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현충일 아침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10시가 되면 사이렌 소리에 맞춰

순국선열한 님들을 위해 묵념을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집 근처에 있는 UN묘지)

 

 

 

 

 

 

 

 

 

나는 방송을 들으며

평상시 품고 있는 생각을 말했다

 

 

"여보, 우리가 한날 한시,

현충일 10시에 죽으면 좋겠다. "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서울 부산 살면 제사에 서로 오가기도 힘들고

또 우리도 제삿밥 먹으러 오가기도 그렇고

절대 날짜 따위는 잊지 않도록

....

.....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

오전 10시의 사이렌 소리에 맞춰

묵념하라고 유언을 해 놓읍시다"

 

 

아직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의 남편 성질도 급하게

벌써 서울에 있는 큰아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나는 깜짝 놀라

오늘, 우리가 죽으려는지 알고

쎄가 빠지게 달려오면 어쩌려고요

 

이 다음 며느리 보면,

그때 큰아들 작은아들 내외 앉혀놓고

엄숙하게 유언을 선포해야지요

 

 

벌써, 전화기에서 아들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린다

"예, 아빠^^"

 

아니 그곳에 날씨가 좋은가 싶어서...

어물어물 ~~~~

 

 

나도 민망하여 얼른 카톡으로 사진 두장을 날렸다

"지난 주에 네가 사주고 간 빵, 오늘 아침으로 먹는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이 다음 우리부부 백년해로 끝나면

 

아이들이 각자 어디에 살든

현충일 날 아침

예쁘고 맛있는 빵 먹으면서

'묵념'으로 엄마 아빠를 기억해줬음 좋겠다

 

 

ㅋㅋ

그러려면, 뭔가 나라를 위하여

기여를 해야할텐데.... 

 

앞으로 남은 나날들,

현충일 날 기억할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정말 잘 살아야겠다

 

삶의 목표가 생겼다

 

 

 

 

 

 

보리수 열매

 

유월의 보리수

시고 씨만 크지만

나는 보리수만 보면

그저 좋다

 

 

 

 

 

 

 

 

 

 

 

 

 

 

 

 

 

 

나의 짝지가

하루 먹을 분량만큼만 따 온다

나는 입속에 넣으면서 씨를 내 뱉기전

꼭 한마디를 한다

 

 

"아~ 행복해, 보리수"

 

 

 

 

 

 

 

2012년 6월 2일

우리 장조카 장가가는 날이다

우리 대소가 얼마나 기쁜일인지

모두 희희락락 화기애애하다

 

 

 

ㅋㅋ

기쁜 나머지

 

 

 

우리 집 큰아들 정욱과

집의 거실에서 괜히 기분내고

미장원에서 머리하고 한복 곱게 차려입고

절값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

 

 

에구머니~~~~

ㅋㅋ 예식장에 가서보니

정작, 얼굴 화장하는 것을 빠뜨렸다

딸 없는 엄마들의 비애다

 

 

 

 

 

 

 

 

 

 

 

 

 

 형님댁 사진이다

6월 초여름 녹차라떼 분위기다

연두빛 결혼이다

 

 

형님도 아즈버님도

조카며느리 내외도 좋다

 

 

 

 

 

 

 

조카 자신도 얼마나 좋은지

신랑이 썬그라스 끼고

신부를 위한 깜짝 퍼포먼스

"당신뿐이야!"

