씨 면회 갈 때의 한 장면을 그려놓기도 했다 정오의 니른함 속에서 하늘을 베고 풀을 벗 삼아 벌레와 이야기하고 산 개미와 싸움하면서 당신을 생각하네.’ 수에 새겨놓은 승근씨 편지의 한 구절이다. 나는 그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수를 놓으면서 몽땅 외어버렸다.

 

한국에서는 바쁘다는 핑계를 너무 많이 댄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가 어디서나 통한다. 바쁘다고 하면 무조건 이해해 주어야 한다. 바빠서 못 왔다. 바빠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바빠서 준비 못 했다. 바빠서 가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모든 것에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나 바빠서 밥을 먹지 못했다거나 바빠서 잠을 자지 못했다. 바빠서 옷을 입지 못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바빠서 편지를 쓸 수 없을 정도라면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할 만큼 바빠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아무리 바빠도 이야기할 것 다하고 담배 피울 것 다 피우고 차 마실 것 다 마신다. 바빠서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아버지도 친구들과 골프 치러 갈 시간은 있으며, 바빠서 시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다는 며느리도 친구들과 백화점에 옷 구경하러 갈 시간은 있다.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화천에 갔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집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승근씨가 나오든 못 나오든 그 집에서 승근씨를 기다렸다. 승근씨가 못 나오면 혼자 책을 읽고 산책을 했다. 주말에 그를 기다리는 시골 방 하나. 가구 하나 없는 방이지만 따뜻하고 편안했다. 승근씨 말고 그밖에 더 무엇이 필요하랴.

 

프랑스 사람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집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모두 집 밖으로 나오고, 특히 겨울에도 밖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씩씩해 보여서 감탄했다.

 

프랑스는 화려한 나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프랑스 여성들은 손을 잘 보호하지도 않고 화장도 안 한다. 오히려 한국 여성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훨씬 많이 쓰는 편이다. 나도 한국에 있으면서 주변 여성들의 영향을 받아 피부 손질도 하고 화장도 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라면 그런 것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여름에 나는 주인집 부부가 하는 것을 잘 모아두었다가 승근씨에게 목물을 해주었다. 윗통을 벗고 엎드리게 하고는 펌프로 퍼올린 물을 바가지로 등에 부어주는 것이었다. “어푸, 어푸.” 승근씨는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남자는 웃통을 벗고 마당에 나와도 되지만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정말 평등하지 못하다.

 

외국에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는 한국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3인용 병실에 들었는데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심한 냄새였다. 병원에서 좋은 식사가 나오는데도 사람들은 갖가지 음식물을 병실로 가지고 들어온다.

 

한국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입원하면 꼭 가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많은 방문객이 찾아온다. 입원실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환자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큰 소리로 웃어댄다. 아이들까지 따라와 소란을 피운다. 도대체 환자들이 안정을 찾고 조용히 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방문객이 왔다가는 거의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가버리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환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 바로 가버리면 큰 실례다. 바쁘거나 심심하더라도 얼마 동안은 꼭 환자와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거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실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구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도 늦게까지 있는 것보다 밥을 먹고 나면 바로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프랑스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주인이 재미가 없어서 가버린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실례가 된다.

 

임신을 하자 입덧을 심하게 했다. 평소에는 생각도 나지 않던 프랑스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서 프랑스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프랑스를 별로 그리워한 적이 없다. 부모님 생각도 많이 해보지 않았다. 프랑스 여자들은 대개 그렇다. 스무 살만 되면 거의 집을 떠났고, 한번 떠나면 집과 멀어졌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처럼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지 어디서나 많이 먹으라는 것이 최고의 인사다. 많이 먹어야 건강하고, 많이 먹어야 공부도 잘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촌 시장의 만두집 할머니나 육군 중위인 이승근씨나 똑같다.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조금 먹어야 건강하고, 조금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다고 말한다.

 

83년 서울 필동 한국의 집에서 전통결혼식을 했다. 필요한 옷과 도구는 거기서 모두 빌리고 내가 준비한 것은 버선과 고무신뿐. 결혼식 연습 말고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승근씨와 가족들은 여러 가지를 해주려고 했으나 거절했다. “마틴, 다이아몬드 반지는 하나 있어야 한답니다.” “뭐라구요? 그런 걸 승근씨가 살 수 있어요?” 나는 정말 승근씨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승근씨가 그렇게 돈이 많아요?”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 사주시는 거예요.” 그 말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데 왜 부모님이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시려고 하는 것일까.

 

프랑스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축하전보만 보내주셨다. 프랑스에서는 결혼식에 큰 비중을 두지 않기 때문에 양가 부모가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는 김소월을 좋아한다. 그의 시는 읽기 쉽다. 김소월의 시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의 시는 누구보다도 쉽고 간결하면서도 깨끗하다. 한국의 봄꽃과 같은 예쁜 슬픔이 있고 가을 하늘처럼 맑은 아픔이 있다.

 

한국에서는 왜 넓은 아파트가 필요한지 나는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살림살이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집에는 꼭 필요하지도 않은 가구와 물건들이 너무 많다. 일생에 한 번 쓸까말까 한 것들까지 집안에 잔뜩 끌어안고 있다. 그러니 집이 넓어야 한다.

 

태교는 엄마가 편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슬픔과 미움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물리치는 것이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많이 본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싸움을 많이 하는지, 택시를 타다가도 싸우고, 버스 안에서도 싸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다가도 싸우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싸운다.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다고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때릴 때는 며칠 동안이나 그 장면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마음이 편치않다.

 

특히 한국의 산부인과는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살벌하다는 느낌이다. 우선 아기를 낳을 때 아빠를 함께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기는 엄마 혼자 낳은 것이 아니다. 아기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뿌린 사랑의 씨앗인 만큼 둘이 함께 낳아야 한다. 아기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똑같이 필요하다. 아기가 나오는 순간 아빠는 엄마와 고통을 함께하며 아기의 탄생을 함께 축복해야 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엄마로부터 떼어놓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병원에서는 아기가 태어자나마자 엄마로부터 떨어져 신생아실로 들어간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기가 신생아실에서 누구를 의지하란 말인가. 병원에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지 못하게 했는데 그것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아기에게 알맞은 것은 엄마의 젓이다.

 

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을 하러 가려는데 양수가 터졌다. 낮에는 남편이 달려와 나를 데리고 뉴코아 백화점에 가서 출산에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쇼핑을 하고 돌아오자 약하게 진통이 왔다. 남편은 강좌에서 배운 대로 내 진통의 시간과 주기를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러면서 그는 집안청소를 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위해 집안이 청결해야 한다면서 안방과 거실, 부엌과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다.

 

마치 하나의 우주가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아기가 다 나오는 데 20분쯤 걸렸는데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어요.” 남편은 뒤에 그 순간을 그렇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갓 태어난 아기를 내 배 위에 올려놓았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아기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탯줄도 자르지 않은 채, 내 배 위에 엎드려 가만히 엄마의 체온을 느끼고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미리 배운대로 탯줄을 실로 묶고 가위로 잘랐지만 단번에 잘라지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가위질을 해야 했다. “잠깐 밖으로 나가요. 아기에게 젖을 먹여야 해요.” 남편을 방 밖으로 나가게 했다.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아기를 안심시킨 뒤 젖을 물려야 한다. 사람들을 내보내고 조명을 줄이고 얼마 동안 아기를 정성스럽게 감싸 안고 있다가 젖을 물리자 아기는 드디어 힘차게 빨리 시작했다. 조금 후에 남편이 미역국을 데워 주었다. 저녁에 내가 진통하는 사이 혼자 미역국을 끓여 두었던 것이다.

 

한강, 강물은 시간과 날씨 계절에 따라 빛깔이 달랐다. 어떤 때는 역광을 받아 수면의 흔들림이 반짝거리며 살아났다. 서울에 그렇게 넓은 강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걸어서 고작 5, 뛰어가면 1분 안에도 건널 수 있는 파리의 센 강에 비하면 너무나 넓고 시원한 강이다. 나중에 파리에 가서도 한가을 몹시 그리워했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퐁뇌프에서도 나는 잠수교가 그립다. 많은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한강을 보고 놀란다. 세계 어느 도시에도 그처럼 넓고 깨끗한 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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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책이다. 버리는 책 속에서 주워왔다.

프랑스여자와 한국남자의 사랑이야기다, 읽는 내내 ~~ 그리고 여운이 진한 뱇깔로 남아있다. 요즘 EBS 교육프로그램 중에 프랑스식 육아가 대세다. 육아를 할 나이는 지났지만, 그냥 흥겹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야기 논어

박경종엮음 / 한국 교과연구회

 

공자께서 양화가 출타하고 없는 틈을 타 통돼지 구이인사를 하러 갔다.

그 당시는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서 선물을 받았을 경우에 상대방에게- 사흘 안에 사례의 인사를 하러 가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공자님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저도 곁에 계신 시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틈을 타서 밑반찬을 만들어 장독대에 살짝 올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쳐온 날이 많습니다. 왜냐구요? 잡히면 집에 못 오니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 솜씨는 최고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전체가 조화되어 있어야 한다. 별은 이 지상 어느 곳에서 보아도, 북극성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다. 각자 홀로 빛나면서 전체 속에 융화되어 있다. ( , , 융합, 하모니 어울림 조화, 화합, 彬彬)

 

중궁(염옹)한 나라의 임금이 될만한 인물이야라고 공자가 말했다. 염옹이 왈 평소 나의 생활은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행하고 백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소탈하고 대담하게 대한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자신의 생활도, 백성을 대해 정치를 하는 데에도 모두 너무 소탈하고 대담하게만 행동한다면” (ㅋㅋ 그건 막가자는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소탈과 대범)

 

옛날 중국에서는 일식이 일어나면 임금이 손수 북을 울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해가 어떤 나쁜 것에 먹혔으니, 온 백성이 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금이 백성에게 호소하기 위해 북을 치는 것입니다. 공자님이 예순 살의 생일에 하는 말입니다. “돌이켜 보니, 나는 그 무렵 야심이 많았었지. 출세하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학문을 닦았고, 돈도 많이 벌고 큰 집에서 살고 싶었어. 명성도 얻고 높은 벼슬자리에도 오르고.” “그럴 무렵에, 나는 일식을 보게 되었디. 내 마음속에 얽혀 있던 것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용기와 같은 새로운 것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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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어린이 책을 한 권 주워왔다

동화책 수준이 나에게 딱! 맞다.

