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뒤를 돌아봐요 잘 가고 있어요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확인해주는 것은 지나온 길 뒤에 남는 긴 물띠

제1119호
2016.07.07
등록 : 2016-07-07 14:04 수정 : 2016-07-10 11:03      
2010년 전국 연안 항해 일주 중 경북 포항 앞바다의 물띠. 김울프


“언젠가부터 나를 점점 잃어가는 느낌이 들어. 돌이켜보면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 그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고, 지금도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가 그런 고민을 털어놓다니 의외였다. 음악 일을 하며 편한 길을 따르지 않고 오랫동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 고군분투하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나였다. 그가 털어놓은 속마음 덕분에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그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길 바랐다. 당신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형님, 바다에서 항해할 때 똑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하는 줄 아세요? 사람의 시야는 생각보다 넓어서 앞만 보고 갈 때는 방향이 조금 틀어져도 잘 알아차리지 못해요. 차선이라도 그어져 있고 좁은 길이라면 몰라도, 먼바다에선 앞만 보고 달리면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죠. 먼바다에서, 안개가 가득한 날, 주위에 지형지물이나 지표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서 멈추면 안 돼요. 그러면 정말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돼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계속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앞이 아니라 뒤를 봐야 해요.”



항해 용어 중에 ‘wake’가 있다. 한국어로는 ‘항적’ 정도로 번역되고, 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물띠를 지칭하기도 한다. 일정한 운동성을 가진 배가 지나간 바다에는 한동안 그 자국이 남는다. 바람과 파도가 거친 날은 거친 대로, 잔잔한 날은 잔잔한 대로 지나온 길에는 선명하게 자국이 남는다. 물띠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고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다. 배가 지나가면 당연히 남는 자국이라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를 모는 사람이 계속 같은 방향인지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된다.



“형님, 뒤를 돌아보세요. 오랫동안 함께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고, 저를 비롯한 누군가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창피하거나 모양 빠지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느낌이라고 해도, 그렇기에 더 멋있는 것 아닐까요? 오랫동안 영화일을 했던 제 친구가 그랬어요. 다음 장면이 뻔한 영화는 재미없다고요. 그래서 저는 꽉 막힌 좁은 길보다 바다가 좋아요. 필요하지도 않은 힘을 얻기 위해 뭉치고 다투며 줄 서 있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형님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 같아요. 바다는 신기한 공간이죠. 정말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느껴도 실제로는 밀려나고 있죠. 그렇다고 틀린 길을 가는 건 아니에요. 생각만큼은 아니지만, 잘돼가고 있어요. 뒤를 돌아보세요. 잘 가고 있는 거예요.”



뭔가 멋진 말을 해버린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들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물띠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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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숨 참기’ 연습하며 바다로 순간이동

딸꾹질 전까지 기절 걱정 불필요… 물속에서 느끼는 멍~한 행복



제1115호
2016.06.10
등록 : 2016-06-10 16:02
2014년 필리핀 세부 모알보알에서 프리다이버들이 스태틱(숨 참기 연습)을 하고 있다. 김울프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신체 기관이 어디일 것 같아요?” 프리다이빙 수업, 숨을 참으려는 몇몇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다. 숨을 오래 참기 위한 수업을 돈 내고 듣게 될 줄이야. 한 번의 호흡만으로 물속을 유영하는 단순한 ‘자유로움’ 속에는 호흡을 참아야만 하는 ‘억압’이 있다.


“눈을 감으시고요. 편안한 상태로 머릿속 생각들을 덜어냅니다. 산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신체 기관은 뇌입니다. 가장 편안한 기분으로 머릿속에서 스위치를 하나씩 끄세요.” 준비 호흡을 통해 몸속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고 조금씩 산소 농도를 높일 것이다. (그렇지만 초과호흡을 하면 호흡충동을 느끼기 전에 의식을 잃을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산소가 부족하다고 바로 의식을 잃지 않습니다. 한계에 이르면 딸꾹질과 함께 몸이 들썩일 것이고(Contraction·콘트랙션), 운동조절 기능 상실(LMC)이 오고 난 다음 기절(BO)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섭지만 친절한 안내 덕분에 무거워진 마음이 이내 조금씩 가벼워졌다.


“얼굴을 물에 담그거나 눈 밑에 물을 적시는 것만으로도 잠수 반사(MDR)가 일어납니다. 맥박이 느리게 뛰고, 말초 혈관이 수축하면서 혈액은 주요 장기로 몰려 더 오래 숨을 참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물에 잘 적응하도록 설계돼 있어요. 다만 훈련이 필요할 뿐입니다.”


물속에 있는 동안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져나갔고, 중요한 것들도 머릿속에서 지워져나갔다. 물속에서는 멍~하게 행복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이 호흡충동으로 인한 운동조절 기능 상실인가 싶어 얼른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내 컨디션은 언제나 최고 상태가 아니므로 결과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 따위 아무렴 어떤가.


눈을 감고 숨을 참으며 억지로 뇌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호흡의 ‘억압’ 때문인지 머릿속의 ‘자유’ 때문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일상의 위로가 되는 순간인 것 같아 절로 미소짓게 된다. 샤워할 때 한참 물을 맞으면서 잠수 반사를 끌어낸 뒤 호흡을 멈추고 머리를 감거나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다음 역까지 갈 때도 숨을 참는 명상으로 남들 몰래 잠깐이나마 바다에 다녀올 수 있다. 언제나처럼 콘트랙션이 오기 전에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서핑 찬가

좋은 파도 기다리는 호사로움, 작은 파도 겨우 잡는 즐거움

제1111호
2016.05.12
등록 : 2016-05-12 17:15 수정 : 2016-05-13 15:28
2014년 부산 해운대. 서퍼는 송민·민경식. 김울프



“이렇게 파도가 작은데 어떻게 여기에서 서핑(파도타기)을 해요?” 성급한 사람들이 비웃음을 섞어 묻는다. 하지만 호수같이 평온해 보이는 바다라고 해도 조금씩 출렁대고 있다. 사소한 바람이 파장을 만들어 너울이 되고 해안에 도착하여 파도가 되는데, 수심이 급격하게 얕아지는 곳에서는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생긴다.


