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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지구의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채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벽이 되기도 길이 되기도 하는 신비한 공간, 내가 바다를 자주 찾는 것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유년 시절, 바람을 타고 물 위를 가르는 세일링(sailing)을 시작한 뒤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목선(木船)은 낡고 무겁고 느렸지만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끝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때 느낀 기쁨은 수영 안전선 안쪽에서 튜브를 탄 채로 파도에 떠밀리며 느끼는 수동적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위에서 순위를 겨루는 요트 경기는 재미있지만 쉽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는 것도 순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패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효율보다는 낭만을, 성공보다는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노라 변명하며 바다의 경쟁에서 도망쳐 나왔다.
바다에서 얻은 야망, ‘마음만 있으면 결국 느리게라도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결국 바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고, 2010년에는 두 친구(박효준, 임재환)와 24피트 돛단배로 바람만을 이용해 전국 연안일주를 하게 되었다.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제주도, 부산, 울릉도, 독도를 거쳐 강원도 양양의 수산항까지, 물도 전기도 부족한 원시적인 생활, 바람이 불어올 때 달리지 않으면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작은 돛단배에서 보낸 67일의 시간, 사진과 영상을 잘 찍어두고도 팔릴 만한 대의나 명분을 붙이지 않았다.
아마 ‘최연소’나 ‘모험’ ‘꿈’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며 성공을 구걸했다면 좀더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같이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때의 낭만의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다.
낭만보다는 효율과 성과를 강요하고, 욕망과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것은 늘 승리자다. 꿈은 논리로 포장되고 승자의 이야기는 팔리기 좋게 미화된다. 그런 사회의 교육은 깎아내리기식 비교와 승리를 위한 집념의 주입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의 효율성이 과잉 주입된 인간 지성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할까? 바다에서 얻은 사소한 성취를 낄낄대며 나누고 싶다. 낭만의 계절 봄이니까.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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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6월, 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입시 미술학원에 가는 첫날,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교문을 나오면서 보았던 해가 지는 풍경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하루의 시간 중, 해 질 녘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는데.
바라던 나의 길, 하지만 보잘것없는 재능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헝클어졌다. 그럴 때면 바다로 갔다.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빚을 내어서라도 충동적으로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뚜렷한 직장도 소득도 없는 내게는 매 순간이 경제적으로는 결정적 위기이지만, 자유롭게 주어진 많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기라고 합리화를 했다.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점이 묘하게도 위로가 됐다. 내가 걸어온 길은 작은 발자국 몇 개, 그조차도 금세 파도에 씻겨나갔다. 그것이 아까워 사진을 찍고, 물속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먼바다로 나와 홀로 둥둥 떠 있을 때면 나의 보잘것없음을 매번 느낀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남은 모든 것을 버린 적 없고, 그렇다고 이것을 놓아버릴 용기조차 없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바다에 비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바다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파도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얻는 동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카메라값보다 비싼 방수 장비는 강한 파도에 휩쓸려 몇 번이나 부서졌다. 큰 파도 속에서 한참 수영을 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옷을 입어야 했다. 이안류와 조류에 휩쓸리더라도 당황해서는 안 되고, 카메라의 안전에도 신경 써야 했다.
운이 좋을 때면 몇 장의 좋은 사진을 얻었고, 운이 나쁠 때면 몸과 장비가 망가졌다. 촬영 환경은 물놀이보다는 생존훈련에 가까웠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준비가 필요했다.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더라도 사고는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바다로 가는가?’ 수없이 되뇐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바다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쓸데없는 개인 작업. 10년 동안 ‘바다 사진’을 찍으면서 겨우 알게 된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많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하지만 해낼 수 있다/해낼 수 없다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단지 하고 싶다/하고 싶지 않다 정도만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아마 인간이 동물보다 바보 같은 점이 있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며 계속해서 고민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집착과 고민을 하는 것이 ‘하고 싶다’에 대한 충분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파도 속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의 두 팔과 두 다리 이외에는 자신을 도와줄 어떠한 기계도 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본력으로부터의 정치, 적당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은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그 속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힘도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나는 파도 속에서 살고 싶다. 쉽지 않기에 천천히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이 자라나게 되었다.
2014년 가을, 하와이 노스쇼어, 천천히 끝까지 가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며칠 정도 카메라를 놓고 서핑만 하며 ‘힐링’하다가, 카메라를 잡은 날, 해가 질 때까지 물속에 있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나 먼 곳에서, 빚을 내어가며, 이 짓을 하고 있나?’를 생각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빛을 다시 보았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는데.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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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변했다. 몇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자 곧 방향감각을 잃었다. 리어카만 한 배에 침대 시트만 한 돛이 달린 작은 배를 탄 꼬마들에게는 쉽지 않은 순간, 모두 홀로 각자의 배를 몰며 배 길이의 반만 한 너울을 넘으며 제자리를 맴돌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겪어보지 못한 난관이지만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겁이 났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비를 피할 곳도, 멈춰서 울 만한 여유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10대 시절의 몇 년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작은 배 위에서 보냈다.