 

 

겨울 햇살 말갛게 비치는 창가, 반나절 책보기가 가장 알맞은 공간이다.

이곳 책방(안방)이 엔젤섬이 되었다.

베란다 창문도 있고, 밖에서 방학한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도 들리고,

윗집의 물 내려오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부엌에서 밥 차리는 남편의 거동소리가 들린다.

사식이다.

나는 갇혔다. 샌프란시스코 엔젤섬이 따로 없다.

유배생활 중에 가장 바람직한 수양은 책 읽기다.




 

 




유럽의 책 마을을 가다


글 사진 정찬국 / 생각의 나무

 

     

프로방스에서 이곳까지 온 좌판 위에서 거의 잊힌 미술사가의 라파엘로 전기를 집어 들었다. 명판 몇 점을 곁들인 1869년 판이다. 몇 장을 넘기자 마른 미색 꽃 한 송이가 떨어진다. 잎이 나비 날개처럼 접히고 꽃받침도 다소곳하다. 향기로운 주검이다. 140년의 세월을 넘어 그 책의 임자가 전해준 그 손길과 마음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망연자실했다.

 

책을 살리고 만드는, 책방과 출판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유럽 여러 나라에서 책 마을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유럽연합이 점점 커지면서 대도시에서 책방과 출판사가 크게 줄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버티던 주요 도시의 서점가도 왜소해졌다. 러시아까지 가세한 강대국 투기꾼들이 부동산을 공략하면서 우선 책방들이 희생되었다. 물론 컴퓨터와 휴대폰 등 디지털제품 가게도 책을 몰아내는 데에 한몫했다.

농촌은 농촌대로 작은 마을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도시에서라면 다른 것이 빈 것을 채우지만, 농촌에서는 이마저 여의치 못하다.

우리 일상의 곁에서 작고 아름다운 것이던 전통적인 서점은 이제 풍전등화 밑에 놓여 있다.

오래된 마을 공동체를 구질구질하게 여기고, 그곳에 살던 사람까지 쫓아내며, 아파트 지상주의에 눈이 먼 사람들이 지도를 마음대로 바꾸면서, 신도시를 짓고 있다. 또 그런 신도시에 발맞춘 거대한 출판도시도 탄생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책에 대한 사람은 내리사랑처럼 자연스럽다.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스위스

책과 술, 낭만이 어우러지다.

쥬네브의 플랭팔레- 예기치 못한 아늑한 사유의 공간 레만 호수는 사진발을 잘 받으니그곳을 끼고 있는 쥬네브(제네바) 또한 포토제닉하다. 백조와 오리, 아이들과 노인, 분주히 오가는 남녀, 분수와 해안의 보행로 모두 꽤 서정적이다.

양복 입은 신사가 가랑이 사이에 가방을 끼고서 책을 뒤적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당 앞 계단에서 잠시 볕이 난 틈을 타 책에 얼굴을 묻고 있는 여인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땅에 기대어 부지런하고 소박하게 살던 스위스 농업의 실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과자나 화장품을 포장한 듯한 분위기를 넘어서 란제리처럼 말초적인 스타일도 서슴지 않는 우리네 책은 어디까지 독자에게 아첨할지 두고 볼 일이다.

색동옷을 입은 철부지처럼 알록달록한 책들이 언제쯤 성숙한 행색이 될까. 부대찌개가 상징하듯 얼얼한 잡탕 취미는 언제쯤 자연의 맛으로 되돌아갈까. 스위스 친구가 우리네 정서를 빗대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게라고 농담을 즐기듯 시집은 시집답고 고전이 고전다운 제 모양을 갖출 날은 언제일까.

 

 

프랑스

어디든 달려가는 책의 수호신

주말에 일하지 않는 택시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중요한 행사는 주말에 열어놓고 막상 주말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는다. 택시를 부르는 전화는 부서지고 녹이 슬었다.

길바닥에 펼쳐진 책 상자 속에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 쥘리에트 모리오가 지은 명성황후의 일대기 운현궁이 성큼 눈에 띄었다.

도서관에서 미리 알고 가서 책을 신청해 보는 것과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눈앞에서 발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책과 더불어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택한 그들은 분명 책의 수호신이다. 큰 욕심 없이 그저 노잣돈이 된다면 어디고 기꺼이 달려가 귀한 소식을 전할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마침내 날이 저물고, 그들이 삼삼오오 털털대는 차를 몰고 모두 떠나버릴 때까지 시커먼 대들보 밑에 주저앉아 있었다.

 

 

오드의 몽톨리외- 중세의 순례자처럼 고즈넉한 풍경을 거닐다.-

절판된 중고 본이 신간보다 고가로 유통되는 일이 허다하다. 좋은 책은 분명 갈수록 가치가 오른다. 우리나라에서 책값은 얼마던가? 아니, 수박 한 통은 얼마더라? 등심 1인분이 얼마인가? 운동화 한 짝에도 7~8만 원은 된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에서 책은 헌 신발짝 값만도 못하다. 중고 서적은 대체로 무게로 저울에 달아 유통된다. 출판인이나 저자 편에서는 국민 수준이 낮다고 하고, 국민은 책이 제값을 못한다고 의심한다. 수많은 시간과 지성을 쏟은 저자나 역자의 책이든, 시정잡배가 대필시켜 쓴 책이든 종잇값이나 쪽수로서 정가를 맞춘다. 지성과 정신노동의 가치를 이렇게 경시한다.

 

책방 주인이 반드시 독서광은 아니지만 바쁜 파리 생활에서는 꿈도 꾸기 어렵지만, 생활 리듬이 느려 서점 주인이 아마추어 작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정말 책을 사랑하다 보면 글에 연정을 품게 된다.

 

부르고뉴의 퀴즈리

거대한 책으로 변한 동화 같은 마을

책 마을퀴즈리의 초입은 꽤 동화적이다. 거대한 아치 대신 책을 조형물로 세워 그 책갈피 사이로 빨려드는 효과를 연출했다. 주 진입로 샛길마다 책을 수북이 올린 좌판이 즐비하다. 말하자면, 마을 입구는 대성당처럼 익랑(翼廊)처럼 펼쳐진다.

선 채로 하염없이 독서삼매에 빠진 할아버지도 보기 좋았다.

서점 앞에는 몇 집 건너씩 벤치가 있다. 쉬엄쉬엄 보라는 배려였다. 궁둥이를 마주치며 만난 붉은 저고리 차림의 멋쟁이 노신사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그는 마콩 대학 고고학 교수로 주변의 여러 고대 유적발굴에 참여했으나 지금은 은퇴했다고 한다. 집에 쌓인 책과 자료를 주체할 수 없고, 바람도 쐴 겸 해서 주말이면 책을 내다 팔고 또 찾기도 하며 즐긴다고 했다.

 

마을 가운데 길은 그랑 뤼(대로)’ 라고 하지만 이름만 그럴 뿐 차가 다닐 수 없다. 이 길가로 푸줏간’, ‘문고판’, ‘작은 행상이라는 친근한 이름의 서점들이 골목 깊숙한 곳에서 손님을 끌어들이려 익살을 부린다.

한나절 동안 다른 서점들을 둘러보고 온 내게 부르동은 신바람 난 표정으로 자기 서점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고 으스대듯 에멜 부르다레가 1904년 조선을 탐사하며 기록했던 조선에서》 《조선 여인들이었다. 이 뜻밖의 수확은 하루의 피로를 한순간에 몰아내는 돗했다.

 

책 마을 서점이 인터넷 서점과 공존하는 데는 전략이 필요하다. 부르동은 계산기도 없이 연필로 계산한다. 카드 결제가 되진 않는 점, 그 대신 흥정하는 재미와 선심을 쓰는 호기, 여러 권을 구입 했을 때 한 권쯤 얹어주는 인심. 이런 것들이 제도의 강박에서 풀려나가 무섭게 되살아나는 인간적 교감이 아닐까.

 

 

비에의 몽모리옹

너무나 화려하고 고상하지만

책 박물관처럼 나름대로 새로운 개념의 문화 공간을 갖추고, 낡은 건물을 현대식 디자인을 가미해 보수하고 서점과 공방은 해마다 늘어났다. 서점은 열한 곳, 예술, 공예 관련 공방은 무려 열여덟 곳. 사실 이곳이 다른 집보다 수강생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방보다 훨씬 많은 공방은 말이 많은 공적 자금의 결과이기도 했다. 방학 때는 학생, 학기 중에는 주부들이 수강생이다.

 

기본적 문학 행위란 글쓰기가 아니라 출판이며 인쇄하고 독자가 구매하는 행위’. 적어도 프랑스에서의 최근 통계를 보면 어림잡아 500권의 원고 중 두어 권만이 소설로 출간된다. 이렇게 문학은 수많은 사산아를 쏟아낸다. 문학적으로 낙태하거나 유기되는 원고는 너무 많고, 문단에 선을 보이지 못한 채 120대 미혼모가 낳은 아이처럼 버려지는 옥고(玉稿)’도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 있다. 문학이 산업화하면 할수록 이런 비극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유기되는 작품을 위한 원고 복지회같은 것이라도 만들어 다른 집이나 기관에서 살려내도록 입양이라도 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문인 사인회나 낭송회는 물론 대담 자리도 주기적으로 마련한다. 이런 활동은 영미 세계에서는 서럽이 프로모션차원에서 진작부터 꾸준히 해오던 사업이다. 더 전향적으로 시인 극작가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함께 호흡하면서 웅변과 수사의 전통을 이어나가려고, 정거장과 공원과 선술집에서도 반짝 이벤트를 벌이는 활기 넘치는 이탈리아에 비해서 뒤늦은 감이 있다.

