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발밑으로 왔다.





전화 한통 받았다.
빨리 칠원으로 오라고.
네비게이션을 작동할 줄 모르니
일행들은 부산에서~
마침, 창원에서 있던 나는 마산으로~
마산에서 시외버스타고 칠원으로~
감밭에 가니 모두 모여 벌써 따고 있었다.




나의 짝지, 혼자서도
내몫까지 왕성하게 따고 있다.







감밭
우리가 지나간 자리 황량하다.
따는 만큼 가져가라 했으니...

감을 딴 것인지
가을을 딴 것인지
욕심을 딴 것인지....





가을이 간다.
태어나서 올해처럼
감을 많이 먹은 해는 없다.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가 걸린다고 했던가
감을 밥처럼 먹었더니
밥인줄 착각했는지
매일 쾌변으로
감x 잘도 나온다.

*감밭의 감따기 체험을 베풀어 준
친구부부(이동인 김순남)님께 감사한다.


이미자   2008-11-18 18:25:01
정말행복해보이세요~저도 시골서자라서그런지 뭐든지 체험하는거좋아해요~
밤줍기..매실따기....감따긴안해봤구여...또해본게있나~별로없네요~
다음에 저도 데려가주세요~전 감 안주셔도 되니까...ㅋㅋ
류창희   2008-11-19 17:16:28
이미자님
중부 이북에는 감이 잘 없어요.
지금은 지구온난화 현상이라
여러가지 나무를 한꺼번에 보지만...
누가 감꽃 목거리하고 놀았다고 하면
얼마나 부럽던지요.

나무에서 직접 따 먹는 홍시맛
환상적이었어요.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따 먹었지요.
홍시는 가져올 수가 없으니...

감밭주인한테 면접봐야 할거에요 ㅋㅋㅋ
기준이 뭔지는 모르지만 ㅎㅎㅎ
호미   2008-11-19 20:17:53
와!!!
쌤이 엄청 부러우네요.
친구도 좋고 함께 하는 자연도 좋아보이고....

올핸 모든 과일이 풍년이라고 하더니
제게도 누가 감을 한상자나 보내어 주었어요.
아싹할 때 얼릉 먹자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랑 이웃에 나누고 났더니
아차차 쌤 생각이 났어요.
근데,
쌤은 저보다 더 많이 가지셨네요.
행복하세요!!!
류창희   2008-11-21 20:52:26
호미님
맞아요. 감 실컷먹었어요.
제가 단감 좋아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제 짝지가
도서관에 가지고 가라고 하던데...
우리 인원이 곳곳마다 많아서
다 돌리면 감이 모자라고
혼자 몰래 다 먹었지요 ㅋㅋㅋ
어쩐지 들킨기분...
형님댁과 동서집은 다 나눴어요^^*
블루밍   2008-12-03 21:32:59
선생님!
금년같이 만물이 大豊인데
선생님 감따는 모습 뵈니까
넘넘 보기좋구요.또 부럽네요.
쌤 저도 데려가 주시지않고
몰래 살짝 가셨네요.
담 해에는 저도 데려가유우~~
근데 쌤 옆지기 넘넘 멋있으시네요.
아뭏튼 가네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류창희   2008-12-04 20:10:03
블루밍님
이름이 참 예쁘네요.
아주 청신한 느낌.
감밭에서 따 먹어보니
돈 주고 사먹는 맛
그 맛이 얼마나 밍밍한 맛인지.
'싱겁다' 라는 말의 뜻을 알겠어요.
우리도 감숲의 감처럼
그렇게 진한맛 진한색으로 살아야할텐데 ^^*




해질녘의 순천만









숨어우는 바람소리 ㅡ김연숙


갈대밭이 보이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길떠난 소녀같이 하얗게 밤을 새우네
김이 나는 차 한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그사람 목소린가 숨어우는 바람소리
둘이서 걷던 갈대밭길에
달은 지고 있는데
잊는다하고 무슨 이유로 눈물이 날까요?
아~~~~아 길잃은 사슴처럼
그리움이 돌아오면
쓸쓸한 갈대숲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 배 타고 한바퀴 돌며
이 사진들 찍던
그날처럼,

갈대숲 거닐며 ...
나빌레라 치마폭 펼쳐
커튼콜 받는 시늉으로 ...

'숨어우는 바람소리'
휘파람 불어줄 님
지금, 그님 어디 계신가요?


사진: 이동인교수


빙호   2008-11-10 11:00:29
휘파람을 불지 못하니 님이 그리는
바람을 대신 찾아줄 수 없어
저 혼자 심각해진 가을에게 부탁해
새 몇마리 허공에 전단지로 내걸어 놓았지요.
그런데 빈 날개짓에 '찾는사람' 만 가뭇없이 나부끼는걸...
이를 또 어쩌지요?
류창희   2008-11-10 15:34:27
빙호님 오랫만입니다.
'람사르'로 인해 '몸사르'가 날 지경
가을비 조금 흩뿌리더니
성큼 가을 뒷편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이 즈음이면
김장걱정 연탄걱정인데 ...
올 한해, 내 자신
따뜻한 겨울 맞을 자격이나 있는지
오늘, 책상앞에 앉아
갈대 밭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처럼
마음만 스산하답니다.
호수아빠   2008-11-10 17:16:07
전에 '숨어사는 외톨박이-뿌리깊은나무' 라는 책을 읽고 우리 전통문화의 장인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적이 있었는데....순천만의 갈대밭이 숨어우는 사연은 람사르에 자신의 속내를 낱낱이 보여주어서 더더욱 슬피우는건 아닐까요.
류창희   2008-11-11 09:04:49
휘파람 그윽하게 불어주는 이
바로 나의 사랑하는 아우 호수아빠구먼.

방금, '숨어사는 외톨박이' 책 두권을 꺼내들고
-'내시'에서 '백정'까지- -'대장쟁이'에서 '풍수쟁이' 까지
순천만의 속내를 람사르가 꺼내듯이
그들의 슬픈 속내를
해바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뜩,
윤명아   2008-11-12 15:37:00
노래방에가면 숨어우는 바람소리 불러드릴께요 호호호
류창희   2008-11-12 20:56:53
맞아 ^^* 우리 종강하고 어느 날
노래방 갑시다.
윤명아님의 '숨어우는 바람소리' 예약!
김옥경   2008-11-13 10:59:27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위(?)신지
이제야 궁금증이 풀리는군요^^
쌤의 그 부지런하심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제 인생의 제대로의 멘토가
되심니다 *^^*
쌤~~ 짜우요~~~
이미자   2008-11-13 17:35:45
앗~선생님 모습그대로에여~여전히 한미모.........멋집니다
류창희   2008-11-13 21:02:15
김옥경님도
만만치 않은 여위심이던걸요.
살찔틈이 없다고요.

부지런(?)
우리 가족들이 보면 비웃어요.
맨날 TV보거나,
컴퓨터 들여다보고 있거나
누워있거나...
빈둥빈둥 하거든요^^*
류창희   2008-11-13 21:03:42
이미자님
뵐때보다 훨씬 젊고 예뻐졌는데....
여전히 아니고,
훨씬~ 입니다 ㅋㅋㅋ













황산

황산은 안휘성 휘주安(徽城 徽州)에 있다. 과거에는 소금상인으로 부를 누렸다고 하나 부자들이 근거지를 항주로 옮기고 지금은 소박한 농촌이다. 비행기 타고 핫비合肥공항으로 갔다. 택시는 ‘晩’자를 쓴다. 벼는 이모작을 하고 산등성이마다 차밭이 있고 밭에는 목화와 하얀 소국(국화꽃)이 환하게 피었다. 황산 밑에 숙박.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 (歸來黃山不看岳)’ 라는 말처럼 수묵화의 신비로운 산봉우리와 여백이 살아 숨 쉰다는 황산! 새벽부터 설쳐 케불카 타고 산에 오르니, 헌량콰이! (청량함) 헌수프! (쾌적함) 늦가을 날씨처럼 서늘하다. 완전한 천연 콩티아오 (에어컨). 산책로는 모두 돌계단으로 되어있다. 이까짓 것쯤이야 슬슬 얕잡아 보고 걷기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다.