길이 2.3m, 폭 1.13m, 선체 무게 35kg, 돛 면적 3.3㎡ 크기의 작은 배. ‘옵티미스트’(OPTIMIST). 바람만을 이용해 움직이는, 16살 미만의 아이들을 위한 1인승 종목.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진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닌,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배. 네모난 선형의 배는 뒤집히고 나면 힘들여 다시 세워야 했고, 세우고 나면 배 안은 목욕탕처럼 변해 한참을 물을 퍼내야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돛의 면적을 늘이기 위해 장착된 봉(sprit)이 빠지거나, 돛(sail)을 돛대(mast)에 고정하는 끈(tie)은 바람이 세면 터져나가는 등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 예측해 대비를 해야 했다. 배는 바다의 비위를 맞춰야만 조금씩 나아갔다. 매 순간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문제를 직접 경험해봐야만 했다. 바닷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어린이용 배의 이름이 ‘낙천주의자’(OPTIMIST)라니 그럴싸했다.
‘낙천주의자.’ 지금의 시대에 얼마나 생소한 단어인가. 어려서부터 외워야 할 것이 가득한 환경. 순위로 평가받으며, 경험보다는 학습을 강요받는 삶, 해야만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가득한 세상. 불필요한 많은 정보들, 삭막한 위계질서, 과대포장과 거짓말들, 도시의 삶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거울 때면 휴가를 내어 자연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바다는 가장 크고 어디에나 있다. 육지에서 먼 바다를 바라만 보아도 좋지만,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그 자체다(사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것에는 즐거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 느껴지는 힘, 뒤집힌 배를 세울 때의 노력, 배 위에서 흘리는 땀과 달리면서 맞는 바닷물, 조류와 바람을 읽는 법, 푸른 하늘과 투명한 바닷빛, 규칙을 따르되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복잡했던 세상이 꽤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추종하면서 사는 것, 남을 비판하거나, 환경을 비관하는 것, 그러한 것들 모두 바다 위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배를 몰고 있는 것은,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현재를 대하는 태도다. 나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큰 배가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작은 배가 진짜 항해를 한다.” 무섭고 겁이 나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기분에 피식 웃음이 난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낙천주의자’(OPTIMIST): 낙관주의자 혹은 낙천주의는 비관이나 우울함, 불행, 이기주의, 외로움 등과는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모든 것을 긍정만 하는 것과는 차별된다. 어려운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는 파도 속에서 사진을 찍는 ‘바다사진가’ 김울프가 바다에서 즐기는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칼럼입니다.
“힘이 약한 아이들이잖아요. 작은 파도를 양보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탈 수 있는 파도는 없어요. 그 아이가 곧 당신의 파도를 가로채는 어른이 될 거예요.” 인도네시아 발리의 유명한 서핑 명소인 울루 와투(Ulu watu) 포인트에서 들은 얘기다.
서핑은 파도가 부서지는 경사면을 따라 횡으로 내려오는 스포츠이고, 한 파도에 한 명만 탈 수 있기에 서핑 명소에선 파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아이들은 파도를 잡기 위해 경사면까지 다다르는 패들 힘이 어른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파도의 힘이 비교적 약한 가장자리 쪽에서 파도를 잡는다.
그런데 어른들이 큰 파도를 타고 내려오면서 가장자리의 작은 파도를 잡으려는 꼬마들에게도 양보하지 않자 한 아이의 부모가 소리친 것이다. 놀랍게도 그곳의 분위기는 바뀌었고 가장자리 쪽의 약한 파도는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혼자 처음부터 인생을 얼마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이 키워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낯설고 외딴 바다에서 꿈꾸던 모습의 세상을 만난다. 내가 서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진화해온 문화 때문이다.
하와이 북쪽 해안의 겨울 파도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큰 너울이 들어올 때에는 어른 키의 몇 배가 되는 파도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파도를 타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서퍼들이 몰려든다. 처음 그 풍경을 보았을 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생각을 해야 저렇게 큰 파도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풍경은 동네 꼬마들이 자연스럽게 그 파도에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큰 파도는 위험해, 더 크면 하게 해줄게, 그쪽으로 가지 마, 이쪽으로 나와, 다른 아이들이 있는 안전한 곳에서 놀아.” 소리치는 한국 부모들 사이에서 대여섯 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하와이 동네 꼬마가 들기도 버거운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한다. 바로 옆에 있는 부모가 해주는 말이라고는 다음과 같았다. “네 보드는 네가 잡아, 파도의 피크 부분만 조심하면 생각만큼 무섭지 않을 거야. 겁먹지 마, 넌 할 수 있어.”