유명한 서핑 장소는 그곳 해저 지형의 특성, 바닷속 저질(밑바닥을 구성하는 소재로 펄·모래 등)의 특성 덕분에 양질의 파도가 다른 곳보다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서핑으로 유명한 장소에 도착했는데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없다면 제때 오지 못한 것이다.

 

서핑으로 유명한 장소라고 해도 늘 파도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파도를 타는 사람들은 바람과 너울 주기, 파도와 조석의 흐름을 읽으며 파도를 찾아다닌다. 파도가 있는 곳에는 사람이 있었고,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지식이 전해내려와 서핑이라는 문화가 바닷가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서핑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다와 사람을 알아가는 삶의 방법 중 하나다.


서핑의 첫걸음은 무심하고 가혹하다.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하기에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창피함을 느끼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나 서핑의 시작은 똑같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파도의 박자에 맞춰 일어서는 그 사소한 것을 해내기 위해 넘어지는 시행착오가 수백 번 축적될 때 스스로 작은 파도를 겨우 잡게 될 것이고, 그 순간 삶의 잊지 못할 즐거움을 선물받을 것이다.


스스로 파도 잡는 법을 알게 되면 라인업(파도 잡는 곳)에서 파도를 기다린다. 파도타기 좋은 장소에 파도타기 좋은 날 도착했다고 해도, 어느 파도나 다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할 것 같은 위치로 가서 파도의 주기를 보며 비교적 큰 파도가 치는 순간에 파도를 타게 되는데, 파도를 타는 시간보다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파도를 탈지 보낼지 고민하고, 지금 이곳이 좋은지 조금 더 위치를 옮길 것인지 고민하는 순간 자신의 명상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고, 타인과 교감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바다 위에서 혼자, 또는 사람들과 같이 파도를 기다리는 호사를 누려본 사람은 바다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그 순간의 추억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의 것이다.


서핑은 좋다. 스스로 파도를 찾아다니는 사이 바다에서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될 것이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서핑은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북한을 제외하고) 지구의 어디든 서핑을 할 수 있는 파도가 있는 곳에, 파도가 있는 날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비관적인 시대라고 하지만, 서핑을 처음 시작하기에 이보다 좋은 시대가 있을까?



“이렇게 파도가 작은데 어떻게 여기에서 서핑을 해요?”라고 말하기 전에 서핑을 시작해보자. 바다에 코를 대고 파도를 보면 작아 보이던 파도가 얼마나 큰지, 처음부터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을,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한국서 반나절 ‘또 다른 세상’ 초원의 밤하늘은 차라리 감동
광활한 우주가 내게 쏟아졌다




과일은 이름난 동네의 제철 과일이 좋지만, 여행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의 비수기가 좋다. 겨울 바닷가엔 여름에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처럼, 유명한 명소라고 해도 비수기에 방문하면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가지요금, 인파도 없으며, 자신을 뽐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없다. 일반적으로 몽골 여행의 성수기는 6월에서 8월 사이로 알려져 있다. 말이 성수기지,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몽골을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몽골의 평균 해발은 1600m라 여름에도 서늘하고, 겨울에는 엄청나게 춥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1월 평균 기온은 섭씨 영하 27도로 모스크바보다도 더 춥다. 실제로 울란바토르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2010년 혹한이 찾아왔을 땐 50일 동안 영하 48도의 기온이 계속됐다. 겨울철엔 공장 관련 설비가 모두 얼어붙기 때문에 공산품이 없고 모든 것을 수입한다. 겨우내 모두가 숨죽이며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곳, 여름철에만 관광객이 찾아오고 9월 말에 첫눈이 내리는 나라. 그러한 이유로 가을과 겨울철 여행에 대한 정보가 없는 미지의 세계. 나는 조금 다른 풍경을 찾기 위해 11월의 몽골로 향했다. 확신할 수 없는 곳, 가본 적 없는 곳에도 길은 있으리라.





게르 안에서는 전기사용이 가능하다. 캠프촌의 게르는 보통 4명이 체류하는 구조로, 규모와 설비가 대부분 비슷하다. <사진 : 김울프>



말 타고 발길 닿는 어디든 갈 수 있어

비행기 안에서 넋을 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것은 항공 여행의 묘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보고 몽골에 왔음을 실감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크고 작은 초원과 평원, 이미 첫 눈이 내린 늦가을이라 그런지 초록빛깔은 보이지 않고 온통 황토 빛을 띠고 있었다. 군데군데 눈과 얼음이 보이기는 했지만 양이 많지 않아 크게 춥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광이 이내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용기가 생겨났다. 제 시간에 이곳을 찾아 왔다는 생각에 이내 행복함을 느꼈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황량한 벌판 사이에 작은 도시가 나타났고 비행기는 몽골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국제공항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작은 규모였고, 몇 대의 비행기들만이 활주로 근처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공항은 오래된 시골의 고속버스 터미널 느낌에 가까웠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자 황량한 초원의 풍경이 이어졌다. 표지판도 신호등도 하나 둘 없어지더니 포장도로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근처에 전봇대가 이어져 있다는 것으로 길이라는 것을 유추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이 허허벌판이 이어졌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는 운전기사는 길을 외우고 있기라도 한 걸까. 한참을 달려도 멀리 보이는 풍경은 변하지 않았고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로 속에 있는 느낌. 하지만 답답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전혀 모르는 곳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조금씩 마음이 놓였다. 창밖으로는 이따금씩 말이나 양과 같은 동물들이 보였는데 갑자기 그 숫자가 늘어나나 싶더니 결국엔 차가 멈춰 섰다. 수많은 염소와 양 무리가 줄을 지어 차도를 건너는 동안에도 양치기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농장이라고 하기엔 어디에도 펜스가 없었지만 여러 가축들은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움직이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 사람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면 그곳이 관광지가 됐다. 가축무리 사이 저 멀리 흙먼지가 일었고 말을 탄 사람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말을 탄 채로 염소떼와 소를 몰고 있었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민속촌의 보여주기식 관광 상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우연히 날 것 그대로의 유목민의 삶을 보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한국을 떠난 지 반나절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방문한 한 가정집에선 낯선 사람인 나에게 먼저 선뜻 따뜻한 차와 간식을 제공했다. 그것은 황량한 초원에서 이어지고 있는 유목민족의 오래된 전통이라고 했다.