까얼푸(골프)로 몸짱을 만들었다는 의호선생님 다리 뭉치기 시작. 주말마다 등산으로 몇 년간 트레이닝 했다는 홍아샘 다리뭉치기 시작. 나의 남편만 싱싱하게 잘도 걷는다. 산에 가면 늘 민폐만 끼치는 나는 중국체질인지 아직은 견딜 만하다. 황산 정상 ‘北海飯店’에서, 맨몸으로 등지게 지고 음식재료들을 나른 짐꾼들이 있어 점심뷔페식이 특혜나 받은 듯 감사하다. 온 발아래가 구름의 바다 ‘雲海’다 어디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 있는 시간.

“왜 이리 인생이 멋진 거야” 북받치는 “헌까오씽” 이기지 못해, 김샘 홍샘(음악전공) 두 분이 듀엣으로 소프라노 엘토의 선율, 황산의 메아리도 감동받아 화답하는 경이로움 괜히 벅차 눈물이 난다.

행복행복 누릴 사이도 없이 청량하고 맑던 날씨는 어디가고 갑자기 산중에 장대비! 부랴부랴 걸어도 빗물에, 아~ 나는 ‘실루엣 선녀’가 되다. (덥다고 속옷을 입지 않은 나는 神農氏의 딸 ‘요희’ 런가. 아침이면 멋진 구름이 되어 산위를 휘젓다가 저녁에는 골짜기 찾아들어 외로움을 달래는 불꽃같은 ‘雲雨之情’을 즐겼다 하더니만… 정신 차리고!) 황산 청소부 순발력 있게 우비장사로 변신했다. 쫄딱 비 맞은 꼴에 흥정해볼 사이도 없다. 체온이라도 보존해야하니. 근데 뭐야! 입은 지 10분도 안되어 비 뚝 그치고 햇볕은 쨍쨍. 밑에 내려와 정말 맛없는 무늬만 한식으로 저녁 먹고 발마사지. 고놈들! 작은 놈들이 중국말로 말 시키니 신이 나서 꾹꾹 잘도 누른다.



*  2007년 8월에 다녀온 곳입니다.
어느 까페에 올렸었는데, 사진이 다 날아가버려 정리하다가
이곳에 올립니다.


아직   2008-10-27 02:37:42
선생님 황산 너무 가보고 싶어요 ^.^ 짝지랑 같이 가볼려고 남겨 뒀어요
류창희   2008-10-27 08:18:08
맞아요.
아직님, 아직 한살이라도 젊을 때
꼭 짝지랑 가서
구름과 물 안개 자욱한 계곡에서
요희처럼 '雲雨之情' 나누세요.
호수아빠   2008-10-27 10:38:28
길음동 어머님과의 약속시간이 이제 두달 남았네요. 황산도 좋고 동산도 좋고.......
앵두   2008-10-30 14:55:40
선생님은 어찌이리도 글을 잘 쓰시는지요?
류창희   2008-11-03 09:47:12
앵두님^^
글 아니고요.
앵두님과 마주앉은 듯이
이야기 나누는 중입니다.
이 세상에서 한번 만나는 인연들
전 앵두님처럼 아름다움 님들과의 만남이
이세상에 태어난 보람입니다.
붉고 통통한 앵두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상큼한 하루! 또 시작합니다^^*
불타는 로라   2008-11-03 17:55:32
와1 나도 그 곳에 가고 싶다.
근데 보라색 티 입은 구여운 아저씨가 창희님 '말뚝'?
류창희   2008-11-04 16:53:34
호수아빠
따뜻하고 많이 안 걷는 곳으로
작전짜야겠네요.
울엄마 가고 싶은 곳으로....
류창희   2008-11-05 09:06:29
오예~
불타는 로라
훨훨
요즘 장작불인가봐요^^
뜸해서스리~

보라색 귀여운 아저씨!
30년전, 그렇게 마음 설레이며
콩닥콩닥 가슴 떨리게 하던 남학생입니다.

지금?
지금 떨림은 없지만
무지 편안하답니다^^*

내말 무엇이든 잘 들어주니...
이미자   2008-11-13 17:52:25
중국하면 젤루 가고싶은곳이 황산이었는데 다른곳은가보고 아직못갔어여~
오랫만에 선생님카페방문해서 좋은구경하고 갑니다~꾸우벅
류창희   2008-11-13 21:08:50
이미자님
꼭 남편하고 가세요.
그래야 요희처럼
운무속에서 '운우지정' 나눌 수 있어요^^


上海自助旅游
(상하이 배낭여행)


8월20일 월
함께 여행한 사람들 1팀(김기봉 김의호 김은혜 홍순자 류창희)

2팀 (남파 찐티엔 산다화 리지앙 예쥐 화양연화)

일정 2007년 8월 20일~8월 27일


金海空港出發 상하이 푸둥(포동공항도착)

스타렉스차가 나왔다. 한국보다 엄청 덥다.(한국 32도정도 중국 35도정도)

꾸베이古北 ‘임비곰비’식당으로 가서 깨끗한 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아직까지는 중국이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옛날 먹고살기 힘들어 북간도로 이주하여 터 잡은 조선족의 힘이 지금의 신선족으로 가득하다. 朝鮮族 (과거 못 살 때의 한국인)→ 新鮮族(한류열풍 이후의 한국인) 어디가나 한국간판 한국말 여기가 한국인가 중국인가.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끈을 붙잡고 서있다)




은혜샘 언니가 운영하는 友莉米糕廠 <WOOREE RICE CAKE> ‘우리떡카페’으로 갔다. 떡 이름과 식혜 팥빙수 등의 메뉴가 한지에 적혀있다. 모시 발을 친 창가에 앉아 팥빙수를 먹었다. 대학생들이 상해여행 중 명소로 인터넷에 자주 올린다고 한다.

와이탄(外灘)으로 가 ‘동양의 빛나는 진주’라는 <東方明珠>탑.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상하이 역사를 재현해놓은 <近代史博物館>을 관람했다. 그동안 중국어를 공부해서 인지, 고향에 돌아온 듯 모두가 자연스럽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전 중국의 후예였던 것 같다.


우먼루 (澳門路)에 있는 <홍자지>(紅子鷄-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성난 남정네 거시기) 라는 중국음식점은 얼마나 큰지 종업원들이 음식을 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닌다. 어마어마하면 뭘 하나. 물 차 음식 물수건 휴지를 일일이 다 계산을 한다. 한국은 밥만 먹으면 마음대로 물마시고, 빈 컵 사용하고, 과일 먹고, 커피까지 다 서비스로 마셨으니, 적응이 안 되어 뭐든지 “미엔페이”(免費) 공짜냐고 물어야하는 수고에 간이 오그라들기 시작.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물 인심 참 사납다.


저녁식사 후, 상하이 시내를 관통하는 황푸 강.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상하이의 젖줄’이라는 <푸동강>浦江游覽으로 야경을 보기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앞에 ‘實習’이라는 차가 보인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초보운전’ 표시란다. 상해택시의 고유글자는 ‘滬’자를 쓰는데 거리에 ‘蘇’자도 많이 보인다. 소자는 호자에 비해 10분의 1가량 등록세가 싸다는데, 그 대신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에 고가도로 등의 편리한 길을 통행할 수 없다고 한다. 말이 사회주의지 도로에 차들도 돈대로 움직임이 보인다.









유람선에서 바라보이는 푸동浦東(강남)과 푸시浦西(강북)가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를 그대로 간직하여 관광화 시키는 중국은 역시 華商(장사꾼)들이다.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건축미학이 세계 속에 ‘건축전시장’ 이라 하더니 아름답다. 그중 LG 간판이 가장 자랑스럽다.