열창중이다

 

 

 

 

 

 

 

 

 

 

 

 

우리큰댁 분위기는

언제나 엄숙한 편이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듯

금기를 깼다

여자들 다른 어떤 날보다

화려하다

 

 

 

 

                    

 

 

장조카 결혼해서 더욱 기쁜 우리들

 

 

대소가 모이기만 하면

결혼한지 스무해가 다되어도

세척기 앞에서 설거지 마무리 하는 우리동서님

 

형님댁보다 먼저 혼주가 되어

형님 앞에서 늘 마음이 죄송했던 나

 

서열무시하고 먼저 머리 올린 우리 며늘아기 영근이

 

 

내심 말은 안했어도

혹시, 형님댁 보다 먼저 아기를 낳을까봐

나는 한해동안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미안하다~  영근아

 

 

 

 

                      

 

 

 

 

 우리 모두 장조카의 결혼에 기뻐함은

구순을 바라보는 우리 아버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님은

얼마나 기쁘시겠는가

 

이제 할아버지 앞에서 손자들은

증손자 증손녀나 순풍순풍  낳아드리면 된다

 

 

 

 

 

 

 

 

 

 

 

 

ㅋㅋ

우리도 우리려니 ...

 

 

줄줄이 밀려있는 총각들

이제, 눈치 안 살피고

마음대로 연애하고 결혼하고

속도 위반 아기낳아도 된다

 

 

자기들도 형님이 장가가니

좋아서

박수치고 야단이다

 

 

 

 

 

 

밤 대추 받은 것이 8알 이라고 한다

아들딸 8남매 낳고

무조건 잘 살아야한다

김진우 최정미 조카부부

자네들을 믿는다

 

 

우리 장조카, 서른 넷에 장가가서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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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조카와 조카며느리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다음 날 산소에 갔다

 

 

 

 

 

 김씨 집에 시집와

죄라고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늘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장조카 장가가니 갑짜기 등급이 올라갔다

초대된 지관이 "형제분들 서열이 있으니 단위로 올라오라" 했다

조카는 올라갈 수 있어도

형님 내외분 앞에서 단위로 올라가기는

나는 처음이다

 

 

 

 

 

 

 

큰집에 가면 ...

산소에 가면 ...

나는 늘 관람객처럼 구경한다

 

 

 

 

 

 

 

 

 

 

 

닦고 있는 빈칸에

내 자리도 있다는데  ....

 

ㅎㅎㅎ

나, 죽고 싶지 않다

어찌 죽어서까지

서열 속에 군기잡혀

옆에 계신 어른들을 보필 할 것인가

 

 

 

 

 

 

 

 

 

손자들도 단위에서 술을 올리라고

지관이 말했다

그들도 뽑힌 것에 즐겁다

 

 

 

 

 

 

 

나와 영근이는

영국황실 분위기 패션의 우아한 모습으로

동서가 쓰고 온 모자를 서로 써보며

 "나, 어울려?"

 

놀이 중이다

 

 

 

 

 

 

우리 며늘아기 영근이

시아버지가 카메라 들이대니

환하게 웃는다

 

얼굴이 작으니

모자가 정말 잘 어울린다

 

 

 

 

 

 

 

 

 

 

내 옆에 우리 민지공주 (중학교 3학년)

더불어 가혹한 여자의 역할을 배운다

 

우리 아버님, 슬하에 따님도 없으신데

꽃같은 며느리들 사이에서 멋지시다

 

 

 

 

 

 

산소에 가서 조상님께 신고하고 돌아오는 길

 

해운대 가서

다 같이 냉면먹고

지난해 결혼한 우리 아들내외 <성욱이와 영근이> 집에 갔다

 

사방이 온통 유리벽으로 바다가 보이는

초고층 신식 아파트

 

 

 

 

 

아이스크림 먹으며,

티부이 화면보며,

볼링 골프 복싱 ...

희한한 놀이에 손님 접대도 완전 신식이다

 

 

 

 

 

 

 

할아버지 모시고 '찰칵!'