 

책 박물관에서 마을 아래쪽으로 경사진 비탈길의 한쪽 난간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그림 같은 모습로 해바라기 삼아 책을 읽고 있었다. 분명 그냥 지나친다면 섭섭하렷다! 처녀의 이름은 클레망소, 주말에 고향 부모님을 찾은 그녀를 보고 온몸으로 책 마을을 보여주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했더니 그나마 나마저 없다면 우리 마을은 어떻게 하라고요라고 깔깔대며 받아넘겼다.

 

니에브르의 라 샤리테 쉬르 루아르

도시 생활에 찌든 먹물들이여 오라- 모든 출판 시장이 파리로 집중되었던 문제가 곪아 터지기 시작했다. 출판사와 서점은 비대한 몇 곳으로 통합되었다. 군소 출판사와 서점은 속속 문을 닫아야 했다.

 

아직도 20년 전의 원고료와 저임금 속세서 인문학도 출신의 수많은 아까운 인재가 얼마나 많은가, 공부와 학식, 그리고 순진하게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분주한 날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고, 대형 서점의 서가도 요즘처럼 휘황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지난날의 기억은 강바람만큼이나 매섭다. 넓은 강폭을 출렁대며 오가는 바람이 강변 화랑의 진열장에 놓인 책 그림의 페이지를 훌훌 넘겨대는 듯했다.

사진 속의 카페가 아직 남아 있을까? 입심 좋고 팔뚝에 털이 숭숭한 할아버지들을 만나 재미있는 회고담을 들을 수 있을까?

 

 

로렌의 퐁트누아 라 주트

18세기 풍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 - 저수지가 거울처럼 빛나는 들판 사이로 들어섰다. 건초더미가 쌓여 있고, 수레바퀴가 나뒹군다. 길가의 높은 외양간에서 금방이라도 소 한 마리가 걸어 나올 듯하다.

서점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의 문지방을 넘자마자 항상 수소문하던 책들과 잃어버린 책, 잃어버린 문인, 저자를 찾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알랭 드 피즈는 서점에 소설 쓰고 있네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였다.

 

 

브르타뉴의 베슈렐

마을로 관문인 렌시내에 있는 밤이 새도록서점

 

 

루아르의 앙비에를

책을 켜켜이 쌓아놓고 지성의 잔치를 벌인다 -

다비드는 장사가 서툴다. 그래서 조금 전, 사람들이 꽤 찾는 만화 뭉치를 들고 온 아주머니와 흥정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그는 마음이 여려 가격이 뻔한 책에도 선뜻 새 값을 매길 줄 모른다. 아직도 문학청년처럼 소설을 읽고 책을 찾아내는 일에나 익숙하다.

 

그는 마을의 후견인으로 스타도 물색했다. 마자린은 자전적 소설로 꿰맨 입으로 말문을 터트려 단김에 20만 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미모의 작가. 특히 미테랑 전 대통령의 숨겨둔 딸로서 세간의 화제를 몰고 다닌다. 마자린은 얼마 전 서울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냉동고 영아 살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는 신작을 내놓아 지금 한창 참새 떼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혹한 운명에 의연하게 맞서 세속적 성공으로 복수한 당찬 여인이었다.

케스툴리프랑스어 너 뭐 읽니?”

 

 

 

베네룩스 3

벨기에 플랑드로의 담 - 과연 비바람을 맞지 않고 플랑드로 땅을 밟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 찍을 틈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안달이 날 만큼 비는 온종일 그치지 않았다. 그 빗줄기가 이곳으로 도던 길에 남부역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 고릴라 같은 경찰 둘이서 악을 쓰며 초라한 동남아 사내를 난폭한 몸짓으로 몰아세우고 두들기는 광경과 마주쳤다. 벨기에제 가장에 달랑거리며 붙은 귀여운 고릴라의 다른 모습이다. 이웃마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사람의 뿌리 깊은 고질인지라,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디 이런 일을 한두 번 목격했던가.

 

최근 유럽에서 기차역들이 깨끗해졌다고 좋아라하는 여론이 있다. 인권보다 위생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간 무고한 유색인이 얼마나 수모를 당했을까. 그런 식으로 깔끔한 체하는 사람들은 청소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니까 인종 청소도 서슴지 않는다.

한편 누구나 잘 알다시피 벨기에는 세게 최대의 만화 생산 소비국이다. 담에서는 책방마다 수북한 만화책을 찾기에 그만이다. 일본 만화는 풍부한데 아직 우리 만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달팽이서점은 천천히 찾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분류에 무심한 채 책들을 뒤죽박죽으로 쌓아두었다. 그래서 손님은 달팽이처럼 천천히 이 책장에서 저 책장으로 먼지 구덩이를 파고 넘어야 한다. 끈기만 있다면 잡초 속에서 찔레꽃처럼 함초롬한 물건을 찾아내리라.

아니나 다를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벨기에서는 그저 감수해야 할 일상이다. 광장 모퉁이를 돌아 카페를 찾았다. 올리브 빛에 짙은 청보랏빛을 보색으로 곁들인 창틀로 테를 두른 카페에 들러 뜨끈한 국물에 빵 한 조각을 곁들였다. 브로콜리를 갈아 넣고 버터를 섞은 걸쭉한 야채수프가 일품이다.

 

흔히 놀라운 창작을 보여준 인간들이 그렇듯이 그의 삶은 고요했다. 빈센트는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했다. 그림으로만 다 할 수 없는, 무언가 비장하며 애절한 개성이 필요했다. 그 가치를 높이도록, 그 작품을 더욱 신화로 채색하기 쉽도록, 그래서 경매장에서 더욱 천정부지의 또 다른 신화를 리드할 수 있도록.

빈센트가 살아서 한 손에는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창녀의 가슴팍이라도 주무르며 침대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인터넷을 떠돌기라도 했다면, 그가 긁적거리는 낙서 조각이라도 가진 사람은 얼마나 안절부절못하면서 내일의 경매 일자를 손꼽아 기다렸을까.

빈센트만큼 우리 출판 환경을 공교롭게 증언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이상적이지만 부조리한 요구, 값싸고 좋은이라는 그런 지표가 환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사람들은 책 앞에서는 이런 몽상을 즐긴다.

 

 

룩셈부르크 비안덴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책자 사람들은 저마다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로 이야기한다. 호텔과 식당과 가게에서 그 이름과 간판도 제각각이다. 이곳이 독일의 산골인지, 프랑스의 소읍인지, 아니면 플랑드르의 마을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모두 그럴듯하게 예스럽고, 어중간하다. 한곳에 오래 있던 것의 기억은 없다. 서로 절충되고 중첩되고 그럭저럭 어울려서 제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독특한 개방성이다. 그저 여러 세기 여러 양식이 중첩되었으나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

다닥다닥 붙은 집집이 활짝 열어젖힌 차고가 이색적이다. 그 속에는 그동안 모았던 책 상자들이 줄줄이 손님을 맞는다. 마치 부자들이 모처럼 축일을 맞아 곳간 자물쇠를 열어 굶주린 독자를 맞이하려는 모습이다.

 

네덜란드 헬데를란트의 브레더보르트

베르메르의 그림을 닮은 고적한 마을

넓은 여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은 여기저기 연못 위로 수초가 떠다니고 그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젖어있다. 마을을 우선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은 걸어 다니는 이들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다. 자전거가 지우개질하듯 휑하니 지나간 배경은 붉은 벽돌담이 절반이고 그 나머지는 책들이다. 벽의 틈새에 낀 이끼도, 길가 잡초도 모두 책을 꾸미는 띠 장식처럼 피어있다.

골목길 나무상자에 담아 놓은 책은 동전을 집어넣고 가져가면 된다. 가장 원시적이고 매력적인 자판기였다.

세월이 가면, 흔히 펜의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의 운명은 엇갈린다. 역사로서나 문체로서나 완승을 거두며 필독서가 된 사가, 비평가의 책을 과 나란히, 재중의 호기심을 노린 허구로 윤색되어 소설 쓰고 있네!”라며 핀잔을 받은 책까지도 고가로 유통된다. 이렇게 변덕스럽고 오리무중인 대중 취향이 승승장구하는 시대에는 치열하게 탐구하는 사람보다 입심 좋은 문인이, 칼이 아니라 펜을 놀려 싸우는 평화로운 전쟁터는 지성과 감성이 다투는 터전이다. 월계관을 쓴다.

 

 

스칸지나비아

노르웨이 - 세상에서 가장 운치 있는 책방거리 책 모양을 수놓은 엉뚱한 바이킹 털모자를 하나 사서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오자 완연한 저녁이다. 책방들이 희뿌옇게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드는 부두 테라스로 나왔다. 부두 앞 책방 옆집이 하나뿐인 호텔이다. 제일 전망 좋은 방이라며 노라의 방을 내주었다. 노라처럼 가출한 아낙네는 못 되지만 망명지에서 뒤척이는 영감처럼 서점에서 찾은 마을 역사책을 마지막까지 넘겼을 때 에필로그는 엉뚱하게 존 레논의 <이매진>이었다. 머릿속에서는 한국어의 의미가 울퉁불퉁 부딪쳤다.

 

 

독일

대낮에 밝혀진 붉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 보니 자연스레 18세기 계몽기의 독일이 떠올랐다. 당시 독서광이 출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유행 덕분에 제일 많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커피 장사라고 하지 않던가.