상하이 꾸베이(古北)에서 가장 좋다는 ‘名都城’ 아파트단지에는 외국인이 80%라는데, 그중 한국인이 많다고 한다. 곳곳에 대일학원, 어학원, 24시불가마, 한국간판이 즐비하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이다. 연희동이나 일산의 빌라쯤의 수준으로 1층은 거실, 2층은 식당과 주방이 있으며, 나와 남편이 머물 손님방이 있다. 3층은 부부침실과 아이들 방이 있는 잔디와 건물이 예쁜 주거단지다. 입구부터 경비원이 있어 일일이 드나들 때마다 방문을 확인하니, 문을 열어놓고 잘 수 있을 정도의 치안이 되어있다. 일단 여행준비로 들떴던 심신을 따뜻한 물에 씻어냈다. 물에서 중국의 흙냄새가 난다.




8월 21일 화요일

견학을 갔다. 한국에서 재래시장 안에 있는 떡 방앗간을 연상하고 갔는데 웬걸. 시내 외곽에 위치한 공장은 1800평의 대단지 공장이다. 공장안은 벽으로 칸 지어져, 곡식을 쌓는 창고, 자동화 기계로 가루를 부스는 방, 떡을 찌는 방, 등등 실험실 직원들 탈의실 균실험실 위생실 화장실 포장실 사무실 휴게실 등등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있다. 직원도 4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누가 중국을 더럽다고 했나. 시설을 다 갖추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허가를 받은 후의 관리는 소홀하다고 한다. 언니부부는 1년씩의 연장으로 10년을 살고 있는데, 외국인이 지불해야하는 돈이 만만치 않다고. 결국 거대 중국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靑浦城區 으로 가는 길, 사방을 둘러봐도 평야다. 三國志의 근원지라고 하니, 그 넓은 곡창지대를 서로 차지하려고 왜들 싸우지 않았겠는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는 말이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라나. 주가각에서 배를 타고 옛 주택의 골목골목을 돌았다.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지친 여행자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아늑한 곳이다. 아직 관광지로서는 개발이 덜된 편이라 화장실 시설이나 식당가가 다른 곳에 비해 낙후되어 불편했지만, 물과 옛날의 고가와 배를 탄 우리들이 어우러져 추억의 풍경화를 그려냈다.













新天地,
옛 프랑스 조계지의 일부가 홍콩자본으로 재탄생된 곳.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여 있다. 상하이 다운타운에서 가장 먼저 도심개발을 한 지역으로 고급카페, 부티크 숍, 외국 계열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의 로데오거리와 같다.

이곳은 중국 속의 유럽이다. 각 나라의 음식과 건물이 섞여 다국적의 동네다. 그 바로 옆 골목 도보로 5분 거리에 초라하게 가 있으니…, 고국이 없던 시절, 그때 우리가 얼마나 힘이 없었는지 실감이 난다. 지금은 꼬마에서 노인까지 “我是韓國人” 나는 한국 사람이다. 한마디면 모두 부러운 눈길로 반갑게 맞이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먼저 간 선열들에게 감사하다. 그들이 몸 바쳐 구한 나라를 우리가 누리고 있다. 명품거리를 둘러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마시니 애국심은 어디 갔는지, 금세 국제적인 환경에 적응이 되어 콧노래 흥얼대니, 이 사람들 선생 맞나. 반성!





8월 22일 수요일
黃山은 安徽城 徽州에 있다. 과거에는 소금상인으로 부를 누렸다고 하나 부자들이 근거지를 항주로 옮기고 지금은 소박한 농촌이다. 비행기 타고 핫비合肥공항으로 갔다. 택시는 ‘晩’자를 쓴다. 벼는 이모작을 하고 산등성이마다 차밭이 있고 밭에는 목화와 하얀 소국(국화꽃)이 환하게 피었다. 황산 밑에 숙박.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 (歸來黃山不看岳)’ 라는 말처럼 수묵화의 신비로운 산봉우리와 여백이 살아 숨 쉰다는 황산! 새벽부터 설쳐 케불카 타고 산에 오르니, 헌량콰이! (청량함) 헌수프! (쾌적함) 늦가을 날씨처럼 서늘하다. 완전한 천연 콩티아오 (에어컨). 산책로는 모두 돌계단으로 되어있다. 이까짓 것쯤이야 슬슬 얕잡아 보고 걷기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다.

까얼푸(골프)로 몸짱을 만들었다는 의호선생님 다리 뭉치기 시작. 주말마다 등산으로 몇 년간 트레이닝 했다는 홍아샘 다리뭉치기 시작. 나의 남편만 싱싱하게 잘도 걷는다. 산에 가면 늘 민폐만 끼치는 나는 중국체질인지 아직은 견딜 만하다. 황산 정상 ‘北海飯店’에서, 맨몸으로 등지게 지고 음식재료들을 나른 짐꾼들이 있어 점심뷔페식이 특혜나 받은 듯 감사하다. 온 발아래가 구름의 바다 ‘雲海’다 어디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 있는 시간.

“왜 이리 인생이 멋진 거야” 북받치는 “헌까오씽” 이기지 못해, 김샘 홍샘(음악전공) 두 분이 듀엣으로 소프라노 엘토의 선율, 황산의 메아리도 감동받아 화답하는 경이로움 괜히 벅차 눈물이 난다.

행복행복 누릴 사이도 없이 청량하고 맑던 날씨는 어디가고 갑자기 산중에 장대비! 부랴부랴 걸어도 빗물에, 아~ 나는 ‘실루엣 선녀’가 되다. (덥다고 속옷을 입지 않은 나는 神農氏의 딸 ‘요희’ 런가. 아침이면 멋진 구름이 되어 산위를 휘젓다가 저녁에는 골짜기 찾아들어 외로움을 달래는 불꽃같은 ‘雲雨之情’을 즐겼다 하더니만… 정신 차리고!) 황산 청소부 순발력 있게 우비장사로 변신했다. 쫄딱 비 맞은 꼴에 흥정해볼 사이도 없다. 체온이라도 보존해야하니. 근데 뭐야! 입은 지 10분도 안되어 비 뚝 그치고 햇볕은 쨍쨍. 밑에 내려와 정말 맛없는 무늬만 한식으로 저녁 먹고 발마사지. 고놈들! 작은 놈들이 중국말로 말 시키니 신이 나서 꾹꾹 잘도 누른다.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宋나라 老街 걸으며, 나의 장난꾸러기 남편 장난기가 발동하여, 장난감 나무칼을 “얍!” 휘두르다 부러뜨렸다. 상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물어내라 덤빈다. 오히려 “불량품을 판다”고 “꽁안 꽁안” 경찰을 부르겠다고 화를 내며 소리치니, 2천원 물어내라 외치던 상인들 천 원 천 원 하더니 기가 죽어 얼른 들어간다. 어찌 중국어로 경찰이 ‘꽁안’ 이라는 말은 외웠었는지, 나의남편 순발력 완전 ‘쩐빵!’ 새벽 1시넘어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







8월23일 목요일

남편은 일이 있어 예정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기죽지 말아야 하는데, 하기야 규하선생님 없어도 홍아샘 씩씩하게 잘 지내니….

老거리 를 갔다. 금방 손으로 비틀어 짜도 될 만큼 옷이 다 젖었다. 헉헉 숨이 막히도록 더우니, 어디 냉방이나 잘 된 곳에 들어가 한숨 쉬면 좋으련만, 좁은 거리를 비집고 들어가 청색면치파오를 70위안을 주고 사 입었다. 밖에 나오니 청색물감이 문신처럼 배이도록 도로 흠뻑 젖는다.

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全身按摩를 받았다. “아~악! 살살 ~ 더 쎄게~ ” 곱상하게 생긴 총각이 누르고 잡아당기고 문지르는데, ‘아~ 남편 너무 보고 싶다.’

허구한 날 엄살떨고 죽는 소리하는 아내와, 뭐라고 야단쳐도 귀담아 안 듣고 웃는 두 놈의 자식을 위해 오늘도 벌어먹여 살리느라, 80위안짜리 값싼 안마도 한번 못 받아보고… 중국을 떠나다니.

코끝이 찡하다. 구석구석 몽땅 부위별로 시원함을 느꼈던 부분을 외워 남편에게 실습할 생각을 해본다. 그나마 위로가 되어 맘껏 호사를 누렸다.