무시무시한 파도가 있는 풍경을 가서는 안 될 공포의 공간이 아닌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어주는 건 부모의 말 한마디였다. 아이는 자신이 즐기고 싶은 만큼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학습보다는 경험과 도전을 장려했다.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넘어져도 울지 않았다.
이런 문화가 오랜 시간 축적된 탓인지 모두가 노련했다. 그 누구도 안 된다고 막아서며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어른들이 배려하고 양보해준 만큼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동안 형성된 분위기가 다음 세대의 분위기를 만들고, 그것들이 선순환될 때 선진사회가 만들어진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모두 각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정하기 위해서는 외우고 배우는 것보다,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한다.
전통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진다. 현재는 곧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경험, 기회가 아니라 동기다. 하지 말아야 할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다음 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낯설고 외딴 타국의 바닷가에서 중요한 이치를 생각했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The Winner of Creative Spirits
Kim, Wolf
지난 달, 에너지 넘치는 서퍼들의 사진을 보내왔던 김울프는 다양한 독립 문화를 좋아한다. 그것들을 즐기고, 또 즐기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단순한 ‘촬영자’가 아닌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의 눈과 손으로 기록된 이미지들은 독창적이고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다.
문화적으로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영향을 받았나요?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부산대학교 앞에 카시나라는 스케이트 보드 샵을 통해 외국의 스케이트 보드 비디오 테입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권위에 대한 저항(아나키즘, 반달리즘 등)이 있었고, 그러한 성향의 펑크 음악이 있었지요. 그 때 ‘인디’라는 단어로 불리우는 독립적인 성향의 여러 움직임들이 있었고, 저는 그러한 움직임에 꽤 가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펑크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게 제 일생 최고의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홈비디오(8mm) 카메라로 친구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타면서 악동스러운 모습을 촬영하고, 합주실에서 MD 플레이어로 친구들의 음악을 녹음하고, 집에 와서 비디오 플레이어로 편집을 해서 뮤직비디오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냈어요. 방송 심의도 필요 없었고, 이윤 추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 사회적인 평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끼리 돌려보는 게 다였지만 참 재미있었습니다. 문화 소비자로만 살다가 문화 생산자의 기쁨(?) 같은 것을 처음 느꼈는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꽤나 재미있는 무엇인가를 우리끼리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계기로 조금 더 자주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작지만 강한 독립적인 문화들에 매료되어 있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서핑과 관련된 사진을 소개했는데 서핑과는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나요?
햇수로는 8년이 되어가네요. 바다 속에서 파도와 서퍼를 촬영하게 되면서 많은 서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서핑 사진은 스포츠 사진의 범주가 아닌 미학적인 관점으로의 개인 작업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지금도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대외적인 작업량이 많진 않아요. 그동안 다큐멘터리적인 속성으로 잡지나 TV 등 매체를 통해 서핑의 대중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러한 움직임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서핑과 관련된 많은 움직임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발 빠르게 자라나고 있는 서핑과 관련된 대기업의 상업적 흐름과 각종 협회와 같은 거대한 권력에는 적극적으로 편승하고 싶지 않아요. 거대 이익집단이 문화를 지배할까봐 두렵고, 그에 일조하기보다는 순수 작업자가 되고 싶습니다. 평소에 여러 분야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기도 하고, 저의 바다 사진은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개인 작업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핑과 관련된 인연은 갈수록 좁고 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파도로 서핑을 할 수 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주로 어떤 곳에서 어떤 날 서핑을 하나요?
한국에서 서핑이 가능하다는 것은 현존하고 있는 수많은 서퍼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생각 외로 서핑을 탈만한 장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 언제든 서핑을 탈만한 큰 파도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요. 파도는 너울의 방향, 조수간만의 차, 바람의 방향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내외의 각종 일기예보 사이트를 보고 움직이게 되면 좋은 파도를 만날 확률은 높아지겠지요.