지도와 도록과 나란히 첩첩이 쌓인 사진집들을 들춰나가자 우리 6·25전쟁에서 알몸으로 지프를 올라타고서 성기(性器)에 철모를 걸고 승리를 구가하는 미군 병사의 사진이 튀어나온다.

작센안할트의 뮐베트 - 손에 손에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한 건물 현관 앞에 모여 10주년 책 마을 행사를 하고 있다. 사흘간의 일정에서 백미는 마지막 날 저녁의 지역 문학의 밤이다. 이 지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과의 대화와 오토렌레중’, 즉 저자 낭송회가 마련되었다.

 

 

영국 & 아일랜드

잉글랜드 컴브리아의 세드버그 요크셔 데일스에서 컴브리아로 접어드는 산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엔지미온이 영원히 잠든 달의 계곡처럼 오전인데도 짙은 안갯속에 여전히 달빛이 교교하다. 어지럽게 굽이치며 돌아내려 가는 길가의 언덕은 제주도의 오름이 바람에 실려와 이곳에 내려앉기라도 한 듯 다소곳하다.

 

 

스코틀랜드 덤프리스 앤드 갤러웨이의 윅타운 - 잊힌 세월이 말을 건넨다 - “위타운이 어떻게 북타운이 되었습니까?” “그냥, 우리가 이겼지!” 그 산파였던 안젤라 에버리트는 투사처럼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이렇게 답했다. 이제 10년이 된 책 마을이 정부에서 시행한 공모에 선정되었다는 뜻이다.

책 마을 첫 10년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이제 정말로 은퇴를 준비하느라 가게도 내놓았다.

카페를 겸한 안젤라의 서점은 여권신장파로 자리를 잡았다. 모딜리아니의 여인처럼 갸름한 버지니아 울프의 초상이 언제나 슬픈 눈망울을 한 아프리카 소녀의 초상과 나란히 벽에 붙어 있다.

큰 십자가, 공동묘지와 납작하게 이어지는 살롱과 이발소, 빵집과 복덕방, 꽃 가게와 사진관. 단지 보안관이 드나드는 파출소만 없다. 그 사이에 책방이 끼어들어 있다. 엷은 핑크와 스카이블루로 칸칸이 칠한 틈 사이로 예스러운 전통을 간직한 장식의 간판들이 그럭저럭 어울린다. 슈퍼마켓만 큰 네온사인을 번쩍이며 활기 있어 보일 뿐 적막강산이다.

슈퍼마켓에서 몇 집 건너에 선명한 배추벌레 빛깔로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큰 서점이라고 써 붙인 책방이 있다. 입구에는 화재로 타다 만 책을 쌓아서 문설주로 삼았다. 애도의 기념비로 삼아 더 좋은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런 책들 상당수가 지원금을 받아 출간되었다. 지원금을 받고 쓴 격조 있고 현학적인 책들은 아깝게 사장돼 중고 서적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일랜드 킬게니의 그레그나마나

토머스타운은 거대한 수도원 건물을 빼면 납작한 한촌이다.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거리는 황야를 연상시키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운전은 거칠기만 하다.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물으려 하니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거리낌 없이 노리고 웃어댈 때 벌어지는 입은 하나같이 검게 탄 옥수수자루 꼴이다. 어쨌든 사과로 맥주 맛을 낸 사이다도, 쌉쌀한 킬케니 생맥주도 없다. 내빼는 수밖에. 사태가 어떻든 길을 물어야 했다. 말쑥해 보이는 식당이 하나 눈에 들었다. 샌드위치 집이다. 동네의 다른 바와 이를테면 물이 다른 집이다. 제대로 된 구수한 호밀빵에 커피가 일품이다.

 

물건이 사람보다 더 뻐기기 시작하고 건물과 도시에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엄청난 역전의 시대가 시작되는 모습이다.

가로나 세로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자모를 갖춘 한글 같은 어가 또 있을까? 이런 종횡무진의 문자를 갖고도 참신한 디자인을 쏟아내는 일본 출판에 비해 뒤떨어지니 부끄러울 수밖에. 조상이 준 천금 같은 선물을 이렇게 뻣뻣이 활용할 줄 모르는 후손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디자이너들은 한글로 하면 디자인이 나오니, 안 나오니 하면서 무수히 쏟아지는 도록이나 소책자에서 영문을 고집한다.

 

아무리 아일랜드의 개장경제가 호화이라 하더라도 그래, 미샤야. 돈 많이 못 벌더라도 힘들 땐 고향으로 가거라. 너도 언젠가는 고향이 좋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넓은 세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세상이 좁아도 할 일은 많단다. 아저씨 또한 벌이가 신통치 않았고 고향이 싫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더라도 내일 새벽에는 돌아갈 거란다.” 내 말을 경청하던 착한 미샤를 보내고 나니 그새 별이 총총하다. 내일은 맑기는 하려나. 이제 책 마을을 핑계로 훔쳤던 시간을 반납하고 발길을 재촉할 이유를 찾아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한다.

 

나도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책 마을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고 그 원고에 생명을 주고, 그것이 세상에 살아 있도록 유통하는 사람이다.

 

유럽 사회는 이른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유능한 문학, 예술 평론가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던가? 그러니 타인에게 읽기를 가르쳐주는 사만은 반드시 학벌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식도 상관없다. 옛날에 할머니들은 손자를 무릎 위에 눕혀놓고, 교재도 없이, 기억에서 울려 나오는 길고 긴 이야기를 끝없이 들여주던 이야기꾼이었고 서사시인이었다.

 

어느 날, 프랑스 한 산골 마을 책방에 하도 군침을 돌게 하는 책이 많아 문을 열고 들어가려니 닫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위층에서 파이프를 문 턱수염 신사가 내려왔다. 그가 서점 주인인데 알고 보니 문인이었다. 그의 2층 서재는 조촐하고 소박하며, 전망도 별것 아니지만, 잡스러운 겉멋 같은 것이 끼어들 틈이 없고 그렇다고 초연한 척하거나 현학적인 멋을 부리는 분위기도 없었다. 그저 책을 즐겨 읽고 또 쓰는 사람의 방이다.

 

이번 기회에 책에 미친 이들은 그렇다 치고,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또 멀찌감치에서 액을 읽지도 않으면서도 마냥 좋아하는 그런 사람도 만났다. 카페의 아주머니나 성당의 종지기처럼. 아무튼 마을에 있는 도 중요하지만, 책이 있는 마을도 중요하다.

 

수치상으로 경제 수준과 교육수준이 대단히 높은 우리나라에서 도서문화는 참으로 쑥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헌책방이라면 거의 ‘3D’ 업종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책이 잘되자면, 우선 책을 다루는 사람이 잘 되어야 한다. 책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만들고 전하는 모든 사람이 중시되어야 한다. 그런 날이 언제일까. 중매쟁이들이 어느 출판사 다니는 총각 아니 색싯감을 잡으려고 난리를 피우고, “책 만드는 놈한테 딸을 보내야 할 텐데라든가, “아무개 서점 아들 없소?” 하면서 수소문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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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곳

대도시도 아닌,

이름있는 도서관도 아닌

대형서점도 아닌,

소도시 작은 마을 도서관도 없는

좁은 오솔길 같은 책 마을을 갔다

나는  마을의 도랑이 되고 풀잎이 되었다


읽으면서 내내 '상큼'을 떠 올렸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네가 생각나" 카톡을 보냈다


그래, 이런 거야

왜?

뭐하러?

이런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


그뿐이 아니다

갈피 갈피, 저자가 찍어놓은 소박한 사진들이 좋아

한 컷 한 컷 찍었는데....

무슨 오류인지 사진이 없다


내가 지금 요일마다 종종거리며 하고 있는

강의 요청이 끊어지면


훗날......

어딘가 한적한 작은 마을에

책속의 그들처럼

.......



자그마한 여인

돋보기 코에 걸치고

골목 길 평상에 앉아

한 쪽 한 쪽 책장은 지나가는 바람이 넘겨주고

나는 해바라기하며 

꼬박꼬박 졸고있을란다


그런, 한적한  풍경이 되고 싶다


누군지 모를 저자, 정찬국님은

이런 책을 쓸수 있어 참 좋았겠다







 

크로아티아 여행바이블

. 사진 오동석 / 서영





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





 

마력의 나라, 크로아티아와 친해지기

크로아티아는 유럽세서 우리나라의 제주와 같은 곳이다. 여름이면 유럽인들이 몰려와 크로아티아의 모든 해변과 1천여 개의 섬에서 한 달 종도 휴가를 보낸다. 정식 명칭은 흐르바트스카공화국이다. 샤프펜슬과 만년필도 크로아티아에서 발명됐다. 넥타이의 원조국이기도 하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의 고향이기도 하다.

 

 

여행하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본적이 없다.

교통상황이 열악하니만큼 크로아티아는 느리고 천천히 여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볼거리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사진 찍으러 로빈간다

로빈에 들어서면 새파랗게 펼쳐진 바다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어선들과, 세련된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스텔 색조 집들이 방파제 하나 없이 바다에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많은 사람이 이 골목으로 다니며, 작은 갤러리와 예술 공방, 카페, 식당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주민들은 관광객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기에 관광객이 찾아오는 시간에 맞춰 작품과 물건을 내놓는다. 식당에서는 대부분 거리에 테이블을 내놓고 파스타나 피자를 판다. 작고 아담한 테이블은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인다.

 

 

물벼락 주의 여인들이 빨래 물을 아무렇게나 창밖으로 버린다. 골목을 걷다 뜬금없이 물벼락이 쏟아진다.

 

 

성격 급한 식당 서빙- 먹는 사람이 포크와 나이프를 무심코 나란히 놓은 순간, 이들은 다 먹었느냐는 물음도 없이 습관적으로 접시를 가져간다. 빨리 치우려는 종업원과 더 먹으려는 손님 사이에 오해가 없어지려면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을 때 위치를 조심하자.