대만사람이 운영한다는 일식집에 가서 이모부가 튀김 초밥 생선회 등을 시켰다.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 아무래도 바가지 옴팍 뒤집어쓰는 기분. 제대로 씹어지지도 않고 혀끝에 감촉도 없다. 1인당 100위안 이라니, 내가 차라리 중국 글을 모르던가, 아니면 중국말을 못 알아들었으면 조금 배가 덜 아팠을라나. 맛있는 음식 앞에 입맛이 쓰다.

찐회루 金匯路 上海虹橋大通陽商廈, 일명 짝퉁시장
신천지 옆에 있던 상양시장이 1년 반쯤 전에 외각인 지하로 숨어들어 찐회루로 옮겨왔다는데, 무국적의 가짜 명품들. 없는 것이 없다. 나 같이 진짜 명품의 브랜드를 잘 모르는 족속은 열심히 봐 봐야 다리만 아프다.

“에이 친구! 이거 진짜 가짜!” 외친다. 딴에는 ‘진짜 같은 가짜다’라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연방 “싸다 싸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목에 핏대를 세워 흥정을 해본다. 그러다 불리하면 못 알아들은 척 “팅부동 (못 알아들었다)” 라고 말하면, 버럭 성을 내며 “너 지금 알아듣는 것 다 알고 있다. 왜 거짓말 하느냐”며 삿대질까지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팅부동” “뿌쯔다오” 모른다고 빡빡 우기다가 힘 빠지면, 서로 쳐다보고 웃는 재미, 물건 사는 것은 뒷전이고 신경전이 신난다. 그들과 오가는 묘한 눈길 억양 어투 목소리 정말 ‘헌요우이스야 (재미있다)’ 누구는 부르는 가격에 10분의 1만 지불하라는데, 그래도 초보자는 4분의1수준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김샘 홍샘은 기내용가방까지 갖춰진 까오얼푸채를 한 세트씩, 큰 가방 작은 가방 시계 핸드백 몇 개씩 샀다. 나는 며칠 후 나의 한국친구들이 또 올 것이니, 싸게 해 달라고 애교 섞인 말로 흥정을 하여 70위안짜리 꾸찌 슬리퍼와 50위안짜리 핸드백을 한개 샀다. 금세 짝퉁 족이 되었다. 괜히 어깨 으쓱하다. (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본성을 찾았나 보다)

저녁은 에 가서 한국보다 더 한식답게 갖춰진 한식을 푸짐하게 먹었다. 물도 물수건도 후식도 빈 접시도 물론 다 무료다. 값이야 어디 갔던지 의자가 아닌 방석에 퍼질러 앉아 맘 놓고 먹는 맛 맛있다.

상해 이케야매장 宜家, 크다크다 해도 정말 중국답다. 스웨덴 이케야라는 사람의 브랜드인데, 인테리어 쇼핑몰로 전 세계에 체인을 갖고 있다. 저렴하고 실용적인 제품들로 유명한 곳인데 상하이 매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나. 들어가는 문 나오는 문이 따로 있는데, 단일브랜드로 이마트나 메가 마트보다 훨씬 대형이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빨간 담요를 29위안에 샀다.

8월 24일 금요일
아침부터 양샤우지에(일하는 아이)가 다리미질을 한다. 입고 나가면 금세 젖을 옷을 내가 벗어놓은 등산복 바지까지 깨끗이 빨아 다리고 있다. 된장찌개와 김치도 잘 담근다는데. 아침마다 잣죽은 일품이었다.

CHINA DECO 나비장, 40평쯤 되는 아파트 안에 나비장이 가득 전시되어있다. 이라는 연속극에 협찬을 한 물건이라는데, 궁을 안 봐서 모르겠고, 원색의 빨강나비 노랑나비 은색나비 온 집안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나야 아들만 둘이니 밍크코트나 짧은 것 긴 것 잘 봐두었다 받으면 그만이지만, (절대아님. 이런 말 한 죄로 손들고 벌서고 있음) 은혜샘 홍샘은 딸이 둘이니 열심히 도록을 보면서 가구들을 고른다. 택배비만도 1건당 1십만 원이라는데, 배(가구)보다 배꼽이 클 것 같다. 고 틈새 컴퓨터만 보이면 주인의 양해를 구해 우리중국어 카페에 소식을 전하며 ㅋㄷㅋㄷ, 글로벌세상 지구촌은 하나다. 어디서든 열기만 하면 열리는 세상. 쾌속의 빠른 속도를 쫓아가기 ‘쎄’가 빠진다.

꾸베이 쌈밥집에서 일행들과 헤어지는 점심을 먹고, 실버학교팀들이 쓸 런민삐를 받아들고 으로 출발. 핸드폰을 로밍해간 덕분으로 문자와 전화 수시로 확인하니 좋은 세상이다.

뚱야환띠엔 東亞飯店, 우리로 치면 서울 명동이나 소공동에 위치한 조선호텔처럼 지은 지 오래된 호텔이지만, 가장 번화가 에 있어, 문밖만 나가면 상해의 진국은 다 맛볼 수 있다. 이 호텔을 숙소로 정한 우리의 탁월한 선택은 여행의 달인들이다.

쨘! 드디어 우리 중국어팀 를 만나다. “러리에더 환잉환잉 광린!” 너희들이 온 것을 열렬하게 환영한다. 내 맘대로 지껄여도 눈치 안보이고, 얼굴 보기만 해도 좋은 우리 통쉐들. 얼싸안고 회포 풀고, 이리 좋은 걸. 지하철 타고 환승하여 동방명주를 중심으로 푸둥푸시를 다 다녔다. 상해 역으로 가서 소주 항주 주장 등의 기차표를 예매하려니 모두 매진되어 표가 없단다.

찐마오빌딩 金茂大霞, 여러모로 동방명주와 비교되는 건물이다. 맨 꼭대기 88층은 전망대로 쓰인다는 정보를 듣고, 88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환승하는 층인 54층으로 가서 한 바퀴 돌며 커피값 술값 물어보고, 다시 88층 전망대에 올라가 레스토랑 지우바(酒吧) 순회, 물론 먹지는 않았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야경 “쩐 피아올리앙-정말 아름답다” 지하로 내려와 키위쥬스 한잔씩 바닥에 퍼대앉아 마시니 중국이 실감난다. 원래 나의 상식은 4성급 5성급의 고급호텔은 1층 로비와 화장실 이용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쾌적한 환경에서 벗어나 푸둥강가에 인해전술 같은 사람들 속에 섞이니, 광안리 불꽃 축제를 보러온 인파에 섞인 듯 괜히 흥분이 된다. 중국인들의 특이한 땀 냄새 거리냄새가 마취성이 있는지. 아편 전쟁 없이도 몽롱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난징루에 들어와 아픈 다리 질질 끌며 꼬마유람관광열차타고 호텔로 들어오는데 여행 속의 또 다른 여행의 운치가 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목소리 큰 은혜샘 형부에게서 벗어나서일까, 일시에 피곤이 밀려온다. 일정보다 하루 먼저 합류한 바람에 지야창加床(간이침대)에서, 기침 콧물 편도 열이 화끈화끈 빨간 담요 뒤집어쓰고 “꽁~ 꽁 ~” 앓음. 예쥐가 타이레놀을 주고 아스피린과 수면제를 같이 먹어도, 기침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목소리는 아주 갔다. 아무래도 내일은 병원에 가서 주사(‘다쩐 打針)’ 를 맞아야 될까보다. “왜 다쩐 한대 맞지 그랬어~” 리지앙이 골골대는 나를 놀리느라 상해있는 동안 남편한테서 “주사 안 맞았어?” 묻는다. 난 주인이 무서워 손도 못 잡고 잤다고 엄살을 떨었다.

에어컨 빵빵한 호텔방에서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중국의 4대 미인 중에 ‘王昭君’이 되었다. 아~ 나도 나의 미모가 버겁다. 감기에 걸려서까지도 이렇게 양귀비꽃 색깔처럼 선정적이라니…. 밤새 콜록거리며 에어컨을 조정하며 일행들 깰까봐 불도 못 켜고 오줌만 살살 누러 다녔다.