게르에 도착한 첫날, 전통의상을 입은 미인이 환영의 의미로 염소젖을 들고 방문객을 맞았다. <사진 : 김울프>
테를지(Terelji) 국립공원에 도착해 게르에 짐을 풀었다. 게르는 몽골 유목민들의 이동형 주택인데, 원기둥 위에 원뿔 모양의 지붕을 덮은 형태다. 나무와 펠트(동물털 등으로 만든 천) 등으로 만들어진다. 게르 앞에는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미인이 염소젖을 들고 나와 환영의사를 표했고, 그 순간 나는 한 나라의 왕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형식적인 인사였겠지만 황량한 풍경 속에서 받은 환대가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짐을 풀고 말을 타기로 했다. 마부가 몇 마리 말을 데리고 게르 앞으로 왔다. 언덕을 내려가 다른 언덕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한 마리 말의 주인이 돼 초원을 누볐다. 보통 승마 체험은 둥근 트랙을 몇 바퀴 도는 형식적인 방식이지만, 몽골의 승마는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실제로 몽골에서는 말을 사서 몇 달씩 여행하고 여행의 끝에 다시 말을 되파는 방식의 승마여행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단돈 몇 만원에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마음껏 자연 속을 뛰는 것만으로도 몽골에 다시 올 이유는 충분했다.





게르는 원기둥 위에 원뿔 모양의 지붕을 덮은 형태다. 내부에서는 물을 사용할 수 없어, 공용 건물에 가야 한다.



암흑 속에서 쏟아지는 별들

하루는 헤드랜턴과 장갑, 방한장비와 촬영장비를 모두 챙겨 게르 뒤로 보이는 언덕을 올라 보기로 했다. 딱히 길이랄 것도 없어 보이는, 추위에 딱딱하게 굳은 잔디가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 그곳에 올라 언덕 너머의 풍경사진을 찍을 셈이었다. 30분이면 오르기에 충분해 보였던 언덕은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었다. 서둘러 출발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지만 그냥 내려가기에는 아쉬웠다. 한참을 걸어 사람들이 쳐놓은 펜스(늑대의 침입을 막기 위한)를 두세 개 넘으며 완전한 야생 속을 걷다보니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늑대가 나타나 나를 공격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 늑대 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불안과 기대를 짊어지고 걷는 것은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몇 시간쯤 올랐을까. 언덕의 꼭대기 같은 능선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하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해는 이미 져버렸고 펼쳐지는 언덕 너머의 풍경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 풍경조차 완전한 암흑으로 바뀌고 헤드랜턴을 꺼내 돌아갈 준비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길을 가다 마주친 유목민의 모습. 마부가 가축들에게 물을 마시게 해주기 위해 한 곳으로 몰고 있다. <사진 : 김울프>


몽골에서의 승마는 뻔한 트랙을 몇 바퀴 도는 것이 아니다. 발길 닿는 곳 어디든지 말을 타고 갈 수 있다.



바람도 사람도 없는 곳, 홀로 수없이 많은 별들과 마주한 순간, 광활하고 강력한 풍경에 숨이 턱 막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외계인이라도 나타나 나를 잡아 갈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 그곳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하고 아늑한 게르로 돌아갈까? 돌아갈 때까지 헤드랜턴의 배터리는 충분한 걸까? 늑대가 나타나면 어쩌지?’ 하지만 무섭다고 돌아가기에는 여기까지 붙들고 올라온 삶이 아까웠다. 큰맘 먹고 아까운 삶을 조각내어 온 여정이었다. 원래의 계획은 몇 시간 정도 좋은 풍경을 찾아 헤매다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밤새 별 궤적 촬영을 해 볼 생각이었다. 만약 괜찮은 사진 몇 장을 얻는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여 여기까지 왔건만 어느새 계획이 바뀌었다. 멍한 기분으로 사진을 몇 장 찍다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마주한 우주가 권하는 대로 대초원의 마른 풀잎 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가장 가볍고도 무거운 시간. 온 우주가 나의 나태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계획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주의 부지런함을 멀리서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삶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마음 가는 방향으로 힘껏 밀어붙여도 목표한 대로 제 시간에 도착하긴 힘들다. 쓸데없는 것에 많은 것을 빼앗기거나 다투는 사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운이 좋아 엄청난 풍경을 마주해도 제대로 찍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겨우 그 정도의 그릇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생각해 볼수록, 치열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한 그 점이 좋았다. 별 수 없는 밤. 나는 천천히 마음 가는 대로 살 것이다. 이곳 몽골에서 흘러간 시간처럼.



