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 오늘의 운세
'마음을 털어놓으면
반응이 있다'
탈
탈
탈탈
탈탈탈~
"바쁘셨나 봐요,
학운(學運)
오전 남구 문화원에서 논어 수업이 끝나고, 잠시 쌈지도서관에 올라가 서류 좀 살펴보고, 어진샘 문학수업으로 이동하기 직전 <봉창이 칼국수> 집에 갔다.
그곳은 언제나 손님이 북적인다. 나는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고민하지 않고 반찬 따로 밥 따로 집어 먹는 시간을 아끼려고 간단하게 김치만두를 한판 시켰다.
어제 밤늦은 시간 메일로 첨부해온 원고를 퇴고하고 있었다.
퇴고라는 것이 그렇다. 정신집중을 하고 그 사람의 삶 속에 끼어들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작업이다. 그 글을 쓴 이의 언어습관, 생각, 숨 고르는 쉼표 하나도 그 사람 그 상황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나는 바짝 긴장하여 몰두했었나 보다. 5~10분 주문한 만두가 나오는 짧은 시간 동안, 글 속에 푹 빠져 빠른 속도로 빼고 넣고 줄 치고 연필춤으로 그야말로 '몰입지경'이었다.
옆 테이블에 30대 여인과 60대쯤으로 보이는 여인은 모녀지간같다. 언뜻 눈이 마주쳐 얼떨결에 목례를 건넸다. 옆의 사람들도 나에게 시선 집중을 하고 있다. 나는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 다시 얼른 인사를 하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여인이 내게 묻는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
“연세도 있으신데…”
‘연세’ 아니다. 나는 아직 연세가 아니라 나이다.
“대단하십니다.”
"..."
혀를 내두르는 모습에서 내 꼬락서니의 강도가 얼마나 한심했었나를 생각했다. 만두도 벌써 내 옆에서 식고 있다. 맨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하는 짓이다.
나는 멋쩍어 얼렁뚱땅 궁색한 대답을 했다.
“공부는 때가 있더라고요. 부모가 공부 하라 하라 할 때, 안 했더니 지금 벌 받고 있는 중입니다.”
우스개 멘트를 날렸다.
이것이 내게 뒤늦게 찾아온 학운(學運)이다.
나를 쳐다보던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는 어색한 눈인사를 건넸다.
마침내 나도 사람들도 먹는 일에 집중했다.
추석카운트다운, 이틀 전
시댁까지는 30분 거리
오늘 일정은
도우미 아주머니처럼 9시 출근하여 일하고
저녘에 집에 돌아오는 거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또 가고 또 돌아오고
이렇게 사나흘이 지나면 명절이 지나간다
막 길을 나서는데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 늦게 11시쯤 와라"
졸지에 얻은 짜투리시간,
주차장에서 나와 아파트를 한바퀴 돌았다
풍경 1
여덟살쯤 되는 사내 아이가
제법 큰 중닭 한마리를 안고 걸어온다
웬거냐고 물으니 집에서 키우는 거란다
병아리 때부터 키우는데 밥도 먹고 과자도 잘 먹지만
특히 면을 좋아한다고 한다
밖에 나와 개미나 지렁이를 먹도록 해주며
산책도 시킨다고 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목소리 톤까지 높혀 신바람나게 설명한다
풍경 2
중앙공원 가로수 길에
자매인듯한 작은 소녀 둘이 머리를 맞대고
숟가락 만한 꽃삽으로 땅을 파고 있다
소꿉놀이인가 싶어 끼어들어 보니
몇 알의 강낭콩을 심고 있다.
이슬보다 서리가 가까운 계절에 싹이나 틔울지…
내가 물을 흠뻑 주라고 하니
수줍게 “예” 인사하며 분무기로 솨솨 물총을 쏜다.
풍경 3
두세 살 되는 사내아이가 너덧 살 되는 형을 쫓아간다.
뭐가 신이 나는지 까르르 까르르 짓이나 웃는다.
내가 손을 흔드니 걸음을 멈추고
‘빠이빠이~!’ 하며
또 까르르 웃는다.
뒤에 또 한 아이가 뒤뚱대며 뛰어간다.
키도 얼굴도 옷도 똑같다.
쌍둥이 형제들이다.
아이 어미가 까불다 넘어진다고 소리친다.
풍경 4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꽃송이들처럼 오색 빛으로 모여 있다.
한 여자 아이는 색동저고리를 입었고
또 한 여자아이는 당의를 입었다.
사내아이는 새신랑 같은 한복에 마고자까지 입고
또 한 사내아이는 도령 모자는 그런대로 맞는데
바지가 껑충 올라갔다.
가슴은 꼭 여몄지만,
배꼽이 보일 정도로 저고리가 짧다.
아마 지난해보다 한 뼘은 자란 것 같다.
유치원 버스가 오니 조르르 달려가
“선생님, 안녕하세요?”
배꼽 인사를 한다.
명절예절교육 시키려나보다.
희망풍경이다.
서비스
각 도서관이 가을학기 개강을 했다.
신세를 지면 자유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손발이 고단하기는 해도 ‘내 손이 내 딸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각반의 대표를 선정하여 한 학기 수업할 교재 프린트를 맡긴다.
대표들은 공부하러 왔다가 느닷없이 봉사를 하게 된다.
그분들께 늘 미안하다.
혼자 잘해 볼 것이라고
복사 집에 《논어》《명심보감》교재를 맡겼다.
찾으러 가니 일금 40만 원이다.
당장 그렇게 많은 현금이 없다.
카드 결제는 안 한다고 했다.
은행에 갔는데 신용카드가 없다.
집에까지 왔다 가자니 늦다.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S 백화점 S 카드’를 넣어 작동을 해보니
만원짜리 돈이 차르르 차르르 40정 나왔다.
어찌나 신통방통하던지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늦은 저녁, 남편에게
“여보, 세상 참 좋데요”
은행카드 없어도 돈을 찾을 수 있으니,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라고…
카드 여러 개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경쾌하게 ‘자랑질’을 했다.
멀찌감치서 듣고 있던 남편이
‘버럭!’
그게 바로 현직대통령이 말하는
대기업이 서민들에게 사채놀이한다는 것이란다.
나는 억울하여 제법 똑똑하게
“아닌데요!” 반박했다.
그게 바로 ‘서비스’라고.
카드에서 어찌 내가 잔액이 있는 것을 알고
나의 신용을 믿고
‘서비스’ 해주는 것이라고,
분명히 나는 <현금서비스>라는 곳을 눌렀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들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말을 하니
“그까짓 한달해봐야 이자가 몇 푼이나 된다고” 그냥 놔두라는 사람이 있고
“뭐하러 그런 걸 미주왈 고주왈 남편에게 말하느냐?”라는 이도 있고
“지금, 당장 전화해서 갚으라”라는 사람도 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어느 분이 자판기 커피를 빼서
“오늘 개강 날이라 커피서비스는 내가 할게요.” 한다.
아하! 저것이 바로 서비스다.
집에 오자마자
메모지에 <9월 6일 11시 59분 400000만 원>을 적어놓고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전화했다.
계속 1번 눌러라, 2번 눌러라, 기계음이 6번까지 말한다.
몇 번을 거듭 들어도 뭘 눌러야 할지 난감하다.
순서대로 누르며 진땀을 빼다가
겨우겨우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하루 사이 \1485원 이자가 붙었다.
난, 도대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옆에 사람들이
가르쳐주고
이끌어 주고
도와주어도
날마다 사건 사고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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