8월 25일 토요일

나는 호텔을 예약하지 않은 관계로 조식표가 없어 굶어야 할 판이다. 한국에서는 원래 미인체질이라 설사하느라 살이 안 쪘다. 매번 중국만 오면 식욕이 당기기 시작, 보는 이 마다 “그만 좀 먹어라” 할 때까지 강행군. 조식25위안에 눈이 번쩍. 아침뷔페에서 비닐봉지 준비는 필수, 젖은 음식은 뱃속에 채우고 마른 음식은 쭈워예(作業?)를 열심히 했다.

택시타고 '예원'으로 갔는데 나만 택시비가 배로 나왔다. 축 쳐진 눈길이 착해보였나 보다. 그렇다. 운전사가 더 착하다. 본래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을 알아보게 마련이다.

豫園은 1559년 명나라의 관료였던 반윤달이 아버지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정자와 누각 연못 공간 등을 연결하는 오솔길을 배치해 지어준 정원이라는데,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내 외국인이 모두 선망하는 곳이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줄줄이 깃발을 들고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밀려들어온다. 쇼우피아우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바로 상하이 전통만두인 유명하다는 ’ 예원표사는 줄보다 더 길게 서 있다. 우리 일행은 선채로 만두 두통을 꾸역꾸역 먹었다. 예원에서 이 팀 저 팀 뒤를 따라 다니며, 일본어로 듣고, 영어로 듣고, 중국어로 듣고. 한국어 팀이 없어 조금은 갑갑했다. 사실은 엄청 답답했다.

신천지로 나와 인도인이 하는 코쟁이들 속에 근사한 식사를 했다. 가지가지 고기를 들고 식탁까지 와서 근사한 폼을 잡아 썰어주는데, 촌놈들처럼 먼저 이것저것 먹어 그림의 떡이다. 이색적인 음식들 아깝다. 식사 값은 70위안정도. 생맥주도 맛있고. 신천지 걸어걸어 명품들 구경하는 재미 좋지만. 모두들 이케야 매장으로 가라하고, 난 더 이상 ‘못 걷겠다 꾀꼬리~’ 혼자 택시타고 호텔에 와 휴식. 과연 남은 날을 견딜 수 있을까.

상하이 쉬스키, 드디어 남파가 밤에 혼자 나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

이야기인즉, 예쁜 처자가 커피한잔 사달라고 해, 바에 들어가 두 명의 샤우지에에게 커피한잔씩과 상하이위스키 한잔씩을 사줬다는데, 가격이 2500위안이 나왔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터니 300위안 뿐이라 지불을 하고, 나머지 돈을 카드를 긁으니 비자카드가 안 긁어져, 급기야 똘마니처럼 생긴 지배인 이라는 사람과 한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참고로 중국체류기간 1인당 경비로 2300씩 나눠주었음)

나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 리지앙은 문을 닫아버렸다. 예쥐와 산다화 진티엔언니가 해결사로 나갔는데, 시간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간이 작은 나는 한 1500위안쯤으로 합의 보면 안 될까 궁리를 하고, 리지앙은 상해의 사기공갈단 이야기를 한다. 이제 잠시 후면 우리 둘에게 엄청난 거금을 요구하러 올 것이다 며, 그동안 인터넷에서 읽은 카드까지 다 털리거나 장기까지 다 빼 갈 수도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다 잡혀갔나. 어디 가서 두드려 맞나. 별아 별 생각에 걱정은 태산이지만, 우리라도 남아서 구출을 해야 하니 어쩌겠는가.

뒤에 들은 이야기, 그들이 보는데서 언니들이 남파를 후려쳐 들여보내고, 그들이 자기들 술집으로 가자는데, 예쥐가 “미쳤나” 소리 지르며 주문서와 계산서를 가지고 오라고 오히려 닦달을 해, 몇 번이나 거짓주문서와 영수증을 들고 와 신갱이를 하다가, 마침내 300원을 더 주는 것으로 해결을 봤단다.

말이 해결이지 현지에서 ‘뙤놈’들과 싸워 이기는 쾌거! 사기단을 호통 쳐 보내는 일이 어디 보통인가. 한국아줌마들의 그랑프리 위상이다.

그제야 리지앙과 나는 그 조폭 같은 놈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호텔 프론트로 내겨가서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자기들이 해결해 준다고 전화하라는 말만 듣고 올라왔다. 쫓아왔던 한 중국아가씨는 그 와중에도 남파의 전신마사지를 하러왔다고 버티고 서있다.

남자! 남자들! 정말 문제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으니, 보면 모르나 사기인지 아닌지. 자꾸 공부하는 유학생이라고 그들 편을 든다. 중국은 명문대 생들도 아르바이트로 현지처 역할을 한다고는 들었으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신기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절대 안 속는다.

여자는 총명하다. 남자 남자! 그들은 어리석다.




8월 26일 일요일

호텔에서 난징뚱루와 난징시루를 구분하는 런민광창은 명실상부한 상하이 중심이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이 있다. 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라고 본 중국의 전통적 우주관이 반영된 건물이 인상적이다. 박물관이 시내복판에 있으니 찾기도 쉽고 교통이 편리하다. 규모와 전시물이 광대하다. 12만 3000여점의 유물을 약 21개 전시관에 나눠 전시한다는데 볼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날은 덥고 박물관 안에서 식사 해결까지 깔끔하다.

동타이루골동시장 東臺路古玩市場, 60여 곳의 골동품 상점들이 모여 있는 시장. 오래된 도자기에는 청나라 황제들의 연호가 찍힌 것부터 금세 공장에서 만들어온 모조품 같은 녹 처리 가 된 물건이 그득하다. 50위안에 촛불을 넣어 운치를 더하는 등잔을 하나 샀다. 더워서 그런가 보러 나온 사람보다 파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잡동사니들이 다 버릴 쓰레기 같지만, 안목을 갖췄다면 ‘횡재수’도 있을 수 있겠다. 터무니없이 부르고 터무니없이 깎으니, 나를 보고 “따오매이 倒梅” 재수 없다고 가라고 소리친다.

드디어 두 번째 갔다. 전전날 만났던 상인들이 나를 보더니, 정말 친구들 데려왔다고 반가워한다. 아마 나를 가이드쯤으로 여기는가보다. 일행들은 가족들에게 선물할 어린이 치파오, 핸드백 종류를 보고, 진주가게에 갔는데 우리말을 배우는 중국아가씨가 “이거 싸다” “쩌거 이쁘다” 제법 발음이 그럴싸하다. 중간중간 “가나다라~ 아야어여~” 한국어를 연습을 하는 꼴이 곧 한국통이 될 것 같다.





잣이나 참깨 등을 사기위해 농산물시장(農貿市場)에 택시를 타고 갔는데 재래시장소리만 듣고 기사들이 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니다. 중국은 아파트나 집을 지을 때 시멘트 까지만 바르고 분양을 한다고 한다. 집을 산 사람이 벽지 바닥 욕조 등등을 모두 따로 사서 인테리어를 한다는데, 그 건축자재시장에다 내려주었으니, 지칠대로 지쳐 다리는 아프고 택시도 들어오지 않는 거리라 우린 인력거를 잡아타고 달렸다. 길을 잘못 찾은 덕분에 신바람이 바람을 불러 룰룰랄랄♪♬ 노래까지 나온다. 여행이 주는 여유다.




8월27일 월요일

혼자 돌아오다.

시집의 증조할아버지 제사가 내일이라, 아쉬움을 남기고 혼자 귀국했다. 남편은 계속 조처를 다 취해 놓았으니, 안심하고 일행들과 같이 들어오라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여자들에게 시집이 그리 녹록하던가.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그립다. 만약 어머님이 살아 계셨다면 어떻게 협조를 구해보련만, 10년 전 북경에 갈 때처럼, 고추장볶음과 여비를 보태주시면서 응원을 해주셨을 텐데…, 어머님! 무지무지 보고 싶다.