TIP


1. 테를지 국립공원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약 3시간 떨어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약 7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몽골 방문을 위해서는 출국 전 몽골 대사관에서 사전 비자 발급이 필요하다. 게르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면 물 사용이 어려우니 임시 세수와 샤워를 위해 물티슈를 많이 챙겨가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삼시세끼 양고기를 먹으면 질릴 수도 있으니 각종 먹거리를 한국에서부터 미리 챙겨가는 것이 좋다. 현지에서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므로 통역이 가능한 가이드를 구해야 한다.

2. 별을 보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주위 빛의 간섭이 덜한 장소나 시간대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달이 뜨지 않는 날에 맞춰 방문하거나, 혹은 달이 뜨기 전 시간이나 지고 난 이후의 시간을 공략해야 한다. 달이 뜨기 전이라고 해도 노을이 채 가시지 않았거나, 달이 지고 난 후라고 해도 새벽이 밝아오면 별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일출·일몰 시간 전후는 별을 감상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고 해도 하늘에 구름이 많은 날이나 비나 눈이 오는 날은 별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헤드랜턴과 방한장비는 필수다. 사진을 촬영할 예정이라면 삼각대도 꼭 챙기자.




▒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겸 여행작가, 해양스포츠·독립문화 칼럼니스트, MBC 마케팅팀 사진업무 담당,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기록사진 및 각종 공연·대회 등의 사진촬영 진행.

글: 김울프 여행작가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바다는 무심하지만 바닷사람은 따뜻하다

1년 중 수온이 가장 차가운 봄 바다의 희생자에게 애도를

제1107호
2016.04.14
등록 : 2016-04-14 16:30 수정 : 2016-04-19 14:05
2009년에 찍은 인도네시아의 바다 모습. 김울프




“살려주세요.” 2009년 인도네시아 발리의 구늉파융 해변, 물속에서 사진을 찍다가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먼바다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평화롭고 잔잔해 보이는 바다의 조류에는 자비가 없었다.


‘이안류를 벗어나는 방법처럼 조류에 몸을 맡기고 힘이 약해지는 지점에서 방향을 꺾어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생각나는 경우의 수를 모두 대입해 할 수 있는 시도를 모두 해봤지만 나는 더 먼 곳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나를 구하러 온 친구의 숏보드로 나를 끌고 돌아가기에 역부족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작별 인사를 하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구조를 요청하겠다고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처음 입수한 해변은 보이지 않고, 곶을 돌아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해안선은 온통 절벽이었고 다음 해변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햇볕에 익어버렸고, 입고 있던 면티셔츠는 무거워 벗어서 바다에 버리고 난 뒤 저체온증이 오면서 후회하고 있었다. 점심 먹고 입수했는데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오리발도 없이 몇 시간을 수영해서 다리에 쥐가 나고 탈수·탈진 증세가 나타나며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먼바다 위에 떠내려가는 작은 점, 그들이 나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믿고 그토록 용감했는가?’ 하늘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고 싶었다. 모두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운 좋게도 나는 해가 지기 전 극적으로 다음 해변을 찾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 나왔다. 이후에도 몇 번 바다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바닷사람의 도움을 받았고, 내게도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겨 바다에서 몇몇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바다 위 한가운데에서 혼자서는 해결해나갈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을 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물속에서 사진을 찍다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조그마한 돛단배가 그물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을 때도 나를 구해준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아닌 바닷사람들이었다.


바닷사람의 기술, 자격을 나타내는 시맨쉽(Seamanship)에는 바다에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구하는 것도 포함된다. 항해 중인 모든 선박은 VHF(초단파무선통신) 16번 채널(전화로 따지자면 119 같은 것)을 켜놓고, 주위 선박의 요청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서퍼들이 많은 익수자를 자발적으로 구조하는 일 또한 ‘사고는 자신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라는 연대(連帶)의식에서 비롯된다. 바다는 무심하지만, 바다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1년 중 수온이 가장 차가운 봄 바다, 물살이 가장 거센 곳에서 사고를 당한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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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낮에는 봄볕, 밤에는 달빛에 취하는 경주

기사입력 2016.04.04 03:24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니 이내 봄이 왔다. 봄에는 꽃이 피고 싹이 트는 것처럼 마음 속에서 생의 의지가 싹튼다.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 같다. 봄이 시키는 대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밖을 둘러보며 손을 쭉 뻗어본다. 따뜻함. 손끝, 코끝에서 봄의 향기가 스친다. 아마 스치듯 지나가 버릴지도 모른다. 봄이 아까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둘러 운동화 끈을 묶고 반바지를 입고 나가 봄바람과 봄볕에 취해 반나절을 달리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서는 무릎이 쑤셔 며칠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 달리는 데 욕심을 내다가 마음껏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다니, 그사이 흘러가는 봄이 아까웠다. 쑤신 무릎이 나아지면 걷기 좋은 곳으로 떠나리. 그렇게 걷기 위해 경주로 떠나게 됐다.





불국사



신라의 달밤

신선암
차로 몇 시간을 달려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월성지구에 있는 동궁과 월지(임해전지)에 도착했다. 잘 놓인 경관 조명 덕분에 어두운 밤에도 걷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서쪽에 있는 왕자의 동궁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고 멍하게 앉아 달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전부인데도 귀한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월지는 동궁의 앞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다. 동궁과 월지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적절한 장소를 찾기 위해 호안을 한 바퀴 빙 둘러봐도 어느 곳에서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 바퀴를 직접 돌아야만 곳곳의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로 크지 않은 연못이지만 1300m에 달하는 호안에는 다양한 경관이 있다.