사진으로 서핑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2006년, 서핑을 처음 하러 간 날, 서핑보드 대신 바디보드와 DSLR카메라, 그리고 독일에서 주문한 카메라용 방수케이스를 들고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갔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진에 집착하고 있었던 시기라 자연스러운 시도였죠. 그때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카메라를 몸에 연결하는 끈에 오른손 엄지가 돌아가고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걸어서 병원에 갔는데, 전신마취 수술을 두 번 하고 두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라 손을 이용하는 일이 많은데 한순간에 불구가 된 거죠.(몇 년간의 재활을 통해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입원해 있으면서도 다치기 직전에 보았던 크고 멋진 파도의 모습을 찍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포기하면 너무 바보 같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제가 서핑 사진을 계속해서 찍는 이유입니다.
서핑 이외의 다른 기록물도 많은 걸로 알아요. 소개해 주세요.
처음으로 작업적인 부분으로 접근했던 것이 그래피티와 하드코어 음악이었어요. 누구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뭔가가 되겠다’라는 마음보다 그냥 보고만 있자니 아까워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요트선수를 했었고, 동생이 계속해서 요트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문화를 기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요트 촬영도 시작하게 되었구요. 대부분의 개인 작업들은 강하고 멋진 문화들이 그냥 이야깃거리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촬영하게 된 것 같네요. 제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문화를 지지하기 위해 촬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스케이트 보드를 같이타던 친구가 근사한 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Nikon FM2였어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죠. 집에 있던 오래된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어요. 한 달에 슬라이드 필름 20롤은 썼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해외 배낭여행을 가고 중고차를 살 때 사진으로 아르바이트 해서 사진에만 돈을 썼는데, 지금까지도 자동차 운전면허도 없지만 사진은 계속해서 찍고 있네요.
작업 과정이 쉽지 않은 사진을 찍고 있어요.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기억이 있나요?
최근 하와이에서 세계적인 파도 사진가 클라크 리틀(Clark Little)을 만나 함께 촬영했습니다. 영웅 같은 사람과 해변 바로 앞에 10피트 이상 크기의 파도에 뛰어 드는 것은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2011년, 플래툰에서 작가 지원을 받기도 했어요. 어떤 작업들을 했나요?
마이너리티-리포트라는 서브 컬쳐 리서치 계획이었는데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가진 각 문화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조금 더 큰 틀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방향을 잡기 위한 과정을 겪는 중에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행여나 제가 벌인 하나의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문화를 평가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독립 문화들이 내외부적인 상처를 딛고 다시 제 자리를 찾고 있는데, 더 지켜봐 주고 더 지지해 주는 것이 모두에게 훨씬 이롭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거죠. 진행되었던 인터뷰들은 나중을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반성문을 제출한 뒤, 마이너리티-리포트라는 큰 계획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문화적으로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고, 올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최근에는 혼자서 세상과 부딪히며 세상을 바꾸고 있는, 초강대 개인들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혼자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자 하는 OSSI의 송호준,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 레드불 BC one 2012에서 준우승한 B-Boy Differ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보고 싶어요. 바다에 대한 사진으로 개인전을 여는 것도 목표 중의 하나구요.
우리나라 문화 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다양한 시도들을 모두 존중한 채로, 한 명의 관찰자로서 남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 뭐 그리 해야 할 일은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많은지, 생각할수록 삶이 억울했다. ‘누군가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도 잘 살 수 있는데, 왜 시스템 속에서 평가받고 권위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연히 듣게 된 펑크록 음악의 ‘아나키즘’(Anarchism) 정신에 빠졌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지만, 실제의 뜻은 탈권위주의나 반강권주의, 비권력주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권력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서핑은 아나키즘이 통용되는 멋진 장르다.
바다와 파도의 역사는 지구의 역사와 같다. 해수욕은 인류의 역사 내내 바닷가 놀이 문화다. 서핑은 세일링(sailing)과 마찬가지로 바다에 자신을 맞추어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데, 그 덕분에 살아 있는 지구와 함께 호흡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 느낌은 황홀하고 중독적이다. 게다가 자연은 모두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서핑은 오래된 놀이 문화다. 파도를 거슬러 고대로 넘어가야 우리는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은 타히티에서 나무 판자를 타며 놀이를 했다. 이것이 하와이로 전파됐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하와이에서 처음 서핑 클럽을 열었던 듀크 카하나모쿠에 의해 서핑이 대중화됐다. 듀크 카하나모쿠는 지금도 와이키키 해변에 동상으로 남아 있다. 그는 세계기록을 경신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영 선수였다. 근대 서핑의 역사는 100여 년 정도이지만, 서퍼들은 1천 년 전과 같은 파도를 타고 있다.
많은 서퍼들은 서핑이 경쟁 스포츠로 제정되는 것을 반대한다. 이를테면 지난 10월5일 2020년 도쿄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서핑이 추가됐는데, 많은 서퍼들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 수준급의 서퍼가 많다. 특정 회사의 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프로서퍼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프리서퍼’ ‘솔(soul)서퍼’라는 단어를 쓰면서 DVD 제작 등의 방식으로 이름을 알리는 서퍼들도 있다.