일행은 일일관광으로 쑤저우(蘇州)로 가는 기차를 타러가고,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롱양루(龍陽路)역으로 향했다. 큰 가방을 들고 난징루에 서있는 나를 보고 택시기사가 신바람 나 달려와 내 짐 가방을 뒷 트렁크에 싣는다. 지하철 롱양역에 가자고 했더니, 당신은 가방이 크기 때문에 공항까지 가야한다고 자꾸 말한다. 나는 상냥한 웃음을 거두고 표정을 근엄하게 바꾸었다.

“메이꽌시! 비에단신! 메이요우치엔! 부쓰지창 워쓰롱양루 니카이처바!” 문제없다. 걱정하지마라. 난 돈이 없으니 공항까지 안가고 룡양역으로 간다. 넌 운전이나 잘 해라. 를 몇 번이나 큰소리로 외쳤다.(사실 겁나고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롱양루까지 43위안이 나왔다. 그곳에서 자기부상열차 (차비는 50위안인데 비행기 표를 보여주면 10위안 깎아준다) 를 타고 공항까지 쌩하니 7~8분 정도 소요. 빠르고 편리했다.

계획했던 일정이 바뀐 바람에 동방항공으로 대한항공으로 손짓 발짓 영어 중국어 한국어 총동원을 하여, 29일 표를 27일 표로 바꿔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탔다. 중국 배낭실습여행을 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일시에 피로가 밀려온다.

‘中國’!

중국은 지저분하다. 중국은 엄마만 빼고 다 가짜다. 중국은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 먹고, 다리 있는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고 비하한다.

그러나 나는 중국이 좋다. 중국어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만디한 느림도 좋고, 철학도 좋고, 문학도 좋고, 특히 중국 사람들이 좋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의 사유가 깊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디 다시 누군가가 여행지를 택하라고 권한다면, 서슴없이 나는 또 중국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덤 같은 시간이 주어져 얼마간의 휴가를 얻는다면, 중국으로 숨어들고 싶다.

그곳에서 가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살다가 그럭저럭 무료해지면, 나는 다시 ‘胡蝶夢’호접몽을 꾸러 중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가서 뭘 하느냐고?

그냥 중국의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고 싶다.


"짜이지엔!"


*  2007년 8월에 다녀온 곳입니다.
어느 까페에 올렸었는데, 사진이 다 날아가버려 정리하다가
이곳에 올립니다.


호미   2008-10-29 20:24:46
캬~~~~
혹시나?
람사르 가신 줄 알면서도 외로워서(?) 들렀다가
상해에서 황산까지 구석 구석 잘 구경하고 갑니다.
게다가 중국어 공부까지....
역쉬!
쌤은 짱이네요.

잘 계시죠?
람사르 뉴스에 쌤 얼굴 비칠세라 열심히 보고 있어요.
몸 잘 추스리시고 ...홧팅!
류창희   2008-11-10 08:24:53
ㅋㅋㅋ 카메라도 피해가는 ...
인터뷰 하고 이름까지 적어갔거든요.
조금이라도 젊게 나오려고
나이까지 두살 아래로 밝혔는데
TV 봤다는 사람이 없으니...
아마도 편집에서 잘린 것 같아요ㅋㅋㅋ
청록   2008-11-10 20:04:34
" 오이방; 사모님, 중"우리,
"샘 ;제일 ,멋져"어어어,"""''
류창희   2008-11-17 08:14:00
청록님
고슴도치는 제자식 털이 가장 부드럽답니다.
손이 안으로 굽어서 그래요.
그래도 기분은 참 좋아요 칭찬^^




10년 전에는
공림 (공자묘)의 입구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주어었는데
지금은 미니 관광차가 다닌다.
그러나 특별한 노약자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는다.



▶공림(孔林) : 공림은 공자와 그 자손(子孫)들의 묘가 있는 곳으로
세계에서 제일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가족묘(家族墓)이다.
곡부의 북쪽으로 1.5Km를 가면 ‘지성림(至聖林)’이라는 문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공림이 시작된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그의 지위가 커지고(황제들도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갔다),
공림의 면적이 계속 넓어져 현재는 약 60만평에 담장의 길이가 7Km에 이르며 묘가 약 2만기가 있다.






공림에는 안쪽에 있는 공자의 묘에는 대성지성문성왕묘(大成至聖文宣王廟)라고 씌어져 있고
그 동쪽에 공자의 아들 공리(孔鯉)의 묘,
남쪽에 손자 공사(孔思)의 묘를 비롯하여 공자 제자인 子貢의 묘가 있다.
그런데 공자의 자손은 1948년에 이곳을 버리고 타이완(대만)에 이주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공자의 묘

중국이나 공림의 크기에 비해 웅장하거나
규모가 대국적이지는 않다.
근대에 와서
중국은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각하는 만큼
공자를 성인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중국 교과서에서도
문학가 사상가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논어 몇줄로 간단하게 실려있었다고 한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다시 부각되는 인물이 되어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만방에 공자의 위상을 드날렸다.

무섭다!
공자의 지배논리를 찾는 중국이 ...






자공의 묘

춘추전국새대 위나라 사람
성 단목
이름 사
자 자공
공자보다 31세 연하이며 말을 잘하고
특히 이재에 밝아 요즘 말로 하면
투자만 했다하면 대박을 내는 펀드의 귀재다.
공자가 걸어다니거나 말 한마리를 타고 다닐
비루한 형편을
'에쿠스' 정도의 차를 뽑아 공자 살아생전의 품위를 높혀주었다.
그로 인하여 뽐내기를 좋아하며
나서서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논어문장에서는 수업시간마다 공자에게 야단을 맞는다.
우리 논어를 같이 읽는 학우들은
누구보다 자공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다.

지금 우리들도 모임에 나와 밥값내면서
말을 많이 하면서 생색내는 사람은 봐줘야하는데 ...

스승이 돌아가시면 부모상과 마찬가지로
3년 상을 치룬다.
상복을 입지않는 '心喪' 3년상이다.
3년뒤 다른 제자들이 다 떠나간 후,
오로지 자공만이 3년상을 더 살아 6년을 지키고
죽어서도 공자옆에 묻혔다.
2천5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자묘 옆에서
공자를 보필하고 있으니 ...

질긴사제지간의 '아름다운 인연'이다.







공자 보다 일찍 죽은
공자의 아들 鯉의 묘와
손자 子思의 묘

손자 자사의 이름은 伋이며
증자의 제자이다.
중용을 지었다고 한다.









공자의 묘앞에는
헌금을 넣는 함도 있고
무엇보다 전에는 없던 방석이 놓여있다.
중국 사람들은 엎드려 절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국사람을 위한 배려가 아닌지 ...
나,
물론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중국의 10대 명주에 속하는 '공자가주'는 유명하다.
산동성 취푸에서 생산되며 도수는 약 39도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소주이다.
전에는 주로 제사용으로 사용되었으나
요즈음에는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연회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무작정 舞雀庭'
참새들이 춤추는 뜰, 술이름 딱! 이다.
무작정 마시는 거다.


간판중에 '음주가무'의 도구는
한국어로 씌여져 있다.
이런것도 한국인에 대한 배려?


▶성 밖에는 우리나라의 60년대 모습의 재래시장이 있는데 이곳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과일이나 야채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호객을 하고,
한편에서는 만두나 꼬치구이 등을 파는 포장마차나 간이식당들이 줄지어 있는 시장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중국 술 공부가주(孔附家酒)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호미   2008-10-13 21:06:10
오래전에 도올 선생님이 중국옷 입으시고 -TV에서
공자묘랑 사당등을 설명하실 때
중국인들에게 공자는 거의 잊혀진 존재였다 여겼는데...

베이징 올림픽에서 살아나는 공자는
또 한번의 문화적 침략을 불러 올까 두려웠어요.
- 만약 그렇다면 논어 공부를 접어야하나요? ㅋ.........

저도 자공처럼 능력(?) 있는 제자였으면 좋겠네요.
"심상"은 차마 못하지요.
제가 쌤보다 "올드"하니까....