집의 주인공, 성욱이와 영근이다

 

 

사진찍는 나의 짝지와

형님댁 작은 아들 진만이와 우리 집 큰아들 정욱이가 빠졌다

 

 

 

 

 

 

 

장조카 결혼식은 끝나고

생활로 들어갔다

이제, 날마다 일상생활로 백년해로 할 것이다

 

 

 

 

오월의 빛깔을

찾으려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설레이던 아침

 

 

 

 

 

 

 

 

 

 

 

 

 

 

 

 

 

 

 

 

 

 

 

 

 

 

 

 

 

 

 

 

 

 

 

 

 

 

 

 

 

 

 

 

 

 

 

 

 

 

 

 

 

 

 

 

 

 

 

 

 

 

 

 

 

 

 

 

 

 

 

 

 

 

 

 

 

 

 

 

 

 

 

 

 

 

차일피일

미루다가

모란이 졌다

 

 

 

 

 

 

달력을 보니

5월이 지나갔다

 

 

 

어휴~

누가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오월, 나는 너무 힘이 들었다 

차도 길도 경찰도 사람도 ...

그 중, 사람에 대한 울렁증에

낮에는 구토가 나올지경이요

밤에는 수면제를 복용해야 할 지경이었다 

 

 

 

오월이 가니

속이 다 시원하다

광안리 바다처럼

 

 

 

 

 

 

 

 

지난 주,

꿈 속에서 내 차의 바퀴 한 개를 누군가가 빼 놓았다.
말로하면 될일이지 빼놓을 것 까지야 뭐 있나.
바퀴를 뺀 사람을 찾아, 헤메다~ 헤메다~ 겨우 만났다.
꿈속인데도 선명하게,

당신 이름이 '류창희'라는 것, 다 안다고 한다. 
전화번호 밖에 안 적어놓았는데 어찌 아느냐고 하니

조선일보 신문에 나온것 봤다고 했다.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가슴에 맷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자신을 누르고 눌렀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도, 길에서도

마트에 가도, 아파트 감사실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백화점에 가도

선거하러 가도 

신문에 나온 "ㅇㅇㅇ씨죠?" 묻는다.

이름 불러줄 때, 꽃이 된다고 하였던가

몇주 들떠서 쌩쌩 기분 좋게 다녔다.

 

 

그리고, 부산 남부경찰서에서

내 이름으로 우편물이 한장 날아왔다.

어! 신기하네.

내 이름을 어찌 알았을까?

 
< 범칙금 13만원, 벌점 30점, 스쿨존내 신호위반, 납기일 5월 7일. >

 

 

도로에 카메라도 '내가 너 까불고 다니는것 다 보고 있다'고

번쩍 사진을 찍었다.

찻길이, 신호등이, 카메라가 다 무섭다

 

 

설설 기어다니니

뒷차들이 "빵빵"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린다

아~아!  '빵빵'소리도 무섭다

 

 



2012년 2월 3일

해운대 다운타운 갤러리

김영희 닥종이 인형전








꽃피리






여름




세상보기
















노란풍선











진주조개의 꿈






오월





여름 등물













꿈사과






여름비




오후의 휴식






맴맴






거위와 나












민들레 불기






책읽는 아이
















모든 것, 자식 남편 친구 ...

걸친 옷까지 다 벗어던지고

작품을 시작할 때,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완성하고 난 다음,

와인한잔 치즈한조각이

때론 외로웠을 지도 모른다

 

 

홀가분한 외로움

그 시간 또한 귀하지 않은가

 

 

 

지금쯤은  독일의 어느 작업실에서

환한 아이 인형을 또 만들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김영희선생님

덕분에 동심에서 놀았다

그 날은 비바람 부는 겨울이었는데

벌써 봄볕이 따뜻합니다

다음주쯤 부산 광안리 해변길도

'꽃사태'가 날것 같습니다

 

 

 

 





 

2012년 2월 3일

닥종이 작가 김영희

오프닝 행사날

 

김영희 작가님을

2007년 수가화랑에서 보고 부산에서 또 만났다

그전 보다 훨씬 표정도 행복하게 밝고

스타일도 스마트하다

 

오프닝 행사에 작품세계를 딱딱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을 취했다.

 

의상 헤어 화장등이 독일에서 사는 것 같지않은 분위기

여태까지 그려왔던 분위기와 다른 또 새로운 모습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인형의 크기도 표정도 크고 밝다

김영희선생님의 행복이 보이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늙는다는 것이

무척 편안하다고.