서편 호안은 직선으로 뻗은 구조로 겉으로 보기엔 정방형의 각진 모습이지만, 동편 호안은 해안가처럼 굴곡지게 만들어 놓았다. 크고 작은 섬도 세 개나 있다. 과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각이라는 뜻의 임해전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연못치고는 물이 지나치게 맑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흐르는 연못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돌로 만들어진 웅덩이를 통해 정화된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르고 작은 구멍을 통해 이물질을 걸러 연못으로 내보내는 장치가 연못의 입구에 있다. 그뿐 아니라 직선 같아 보이지만 모서리가 없이 굽이굽이 곡선으로 설계돼 물이 고이지 않고, 한 바퀴를 돌며 정화되기에 언제나 연못 물이 맑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주변에 현대식 건물도 오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가 아닌 시간의 터널 어디쯤 있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고, 걸음을 멈추고 다시 걷는 사이 인연과 운명 몇 개가 스쳐 지나고 여기쯤까지 왔을 것이다.





삼릉원 소나무 숲



푸른빛이 도는 삼릉 소나무 숲길

경주 마동 삼층석탑
경주에서 일출은 어디에서 보면 좋을까? 자료를 찾다가 산 위, 바위에 놓인 불상에 아침 빛이 스미는 사진을 봤다. 경주 남산에 있는 신선암이라는 곳으로 칠불암에서 10분 정도 더 걸어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주차장에서부터 칠불암까지는 대략 한 시간 걸어야 한다. 남산 일대에 둘레길이 조성돼 방문객들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보인다. 칠불암을 지나서야 뻥 뚫린 풍경이 나타난다. 하지만 날이 흐려 한참을 기다려도 해가 뜨지 않는다. 일출 시각은 40분이나 지났는데, 두꺼운 구름 뒤에 해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일출을 기대하며 뛰어올랐던 모습에 코웃음이 나왔다. 내려오는 사이 여러 가지 잡생각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올라오길 잘한 느낌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는 경주 남산 아래 자락에 있는 배동 삼릉 입구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유명 사진작가 배병우 선생의 소나무 사진이 이 숲에서 촬영됐다. 이 사진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한국 사진작가 작품 중 최고가에 팔렸다.

구불구불 자라나면서도 비슷한 모양새를 갖춘 이곳 소나무에는 묘한 힘이 있다. 그는 이 숲길을 몇 번이나 걸었을까? 망자의 영혼에 친구가 되어주라는 의미로 심어진 도래솔이 작품이 되기까지 천 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봉곳이 솟은 능과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제법 잘 어울린다. 해가 좀 떠서 빛이 스미면 더 좋으련만, 아쉬운 풍경에 렌즈에 입김을 불어 안개라도 억지로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좋다.





대릉원



생자와 사자가 함께 있는 도시 경주

대릉원은 경주 시내 한가운데 약 12만6500㎡(3만8266평)의 넓은 공간에 미추왕릉을 비롯해 30기의 고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곳과 달리 경주의 고분군은 온통 평지에 널려있다. 생자(生者)와 사자(死者)가 함께 있는 도시 경주. 작은 동산처럼 생긴 무덤들은 시대를 떠나 주변 경관과 꽤 잘 어울린다. 무덤가를 걷는 것은 으스스할 법도 한데 그 풍광이 우아해 오히려 왕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취한다. 이곳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도 산수유나무의 꽃망울에서도 조금씩 봄이 오는 것을 느낀다.

길을 걸으며 ‘걷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 걸으면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고 함께 걸으면 발걸음에 맞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좋다. 혼자라는 것을, 함께하는 것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걸을수록 한 걸음씩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길을 걸으며 고뇌하고 이야기 나눴던가. 걸어온 길에 추억이 그득하다. 보문호수를 따라 걸어도 좋고, 불국사를 거쳐 석굴암을 다녀와도 좋다. 걷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천천히 제 박자에 맞춰 걸으면 누구도 힘에 부치지 않는다. 가장 걷기 좋은 계절, 봄에는 걷기 좋은 경주로 가보자.





보문정


▒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겸 여행작가, 해양스포츠 독립문화 칼럼니스트, MBC 마케팅팀 사진업무 담당,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기록사진 및 각종 공연, 대회 등의 사진촬영 진행




TIP
보문정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CNN에서‘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명소’11위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이 연못을 꾸며 아름다움을 더한다.
동궁과 월지(임해전지) 연중무휴로 입장료는 어른 2000원, 군인과 청소년은 1200원, 어린이는 600원이다. 저녁 10시까지 문을 연다. 저녁 9시 20분 전까지는 입장해야 한다.
글: 김울프 여행작가
사진: 김울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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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화산폭발로 생긴 섬 일본 ‘미야코지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빛깔 ‘미야코 블루’, 파도에 부서진 산호모래는 ‘신이 내린 선물’
기사입력 2016.03.13 02:15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미야코지마 일대의 풍경



슬픔은 슬픔을 낳고, 기쁨은 기쁨을 낳는다. 여행지의 좋은 기억은 그곳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들고 그 나라에 좋은 느낌이 들게 한다. 어디라도 혼자 여행해도 좋을 만큼 안전한 치안, 길거리에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가 거의 없을 만큼 높은 공중도덕 의식수준, 누구에게나 친절한 서비스, 작은 음식 하나에도 깃들어 있는 장인정신,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오키나와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다.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빛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미야코지마(Miyakozima, 宮古島)’다.


먼 바다 한가운데에 화산이 폭발해 생긴 섬, 아무렇지도 않게 망망대해 위에 솟아있는 섬들은 아무래도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같다.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에서 남서쪽으로 약 29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이다. 세상에 정말 많은 섬이 있지만, 높지 않고 전체가 평탄한 섬은 드물다.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그 맑은 바다의 빛깔은 미야코지마의 특이한 지형에서 비롯된다. 섬 전체에 산악지역과 하천, 호수가 없어 육지로부터 흘러나오는 토사나 물이 없고 섬 주위엔 수많은 산호가 둘러싸고 있어 어디에도 없는 바닷물 색을 볼 수 있다. 어떤 곳에도 없는 색이라 해서, 섬사람들은 이 색을 ‘미야코 블루’라고 부른다. 미야코 블루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미야코지마를 찾는다.