하지만, 사랑으로 기도해 드립니다.
쌤, 건강하세요.
류창희   2008-10-14 08:20:06
호미님
논어 같이 읽어서 국력을 강화시켜야죠.
거국적으로 ...

'知彼知己 百戰百勝'

공자 뿐만 아니라
'제자백가' 하나도 소홀할 분이 없네요.

같이 목소리 내요 우리~
한사람의 힘은 미약하나
세사람만 모이면 ...




제남시 산동성 곡부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 (일명-취푸)

산동반도에 있는 곡부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孔子)의 출생지이며,
2,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노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와 공자가 집무를 보고 가족들이 거처하던 공부(孔附),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孔林)이 있다.
세 가지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공부(孔府) : 공부는 공묘의 오른편에 동서 3.5Km, 남북 2.5Km로 둘러싸인 곡부노성을 말하는데,
공자의 가족들이 대대로 집무를 보거나 거주하던 곳이다.
송나라 때 인종황제가 공자의 46대 손(孫)인
공종원(空宗願)에게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벼슬인 연성공(衍聖公)에 봉하고
이후부터 곡부지역을 다스리게 하였으며 송나라 때인 1038년에 공부(孔府)가 지어졌고,
명(明)대에도 다시 황제의 명에 의해 연성공부(衍聖公府)로 봉해진 후 증축이 계속되었다.
그 후에도 淸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이 공무를 집행하는 곳,
가족들이 거주하는 집, 후원과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곳,
손님을 접견하는 곳등 463間으로 되어 있어 당시 孔씨 家門의 권력과 규모를 보여준다.











▶공묘(孔廟) : 공묘는 공자 사후 1년인 기원전 480년경(2,500백 년 전)에 세워진 후
각 왕조(王朝) 때마다 공묘에 건물을 지었으며,
공묘는 현재 중국의 가장 큰 사당으로 정원에 있는 수명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고목들과
닳고 닳은 바닥의 돌들은 공묘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공묘의 본전(本殿)인 대성전(大成殿)은 북경 고궁(자금성)의 태화전, 태안 대묘의 천황전과 더불어
중국 3대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높이 24.8m, 폭 45.8m, 길이 24.9m의 규모로,
남송(南宋)시대에 만들어진 중국의 궁전양식으로 공자의 위상을
황제(皇帝)와 동일시(同一視)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전면의 용이 새겨진 9개의 돌기둥 역시 황제만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공자 (B.C.551~479)
성: 공
이름 : 구
자 ; 중니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양공 22년
부- 숙량흘 모- 안씨  
창평향 추읍에서 출생
유가의 시조 이며
시 서 예 악 역 춘추 6경을 산술

공자의 제자는 당시 3천명이 있었으며
육예에 통달한 제자들이 72명이 있었다고 함

그중 공문십철 제자들 명단이다.
덕행 -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언어 - 재아 자공
정사 - 염유 자로
문학 - 자유 자하

공자의 일생
지학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을 지나
73세로 세상을 떠나다.


호미   2008-10-13 20:56:08
쌤 덕분에 공자님의 고향을 다녀온 듯....
설명과 사진이 함께 있으니 감사합니다.

어쩌면, 곡부는 유학에 있어선 "성지" 일터...
"자 왈..." 을 읊조리는 인연으로 한번 가보고도 싶은데

쌤이 이미 혼자 다녀 오셨으니
저는 기냥 사진이나 볼까봐요. ㅋㅋㅋ

바쁘신 중에도 열심으로 챙겨 주시는 정보에 감사 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아자 !!!
류창희   2008-10-14 08:30:22
호미님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식들이 효도관광으로
계림이나 곡부를 보내드리면

"이제 곧 땅속으로 들어갈텐데 ...
뭣 하러 남의 무덤에 들어가 ~"

역정을 내시며
호텔방 안에서 '고스톱'만 친다네요^^*
호미   2008-10-14 20:36:12
ㅋㅋㅋ
우리 어른들의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남의 무덤이라...

북경여행에서 "명 13릉"을 보았었는데
그 규모가 놀라워서 남의 무덤도 볼 만하더군요.

암튼,
쌤 덕분에 좋은 구경 많이 합니다.
감사! 감사!!!
류창희   2009-03-25 21:16:21
호미님,
제가 작년 10월 댓글을 이제 봤어요.
억쑤로 반가운데 요즘 뵐 수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보고 싶어요^^
류창희   2009-05-14 07:51:26
'萬古長春' 세상에 유래없는 긴꿈 - 인생이 항상 봄처럼 길고 오랫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뜻
'民生未有' 백성이 생긴 이래 공자와 같은 성인은 없었다.

콩콩나무님 곡부다녀오신 후 질문에 관한 답입니다.



태산의 정상
정상에 오르니
10여년 전에는 없던 새로운 풍경화들이 있었다.
연인들의 사랑을 꽁꽁 묶어놓는다는
'쇠자물통'
사랑 무지막지 무섭다

태산은 禮에 어긋난 제사는
절대 받아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

[계씨가 태산에 旅라는 제사를 지냈다.
공자가 염유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바로잡을 수 없겠느냐?"
염유가 대답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일찍이 태산의 신령이 임방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논어 제 3권 팔일편 6장 문장)

욕심많은 季氏가 泰山의 산신에게 旅라는 제사를 지냈다.
旅제사는 魯나라의 임금만이 지내야 하는 것인데.
禮를 깨고 계씨가 지낸 것이다.
예를 지키지않으면 인간의 대열에도 설 수 없는데
하물며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매일 "子~曰" 공자님 말씀을 전해야하니...




어찌 하겠는가.
태산에 오른 사람들은
한다발의 향을 사서
태산의 하늘이 뿌옇도록 향을 사르거나
쇠자물통으로 꼭꼭 잠궈놓거나
...
...
그도 저도 아닌 나는
가장 편한 방법으로
헌금을 할 수 밖에 ...




아직 나는
시간과 경제사정이
외국여행을 할 처지가 되지는 못하나
그래도
중국은 기회만 닿으면 가고 싶다.
'국태민안'을 위해
제사를(?) 모시러 ㅋㅋ

돈은 항상
대한민국의 위상을 위하여
엔화도
달러도
위안화도 안된다.
반드시 '퇴계 이황'이 그려진
우리나라 돈을 꽂아야 한다.
돈은 한국문화의 꽃이다.
' 韓流花 한류화^^* '
한류화가 세계만방에 피어나야 한다.





풍요로움의 상징인
붉은 색 앞에
있는대로 욕심을 부렸다.
나의 가족
우리나라
부산시민
그리고 특히 나와 함께
각 도서관에서 논어를 같이 읽는 학우들
모든이들의 공부를 위햐여 !!!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경제적인 富를 위하여 !!!

""爲 웨이~"
"發財 화차이"
"豊富 펑후!"

"부자되세요"

돈신에게 빌었다.
욕심 태우는 연기 하늘로 올라간다^^*



다시 한번 양사언의 '태산'을 읽어보자


<경상도 버전>
태산이 놈따꺼모 지 얼마나 높을끼고
하늘아래 쬐껜한 뫼 아이가 그쟈?
올라가고 또 올라가모 몬 올라갈 자슥 어딨겠노 말이다
사람들는 지는 올라가 보도 않고 뫼덩거리만 높다카이
아 참말 죽을 지경인기라

<전라도 버젼>
태산이 높다 허건들 진장 지가 월매나 높을것이여 잉~
하늘 밑에 쪼깐한 뫼랑께
아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 못 올라갈 노미 워딨겄어?
사람들은 올라가 보덜 않고
아 뫼만 잔뜩 높다 하는디
환장하겠당게 참말로~


오늘, 하루도 태산을 오를 일이다.
그 고지 어드메뇨?


호미   2008-10-08 20:16:57
ㅋㅋㅋ
태산에서 기도 하신 쌤 덕분에 우리 모두 부자 되겠네요.
"꽁시 파~차이"
저도 그림 보며 기도 합니다.
쌤도 부~자 되세요.