아이들 뒷바라지 남편수발에서 벗어나

오로지 24시간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자유'는 참 좋은 것이라고

 

 

후우~

세월이 가는 것이 두럽지 않다

자유로운 시간으로 가는 중이니, 늙음 또한 기대가 된다

 



 























 

















 

2012년 3월 30일

조선일보 오피니언 에 실린글

ESSAY      

 

상견례에서 세번 '통과'를 외친사연

                                                                                              

                                                                            

 

없는 집 딸, 손수 벌어 혼수 마련, 시집 온 내게 도움되는 건 없어
아팠던 기억 내 代에서 끝내려, 아들 장가 보내며 예물·예단 생략
언제부터 분수 넘는 격식 차렸나, 닦달 안 해도 요즘 애들 잘살아

 

 

 

 

류창희 부산 메트로쌈지 도서관장

나는 건배를 좋아한다. 그날도 나는 건배를 세 번 했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2층 창가에서 내려다보니 아들의 여자친구와 부모님이 차에서 내린다. 1층까지 뛰어 내려가 살갑게 맞이했다.

"딸을 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이것 드세요 저것 드세요, 권하기는 해도 접시가 비워지지 않으니 서로 긴장하고 있다. 자식 혼사의 상견례라는 것이 참 어려운 자리다. 문득 내가 먼저 말했다.

"우리 예물 예단, 번거로운 절차는 모두 생략하도록 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신부 어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섭섭하지 않으시겠어요?" 순간, 왜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던 날이 떠올랐는지. 눈물이 나오려 해 얼른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나의 마지막 모습을…"이라고 말하다가 말았다. 주책도 바가지다. 살아생전 아무리 며느리 기강을 잡으려 불호령을 해도 결국은 그 며느리 앞에서 떠날 것이다.

"자~ 한잔합시다!" 내가 잔을 치켜드니 두 집 아버지들도 얼떨결에 따라 한다. "예물 예단, 통과!" 아이들이 서로 좋아한다는데 무슨 걱정인가. "누구 말도 듣지 마세요. TV 연속극도 보지 마세요." 신부집도 우리 집도 개혼(開婚)이다. 그렇다면 양가 어른과 형제들은 어찌할 것인가. 나는 다시 잔을 치켜들며 "각자 집에서 알아서 합시다. 통과!"라고 했다.

그래도 아들 딸 낳아 시집 장가 보내는데 어머니들은 한복 한 벌씩 해 입으면 어때요? 또 잔을 치켜들었다. "통과!" 어디 국회에만 통과 망치가 있을까. '통과'를 세 번 외치고 잔을 세 번 부딪혔다. 공자는 "두 번 검토하면 괜찮다(再斯可矣)"고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지나치긴 하지만, 세 번째 마무리 건배를 하니 드디어 혼사가 실감이 났다. 한 달 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안사돈이 아이들의 화촉(華燭)을 밝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언제부터 우리가 모두 사대부 가문이 되어 예단·예물·예식으로 예의범절을 갖추는지 알 수 없다. 공자 시절에 분수를 모르고 천자(天子) 앞에서만 추게 돼 있는 팔일무(八佾舞)를 자기 집 뜰에서 펼쳤던 계씨(季氏) 집안이나 다를 바 없다. 늘 남들이 문제다. 남의 며느리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명절에 시댁에 왔는지, 어버이날에는 뭘 선물했는지 묻는다. 며느리에게 명품가방, 명품지갑, 모피코트, 은수저와 반상기를 받았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 '명심보감'에 "혼인하고 장가드는 데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내 뜻을 존중해준 사돈어른들 덕분에 오랑캐 대열에 들지 않았다.