숙소는 대부분이 해안가에 있어 바다를 감상하기는 좋다.

젊은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바다 위에 있는 클럽에서 밤을 즐긴다.

유럽과 교통 개인적으로 여행할 때면 렌터카를 빌려서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간다.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를 로밍하고 여행을 갔다면 구글 맵을 이용하면 좋다.

 


 

요정들이 사는 곳 플리트비체 예제로

플리트비체를 둘러보려면 최소한 3~5시간, 지루할 틈이 없다. 산책로는 너도밤나무를 길게 잘라 이어 붙여 만들어졌다. 운동화가 좋다. 아름다운 물빛을 잘 감상하려면 해를 등지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풍이다. 한집 건너 한 집꼴로 피자를 판다. 하지만 이탈리아인처럼 수다스럽거나, 시끄럽게 스쿠터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더구나 이탈리아보다 훨씬 깨끗하다.

 


 

바다 오르간이 손짓하는 자다르

아드리아 해안가 도시에서는 허물어진 로마 유적, 베네치아풍 성당이나 그와 비슷한 중세풍 건물이 많다. 이곳에는 아드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와 가장 황홀한 빛 바라기가 있다.

아름다운 소리는 바다 오르간에서 나온다. 바다 오르간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쉽게 그 모습을 떠올리지 못한다. 게다가 막상 오르간을 보러 가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바닷속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르간 앞에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바닷물이 형형색색으로 빛을 발한다.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은 음악을 감상하기라도 하는 듯 유유자적 물살에 몸을 맡기고 있다.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붉게 떨어지는 석양을 보고 있노라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감상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둥글게 휘어진 오르간 모양 의자가 있는데 누가 연주를 해도 소리가 들릴 것 같다.

다섯 개의 우물, 비교적 넓은 공터에 물 저장소를 만들었다.

 


 

루이보스 향기를 품은 스플리트

만발한 노란 아스랄라토스, 노랗고 아름다운 꽃물결이 산에서부터 해안까지 이어진다. 스플리트에 흔한 체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버찌인 체리를 매우 좋아한다.

 

고양이, 유럽 유적지의 주인. 유럽의 유서 깊은 장소에 가면 고양이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고양이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잠을 자거나 유적 안을 어슬렁거린다. 사람들이 사는 거리에도 고양이가 아주 많다.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고 시선을 받아도 무시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딴청을 부리거나 다른 곳을 보는 여유까지 있다. 어떻게 보면 유럽인을 닮았다. 하지만 혼자 있기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은 고양이 천성이다. 반면에 개는 집단으로 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개는 동양인들을 닮은 것 같다. 떠돌이 고양이가 많으면 서양적인 지역이고, 떠돌이 개가 많으면 동양적인 곳이 많다.

 


 

명품 와인 진가츠, 뽀스트업, 뽀쉽

유럽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하나같이 나무에 고통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분재를 만들 때 뿌리를 싹둑 자르면 나무는 살기 위해 실뿌리를 길게 내놓는다. 포도나무에 고통을 주면 나무는 자식인 포도송이를 당분이 풍부하고 맛있도록 잘 생산한다고 한다. 이 지역 특산품인 쁠리바츠 말리(쁠라바츠의 난쟁이)라는 품종은 마치 분재처럼 구부러져 있는데 워낙에 구부정하다 보니 그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곳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황홀한 맛을 자랑한다.

 


 

두브로브니크

발칸 지역이 우리나라보다 생활 수준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나, 기초 질서나 관광문화는 앞서 있다. 다니기 쉽고, 편하고 안전하면서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다.

 

높은 성벽이 바람과 파도를 막으며 오랫동안 자유를 수호해 왔다. 아름다운 자연과 온화한 날씨가 수백 년 전통문화와 조화를 이룬다. 돌 하나하나에 이야깃거리가 있다. 거리, 골목, 작은 광장, 성당, 궁전, 박물관 등 발걸음 닿는 곳마다 매력이 있다.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서양인들의 찬사는 화려하고 다양하다. 이 모든 절경이 자유라는 모토 아래 이루어졌다.

 

두브로브니크에서 할 세 가지 - 경험이 없으면 감동도 없다. 아침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 벼랑 끝에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황황한 전경을 감상한다. 구시가지를 감싸는 2킬로 길이의 성벽을 돌며 코발트 블루빛 바다와 붉은 지붕이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감상한다. 배를 타고 바로 앞 로쿠룸 섬을 일주한다. 그리고 구시가지 중심로인 플라차 거리와 여러 골목을 다녀본다.

나의 낙원보다 천국이 더 아름다울까?”

이곳은 지금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두브로브니크라는 말은 1918년이 되어 쓰였다. 오래전 이 일대의 떡갈나무(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은 교통이 다소 불편해서 한꺼번에 많은 이들이 올 수 없다. 어찌 보면 시끄럽고 북적대지 않아서 좋다.

경사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아왔기 때문에 계단이 많은 독특한 골목문화가 이색적이다. 거 중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예쁜 쁘리에코 골목은 중앙로에서 계단 14개만 오르면 등장한다.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좁고 경사진 계단 골목에 화분을 두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름답고 이색적인 계단 식물원을 만들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중앙로 플라차 거리

해가 진 후 20분 두브로브니크 중앙로 스트라둔 야경.

스폰자 궁전에는 단위와 상거래의 중요함에 대한 문구 우리의 법은 저울을 속이는 것을 금한다. 상인들이여, 당신의 물건을 잴 때 당신의 양심도 저울에 달린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리고 신은 당신의 모든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성벽을 둘러보지 않고 두브로브니크를 경험했다 말하지 마라!

렉터 궁전 - 상원위원회에서 나이 오십이 넘는 사람 중 군주를 선출하며, 그는 한 달간 건물밖에 나오지 못하고 공화국의 많은 이를 처리했다.

렉터 궁전 마당 - 매일 저녁 두브로브니크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린다. 성벽 안팎을 보면서 걷는 즐거움. 바다에서 본 성벽. 성벽에서 바라본 로쿠름 섬.

 

물가가 비쌀까? 비싸다! 바가지요금이 심한 편이다. 보스니아와 몬테네그로는 저렴하다. 볼거리가 별로 없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보스니아가 여행상품에 들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등불이 운치를 더해주는 골목, 오노프리오스 샘의 조각.

 

흑사병과 종이가 낳은 르네상스

역사의 순환은 물류 즉, 돈의 흐름과 명맥을 같이 한다. 흐르던 돈줄이 막히면, 소위 돈맥경화가 생긴다. 이것을 뚫으려는 과정이 전쟁이다.

 


 

<유럽의 전원국가 슬로베니아>

자연을 만끽하는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는 면적은 작지만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있는 그림 같은 나라다. 어디를 가나 초록빛 짙은 능선과 눈 쌓인 알프스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로베니아를 전원국가라고 한다. 농촌이 아름다운 구릉지에서부터 희고 거대한 알프스 산과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강과 청아한 호수를 보고 있자면 그 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높고, 크로아티아와 더불어 관광산업이 주 생계수단. 여행지 물가가 높다.

 

슬로베니아 유일한 섬- 슬로베니아 사람들의 경사를 축하하는 곳이며 소원의 종이 달려 종을 치러가는 곳이기도 하다.

플레트나를 타고 오갈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경관 -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이르는 알프스 산과 블레드 성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호숫가에 자리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화이트와인을 한 잔 마시며 프록세나의 얼굴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명이 만든 플록세나의 얼굴 - 해가 진 뒤부터 동이 틀 때까지 조명을 비춘다. 어지간한 유명인사들은 슬로베니아를 찾으면 대부분 빌라 블레드에 방문한다. 덕분에 여러 인사의 사인이 있는데 김일성도 사인해서 남겼다. 나룻배 플레트나를 타고 블레드 섬에서 소원의 종을 치고 오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블레드 성 레스토뢍에서 성주가 된 기분으로 식사하기.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민간 어원으로 매우 사랑스럽다는 뜻. 밤이 되어야 사랑을 해서, 밤이 되면 사랑스러운 도시가 된다는 멋진 해석이다.

 

 

스펙보다 스토리가 있는 도시

여행하면서 스토리가 없는 도시를 찾아가는 것은 시간 낭비다. 역사가 빈약한 도시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 최대 이벤트 동굴 포스토이나

! 오늘은 야마 도는 날입니다! 전부 야마 돌겠군여.” 야마는 슬라브어로 동굴이라는 뜻.

동굴 입구 커퍼런스 홀 - 식당이 있는 홀이다. 1천 명이 이용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자라온 종유석들. 동굴 열차-세계 최초로 동굴 속에 레일을 설치했다. 처음엔 사람이 끌었다고 한다. 러시아 다리를 건너서 아름다운 동굴로. 스타케티 룸. 불량식품처럼 생긴 모양과 커튼처럼 얇은 모양이 많다.

동굴의 상징이 된 다이아몬드 -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순백색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견우와 직녀. 동굴에 심어 있는 장닭.

 


 

<천 년 황국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친절은 둘째 치고 물가가 너무 비싸다. ‘베니스의 상인답게 상인들도 약삭빠르고 돈을 밝힌다. 이곳은 음식점에서 서서 먹을 때와 앉아서 먹을 때 가격 차이가 있다. 가격 차이도 매우 크다.

대운하를 따라 세워진 저택 - 지금은 대부분 호텔과 박물관으로 사용. 건물 정면에 클로버 문양이 많을수록 건물 주인의 지위가 높음. 바다에서 바라본 산마르코 광장.