서핑 관련 행사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대형 브랜드의 시장 진입을 막으려고 한다. 이를테면 ‘나이키 6.0 프로젝트’는 서핑, 스노보드, 스케이트보드, 웨이크보드, 스키, BMX 자전거, 6가지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루는 프로젝트였지만 2012년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종료 원인에는 미국 내 액션스포츠 시장의 붕괴도 있겠지만 해당 종목 마니아들의 자발적인 활약의 파장이 컸다. 서퍼들은 특정 브랜드, 협회나 연맹의 이익 논리보다 서핑을 서핑답게 즐기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핑은 스포츠나 레저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외부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기준을 따르며 스스로 성장하고,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바닷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운동 기술을 학습하는 것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한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꿈같은 파도는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내일의 파도를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바닷가를 청소하고,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파도를 공유하며 바다를 더욱 멋지고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누군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 중심에는 보통 사람들이 있을 뿐 어떠한 특정 협회나 단체 같은 곳이 있지 않다.
현재 서핑의 인기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어느 때보다 뜨거워 보인다. 국내 여러 매체에서 서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나 화보가 나오고, 웹사이트를 통해 세계 서핑 정보가 공유되며 전세계 서퍼들이 하나가 되고 있다.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 서핑은 진화할 것인가? 나는 서퍼들의 아나키즘, 집단지성을 믿는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변했다. 몇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자 곧 방향감각을 잃었다. 리어카만 한 배에 침대 시트만 한 돛이 달린 작은 배를 탄 꼬마들에게는 쉽지 않은 순간, 모두 홀로 각자의 배를 몰며 배 길이의 반만 한 너울을 넘으며 제자리를 맴돌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겪어보지 못한 난관이지만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겁이 났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비를 피할 곳도, 멈춰서 울 만한 여유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10대 시절의 몇 년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작은 배 위에서 보냈다.
길이 2.3m, 폭 1.13m, 선체 무게 35kg, 돛 면적 3.3㎡ 크기의 작은 배. ‘옵티미스트’(OPTIMIST). 바람만을 이용해 움직이는, 16살 미만의 아이들을 위한 1인승 종목.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진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닌,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배. 네모난 선형의 배는 뒤집히고 나면 힘들여 다시 세워야 했고, 세우고 나면 배 안은 목욕탕처럼 변해 한참을 물을 퍼내야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돛의 면적을 늘이기 위해 장착된 봉(sprit)이 빠지거나, 돛(sail)을 돛대(mast)에 고정하는 끈(tie)은 바람이 세면 터져나가는 등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미리 예측해 대비를 해야 했다. 배는 바다의 비위를 맞춰야만 조금씩 나아갔다. 매 순간 적극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문제를 직접 경험해봐야만 했다. 바닷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어린이용 배의 이름이 ‘낙천주의자’(OPTIMIST)라니 그럴싸했다.
‘낙천주의자.’ 지금의 시대에 얼마나 생소한 단어인가. 어려서부터 외워야 할 것이 가득한 환경. 순위로 평가받으며, 경험보다는 학습을 강요받는 삶, 해야만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가득한 세상. 불필요한 많은 정보들, 삭막한 위계질서, 과대포장과 거짓말들, 도시의 삶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거울 때면 휴가를 내어 자연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바다는 가장 크고 어디에나 있다. 육지에서 먼 바다를 바라만 보아도 좋지만,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그 자체다(사진).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것에는 즐거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 느껴지는 힘, 뒤집힌 배를 세울 때의 노력, 배 위에서 흘리는 땀과 달리면서 맞는 바닷물, 조류와 바람을 읽는 법, 푸른 하늘과 투명한 바닷빛, 규칙을 따르되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는 것. 이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복잡했던 세상이 꽤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추종하면서 사는 것, 남을 비판하거나, 환경을 비관하는 것, 그러한 것들 모두 바다 위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배를 몰고 있는 것은, 여기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현재를 대하는 태도다. 나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큰 배가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작은 배가 진짜 항해를 한다.” 무섭고 겁이 나지만 잘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기분에 피식 웃음이 난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낙천주의자’(OPTIMIST): 낙관주의자 혹은 낙천주의는 비관이나 우울함, 불행, 이기주의, 외로움 등과는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모든 것을 긍정만 하는 것과는 차별된다. 어려운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는 파도 속에서 사진을 찍는 ‘바다사진가’ 김울프가 바다에서 즐기는 스포츠를 이야기하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