섬의 크기는 한국의 강화도와 비슷해 둘러보기에 어렵지 않다. 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일본의 차선이 우리나라와 반대인 것을 깜빡하고 중앙선을 넘어 달리다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마주 오는 차들이 워낙 천천히 달리고 있어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많은 차들이 시속 30㎞ 이하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이유는 “빨리 가야할 이유가 없어서”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에게도 삶의 여유가 찾아오는 느낌이었다. 현지 분위기를 따라 시속 30㎞ 이하로 달리기 시작하니 자전거를 탈 때처럼 풍경 하나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이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미야코지마 도큐(東急) 리조트의 풍경



파도에 부서져 만들어진 밀가루 같은 산호모래

시샤는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미야코 블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건 하얗고 고운 ‘산호모래’다. 산호가 파도에 부서져 만들어진 천연 산호사(沙)는 밀가루처럼 고운 질감을 지니고 있다. 세계의 많은 유명 휴양해변의 모래는 주변의 강이나 바다에서 모래를 퍼 올려 쌓아 유지하는 인공 해변인 반면, 미야코지마의 모든 해변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천연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호가 많은 만큼 플랑크톤 비율도 높아 바닷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끈적임이 없다. 미네랄과 마그네슘 성분 또한 풍부해 바닷물을 응축해 만든 설염(雪鹽)인 ‘유키시오(ゆきしお)’가 토산품으로 유명하다. 산호를 채취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사탕, 아이스크림, 과자에서부터 비누, 화장품 등 다양한 유키시오 제품을 통해 미야코지마의 바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유키시오 이외에도 미야코지마를 맛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미야코 소바는 오키나와 소바의 한 종류로 오키나와 소바와는 다르게 돼지고기 등 건더기가 면 아래에 깔려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돼지사골과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 마늘을 넣어 우려낸 국물에 부드러운 밀가루 면을 사용한다. 맛은 오키나와 소바와 비슷하다. 우미부도(海ぶどう, 바다포도)는 미야코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조류로 이름 그대로 청포도 빛깔의 작은 포도송이가 박혀있다. 모양과 식감은 캐비어와 비슷해 현지인들은 ‘그린 캐비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스타푸르트, 망고 등 열대 과일이 유명하다.


해변마다 차를 세우고 모래사장을 거닐었는데, 그러던 중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연습을 하고 있는 꼬마 숙녀를 우연히 보게 됐다. 멀리서 그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한걸음씩 다가갔다. 노래를 멈추지 않길 마음속으로 바랐는데 정말로 끝까지 불렀다. 지켜보는 꼬마 숙녀의 엄마에게 물었더니 학예회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샤미센(三味線)’은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로 중국의 산신(三線)이 일본으로 넘어와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인데, 일본을 대표하는 현악기 중 하나라고 했다. 그 음색이 구슬프면서도 간드러지는 것이 우리나라 민요에서 받는 느낌과 비슷했다. 현지인을 통해 알게 된 건 오키나와 이전의 ‘류큐왕국(琉球王國)’의 역사가 한국의 식민지 역사와 비슷하고, 그 속에 담긴 정서 또한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본 전통 공연에서도 같은 노래를 들었는데, 낮에 들은 노래 제목이 시마우타(しまうた)라는 섬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슬픔을 바람에 흘려보내는 것 같은 느낌의 샤미센 연주 덕분에 그동안의 슬픔이 정말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힘이 들 때면 그 후렴구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럴 때마다 미야코지마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시 쇼어(Sea shore) 카페. 차를 타고 섬을 둘러보다 보면 이러한 카페를 종종 볼 수 있다.





미야코지마에는 다양한 골프코스가 있다.




▒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겸 여행작가, 해양스포츠 독립문화 칼럼니스트, MBC 마케팅팀 사진업무 담당,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기록사진 및 각종 공연, 대회 등의 사진촬영 진행.




TIP
가는 법 / 가끔씩 아시아나항공에서 미야코지마로 향하는 전세기가 뜨지만, 현재 정기적으로 한국에서 미야코지마로 가는 직항편은 아쉽게도 없다. 도쿄나 오사카, 타이베이를 경유해 미야코지마로 가거나 오키나와 본섬을 통해 미야코지마로 향하는 항공권을 구매해야 한다. 국내에서 오키나와 본섬으로 향하는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피치항공 등 다양하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미야코지마로 향하는 비행기는 ANA, JAL 등이 운항중이고 비행시간은 50분이다. 오키나와에서 미야코지마로의 비행요금은 편도 15만원 정도다.

현지 교통 /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도시로, 차량대여가 필수다. 일본어를 할 수 있다면 현지의 관광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비용(3시간 7000엔선)이 많이 든다. 대신 하루 4000~5000엔선인 렌터카를 빌리는 것을 추천한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지도 없이도 운전이 가능하다.

즐길 거리 / 다양한 스쿠버다이빙 숍, 골프 코스와 온천 시설이 있다. 대형 리조트에서는 카약, SUP보드(서핑과 카약을 접목한 보드) 등도 대여가 가능하다. 주로 가족단위의 관광객과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글: 김울프 여행작가

사진: 김울프 여행작가



낄낄대자 사소한 성취를


바람을 타고 물 위를 가르는 세일링… 친구들과 함께 바람만 타고 다녔던 돛단배

제1103호
2016.03.16
등록 : 2016-03-16 21:59 수정 : 2016-03-18 18:22





친구들과 함께 돛단배를 타고 전국 연안일주를 떠났다. 67일의 시간은 바람만으로도 풍요로웠다. 김울프



바다는 지구의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한 채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벽이 되기도 길이 되기도 하는 신비한 공간, 내가 바다를 자주 찾는 것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유년 시절, 바람을 타고 물 위를 가르는 세일링(sailing)을 시작한 뒤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목선(木船)은 낡고 무겁고 느렸지만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끝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때 느낀 기쁨은 수영 안전선 안쪽에서 튜브를 탄 채로 파도에 떠밀리며 느끼는 수동적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위에서 순위를 겨루는 요트 경기는 재미있지만 쉽지 않았다. 재능이 없다는 것도 순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패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효율보다는 낭만을, 성공보다는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노라 변명하며 바다의 경쟁에서 도망쳐 나왔다.