찬사가 넘치는 도시 -“사람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 “유럽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지배자, 고요한 공화국, 아드리아 해의 여왕, 물의 여왕의 도시, 가면의 도시, 다리의 도시, 떠 있는 도시 등등 별칭도 다양. 가면을 쓴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카니발, 좁은 수로를 따라 흔들리는 가느다란 곤돌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네치아 영화제, 운하를 따라 세워진 호화저택들, 주심 관당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 유리공예품 등 제각각이다.

 

난민 수용소에서 일궈낸 기적 - 난민들은 초기에는 갈대밭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엮어 벽을 세워 집을 지었다. 지붕은 풀로 덮어 만들었다. 교통수단은 당연히 배였으며, 주식은 생선이었고, 빗물로 식수를 해결했다. 농사를 지을 땅도, 정치적인 배경도 없었던 이들은 어업보다 상업을 택했다. 척박한 환경세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교활한 장사꾼이 됐다. 서유럽이 오랫동안 중동이나 아시아에 비해 가난했던 시기에도 베네치아만은 부를 쌓으며 영화를 누렸다.

 

동로마와 서로마 사이, 모호한 경계. 그들은 어디에 종속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활발한 무역 활동을 재개하여 국고를 살찌웠다. 천재들의 광고전략, 베네치아는 절호의 기회를 잘 이용했다. 수호성인, 동전, 궁전, 깃발 뱃머리 등 베네치아의 모든 물건에는 성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가 상표처럼 달렸다. ‘두칼레 궁전에 장식된 총독과 날개 달린 사자그들은 고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고 의도적으로 이 마크를 활용. 베네치아 시내뿐 아니라 아드리아 해안 베네치아의 식민도시들에도 성문, 시청사, 성당 입구 등 중요한 곳에는 이 장식이 있다. 브랜드 마크의 효과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지금도 베네치아 시내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부 아드리아 해와 신랑 베네치아의 결혼식. ‘검은 황금커피 무역독점과 커피문화.

 

베네치아 카니발 가면 속의 진실 - 시인 바이런은 세상의 술잔치”, “이탈리아의 가면극나름의 매력, 극장, 카지노, 살롱에는 전 유럽의 쾌락주의자들이 몰려들었다. 베네치아의 특산물은 스캔들과 방종, 절반은 사창가였고 절반은 규방이 된 도시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졌다. 좁은 동네에서 얼굴을 감추려면 가면이 필수였다.

 

불멸의 도시 베네치아 전성기 베네치아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처럼 단아하고 강하고 찬란했다. 홀로 단단한 국가였고 부국강병 국가였다. 강대국들이 다 그래 왔듯이 국제관례에 따르지도 않았기에 다른 국가들은 외교상 베네치아를 신뢰하지 않았다.

1932년부터 시작한 베네치아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다. 매년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열리는데,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몰려들어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를 즐기고, 알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유혹한 카사노바 248- 카사노바라는 말은 유혹자, 바람둥이의 대명사. 정식이름은 자코모 카사노바이며 베네치아의 배우였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190, 지금도 보기 드문 키니 당시에는 오죽했으랴 싶다. 성직자 공부 중 음탕한 행동으로 퇴출당했다. 이후, 그는 로마로 가서 추기경의 비서. 그러나 카사노바답게 로마에서도 스캔들을 벌이다 문제가 되어 베네치아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그는 베네치아 상류사회로 들어가 바발라의 트릭(프리메이슨과 같은 비릴 조직이 오랫동안 이용해 오고 있는 신비주의)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 그는 무일푼으로 전락했으며 1785년에 은퇴하고 말년에 발트슈타인 백작 소유인 듀코프 보헤미아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73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때 쓴 자서전인 나의 인생 역사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 그는 유명한 바람둥이였으며, 성직자로 몸담았을 때 자신을 후원했던 후원들의 딸과 아내를 유혹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유럽왕실, 교황 클레멘스 13, 수많은 기사, 볼테르, 괴테, 모차르트와 친분을 나누었다. 모차르트를 만났을 때 추억을 담고 싶다며 오페라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돈지오반니. 그는 작가가 되어 명성을 얻고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그는 지난 시절을 그리며 하루 평균 열세 시간 동안 집필활동을 했고, 12권짜리 나의 인생역사를 썼다. “나는 웃고 싶어서 지난 일생을 기록했다. 그리고 난 내 삶을 잘 이끌었다. 하루에 13시간 동안 글을 썼지만 마치 13분처럼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매우 즐거웠다. 왜냐하면 꾸밈없이 사실만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는 1798년에 생을 마감하며 전능하신 신과 나의 죽음을 보는 모든 증인들이여. 나는 철학자로 살았고 기독교인으로 죽는다.”

 


 

<아름다운 공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다종교 다문화 다민족국가. 보스니아 내전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어쩌면 현재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통섭’, ‘융합’, ‘퓨전이라는 말들에 가장 부합하는 곳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르는 경우가 많고,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서양인들이 신기해하는 보스니아의 특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리나라야말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여러 문화가 비빔밥처럼 섞여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교차로. 기독교, 동방정교, 이슬람의 공존. 마케도니아의 명소 오흐리드 호수. 산악 지역이 많은 발칸반도. 사라예보 시내 곳곳에 있는 묘지, 공동우물. 터키식 커피하우스. 터키식 골목이 정겨운 사라예보. 직물을 주로 파는 활기찬 바슈카르지아거리. , 동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명 망치 소리 거리.

세르비아의 꿈, 다시 발칸의 짱!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로 가는 동안 서유럽 알프스와 다름없는 멋진 산악 경관을 지난다. 긴 야블라니츠코 호수를 지나 네레트바 강이 흐르는 곳에 이르면 보스니아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야블라티차 마을이 나타난다.

크로아티아에서도 디나르알프스가 지나는 쪽에서 이런 양고기 요리가 있는데 주로 무슬림들이 먹는다. 그들은 부인을 여러 명이나 둘 수 있었기에 자양강장제로 양고기를 즐겨 먹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먹어보자.

 


 

무지개다리가 아름다운 모스타르-

모스타르는 다리의 파수꾼이라는 뜻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예상하지 못했던 이색적인 경관을 만난다. 터키인들이 만든 조약돌 길과 오래된 돌 지붕이 색다른 느낌이다. 무엇보다 높은 산과 맑고 빠른 네레트바 강이 도시를 더운 아름답게 만든다. 골목골목에 둥근 조약돌이 깔렸고, 돌을 올려 지붕을 만든 이슬람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모스타르에 가면 캐시미어 머플러를 꼭 사간다. 빠시미아라고도 하는데, 5유로 정도면 살 수 있으며 한국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좋다. 품질이 매우 좋아 국내에선 십만 원 이상 되는 고가에 팔린다고 한다.

모스타르를 지나다 보면 곳곳에 포탄에 맞은 집과 총탄 자국이 선명한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관광객에게는 그저 흥밋거리에 불과하겠지만, 현지 사람들에겐 아픈 기억이다.

보스니아 사람들은 언제 전쟁을 겪었나 싶을 정도로 친절하고 웃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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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을 촌스러운 듯 착 착 차올리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찍은 박용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설명과 느낌을 아주 정겹게 말한다.

항상 TV프로를 제때에 못 보고 있다가

몇 년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문득 생각나면 본다

요즘은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은 다시보기로 못 보고

얼마간의 다운료를 내고 봤다.

 

그리고 나서, 크로아티아 여행바이블을 읽었다.

개인의 느낌보다 정보가 많아 여행서로 유익할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면서, 즐기기도 하고 책을 내어

돈도 벌고 생산적이다.

지금, 나는 무슨 꿈을 꾸면서 소비할 궁리만 할까.





 



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나무





   크로아티아 블루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랩소디 인 블루


 

푸름에는 그 색깔만큼이나 셀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다.

 

풋풋한 사랑이 있고,

햇살 같은 웃음과 위안이 있고,

바다 같은 그리움이 있고,

부서지는 파도 같은 아픔이 있으며,

짜디짠 슬픔도 있다.

아드리아가 품고 있는 크로아티아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푸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이름조차 파래서 생각만 해도 금세 푸름이 번지는 곳.

 

잘 지내나요? 꽃과 하늘을 닮은 사람. 이곳은 맑은 하늘과 붉은 꽃이 지천입니다. 그쪽도 맑음인가요?

붉은 지붕이 떠받친 하늘 아래, 숨이 멎을 것 같은 푸른 바다가 누웠다. 손끝에 번지는 아득한 그리움. 시간마저 멈춘 풍경 그 이상의 풍경. 두브로브니크.

시간이 멈췄고, 그들은 그렇게 풍경이 됐다. 같은 곳을 보는 방법을 그때도 알았다면, 그대와 나의 그 시간도 풍경으로 머물렀을 것을.

그리워서 떠나는 게 여행이라지만, 떠나고 보면 그리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나 네가 그립다

보라Bora가 맹위를 떨치는 겨울도 아니건만, 차가운 바람은 매섭게 골짜기를 훑어내렸다. 보라: 겨울철 알프스를 넘어 아드리아 해로 부는 차고 건조한 국지풍. 산을 넘어 산기슭으로 불어내리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통칭하기 함.


마음만 앞서 생각지도 않고 버스에서 덜렁 내려버린 게 실수였다. 우리는 결국 목적지인 마을 위까지 꼼짝없이 걸어가야 했다. 한 달 이상 여행하는 동안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빈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 , 소리, 바람, 그리고 안개. 가을이 익어가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이 풍성했다. 안개를 머금은 추색은 햇살과 어울려 산 아래까지 파도를 이루었고, 빛의 노래는 해가 진 뒤에도 그칠 줄 몰랐다.