갱상도 버전 절라도 버전으로 읊은 시조가
쬐까 껄적 지근 하지만
그래도 맛깔나네요. ㅎㅎㅎ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류창희   2008-10-09 08:53:41
지명의 나이에
천명을 받아들여야지요.

지금까지 가진 것
지금까지 누린 것
두손으로 밥먹고
두발로 걸어서
가을햇살로 샤워할 수 있는 福,
우리 더이상 무엇을 더 바라리요.

돋보기 끼고 바라보는
손익계산서 일랑 덮어두고
멀리 바라보이는 풍요로운 정신세계^^

우리 그래서 별 영양가 없는
<고전의 향기> 읽는 것이 아닌지요.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답니다.

호미님 부 부부님도
나란히 부자되세요 ^^*
이태숙   2008-10-28 12:09:40
ㅋㅋㅋ
무수히 꽂혀 있는 중국의 돈 위안화에 갑자기 당당하게
퇴계 이황이 그려진 돈을 꽂는 류창희님의 행동에 흠칫 놀라
당황스럽던 나
바로 이게 나라를 사랑하는 류창희씨의 마음의 표현이란걸
금방 알아 버렸죠!
태산에 같이 오른 여행객....
류창희   2009-03-25 21:12:52
ㅋㅋㅋ 이태숙님
이제 봤어요. 작년에 올리신 내용을 ㅋㅋㅋ
제가 그렇게 1000원 가지고 생색을 내고 잘난척을 해요.
'한국의 문화' 의 꽃은 역시 '돈' 아니겠어요.
외화 많이 벌어야해요^^




중국 산동성 태안시
산동성 태안이 워낙 평지이다보니
꽤 그럴싸한 산이 나오면 태산이다.
높이는 1500m 정도
중국 오악중에 하나며
제일의 명산이다.








10여년전 넓은 잔디 위에서
구름안개 속에 휩싸여
옆에 있는 사람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
올라갈 때는 비가 간간이 흩뿌렸는데
정상에 오르니
신선하고 맑았다.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관광객의 대부분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역대 중국황제가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누구라도 신령스런 태산에 오르면
태산의 기를 담아가기 위해
하늘 밑에 겸손해진다.









泰山雖高是亦山
登登不已有何難
世人不肯勞身力
只道山高不可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김옥경   2008-10-09 19:35:19
선생님~~
사진을보니 저도 중국여행가고
싶어요
중국어도 배우고 싶은데
노하우를 알려주세용*^^*
제가맛있는 점심을
대접할게요~~
류창희   2008-10-09 20:12:14
어떤 분들은 낙후된 곳이라고
중국만은 안 가고 싶다고 하는데...
우리처럼 한문(중국고문) 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중국이 친근하게 느껴져요.

김옥경님
중국문자는 이미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고요.
노하우(?)
왕도는 무조건 관심가지고 사랑하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김옥경   2008-10-09 22:43:10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중국어회화를 집에서
독학을 하고 있는데 조금막연했어요
열심히 도전해보겠습니다
화이팅^^
류창희   2008-10-10 08:25:11
ㅎㅎㅎ
제가 또 잘난척^^
공부는 제 경험인데요.
'독학'으로 하면 힘든 것 같아요.
동네 방네 소문을 내야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특히 중국어는,
'한사람이 중국어를 배우면 다섯 집이 중국어를 다 잘한다네요'
미친듯이 시끄럽게 한다는 뜻이죠.

아무데서나
"쏼라~ 쏼라~ 算了算了~ "

김옥경님
"쟈요우 加油 !!! "
이태숙   2008-10-28 12:28:36
好久不見了
으악!
태산 이네요
이날 많이 더웠죠!
케이블카 타고 올라 갔지만 다리 후들후들
감기 걸려 버스안에서 오들오들
떨고난 다음날 인 것 같은데 사진속의 얼굴은 웃고 있어요
나름 즐겁고 유익한 태산 여행!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류창희   2008-11-04 13:59:59
ㅋㅋㅋ
사진 속에서 웃고 있어
그날 제가 얼마나 아팠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옆에서 양팔벌려 태산의 정기를 받은 우리들^^
벌써~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네요^^*
하연심   2008-11-04 21:30:38
태산 사진 잘 보고 갑니다 혜원이랑 태산역에서 할머니한테 옥수수 *5원어치 다섯개 *사가지고 올라가면서 다먹고 내려가서 다시 사러 갔더니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더 큰것 골라 주시는데 괜찮다고 했지만 그냥 받아 북경가는 기차에서 냠냠 ^*^
류창희   2009-03-25 21:09:22
하연심님^^ 이제 봤어요. 저는 태산에 간날,
배탈과 몸살로 너무 힘이 들었어요.
사진에는 멀쩡해 보여도 골병
그래도 기회가 닿으면 또 가고 싶어요.
태산의 정기를 받으러^^






중국 산동성 제남 곡부에 들어섰다.

TV에서는 허난성 숭산의 소림사 스님들을
상품으로 한다고 비난하는 것을 보았었다.

곡부에 막 들어서는데
가장 먼저 보이는 환영 메세지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만리장성이 제1의 관광상품이 되듯
진시황제의 토우용병들이 상품이 되듯
이사람들
급기야
'聖人 孔子'를 자원화시킨다는 생각
무섭게 다가온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 첫무대에
전통복장을 한
2008명의 유생들이 나와

2,500년전의 공자와
지금 현재의 현대중국을 접목시키는 문구를
전통 타악기와 디지털로 재연했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올림픽 개막을 여는 첫 환영문구이며
곧 디자인이다.

기원전 공자의 지배논리
다시 부활할 것인가.

전 세계에
'孔子의 列國行'이 시작되었다.



강변학생   2008-08-22 14:31:09
孔子 列國行의 문루앞 우리 훈징님
너무 멋저요
개학하면 좋은 견문들을 ,,,,,,,
오늘은 제법 시원하군요
항상 건강하십시요
류창희   2008-08-22 16:58:53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루 없었어요.

공자열국행 동상은 없었는데 ...
막 곡부 톨게이트로 들어가며
줌으로 당겨 찍었어요.

들뜬 마음으로
감회가 깊어
마음 '둥둥'
혼자서 북치고 장구쳤지요^^*




화랑 안을 안 통하고
바로 작은 하얀 문으로 들어가도 된다.

농염한 자태 뽐내며
능소화가 내려다 보며 반기고 있으니,































































물밫 닮은 작고 예쁜차
운전하고 가는 내모습을 차에 담아본다.
창문 내리고 손 흔들고 싶다.

어쩌지~
나와 꼭 어울릴 것만 같은데....















화랑 뒷뜰

정자에 가방 내려놓고

오붓조붓
둘러보는 것이 좋다.

구석구석
담장에 돌확에 풀섶에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분꽃 제비꽃 능소화 등등
작으면 작은대로
진하면 진한대로
촌스러우면 촌스러운대로
화사하면 화사한대로

가끔은 화랑주인이 나와
나무와 꽃에게 물을 뿌려주며
싱긋 웃어주는 미소가 좋다.

외지고 조용한 화랑에
전시하는 작품보다
때론, 마당을 둘러보며 걸을 때
행복이 차오른다.
꽃향기들 처럼^^*


류창희   2008-08-31 17:44:17
두 아들들을 따로 불러 앉혀놓고
각자에게 말했다.
"장래에 너희들 형제 의논하여
어미에게 '미니' 요런 차 한대 뽑아라"

내가 타고 다니고 싶어서가 아니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내가 너희 아이들을 '마티즈'에
태우고 다니는 것이 더 좋으냐
아니면
'미니'에 태우고 다니는 것이 더 좋으냐?

큰놈 왈 : 엄마 저 학교나 졸업하고 생각해 볼게요.
작은놈 왈 : 엄마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가장 타고 싶어하는 차인데
엄마가 뽑아서 저 한테 주세요.
남편 왈 : 내가 뽑아 드리지 ... 복권 당첨되면 ....
나 왈 : 꼭 물빛색깔로요.

누구를 믿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