내가 아들의 혼사를 간소하게 치른 것은 내 결혼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나는 없는 집 딸로서 내 손으로 벌어 혼수용품을 마련해야 했다. 연애기간 동안 수첩에 빼곡하게 메모하고 서울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들락거리며 그릇세트, 술잔, 커피잔 같은 물건들을 구하러 다녔다. 구정실로 쿠션 식탁보 커튼을 짜고 오색실로 수를 놓았다. 그렇게 해야 시집가는 줄 알았다. 올해가 결혼한 지 30년째인데, 아직 상자 속에 꺼내지도 않은 잡동사니 혼수용품이 그대로 들어 있다.

가져오기만 했나, 예단도 많이 받았다. 물건 목록이 두루마리 한지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 보석, 그 옷들, 그 화장품…. 앞치마 입고 호되게 시집살이하는 나에게 도움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낯선 곳으로 시집 온 나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 환한 웃음, 편안한 잠자리였다. 시어머니는 예물로 고급 시계를 넣어주셨다. 그 귀하다는 물건은 나에게 고삐였다. 모파상 소설에 나오는 '진주 목걸이'였다. 나는 몇 년 동안 월부로 갚듯이 매달 시어머니께 돈을 드렸다. 물론 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며느리의 자존심을 그렇게 지켰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아프고 싫었던 것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후, 풀꽃 부케 한 아름 안은 소박한 결혼은 나의 꿈이 되었다.

요즘 나도 바쁘고 남편도 바쁘고 며느리도 바쁘고 아들도 바쁘다. 바쁘게 일하는 가운데도 며느리는 내게 "메뉴 뽑아 놓았어요"라고 카카오톡을 보내 함께 외식도 자주 한다. 내가 며느리를 껴안아주면 저도 덩달아 팔에 힘을 준다. 내가 며느리에게 새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궁중음식, 신선로, 떡국 위에 얌전하게 삼색 고명 얹는 것, 그런 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다 나온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애써 옛날 법도대로 가르치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잘해 먹고 잘산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하면 더 잘한다.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출석부 옆에 차한잔이 있다

보이차 한잔 속에 매화꽃 한송이 띄어놓고 ...

눈으로 마시고

코로 마시고

마음으로 마시고

차마 너무 아까워 선뜻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아~ 봄, 좋다

 

월은님, 아름다운 봄입니다

 

 

 

 

 

 

 

 

 

 



 




















































































































































愛蓮說

周茂叔

水陸艸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 獨愛菊

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予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妖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予謂 菊花之隱逸者也

牧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

噫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牧丹之愛 宜乎衆矣


애련설

주무숙

꽃,

물속에서 나는 꽃, 땅 위에서 피는 꽃

세상에는 사랑할 만한 꽃이 너무나 많다.
 
진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당조이래 세상 사람들은 유행처럼 모란을 사랑했다.

그런데 나는, 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을 사랑하노니….

맑은 잔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어 위아래다 통한 채 겉은 대쪽같이 꼿꼿하다.

어지러이 덩굴지는 일도 없고,

번잡하게 가지를 치는 법도 없다.

그 향기 멀수록 더욱 맑고,

언제 보아도 그 모습 물 위에 우뚝 깨끗하게 서 있다.

위엄 있는 군자를 우러러보듯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 접근하여 희롱할 수는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국화는 모든 꽃이 다 피고 진 뒤,

찬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니,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선비의 꽃이요.

모란은 화사한 자태를 뽐내며 활짝 웃는 부귀의 꽃이며,

연꽃은, 흙탕 속에서 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진정 군자의 꽃이라고.

아, 사람마다 부귀공명을 찾아 눈에 핏발을 세우는 혼탁한 세상.

국화를 사랑한다는 말은 도연명 이후 들어 보지를 못했고,

연꽃을 사랑함이 나와 같은 자, 그 몇이나 될까.

그러니 부귀가 좋아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











나는 주돈이의 애련설을 나이 마흔 넘어 읽었는데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에
'꽃시'라는 제목으로 읽었단다

글쎄, 그 깊은 뜻을 알고나 읽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