꿈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안개가 사는 모토분의 숲처럼 까닭 모를 불안함이 똬리를 틀고는 했다. 대륙의 반대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늘 안갯속처럼 답답하고, 같이 있어도 불쑥불쑥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읽기에 우린 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여행에서 많이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절대 아니다. 때로는 향기든, 기억이든, 마음이든, 무엇인가 남겨두는 편이 훨씬 더 좋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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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를 닮은

자그레브는 비엔나를 닮았다. 같은 강줄기(자그레브의 사바 강은 비엔나 도나우 강의 지류다)를품고 언덕에 기댄 도시지형, 대성당과 광장을 주심으로 형성된 도심에 노면 전차가 다니는 게 비슷했고, 각이 살아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그와 대비되는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도 비슷했다.


여행자에게는 자그레브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전체가 위험할 게 전혀 없다. 격렬한 내전을 겪으며 1990년대에야 독립한 나라지만 지금의 크로아티아는 세계에서 여행자에게 가장 안전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늦은 밤 여자 여행자 혼자 거리를 돌아다녀도 아무 걱정 없는 나라가 크로아티아다.


 

 

나의 자그레브 탐험법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전차의 웅웅 소리가 내겐 이렇게 들려. Quizas, Quizas, Quizas, (글쎄, 글쎄, 글쎄). 너의 질문에 흘린, 입에 익은 나의 대답처럼. 반복되는 그 소리에 빠져들면 도시는 순간 흑백으로 변하지. 그 노래가 흘러나오던 영화 <화양연화>의 한 장면처럼.

항상 난 그대에게 묻지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냐고. 그대는 늘 내게 대답하지요. 글쎄, 글쎄, 글쎄. - 영화 <화양연화>

 

흑백의 세상은 곧 끊기고 말아. 자그레브의 전차는 색깔 맞추기 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 종류와 색깔이 다양하거든. 빨강, 하양, 파랑, 연파랑, 주홍, 자주, 검정. 페인트 덧칠이 다 보이는 낡은 것과 매끈한 새것, 둥근 것, 그리고 각진 것. 나는 빨간색 낡은 전차와 옅은 자주색 전차를 좋아해. 마음에 드는 색깔의 전차가 오면 훌렁 올라타. 정류장 끝과 끝을 오가거나, 마음에 드는 아무 곳에나 내려 골목을 걷곤 하지. 이렇게 빙빙빙 돌다 보면 지도에서는 읽을 수 없는 것들을 만날 수 있거든. 크로아티아인들이 키스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체크무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또 그들은 어떻게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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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라 알프스, 푸른 눈물

몇 개의 호수를 지나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거미줄처럼 늘어진 폭포 앞에서 파리한 낯빛의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이때만 해도 그녀 때문에 이 한적한, 오후 6시만 지나면 모든 게 어둠에 묻혀버리는 산골에서 이틀이나 더 머물게 될지 몰랐다. 그녀는 잿빛 나무다리에서 퍼런 호수 위로, 호수보다 더 서늘한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날 늦은 저녁 호텔의 카페 바에서였다. 아무 말 없이 걷는 내게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 했고, 나는 그저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 안다. 내가 크로아티아에 온 이유도 별다르지 않기에. 가진 게 사랑밖에 없는 사람이 사랑을 놓은 그 마음 잘 안다.

프로클란스코호수로 흘러드는 어귀에 놓인 나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 그곳에서 3일을 머물렀다. 한 달 음이면 다 돌아볼 작은 마을의 아늑한 골목길을 돌고 또 돌며 기억에 새겨넣었다. 집 뒤로 백여 걸음을 걸어가면 아이스크림을 듬뿍 얹어주는 아이스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고, 그 앞에는 내 이야기를 신기한 듯 들어주는, 열아홉 레베카가 지키는 작은 식당이 있다.

 

자신의 이름과 같은 마르코 폴로처럼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했던 마르코는 유독 내 카메라들에 관심을 보였다. 스크라딘을 떠나던 날, 낡은 기계식 카메라와 열 통의 필름을 마르코에게 남겼다. 나에겐 어린 남매의 환한 웃음이 낡은 카메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었다.

기억하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인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세 가지 질문> 중에서 -톨스토이-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드는 꼬맹이들이 인사에 작고 아름다운 나의 마을을 떠나는 발걸음이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처럼 자꾸만 늘어졌다. 가슴이 따뜻했고, 또 서늘했다. 종잡을 수 없이 어느 날 문득 치미는 내 그리움 병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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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풍경보다 아름다운

진짜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든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내주는 친구들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이 세상 모든 여행자의 고향

섬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가족들은 그를 에밀리오네라고 불렀다. 소년은 아버지와 삼촌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가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사내는 집이 그리워졌다. 사내는 마흔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얼마후, 사내는 전쟁에 휘말려 갇힌 몸이 됐다. 사내는 몇 년 뒤 풀려났고, 사람들은 그의 신비한 모험담을 좋아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이름을 따서 허풍쟁이 백만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다시 그가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다른 세상을 꿈꿨다. 사내의 이름은 마르코 폴로였고, 탐험가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사내의 집은 베네치아였으며, 고향은 코르출라였다.

-꼬마는 소년이 되었고, 바닷가에서 살게 됐고, 섬을 좋아하게 됐다. 소년은 이제 바다 건너의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지도를 보는 게 더 좋았다.


 

바닷가 마을, 비비녜

공터에는 마을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녹슨 대포가 버려져 있다. 내전 중에 쓰던 것이라 했고, 몇몇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상처를 이야기했다. 눈동자에서는 슬픈 빛이 읽혔지만, 그들은 이제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그들은 구슬치기보다 여행자에게 관심이 더 많았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섞은 포도주에 낯빛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중에 버스에서 만난 여행자가 비비녜는 장기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곳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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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빛의 마을

얼마 전 유럽인이 꼽은 유럽의 낙원으로 크로아티아가 첫손에 꼽혔다고 하는데, 프리모스텐은 크로아티아인들이 아름다운 마을로 첫손에 꼽는 곳이다. 오후에는 들꽃을 따러 나온 어린 소녀들이 가르쳐준 비비녜에 마음이 묶이고, 석양에 물든 비오그라드의 바닷가 벤치에 몸이 묶였다.

마을이 온갖 색으로 가득하다. 연중 날씨가 화창해서일까. 달마티아 사람들은 색에 민감하다. 골목에 덜렁 놓인 낡은 자동차, 길바닥에 손으로 그린 안내표시, 담벼락에 붙은 간판, 담장을 넘어 바다를 행해 핀 꽃골목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완벽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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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마음, 쉬베니크

노랗게 저물어 가는 옛 도시 언덕, 여린 바람에도 흔들리는 개양귀비꽃 몇 송이. 흔한 꽃이 오늘따라 마음을 끄는 건, 꽃말처럼 여린 사랑 때문일까.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여름 한 철 처절하게 피었다 지더라도, 비 오고 해 돋으면 내년에는 흐드러지겠지. 누군가 알아보고 이렇게 머물다 가겠지. 누군가 또 이렇게 마음을 심어두겠지.

 

진짜 여행은 길을 잃어버리는 순간 시작되는 걸 알고 있으니까.

 


 

바위가 만든 마을

신이시여, 이 땅에 산다는 것에 감사드리나이다. 오미쉬 마을의 작은 르네상스 궁전에 새겨진 글이다.

 


 

두브로브니크

드디어 다시 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곳입니다. 가슴에 두고서도 차마 그립다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곳입니다. 첫사랑 같은 곳입니다. 여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입니다.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두고 아드리아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의 공주입니다. 사람들은 아드리아의 진주라고도 합니다. 성문을 넘어서는 그 순간, 그 누구라도 이 아름다운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두브로브니크는 누가 담아도 다 엽서 같은 사진이 됩니다. 언제나 엽서 속 사진,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곧 그리움이 되는 곳입니다. 자그락대는 자갈을 밟듯 뛰는 가슴을 누르고 고성으로 향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마구 뒤섞인 이상한 세계입니다. 긴 한숨을 토해낸 뒤에야 겨우 귀가 트입니다. 계단 위에 널린 빨래가 전혀 남루해 보이지 않습니다. 성 안의 해안가로 나가 밤바람을 안주 삼아 크로아티아 와인을 마셔볼까 합니다. 기다림만 있는 오늘 밤은 너무나 길 테니까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곳, 마치 첫사랑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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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시리다

김랑이라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가슴 한켠이 시린사람일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렇게 독자를 시리게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슴이 시릴 때는 크로아티아가 떠 오르도록.

시리다는 다른 단어가 있다면,

지붕은 붉은 빛이지만,  마음은 더 시려운 '블루'이어야 한다

시린 가슴이 부럽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모요사



크로아티아 랩소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두브로브니크

지금도 눈을 감으면 햇빛 아래 반짝이던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지붕들과 거울처럼 반짝이던 스트라둔 대로가 떠올라 그리움에 가슴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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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를 아시나요?

아드리아 해의 진주영국의 시인 존 바이런 경은 두부로브니크를 칭송했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는 지상에서 진정한 천국을 보고 싶다면 두크로브니크로 가라세계적인 대분호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애플사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도 살아생전 자주 들렀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고경영자였던 빌게이츠도 무척 좋아한 곳으로 알려져있다. 한마디로, 물 위에 뜬 프라하 같은 도시다. 고색창연한 프라하에 한 가지 없는 게 있다면 바로 바다인데, 두브로브니크는 바닷가에 성채를 끼고 있어 멀리서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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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와 달마티안의 원산지

크로아티아라는 국가명은 독일식 발음이며, 영어로는 그로에시샤, 그로아티아 말로는 흐르바츠가라고 발음한다.

실생활에서 크로아티아와 관련 있는 익숙한 것들을 꼽는다면 바로 넥타이와 체크무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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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어떻게 짤까?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 등을 집중적으로 보고 싶다면 항공편과 숙박만 예약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자유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자유여행의 여유가 있다면 플리트비체에서 이틀, 스플리트에서 3~4, 두브로브니크에서 4~5, 자그레브에서 이틀 머무는 식으로.