바다에서 얻은 야망, ‘마음만 있으면 결국 느리게라도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결국 바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고, 2010년에는 두 친구(박효준, 임재환)와 24피트 돛단배로 바람만을 이용해 전국 연안일주를 하게 되었다.


경기도 화성 전곡항에서 제주도, 부산, 울릉도, 독도를 거쳐 강원도 양양의 수산항까지, 물도 전기도 부족한 원시적인 생활, 바람이 불어올 때 달리지 않으면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작은 돛단배에서 보낸 67일의 시간, 사진과 영상을 잘 찍어두고도 팔릴 만한 대의나 명분을 붙이지 않았다.


아마 ‘최연소’나 ‘모험’ ‘꿈’ 같은 거창한 단어를 쓰며 성공을 구걸했다면 좀더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같이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때의 낭만의 향기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다.


낭만보다는 효율과 성과를 강요하고, 욕망과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것은 늘 승리자다. 꿈은 논리로 포장되고 승자의 이야기는 팔리기 좋게 미화된다. 그런 사회의 교육은 깎아내리기식 비교와 승리를 위한 집념의 주입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의 효율성이 과잉 주입된 인간 지성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할까? 바다에서 얻은 사소한 성취를 낄낄대며 나누고 싶다. 낭만의 계절 봄이니까.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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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 ‘고급 휴양도시’ 캘리포니아 사막의 팜스프링스

    세계서 가장 유명한 골프 여행지
    국립공원은 지구 어디에도 없는 풍경
    기사입력 2016.03.06 21:15






    사막에 가보기 전까지 나는 사막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끝없는 모래언덕, 신기루와 오아시스, 방울뱀과 전갈, 낙타와 모래폭풍….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을 떠올리고 있자니 가게 된다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사막의 종류는 다양했고(지구상 육지의 25% 이상이 사막이다), 모든 사막이 무지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처럼 절망적인 곳은 아니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막은 가본 적 없는 천국의 모습에 가까웠다.


    오랫동안 추진돼 온 도시계획 덕분에 팜스프링스의 어느 곳에서든 잘 정돈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팜스프링스(Palm Springs)는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에 세워진 리조트 도시다. 이곳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1930년부터다. 20세기 초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시작되면서 스타들이 생겨났고, 촬영장이 있는 LA로부터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이곳에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1년에 15~20일 정도만 비가 오는 건조하고 쾌적한 사막기후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공기가 맑고 한적한 팜스프링스는 스타들의 휴양도시로 안성맞춤이었다. 이후 백인 중상류층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고급주택, 별장, 리조트와 호텔이 생겨나 지역 전체가 고급 휴양도시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라스베이거스가 사막에 세워진 시끌벅적하고 번화한 계획도시라면, 팜스프링스는 정반대 느낌의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계획도시라고 할 수 있다. 시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간판의 형식까지 엄격하게 규제한 덕에 도시의 어느 곳도 흉하지 않다. 많은 유명 건축가들과 스타들은 주어진 기준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뽐내 도시의 격을 만들어왔고, 그런 움직임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막의 경관이 어우러진 골프의 도시

    데저트 어드벤처(Desert Adventure)는 4륜구동 지프차를 타고 사막 곳곳을 둘러보는 투어다.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사전준비는 필수요소다. 빽빽이 들어선 빌딩과 복잡한 도로 속에서 사전정보 없이는 원하는 곳에 찾아가기 힘들다. 무턱대고 걷다가 우범지역에 들어설까봐 무섭고, 휴대폰 내비게이션만 보고 길을 헤매고 있자니 여행이 고행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팜스프링스에서는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팜스프링스의 다운타운인 엘파세오(El Paseo) 지역에는 2㎞에 걸친 대로변을 중심으로 많은 볼거리들이 밀집해 있다. 건물들은 모두 낮은 높이(대부분 2층 미만)이며, 고개를 들면 종려나무와 푸른 하늘만 보여 산책하기에 좋다. 이 거리에는 남부 캘리포니아 최대 규모의 미술 갤러리들과 다양한 박물관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대로 둘러봐도 좋다. 인디언 토산품 상점에서부터 거물급 디자이너들의 부티크 상점들까지 쇼핑거리도 다양하고,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곳부터 화려한 맛집까지 여행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보기 좋게 정렬돼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팜스프링스 마을 축제가 열린다. 중앙 도로를 폐쇄해 보행자 전용 거리로 만들고 예술가들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이 각자의 볼거리, 즐길 거리를 들고 거리로 나온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의 밝은 표정은 사막의 쾌적한 밤 기후와 잘 어울린다.


    팜스프링스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지명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골프장이 가장 많은 곳, 팜스프링스의 코첼라 벨리에는 100여개 이상의 골프코스들이 위치해 있다. 아놀드 파머(Arnold Palmer) 등을 비롯한 많은 프로골퍼들이 팜스프링스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챔피언십 골프코스를 설계했고, 매년 미국프로골프(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가 열리고 있다. 골프의 도시답게 가격은 저렴하다. 골프코스는 풍부한 대수층(지하수로 포화된 투수성이 좋은 지층)에서 솟아나오는 물로 잘 관리됐다. 골프를 치면서 다음 티샷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주변 산과 사막의 경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 팜스프링스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 여행지로 손꼽히는지 알 수 있다.