일주일 여정이라면 두브로브니크에 집중하는 방법이 좋다. 여기저기 이동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주홍빛 도시 두브로브니크라도 제대로 즐기고 오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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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일주일을 투자하자

가장 좋은 시기는 여름, 7월과 8월이다. 이 시기에 두브로크니크는 본격적인 여름축제에 들어가 밤이면 각종 공연이 성 안 곳곳에서 펼쳐진다. 대신 숙박비 등 각종 물가도 올라가고 사람들도 북적이지만 한창 물오른 미인처럼 두브로브니크가 가장 아름다울 때다.

덥지 않느냐? 물론 덥다.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 등은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어선다. 거기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햇살이 내리꽂힌다. 땡볕에 서 있으면 절로 땀이 나며 피부가 발갛게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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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허브공항을 이용하자

프랑크푸르트에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있다 <!--[endif]-->


 

환전은 유로화와 쿠나로

유로화를 충분히 바꾼 다음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해서 유로화를 다시 쿠나로 바꾸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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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다시 자그레브행 1시간 20분을 날아가야 한다. 3시간 이상 대기시간을 둘 경우 16~17시간은 그냥 잊어버리는 게 속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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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장난감 같은 지붕,

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짙푸른 아드리아 해와 중세 시대의 붉은 고성이 어우러진 곳, 다시 말해 자연과 사람이 함께 빚은 절묘한 풍광. 워낙 유럽에서 유명한 휴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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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시작, 필레 게이트

두브로브니크는 남북으로 길이가 6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인구는 45천명정도. 하지만 성 안의 구시가지 올드타운은 하루종일 둘러봐도 모자라다.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710일부터 825일까지 이어지는 여름축제 기간에서는 한낮부터 밤까지 많은 인파가 몰린다. 그래도 이왕이면 여름축제 기간에 두브로브니크를 찾아야 르네상스 시대의 귀부인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때는 필레 게이트 앞이 아니라 언덕 위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타아하니 헷갈리면 안된다.

만약 여름축제 기간에 찾았다면 투어에 앞서 반드시 선글라스와 선블록을 챙기고 음료수를 지참하자. 성안에서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 일체의 탈것이 다닐 수 없다. 오로지 걸어 다녀야만 한다. 그러니 편한 신발. 참고로 두브로브니크에 하루 이상 묵으면서 골고루 구경할 생각이라면 아예 1, 37일 단위 관람권 카드를 구입.

첫째 날에는 무리하지 말고 두브로브니크의 분위기를 익힌다는 마음으로 성 내부를 가볍게 돌아보자. 그리고 가볍게 성을 둘러보고 스트라둔 대로를 중심으로 구경하자.

둘째 , 성곽 투어와 골목 여행, 케이블카 및 두브로브니크 주변을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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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같은 거리, 스트라 둔 대로

필레 게이트의 안쪽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 세상에!”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석회석과 대리석으로 다져진 대로가 동서로 길게 뻗어있고 양옆으로 붉은 지붕의 중세 시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몇 백년을 홀러온 세월의 작품이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서 절로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것이다. 두브로크니크의 옛 시인은 이 모습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인다.”라고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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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샘 오노프리오

스트라둔 대로에 첫발을 내디디면 양옆으로 늘어선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순식간에 시간의 바퀴를 과거로 돌려놓은 것 같다.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처럼 벽에 들러붙어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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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고다드가 찍은 전쟁사진은 전쟁의 충격과 공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일반인들의 비참한 모습과 뭉개진 장미꽃처럼 처참하게 파괴된 두브로브니크를 담고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인 채 신음하는 사진은 액션으로 충만한 전쟁 영화보다 오히려 더 충격적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 된 시계탑

루자광장의 또 다른 이정표는 바로 높이 솟은 시계탑이다. 맨 위에는 종이 달려 있고 그 밑에 둥근 시계의 문자판이 보인다. 시계탑의 종은 시간을 알리는 일 외에 과거 라구사 공화국 시절에 의회를 소집하거나 화재 및 적의 침입 등 경보를 발령할 때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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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세관, 스폰자 궁

스트리둔 대로의 볼거리는 스폰자 궁이 대미를 장식한다. 중세 시대의 모든 무역상들이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세관과 건물 한편에 라구사 공화국의 화폐를 찍어내는 조폐국이 함께 있었다. 16세기에는 문화센터 역할을 해서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과 학술 세미나 등을 하며 서로의 지식을 교환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 정보를 나누던 교류의 장이었다.

스폰자 궁은 과거와 마친가지로 지금도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관 등 다양한 역할을 겸하고 있다.

또 한편에는 1991년 발발한 내전 때 두브로브니크를 지키다 죽어간 젊은이들의 사진이 전시된 방이 있어 숙연하게 만든다. 벽에 걸린 앳된 청년들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곳은 사진도 사진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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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하이라이트, 성벽 투어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리처드 바이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의 문장이다. 멀리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높이 올라가니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성벽에 오르자.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13~16세기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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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카페는 돈이 많다는 부자가 아니라 크로아티아 말로 드나드는 통로나 문, 구멍을 뜻한다. 그래서 성의 북문을 부자라고 부른다. 부자 카레가 유명한 이유는 바다 위 절벽에 카페를 지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파도치듯 펼쳐진 붉은 지붕들의 물결 너머로 짙푸른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대충 찍어도 엽서 같은 사진들이 나온다. 특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찍으면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두브로크니크만의 독특한 풍경들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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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하프시코드가 놓인 통치자 궁

책을 보면 앉아 있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16세기의 극작이자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문학가로 꼽히는 마린 드르지치의 동상이다. 유명한 넥타이 가게 카린의 기념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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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골목투어

두브로브니크 성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마치 박물관 같은 도시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하다면 골목 투어를 떠나야 한다. 소위 숨은 비경 찾기라고나 할까.

두브로브니크에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스트라둔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40여 개가 넘는 골목들이 촘촘히 그물망처럼 뻗어 있다. 겨우 두 사람이 어깨가 닿을락 말락 스쳐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들 사이로 오래된 돌로 지은 집들이 들어서 있고 이곳에서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이 생활한다.

하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성 안에 집만 갖고 있고 성 밖의 신시가지 쪽에 주로 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집을 개조하기가 어려워 불편하기 때문이다.

성안의 고색창연한 집은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민박으로 활용하거나 세를 준다.


골목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골목 안에 빼곡히 들어찬 상접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온갖 맛집과 기념품점, 갤러리 등이 골목 안에 오밀조밀 숨어 있다. 골목들은 어스름 저녁부터 밤사이에 더 예쁘다. 저녁때가 되면 천천히 떨어지는 석양이 아득한 중세 건물 위의 유리창에 부딪혀 파편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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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상점들은 따뜻한 촛불 빛깔의 전등을 밝혀, 예전 유럽의 가스등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저분하지 않게 같은 모양의 등이 일제히 불을 밝히면 마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 같다.

특히 반들반들한 스트라둔 대로 위에 양편의 상점들이 나란히 켜 놓은 등불이 반사되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마음이 더할 수 없이 로맨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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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에 있는 상점들을 어떻게 찾을까. 찾는 방법은 스트라둔 대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양쪽 골목이 시작되는 어귀의 벽에 자주색의 작은 깃발 같은 천이 눈높이에 매달려 있고 기에 글씨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작은 깃발들이 해당 골목에 들어선 상점 이름들을 한꺼번에 알려주는 일종의 간판이다.

골목 풍경과 잘 어울려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점들을 충분히 안내해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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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또 다른 명물, 스르지 산 케이블카

두브로브니크 관광에서 딱 두 가지만 고르라면 성벽 투어와 케이블카 탑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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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니크의 모태, 차브타트

차브타트가 없으면 두브로브니크도 없다차브타트가 어떤 곳인지를 전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이다. 그만큼 차브타트는 두브로브니크와 아주 가깝다. 작고 예쁜 부두와 깨끗한 해수욕장이 마을을 두르고 있어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차브타트를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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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of My Life, 라파드

바빈쿡과 라파드는 두브로브니크 신시가지에 해당한다. 라파드는 성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4키로미터 떨어진 곳, 가는 방법은 파파드 지역의 삼거리에 내려서 깨끗한 카페들이 쭉 늘어선 거리를 걸어서 통과하면 된다. 한 굽이 돌아치는 만을 끼고 있는 이곳은 시원하게 불놀이를 즐길 수 있는 해수욕장과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고즈넉한 해안가 언덕길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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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블레드

반예 해변이나 플로체, 로크룸 섬, 차브타트, 바빈쿡 등은 모두 두브로브니크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만큼 길게 잡아봐야 반나절, 아니면 한두 시간이면 가볍게 둘러보고 올 수 있는 곳들이다.

일정이 2주일 이상으로 여유가 있거나, 이왕 간 김에 아우리 힘들어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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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현재 - 위기의 경제

인구가 450만 명, 우리와 비슷한 5년제 대통령제. 크로아티아는 세계적인 관광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적 현실을 들여다보면 암울하다. 크로아티아의 국민 일인당 국가부채 비중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급기야 크로아티아 중앙은행이 국가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자 2012년 국가 파산 사태와 금융산업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크로아티아는 위기다.

크로아티아가 속한 발칸 반도는 아직도 내전의 상처가 남아 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으로 사망한 사람은 공식 집계만 10만 명에 이른다. 비공식적으로는 50만 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이후 최악의 인종 학살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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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인가

소설가 은희경이

쫀득쫀득, 쫀득이면서 설명하는 목소리에 빠져 크로아티를 보았다

잘 알지 못하는 나라, 크로아티아

몇 부작으로 <세계테마기행>이었는데

오로지 생각나는 것은, 시멘트가 깔린 해변에서

파도소리를 바다가 들려주는 파이프오르간이라 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키웠다

그리고 누가 '크로아티아'라는 지명만 말해도 

파도소리, 주홍빛 지붕, 은희경의 목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