    팜스프링스에는 샌 안드레아스 지진 단층이 만들어 낸 거대한 산이 남북으로 솟아있다. 지역 곳곳에는 이러한 거대 단층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사막 투어를 통해 4륜구동 지프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며 여러 야생동물과 식물을 관찰할 수 있고, 사막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리빙 데저트(The Living Desert) 동식물원에서는 직접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수도 있다. 단, 낮에 방문하면 야생 동물들은 거의 그늘에 숨어 쉬고 있거나 햇볕이 뜨거워 금세 지칠 수 있으니 이른 아침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 사막의 낮은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힘드니까.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사막기후 특성상 밤에는 꽤 쌀쌀하니 두꺼운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팜스프링스에 위치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Joshua Tree National Park)은 다른 미국의 국립공원에 비해 큰 편은 아니다. 공을 들여 놓아둔 듯한 커다랗고 둥근 바위들과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자라나는 조슈아트리, 선인장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다. 이 지역은 다양한 암벽 등반 코스로도 유명하다. 공원은 24시간 개방되며 공원 내에 9개의 유료 캠프장이 있다. 일몰을 보며 바비큐를 하는 사이 머리 위로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삶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는 여행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여행은 삶의 좋은 추억이 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빡빡하게 살고 있나’ 생각이 든다면 소중한 사람들과 팜스프링스로 떠나 며칠간 이 모든 것을 누려보자. 팜스프링스에만 있는 유명 호텔과 대형 리조트도 좋지만, 에어비앤비(Airbnb) 등을 통해 현지의 고급 별장을 렌트해보는 것도 좋다. 호텔 숙박비 정도로도 별장을 빌릴 수 있다. 짐을 풀고 전용 수영장에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거나 전용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준비해온 와인을 꺼내 바비큐를 즐겨 보자. 그리고 앞서 말한 명소들을 둘러보는 것이다. 팜스프링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을 하든 캘리포니아의 쾌적한 기후와 밝은 사람들의 표정이 함께해 내내 여유로운 기분이 들 것이다.




    ▒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 겸 여행작가, 해양스포츠 독립문화 칼럼니스트, MBC 마케팅팀 사진업무 담당,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기록사진 및 각종 공연, 대회 등의 사진촬영 진행.



    김울프의 바다가 부른다



    아무렴 어떤가, 이 순간을 마주했는데



    직장도 소득도 없지만 마음이 헝클어질 때 충동적으로 떠나 해 지는 바다를 찍는다

    제1099호
    2016.02.16
    등록 : 2016-02-16 17:54 수정 : 2016-02-20 10:04
    하와이 노스쇼어의 일몰 직후 풍경. 김울프



    고등학교 3학년 6월, 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입시 미술학원에 가는 첫날,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교문을 나오면서 보았던 해가 지는 풍경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하루의 시간 중, 해 질 녘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는데.


    바라던 나의 길, 하지만 보잘것없는 재능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헝클어졌다. 그럴 때면 바다로 갔다.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빚을 내어서라도 충동적으로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뚜렷한 직장도 소득도 없는 내게는 매 순간이 경제적으로는 결정적 위기이지만, 자유롭게 주어진 많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위기라고 합리화를 했다.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점이 묘하게도 위로가 됐다. 내가 걸어온 길은 작은 발자국 몇 개, 그조차도 금세 파도에 씻겨나갔다. 그것이 아까워 사진을 찍고, 물속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먼바다로 나와 홀로 둥둥 떠 있을 때면 나의 보잘것없음을 매번 느낀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남은 모든 것을 버린 적 없고, 그렇다고 이것을 놓아버릴 용기조차 없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바다에 비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바다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파도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얻는 동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물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카메라값보다 비싼 방수 장비는 강한 파도에 휩쓸려 몇 번이나 부서졌다. 큰 파도 속에서 한참 수영을 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옷을 입어야 했다. 이안류와 조류에 휩쓸리더라도 당황해서는 안 되고, 카메라의 안전에도 신경 써야 했다.


    운이 좋을 때면 몇 장의 좋은 사진을 얻었고, 운이 나쁠 때면 몸과 장비가 망가졌다. 촬영 환경은 물놀이보다는 생존훈련에 가까웠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정신적 준비가 필요했다.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더라도 사고는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바다로 가는가?’ 수없이 되뇐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바다로 가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쓸데없는 개인 작업. 10년 동안 ‘바다 사진’을 찍으면서 겨우 알게 된 것은, 쉽지 않다는 것, 많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하지만 해낼 수 있다/해낼 수 없다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단지 하고 싶다/하고 싶지 않다 정도만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아마 인간이 동물보다 바보 같은 점이 있다면, 별다른 이유 없이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며 계속해서 고민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집착과 고민을 하는 것이 ‘하고 싶다’에 대한 충분한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파도 속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의 두 팔과 두 다리 이외에는 자신을 도와줄 어떠한 기계도 사용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본력으로부터의 정치, 적당한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은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그 속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힘도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나는 파도 속에서 살고 싶다. 쉽지 않기에 천천히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이 자라나게 되었다.



    2014년 가을, 하와이 노스쇼어, 천천히 끝까지 가기 위해 편한 마음으로 며칠 정도 카메라를 놓고 서핑만 하며 ‘힐링’하다가, 카메라를 잡은 날, 해가 질 때까지 물속에 있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나 먼 곳에서, 빚을 내어가며, 이 짓을 하고 있나?’를 생각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빛을 다시 보았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지만 아무렴 어떤가,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했는데.



    김울프 프리랜서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